싱가포르의 도덕교육Ⅰ. 서론싱가포르는 다민족, 다종교, 복수 언어의 인구 3백만 도시국가로 1965년 영국의 식민지배로부터 독립한 이후, 한국, 대만, 홍콩과 함께 아시아적 가치에 기반하여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룩한 아시아의 대표적인 신흥 공업국가이며, 싱가포르는 한국처럼 도덕교육을 교과 형태로 실행하고 있는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임. 싱가포르의 도덕교육은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집단을 결속시켜 국민 통합을 이룩하며, 서구 문명의 부정적 측면인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아시아적 정체성 및 가치를 신장시키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음Ⅱ. 도덕교육의 역사- 1967년 초?중등학교에서 이란 명칭으로 정규 수업시간을 통해 최소 주당 1시간씩 도덕교육을 실시함- 1974년에는 이를 으로 개칭하여 사회교육과 도덕교육의 내용을 아우르는 교과로 자리함- 1979년 도덕교육 전반에 대한 분석과 검토 결과를 토대로 새로운 도덕교육의 방향을 설정함. 이 분석 보고서에 의하면, 프로그램이 효과를 내지 못하는 바, 초 중등학교에서 개인적 행동과 사회적 책임, 국가에의 충성을 강조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모국어를 사용하여 실시할 것을 권고함- 도덕교육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중등학교 2학년까지 실시되고 정식시험을 보는 과목으로 자리하게 됨. 또 교육 개혁에 따른 새로운 교육과정에는 별도의 두 도덕교육 프로그램인 , 이 제안되어 새로운 교육과정 시행 이전에 임시로 시행하도록 되어 있었음- 새로운 도덕교육에서는 종교의 도덕교육적 효과를 새삼 인식하여 도덕교육 속에 종교교육을 포함시키게 됨▶ 종교교육은 중등학교 3-5학년 학생들의 필수교과가 됨그러나 종교교육의 경우, 특정 교리를 가르치는 종교교육이 아니라 중립적인종교에 관한 교육을 공식적인 교육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이상과 실제 사이에거리를 드러내고 있음?1989 개정 교육과정- 1989년 교육과정 개정에서는 종교과목은 정규교과 외 선택과목으로 분류되고 도덕교육에서는 세속적 도덕성만을 교육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됨. 이와 동시에 초?중등학교의 공통의 세속적인 도덕교육 과정이 새롭게 만들어 졌음- 여기에는 기존의 와 이 갖고 있던 장점을 통합하여 을 새롭게 도입하였음.- 이 교육과정은 도덕교육은 국가의 이념요소들을 통합해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다섯 개의 공동 가치’를 제안함(1) 공동체보다는 국가, 자신보다는 사회(2) 사회의 기본단위는 가정(3) 공동체는 개개인을 존중하고 지지(4) 갈등이 아닌 합의(5) 민족적 종교적 조화※ 싱가포르의 ‘공민과 도덕교육’싱가포르에서 공민과 도덕교육 교과의 의의는 인격의 형성 및 확립에 있음⇒ 공민과 도덕교육은 한 마디로 말해 학생들을 건전한 도덕적 원리에 정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계획된 교과- 싱가포르 교육부는 공민과 도덕교육 교과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제시함“ 학생들이 도덕적으로 강직하며 현대 사회에서 도덕적 가치의 적절성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학생들은 그들의 가치를 효과적인 방식으로 실천하기 위한 사회적ㆍ감정적 능력을 구비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가치와 능력을 구비하는 것은 학생들이 그들에게 가용한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에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시민으로서 우리의 젊은이들은 싱가포르에 대한 소속감을 계발하고 싱가포르의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가치들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에서 공민과 도덕교육 교과의 우선적인 목적은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 즉 배려적이고 자신ㆍ가족ㆍ학교 공동체ㆍ국가ㆍ세계를 향해 책임 있게 행동하는 사람을 육성하는 것- 공민과 도덕교육 교과는 미국의 인격교육 이론에 근거하여, 행위와 행동이 일관되게 도덕적이고 그것이 도덕적 지식과 감정에 근거할 때, 개인은 휼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발달한다고 봄▶ 싱가포르 교육부는 인격의 구성요소를 도덕적 지식, 감정, 행동으로 설명한 리코나의 이론을 차용하고 있음. 즉 도덕적으로 강직한 개인의 발달을 목표로 하는 교육은 도덕적 지식, 도덕적 감정, 도덕적 행동 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는 리코나의 논리를 수용한 것Ⅲ. 현행 도덕교육- 현재 초?중등학교에서는 “공민성과 도덕교육” 교과명으로 독립교과로서 실시되고 있음. 이 뿐만 아니라 도덕교육은 생활지도 및 PCGG(Pastoral Care and Career Guidance) 와 같은 특별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이루어지고 있음- 정규수업시간을 통한 도덕교육을 살펴보면, 교과는 초등 1-4학년은 주당 3-4시간, 5-6학년은 주당 3시간, 중1-2학년은 주당 2시간,중3-5(고등학교)학년은 주당 2시간 필수로 배정되어 있음- 초등학교 1-4학년 기초 단계에서는 모국어 시간에 모국어교육과 함께 도덕교육 이 실시되고, 5-6학년 예비과정에서는 독립된 시간에 모국어를 사용하여 도덕교 육이 실시되고 있음* 그러나 도덕교육은 음악 및 체육과 함께 정규 교과목이지만 시험이나 성적 산출 이 없으며, 교과서와 교사용 지도서, 각 주제와 관련된 시청각 자료 등이 활용되 어 소집단 탐구활동과 토론 등을 통해 수업이 이루어짐.- 중학교에서 교수-학습 활동은 초등과 대동소이함. 중등학교 교과서의 내용을살펴보면, (1) 유대감 형성, (2) 공동체 의식, (3) 자아성장, (4) 가족애, (5) 다양 성의 조화 등의 6개 주제로 구성됨, 각 학년별로 두 개의 교과서(A, B) 가 있고, 각 학년별로 6가지 주제를 수준을 달리해서 반복적으로 학습 할 수 있도록 구성 되어 있음▶ 종교교육은 교과 외 과목으로 분류되어 있으나, 이슬람학교의 경우, 종교교육이 60~70%를 차지하며 가 병행됨. 기독교학교에서는 교과를 대신하여 교육을 실시함
4.19는 혁명인가에 대한 연구혁명이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바뀌는 계급혁명이라는 것이 고전적인 정의로 되어 있다. 즉 혁명은 "피압박자가 압제자의 지배체제를 무너뜨리고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구체제의 모순을 청산하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계급혁명론의 관점에서 볼 때, 우선 4.19는 어느 계급이 다른 계급을 무너뜨린 혁명은 아니었다. 붕괴된 자유당 정권과 새로 집권한 민주당 세력 간에 어떤 계급적 차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4.19는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민중의 힘으로 독재정권을 타도하기는 했지만 그 지배체제를 무너뜨리지는 못했고, 따라서 새로운 계급이 사회적 모순을 청산하고 새로운 체제를 구축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계급혁명의 관점에서 본다면 4.19를 혁명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렵게 된다. 또한 혁명을 단속적 일회적인 '사건'으로 보느냐, 하나의 연속적 계기적인 '과정'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1960년 4월19일에, 또는 4월 한 달 동안에 일어났던, 길게 잡아야 1960년 한 해에 걸쳐 전개되었던, 역사적으로 단절된 일회적 사건으로 본다면 4.19는 그 어떤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으며, 더구나 1년 후 5.16 쿠데타에 의해 좌절되었기 때문에 기껏해야 "실패한 혁명"이라고 밖에 규정할 수 없다. 즉 4.19는 계급 혁명적 관점에서 볼 때, 그리고 단속적 일회적인 사건으로 본다면 혁명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4.19를 과연 혁명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실제로 그 당시 진보적 청년단체들과 그 구성원들은 4.19를 혁명적 차원으로 끌어올리고자 하는 열의에서 처음에는 4월 혁명이란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혁명"이라고 부르기를 꺼리고 "3,4월 항쟁" 등의 용어를 사용하기도 했다. 지금도 일부 학자들은 '4.19 운동' 또는 '4월 민중항쟁' 등으로 부르는 경우를 볼 수 있으며, 북한도 '4월(4.19) 인민봉기' 또는 반미. 반파쇼 '민주항쟁' 등으로 부르고 있다. 국정화 교과서라든지 올바른 역사관이 무엇인지 문제가 되는 현 시점에서 우리의 지나온 역사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 연구를 통해 4.19가 과연 혁명인지 봉기인지에 대한 성격을 명확히 밝혀보고자 한다.먼저 4.19의 성격에 관한 여러 입장의 논쟁이 있는데, 의거론과 혁명론, 미완의 혁명론이 그것이다. 의거론은 4.19를 단순히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정치적 야심이 없는 "순수한" 학생들의 도덕적, 윤리적 문제 제기였다고 보는 입장이다 . 4월 혁명이 당초 3.15 부정선거에 대한 항의로부터 촉발되었기 때문에 실제로 2.28 대구학생 시위에서 4.26의 이승만 하야하기까지는 "부정선거 다시 하라," "김주열을 살려내라,"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 등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구호가 지배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독재자 이승만이 하야한 후에는 "학원민주화"나 "신생활운동," 교원노조 운동, 혁신정당 운동 등으로 점차 폭넓은 민주화 요구가 제되면서 계급문제나 민족문제에 접근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었고, 특히 1960년 연말부터는 한미경제협정 반대운동, 2대 악법 반대운동과 민족통일 운동 등 본질적인 민족민주 문제, 특히 민족통일 문제가 제기되었음을 볼 수 있다. 무릇 혁명은 일회적인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일정한 기간 동안 발전과정을 거치게 되어있다. 4.19의 성격과 이념도 따라서 초기의 구호에서가 아니라 그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민중의 요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결국 4.19의 의미를 이승만이 축출되기까지의 초기 1, 2개월간에 한정시키는 의거론은 4.19가 갖는 정치적 의미를 애써 축소하고 4.19가 혁명으로 발전하는 데 반대한 세력의 논거였다고 정리할 수 있다. 다음으로 완결된 혁명론의 입장을 살펴보면, 당초 4.19를 혁명으로 부르기를 선호한 것은 오히려 역대 정권 측이었다. 다소의 기복과 변동이 있기는 했지만 장면정권은 '4월 혁명'이란 용어를 공식 채택하여 스스로 4월 혁명의 적자임을 자처했고, 4.19를 '의거'로 격하시킨 5.16 쿠데타 이후의 역대 군사정권도 종종 '4.19 민주혁명' 또는 '4.19혁명'의 계승 또는 완수를 표방했으며, 정통성이 결여된 박정희 정권 이후 역대 정권은 저마다 4.19 상이자 등을 국가유공자로 표창하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다. 특히 김영삼 정권이 국립4.19묘지를 성역화하면서 '4.19혁명'이란 용어가 각종 정부 문서에서도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들의 '4.19혁명'론은 이승만 정권 타도라는 정변적 사건만으로 혁명이 이미 완수되었음을 주장하고 자신이 혁명의 계승자임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계급론적 관점에서는 물론이고 민족사적 관점에서도 인정될 수 없는 관념적 허구이며 오히려 4.19의 진정한 혁명적 성격을 훼손하는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미완의 혁명' 또는 '현재진행형 혁명'론은 4.19를 1960년 4월이라는 특정 시점에 표출된 일회적, 단절적 사건으로 보지 않고, 이미 갑오농민전쟁과 일제 식민지 하의 항일투쟁을 거쳐 분단 후 민족적 비극을 겪으면서 역사적으로 예비 되어 온, 그리고 4.19 공간에서 분출된 후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민족민주 변혁과정의 일환으로 이해하는 관점이다. 이처럼 4.19를 민족사적 맥락에서 미완의 현재진행형 혁명으로 파악함으로써 4.19는 “혁명"으로 복원된다. 이와 같이 4.19의 성격을 보는 관점이 다양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4.19를 다른 나라에서는 아시아에서의 프랑스 혁명이라고도 보기도 하는 데, 비교해보았을 때 비슷한 성격을 지닌 점도 있다. 프랑스혁명과 4.19혁명은 다른 나라, 다른 시대에 일어난 혁명이지만 민중들 모두가 민주 국가 성립을 원했고, 자유와 평등을 주장했으며, 진정한 독립을 원했다는 점에서 뜻을 같이 하였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의 주체는 대부분 민중인 농민과 노동자였으며, 그들은 억압되고 불공평한 사회에 맞서 일어난데 비해, 4.19는 이러한 민중의 직접적인 행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소수 지식층과 학생층에 의하여 주도되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설사 민중을 피지배계층 일반이라고 정의한다 해도 학생계층이 다른 민중의 이해관계를 모두 포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는 차이가 있다. 또한 혁명을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그 이념을 정치제도화 시킬 수 있는 구심체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혁명에선 국민의회가 만들어졌고,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채택함으로써 이를 중심으로 여러 개혁이 단행된데 반해 우리나라의 혁명은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들끼리의 조직에 의해서가 아니라 돌발적 사태에 모인 군중들의 집합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나라 혁명 모두 각 나라의 민주화나 자유 평등을 보급시키는데 영향을 주었지만 4.19는 결과로서 독재 정치가 실행된 점에선 한계점을 보인다. 그러나 올바른 같은 뜻을 가진 민중의 대열은 독재의 어떠한 혹독한 탄압, 학살, 처형도 물리치고 궁극적 승리를 달성할 수 잇다는 것을 알려 준 사건들이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같이한다.4.19혁명은 제 2의 해방이었다. 4.19혁명의 운동 시기는 짧았지만 자유를 안겨주었으며, 이는 해방 직후 잠깐 누렸던 것을 제외하면 유사 이래 처음 맛본 자유였다. 이러한 자유는 민족의 자유로 나아가게 하여 민족자주와 민족해방을 위한 통일운동의 계기가 되었고, 민주주의를 키울 기회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419혁명은 불과 1년 만에 반전되었는데, 우리나라는 미국의 보호 아래 반공극우냉전체제를 수호하기 위하여 군부쿠데타가 발생하여 권력집단이 교체되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4.19혁명이 있은 지 한두 달도 못되어 “혁명은 좌절되었다”,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다”라는 불안한 마음이 자리 잡았다. 이처럼 419혁명의 과업이 지지부진하게 된 것은 참신한 혁신정치세력이 부재하였던 데 원인이 있다. 3.4월 항쟁에 민주당의 경우 별반 참여하지 않았고 오히려 지도부는 그것을 두려워하고 외면하였는데, 사실은 혁신세력도 사회운동 세력도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 기성 혁신정치인들을 대신하여 혁신정치를 펼 수 있는 세력으로는 청년, 학생들이 있었지만, 4.19혁명 운동기 당시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자유당정권에서 학생들은 관제데모에 자주 동원되었지만, 이승만 정권에 대하여 반대 또는 항의시위를 한 적이 없었고, 대학생들은 3.15부정선거에 대해서도 침묵을 지키다 4.18부터서야 군중의 일원으로 초중고학생들과 시위에 참여하였다. 대학생들은 특권, 선민의식이 없지 않았고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4월 19일 그날까지 이승만을 위대한 애국자요 국부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소수를 제외하고는 극우 냉전 체제적 사고와 구비제일주의의 근대화론 틀에서 벗어나 있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이제까지의 내용을 정리해보았을 때, 4.19를 보는 관점도 다양하며, 다른 사례로서 프랑스 혁명과 비교를 해보았을 때 나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내용을 살펴보았다.
나의 도덕적 관점에 대해서나의 도덕적 관점에 대해 알아보기 앞서 도덕적 관점의 뜻을 살펴보자면 도덕적 관점이란 도덕에 관련된 내용에 대해 생각하는 태도나 방향이다.평소 도덕적 관점에 대해 확고하게 생각하고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아가면서 꼭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의 관점이 있다. 살아가면서 도덕적으로 절제, 믿음, 용기, 희망 등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우선 절제는 지키기 힘들지만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살아가면서 나 자신을 절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절제를 해야 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시험기간에 놀고 싶은 데 참고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한다든지, 쇼핑을 가서 이것도 사고 싶고 저것 다 사고 싶지만 정말 필요한지 따져보고 물건을 사는 것, 이런 것도 다 절제라고 생각한다. 절제는 나 자신을 위해 더 큰 것을 위해 작은 것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살아가면서 절제란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친구사이나 연인사이에도 정말 중요한 것은 믿음이다. 가끔 친구나 남자친구가 나에게 서운한 행동을 해도 믿어주는 것, 사정이 있을 것이라 생각해주는 것이다. 믿음 없이 서운한 행동에 바로 화내고 그러면 서로 관계도 멀어질 것이다. 믿음 없는 사이는 기둥 없는 집과 같다. 그만큼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믿음은 중요하다. 서로 믿어주고 이해해주는 것이 친구나 연인 가족 모든 관계에서 필요하다.그리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용기이다. 용기란 정말 내가 힘들 때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정말 너무 힘들 때 누가 위로를 해주거나 힘이 되어 준다면 용기가 나고 다시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희망도 역시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용기가 생기려면 희망이 있어야 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면 길이 보인다. 모든 일은 자신의 생각하는 데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희망 없이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다면 그것이야말로 비극이다. 내가 읽었던 책 중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에 보면 R=VD라는 어구가 나온다.이 어구의 뜻은 Reality= vivid dream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라는 뜻이다. 그만큼 희망을 갖는다는 것은 중요하다.인내는 어떻게 보면 절제와 비슷한데 절제는 자기관리의 차원에서 행동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것이라면 인내는 힘든 상황을 견디는 나의 내면의 능력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어떤 꿈이나 확고한 목표가 있는 경우 가는 도중 아무리 힘든 상황이 와도 목표를 위해 인내하고 견디는 것은 살면서 정말 중요한 것 같다. 그래서 인내는 나의 도덕적 생각 중 하나이다.
내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내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는 인터넷 문화이다. 우리나라는 인터넷 망이 급속도로 발전한 인터넷 강국이다. 그에 따라 곳곳에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 없고 요새는 무선인터넷까지 발달할 정도로 높은 수준의 기술발전을 이루었다.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또 반응 할 수 있으며 개인 간 상호교류도 심심찮게 이루어진다. 하지만 너무 단기간에 인터넷이 발달함에 따라 그에 수반되어야 하는 사람들의 의식은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문화지체 현상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이 인터넷 예절이다. 인터넷을 하다보면 뉴스, 기사를 통해 지구촌, 나라, 지역에 관한 일들을 알 수 있고 심지어는 개인 홈페이지에도 접속해 사생활까지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 다른 사람들과 마찰이 빚어지는 것은 허다한 일이고, 논쟁도 벌어질 수 있는데 여기서 네티즌들이 발휘해야하는 인터넷 예절은 인터넷 기술 발달의 속도에 비해 현저히 뒤쳐지는 것이 사실이다.또한 인터넷의 발달로 익명성이 보장되면서 온라인상의 게시판 댓글에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되었다. 홈페이지의 방명록, 신문기사의 댓글,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 sns 등에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쉽게 토론할 수 있는 인터넷 상의 공간이, 익명이란 가면을 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안 좋게 이용되고 또 사실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아무 생각 없이 사람들이 달고 있는 악성댓글은 얼굴을 보이지 않고 말하는 언어폭력의 일종이다. 냉철한 비판과 비난은 분명히 다른 것인데 사람들은 그것을 구분하지 못해서거나, 혹은 일부러 상처를 주기위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적을 향해 화살을 쏜다. 그리고 이 문제는 알려져 있는 연예인들의 연이은 자살을 통해 더욱 대두되고 있다. 물론 일반인들도 많은 피해를 입지만 사실 악성 댓글은 일반인들 보다는 유명인들에게 더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개개인은 별 생각 없이 한마디 던진 것이, 점점 불어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만큼 큰 눈덩이가 돼 있었던 것이다.여기에는 교육에 있어서의 문제점도 포함되어 있다. 급속한 발달은 아이들에게 인터넷에 관한 기본적인 소양교육을 시행할 틈도 없이 컴퓨터를 잘 활용하는 방법, 어떻게 하면 컴퓨터(인터넷)박사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만 가르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런 교육만 받고 컴퓨터 예절에 대한 소양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들은 인터넷을 잘 활용하는 법은 알고 있지만 바르게 활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지는 못하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미 늦어버린 시기에 바르고 예의있게 사용하기 위한 교육을 받기는 어렵기 때문에 점점 올바른 인터넷 사용에 대한 감을 잃어버리게 되고 결국에는 의식하지 못하고 ‘바르게’가 아닌 ‘빠르게’만 이용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1. 촌지를 받는 교직원학부모가 교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작은 정성이었던 촌지가 오늘날 소위 치맛바람으로 변질이 심화되어 현대 교육 문제가 되고 있다. 촌지를 받으면 안되는 이유는 첫째, 사명감을 안고 소신껏 교육활동에 전념해야하는 교사가 촌지로 자신의 양심을 저버리고 아이들에게 공평한 사랑을 나누어주지 못한다면 이미 교사라는 사명감을 저버린것과 같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사의 자격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사명감과 교육 윤리관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촌지 근절을 위해 나서야 하는 존재라 생각한다. 두 번째, 교원 및 국가, 지방자치단체, 학부모에게 학교 촌지 근절을 위한 의무를 부과하고 교사의 촌지에 관한 예방교육을 실시하면서 촌지 문제는 교사의 양심에 맡기는 것이 옳다 생각한다. 물론 촌지근절을 위한 제도와 규칙이 더욱 심화되어야 근절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촌지는 교사의 양심과 결부되어있는 문제이다. 촌지를 받은 교사는 스스로 교사의 양심을 팔아 버린 것이고 자격이 없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사회의 부조리는 멀리서 생기지 않는다. 촌지로 먹고사는 사람들의 부패적인 성향이 낳은 결과이기 때문에, 우리는 사회가 발전 할수록 각자의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양심에 대해 숙고해봐야 한다.2. 동성애자의 인권침해1948년 UN위원회에서 인권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사회적인 성취에서 인종, 성별, 언어, 종교, 나이 등에 차별을 두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특권과 책임이 주어지는 기회라고 정의를 내렸다. 앞에서 밝힌 정의에 의하면 모든 사람들은 동등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동성애자, 넓은 의미로 보았을 때 성소수자들이 여러 사람들이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우리나라 「헌법」제 10조를 살펴보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면 행복이란 개인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그 기준은 정신이나 물질의 어느 한쪽에 치우칠 수 없음은 물론,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발전적으로 형성되어 가고 있는 추상적 개념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행복 추구권은 다의적으로 해석 가능하지만 동성애자들에게 있어서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우리나라가 아직까지 보수적이고 유교적인 사상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에 성소수자에 대해서 개방적이지 못하고 성소수자 들하면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매도하는 경향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성소수자도 하나의 인권이 있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단지 그들은 성적 취향이 우리와는 다른 것일 뿐인 분들입니다. 이런 억압적인 사회를 이젠 바로 잡아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양성애자입니다. 그 중에서 성적취향이 동성에게 더 강하기 때문에 동성애자도 생기는 것입니다. 우스갯소리로 너 게이냐? 이런 애기들을 하면서 장난을 치지만 진짜로 게이일수도 있는 것이고 게이의 개념이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라면누구나 게이일 확률이 있고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다. 양성애자 비율이 70% 이성애자의 비율보다 양성애자가 훨씬 더 높다. 즉 너희들 주변 친구들중에 여자 친구 있다고 자랑하고 하는 사람들도 충분히 남자를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단 말이다. 사회의 보편적인 시각 때문에 남자 = 여자를 좋아해야한다. 여자 = 남자를 좋아해야한다. 이렇게 적응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거기에 맞춰 살아가는 것이다. 대부분이 양성애자 즉 게이일 확률을 가지고 있다. 또 마찬가지로 성소수자라는 것은 동물원 우리안의 동물 같은 특정한 시선으로 봐야하는 것이 아닌 우리 일상생활의 일부분일 뿐이다.3. 체벌체벌은 일시적인 효과만 낳을 뿐이다. 자신의 잘못을 반성 없이 잠깐의 아픔으로 승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교사와 학생의 대화 시간을 충분히 가져 절충안을 찾아야한다. 그리고 체벌만이 답이 되어서는 안된다. 예를 들면 한 학생이 지각을 하였다. 체벌로 그 학생을 교화시킬 것이 아니라 안되는 이유를 설명해주면서 시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방법도 있다. 한 두 번의 지각이 사회에 나가서 취직을 하였을 때 조그만 버릇이 큰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체벌 말고 다른 벌로는 똑같이 그 시간만큼 아무것도 안하면서 시간을 버리면서 지내보기와 같은 벌이 있다. 간혹 말이 안통하는 학생에게는 체벌이 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말이 안통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대화하는데 있어서 교사와 학생 서로의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4.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침해외국인근로자는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사람으로서 국내의 소재하고 있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고 있거나 제공하려는 사람들을 말한다. 우리 사회는 이미 다문화 사회에 진입했다고 본다. 국내체류 외국인 수는 해마다 증가하여 이 비율로 예측하자면 2020년에는 인구의 5%, 2050년에는 9.2%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3D업종일은 거의 대부분 외국인 노동자들이 맡은 지 오래됐다. 그런데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우리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등으로 임금체불, 폭행 등 인권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고 한다. 산업연수생 제도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지 오래됐지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심각한 체불임금, 잔인한 폭행으로 인한 인권 침해 사례는 점점 증가하는 추세이다. 하지만 법을 피해가면서 불법체류를 하는 것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잘못이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나는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상의 약점을 이용해 그들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은 더욱 옳지 못하고 본다. 그 이유는 상대적으로 고용인(노동자)는 고용주에 비해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법체류자라는 신분을 갖고 있는 것을 알지만 그 사람을 고용하게 되는 고용주는 고용한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 관련 문제는 우리 사회와 뗄 수 없는 현대사회지만 요즘을 살아가는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 대해, 대부분 큰 관심이 없다. 소수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우리사회 특유의 분위기가 하나의 원인일 것이고, 스스로 건재하기에도 바쁜 현대인의 특징 또한 비판받아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