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는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위로 형 맹희와 창희 그리고 누나 인희, 숙희, 순희, 덕희가 있었고, 아래로는 여동생 명희가 생겼다. 당시 아버지는 대구 서문시장 근처에서 삼성상회를 경영하고 있었고, 이 사업이 청과물과 건어물을 만주 등지로 파는 무역회사로 점차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던 터라 아버지와 어머니는 무척 바빴다. 그 바람에 어머니는 막내아들 건희가 젖을 떼자마자 의령의 친가로 보냈다. 그래서 건희는 할머니가 어머니인 줄 알고 자랐다. 해방 후가 되어서야, 건희는 처음으로 부모형제와 함께하는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1947년에 이병철이 사업을 확장하려고 서울로 이사를 했고, 2년 뒤인 1949년에 혜화초등학교에 입학했다. 1950년에 한국전쟁이 발발했고,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이병철 일가는 공산 치하에서 3개월 동안 모진 어려움을 겪는다. 이병철은 타도 대상인 ‘자본가’였기 때문이다. 서울 수복 후에 이병철 일가는 마산으로 내려갔고, 거기에서 건희는 다시 초등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금방 대구로 이사를 갔고, 건희는 또 다시 전학을 해야 했다. 하지만 대구 생활도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이병철이 부산의 동광동으로 자리를 옮겨 사업을 재개했기 때문이다.이렇게 해서 초등학교 때 한국에서만 모두 다섯 번이나 전학을 한 것이다. 부산사범부속초등학교 5학년이던 1953년, 아버지는 건희에게 ‘선진국을 보고 배우라’며 일본 도쿄로 유학을 보낸다. 모진 아버지였다. 이제 겨우 열한 살인 아이를, 그렇지 않아도 애정에 목이 말라 숨이 넘어갈 것 같은 어린아이를 자기 곁에서 내쫓았다. 소년 건희는 영화를 보았다. 아니, 영화에 몰입했다. 소년 건희가 일본에서 초등학교 2년과 중학교 1년, 총 3년 동안 보았던 영화를 합산하면 1,200~1,300편이 된다고 한다. 그의 몰두 대상은 숱하게 많았다. 그 가운데 하나가 기계였다. 이건희가 기계광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전자 제품이나 각종 기계를 분해하고 조립하면서 기능과 성능을 학인, 이른바 ‘본질주의’로 나타난다. 또 이런 유형의 인재를 찾는 ‘천재 경영’을 추구한다.스물넷이었던 1966년 가을 건희는 평생의 동반자가 될 여성을 만났다. 여자의 이름은 홍라희였고, 덕수초등학교와 경기여중고를 거쳐 서울대학교 응용미술학과에 재학 중이던 대학생이었으며, 나이는 건희보다 세 살 아래였다. 라희는 선을 보러 어머니와 함께 하네다 공항에 도착했고 건희가 두 사람을 마중했다. 1967년 1월 두 사람은 약혼을 하고, 라희가 대학교를 졸업한 뒤인 4월 30일에 결혼했다. 1971년에 1월, 삼성 본관의 회장 집무실에서 이병철 회장은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유언장을 적어나갔다. “장남 맹희는 경영에 뜻이 없고, 차남 창희는 많은 기업을 하기 싫어한다. 이러한 뜻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삼남 건희도 당초에는 본인이 사양했으나 마지막에는 ‘역량은 부족하나 맡아보겠다’는 뜻을 가져주었다. 이러한 경위로 삼성그룹의 후계자는 건희로 정한 만큼, 건희를 중심으로 삼성을 이끌어 갈 것이며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이 뒷받침해서 승계해주기 바란다.” 이병철 회장은 1976년 9월에 위암 판정을 받았다. 이병철은 수술을 받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기 전에 가족들을 불러 놓고 말했다. “앞으로 삼성은 건희가 이끌어 가도록 하겠다.” 그러나 위 절제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다. 이병철 회장은 다시 삼성그룹의 총수로 일선에서 지휘를 했다. 그리고 1977년 8월, 이병철 회장은 닛케이 비즈니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삼남 이건희가 삼성의 후계자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룹 부회장이 된 이건희가 마침내 역량을 발휘할 기회가 왔다. 그 기회를 가져다준 건 바로 석유파동이었다. 이건희에게 당시 국영기업이던 대한석유공사(유공)를 인수하라는 이병철 회장의 특명이 떨어졌다. 1980년 11월 28일, 박봉환 동력자원부 장관이 기자회견장에 나타났다. 유공 인수업체를 최종적으로 발표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최종 승자는 선경이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셈이었다. 이병철하기 위해서 병원에서 이태원동의 한옥 자택으로 돌아왔다. 다섯 시간 뒤,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1987년 11월 19일, 이병철 회장이 숨을 거둔 지 열두 시간 남짓 지난 시각인 오후 다섯 시 삼십 분, 삼성 본관 28층 대회의실에서 긴급 사장단 회의가 열렸다. 다들 입을 굳게 다물고 있을 때, 신현확 삼성물산 회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 회장의 서거로 인한 우리들의 충격과 애석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나 경영에 잠시라도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건희 부회장을 새 회장으로 추대합시다. 부회장의 회장 승계는 고인의 뜻일 뿐 아니라, 이 부회장은 고인의 유지를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최적임자라고 우리 모두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일치단결해서 후계 회장을 모시고 경영에 차질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고 신현확은 제의했다. 이 제의에 참석자들은 모두 동의했다. 이렇게 해서 마침내 삼남 이건희는 삼성그룹의 회장이 되었다. 취임식은 그로부터 열흘쯤 지난 뒤에 열렸다. 1987년 12월 1일 호암아트홀에서 삼성그룹 신임 회장 취임식을 마친 뒤 이건희는 사장단을 이끌고 고인이 된 아버지의 집을 찾아 아버지의 영정 앞에 섰다. 영정 사진 속의 아버지는 엄격함 속에 미소를 숨기고,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2월 1일에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한 뒤로 그때까지 5년 동안 국내 재벌그룹 회장 가운데 가장 조용하게 보냈다. 하지만 1993년에 들어서자 이건희 회장은 그동안 준비한 조직적 성과와 이론적인 방향성을 들고 경영 일선에 전면적으로 나섰다. 바야흐로 삼성 호의 대권을 온전하고도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한 결전이 시작되었다.1월 11일 삼성 본관 27층 대회의실, 계열사 사장단회의에서 이건희 회장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21세기를 대비하기 위한 마지막 기회를 맞고 있다는 각오로 새로운 출발을 합시다.” 예년과 다름없는 회의였지만, 이 회의는 장차 ‘이건희 신드롬’이라는 신조어를 낳으며 삼런데 삼성 제품은 구석에서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었다.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국내에서 일류라고 자랑스러워했던 삼성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는 눈길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분노와 투지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 또 하나 더 있었다.이른바 ‘세탁기 사건’이다. 6월 5일, 하네다 공항을 떠나려는 이 회장에게 삼성비서실 SBC팀이 제작한 비디오테이프 한 개가 전달되었다. 삼성전자의 세탁기 조립과정을 생생하게 담은 30분짜리 영상물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세탁기 생산 현장, 납품된 세탁기 뚜껑 여닫이 부분의 플라스틱 부품이 조금 커서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현장 직원은 아무렇지도 않게 칼로 2밀리미터쯤 깎아낸 다음에 조립했다. 주문이 밀려 생산량을 맞춰야 하는데, 새로 뚜껑 부분을 설계하고 금형을 제작하려면 시간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플라스틱 뚜껑을 깎던 직원이 다른 용무로 작업 현장을 떠나자 다른 직원이 긴급 투입되어 플라스틱을 깎았다. 그러면서도 직원들은 어떤 거리낌도 없었고 부끄러움도 없었다. 이런 모습을 SBC의 몰래카메라 팀이 고스란히 촬영했다. 이 장면이 사내에 방영되었고, 관계자들은 물론이고 삼성전자의 경영진까지 경악했다. 이건희는 곧바로 서울의 이학수 비서실 차장에서 전화를 걸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녹음하시오!” 그는 벽력같이 호통 치며 지시했다. “내가 질 경영을 그렇게도 강조했는데 이게 그 결과요? 몇 년 동안 그렇게나 강조를 했는데 변한 게 고작 이거요? 사장들과 임원들 전부 프랑크푸르트로 집합시켜요. 이제부터 내가 직접 나섭니다.” 불호령을 받은 윤종용 사장, 비서실 김순택 경영관리팀장 등 삼성 핵심 경영진 200여 명은 허겁지겁 서울 발 프랑크푸르트 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993년 6월 7일 월요일, 독일의 켐핀스키팔켄슈타인 호텔. 회의는 네 차례에 걸쳐 계획되어 있었고, 첫 번째 대상이 사장단이었다. 이건희는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천천죄행위를 저지른 겁니다! “앞으로 21세기에는 초일류가 아니면 살아남지 못합니다. 대변혁의 시대에 하루 속히 글로벌 스탠더드에 적응하지 못하면 삼성은 영원히 이류, 삼류로 뒤처지고 맙니다. 마누라와 자식을 빼고는 다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삼성이 전직 구조조정본부 간부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서 관리해 왔고, 2002년 대선 자금도 비자금에서 제공했다고 주장했으며, 또한 삼성은 현직 검찰 주요 간부 40여 명에게 명절 ‘떡값’ 등의 명목으로 직급에 따라서 한 번에 500~1000만 원씩 정기적으로 건넸다고 주장했다. 2008년 1월 10일 출범한 삼성 특별검사팀은 나흘 뒤 회장 집무실인 승지원과 이건희 회장의 자택, 삼성본관 등을 압수수색했다. 특검의 수사 발표가 있은 지 닷새 뒤인 4월 22일, 삼성은 기자회견을 가졌다. 먼저 이건희 회장이 마이크 앞으로 나서서 돋보기안경을 썼다. 그리고 다음 내용의 사과문을 특유의 어눌한 말투로 읽어나갔다. 저는 오늘 삼성 회장직에서 물러나기로 했습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할 일도 많아 아쉬움도 크지만 지난날의 허물은 모두 제가 떠안고 가겠습니다. 1987년 12월 1일에 취임해 20년 5개월 동안 지켰던 삼성그룹 회장자리에서 물러나는 이건희의 얼굴은 늘 그랬듯이 무표정했다. 말을 마친 이건희가 자리를 뜨자, 이어서 이학수 전략기획실장이 앞으로 나서서? 이른바 ‘경영쇄신안’을 발표했다. 2009년 5월 29일 대법원은 삼성 경영권 승계를 무죄로 판결했다. 대법관 열한 명 가운데 여섯 명이 무죄 판결을 내렸다고 했다. 이로써 지난 13년 동안 이어졌던 삼성그룹의 경영권 편법 승계논란은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이건희는 조세포탈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되어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그리고 벌금 1,100억원이 확정되었다. 대통령이 12월 31일자로 이건희에 대한 특별사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렇게 사면이 이루어졌다. 유죄가 최종적으로 확정된 날인 8월 21?
처음 이 책을 읽기를 결심했을 때는 딱딱한 경영학 책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 아니 전세계적으로 잘 살기위한 또한 부자가 되기위한 책들이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왔다. 물론 나 역시 여론에 휩쓸려 많은 관련 서적을 접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이런 류의 서적들이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와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를 마치 새로운 사실인냥 거대포장해서 서술되어 있다는 느낌을 책을 읽으면서 많이 받았다. 물론 이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이 나같은 사람- 이런 책들이 신선한 자극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책들이 대동소이한 내용이나 이론적이 이야기로 쓰여져 있는 서적들을 보면서 적잖게 식상함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겅호’ 란 책 역시 처음 책을 읽기 전에는 여타 다른 서적과 별반 다른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다른 이야기이지만, 예전에 이 책이 한창 베스트 셀러로서 각광받고 있을 때에는 ‘겅호’란 말이 생소해 경호로 잘 못 읽고 경호원에 대한 책인 줄 알았던 부끄럽던 기억도 있다. 그러나 책을 접하면서 이런 나의 편견들은 조금씩 깨지게 되었다.제일 먼저 이 책이 나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은 이 책의 내용이 실화라는 점이었다. 다 읽고 알았지만, 원래 '겅호'(Gung Ho!)라는 것은 중국어 '공화(工和)'에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무한한 열정과 에너지, 그리고 임무에 대한 충성의 의미로 '화이팅!'이라는 외침처럼 투지와 열정을 불어넣는 일종의 구호나 인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2차 대전 중 미해병 특공대의 업적을 다룬 'Gung Ho!'라는 책과 영화로 인해 이 표현이 일반화되고 2000년 조시 부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그의 선거 캠프에서 'Gung Ho!'를 외쳣을 정도로 미국에서는 폭넓게 쓰이는 용어이다. 책에서는 앤디 롱클로우라는 사람의 할아버지인 앤디 페이튼이 처음 알고 앤디 롱클로우에게 전달했다. 앤디는 폐쇄 직전인 윌튼공장의 여성 책임자 페기 싱클레어에게 공장의 재활을 위하여 이를 조언했고 이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켄 블랜차드를 통해 우리에게 까지 전해진 것이다.‘겅호’에서 페기의 조력자 앤디는 인디언이다. 앤디는 인디언이어서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음에도 또 훌륭한 실적을 냈음에도 종종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런 앤디는 오히려 회사를 살릴 대책을 다람쥐, 비버, 기러기의 생활방식에서 찾았다.이 책의 특이한 점이 바로 이 부분인데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전해 들은 다람쥐, 비버, 기러기의 생활방식은 그가 인디언이 아니었다면 그런 대자연에서 단순하지만 위대할만큼의 사고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겅호 정신은 그가 인디언이기 때문에 터득할 수 있었고 그가 백인이었다면 어느 정도의 성공은 했을지도 모르겠으나 혁신적인 조직 개혁은 이뤄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서구문명으로 대표되는 백인들은 자연을 이용하려고 하는 반면 인디언은 자연과 동화되며 살았기 때문에 자연이 주는 교훈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앤디는 겅호를 외치며 겅호조직을 위한 세가지 지혜를 말하는 데 그것이 이 책의 핵심부분이다. 처음으로 앤디는 조직의 개혁을 위해 페기를 숲으로 데려가 다람쥐를 보여준다. 바로 ‘겅호’의 다람쥐의 정신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다람쥐의 성격은 잘 알려진바와 같이 쉬지 않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열정을 모두 쏟아 붓는다. 이런 다람쥐에서 앤디는 조직에서 조직구성원들이 각자가 맡은 일을 가치있고 중요한 일로 인식하고 공동의 목표를 향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페기에게 깨닫게 하고 조직구성원들은 목표를 이해하고 그 목표와 가치에 맞게 계획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페기는 다람쥐를 보고 깨닫게 된다.비버의 방식이란 나 역시 비버에 대한 동물에 대해서는 생소한 면이 많지만 비버는 자신의 집을 수리하기 위한 모든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또한 실천한다고 한다. 또한 주로 호숫가 의 수면에 집을 짓고 사는 비버는 집을 짓는 일이나 유지하기 위해 댐을 짓는 일을 할때 여러 마리가 모여 공동작업을 하는 데 이러한 작업에는 우두머리가 없다고 한다. 우두머리가 없어도 각자 맡은 일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여 일사분란하게 댐을 짓는 일을 진행한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의 일에 대해 열정적이고 능동적으로 판단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앤디는 주장한다. 구성원들은 자신의 일에 대해 능동적이고 창의적으로 행동하고 경영자 역시 구성원들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자율성을 높여야 조직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마지막으로 기러기의 선물은 다람쥐의 정신과 비버의 방식이 결합한 조직에 이를 더 활성화 시키고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 방법이다. 대표적인 철새인 기러기는 계절을 나기 위해 무리를 지어 이동할 때에 V자 형태의 편대 비행을 한다. 이들은 무리지어 날면서 끊임없이 서로를 향하여 울음소리를 낸다. 이렇게 한 떼의 기러기들이 쉴 새 없이 만들어 내는 엄청난 소리는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소리이다. 해마다 수천 킬로미터를 비행하는 기러기들은 이동하는 동안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응원한다. 또한 편대의 선두에 선 기러기뿐만이 아닌, 편대의 모든 기러기가 소리내어 격려하고 응원한다. 리더만이 팀원을 격려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는 형태인 것이다. 결국 기러기의 선물은 모두를 위한 것이다. 이처럼 기러기의 선물은 서로 서로에게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기러기를 통해 우리는 동료간의 조직 구성원간의 진심어린 충고와 격려 칭찬이 과거의 집단적이고 형식적인 전통적 칭찬보다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또한 일의 결 과 뿐만 아니라 일의 과정에서도 칭찬하고 격려해 서로를 응원함으로써 일에 대한 열정은 극대화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물론 '겅호'의 이런 방법들이 어찌 보면 단순할지도 모르지만 성공하기 까지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겅호의 3대 원칙인 '다람쥐의 정신', '비버의 방식', '기러기의 선물' 에서 나는 회사 내의 팀원들뿐만 아니라 경영진도 같이 노력하고 행동해야 회사가 잘 운영되고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폐쇄 직전의 침체된 조직에 3년만에 겅호의 원칙을 확산시켜 조직을 활성하시킨 주인공 페기 싱클레어와 그의 조언자 앤디와 같이 말이다.
OOO대학교 OO학과 1234567 o o o (Reading 10/1~10/3)제목: "소비자를 사로잡는 공짜마케팅을 읽고..." - 오익재(한국커뮤니케이션 연구소 소장)소비자들은 조금이라도 싼 것, 기왕이면 공짜인 것들을 찾아다니고 기업들도 이에 부흥하여 각종 공짜마케팅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공짜마케팅이 대세인 세상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책은 음악앨범을 1달러도 안되는 가격에 판매하면서 음악팬들에게 큰 이슈가 된 러시아의‘올 오브 MP3닷컴’의 마케팅 소개를 시작으로 공짜신문, 공짜핸드폰, 공짜 항공권까지 국내외 기업들의 공짜마케팅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공짜 신문은 지하철역 같은 곳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공짜라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겐 공짜 신문 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그 신문에 광고를 통해서 수익을 창출합니다. 우리나라의 ‘핸드폰 공짜마케팅’은 핸드폰을 공짜로 주고 사용 요금으로 손실을 보전하겠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은 공짜인 것처럼 보이지만 보통 12~24개월의 약정을 통해 이런 공짜폰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약정을 통해 사용 중이다가 핸드폰을 잃어버리거나 회복할 수 없는 손상을 입게 되면 핸드폰 약정할 때 위약금을 물어줘야 합니다. 지금도 공짜폰 판매 시스템이 유지되는 것은 표면상으로는 손해 보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기업들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공짜마케팅에 나서는 이유는 단기간의 매출 증대를 노리는 것은 물론 소비자의 관심을 끌어내어 해당 상품의 인지도를 증대시키고 나아가 시장 선점의 효과도 노리는 것입니다. 유통업계는 1+1 행사를 통하여 재고품을 줄이고, 기업의 신제품을 소비자들에게 경험시켜주는 기회를 제공하여 인지도가 낮은 상품을 소비자들이 알 수 있도록 만들어 줍니다. 공짜마케팅은 이렇게 고객 뿐 만 아니라 기업의 입장에서도 이득이 되는 윈윈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공짜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소비자의 공짜를 좋아하는 심리는 불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앞에서 공짜 신문이나 공짜 핸드폰의 사례를 보았듯이 공짜가 공짜가 아닌 경우가 허다하며 심지어 사기에 휘말리는 경우도 있으니 공짜 좋아하다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습니다. 기업의 경우도 공짜로 무언가를 나눠줘도 고객이 원하는 것인지, 고객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단순히 예산 낭비일 것입니다. 공짜마케팅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불황으로 인한 소비심리를 열 방법으로 공짜마케팅 만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작가의 의도를 파악하자"작가는 다양한 분야에서 실행되고 있는 풍부한 성공 사례를 중심으로 공짜마케팅을 알기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매출 증대를 위한 국내외 기업의 마케팅전략, 소비자 심리를 꿰뚫는 통찰을 통해 공짜마케팅에 관한 방법과 노하우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공짜마케팅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해주었고, 더 나아가 다른 경제 현상의 트렌드인 공짜경제를 통해 다가올 미래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마케팅 해야 할지 그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느낀점은?"공짜마케팅이라는 주제로 화요일에 발표조가 발표를 했습니다. 다음주에 발표하게 될 저희조 홈쇼핑의 사례에서도 보고(BOGO)마케팅, 덤 마케팅이 나오게 되어, 공짜마케팅에 대해 더 알아 보고싶어 이 북리뷰 도서를 선정하였습니다. 이 책을 보고 공짜마케팅은 판매자의 입장과 소비자의 입장 양쪽 모두를 잘 설명 해주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을 실감시켜 주면서도 '공짜'라는 매력적인 마케팅 방법으로 소비자와 기업이 모두 만족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었다. 공짜마케팅을 통해 모두가 만족스런 결과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소비자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할 것 같다. 공짜가 좋아 충동구매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필요한, 정말 가치가 있는 공짜를 선택할 줄 알아야 공짜마케팅의 폐단을 막고 좋은 상품이 널리 대중화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