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北工程]이란?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의 줄임말이다.동북 변경지역의 역사와 현상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 과제 라는 뜻이다.중국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연구 프로젝트로서 2002년부터 중국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총 연구과제는 27개 분야인데, 그중 고구려사 관련 연구과제가 15개이고, 중국과 통일 한반도의 국경지대인 간도에 대한 연구과제가 12개이다.東北工程 프로젝트와 관련된 3곳은?헤이룽장성북쪽과 동쪽은 러시아 연방,서쪽은 몽골과 국경을 접하는 곳이다.옛날에는 숙신.선비등의 여러 민족이 살았고, 남동부는 발해가 차지한 지역이다.주민의 대부분이 소수민족으로 한국인을 비롯하여 만주족.몽골족.다우르족 등이 살고 있다.지린성과거 고구려 발해의 영역이었으며, 지린성은 15세기 이후 꾸준히 정착해 터전을 일군 조선인의 실질적 삶의 공간이었고, 일제시대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가장 많이 이주한 해외 독립운동 기지의 중심이었으며, 현재 조선족자치구로 조선족 즉, 우리 한민족의 터전이다.랴오닝성중국 등베이 지방 나부의 성이다. 남동쪽으로 압록강을 끼고 한국과 국경을 접한다.부여 이래 고구려.발해의 영토였으며, 고려이후 한국과 중국 사이의 정치.문화 교류는 거의 이곳을 거쳐서 이루어졌다. 주민은 한족을 중심으로 만주족.몽골족.후이족 및 한국인 등이 산다.東北工程의 추진 목적은 무엇일까?1.현재 중국은 한족과 55개의 소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소수 민족의 분리 독립 운동을 미리 막으려는 의도다.2.통일 한국의 만주 지역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미리 차단하여 간도지역의 소유권을 선점하기 위한 사전 포석으로 볼 수 있다.3.동북아 지역의 전략적 가치가 증대됨에 따라 역사적 연고권을 확보하여 북한의 붕괴나 남북 통일 후 상황변화에 대비하려는 포석이다.4.탈북자 증가 등 한반도에서 발생 할 수 있는 유사시의 상황에 대비하고 나아가과도기 한반도에 대한 개입 여지를 확보하려는 의도다.5.북한의 세계 문화 유산 등록을 막고 집안시 고구려 의 상나라와 유사하다 주장(2)고이설 - 중국 고대의 책, 일주서에 나오는 고이를 고구려 선인으로 보고, 나아가 최근에는 논리를 비약하여 고구려 왕실이 중국의 전설상의 임금인 전욱 고양씨의 후예임을 자처하여 고를 성씨로 삼았다 라고 주장.그밖에 염제설등도 제기하고 있다.고구려의 건국 장소는 중국 영토 내부였으므로 중국 땅에 세운 왕조는 모두 중국 의 역사다.(1)고구려의 건국되기 전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중국의 영역 안에 속해 있었다.(2)고구려는 건국 이후 줄곧 한에 귀속되어 현도군의 통제를 받았다.(3)평양천도 이전의 역사는 현재 중국 영토 안에 있었으므로 당연히 중국사이며, 평양천도 이후의 역사도과거 평양이 중국인의 활동 영역 안에 있었던 곳이므로 중국사다 라고 주장고구려는 독립국가가 아니라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았던 지방정권이었다.(1)고구려는 중국 역대 왕조와 책봉-조공관계를 유지했을 뿐아니라 스스로 그관계를 끊고, 중국 밖에 스스로 존재했던 적이 없었다.(2)고구려왕이 중원왕조에 조공을 하고 중원왕조로부터 책봉을 받았다. 이것은 고구려왕이 중원 정권을 대신해 고구려 지역의 백성을 다스린 것이며, 오랜기간 고구려는 중국과의 신속관계를 통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라고 주장고구려와 수-당 간의 전쟁은 국가간의 전쟁이 아니라 중국 통일과정에서 발생한 내전 이었다.(1)고구려는 한과 진이 군현으로 삼았던 곳이니 정벌해야 마땅하다는 수나라 신하 배구의 주장과 고구려가 본래 한사군의 땅이라는 당태종의 언급은 수-당이 고구려에 대한 영토의식과 수복의식이 존재했음을 말해준다.(2)반면 백제와 신라에 대해서는 이런 영토의식이 없었다.(3)수-당과 고구려의 전쟁은 국가간의 전쟁이나 침략이 아니라 중원의 중앙정권이 변강 소수민족 세력을 통제하여 전 중국을 통일하는 과정이었다 주장.고구려 멸망후 대다수 유민이 중국에 귀속되었고, 고구려와 고려는 무관하다.(1)고구려 멸망 후 신라에 내려간 사람보다 당에 흡수된 사람 수가 더 많다.(2)발해의 피지 새로운 국정이념이 되다시피 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정치적 전략이 깔려있는 것으로, 안으로 사회 안정으 꾀하면서 밖으로 ‘중화시대’의 초석을 놓으려고 하는 것이다.3.발해 수도유적지 본격 복원사업고구려를 당나라 역사에 포함시키려는‘동북공정’의 일환으로 발해수도인 중국 상경용천부 유적 복원사업을 본격화 하였다.4.일본에 발해석비 반환요구고구려 역사 왜곡을 목적으로 발해의 비석을 돌려달라고 일본에 요구하였다.러.일 전쟁 후 일본이 전리품으로 도쿄로 가져온 흥려정비의 공개와 반환을 요구 하였다.당나라가 발해국 국왕에게 군왕의 지위를 주고 두나라 사이에 군신관계를 맺은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가로 3m, 세로 1.8m의 크기다.5.간도땅 영토문제 정리작업간도지역은 중국이 한국의 통일에 대비하여 사전에 영토 분쟁을 종식시키고자 한 것이다.6.중.러.일 학자와 遼.金.蒙.元 역사복원 추진중국이 러시아와 일본의 고고학자들과 공동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요,금,몽골,원나라의 시기의 역사 복원을 추진하며 나섰다.현재 고구려 유적들의 현황과 문제점고구려사 박물관 입구 앞에 중국문화명소고구려사유적지 라고 적혀있는 머릿돌을 세워 놈으로써 자기민족이라 자랑을 하고 있다. 그 내용은 고구려는 중국의 남방 소수민족의 하나라 적혀있으며,가이드또한 이에 맞춰 안내를 함으로 여러나라의 관광객들은 이대로 인식하게 된다.고구려가 중국과 치열하게 다툼을 벌인 흔적인 요동지역의 백암산성은 돌로 쌓여있는 고구려의 성벽을 완전히 볼 수 있는 보존가치 높은 유적인데, 언제부터인가 연주산성이라는 즉, 연나라의 성이라는 말도 안돼는 이름으로 바뀌어, 방치가 되고 있다.중국 황하 문명과 완전히 구별돼는 고구려 특유의 적성문화의 특징을 가지고이는 운하펑 고구려 채석장역시 완벽한 유산임에도 불구하고, 유네스코에 포함조차 시키지 않았으며, 안내판 하나 없이 방치되고 있다.이해 반해 광개토왕릉비, 국내성 등의 유적들은 다시개장하거나 관리하고 있다.이처럼 자신들의 주장에 뒷받침돼는 유적들만 관리하는 중국의 속내를 알 수있 고구려,고려 관련 사료를 의도적으로 무시고대 중국의 땅한반도 북부(한강 이북)지역귀속고조선,고구려,신라,백제 등 고대 한반도 국가들의 땅조선이 마음대로 세운 것백두산 정계비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도 간도영유권이 한국에 유리한데 대한 억지 주장東北工程의 여러쟁점중 최근의 주요 쟁점은 무엇인가?東北工程의 문제점은 무엇일까?1.동북공정의 고구려,고조선,발해 등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연구들이 크게 왜곡2.프로젝트를 학자나 연구 기관이 아닌 중국 정부차원에서 계획적인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3.고구려사, 고조선사, 발해사를 빼앗긴다면, 한국사는 시간적으로 2000년 공간적으로는 한강이남에 국한되어 그 뿌리가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4.역사에서 민족을 무시한채 영토만 기준으로 논한다는 것은 역사적 진실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것은 물론 역사 빼앗기일뿐이다.5.주변국에 대한 배려가 없는 역사적 패권주의는 한반도 유사시 개입을 정당화 하는 명분으로 작용 할 수 있다.東北工程의 억지주장에 반박할 우리의 주장은?중국측 주장: 고구려의 조상은 일주서에 나오는 ‘고이’라는 인물의 후예이다.고양씨 족의 흥상문화에서 출토된 적석묘와 고구려 초기 적석총의 유사성이 주요 근거이다.우리의 반박:‘고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일주서는 오류가 많은 위서로 평가되고 있어, 중국의 역사학자들도 사료로 잘 쓰지 않는다. 또 흥상문화의 적석묘와 고구려의 적석총은 3천 년 가량의 연대차이가 있는 문화로 이를 직접 연결시키기에는 문제가 있다. 고구려를 건국한 집단은 중국에서 이주한 것이 아니라 본래 만주와 한반도 지역에서 농경생활을 영위하던 예맥족의 일원으로서 고조선 이래 비파 형동검과 미송리식 토기등을 사용, 독자적인 청동기문화를 형성하였다.고구려 시조 주몽은 ‘활 잘 쏘는 사람’을 일컫는 부여의 말을 옮긴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주몽이 부여에서 남하한 다음 졸본부여의 왕이 됐다고 나온다.이러한 전설은 주몽이 압록강 중류의 토착세력과 결합해 힘을 키웠음을 잘보여준다원래 예맥족은 동이족의 동의 서안평을 공격하고 한반도 서북부를 장악한 것도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축하면서 이뤄졋다.이처럼 고구려는 중국 왕조와 배타적으로 대립하며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세워갔던 것이다.평양천도 후 고구려의 역사를 과거 한사군 때 중국의 영토였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중국사라고 우긴다면 현재 중국 영토안의 모든 민족의 과거사를 중국사로 봐야 하는 것으로 이는 중국의 다민족 통일구가론을 스스로 깨는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상황에 따라서는 한나라의 군현이 설치되었던 북한지역까지 중국 영토라는 논리로 비약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결코 물러서서는 안될 억지 주장임을 다시 한번 선언한다.중국측 주장:고구려는 중국에 조공-책봉 관계의 국가로 중원 정권을 대신해 고구려지역을 다스린 소수민족 지방정권이다.우리의 반박:조공과 책봉은 상하관계가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 전체에 적용된 국가간의 외교형식일 뿐이었다. 고구려 705년 동안 중국에서는 무려 30여 개의 국가가 흥망성쇠했다. 중국 측의 주장대로라면, 지방관을 파견했어야 했는데 사서 어디에도 고구려가 관작을 내려달라고요구한 적도, 관작을 내렸다는 기록이나 증거는 없다.고구려는 독자적 천하관을 가진 독립국이었다. 그 근거로는1.고구려와 부여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제천행사를 열었다(삼국지위지동이전)2.고구려는 사해를 평정한 천손의 민족이다.(광개토대왕릉비)3.고구려가 점차 교만 방자해져서 더 이상 현도군 처소에 오지 않았다(삼국지위지)4.고구려가 강성해져 명을 따르지 않는다.(남제서 열전 고려국)또한 중국의 주장대로라면 백제 신라 등이 중국과 맺었던 책봉 조공 관계도 같은 맥락이기 때문에 당시에 중국과 조공책봉 관계를 맺었던 백제, 신라, 왜, 돌궐, 베트남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 대부분이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논리적 비약이 발생한다.중국측 주장:발해는 고구려 계승국이 아니라 말갈국으로 중국의 지방정권이었으며,고구려 유민의 대다수는 중국 한족에 흡수되었다.우리의 반박:고구려 유민가운데 상당수가 한족으로 편입된 것은 사실이지만 고구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