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ochtoon, Autichtoon: 네덜란드의 이주민 문제서론네덜란드의 이민자 정책변화 과정을 알아본다. 네덜란드의 이민자 통합정책은 다문화주의였다. 하지만 이민자의 실업률, 교육 수준, 종교적 문제 등으로 네덜란드의 지주모델을 기반으로 한 다문화주의 통합정책은 실패하고 만다. 이에 네덜란드는 통합정책으로 동화주의를 채택하게 되고, 이를 기반하여, 이민정책의 강화, 이민자들에 대한 의무를 강요하게 된다. 이와 동시적으로 반 이슬람 세력이 등장하고 네덜란드 내 ‘문화전쟁’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이러한 반 이민정책 및 반 이슬람 정책은 네덜란드뿐 아니라, 서구유럽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각종 극우 정당들이 전면으로 등장하고, 이민정책을 강화하고 사회통합을 일환으로 동화주의를 채택하는 국가들 역시 늘고 있다. 유럽연합의 차원에서도 이민정책은 강화되고 있으며, 다문화주의에 대한 실패를 인식하였다.각 유럽들은 네덜란드의 동화주의 모델을 따르고 있는 데,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똘레랑스’의 나라인 네덜란드가 다문화주의를 버리고 동화주의를 택한 원인과 그 과정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본 발제의 목적이다.네덜란드 이주 역사1949년, 인도네시아가 해방된 후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이주를 해온다. 이들은 오랫동안 네덜란드의 속국이었기에, 네덜란드 문화에 잘 동화되었다.1974년, 네덜란드의 속국이었던, 수리남이 해방되고, 수리남인구가 유입된다.1960년 ~ 74년, 유럽 경제 부흥시기에 터키와 모로코에서 노동자인구가 유입된다. 임시직이었는데, 대부분이 네덜란드에 눌러 앉았다. 이들의 가족 또한 이민을 온다.최근, 경기침체와 엄격한 이민법으로 인해, 이민이 줄고 있으며, 오히려 국내 이민보다 국외 이민이 늘고 있는 상황이다.지주개념과 다문화주의네덜란드의 다문화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선, 지주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19세기부터 이러한 지주제가 네덜란드에서 형성되었다. 지주제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데, 종교공동체(카톨릭, 칼빈주의), 이념공동체(자유주의, 사회주의), 방송, 라디대 이후 이러한 지주제가 사라지게 된다. 복지정책의 도입과 즉 지주가 제공하던 복지를 국가가 제공하게 되고, 쾌락주의 원칙에 근거한 소비 문화의 변화(지주제는 칼빈주의에 근거) 그리고 젊은이들의 교육수준 상승에 의해 엘리트에 근거한 지주제가 필요 없었기 때문이었다.1980년 대, ‘이슬람 지주’ 모델을 채택, 다문화주의 통합정책을 실시한다. 네덜란드 목표는 과거 지주제에서 보존해주었던, 각 공동체의 독립성을 이슬람 공동체에도 장려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궁극적 목표는 과거 지주제가 해체된 것처럼 이슬람 지주 역시 해체되어 네덜란드 사회에 동화될 것이란 믿음이었다. 결국 네덜란드는 자신들의 지주는 해체하고 이슬람 지주를 구성 장기적인 해체를 기대했다.하지만, 이런 지주제는 네덜란드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이슬람 지주제의 실패, 다문화주의 실패모로코와 터키에서 유입된 이민자 2세대는 네덜란드 사회에 동화되지 못했다. 이민자들의 1) 실업률 본 국에서 태어난 네덜란드인 들에 비해 상당히 높았고, 2) 교육 수준 또한 낮았다. 또한 3) 네덜란드의 쾌락주의와 이슬람의 전통은 대치되었다.그럼에도 모로코와 터키 출신의 이민자들은 복지혜택을 받았다. 이는 곧 문제가 되는데, 이민자들을 본 국으로 돌려보냈던, 독일과 스위스와는 달리 네덜란드는 국가 복지와 사회정책의 짐을 안게 되었다.이슬람 공동체는 1) 네덜란드 어를 하지 못했다. 2) 네덜란드 문화 예컨대, 쾌락주의 문화를 받아 들이지 못했다. 3) 게토에 모여 살고, 4) 높은 실업률로 국가 복지재정에 부담을 주었다. 결국 다문화주의 정책이 실패한 것이다.다문화주의의 실패는 지주제 모델 적용에 대한 실패로 보는 의견이 많다. 지주제가 말하는 관용이 이슬람 공동체의 자율성을 보장했기에, 더 나아가 그러한 공동체에 대해 무관심했기 때문에, 네덜란드 문화 통합의 실패의 원인이라 보는 것이다. 즉 지주제에서 관용은 이슬람 공동체에게 네덜란드 언어와 문화에 대한 교육에 등한시 했고, 무슬림과 본 토 출신 시민과의 불평얻게 된다. 이러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자줏빛 정권에 있다. 자줏빛 정권은 안락사, 동성결혼, 성매매를 합법화하는 등 진보적인 정책을 추구했다. 이주민에게는 관용으로 다문화주의 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주민 문제의 심각성을 모르고 이에 방관했던 탓에, 핌 포르퇴인 당Pim Fortuyn list의 출현을 허락하게 되었다.핌 포르퇴인Pim Fortuyn은 극렬한 맑스주의자, 동성연애자였다. 그는 서구적 가치에 비해 이슬람을 후진적 종교로 보았다. 한 종교지도자의 동성연애 반대에 대해 핌 포르퇴인은 “편협함에 대해선 관용도 없음No tolerance towards the intolerant”을 주지했고, 이에 대중은 지지를 보냈다.2002년 핌 포르퇴인 당PFL은 기민당CDA와 자유민주당VVD와 연합정부를 설립한다. 핌 포르퇴인 당은 두 번째로 많은 의석 수를 가졌으며 그 영향력도 컸다. 이에 내각을 이끌 던 얀 피터 발켄엔데Jan Peter Balkenende가 반 이슬람주의, 반 다문화주의의 기치를 건다. 3개월 후에 연정은 해체되고, 2003년 기민당, 자유당, 진보당이 연정을 한다. 핌 포르퇴인 당이 연정에서 제외되었지만, 이 전 연정의 총리인 얀 피터 발켄엔데Jan Peter Balkenende 총리 지속해서 집권함으로써 반 이슬람주의는 지속되었다.이러한 연정은 통합과 이민정책을 주로 다루게 된다. 연정은 유럽 외 국가에서 국내로의 이주는 법적으로 제한하고, 망명정책도 강화되었다. 이러한 정당들은 통합실패의 원인을 개인으로 보고, 이주민들의 의무와 책임을 부과하면서 결과를 지켜보기로 한다. 즉 이주민 개인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2010년엔 자유민주당VVD(31석)와 기독민주당CDA(21석) 그리고 자유당PV(24석)V이 연정을 구성했다. 자유당은 반 이슬람, 반 이민을 기치를 내건 정당이고 당수는 헤르트 빌더스Geert Widers로 대표적 반 이슬람주의자이다. 또한 자유민주당의 아얀 히르시 알리Ayaan Hirsi Ali 데, 600시간 네덜란드 강습과 시민교육과 노동시장 교육이 포함되어있다. 이는 의무가 아닌 국가 제공하는 서비스적 요소가 강했다.2003년엔 이를 강제하기로 한 법을 규정했고, 2006년엔 이 법이 새로이 개정되면서 더욱 엄격해졌다. 이주민들은 사비로 교육을 수강해야 했다.이 법안에 의하면, 이민자들이 시민권을 얻기 위해선 특별한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예컨대, 동성애, 록 공연, 가슴이 노출된 여자사진 보여주고 이주자의 반응을 테스트한다.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질문을 한다. 가령, 테스트에서 정부는 ‘9.11 피의자가 테러리스트인가, 자유의 천사인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유럽 내 국가가 아닌 타 국가들에게 특히 이슬람 국가에게만 이러한 테스트가 행해지기에 이를 공정성이 결여되고 인종차별적이라 비판하는 이들이 있다.이러한 네덜란드 정책은, 거의 모든 서구 유럽에서 따라서 하려고 하고 있다.문화충돌의 예: 테오 반 고흐 암살사건2004년 11월 영화감독 테오 반 고흐가 모로코게 무슬림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반 이슬람주의자인 테오 반 고흐와 그의 정치가 애인 아얀 히르시 알리는 반 이슬람 단편 영화 만들어 방송에 내 보낸다. 내용은 코란을 비판하고, 여성차별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이슬람의 문제를 극단의 측면에서 보여주고, 페미니즘 요소도 에로틱한 장면에 의해 상쇄되며, 궁극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을 통해 이슬람을 왜곡한다고 비판 받기도 했다.반 고흐의 사망 후 네덜란드 인들은 이슬람 문화에 대해 더 비판적이었다. 이제 이슬람은 서구의 자유민주주의에 대치되는 후진적 개념으로 통설되었다. 9.11 사태와 폭탄 테러를 통해 네덜란드인 들은 기존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시각을 급격히 변화시켰다.서구의 가치와 이슬람 가치의 갈등엔 ‘젠더’가 중심이 되었다. 이슬람의 후진성과 네덜란드의 근대성을 구분하기 위한 개념으로 이슬람에 내재된 남성 우월이 채택된 것이다. 이슬람의 여성들은 폭력적 상황에 놓여있고, 이러한 문제 해결을 위해 네덜란드의 페미니즘은 이슬역시 취업비자와 유학생에게 제한을 두었다.특이할 만한 사실은, 이민자 추방을 표방하는 스웨덴 민주당(SD)이 총선에서 5.7%의 득표율로 사상 처음 의회에 진출했다는 것이다. 스웨덴은 보수정권 때도 이민자 보호정책을 채택했던 국가로 이민자에 대한 유럽사회의 인식변화를 알 수 있는 사건이다.또한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반 이민 정서가 존재한다. 2008년 유럽 이민 협정 안에선 회원국이 만장일치로 불법 이민과 망명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했다. 유럽은 유럽의 불법체류자에 대해 최장 18개월 억류하고 추방한 후 5년간 재입국을 금지하는 법안 역시 통과시켰다 하지만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이민문제는 각 국가만의 특징에 의해 달라지는 데, 최근 이탈리아가 튀니지의 경제이민을 허락한 것에 대해 네덜란드 측이 비판한 것이 대표적 예이다. 앞의 예에서 알 수 있듯, 이민문제는 EU회원국의 비자를 가지면 유럽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배경 때문에 당사국 외 유럽 국가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문제이다.하지만 유럽 전체 차원에서의 이민문제에 대한 정책의 특징이 있다면, 첫째, 다문화주의의 실패인정, 둘째, 숙련기술 노동자는 문호개방, 비숙련 노동자에 대해선 단호함을 들 수 있다.결론네덜란드의 이주민 통합문제와 이민 문제는 비단 네덜란드의 문제가 아니다. 서유럽 전체가 통감하는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은 서구의 가치, 이슬람의 가치의 대치에 의한 것이다. 서구의 몰이해가 원인이기도, 또 이슬람의 독선적 태도가 원인이기도 하다. 9.11과 마드리드 테러 같은 현상이 이슬람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슬람에도 극우, 진보적 이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일반화된 무슬림에 대한 인식이 자칫 인종주의, 분리주의를 배태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은 무슬림 청소년들의 폭력영상 밑에 달린 영국인 몇 명의 댓글로 마무리하려 한다.유튜브 반응hutchinz69영국이 그렇게 싫고 크리스챤들이 그렇게 싫으면..도대체 왜 여기로 이민오는거야? (논리적인 논리)megbulb이슬람은 평화를 의미해. 그래서 제)
더 완벽할 수 있도록:: 비례대표제PR, 명부식 비례대표제LIST PR 선호이전식 투표제STV비례대표제에 관하여비례제의 특징비례대표제Proportional Representation System(PR)는 최다득표제도First Past The Post(FPTP)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선거제도이다.다수결제도는 1) 사표를 생산하여, 2) 유권자의 선호에서 왜곡을 가져오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3) 덜 민주적이다.반대로 비례대표제하에 선거는 1) 유권자의 선호가 의석으로 거의 전환되기에 2) 사표는 줄어들고, 결론적으로 3) 다수결제도 보단 더 민주적이다.표1. 비례제와 최다득표제도 비교비례제도PR최다득표제도FPTP선거구중-대선거구소선거구봉쇄조항Threshold법적조항, 자연적 봉쇄-선거의 효과비례적안정적사표미세하게 존재크게 존재대표성확대왜곡의 가능성축약하면, 비례제도는 1) 2명 이상의 의원 배출을 목적으로 하는 중-대선거구에서 선거가 실시되고, 2) 사표발생을 줄여, 득표가 탈락 없이 의원직으로 전달되어, 3) 선거의 비례성을 증폭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비례제의 장점.비례제는,첫째, 득표수가 의석수에 꽤 정확히 반영됨으로써, 불공정하고, 불안정한 단순다수제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단순다수제는 거대여당에 ‘꽁짜 의석’Seat bonus을 제공하는 경향이 있다. 비례제는 이러한 여지를 없애고, 소수정당이 의회에 진출할 수 있게 한다.둘째, 봉쇄조항이 까다롭지 않다면, 거의 모든 득표가 의석으로 전환된다. 이에 유권자들은 투표를 신뢰하게 된다.셋째, 정당들이 지역구에 상관없이 선거 캠페인을 펼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나라당의 텃밭인 대구의 한 지역구에서 민주당이 선거운동을 하기엔 당선가능성이 없어 선거운동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비례대표제하에서는 지역에 상관없이 득표율이 의석으로 전환되기에 민주당은 사표의 걱정 없이, 대구에서 득표울 비례를 올리고자 선거운동을 지속할 것이다.넷째, 한 정당이 지역을 지배하는 걸 제한한다. 역시 비례성과 관련있다. 비례어렵게 한다. 즉 다양한 정당과 배경 그리고 파벌로 구성된 연합정부에 신속하고, 일관성 있는 정책 결정 및 수행이 어렵다는 것이다.둘째, 극단주의 정당이 난립할 수 있고, 이러한 정당들이 큰 정당과 연합을 형성하면 큰 정당들의 정책 결정이나 수행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컨대, 비례제 하에 이스라엘의 과격주의 정당이 난립하고, 이태리는 불안정한 연합정부에서 몇 년간 운영되었다.셋째, 지지기반이나 이념적 성향이 다른 정당들이 연합할 수 있다. 정치적 기반과 이념이 다른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의 연합은 투표를 위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비례제에서 더 빈번할 수 있다.넷째, 작은 정당들이 불균형적으로 커다란 권력을 가질 수 있다. 의석이 많지만 정권을 형성하는데 불충분한의석을 가진 큰 정당은 작은 정당과 연합할 수 밖에 없다. 작은 정당은 낮고, 적은, 득표율과 의석수 보다 더 큰 권력을 가진다. 여타 정당들의 안건들에 대해 거부권Veto을 행사할 수 있다.다섯째, 유권자들은 단순다수제보다 비례제를 어려워한다. 또 선거를 행하는 데 있어, 비례제의 규칙등이 복잡하기 때문에, 정부는 어려움을 겪는다.여섯째, 유권자들은 책임감이 없는 정당을 권력 밖으로 축출하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비례제하에서는 작은 정당이라도 연합을 통해 권력을 쟁취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독일의 자민당FDP은 1949~98년까지 연합을 통해 권력을 쟁취했다. 자민당이 그러한 기간 동안 얻은 득표율은 12퍼센트를 넘지 못했다.표2. 비례제의 장점 혹은 단점장점단점득표수가 곧 의석, 소수정당 원내 진출 가능일관성 있는 정책 결정 및 수행의 어려움유권자들의 투표에 대한 신뢰극단주의 정당 난립한나라당이 전라도에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할 수 있음무차별적 연합하나의 정당이 독점적 권력 가질 수 없음(비례성)소수 정당 권력 창출 가능작은 정당의 오바 액션: 대표성의 문제정책의 지속성 및 안전성선거에서의 과잉복지: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명부식 비례대표제List Proportional Representa있다. 캄보디아에서 의석배분규칙을 바꾼 경험이 있는데, 규칙을 바꾼 후 한 정당의 의석수가 64석이 되었다. 만약 이전의 규칙을 지속시켰다면 그 정당의 의석 수는 59석이었을 것이다.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볼 때 중요하게 간주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봉쇄조항 관련이다. 봉쇄조항이 높고 낮음에 따라 비례성과 소수정당의 원내 진출 향방이 갈라지게 되어있다. 둘째, 명부가 폐쇄형, 오픈형인지, 정당에 투표하는 방식인지, 후보자에 투표하는 방식인지에 따라 의석의 향방이 갈라진다. 셋째, 명부의 후보자들의 순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넷째, 정당 제휴Apparentement를 통해 발생하는 정당 간 합의조항이 어떠한 것인지, 셋째, 선거구 경계가 어떻게 결정될 것인지 등이 명부식 비례대표제에서 중요하게 다뤄야 할 사항이다.명부형 비례제의 장점첫째, 소수 그룹 혹은 문화 대표가 선출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예컨대, 한나라당도 여성, 장애인, 노동자계층 출신 후보를 명부에 삽입한다. 장애인, 여성,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서이다.(나중엔 동성애자, 외국인 노동자도 넣을 수 있다. 그 들의 수가 늘어난다면) 결국 정당은 유권자의 투표 스펙트럼을 넓히고자 하고 이는 곧 소수 그룹이 선택될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남아공에선 인구수에 비례해, 소수그룹 즉, 백인, 혼혈, 인디언 높은 득표율을 얻었다.둘째, 여성들의 의회진출이 용이해진다. 정당이 여성을 명부에 올린다. 유권자들은 정당을 선택할 때, 정당의 정책에 관심을 가진다. 따라서 여성이 명부에 있든, 없든 큰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알려진 바로는 소선거구제에서는 널리 받아들일 수 있는 후보를 정당이 내기 때문에, 여성이 후보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다.실제로, 탑 20개국 중 14개국에서 최다득표제 보다 명부식 비례제에 의해 여성이 당선된 경우가 많았다. 2004년엔 의회 전체에서 여성대표가 뽑힌 비율이 평균 15.2퍼센트였다. 명부식 비례대표제를 채택했을 때, 평균 보다 4.3퍼센트 높았으면 반대로 최다권자는 한나라당을 지지한다. 그러나 안상수는 싫다. 일도 못하고, 멍청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나라당을 찍었다. 안상수가 되었다. 어쩔 수 없다. 이렇듯 명부식 비례대표제에선 정당과 인물간 선호가 달라도 선택의 여지가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둘째, 정당 엘리트들의 횡포가 존재할 수 있다.(특히 폐쇄형 명부식) 각 후보자들은 후보자 명부의 순서 중 1번에 오르길 기대한다. 오르기 위해선 당에 충성하고, 정당 엘리트에게 아첨을 하기도 하고 더 나아가 뇌물을 제공하기도 한다. 유권자는 뒷전이고 당의 권력의 아부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표3. 명부식 비례대표제의 장단점장점단점소수그룹의 의회진출 가능성의원과 지역구의 관계여성들의 의회진출이 용이정당과 후보자 사이에 갈등중앙당으로의 권력집중선호이전식 비례대표제 The Single Transferable Vote(STV)선호이전식 비례제의 특징선호대체제AV와 비슷한 방식이다. AV가 단 한 명의 의원을 한 선거구에서 당선시키는데 비해, STV는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의 후보에게 의석을 준다. 따라서 전자는 승자독식제이고, 후자는 비례대표제이다. 따라서 AV는 결과적으로 최다득표제의 한계 즉 사표를 없애는 데 실패한다. 반대로 STV는 사표를 방지하는 비례제의 효과를 그대로 가진다. 이러한 특징들로 많은 정치과학자들은 STV를 추종한다.STV는 중대선거구에서 실시되고, 유권자들은 명부에 있는 후보자들을 선택할 때, 자신의 선호대로 선택한다. 대부분의 경우 선택은 선택적이고, 유권자들은 후보자 모두에게 선호할 필요는 없다.STV에서 의원이 선출되는 방법표4. 정외과 최고의 교수 5명은 누구 *. 투표인: 200명, 선출인원: 5명, 쿼터: 34명후보1차이전2차이전3차이전4차이전5차한정훈70(36)=======34조홍식45(11)=======34이정철25-25126-26733정연선12-1211372012-한명수25718(8)----전득주11516218119(19)--서병훈42(8)=======34강원택33538(4)=====3의 교수로 뽑힌 사람은 한정훈, 조홍식, 서병훈 교수이다. 세 사람의 잉여 표가 분할되고 나머지 후보자들에게 표가 전해진다. 첫 이전이 되고, 강원택 교수가 쿼터를 통과해 당선된다. 두 번째 이전이 이루어지지만 당선자는 나오지 않는다. 이럴 경우, 꼴찌를 탈락시키고, 그 꼴찌의 잉여 표를 또 다시 선호대로 분할한다. 이러한 방법을 계속 취하다 보면 결국 두 명이 남게 된다. 정연선 교수와 이정철 교수인데, 마지막에 이정철 교수는 34라는 쿼터를 넘지 못하지만, 두 명중 많은 득표를 함에 따라, 결국 최고의 교수의 마지막 한 자리를 차지한다.STV의 장점첫째, 가장 정교한 선거제도이다. 유권자들은 정당과 후보자를 오고 가며 선호를 표시한다. 폐쇄형 비례대표제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제도이다.둘째, AV와 달리 STV는 끝까지 비례성을 유지한다.(중대선거구의 이점)셋째, STV하에선 유권자와 지역 간 연계성이 여타 비례제보다 높다. 실제 예 들을 보면, STV는 다수를 뽑는 선거구를 택하지만 그 크기 작은 편이다.넷째, 후보자의 독립성을 제공한다. 즉 중앙 권력에 아첨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순서가 뒤쪽에 있다고 할지라도, 유권자들은 선호대로 투표를 함에, 자신을 찍을 수도 있으니깐 말이다. 또 유권자들은 정당 보다 후보를 보고 찍는다.다섯째, 연합에 영향을 준다. 최고의 교수 5명 모의투표에서 보여주듯이, 한정훈 교수의 선호한 사람들의 제 2순위는 강원택 교수였다. 둘 다 선거 전문가이고, 가령 한정훈 교수와 강원택 교수가 정당이 다르더라도 성향이 비슷하니 이 사람 둘이 연합하길 기대하는 유권자가 많을 것이다.STV의 단점첫째, 선거제도 복잡하다. 유권자는 읽고 쓰고 계산하는 정도의 능력을 가져야한다.둘째, 카운팅이 어렵다. 에스토니아가 STV를 버린이유다.셋째, 정당 내 분열을 만든다. 정당 내 경쟁이 중요해진다. 피후원주의CLIENTALISTIC가 일어날 수 있다. 특정 유권자 그룹에게 뇌물을 제공할 가능성이 존재한다.넷째, 많은 표를 획득한 정당이 라1
Ⅰ. 서론1. 논문의 목적과 의미2. 문헌 조사Ⅱ. 연구 디자인1. 비교 연구 대상2. 비교 연구1) 각 국의 의료보험제도 배경과 특징 비교(1) 영국(2) 한국(3) 미국2) 국민 건강권 실현과 제도들(1) 과중한 의료비 부담의 경감(2) 국민 간 균등한 의료혜택(3) 국민 건강권 실현3) 가설 설정3. 연구 결과1) 각 국의 국민건강수준 비교2) 소결Ⅲ. 결론: 최악의 것을 제거하며참고문헌 및 참고자료1. 서적2. 논문 및 학술지3. 신문, 인터넷 및 기타 자료표 1. 지역별 기대수명표 2. 수입 별 기대수명표 3. 미국의료 보험 가입자와 무보험자표 4. 한, 영, 미 의료보험제도 비교표 5. 한국의 국민건강보험과 생명보험(민영) 지급율 비교(05년 기준)표 6. 국민 건강권표 7. 한, 영, 미 의료비 지출 및 의료비에 관한 비교표 8. 한, 영, 미 국민건강수준 비교표 9. 각 국의 의료보장제도 차이와 국민 건강 수준 비교Ⅰ. 서론1. 논문의 목적과 의미본 논문의 목적은 한국, 영국, 미국 의료보험제도를 각 국의 국민건강수준의 관점으로 비교하는 것이다.논문의 주제가 갖는 두 가지 의미는 첫째, 한국, 영국, 미국의 ‘의료보장제도’와 각 국의 ‘국민건강지수’를 비교함으로써, 한국의 의료보장제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언하는 것이다.건강보험은 과중한 의료비를 경감하고, 국민 간 균등한 의료혜택을 제공하며 궁극적으로 국민의 건강권 실현을 위해 필요하다. 다양한 건강보험제도를 선택함에 있어, 우선시 되어야 할 전제 조건은 국민건강 향상이다.2008년 이후 신자유주의 노선을 추구하는 이명박 정부는 “의료기관 영리화, 민영의료보험 활성화 등과 같은 의료서비스를 산업화하면서 국민의 건강을 위한 정책보다는 병원의 경제성장을 우선시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2008년 초, 정부는 당연지정제 완화와 영리의료법인 허용 방안을 마련했고, 의료법 개정과 제주특별자치도의 의료제도 개정을 통해 의료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이명박 정부는 당연지정제 완화는 여론에 화를 주장하는 논문으로 국민건강수준이 기준이 되기보다는 의료지출과 의료체계에 관한 비교연구이다. World Heath Organization(이하 WHO)의 통계 자료는 각 국의 국민건강수준을 비교함에 있어 유용했다.기타 세 국가의 의료보험제도가 비교된 논문과 보고서는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산적해 있음을 밝힌다.Ⅱ. 연구 디자인1. 비교 연구 대상비교 연구 대상을 한국, 영국, 미국으로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첫째, 국민건강수준을 의료보험제도와 연관시키기 위해서는 정치 문화 수준이 비슷해야 했고 정치적으로 안정적인 국가를 비교해야 했다. 소말리아와 같은 정부의 힘이 약한 국가에서 의료보험제도를 결정하고, 시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말리아 국민의 기대수명은 51세였다. 시에라 레온처럼 역시 전쟁이나 분쟁으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국가도 기대수명이 낮았다. 시에라 레온은 기대수명이 50세였고, 아프가니스탄 의 기대수명은 48세 이었다.결국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거나 정치 문화 수준이 낮은 국가는 정치가 국민 건강에 중요변수이기 때문에 비교대상에서 제외했다.둘째, 가난한 국가를 비교 대상에서 제외했다. 국민건강수준과 의료보험제도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위해선 국민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가난이라는 변수들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가난한 국가들에게서 나타나는 불충분한 소득, 교육 지식 및 기술의 부족, 열악한 보건 상태와 보건의료 접근성 결여, 불충분한 식량과 영양은 한 국가의 국민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따라서 경제적 수준과 사회 구조가 발달한 국가를 비교 대상으로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아래의 표1과 표2는 가난과 정치적 불안정한 지역이 기대수명이 낮음을 보여준다.표 1. 지역별 기대수명WHO 지역기대 수명African Region54Region of the Americas76South-East Asia Region65European Region75Eastern Mediterranean Region66Western P력에 의해 도입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의료보험제도는 강력한 이익집단에 의해 시행 위기를 맞지만, 여러 집단에게서 로이드 죠지가 합의를 도출해냄으로서, 국민보험의 시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현재 시행되는 국가보건서비스는 1977년에 법 제정되었다. 영국의 공적의료보장제도는 신자유주의를 주창했던 대처 정부 시절 위기를 맡기도 했지만, 제도의 역사가 깊고, 정치적 문제와는 노선을 달리했기에 공적의료보장제도의 유지가 가능했다.영국의 의료보장제도는 국민보건서비스방식(NHS: National Health Services)로서 국가가 모든 국민의 의료문제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제도이다. 국민보건서비스방식은 정부가 일반조세로 재원을 마련하여 모든 국민에게 무상으로 의료를 제공하는 국가의 직접적인 의료관장 방식이다. 동시에 영국의 의사와 병원 역시 국가기업이자 공무원이다. 완전한 공적의료보장제도를 채택한 영국에서는 병원체계는 한국보다는 비효율적인 측면이 산재해 있고, 의사의 진료의지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으며, 단순한 진료서비스를 받는 데 많은 시간이 든다는 것이 문제이다.영국 의료보장제도의 의료급여 부분은 개인적인 미용관리나 기타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든 병에 적용가능하다. 급여는 현금, 현물급여를 동시에 실시하며, 사실 상 모든 국민에게 모든 의료혜택을 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사유화된 병원이 존재하지만, 그 비율이 매우 협소하다. 진료비에서도 영국은 대부분 조세로서 충당하며, 본인부담금은 약 11%이다.(2) 한국한국의 공적의료보험은 1963년에 시범적으로 도입되었다. 당시 의료보험제도의 본격적인 시행은 복지 보단 개발에 치중했던 박정희 정권 시절이었기 때문에 실행될 수 없었다. 전 국민의료보장은 한국이 경제적 안정을 찾음으로서 1988년도에 시작되었다. 2000년도에 의료보험 통합으로 인해 현행 의료보장제도가 확립되었다.한국의 의료보장제도는 사회보험방식(NHI : National Health Insurance)이다. 사회보험방식은 '의료비에 대한 국민의 자기 책택이 다르며, 미국에서 행해지는 전 보험 급여의 1%도 안 되는 비율이다.표 3. 미국의료 보험 가입자와 무보험자인구보험가입자무보험자계민간보험정부보험계직장개인기준29,11524,53319,82617,4172,6967,9084,582(단위: 만 명)자료출처, 국제사회보장동향 2006 봄호표1 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은 공적의료보장 제도가 미비하여 가난한 사람은 보험 대상자가 될 수 없다. 미국의4,500만의 국민이 민영기업에도 가입을 하지 못했다. 결국, 미국에서는 미국의 4,500만 국민은 보험혜택을 받지 못하며, 민영보험에 가입되었다고 하더라도 민영보험회사의 궁극적 목표가 이윤 추구이기 때문에, 미국 국민은 정당한 보험혜택을 받지 못한다. 미국 보험회사는 실제로 보험지급을 피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한다. 실제 보험회사는 치료를 거절하는 의사에게 인센티브를 준다. “미국의 보험회사HUMANA의 의사가 보험회사 청문회에서 증언한 사실이다.”2) 국민 건강권 실현과 제도들다음의 표2를 통해 한, 영, 미의 건강보험체계의 특징을 요약해보고, 그 특징을 통해 각 제도의 장단점을 건강보험의 필요성(과중한 의료비 부담의 경감, 국민간 균등한 의료혜택, 국민의 건강권 실현)을 바탕으로 확인해본다.표 4. 한, 영, 미 의료보험제도 비교국가보험한국영국미국보험 제도사회보장제도(NHI)국민보건서비스(NHS)민간보험(일부 국가보험)재원조달보험료, 국고 지원정부 일반 조세개인관리기구국가(보건복지부)국가대부분 사기업병원사기업 소유국가 소유사기업 소유보험 대상자전 국민전 국민일부 노약자(국가 보험)대다수 국민(사 보험)급여형태현물현금, 현물현금, 현물보험보장성61%85%측정불가본인 부담금약 38%약 11%측정불가의료서비스상대적으로 양질의 의료 제공대기 시간, 대기 환자급증일부만 양질의 의료 혜택을 받음국민 의료비의료비 억제 기능 가능(당연지정제)의료비 통제효과 강함의료비 억제 기능 부재자료출처 OECD, 보건복지부(1) 과중한 의료비 부담의 경감질병이나 사고는 예측 불가능한 것들이다. 실제로 4,500만 명은 의료보험서비스를 전혀 받지 못한다는 것을 표1을 통해 알 수 있다.민간보험에 가입한 국민이라도 균등한 보험급여를 받을 수 없다. 민간보험회사는 보험료의 부담수준 혹은 계약 내용에 따라 차등급여를 받아 각 개인마다 보험 부담 수준을 달리한다. 가난한 국민은 값싼 보험 즉 낮은 급여의 보험금을 낼 수 밖에 없고 낮은 수준의 보험 서비스를 받게 된다. 따라서 미국의 국민들은 균등한 의료혜택을 받기 힘들다.(3) 국민 건강권 실현건강보험의 목적은 결국 국민의 건강권 실현에 있다.전술했던 논의로 살펴볼 때 의료보장제도를 기준으로 미국은 국민 건강권 실현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한국의 인구수에 버금가는 4,500만 명은 의료보험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 둘째, 보험에 가입했더라도 가난한 국민은 민간보험이라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질 낮은 보험 서비스를 받게 된다. 셋째, 국가가 병원 의료비를 포함한 모든 의료서비스에 대해 통제 불가능하기에 의료 관련 서비스의 비용이 증가한다. 예컨대, 보험회사가 감기 보험에 가입한 환자에 대해 60퍼센트의 지급율을 제공한다고 했을 때 병원 측에서 감기 치료 비용을 100만원으로 책정 한다면 환자는 40만원을 내야한다. 이처럼 보험에 가입한다고 하더라도 치료 비용을 높이 책정하면 환자의 치료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넷째, 미국의 의료보험은 대게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보험이 담당하기 때문에 환자의 보험 혜택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반면 한국과 영국의 의료보험제도의 특징은 국민건강권 실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비용 측면, 균등한 의료 혜택 측면에서 두 제도는 유익하다. 다만 영국의 의료보험제도는 전술한 것처럼, 의료서비스의 효율성이 한국에 비해 떨어지고, 의사의 인센티브가 부족하기 때문에 진료의지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요소가 영국의 국민건강수준을 하락시킬 수도 있다고 보인다.표 6. 국민 건강권영국NHS한국NHI미국과중한 의료비 부담의 경감높음대게 높음낮음국민 간 균등한 의
THE OPEN SOCIETYAND ITS ENEMIESby Karl R. PopperI. 칼 포퍼, 자유주의자의 전형20세기 서구의 지성을 대표하는 인물들을 꼽으라면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세기에 있었던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모두 겪었으며, 자유 진영과 공산 진영 양극단의 대립을 몸으로 마음으로 경험한 인물이다.그는 이 대립에서 한쪽 편에 서서 다른 한쪽의 위험성을 비판하는 일을 전 생애에 걸쳐서 계속했다. 이런 일을 그는 비판적 합리주의 라는 유명한 자신의 철학적 토대 위에서 일관되게 전개했다. 그렇기에 20세기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서구적 지성의 한 전형으로 포퍼를 꼽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출생과 사상적 배경포퍼는 20세기가 막 시작되던 해, 1902년에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다. 포퍼의 아버지 지그문트 포퍼는 빈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변호사였지만 학자라고 불릴 만큼 학구적인 인물이었다. 집에는 식당을 제외하고는 집 안 어디에든 책이 있었기 때문에 어린 포퍼는 책에 파묻혀 지냈다. 특히 철학과 사회문제에 관심 깊었던 아버지의 서재에는 플라톤에서부터 베이컨, 데카르트, 스피노자, 로크, 칸트. 밀, 니체 등의 저서가 모두 구비되어 있어 일찍부터 완전한 지적 분위기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포퍼의 어머니는 음악가는 아니었지만 음악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다. 포퍼의 외가는 음악가 집안이었고 더욱이 빈이라는 도시 자체가 음악의 도시였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포퍼는 한 때 음악가가 되려고 했었다. 그래서 빈 음악학교를 1년간 다니기도 하였다. 포퍼는 철학, 물리학, 수학 등을 공부하여 라는 논문으로 1928년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부 논문은 음악사에 관한 것이었다. 이런 이유로 포퍼의 철학과 음악과의 관계가 종종 거론되기도 한다.포퍼의 철학적 사고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 외에 그가 살았던 시대의 경험이었다. 1914년, 그가 12살 때 실제로 그의 생일날 ? 물론 이것도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는 근본적으로 철학자였다.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학 기술의 거센 파도, 온갖 다양한 문화의 범람, 수많은 매체를 통한 정보의 홍수, 통제할 수 없이 우후죽순으로 솟아나는 개성과 아이디어들. 이러한 혼란의 시대에 비관주의나 회의주의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또한 철학적이든 종교적이든 유토피아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전체주의의 망령에 현혹됨이 없이, 보다 나은 인류의 미래를 꿈꾸며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우리는 포퍼의 철학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사실 많은 사람들이 포퍼를 알고 있다. 열정적인 자유주의자로, 또 사회철학자 내지는 정치철학자로서. 반면 전문가들을 제외하고는 그가 과학 철학자였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예가 드물어 보인다. 하지만 그는 과학 철학자였으며, 그의 정치와 사회철학은 그의 과학철학을 토대로 해서 성립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런 사실을 간과할 때 우리는 포퍼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고 인상적인 그의 말 몇 마디에 감탄하는 피상적 수준의 이해해 머물게 될 것이다.비판적 합리주의 :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이다포퍼 사상의 핵심은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이다. 비판적 합리주의가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진리이다. 과학자의 이론, 법관의 판결, 정치인의 정책, 경영자의 결정, 신학자의 설교 등 우리 인간의 생각은 언제나 잘못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이것은 평범한 진리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평범한 진리를 자주 망각한다. 심지어는 자신의 잘못이 백일하에 드러났을 때에도 겸허하게 인정하기를 거부하곤 한다. 특히 종교문제에서 그러하다. 자신의 종교적 믿음과 자신이 믿는 종교만이 절대적이며, 다른 이들의 종교적 믿음과 여타의 종교들은 거짓으로 몰아세운다. 이러한 태도가 우리의 일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것이다.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 왜검증’ 대신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을 제시하며 그것을 온갖 비과학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으로부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것을 가려내는 기준으로 삼는다. 반증원리는 검증원리와 달리 유의미와 무의미를 구분하는 기준이 아니다. 비과학적인 것에도 얼마든지 유의미한 것이 있을 수 있고 과학적인 것만 유달리 중요하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에서 이렇게 말한다.그리하여 하나의 이론이 비과학적이라든가 ‘형이상학적’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든가 무의미하다든가 혹은 비의미적이라고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과학적 의미로 경험적 증거에 의해 지탱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다. 비록 그것이 발생적인 면에서 볼 때 ‘관찰의 결과’라고 해도 그렇다는 것이다.만약 어떠한 명제가 ‘반증가능성이 높다’라고 한다면 그 명제는 그만큼 시험 가능성도 높다는 뜻이고 그러한 가능성을 모두 견디어냈다는 것은 결국 진리일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적 지식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어도 좋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포퍼는 마르크스의 철학이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과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것들이 원천적으로 반증가능성을 차단하기 때문이다. 그런 한에서 마르크스의 철학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나 이데올로기이다. 언젠가 경험이 그것이 틀렸음을 알려줄지도 모르며 그리하여 그것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에만 우리는 과학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비판적 합리주의는 열린사회를 지향이러한 이론을 사회 재구성의 원리에 적용한다면 어떤 사회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에는 독특한 인간관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잘못을 범할 수 있다는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통해서 배울 수 있고 이러한 배움을 바탕으로 해서 점차로 그리고 끊임없이 삶을 개선해 갈 수 또한 포퍼는 역사주의는 역사 결정론적 입장을 취한다고 전한다.인종주의의 경우, 역사발전의 법칙은 일종의 자연법칙으로 간주된다. 선택된 인종이 갖고 있는 혈통의 생물학적 우월성이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역사의 전 과정을 설명해준다. 말하자면 역사의 과정이란 지배권을 향한 인종 간의 투쟁일 따름이다. 마르크스의 역사철학의 경우에는, 역사발전의 법칙은 경제적 법칙이며, 모든 역사는 경제적 패권을 위한 계급간의 투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칼 포퍼는 플라톤의 형상이론 즉 이데아론 역시 역사주의의 한 형태로 규정하며, 플라톤 이 말한 역사의 법칙을 비판한다.플라톤이 말한 이데아란 어떠한 사물의 원형이다. 우리들 앞에 과일이 있다고 해보자. 그 과일의 원형은 따로 있는 것이다. 우리 앞에 존재하는 과일은 썩어 부패하지만 우리의 느낄 수 없는 과일의 원형은 부패하지도 않고, 완벽한 그래서 이상적인 것이다. 포퍼에 의하면 이러한 원형은 정치, 국가에서도 적용된다. 이상적인 국가는 이데아이고 그 이데아와 닮은 국가는 원시적 즉 부족주의의 특성을 간직한 국가라는 것이다.포퍼에 의하면 플라톤은 이러한 원시적 국가에서 멀어질수록 국가는 부패하기 때문에 “모든 정치적 변화를 억제시킴으로써 정치적 변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었다.”는 것이다. 부족주의로의 회귀가 바로 플라톤의 역사주의인 것이다.플라톤은 정치적 퇴화의 역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네 가지 정치체제의 유형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완전한 국가 뒤에(이데아), 명예와 명성을 추구하는 귀족들이 지배하는 명예정치체제가 오고, 두 번째로 부유한 문벌이 지배하는 과두정치체제가 오며, 다음으로 방종을 뜻하는 자유가 지배하는 민주정치체제가 탄생하고, 마지막으로 국가의 종말 단계인 참주정치체제가 나타난다.플라톤의 입장에서 최선의 국가는 이데아에 가장 가까운 국가 즉 그리스 시대의 귀족과 특정 인종과 계급이 지배하는 ‘스파르타’이다.(책에선 최선국가을 쓴다.)결국 플라톤의 역사주의를 보면 인종적 차이를 인정하고 계급적 차이 역시 인정 주는 법률은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법률-그렇다면 칼 포퍼에게 있어 국가는 불필요한 존재일까? 칼 포퍼는 전체주의적 국가관을 비판하지만, 국가의 중요성을 보호주의로서 설명한다. 포퍼는 “우리는 왜 국가 없는 무정부 상태에서 사는 것보다 질서정연한 국가에서 사는 것을 더 좋아하는가?”라는 그 자신의 질문에 보호주의라는 개념으로 답을 한다.보호주의라는 말은 종종 자유에 대립되는 경향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그러므로 경제학자들은 경쟁을 막아 어떤 산업적 이익을 보호하는 정책을 보호주의라 하고, 윤리학자는 국가의 관료가 민중에 대한 도덕적 보호감독을 확립하려는 요구를 보호주의라 부른다. 비록 내가 말하는 보호주의라는 정치적 이론은 이러한 경향 중의 어느 것과도 연관되지 않고, 또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적 이론이지만, 그 명칭은 그것이 ‘엄격한 무간섭 정책’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것을 제시하기 위해서 사용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자유주의와 국가간섭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떤 종류의 자유도 국가가 보장해 주지 않으면 분명 불가능하다.칼 포퍼가 말하는 보호주의는 자유를 보호하는 보호주의이지 국민의 자유를 빼앗는 보호주의가 아니다. 다음의 글은 이 주장을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 될 것이다.나는 나의 자유에 약간의 제한이 불가피함을 알기 때문에, 나머지 자유가 보장될 수만 있다면 나 자신의 행동의 자유가 국가에 의해 어느 정도 줄어드는 것을 기꺼이 참아내고자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어떠한 공격에 대한 방어든 그 방어를 후원해 주는 국가를 원한다면, 나는 나의 공격의 ‘자유’를 포기해야한다.결국 칼 포퍼가 주장하는 국가는 플라톤이 주장하는 전체주의적 국가관이 아닌 혹은 파시즘, 나치즘 즉 인종주의적 전체주의 국가관이 아닌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국가인 것이다.3.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칼 포퍼에 의하면 유토피아적 사회공학이란 정치적 활동의 영역에서 ‘이상국가’라는 목적을 상정한 후 우리의 행동에 합리성을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그 이상국가다.
소련 연방 붕괴의 원인: 고르바쵸프의 정치개혁을 중심으로서론1991년 말 소련 연방은 해체된다. 소련 연방의 해체에 대한 원인을 다양한 시각에서 보는 입장들이 있다. 주 붕괴의 원인들로서, 경제적, 정치적, 국제정치적, 이데올로기 문제 등을 있다. 대부분이 동의하는 연방 붕괴의 잠재적 원인은 소련 연방의 경제파탄으로 보는데, 이는 사회주의 국가와 연방 내 공화국들에 대한 연방의 원조, 미국과의 군비경쟁, 중공업 중심의 발전 계획, 스탈린 주의 혹은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계획경제의 한계, 연방 관료들의 부패와 경직성 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제 문제가 사회의 혹은 정치의 그 어떤 변화를 요구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경제 파탄의 문제가 직접적인 소련 해체를 이끌었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중국의 경우처럼 정치개혁 없이 경제개혁만 실행했다면, 소련연방의 해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중국과 달리 소련 연방의 고르바쵸프는 경제개혁과 정치개혁을 함께 실시하였는데, 경제 개혁을 실패함과 동시에, 정치개혁 역시 고르바쵸프가 원한 방향과는 다르게 흘러가게 되고, 그 방향은 소련 연방의 붕괴로 귀결된다. 따라서 본 글은 그러한 정치 개혁의 시도 배경과 그 과정과 결과를 설명하고, 실질적 소련 붕괴의 원인에 대한 답을 구해본다.1. 정치 개혁 시도의 배경소련 연방은 스탈린 지배체제 하에 계획 경제를 바탕으로 중화학 공업과 군수산업 위주의 경제 정책을 위주로 국가 경제를 선도한다.) 중화학 공업 위주의 경제 정책은 스탈린 시기 초반, 풍부한 노동력과 자원 등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지만 계획 경제라는 원초적 한계 즉, 비능률적인 생산제도와 예측불가능한 공급과 수요를 계획하여 국가 경제를 운영하려는 시도 등으로 인해 경제 성장이 둔화된다. 또 중화학 공업과 미국과의 군비 경쟁에 있어 군수 산업에 초점을 맞춘 생산 체계 때문에, 일반 인민들이 필요로 하는 소비재를 충당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곧 국민들의 개혁 욕구에 추동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본격적인 소련 연방 경제의 쇠퇴는 1970년 대 초부터 징후를 보이기 시작하고 브레즈네트의 철권통치기간 동안 관료주의와 부패, 생산 구조의 문제, 계획 경제의 한계, 외국 혹은 공화국에 대한 원조, 소비재 부재 등의 문제들이 누적되어 갔다.이러한 상황에서 1985년 3월에 고르바쵸프가 당 실권을 장악하였고), 경제 개혁에 대한 요구가 끊이지 않았으며, 경제 성장의 지속적 둔화에 의해 고르바쵸프는 계획 경제 내에서 그리고 공산당 일당 지배 하에서 경제 개혁을 이루고자 한다.) 이를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개편) 운동이라 명명한다. 군비를 축소하거나, 노동과 협동조합에 관한 입법을 통과시키고, 일부에 한해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조합에 관한 성과만 있었을 뿐 독립채산제라는 경제체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연방의 경제는 더 악화되어갔다. 이와 동시에 고르바쵸프 정책에 반대하는 보수주의자들이 득세했고, 이에 보수주의자들의 힘과 존재의 약화시키기 위해 즉 경제적 개혁의 유연성을 위해 정치적 개혁을 시작한다.)2. 정치개혁의 과정브레즈네프 집권시기엔 중앙집권 강화와 안정을 위한 당 운영 때문에 당 관료들의 무제한적 임기가 보장되었고, 부패 현상이 만연 화 되었다. 이러한 시기를 경험한 보수적 관료들은 고르바쵸프의 정책에 반대하기 시작하였고, 고르바초프는 이러한 상황 타개를 위해 경제개혁을 위해선, 정치개혁이 선행되어야 함을 느낀 채, 정치개혁을 중심으로 페레스트로이카를 진행해 나간다.우선 부패한 관료들을 배격하고, 당 조직을 개혁적 인물들로 채우며, 동시에 당 자체의 개혁을 추진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당내 위원 선출에 있어 당 내 민주주의와 다양성 인정을 통해, 선거는 비밀투표로서 행해지고, 복수의 후보가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했다.) 당과 국가의 분리를 시도했으며, 당이 직접적으로 국가 경제 기구로서의 힘을 차단하려했다. 당이 국가의 경제 좌지우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당의 권위의 실추는 당연한 결과였다. 1988년에는 고르바쵸프가 대통령제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키고, 자신이 직접 출마한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령으로 선출이 된다. 이러한 변화에도 당 내의 개혁 반대파가 개혁에 반대를 나서고, 고르바쵸프는-실질적으로 원하지 않았던-헌법 6조 즉, 공산당의 권력 독점을 규정한 내용을 폐기한다.) 이로서, 연방정부 내 절대 권력이었던 공산당은 일개 정당으로 전락하게 된다.공산당의 지위 하락은 연방 내 정치적 다양성과 제도적으로 다당제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동시에 다양한 의견의 존재와 공산당의 일개 정당화는 소련에 존재했던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상실과 마찬가지다. 또한 실제로 글라스노스트를 통한 정보 공개는 대중들에게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스탈린 주의에 대한 의심과 분노를 촉발하는 매개 역할을 하게 되고, 대중들은 민주화와 다양성 인정을 염원하게 된다. 공산당에서 엘친과 같이 급진개혁적인 인물들이 탈당을 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고, 다양한 당들이 생성되고, 아래로부터 독립노조와 여러 가지 분파들이 생겨나게 된다. 다양성은 인정된다는 것은 중앙의 권력이 분산됨을 의미하는 것이고, 연방의 권력 점차 소실되었다.연방의 권력 약화와 다양한 정치적 의견의 인정으로 인해 연방 내 공화국들은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배경으로 둔 채 공화국 내 자치를 주장하게 된다. 실제 연방국들은 공화국 자체에서 공화국 최고회의를 개최한다. 발트 3국에서 시작된 민족주의 운동은 공화국들 사이로 퍼져나가게 되고, 소련 연방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던 중앙아시아의 공화국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공화국들은 연방으로 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노보 오가레보 회담에서 러시아가 연방으로부터 러시아의 재정권을 확보함으로써, 연방의 권력은 더욱 약화된다. 그러던 와중 연방의 보수주의자들은 고르바쵸프를 납치하고 쿠데타를 시도하지만, 엘친에 의해 저지되고, 소련 연방의 수장이었던 고르바쵸프의 권위는 거의 소멸되었다. 이에 고르바쵸프는 공산당 서기장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소련 해체를 선언한다. 소련은 발트3국의 독립을 허용했으며, 공화국들 간의 관계는 연방의 체제에서 발트3국을 제외한 구속력이 없는 12개 국가의 독립국가회의(CSI)체제로 전환된다.3. 정치 페레스트로이카 요약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는 애당초 소련 연방의 공산당 체제하에서 경제적 개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경제적 개혁은 보수 정치 세력에게 막히고, 보수 세력의 약화를 위해 정치적 개혁 또한 추구하게 되고, 시간이 경과됨에 따라, 정치적 개혁 비중이 더 높아졌다. 정치적 개혁은 당 내 민주주의를 시도했고, 당 내 민주주의는 자연스레 다양성을 인정하게 만들었으며, 당과 국가기구의 분리와 국가에 대한 당의 영향력 축소시켰다. 이는 자연스레 일당지배체제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었다.당의 권력 소실은 첫째로 중앙당과 기구 세력의 약화는 소련 역사를 지배해왔던 이데올로기가 소멸됨을 의미하고, 그 연방의 존재가치 역시 사라짐을 의미한다. 애초에 소련 연방은 공산주의에 입각한 국가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가치의 소멸은 연방의 소멸로 자연스레 귀결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연방 내 공화국들과 연방 내 다양한 세력들에 대한 통제가 소실됨을 의미한다. 다양한 당과 풀뿌리 세력과 지방세력 들이 다양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으며, 이러한 당과 세력들은 이미 그 권력과 가치를 상실한 연방의 존재를 거부하게 되는데,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이 발트3국의 독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