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주석주석 본문 : 시편 23편목 차Ⅰ. 서론Ⅱ. 본론1. 본문가. 히브리어 본문나. 본문(대조)2. 본문 사역의 해설3. 본문의 배경4. 본문의 구조5. 시편 23편의 해석방법들가. 양식사적 접근1) 본문의 양식2) 삶의 자리(Sitz im Leben)나. 본문비평적 접근다. 수사비평적 접근라. 전승사적 접근Ⅲ. 결론* 참고도서Ⅰ. 서론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책들을 접하면서 살아가는 문화와 지식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특히,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진 사람이외에도 많은 이들이 ‘성경’을 알고, 찾으면서 전 세계 베스트셀러가 된 일은 이미 오래전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진 우리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가장 기본 적인 질문을 던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또한, 그렇게 신학에 대하여 학문적인 노력을 하는 우리들이기에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본, 번역본들을 비교하고 검토하면서 주석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원문을 고정해 보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읽고 해석하는 사본과 역본의 증거를 참고하여 본문의 원문을 파악하고 번역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한 본문에 대하여 자신이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의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질문이며,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자 노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성경의 본문의 경중을 가릴 수는 없지만 시편 23편은 중요한 본문이다. 특히, 시편 23편은 다윗의 시로 우리에게 많은 평안과 안식을 얻게 하는 본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흔히 사용되고 있고, 이 말씀은 우리들의 신앙고백이며, 기도이며, 찬양의 내용이 되고 있다. 이렇게 시편의 대표적인 시로도 여겨지는 시편 23편을 통하여서 본래의 원문을 알아가고자, 시편 23편의 본문을 알아가는 노력을 하고자 한다. 우리는 먼저 히브리어, 개역개정 등의 본문을 우선 적으로 살펴보고, 번역이 아닌 히브리 성경의 본래의 의미를 사역하며 찾아보고자 한다. 또한 시편 23편의 본문의 배경과 구조, 양식사본문비평수사비평전승사적인 시각에서 새로운 접근을 하고자 한다.Ⅱ. 본론본문히브리어 본문dwId;l] r/mz]mi.rs;j]a, al y[iro hw:hy].ynIleh}n'y] t/jnUm] ymeAl[' ynIxeyBir]y" av,D, t/an]Bi./mv] @['m'l] qd,x,AyleG][]m'b] ynIjen]y" bbe/vy] yvip]n".ynImuj}n'y] hM;he *T,n]['v]miW *f]b]vi ydiM;[i hT;a'AyKi [r; ar;yaiAal tw
상담 사례 보고서1. 상담을 시작하기 前에오늘날 우리의 주변에는 이혼을 해야만 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놓여 있는 여성들이 염려하고 고통당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된다. 특별히 목회자들이 이런 상담을 많이 받게 되는데 성서적으로 이혼을 금기하고 있다고, 여자에게 무조건적으로 참을것을 권면한다면 고통을 당하는 내담자에게는 그 상담이 치유가 아니라 내담자에게 두 번이나 가슴에 못질하는 경우가 될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일 경우에는 이혼이라는 전제가 “타인들의 눈초리를 받는다”라고 생각하여 괴로워하고, 이혼을 금기시하는 성경말씀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이혼하는 일이 죄책감으로 작용하여 일상생활의 여러 부분에서 자신의 죄책감이 크게 드러난다고 보고있다.결혼 7년 정도 되면 여자들은 가정이 안정되기를 바라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정서적, 경제적, 종교적으로 안정을 유지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시댁 식구들에게도, 친정 식구들에게도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이 상담은 한 여인이 남편과 서류로만 이혼하지 않았을 뿐이지 남편이 다른 여인과 살림을 차려 가정을 만들어 살고 있어서 지금은 서로 다른 가정생활을 한다. 이 여인은 친정집에 살면서 아이 양육 문제와 앞으로의 일들을 걱정하고 있는 상태이다.또한 교회일을 하면서 자신이 너무 일을 못한다고 비하 하는 상태이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자신의 문제를 이겨내고 신앙생활과 자신감을 회복 시켜주는데 도움을 주려고 한다.2.사례1. 사실 파악과 준비1) 내담자 인적사항** 이름: 김xx** 성별: 여 나이: 38** 직업: 신학대학 재학 중** 신체적 특징: 165 Cm미인 형2) 가족 관계** 남편: (40대 초반. 회사원--노조일을 함)지금은 내담자와 함께 살고 있지 않다. 회사 일을 하면서 만난 여자와 결혼을 하여 세살 먹은 여자 아이 하나를 두고 있다. 술을 잘 마시며 결혼 전에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연예로 결혼을 해서 결혼을 하면 내담자에게 교회에 나가기로 약속을 했으나 결혼 후 한번도교회에 다니지 않았다. 노조 일에 집착했으며,하고 있다.4) 사회생활1년전 까지 카드회사 상담원을 했는데 지금은 교회 생활에 충실하고자 사직했고, 현재는 D신학대학교 야간학부에 재학 중이다.5) 신앙생활친정부모의 신앙으로 인해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고 3년 前에는 서울에서 생활 했으나 남편의외도와 다른 살림을 차림으로 친정부모 곁으로 오게 되었다. 현재는 대전 지역 H교회에서 집사 직분으로 섬기고 있다. 상담자와는 중. 고등부 교역자와 교사의 관계이다. 성격 탓이기도 하겠지만 작은 일 하나에도 신경을 쓰고 집착함을 보여 타인의 말에 상처를 잘 받는다.(단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려고 하는 마음은 남달랐다.)6) 주변의 상황들* 조사는 상담자가 주변사람들의 의견과 상담자가 내담자의 상황을 조사한 것임① 친정부모와 갈등은 없으나 친정 부모는 남편과 이혼하기를 바라고 있다.② 내담자가 현재 남편과 교류하고 있으며, 시댁 부모가 남자아이(내담자의 아들)를 보고 싶어 하면주일이라던 지 방학을 이용하여 자고 오게도 한 ( 시부모의 요구로 보내기는 하지만 친정 식구들의질타와 내담자 자신의 내면의 불안함으로 그 시간 상당히 괴로웠다고 고백함.)③ 남편과의 갈등을 다른 2명의 상담자(교역자)들과 상담을 했는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 남편이 돌아온다고 권면했다고 함. (2명의 상담자는 모두 여자였다고 함.)④ 내담자는 남편에 대한 미련은 없지만 안 믿는 시댁 식구들을 염려하고 있었다.내담자 자신이 참고 기다리면 내담자에게 감동하여 시댁 식구들이 예수를 영접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이었다. (상담자의 생각으로는 2명의 여성 상담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③,④의 내용은 중. 고등부 예배후 나누었던 대화였음을 밝혀둠 (비공식적인 상담 - 대화에 가까움)⑤ 다른 살림을 차린 남편의 가정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다.3. 내담자 분석 및 상담 준비1) 내담자의 분석① 내담자의 현재 상태* 교회 일을 함에 있어 자신감이 없다.* 교회 일에 전적으로 매달리기를 원했다.* 교회일을 하면서 동료들의 말에 예민하다.* 최근 남편과 서류 일임을 깨닫게 해주고, 자신감을 심어준다.* 아이 양육과 생활비 문제에 대한 염려를 해소시킨다.* 남들을 의식함으로 인해 상처 받음을 치유한다.4. 상담이론 적용1) 목회 상담목회 상담은 내담자의 전인적인 정신건강, 정서적인 건강과 영적 성장을 도모하여 인격의 변화를 가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내담자도 경험하도록 하려는 의미도 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분명했을 때 치유가 있을 수 있다.내담자의 심정을 공감하고, 경청함으로 내담자가 문제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2) 권면적 상담제이 아담스는 상담자가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지침으로 열 가지를 제시했다. 감정에 따라서 행동하는가, 문제들을 회피하는 것,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 소망을 잃어버리는 것, 원한을 품고 있는가, 문제들에 관해서 간단하게 말하는가, 용서를 하지 않는 것, 그 자리에 함께 있지 않는 사람에 대해 말하는 것, 의사소통이 단절되는 것, 실패할 때 포기하는 것, 따위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을 제시했다. 이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소망을 잃지않도록 하고, 실패 할때도 포기하지 않도록 돕는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권면적 상담의 목적이 내담자 스스로 자기 훈련을 하도록 지도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능력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이니 만큼 내담자의 일상 삶 속에서 자신감을 회복하도록 지도하려고 한다.3) 치유상담나는 현재 행복한 가정을 꾸미고 있기 때문에 걸핏 내담자를 판단하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충분히 내담자의 입장이 되어보기 위해 아내와 내담자의 상황을 이야기 하며 내담자의 입장에서 충분한 대화를 나누어 보았다. 내담자의 아픔을 같이 나누어 보려고 한다.5. 상담1 ) 탐색 -- Adler 의 個人 心理學的 接近(개인 심리학적 접근)Adler는 인간은 창조적 존재라고 했다. Adler는 성격형성에 있어서 유전과 환경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개인은 분명히 이 두 요인 이상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란 창조적인 힘대하지 못했다.내담자가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내담자는 개인적으로 자신을 낮추었다. (낮추는 것에는 겸손보다는 자신감 결여였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교회일 하는 것을 자신없어 하는 것이 환경적 요인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한 귀한 존재라고 말해주고 누구나 다 자신들이 일을 잘해서라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을 잘 이겨 나가고 서로협력하고 관계를 잘 맺기 때문입니다. 집사님도 찬양할 때나 인도하실 때 아이들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고 칭찬해 주었다.2 ) 통찰 --- Frankl의 성격이론Frankl은 인간에 있어서 의미에의 의지(will to meaning)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독특한 치료기법인 의미치료(logotherapy)를 개발하여 근본적으로 의미가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치료하였다. Frankl의 의미치료에서 비롯되는 인간본성의 이론은 의지의 자유(freedom of will), 의미에의 의지(will to meaning), 삶의 의미(meaning of life)의 세 기둥위에 토대를 두고 있다.환경이 바뀌어도 얼마든지 자신감으로 살 수 있음에 초점을 맞추었다.② 두 번째 상담내담자가 상담자에게 상담요청을 함으로 두 번째 상담이 시작되었다.내담자는 남편과 서류상으로만 이혼이 아니지 이혼한거나 마찬가지라고 떨어 놓으며 힘들어했다.내담자는 상담자 말고도 다른 상담자와 상담 경험이 있는데 모두 남편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내담자는 부모와 형제들이 이혼을 하지 않음을 내담자가 상처 받을까봐 말을 못하고 있지만 내담자를한심하게 생각하는 눈치라고 이야기 했다. 상담자는 내담자가 더 깊은 이야기를 하도록 내담자 본인의 생각을 물었고 더 깊은 이야기들을 했다. 내담자는 눈물까지 흘리며 이혼했을 경우 생활비와 아들의 장래 문제를 걱정하고 있었다. 상담자는 어려움이 있겠지만 기도하면서 남편을 만나 위자료와 아들의 장래문제를 이야기 해보라고 조언했다. 상담자는 이혼했을 경우에 무엇을 요소임을 이차 상담에서 드러냈다.세 번째 만났을 때 내담자는 자신이 남편을 이제는 그만 기다리고 자신의 삶을 찾았다고 고백했다.그래서 내담자는 신학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위자료와 아들의 장래 문제는 아직도해결을 못했다고 말했다. 진작 부모님들의 말씀을 들었으면 괜찮을 것이라고 자신을 비하했다.지금도 기도하면서 남편 분을 만나 이야기 하면 잘될 것이라고 격려했다.내담자는 이런 일이 있는 것은 내가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라고 괴로워하고 있었다.죄책감에 대해서 우리는 모두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에서 깨끗함을 받았음을 깨닫게 해주었고,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얻을 것이라고 권면하였다. 세 번째 만남은 내담자의 교회를 사임하고 만났다. 내담자는 그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인정을 받는다.그러나 아직도 내담자는 상담자에게 자신이 없어서 그 부서에서 일을 못하겠다고 말했다.어떤 부분에서 그러냐고 물었을 때 여전히 앞에 서는 것이 자신이 없고, 다른 교사들이 자기가 앞에 서는 것을 좋게 보지 않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내담자가 일을 사정이 있어서 못하게 되면 모르지만 자신이 없어서 일을 못하면 나중에도 다른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해주었다.내담자는 교회생활에서도 자신감이 없음을 드러내었고 이혼 후에도 삶의 자신이 없음을 드러내었다.내성적인 성격으로 충분히 이해가되는 부분이어서 같이 기도하고 힘을 내자며 상담을 마쳤다.6. 상담의 평가1) 내담자 평가① 가정적. 사회적내담자는 남편이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음으로 친정부모(장로, 권사)의 반대에 직면하게 되지만 남편에 끈질긴 청혼에 결혼을 하게 된다. 남편은 노조 생활을 했고, 아내는 신앙적인 생활을 원했기 때문에 부부는 갈등을 했다. 남편은 자신의 삶을 이해 못하는 아내가 싫어져 외도를 했고 새 가정까지 꾸렸다. 2년가까이 기다렸지만 오히려 남편은 새로 꾸린 가정에서 아이까지 낳았다. 기다림이 역효과로 나타난 것 같다. 서류로만 이혼이 아니었지 .
융 심리학 - 악 그림자 존 샌포드, 심상영(옮김), 『융 심리학과 치유』, 서울 : 한국심층심리연구소, 2010주변 많은 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종교윤리에 대한 비판과 비난들 속에서 진지하게 신 존재 증명과 악의 실존에 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던 도중, 마침 “악”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다른 책들 보다 앞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신 존재 혹은 악의 존재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느꼈던 많은 물음들에 대한 분석심리학적 해답을 얻고자 하였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고, 아직 분석심리학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관계로 그러한 해답을 정확히 얻지는 못하였지만, 그 가운데 값진 교훈 하나를 얻게 되었다는 점에, 너무나 감사하였다.악의 실재-선과 악의 구분은 관찰자의 관점에 달린 것이다.내가 그동안 배워온 관점에서 악이란 실재하는 것이다-라는 과정신학적인 입장과 선의 부재라는 어거스틴, 혹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입장을 통해서 이해하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악을 위의 모습들처럼 일방적인 단면만으로 선과 악을 설명하지 않는다. 저자는 ‘도둑 쥐’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악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떤 피조물에게는 선으로 여겨지는 것이 다른 피조물에게는 악으로 여겨진다는 것이다. 인지적으로 볼 때 관찰자의 관점에 때라서 선과 악의 구분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할 때는 로맨스, 남이 할 때는 불륜’이라는 시선의 차이가 선과 악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책에도 나와 있듯이 선과 악이 상대적인 모습을 보이고,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는 견해는, 어찌 보면 신학자들의 입장과 조금은 반대되는 모습을 보인다. ‘선과 악의 관찰자의 관점에 따라 결정된다면, 절대적 기준의 가치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즉 선과 악을 구분질 수 없는 절대적인 기준을 가질 수 없게 된다면 선과 악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여기서는 선한 것이 다른 곳에서는 악이라고 규정된다면, 무엇이 진정으로 선한 것인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자아 중심적 관점으로 선악을 규정하게 된다면, 세상에 절대적인 선을 없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나 일반적으로 동일한 선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것은 선이 실재한다는 한 증거가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디에서나 일반적으로 동일한 악을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러한 모습들은 인간들이 갖게 되는 감정적 요인이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디에서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의,식,주 같은 기본적 욕구, 즉 어느 환경에서나 인간에게 꼭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들이, 인간들이 어느 문화권에서나 보편적으로 비슷한 모습을 갖게 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관점과 동일하게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욕망이나, 권력, 힘에 대한 욕망들이 비슷하게 자라난다고 본다. 하지만 욕망에 대한 모습은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현상들은 다르게 나타나게 된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욕망은 동일하지만, 무엇이 아름다우냐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즉, 동일한 한 사건을 다른 자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바라보게 되면 다른 사건이 되게 되는 것이다.이러한 관점들로 선과 악을 바라볼 때 같게 되는 문제점이 발생한다. 선악을 구분하는 인간 자체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인간이란 외적 한계성과 내적 한계성과 영적 한계성을 벗어 날 수 없는 존재이다. 시간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한계는 그 시대에는 완전하게 보이는 철학자들의 논리나 과학자들의 사실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논리와 새로운 사실이 채용이 되는 모습에서 보인다. 이렇듯 인간은 완벽할 수 없으며 우리의 불완전한 시선으로 보는 관점조차 완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神)과 같은 초월적 존재자, 더 이상 뛰어난 어떤 것을 설명할 수 없는 존재의 시선을 빌려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의 시선은 신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고 융은 생각한 듯하다. 고전적 신화에 등장하는 인격화된 신의 모습들을 통해서나 영웅들의 모습을 통해서 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신화 안에 있는 신을 발견하게 되면서 그 안에 있는 다양한 상징들을 통해서 선과 악, 자아, 자기의 구분을 할 수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신화들이나 종교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악에 대하여 규정하고 의인화하고 구제적으로 객체화하는 작업을 통해서, 악이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선을 행하는 것을 권유하는 모습을 보인다. 신화에서 등장하는 심볼들이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는 이유인 것이다.신학을 하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혹은 신에 대하여 생각하면 할수록 항상 의문점을 같게 되는 것이 바로 절대적인 존재자 하나님이 계시다면 도대체 ‘왜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도록 내버려 두셨는가’ 하는 문제였다. 그것도 악이라고 하는 것이 세상도처에 너무나도 많이 실재하는 것을 볼 때마다, 이러한 나의 의문점은 커져만 갔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도덕적인 신의 모습으로 하나님을 이해한다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형이상학적인 신의 모습으로 이해한다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아니기도 하다. 물론 악이 인간에게서 온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에 악은 하나님과 구별되어 이야기 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신이후로 하나님과 우리에게 단절된 부분이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악이라고 부르는 ‘악’이라는 관념자체가 사람의 기준, 혹은 사람의 언어에 의해서 발생하여진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온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다. 혹은 하나님의 의도를 가지고 악을 허락하셨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무리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고 하여도, 하나님은 전지전능한 분이시기 때문에 악이 하나님의 의도 없이 생겨난 다는 것, 혹은 세상의 모든 만물들, 즉 모든 존재들이 하나님의 의도 없이 생겨난 다는 것은 있을 수 가 없는 일인 듯 보이기도 한다.혹은 내가 앞서 이야기 했듯이 악을 선의 결핍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겠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와 어거스틴 같은 신학자들이 많이 주장하는 내용이기도 한데 악은 실재하지 않으며, 선이 결핍되어서 생기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즉, 오직 선만이 실체를 가지고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악은 그 자체로는 실체가 없고 선이 감소할 때에만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 즉 의도하신 완전성을 거부하게 될 때에 악이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도 선에 대해서 상대적인 악에 대해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선의 결핍이 악이라고 한다면 선의 결핍에 대한 상대적 기준이 모호하다고 생각되어진다. 선이 어느 정도 결핍되어야지 악이라고 기준할 수 있는가? 완전한 선의 존재인 신이 존재한다면 선의 결핍이 발생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듯하다.
『열린 예배, 작은 영혼에 대한 외침』- ‘열린예배 메뉴얼’을 읽고 -현대 많은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세상문화와 동떨어진 교회의 폐쇄적 경향과 상실된 교회의 영성과 대책에 대한 세상의 물음에 해답을 교회가 주지 못하는 것에 기인한다. 청년들이 예배에 바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과 교리적인 문제들, 또 현실적으로 청년들이 만나고 있는 삶의 무게들 또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들 중 하나일 것이다. 이러한 청년들의 이탈 현상을 깨닫게 된 교회들이 뒤늦게 그에 대한 방안들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내놓지만, 어느 것 하나 떠나가는 청년들의 발을 되돌리지 못했다. 교회들이 내놓은 프로그램들이 청년들로부터 외면 받은 이유는 교회들이 청년문제를 교회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청년 문화 속성을 이해하지 않은 채 변화를 준비하지 않고 흐름을 뒤쫓아가기에만 급급하였고, 청년들이 실질적으로 원하는 본질을 교회에서 캐취해주지 못한 점등이 있다.반면에 1970년대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난 청년들을 상대로 미국교회들이 내놓은 구도자(seeker)들을 위한 예배의 특징은 청년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갱신의 관심을 예배에 두었다는데에 있다. 이러한 예배는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책의 저자가 우리나라 교회들의 청년사역에 제시하는 롤모델이 된다.이 책을 읽기 전까지 필자는 구도자 예배를 그렇게 까지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었다. 예전에 SBS '신의 길, 인간의 길'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미국의 한 교회를 소개한 적이 있었다. 그 교회는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담임하고 있는 교회였는데, 이 교회는 자동차 전용극장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교회 뒤뜰에 예배를 드리러 오는 사람들이 차를 주차하고 슐러 목사님이 이층 베란다에서 나와 말씀을 전한다. 예배가 끝나면 그들은 바로 차를 운행해 가족여행이나 소풍을 떠난다. 이들의 복장은 애초에 놀러가기 위한 편한 복장이다. 차에서 내리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복장을 신경을 쓸 필요는 전혀 없었다. 또 다른 형태의 예배를 드리는 교회도 소개 되었는데 그 교회의 목사님은 전직 프로레슬러였다. 그의 교회 중앙에는 사각링이 있었고, 20~30분가량 목사님이 프로레슬링을 선보인 후 사각링 중앙에서 말씀을 전한다. 이런 예배의 형태를 처음 접한 나는 '요한복음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했는데 이런 형태의 예배가 인정될 수 있는 것인가?'하는 의구심이 들었고, 당시 나는 예배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전통의 영성이라고 했던가? 내가 생각하기엔 옷을 단정하게 입고 예전부터 정해진 식 순서에 맞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진정 영적인 예배의 형태라고 생각 되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형태의 예배를 드리다가는 복음이 크게 훼손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마저 들었다.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나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오히려 열린예배의 예찬론자가 되었다. 열린예배의 목적은 청년들을 많이 끌어모으는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교회의 폐쇄적이고 딱딱한 형식의 예배에 거부감을 느끼는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아주 기막힌 통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청년들은 교회를 떠나지만 그들에게는 영적인 것에 대한 갈망이 있다. 하지만 기존의 예배의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는 처음에 교회에 출석하는 청년들이나 믿음이 약한 청년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들에겐 그들에게 맞는 '유아식'형태의 예배를 먹일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열린 예배의 형태이다. 열린 예배는 청년들의 문화와 코드, 사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통로로 하여 복음을 전하므로 청년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부담을 느끼지 않게 되고 은연중에 복음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계속 복음을 접하다 보면 믿음이 성장함으로 말씀에 대한 갈망이 생기기 마련이고, 기존 형식의 예배에도 참여하고픈 마음도 생길 것이다. 이런 식으로 청년들은 처음에 열린예배를 통하여 '유아식'형태의 말씀을 먹고,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스테이크'같은 말씀도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랑하자, 죽기 직전까지』- 책 ‘영화로 사랑을 말하다’를 보고 -사람들은 사랑에 목말라 있다. 그것이 육체적 사랑이든 정신적 사랑이든, 인간은 항상 사랑을 추구하며 인생을 살아간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우리가 그의 형상을 본으로 만들어 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사람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사랑을 얻기 위하여 노력하고 그 과정 가운데 사랑에 실패도 하고 상처도 입는다. 나 또한 사랑을 하면서 그러한 일들을 겪어 본 바가 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되돌아 보면 그 사랑은 상대방이 잘못되었든, 내가 잘못되었든, ‘뭔가 잘못되어져 시작된 사랑이었다’라는 생각이 들곤한다. 나의 사랑은 어디서 잘못된 것이었을까?사랑에도 방법이 있다고들 한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여러 지침서가 나오고 실제로 나도 그러한 지침 도서 몇권을 읽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어려웠다. 모든 책들이 추상적이고 허공에 띄어져 있는 듯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아 마음속에 내용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사랑에 대한 궁금증에 목말랐던 나는 목사님께서 읽으라고 선정해 주신 3가지 도서중에 ‘영화로 사랑을 말하다’라는 이 책을 가장 먼저 사고, 가장 먼저 읽었다. 사랑, 이 책을 통하여 내 마음속에 흩뿌려져 있던 사랑의 정의가 조금씩 윤곽이 잡힐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다.영화를 수단으로 하여 사랑을 말하는 기법은 굉장히 탁월한 거 같다. 대부분의 사랑 지침서들은 전달 방법이 글이라는 수단으로 제한되어 있다. 아무래도 글로 내용을 전달하다보니, 진정한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그 글에서 얘기하는 사랑이 마음에 잘 그려지지 않고, 아예 마음에 와닿지 않는 글귀들도 있을 것이다. 글에 비해 영화는 영상을 수단으로하여 시각적, 청각적인 요소들이 우리의 신경을 자극한다. 배우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통하여 극중 그 사람의 기분변화를 느낄 수 있으며, 배우의 말하는 톤이나 억양, 떨림등으로 우리는 그 배우의 기분을 유추 할 수 있다. 이러한 영화를 통하여 이루어지는 기분읽기, 상황판단, 언행의 타이밍 같은 연습은 우리의 삶에서도 적용 가능하고, 실제로 유용하기까지 하다. ‘영화로 사랑을 말하다’라는 이 책은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영화에서 드러나는 사랑의 대한 정의에 뚜렷하게 윤곽을 잡아준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일컫는 그런 사랑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사랑법을 얘기한다.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뭔가 달라야한다. 육체적이거나 혹은 정신적으로 나의 만족을 위해 사랑을 추구하는 세상의 사랑과는 차이가 있어야한다.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예수의 사랑으로 내 배우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점에 있어서 세상의 사랑이 아닌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얘기한다. 물론 세상 사람들이 책에서 제시된 이러한 사랑의 방법을 추구한다면 그들도 분명 행복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나에게 가장 감명깊게 다가온 영화 에피소드는 ‘오만과 편견’이었다. 왜냐면 내 자신이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상대방에 대한 편견과 오만으로 인해 일을 그르친 일이 몇 번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단지 내 자신감의 문제라고 생각하여 왔는데, ‘오만과 편견’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크게 공감가는 부분이 상당하였다. 나의 사랑을 대하는 자세는 다시와 엘리자벳의 오만, 편견과 상당히 비슷하였다. 그전에 이 영화를 볼때는 ‘남녀사이의 밀고 당기는 모습을 그린 정말 밋밋한 영화구만’이라는 생각으로 봤다. 밋밋하다라는 표현의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진짜 사랑영화는 영화를 보고 난 뒤 두 남녀의 사랑에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생기거나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야 한다는 나의 고정관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의 해석을 통하여 영화 속 사랑이 교훈하는 바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솔직히 이 책에서 소개되는 7가지 영화들 중에 내가 본 영화는 ‘오만과 편견’밖에는 없다. 나머지들은 아예 보지 못하거나, 보더라도 케이블 영화 채널 OCN에서 잠깐 지나가면서 본 기억이 있는 영화 들뿐이었다. 하지만 간략하게 소개된 영화의 줄거리를 읽고 그 안에 담겨진 사랑에 대한 해석을 풀이 해 논 글들을 읽어 나가면서, 나는 내 안에 분명하지 않았던 사랑에 대한 정의를 조금씩 정립해 나갈 수 있었고,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두려웠던 마음이 조금씩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앎이 곧 자신감이라고 했던가. 사랑에 자신감이 생겼다. 사랑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 나의 자세의 문제가 이 책을 통하여 들어났다. 사랑의 중심은 상대방이다. 여태까지 나는 나를 너무 소중히 여겨 나를 버리면서 까지는 사랑하지 못하였다. 사랑 앞에서 항상 계산하며 몸을 사려왔다. 이제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 사랑을 할 때, 우리는 사랑이라는 그 우물안으로 뛰어 들어 완전히 ‘빠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