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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림 시론에서 나타난 근대성
    김기림 시론에서 나타난 근대성목 차1. 서론2. 김기림에 대한 인물 소개3. 근대성의 정의4. 김기림 시론에 대한 기존 연구 방향5. 김기림 시론 분석 (본론)5-1 시대별 분석5-2 김기진 시론의 본질6. 결론1. 서론김기림은 우리 현대 시사에서 모더니즘에 대한 인식을 정착 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꼽을 수 있다. 그는 서구 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문학을 과학화 하고자 했으며 당시 현실에서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었던 ‘근대성’에 대하여 의욕적으로 연구하는 첫 계기가 되었다.김기림에 대한 이런 모더니즘의 이론과 실제는 서구 모더니즘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서구 모더니즘 수용을 우리 문학이 걸어 나가야 할 길로 생각한 김기림에게 서구 모더니즘과는 다른 김기림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시론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김기림에 대한 기존 연구는 모더니즘 이식 관점, 문학사적 위치, 시론의 변천과정 등 여러 가지로 있어왔다. 본고에서는 그 중 시대적 상황과 결부하여 김기림 시론의 근대성에 대해 중점을 맞추어, 그가 주장했던 시론의 변천과정과 변증법적 사유 방식의 흐름에 대하여 논하여 그 의의를 정리 하고자 한다. 또한 김기림 시론의 근대성이 어떤 양상을 띠고 있었는지 간략하게 정리함으로써 그의 시론의 근대적 특성에 접근하였다.2. 김기림에 대한 인물 소개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활동한 김기림(필명)의 본명은 김인손, 호는 편석촌이다. 그는 1908년 함경북도 학성에서 출생하였다. 1921년 보성고보를 중퇴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니혼대학 문학예술과 동북제대 영문과를 졸업하였다.1930년대 초반에 조선일보 기자로 활약하면서 《가거라 새로운 생활로》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였으며, 특히 시 창작과 비평에 관심을 기울였는데 같은 신문에 평론 《시의 기술 인식 현실 등 제 문제》를 발표하며 문학평론에도 뛰어들었다.1933년 이효석, 조용만, 박태원등과 구인회를 창설했다. 그의 문학 활동은 [구인회(九人會)]에 가인 근대성(Modernity)이란, 피안적(彼岸的) 정신을 부정하는 현세주의, 혹은 객관적인 자연에 관한 과학적인 이해 및 안목의 소산 등을 의미한다.그런데 문학에 있어서의 근대적 특성에 관련하는 논의들은 문학을 이해하는 방법론 내지 이론적 패러다임, 이를테면 19세기적인 소박한 반영론, 제도 및 제도의 이식(移植), 이데올로기, 생산양식론, 이성적 계몽, 민족주의, 정신분석학 등과, 특히 문학사를 어떻게 인식하고 기술할 것인가 하는 실제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매우 밀접한 관련성을 맺고 있다. 하나의 예를 든다면 193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 신문학사를 최초로 기술하였던 임화의 경우는 근대성의 경험이 제도적 장치의 이식, 즉 서구적인 기준으로부터의 모방이란 관점에서 이해되고 인식되었던 것이다.김윤식은「한국문학과 포스트 모더니즘(1989)」에서 근대성을 '알라딘의 램프 속에 잠복해 있는 거인'으로 비유한 바 있다. 이 거인은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주인이 악인이든 선인이든 그저 복종만 하는 인간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다시 말해, 근대성은 선악·미추·시비·곡직 등의 가치판단이 중단된 몰가치한 과학적 세계인 것이다. 반면에, 백낙청은「문학과 예술에서의 근대성 문제(1993)」에서 그것이 근대적 현실을 어느 정도, 얼마나 잘 반영하였느냐 하는 미학적 개념에까지 연장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럴 경우, 즉 근대성이 가치지향성에 설 경우 근대성은 (백낙청이 밝힌 바대로) 리얼리즘과 민족문학이 가지는 바 등가(等價)의 개념을 얻게 된다. 심미적·도덕적 판단에 근거한 근대성의 개념이 아닐 수 없다.)4. 김기림 시론에 대한 기존 연구의 방향김기림에 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대략 네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첫 번째. 초기의 연구경향으로 비교문학적 고찰을 들 수 있다.비교문학이란 두 나라 이상의 문학을 비교하여 서로의 문학 양식?사상?조류?영향 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처음에는 실증적 연구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독일문예학의 정신사적 연구가 첨가되고, 다시 작품 그 자체의 형식을 구현하기 위해 모더니즘을 의식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실제로 시에 연결시켜 문학을 과학화 했다.모더니즘은 흔희 고전주의, 불연속적 세계관, 그리고 기하학적 추상 충동 등의 개념으로 설명된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는 대비되는 개념으로, 고전주의는 추상적 형식을, 낭만주의는 유기적 형식으로 분류된다. 따라서 시작 태도에서 김기림이 자연발생적 시가 아닌 의도적 제작으로서의 시를 주장했을 때 그것은 김기림이 모더니즘의 무기체론에 기울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러한 모더니즘적 인식이 그의 초기론부터 일관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김기론의 초기 시론은 출발점에 있어서만큼은 유기체론에 근거하고 있다.그렇다면 왜 김기림은 자신의 출발점에서와 달리 이후의 시론에서 무기체론에 근거한 제작으로서의 시를 주장하게 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이 시론이 아직 김기림이 비평가가 아닌 시인으로서의 자신의 경험에 근거하여 시에 대해 논의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자연 발생적 시가의 극복이라는 목적의식이 그를 무기체론의 위에 서게 한 것이다.이상을 통해 우리는 김기림의 초기 시론에서 지성의 강조로 대표되는 모더니즘의 무기체적 사고와 잠재적인 형태로서의 낭만주의의 유기체적 사고가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30년대 중반기의 그의 시론인 ‘오전의 시론’에 이르면 ‘지성과 인간성의 결합’이라는 논리로, 30년대 후반기로 가면 ‘모더니즘과 사회성의 종합’의 논리로 변주되어 나타나게 된다.그렇다면 초기시론에 내재해 있던 낭만주의적 사고는 무엇에 기인하는가? 또 그는 초기의 고전주의적 지성의 강조와 고도의 의식적 제작으로서의 시 창작을 주장하다가 왜 낭만주의의 유기체론으로 접근해 갔는가? 그에 대하여 김윤식은 그가 시인인 비평가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그가 비평가였다면 그는 끝까지 고전적인 것을 주장했겠지만 그는 시인이었으며 그 시적 충동이 그를 유기적인 것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김기림은 초기 자신의 비평가로서의 임무를 낭만주의와 감상주의의 극복에 두고, 이를수 있다.왜냐하면 직관이라 함은 판단이나 추리 등의 사유작용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작용이다. 따라서 직관이라는 것은 주관적이고 비논리적인 것이다.결론적으로, 김기림의 초기 비평은 감상적 낭만주의 계열의 시를 극복하고 모더니즘을 적극적으로 이론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행해지는데, 그가 관심을 기울여 소개하고 있는 서구의 이론들은 이러한 목적의식에 굴절되어 ‘자연발생적, 감정적, 주관적, 리듬 강조’등의 낭만주의적 요소들은 무조건 부정되고 이와 대별된다고 생각되는 ‘목적의식적, 지성적, 객관적, 리듬의 부정으로 산문시’등은 무조건 긍정되는 양상을 보인다. 그리고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도식화된 이론은 서구의 여러 시운동과 시론에 대한 이해가 증가하는 중반기에 이르면 이러한 단순도식에서 벗어나 전체주의 시론으로 구체화된다고 할 수 있다.중기 시론김기림의 초기시론이 로맨티시즘의 극단적 부정을 통한 과학적 시론의 확립에 있었다면, 중기는 우리 근대시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제시되는 전체주의 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초기 시론에서부터 김기림은 시를 내용과 형식, 즉 사상과 기술의 분리가 아닌 통일체로 시를 이해하려고 했다. 이러한 생각은 그의 시론 및 에서 드러나는데 이는 김기림의 초기 주지적 시론이 전체주의 시론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양상을 띠고 있다.전체주의 시론은 김기림의 시론 곳곳에서 제시되고 있는데 에서 다음과 같은 형태로 모습을 보인다.이러한 ‘아나르시(anarchy.무정부상태)’의 상태에 문학도 사람도 그렇게 오랫동안 견디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윽고 문학은 인간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었고, 심오한 ‘휴머니티(인간성)’위에 문학의 모든 분야를 새로이 건축하려는 욕구가 나타나고야 말 것을 우리는 믿었다. 그것은 광범하고 또한 전체적인 새로운 ‘휴매니즘’의 문명비판의 태도를 확립하고 그 위에 모든 문학현상을 통일할 길이었다.)이러한 논의는 그의 에서 좀 더 두드러지는데 그는 이 글에서 ‘로맨티시즘’과 ‘상징주의’를 감정의 표현이라는 흐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로맨티스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견지한다. 서구의 동향에 민감했던 그는 서구에서 나타난 정치에 대한 관심을 어떤 방식으로 시론으로 수렴하는가의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그는 에서 ‘모더니즘과 사회성의 종합’으로 발전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는 이라는 시론에서 나타난다.1930년대 직전의 경향시는 암만해도 내용 편중에 빠졌던 것 같고 그것이 기교를 의식하고 내용과 기교를 통일한 한 전체로서의 시에 도달하는 것은 오히려 그 뒤의 과제가 아니었던가 한다. 나는 물론 右로부터 기울어지는 전체성의 선을 그려보았다. 경향시가 만약에 금 후 전체성의 선을 좇아서 발전을 꾀한다고 하면 그것은 물론 좌로부터의 선일 것이다. 이 두선이 어떠한 지점에서 서로 만날까, 또한 반발할까는 그 뒤의 과제다경향시는 좌에서 우로, 모더니즘은 우에서 좌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 휴머니즘과 동거하게 된 전체성 시론의 실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체주의 시론은 인민전선의 세계사적 감각(보편성)을 한국적 상황(특수성)에 맞게 김기림이 자신의 시론에서 수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후기 시론후기로 넘어오면 풍자에 대한 그의 관심이 삶에서부터 정치성으로 옮겨감으로써 사회에 대한 좀 더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발언을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음악성과 회화성, 시간과 공간, 예술성과 사회성, 전체와 부분 등이 하나의 전체 속에서 유기적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관점에서 김기림은 "전체로서의 시"를 주장한다. 특히 문학과 사회의 조화에 대한 전체시론의 주장은 당대 문학의 두 진영에서 예술성과 사회성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예술성과 사회성을 접합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문단적인 문제로 등장하여 해결방안이 강구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해방 이후 혼란한 문단계에서 좌우익으로 전전한 김기림은 좀 더 객관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할 필요를 느꼈다. 과학에 대한 관심은 이미 그의 초기 시론 초기부터 보이던 것으로 한때 나타났던 기계 문명에의 경도 등된다.
    인문/어학| 2011.06.22| 13페이지| 2,000원| 조회(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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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림의 시론과 근대성
    김기림의 시론과 근대성《목차》1.서론2.본론1)초기 모더니즘시론2)전체시론(1)기교주의 논쟁(2)전체주의 시론3)과학적 시학4)근대성4. 결론0. 서론한국 모더니즘은 30년대 초기의 역사적 상황과 문단적 추세의 변화에 따라 제기된 새로운 문학의 활로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추진된 흐름이다. 30년대 초의 시단의 사정은 프로시의 침체와 해외문학파의 대두로 인해 새로운 시운동의 필요성이 절실히 요구되던 시기였다. 특히 프로시의 도식주의에 의한 비판적 자각이 시단에 팽배해져서 시 자체의 미학적 문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었고, 혼미를 거듭한 20년대 시단의 극복이라는 과제 또한 안고 있었다. 따라서 전대의 감상적 낭만시와 프로시의 편내용주의에 대한 부정을 주장한 김기림의 등장은 우리 문학사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우리는 이번 발표에서 김기림의 1930년대 시론을 세 가지로 분류하여 조사해 보고 그 속의 근대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1. 본론1) 초기 모더니즘 시론김기림의 초기시론은 우리 시단의 전근대적 요소를 불식하고, 서구문명을 받아들임으로써 서구와의 관계에서 동시성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전대의 한국시를 부정하면서 근대성을 구현하기 위한 모더니즘시 운동에 앞장서고 있었다. 그는 새로운 것, 현대적인 것이 서구에 있으며, 당대 조선이 일제 식민지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도 전적으로 서구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당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현대문명의 징후를 느끼며, 이것의 공급처인 서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야말로 당대 조선이 후진사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임을 강조하면서, 서구문명의 충격에 부합하는 새로운 문학적 장치로 모더니즘을 제기한 것이다.그의 시론이 논리적 근거를 확보하면서 본격적인 출발을 보인 것은 「시와 인식」부터인데 그는 이 글에서 동시대의 시대정신(이데)의 양식화를 통한 시의 모더니티 실현문제를 제기하였다.시인은 그가 위치한 시대-즉 과거로부터 미래로 향하는 특정한 시간성-는 어떠한 는 시에 가장 중요한 요소요, 오늘의 시인과 전대의 시인을 구별하는 척도가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가 내세우고 있는 이 주지적 방법이 다음으로 살펴볼 그의 창작방법론상의 요체가 되었다.그가 시의 모더니티 확보를 위한 창작방법론의 과제로 내세운 것은 시의 건강성 추구와 언어 가치의 중시였다. 시의 건강성 확보 문제는 김기림의 초기 시론의 중요한 목표였다. 그가 시의 건강성 확보를 위해 내세운 창작 방법론상의 과제는 다음과 같이 살펴볼 수 있다.첫째, 그는 시의 건강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의 감상성을 부정하고 배격해야 한다.’라고 보았다. 그는 전대의 시가 감상적, 낭만적인 경향이었던 것을 비난하면서 이러한 감상주의 경향이야말로 전근대적이고 반지성적일 뿐만 아니라 예술 이전의 상태라고 보았다. 그는 한국시에 나타난 감정주의적 태도를 시의 위기요 혼돈으로 인식하고, 이러한 시의 건강성은 시인의 지적 활동에 의해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시(제작이 필한 작품으로서)는 애매성과 감상성을 배제함으로써 명랑성에 도달할 수 있다. 그것은 시인의 꾸준한 지적 활동에 의하여 얻을 수 있는 일이다.통제되고 계획된 질서 이외에 마저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으면 그 부분이 애매성을 가져온다. 또한 시를 감정에게 맡겨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감정은 늘 혼돈하려고 하고 비만하려고 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 감정의 비만이 다시 말하면 감상이다. 시를 이러한 비대증에서 건져내서 그것에게 스파르타인과 같은 건강한 육체를 부여하는 것이 오늘의 시인의 임무다.)그가 부정하고 배격하는 센티멘탈리즘은 음울, 패배감, 은둔, 탐닉이며, 그는 이러한 감상성의 대립개념으로 명랑성(건강성)을 내세우고, 지성의 개입에 의해 건강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감상주의의 위험에서 벗어나는 길은 감정의 지적 통제를 통하여 가능하며, 시인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시의 건강성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시의 건강성이란 지적 활동을 거친 후 획득할 수 있는 것으로 그한 그의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의 글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말의 음으로서의 가치, 시각적 영상, 의미의 가치, 또 이 여러 가지 가치의 상호작용에 대한 전체적 효과를 의식하고 일종의 건축학적 설계 아래에서 시를 썼다. 시에 있어서 말은 단순한 수단 이상의 것이다. 모더니즘은 이리하여 전대의 운문을 주로 한 작시법에 대항해서 그 자신의 어법을 지어냈다. 말의 함축이 달라졌고 문명의 속도에 해당하는 새 리듬을 물결과 범선의 행진과 기껏해야 기마행렬을 묘사할 정도를 넘지 못하던 전대의 리듬과는 딴판으로 기차와 비행기와 공장의 폭음과 군중의 규환을 반사시킨 회화의 내재적 리듬 속에 발견하고 또 창조하려고 했다.)오늘의 시인은 인공적이고 외면적인 부자연한 리듬에는 일고도 보내지 않고 언어의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시적 관계를 발견할 것이다. 그래서 새로운 시는 비로소 내면적인 본질적인 리듬을 담게 될 것이다.)현대시인들은 새로운 시대의 사고와 감각에 합당한 리듬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위에서 언급된 “회화의 내재적 리듬”이란 자유시의 내재율을 말하는 것으로, 그래서 그는 정형률에 얽매인 전통시를 거부하고, 현대의 일상적 회화체의 시를 내세웠던 것이다. 그가 강조한 자유시의 내재율은 동시대의 시대정신에 가장 적응한 양식화된 리듬인 것이다.다음으로 시의 회화성 문제에 대한 그의 태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그리하여 20세기의 시에서 음악성을 구축한 회화성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대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났는가.1.문자가 활자로써 인쇄 될 때의 자형 배열의 외형적인 미. 물론 시가 단순히 낭독되지 않고 인쇄되어 읽혀지기 시작한 뒤에 활자로서의 형태미가 시의 새로운 속성으로 등장한 것이다. (···) 그러나 우리는 이 포말리즘(활자의 외형적 형태미만을 추구하는 극단의 시파)에 어떠한 정류의 시간적 가치는 부여할지언정 그것은 전면적으로 긍정할 수는 없다. 왜 그러냐 하면 문자의 활자로서의 형태미는 어디까지든지 시의 우연적 미이며 본질적인 것은 아닌 까닭이다.2.이다. 그러한 전테로서의 시는 그 근저에 늘 높은 시대정신이 연소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이와 같은 김기림의 기교주의에 대한 논의와 기교파의 세력형성이 기교주의 논쟁 발단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김기림은 시의 음악성이나 회화성에 가치를 두고있는 순수시와 형태시에 대하여 비판하며, 그것들은 기술의 일부면에 지나지 않는 것을 추상해서 시를 편향화하여 시의 본질을 상실하고 있음을 지적헸다. 그리고 김기림은 이 글을 통하여 시인이 갖추어야 할 시대의 정신에 대하여 관심을 촉구하고자 하였다.그러나 이에 대하여 임화는 정지용, 김기림, 신석정 등의 시인들을 기교파라고 규정하고 모두 무사상의 시들이라고 비판하였다. 임화는 이들을 모두 시적 내용보다 기교를 상위에 두는 기교주의자이고, 이들은 현실생활에 대한 관심을 회피하고 대신 현실이나 자연에 대한 감각을 노래하고 있으며 비판적 지성에 의한 질서에의 의지나 문명비판이 실상은 인테리겐치아류)의 소비적 취미와 감각적 심미성에 그치고 있음에 그결과 관조자의 냉철한 이상을 표현하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한다.임화의 글이 발표된 직후 박용철은「을해시단총평」)을 통해 모더니즘 시와 프로시에 대한 반론을 펼치고 있다. 그에 따르면, 모더니즘 시란 세계 문단의 풍조에 기대어 새로움에 대한 의식적인 탐구를 시도하고 있지만 실상은 ‘참신한 의상’과 ‘신기한 분장’에 집착할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표제와 사상을 중시하는 프로시는 시적 기법과 응축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시를 한낱 설명적 변설로 전락해 시켜버렸다고 비판한다. 박용철이 주장하는 시의 최고 경지란 ‘영감에서 오는 생리적 필연의 진실’에 의해 창작되는 시를 뜻한다.한편 김기림은 「시인으로서의 현실에의 적극 관심」)을 발표하여 임화의 지적처럼 기교파의 세력이 압도하고 있는 상황을 인정하고, 파시즘적 상황에서 1935년에 파리에서 열린 국제작가회의의 내용을 들어 작가들이 현실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을 촉구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시의 발전 방향으로 문명이 인간과 육체의 협동에 의하여 생명적인 것에로 양양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고전주의나 로맨티시즘의 일방적 고조나 부정이 아니고 그것들의 종합에 의하여 도달할 것이나 아닌가 생각한다.)김기림에 있어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결합이 가능한 것은 그의 문학론이 처음부터 인생을 위한 예술이었다는 것과 그가 주장하는 주지주의는 예술을 제작하는 태도로서 예술 작품을 의식적이고 계획적으로 제작하는 주의이기 때문이다. 이렇기 때문에 그는 인간이 상실된 시대에 인간성을 찾는 수단으로 지성적 태도를 요구했던 것이다.)김기림의 이런 지성적인면은 주지주의의 지성을 가장 기본적인 수준에서 받아들이고 여기에 계급사관을 결합시켰고 볼 수 있다. 즉 과거의 시인을 비롯한 예술가가 지배 계급의 향락을 위해 봉사했다고 단언하고는 현재의 예술가는 “일하고 있는 사람과 일의 미”를 추구해야 함을 역설하였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의 생활 자체는 둔중하지만 그들이 참여하는 기계의 세계는 오늘날 전문명의 역학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리듬도 민중의 일상언어의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발견하는 미와 탄력과 조화에서 발견해야 하며, 물론 이런 시를 창작함에 있어 기본적으로 지성적 태도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김기림이 자신의 시론에서 “전체로서의 시”라는 말은 거론한 것은 「현대시의 기술」에서이다. 그는 “현대시의 기술을 회화성으로 보면서 이미지를 추구하는 신산문시를 제창하고, 시가 음악성만을 강조하는 것은 병적이며 시인은 선인들의 노력에 의하여 발견한 새로운 방법들을 종합하야 한 개의 전체로서의 시를 파악하여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김기림의 진술이 기술적인 면에서의 종합이라고 이해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전체로서의 시가 기술의 종합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김기림은 기술에 대한 “능동적인 시정신과 그리고 또한 불타는 인간 정신과 함께 있지 아니하면 아니된다”.)라고 하여 기술과 인간정신의 결합을 주장하였다.그는 이러한 인
    인문/어학| 2011.06.22| 13페이지| 2,000원| 조회(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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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꾀꼬리의 [-이], 호랑이의 [-이] 형태소 차이 분석
    꾀꼬리의 [-이], 호랑이의 [-이]형태소 차이 분석목차1. 서론1.1 연구 목적1.2 연구 방법2. 본론[-이]로 나타나는 어근의 유형2.1 소리로 나타나는 [-이]2.2 다르게 나타나는 [-이]3. 결론1. 서론1.1 연구 목적동물의 이름들을 살펴보면 그 이름들이 다양한 유형으로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생김새를 보아 이름을 지으며, 울음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흉내 내어 지으며, 동물의 색깔, 행동 등에서 이름이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나오는 동물의 이름들 중에는 파생형 접미사 [-이]가 붙는 이름들이 많이 있다. 여기에 연구의 목적이 있는데, 이 파생형 접미사 [-이]를 유형별로 분류해보고, 서로의 상관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동물의 이름 중 꾀꼬리, 뻐꾸기, 개구리, 따오기, 부엉이, 두꺼비 등에서 나타나는 형태소[-이]는 꾀꼴+-이, 뻐꾹+-이, 따옥+-이, 두껍+-이 등 동물의 울음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 + [-이]로 나타는데 호랑이, 고양이, 원숭이, 풍뎅이, 너구리 등의 [-이]는 그렇지 않다. 두 형태의 [-이] 형태소를 같은 유형으로 볼 수 있을 지 알아보는 것이 연구의 목적이다. 또한 다르다면 그 차이를 기술해보도록 한다.1.2 연구 방법다양한 동물들의 이름을 찾아본 후 파생형 접미사 [-이]가 나타나는 상황에 대해 알아보고, 그 상황에 따라 분류하여 기술한 후, 서로를 비교해 본다. 이때, 동물이름 중 의성어 +[-이]로 나타나는 [-이]와, 다른 상황에서 나타나는 [-이]가 과연 한 형태소로 볼 수 있을지 알아보도록 하겠다. 본고에서 쓰인 동물의 이름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자연도감 동물 편을 참고하여 3,599건의 정보에서 추출하였다.2. 본론2 +[-이]로 나타나는 어근의 유형2.1 소리로 나타나는 [-이]동물의 울음소리를 그대로 따온 동물들을 보면 아래와 같다.울음소리에서 따온 동물 이름꾀꼬리, 뻐꾸기, 따오기, 두꺼비, 뜸부기, 맹꽁이, 부엉이, 매미, 기러기, 베짱이, 두루미, 개구리, 찌르레기, 개개비, 조롱이위 동물들의 이름을 보면 파생형 접미사 [-이] 가 동물의 울음소리를 흉내 내는 말 뒤에 붙어 그것이 그대로 동물의 이름이 된 경우인 것을 알 수 있다. 형태소를 나누어보면꾀꼴+-이, 뻐꾹+-이, 따옥+-이, 두껍+-이, 뜸북+-이, 맹꽁+-이, 부엉+-이 맴+이, 기럭+이, 베짱+이, 두룸+-이, 개굴+-이 찌르렉+-이, 개갭+-이, 조롱+-이로 볼 수 있다.파생형 접미사 [-이]와 결합하는 어근은 동물의 울음 흉내말 꾀꼴꾀꼴, 뻐꾹뻐꾹, 따옥따옥, 맹꽁맹꽁, 맴맴, 개굴개굴 등에서 따왔다고 할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파생형 접미사 [ -이]의 의미를 분석해보면 어떠한 소리로 우는 동물 정도로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이와 유사한 예로 꿀꿀이, 멍멍이, 야옹이, 어흥이, 짹짹이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미 이 단어는 고유한 동물이름으로 돼지, 개, 고양이, 호랑이, 참새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파생된 말이다. 이 단어들은 유아기에 어휘 습득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사용되는 말로서, 동물의 울음소리를 어근으로 하는 파생형 접미사 [-이]의 활용방법을 잘 보여주는 예로 꼽을 수 있다.2.2 다르게 나타나는 [-이]하지만 파생형 접미사 [ -이]가 늘 동물의 울음소리 뒤에 붙는 것은 아니다. 다른 상황에서 붙는 파생형 접미사 [ -이]는 아래와 같다.고양이, 호랑이, 너구리, 고라니, 오소리, 거북이, 코끼리, 원숭이, 지렁이, 곱등이, 달팽이, 방아깨비, 빨갱이, 밴댕이, 골뱅이, 살쾡이, 양진이, 오목눈이, 나무발발이, 곤줄박이, 풍이, 땡땡이, 반딧불이, 물맴이, 가시꺽정이, 따개비, 민숭이, 우렁이, 구렁이, 진드기, 소똥구리, 무당벌레붙이, 깜정이, 전갱이, 매퉁이, 앨퉁이, 꺽정이, 씬벵이, 군평선이, 두우쟁이고양+-이 호랑+-이 너굴+-이 고란+-이 오솔+-이 거북+이 코낄+이 원숭+-이, 지렁+-이, 곱등+-이, 달팽+-이 방아깹+-이, 빨갱+-이, 밴댕+-이, 골뱅+-이, 살쾡+-이, 양진+-이, 오목눈+-이, 나무발발+-이, 곤줄박+-이, 풍+-이, 땡땡-+이, 반딧불+-이, 물맴+-이, 가시꺽정+-이, 따갭+이, 민숭+-이, 우렁+-이, 구렁-+이, 진득+-이, 소똥굴-+이, 무당벌레붙+-이, 깜정+-이, 전갱+-이, 매퉁+-이, 앨퉁+-이, 꺽정+-이, 씬벵+-이, 군평선+이, 두우쟁+-이형태소를 분석해보면 위와 같이 되는 데 파생형 접미사 [-이]가 붙어 동물의 이름이 된다는 것은 같으나, 그 조건이 다르다. 그 조건들을 분석해보면 아래와 같다.a. 동물의 모습에서 따온 동물이름코끼리, 빨갱이, 오목눈이, 곤줄박이, 땡땡이, 깜정이, 물매미코끼리는 명사 ‘코’와 형용사 ‘길다’의 어간 ‘길’에 파생형 접미사 [-이]가 붙어 코끼리가 되었다. 나머지 동물들도 이와 같이, 어근 빨강이 움라우트 현상으로 빨갱으로 바뀌어 [-이]와 결합한 빨갱이, 눈이 오목하다는 뜻의 어근 오목눈과 접미사 [-이]가 결합하여 오목눈이, 깜장의 잘못된 표현 깜정을 어근으로 하여 결합한 깜정이 식으로 이름이 붙였다. 물매미는 조금 특이한데 매미라는 동물이름은 원래 동물의 울음소리 맴맴에 접미사 [-이]가 붙어 매미가 되었다. 하지만 물매미는 울음소리가 없으며 단지 매미와 닮은 것이 물에 산다하여 이름이 물매미로 지어졌다. 이렇듯 동물의 색이나 줄무늬, 생김새 등에서 따온 어근에 파생형 접미사 [-이]가 붙어 이름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b. 동물의 행동에서 따온 이름나무발발이, 무당벌레붙이, 소똥구리, 방아깨비어근 발발이의 뜻은 행동이 가볍고 여기저기 잘 쏘다니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나무에서 가볍게 잘 돌아다닌다는 뜻으로 나무발발이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당벌레붙이는 어디에 잘 붙어 있는다 하여 ‘붙’에 파생형 접미사 [ -이]가 붙어 붙이가 되었다. 소똥구리는 단어 ‘소똥’에 굴리다의 어간 ‘굴’에 파생형 접미사 [ -이]가 붙어 이름이 만들어졌다. 방아깨비는 뒷다리를 잡고 있으면 몸을 위 아래로 흔든다. 이 모습이 마치 방아를 찧는 모습과 흡사하여 방아깹+이가 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이렇게 동물의 행동에서 의미를 가져와 어근을 형성하고 파생형 접미사 [-이]를 붙여 동물의 이름을 형성하기도 하였다.c. 생선이라는 뜻의 이름빨갱이, 밴댕이, 양진이, 가시꺽정이, 깜정이, 전갱이, 맬퉁이, 앨퉁이, 꺽정이, 씬벵이, 군평선이, 두우쟁이이 생선들의 이름들은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빨갱이, 깜정이처럼 생선의 모습에서 이름을 따온 것도 있지만 밴댕이, 양진이, 맬퉁이, 앨퉁이 등 의미를 유추하기 힘든 것들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남해 지역, 경남 쪽의 물고기 이름에 많이 붙여져 있음을 알 수 있는 데 돌이, 영숙이 등 사람이름 뒤에 붙는 접미사 [-이]처럼 생선의 이름에 붙은 것이라 할 수 있다.이렇듯 생선들의 이름들 중 파생형 접미사 [-이]와 결합한 유형이 많이 존재하고 이것이 물고기 이름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d. 한자에서 온 이름호랑이, 지렁이, 원숭이호랑이라는 명칭은 호(虎)와 랑(狼)이 결합하여 호(虎)가 지니고 있는 용맹성과 ‘랑’(狼)이 지니고 있는 슬기로움의 속성을 지닌 동물을 지칭하기 위해 호랑(虎狼)이란 단어가 만들어졌으며 이에 파생형 접미사 [-이]가 결합하여 현재의 호랑이가 됐다고 한다.
    인문/어학| 2011.06.22| 5페이지| 1,500원| 조회(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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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후기 문화지평과 시가문학의 흐름
    조선후기 문화지평과시가문학의 흐름Ⅰ. 서론Ⅱ. 본론1. 시대적 배경2. 조선후기 문화의 특징3. 조선후기 시가문학의 특징1) 가사2) 사설시조3) 판소리4) 민속극5) 잡가Ⅲ. 결론※ 참고문헌Ⅰ. 서론조선 전기까지의 문화는 철저히 양반 중심의 문화였다. 당시의 문학과 예술의 대부분은 양반 지배층이 그 저자이며 향유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전기의 문화를 양반 중심 문화라고 하고 이와 구별하여 조선 후기의 문화를 서민 중심 문화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물론 조선 전기에 서민 문화가 존재하지 않거나 조선 후기에 양반 문화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문화사의 흐름은 전기에 양반층을 중심으로, 후기에 서민층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조선 전기에 양반 중심 문화가 발생한 것은 당시 조선 건국의 주도세력이며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모든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양반층이 왕성한 세력을 펼치던 시기이며 그들에 의해 서민층이 예속되어 있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교하여 조선 후기에는 상공업이 발달하고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면서 양반·서민층에 각각 계층 분화를 가져오고 서민 계층에서도 양반 계층의 경제력을 뛰어넘는 서민들이 나옴에 따라 그동안 양반층에 예속되어 있었던 서민층이 자유로워지면서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문화를 마음껏 펼치게 되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조선 후기에 서민 문화가 발달하고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게 된 것이다.Ⅱ.본론1.시대적 배경일반적으로 조선후기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고 난 17세기 중엽부터 쇄국에서 개항으로 역사적 대전환을 맞던 19세기 중엽까지 약 200년의 기간을 가리킨다. 전후 7년간에 걸친 왜란은 살육, 파괴, 약탈, 방화의 참화가 거듭되던 민족의 대시련기였고, 이후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의 변모에 크게 작용하여 새로운 모습이 나타났다. 국난을 당해 각지에서는 조국과 향토를 수호하려는 의병운동이 일어났고, 이순신, 권율 등의 구국활동으로 민족의 위기를 가까스로 극복할 수 있었다. 이러한 왜란으로 조선사회는 큰 피해를 보았고, 조선후기 문화의 특징(1)조선 후기 문화1 : 문학조선 후기 문학의 변화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로 한문소설과 전(傳)이 대중화되었으며 현실을 반영한 국문 소설이 등장하였다. 두 번째로 시조의 형식이 변형되고 파괴되었으며 작품세계가 세속화 되었다. 마지막으로 현실이 수용된 가사와 서민 가사가 형성되었다.한문소설 및 전의 변화와 국문 소설의 현실 반영조선 후기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은 기존 농본주의의 관념을 허물고 모든 영역이 상업 행위의 대상이 되도록 만들었다. 문학도 그러한 현실에 예외가 아니었고, 현실의 변화를 수용하는데 가장 민감했던 서사문학에서 큰 변화가 나타나게 되었다.먼저 사대부들의 담당 장르였던 전(傳)이 새롭게 변화된 현실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옥의 「유광억전」은 과시(科時)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다가 그것이 탄로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유광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상업주의에 대상으로 ‘마음’까지 팔았던 유광억을 주인공으로 선택한 것은 작자가 가졌던 당시 세태에 대한 문제의식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전(傳)의 이러한 변화는 영웅적이고 교훈적 인물에 대해 쓰여져 오던 조선 전기에 비해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것을 반영하기 시작하였음을 알려준다. 연암 박지원은 「마장전」,「광문자전」,「예덕 선생전」에서 신의를 지키는 인물로 묘사하고 사대부를 세속적 이익을 쫓는 부정적 인물로 묘사함으로써 작자가 현실에서 변화하고 있었던 하층민 계층에 주목하였음을 보여준다.양반 계층이 주로 향유하던 전(傳)에도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 것을 필두로 서사문학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조웅전」,「소대성전」,「장풍운전」과 같이 영웅의 일대기를 근간하는 하는 영웅소설이 인기를 끌게 되는데 그것은 영웅의 탁월한 활약을 통해서 문제가 극복되는 과정이 고통스런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서민층에게 보상심리를 자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양반 계층 또한 이러한 소설을 창작함으로서 서민 문화의 흐름에 동화는 현상을 보여주었다.조선 후기 서사문학 중 변화한비롯하여 조선 후기 산수화에 나타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바라보는 인간들을 화폭속에 나타내거나 혹은 제목에 바라본다는 관점을 밝혔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자연을 대상화한 결과로 볼 수 있으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일 수 없으며 자연은 대상 자체로서 관찰되어야 한다는 조선 후기의 전환된 인식의 소산을 보여준다.풍속화의 발전풍속화는 인간의 습관이나 인습, 여러 행사, 그 외 생활과정에서 나타는 일체의 현상과 실태를 표현한 것이다. 대표적인 풍속 화가는 김홍도로서 그는 「서당」,「무동」,「논갈이」,「갈쌈」,「씨름」,「기와이기」등을 통해 농촌 사회와 농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밭갈이, 추수, 집짓기, 대장간 등의 생생한 삶의 현장을 그리면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소탈하고 익살맞게 표현하였다. 또한 신윤복은 섬세하고도 세련된 필치를 구사하여 「단오풍정」,「청금상련」,「이부탐춘」등을 통해 주로 도회지 양반의 풍류생활과 부녀자의 풍습, 남녀 간의 애정을 풍자적이고 신랄하게 묘사하였다.이렇듯 조선 후기 풍속화의 발전은 사대부계급의 미의식의 변화란 측면에서 먼저 살펴볼 수 있고 상품화폐경제의 발전에 편승하여 사회경제적 상승을 성추한 중인과 서민계급이 그림의 새로운 수요층으로 등장한 현상과도 관련된다. 그림의 새로운 수요층이 된 이들은 자기들의 현실적 처지나 체험을 진솔하게 묘사하는 풍속화를 환호했을 것이고, 또 자기들이 후원하는 풍속 화가들에게 그러한 그림을 그려줄 것을 요구했을 것이다. 풍속화의 발전은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와 이러한 계급들의 미적 취향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것이라 하겠다.민화의 수요와 생산민화의 작가는 대개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무명작가라는 점에서 서민들이 미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음을 보여준다. 민화는 거의 떠돌이 화가에 의해서 그려졌는데 해, 달, 나무, 꽃, 동물 등이 주요 소재였고, 때로는 농경이나 무속의 풍속도도 소재가 되었다. 민화는 민중의 생활양식과 밀착되어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나 발상 등에는 한국적인 정서가 보다 짙게 담겨 서유규 등이 속하며, 중상 학파에는 유수원,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등이 포함된다. 또, 그들의 학문적 맥락에 따라서 성호 학파, 연암 학파로 구분하기도 한다. 성호 학파는 농촌 문제에 관심이 컸던 성호 이익의 후진들로 구성되는데, 역사의 안정복, 지리의 윤동규, 수학의 신후담, 경학의 이병휴 등이 직접 문인이고, 그 밖에 이중환, 이가환, 이벽, 권철선, 정약용 등도 그의 영향을 받았다. 이에 대하여, 연암 학파에는 연암 박지원을 따르는 학자들로 구성되었는데,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 등이 뜻을 같이 하였다. 연암 학파는 이용후생 학파, 또는 북학파에 속하기도 하였다.17세기의 실학 사상 연구의 동향17세기는 초기 실학자들이 등장하던 시기로 국제전인 정치적 격변기를 당하여 부국유민함으로써 강한 나라를 만들려는 데에 실학자들의 목적이 있었다. 이때의 대표적인 실학자로는 한백겸, 이수광, 유형원 등이 있으며 이들은 강력한 사회개혁론을 주장하였다.한백겸은 대동법시행 제안자의 한 사람이었고, 후대 실학자들의 기전론의 단서를 열었다. 그의 이기론은 유형원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그의 학문방법은 문헌고증의 실증적 방법에 기초하였다. 그는 종래의 학설이나 견해를 그대로 묵수하지 않는 그의 비판적, 실증적 학문태도와 당시 후금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한 형세와 관방의 위치를 파악해보려는 목적에 맞추어 '동국지리지'를 편찬하였다. 그는 '기전유제설' 통해 토지소유의 불평등한 현실을 개탄하고 균등한 토지소유의 이상사회를 꿈꾸었다. 후대의 실학자들이 이것의 영향을 받아 기전설을 주장하게 되었다.이수광은 '지봉집', '지봉유설', '조진무실차자'등을 저술하였는데 특히 '조진무실차자'에서 당면한 국가의 병폐를 12개 항목으로 나누어 처방을 밝히고 그 처방의 요체는 무실에 있음을 강조 하고 있다. 그 저서에는 사회기강을 바로잡고 교육제도, 과거제도, 관리임용제도, 군사제도 등을 개혁하자는 내용이 실려 있다. '지봉유설'에서는 과학기술이나 정치, 도덕, 문화일반에 관한 25개욱 심해서 두 줄 이상이 여섯 토막으로, 어느 한 줄이 여덟 토막으로 늘어난 것부터는 사설시조로 본다.길이가 길기에 ‘장시조’라고도 하고 평시조의 형식을 파괴했다고 해서 ‘파형시조’라고도 하는 사설시조는 사설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면서 극도로 집약된 표현을 흩어버리는 엉뚱한 짓을 해서 주목되며 작품 수가 만만치 않다. (‘사설’이란 말은 촘촘히 박아 넣는다는 뜻의 ‘엮음’을 다르게 일컫는 용어이다.) )이 글에서는 위에서 제시된 사설시조에 대한 간략한 소개에 이어 담당층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그리고 몇몇 작품을 통해 발견되는 사설시조의 특징을 서술함으로서 평시조와 구별되는 사설시조의 특징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사설시조의 담당층을 알아보기에 앞서 담당층의 개념을 먼저 살펴보겠다. 문학에서의 담당층이란 작품의 생산자와 향유자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지만 생산과 향유가 대부분 동일한 집단에 의해 수행되어 온 까닭에 혼동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하지만 담당층은문학작품의 생산에 더욱 직접적으로 관련된 용어인 반면에, 향유는 작품이 생산자로부터 떠난 이후 발생하는 일련의 과정, 곧 소비 단계를 중시하는 개념이고 생산 과정에 직접적으로 의존한 것이 작자층이다. 그러므로 향유와 작자, 두 개념의 한쪽에 편향되지 않기 위해 생긴 개념이 담당층이라고 할 수 있다.조선 후기에 평민(서민)의식의 성장과 사회경제적인 상황의 변화, 사회전반에서 일고 있었던 근대화로의 전환 등은 반중세적 성격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그 속에서 사설시조는 이전의 양반 중심이었던 문학의 영역에서도 평민들의 의식을 담아 낼 수 있게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이전의 시조와는 달리 평민들까지도 향유층이 되면서 거침없는 의식표현과 현실적이고 솔직한 표현들을 특징으로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세속화된 ‘님’이 드러나는 작품들시조에서 자주 등장하는 ‘님’의 존재는 원래 님의 어원이 무엇인지 자세히는 알 수 없으나 ‘主’나 ‘君’을 뜻하는 말로 『訓蒙字會』 등에 나타났는데 후기다가
    인문/어학| 2011.06.22| 14페이지| 1,500원| 조회(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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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어사 정리 일반론
    국어사 정리국어사1. 고대국어: 고대국어는 신라어로 대표 됨.1) 신라어 자료 - 이두 : 문법형태의 파악에 큰 구실.향찰 : 단어뿐만 아니라 문장의 모습까지 보여 준다는 점에서 큰 가치.2) 신라어의 음운? 자음체계 - 평음과 유기음의 대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 된소리 계열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 ‘ㄹ’도 /r/과 /l/로 구별되어 존재했을 가능성.? 모음체계 - 7모음 체계였던 것으로 추정.- 이중모음이 중세국어보다 더 많았던 것으로 추정.3) 신라어의 문법형태-주격조사로 ‘이’, 속격조사로 ‘의’, 및 ‘ㅅ’, 대격조사로 ‘ㄹ’과 ‘홀’, 구격조사로 ‘루’쓰임-처격조사로는 ‘中’, 특수조사로는 ‘ㄴ’, ‘두’ 등-관형사형어미 ‘-ㄴ’과 ‘-ㄹ’, 접속어미 ‘-고’, ‘-며’, ‘-다가’-종결어미 평서문 ‘-다’ 의문문의 ‘-고’-경어법의 선어말 어미로 주체경어법의 ‘-서-’, 객체경어법의 ‘-?-’이 쓰였음.-중세국어에서 보이는 ‘-?/?-'의 교체는 아직 없었던 것으로 추정4) 신라어와 중세국어신라어는 중세국어와 매우 흡사한 모습.신라어는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현대국어의 모체.5) 고구려어와 백제어: 고구려어와 백제어의 모습을 추정하게 해 줄만한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백제어 : 신라어와 크게 다르지 않았으리라고 추정.? 고구려어 : 수사의 형태가 신라어나 중세국어와는 다름. 고대 일본어와 일치예) 3을 ‘밀’, 5를 ‘우?’ 7을 ‘난은’, 10을 ‘덕’ 이라 했음.2. 중세국어: 10세기 초 고려왕조가 건립되던 때로부터 16세기 말 임진왜란이 시작되던 때까지.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국어라는 점 외에 현대국어의 중요한 뼈대가 이 시기에 대부분 갖추어졌다는 점에서 주목.1) 음운1-1) 소실음운? ‘ㅸ’ : 순경음이라고 불림. “입술을 가벼이 다물어 후성이 많이 섞인 소리”분포가 모음과 모음사이, ‘ㄹ’ 및 ‘ㅿ’과 모음 사이에서만 출현함으로 제약.훈민정음 창제 당시에 이미 소멸해 가는 과정에 있었던 듯.? ‘ㅿ등은 처음부터 정상적인 위치에서 쓰임.‘ㆅ,ㆀ’은 반모음 ‘j'앞에서만 나타났다.1-3) 유기음: 유기음을 가지고 있는 단어가 현대국어에서만큼 많지는 않았다.1-4) 자음체계ㅂㄷㅅㅈㄱㅎㅍㅌㅊㅋㅽ(ㅃ)ㅼ(ㄸ)ㅆㅉㅺ(ㄲ)ㆅㅸㅿㅁㄴㅇㄹ1-5) 모음체계: 중세모음 중 가장 특징적인 것은 ‘???ㆍ’였다.7모음체계.ㅣ(i)ㅡ(?)ㅜ(u)ㅓ(?)ㅗ(o)ㅏ(a)ㆍ(?)이중모음이 많았다. ㅑ,ㅕ,ㅛ,ㅠ,ㅘ,ㅝ,ㅐ,ㅔ,ㅚ,ㅟ,ㅢ 등.훈민정음 표준어 표기에는 불필요하지만 아이들 말이나 방언의 표기에 필요하면 쓰라고 ‘?’,‘?’ 두 자를 만들어 놓음.1-6) 성조체계: 중세국어는 성조언어. 방점 또는 사성점으로써 성조를 나타냈음.평성에는 아무표시도 하지않음, 거성에는 점하나, 상성은 쌍점으로 표시.평성은 저조, 거성은 고조, 상성은 처음은 낮다가 나중은 높은 소리.1-7) 모음조화: 중세국어의 음운 현상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양모음은 양모음끼리, 음모음은 음모음끼리, 중성모음은 어느 쪽 모음과도 결합가능.양 모 음ㆍ ㅗ ㅏ (ㅛ, ㅑ, ㆎ, ㅚ, ㅐ)음 모 음ㅡ ㅜ ㅓ (ㅠ, ㅕ, ㅢ, ㅝ, ㅔ)중성모음ㅣ한 단어, 명사와 조사, 어간과 어미, 어기와 접미사 사이 등에서 나타남.1-8) 어두자음군: 중세국어 음운 현상에서 볼 수 있는 특징적인 현상.어두에 자음군이 올 수 있는 현상.어두자음군의 ‘ㅂ’은 실제로 제 음가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현대국어의 ‘좁쌀, 입쌀, 햅쌀’등의 ‘ㅂ’이 이들 ‘ㅂ’의 잔재로 해석.어두자음군은 17세기부터 점차 된소리로 바뀌어 갔다.1-9) 음절말 자음: 중세국어에서는 ‘?,ㅪ’처럼 ‘ㄹ’로 시작되는 자음군은 두 자음이 다 발음되었던 것으로 추정.음절말에 올 수 있는 자음이 ‘ㄱ, ㄴ, ㄷ, ㄹ, ㅁ, ㅂ, ㅇ’에 ‘ㅅ’이 하나 더 쓰임.그러나 이것은 표기에서의 규칙이었을 뿐일 것으로 추정.1-10) i, j 앞에서의 자음의 분포: 현대국어에서는 모음‘ㅣ’나 반모음 ‘j’앞에 분포되기 어려운 자음들이 꽤 있다.그러나 중세국어에서는 이 자리된 복합어였음.오늘날엔 접두사인 ‘숳’이 당시에는 명사로 쓰였음.2-2) 파생명사와 명사형: 파생명사를 만드는 ‘-?/음’은 오늘날의 ‘-음’과 기능이 같았으며 생산적이었음.다만 이들앞에 ‘-오/우-’가 결합하면 명사가 아니라 명사형이 되었다는 점 특이.예) ‘열-’에 ‘-음’이 결합된 ‘여름’은 과일을 뜻하는 파생명사인데 반하여‘여룸’은 ‘없음, 뜀’과 같은 용언의 명사형이었던 것.‘-암/엄’은 이때 이미 ‘구지람, 무덤, 주검’등의 파생명사를 만들었고‘-이’도 오늘날 이상으로 생산적이어서 ‘죽사리, 내노리’등 파생명사 만듦.의미를 덧붙이지 않으면서 명사 끝에 연결되는 ‘-이’도 넓게 쓰였다.현대국어에서는 관형사형의 어미로만 쓰이는 ‘-ㄴ’과 ‘-ㄹ’이 중세국어에서는 명사형 어미로 쓰였다.2-3) 사역 및 피동의 접미사: 접미사 ‘-?-’의 존재. 형태도 특이하고 다른 접미사에 의해 파생된 사역형이 있음에도 그것과 의미가 구별되는 또 하나의 사역형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매우 특이.예) ‘살-’에서 파생된 ‘살이-’는 어떤곳에 거주하게 한다는 뜻.‘사?-’는 목숨을 살린다는 의미.‘-?-’에 의해 사역동사를 파생시키는 동사는 어간말음이 모두 ‘ㄹ’. ∴ ‘사?-, 이?-’등은 사역형의 어간일 수도 있지만 ‘살-, 일-’의 활용형일수도. 이들은 성조에 의하여 구별. 활용형에서의 어간은 상성, 사역동사의 어간으로서는 평성.현대국어에서는 구별되지 않는 ‘르’변칙의 어간들이 당시에는 활용에서나 파생에서 차리를 일으킴.2-4) 파생형용사 (및 부사) 접미사: 파생형용사를 형성하는 접미사 중 특기할 만한 것으로‘-ㅸ/?/브-’등 이 있다.파생부사를 형성하는 접미사로는 현대국어에서 볼 수 있는 ‘-이-’와 ‘-히-’ 및 ‘-오/우-’가 가장 널리 쓰임.2-5) 격조사: 주격조사로는 ‘이’가 쓰이고 ‘가’는 16세기 후반에 가서 나타나기 시작.‘이’의 표기 규칙1) 명사 말음이 자음일 때는 분철하여 표기하거나 연철하여 표기.2) 모음일 때는 그 모음 끝에 결합시켜 표기, 그,너’의 속격형은 주격형과 마찬가지로 ‘내,네’였는데 성조에 의해 구별.속격형은 ‘내,네’가 모두 평성. 주격형은 ‘내’는 거성, ‘네’는 상성.‘로/?로/으로’는 현대국어에서와 마찬가지로 방위 나타내기도 하고 구격조사로 쓰이기도 함.‘와/과’가 공동격조사로 쓰인 것도 현대국어에서와 같다. 다만 명사말음이 ‘ㄹ’일 때에 ‘와’가 쓰였던 점이 특이.호격조사로 ‘아/하’가 쓰였음. 윗사람에게는 ‘하’ 아랫사람이나 평교간이면 ‘아’씀.모음 뒤에서도 ‘야’가 아닌 ‘아’가 쓰인 것도 오늘날과 다름.2-6) 복합격조사와 특수조사: 현대국어의 여격조사에 해당하는 중세국어의 조사는 모두 속격조사 ‘?ㅣ’ 및 ‘ㅅ’에 ‘게, 그에, 거긔’등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복합조사.‘?ㅣ’에 결합된 형태들은 평칭명사 다음에 쓰이고 ‘ㅅ’에 결합된 형태들은 존칭명사 다음에 쓰임.오늘날의 ‘더러’에 해당되는 조사도 대격조사의 ‘ㄹ’에 ‘?려’가 결합된 복합조사.중세국어의 특수조사는 단어에서부터 문법화된 것들이 많았음.오늘날의 ‘야/이야’의 전신으로서 16세기 후반부터는 이미 ‘야/이야’가 나타나기 시작. 비슷한 기능을 하는 특수조사로 ‘곳/옷’도 있었다.2-7) 의도법 선어말 어미: 중세국어의 활용도 선어말어미와 어말어미에 의해 수행.중세국어의 선어말어미로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오/우-’. 주로 주어가 1인칭 일 때 쓰이면서 주체의 의도를 드러내주는 의도법어미라고 이해 됨.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자취를 감추어 『소학언해』에 오면 볼 수 없게 됨.2-8) 경어법 선어말 어미: ‘?/?’이 특징적.‘-시-’는 주체가 존귀한 사람일 때 쓰이는 데 반해서 ‘-?-’은 주체보다 더 존귀한 사람이 있어 그 사람에 대한 주체의 겸양을 보여야 할 경우에 쓰였음.중세국어에서는 상대경어법도 선어말어미에 의해 실현 됨. ‘-이-’가 대표적인 것으로서 상대방을 가장 높이는 어미로 쓰였다.2-9) 시제의 선어말어미: 현대국어에서와 마찬가지로 중세국어에서도 시제는 선어말어미에 의해 실현.‘-리-’는 오늘날과 마ㄴ/는’의 전신일 것.중세국어에서는 ‘-?-’가 현재시제를 활발하게 담당하고 있었음.2-10) 의문문어미: ‘예/아니오’ 물음이냐 아니면 의문사를 동반하는 물음이냐에 따라 문말의 어미가 ‘-가’와 ‘-고’로 또는 ‘-녀’와 ‘-뇨’로 구별되어 쓰임.2-11) 특수 교체: 용언에 한하여 본다면 오늘날은 다같이 ‘르’변칙활용을 하는 다너들이 당시에는 ‘달아’형과 ‘몰라’형으로 갈려 있었던 것.‘달아’형에 속하는 단어로는 용언으로 ‘고?-, 기르-, 니?-, 두르-, ??-’ 등이 있고 명사로는 ‘??, 시르, ??, 쟈?’ 등이 있다.‘몰라’형에 속하는 단어로는 용언으로 ‘??-, 므르-, 부르, 흐르-’등이 있고 명사로는 ‘??’가 있다.‘달아’형의 교체는 당시 연쳘 표기가 지배적이었던 문헌에서도 이들만은 ‘놀을, 달아,닐어’처럼 분철표기 하였다는 점에서 주목을 요함.3) 어휘3-1) 고유어: 중세국어의 어휘로서 중국으로부터의 차용어에 밀려 오늘날에는 사어가 되어 버린 우리 고유어가 상당히 많다.예) ‘온,즈믄’ - ‘일백’과 ‘일천’으로 대체‘?다가’ - ‘만일에’에 밀려 자취를 감춤.3-2) 모음전환에 의한 어의분화: ‘?다(古)’와 ‘늙다(老)’, ‘?다’와 ‘믉다’, ‘?다’와 ‘븕다’ 등.3-3) 어의변화: 어형은 비슷하나 의미가 오늘날과는 많이 달랐던 단어들도 많았음.‘?갸’는 오늘날의 ‘자기’의 고형으로 간주되어 왔으나 ‘?갸’는 3인칭 재귀대명사 였다.‘즁생’이 오늘날 ‘짐승’으로 어형뿐만 아니라 의미가 축소된 일도 널리 알려진 일.‘어엿브다’가 ‘예쁘다’로, ‘싁싁하다’가 ‘씩씩하다’ 등으로 어의변화를 일으킨 예가 무수히 많다.3-4) 차용어: 차용이란 외국어의 어떤 요소를 자기 언어의 일부로 삼는 일을 말함.중국어로부터의 차용어는 당시 문헌에서 한자로 표기되는 것이 원칙. 그러나 예외적으로 한글로 표기한 것들도 꽤 있었다.몽고어로부터의 차용어는 말, 매에 관한 어휘가 많았다.3. 근대국어: 임진왜란 이후부터, 즉 17세기 초부터 현대국어가 시작 추정.
    인문/어학| 2011.06.22| 8페이지| 1,000원| 조회(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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