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인 관점으로 조명한「춘향전」의 감상장작불 19기 이 서 진‘춘향전’은 그 작품이 쓰인 연대와 작자가 확실치 않지만, 조선조 이래로 지금까지 50여종의 이본과 200여명의 논자에 의해 600여 편을 상회하는 논문의 수에 있어서도 그 문학사적의의나 주제의식의 역사적 의미 등은 실로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많은 이들이 춘향전을 두고 이몽룡과 성춘향의 애절한 로맨스와 열녀 춘향, 그리고 포악한 변 사또를 떠올린다. 이번에 나는 그동안의 ‘춘향전’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직접 책을 읽으며 새로운 관점에서 생각해 보았다. 내가 결론 내린 ‘춘향전’은 이몽룡과 성춘향의 순수하고 애절한 로맨스도 아니요, 변 사또가 악의 축이라는 것도 아니었다.성춘향이라는 인물은 전형적인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이중적인 인물이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란 여성이 일시에 자신의 인생을 화려하게 변모시켜 줄 남자를 기다리는 심리적 의존 상태를 지칭하는 말로써 주로 자신의 능력과 인격으로 자립할 자신이 없는 여성에게 나타나며, 남성에 대한 의존성·수동성·자기 비하의 태도에 기인한다. 춘향이가 그네를 뛰는 모습을 보고 이몽룡이 방자를 보내어 꾀려 할 때 춘향이는 한번 튕긴다. 하지만 춘향은 몽룡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하다. 이는 방자의 말에서 짐작할 수 있다. 그 말이란 “계집아이 행실로 그네를 뛸 양이면, 네 집 후원 담장 안에 줄을 매고 남이 알까 모를까 은근히 그네를 뛰는 게 도리에 당연함이라. 또한 이곳을 논하자면, 광한루 멀지 않고,(중략)여기에 그네를 매고 네가 뛸 제, 외씨 같은 두 발길로 흰 구름 사이로 노닐 때에 홍상 자락이 펄펄, 백방사 속곳 가래가 동남풍에 펄렁펄렁, 박속같은 네 살결이 흰 구름 사이로 희뜩희뜩, 도련님이 보시고 너를 부르셨지” 이다. 또한 자신은 관기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도 처음 만난 이몽룡과 단지 구두혼인만 치르고 몸을 섞었다는 점에서 그 이중성은 증명 된다. 이몽룡의 부인이 될 요량으로 신분 상승을 도모하되 결코 서두르지 않는 치밀함도 보인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춘향전’에서의 변 사또는 가장 큰 죄인이지만 그는 희생양에 불과하다. 그의 죄라는 것을 판단하기에 작품 속의 근거들은 미흡하다. 그의 입장으로서는 당연한 권리로 춘향의 수청을 요구한 것이다. 춘향은 정식으로 양반의 정혼자가 아니었으며 관기의 딸 성춘향이었기 때문에 그 요구는 타당한 것이었다. 관기의 딸은 당연히 관기였던 그 당시 상황에서 볼 때 관기가 어째서 수청을 거부하는가에 대한 그의 노여움은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변 사또는 춘향을 결코 강제적으로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문을 하긴 했어도 끝까지 춘향의 의견을 존중하여 스스로 수청 들기를 원했다. 그 때문에 성춘향도 수청을 들지 않겠노라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지금까지 알던 악의 축 변 사또, 그리고 천한 신분의 춘향이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 이몽룡은 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 몽룡 역시 그네를 뛰던 춘향의 외모에 반하여 수작을 부렸으며 양반의 자제로서 유희를 즐기고자 함이었다. 아름다운 사랑의 결말 역시 순수한 사랑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몽룡은 암행을 하던 중에 춘향의 정절 행을 듣고 두 차례에 걸쳐 춘향을 떠본 뒤에 그제야 그 정절을 춘향의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변 사또에 대한 처벌 역시 권력의 남용이라 할 수 있다.‘춘향전’은 춘향과 몽룡의 자유연애사상과 신분상승이라는 계급타파를 보여주는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몽룡의 변 사또 응징은 공정한 심사라고 할 수 없다. 초기에 변학도는 ‘문필도 넉넉하고 인물 풍채도 활달하고 풍류에 달통하여(이하생략)’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다 좋은데도 불구하고 간혹 부리는 광기가 흠으로 되어있다. 이런 변 사또가 어떻게 그렇게 악의 축으로 한 순간 변모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변 사또는 춘향을 강제로 취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관기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상전의 뜻을 거역한 죄로 정당하게 벌을 주었다.
[교양세미나]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이 책은 우리 인간의 심리와 본성에 관한 여러 가설과 이론으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20세기 대표적인 심리학자와 정신의학자들의 심리 실험을 담고 있다. 인간의 심리에 관한 실험인 만큼 그 자체만으로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평소 나는 인간의 심리와 그 본성에 관해 관심이 있었으므로 책을 읽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물론 관심은 있었으나 찾아보기란 쉽지 않았는데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그동안의 갈증을 해소해 주기에 충분했다.모든 장(章)의 내용이 전부 흥미로웠지만 그중에서도 제 2장-사람은 왜 불합리한 권위 앞에 복종하는가?, 스탠리 밀그램의 충격 기계와 권위에 대한 복종-과 제 3장-엽기 살인 사건과 침묵한 38명의 증인들, 달리와 라타네의 사회적 신호와 방관자 효과-이 가장 인상 깊었다.제 2장의 내용은 스탠리 밀그램의 심리 실험으로 홀로코스트와 같은 파괴적인 복종에 굴복하는 이유가 성격보다 상황에 있다고 믿고 가짜 ‘충격기계’를 만들어 실험을 하는 내용이다. 일전에 이 내용을 먼저 TV프로그램으로 접했다. ‘서프라이즈’라는 방송에서 이 실험에 대해 방영한 것을 봤던지라 생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TV로 봤을 때와는 달리 책으로 읽고 난 후에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나는 문득 고등학교 때 도덕을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의 얘기가 떠올랐다. 어느 날 수업 도중에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그 수업은 전두환 정권에 관한 수업이었다.- 전두환 정권 당시에 자신이 군에 있었는데 군복을 입고 권위자의 명을 받다보니 일반 사람을 위해(危害)하는 일이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사람들이 자신이 아는 사람일수도 있었고 친구, 동료, 심지어 가족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면 아직도 총대를 멘 자신의 모습이 놀랍다 못해 소름이 끼치고 이해할 수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선생님께서는 학교의 연극동아리를 총괄하시며 도덕수업과 연극수업을 동시에 맡고 계셨던 분으로 학생들에게 인기도 많고 유머감각도 뛰어나신 감성적인 분이다. 이런 분이 그런 일에 몸을 담고 계셨다고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파괴적인 복종에 굴복하는 이유가 성격보다 상황에 있다고 믿던 밀그램의 말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EBS지식채널’에서 길거리에서 한 명이나 두 명이 하늘을 쳐다봤을 때, 무관심했던 사람들도 세 명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으면 같이 하늘을 쳐다본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걸어가던 사람들도 발길을 멈춰 아무것도 없는 빈 하늘을 같이 바라보고 있는 점이 상당히 흥미로웠는데 이것 역시 밀그램이 했던 실험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알게 되었다.제 3장은 밀그램의 실험과 유사해보이나 사실상 큰 차이가 있는 심리실험에 관한 얘기였다. 달리와 라타네는 집단적 위기 상황에서 책임을 질 권위자가 없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지켜보는 실험을 했다. 이 장(章)에서는 제노비스라는 여성이 강간?살해당하는 35분 동안 38명이나 그 사건을 목격했음에도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다는 내용을 토대로 달리와 라타네의 가짜 발작 실험을 담고 있다. 이 실험에서는 자신 말고 도와줄 사람이 더 있다고 믿었을 때는 희생자를 위해 도움을 청하려하지 않은 반면에 자신과 간질 학생 단 둘이 있다고 믿었을 때는 피실험자의 85%가 수수방관하지 않고 도움을 청했고 그것도 발작이 일어난 지 3분 안에 조치를 취했다.지난 2000년 4월 LG와의 경기 중 심장마비로 쓰러진 임수혁 선수를 알고 있을 것이다. 임수혁 선수는 심장마비로 쓰러질 당시 적어도 4분이상의 심장박동과 호흡중지로 혈액과 산소공급이 중단돼 심각한 뇌기능손상이 일어나 식물인간 상태이다. 임수혁 선수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누구하나 나서서 도와주지 못했다.이 장(章)에는 ‘달리와 라타네가 발견한 것은 어떤 규모의 집단이든 피실험자가 처음 3분 안에 비상사태를 보고하지 않으면, 그 후 어느 시점에서도 보고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임수혁은 적어도 4분이상의 심장박동과 호흡중지였으므로 3분 안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임수혁 선수는 병원으로 이송될 때까지 심폐소생술등을 받지 못했다. - 군중이라는 거대한 집단 속에서 우리의 도덕적 책임감이 얼마나 해이해질 수 있는지 알게 되자 소름이 끼칠 지경이었다.하지만 여기서 나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전동차가 들어오는 긴박한 상황에서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다섯 살 아이를 구해낸 이른바 ‘0.3초의 기적’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순간이라면 누구라도 그랬을 것”, “전 그저 보통의 학생입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하던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김대현 군. 분명 위기상황임은 틀림없다. 책임을 질 권위자도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위험을 무릅쓰고 영웅이 되었다. 이것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 이 장(章)에서는 집단 안에서도 희생자를 위해 도움을 준 사람들이 31%가 있다고 하였지만 그 사람들이 왜 도움을 준 것인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 수수방관이 아닌 살신성인에 가까운 사람들의 행동이 어떤 것인지도 알고 싶다.
「질문의 힘」을 읽고좋은 질문은 좋은 대화를 만들어 낸다. 제대로 된 질문이 상대를 움직인다. 간단하지만 쉽지만은 않은 아이러니한 말을 담고 있는 책이다. 현대 사회는 이를테면 ‘커뮤니케이션의 보고’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아는 능력이 각광 받고 있는 사회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말이 가장 진가를 발휘하는 시대가 아닌가 싶다. 그만큼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가 못 하는가에 따라 자신의 사회적 위치도 달라지기 마련이다.그런 커뮤니케이션을 이어나감에 있어 질문은 가장 먼저 대화의 장을 여는 중요한 관문이라 할 수 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고 하기엔 질문의 힘은 실로 대단하다.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질문이 있는가 하면 그 질문에 이어 또 다른 어떤 것 까지 말하고 싶게 만드는 질문이 있기도 하다. 이런 질문은 대화에 있어서 그 대화를 깊이 있고 의미 있게 만드는 윤활유와 같은 것이다. 이 책에서 역시 그런 질문의 힘에 대해 말하고 있다.대화의 기본적인 형식은 질문과 대답으로 이루어져있다. 어떻게 질문을 하고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위에서 언급했듯이 대화의 깊이가 달라진다. 더 나아가 그 관계의 깊이까지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마련되어지기도 한다.이 책에서 저자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좌표축을 이용한 그래프를 자주 사용하는데, 저자의 설명을 이해하기 쉬웠을 뿐만 아니라 4개의 면에 상황에 따라 질문의 효용성을 나누어 어떤 질문이 그 상황에 꼭 필요한 것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일종의 방법까지도 알려주고 있다. 물론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실례(實例)들이 유명 인사들의 대담집이라 다소 일반적인 우리의 상황에 적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한계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공적이나 사적인 여러 관계들을 통해 서로의 교감을 필요로 하는 대화라는 점에선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미 우리 개개인의 관계 속에서도 그런 대화가 너무나 많이 필요하고 또 자리 잡고 있다.커뮤니케이션 속에서 좋은 질문들은 타인과의 교감뿐만 아니라 역으로 나 자신과의 교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이 책에 ‘자기가 질문 받았다면 도저히 대답하지 못할 질문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가 대답해도 거기에 대응하지 못한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확실히 누군가와 교감을 이루기 위해선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 사람에 대해 알려고 하는 노력-사전 정보를 습득하는 것-과 함께 자신과 상대의 생각을 조화시키면서 대화를 진행해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질문을 통하여 나 자신과의 교감은 물론 실제대화에서 타인과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초석을 다지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목차-1. 서론2. 본론2.1. 「시사회」줄거리 및 작품해설2.2. 「지사총」줄거리 및 작품해설2.3. 「영자의 전성시대」인물 분석2.4. ‘나’와 ‘영자’의 관계2.5. 소설 전면에 드러난 ‘창녀’ 영자2.6. ‘영자의 외팔’ 및 ‘의수’의 의미2.7. ‘불’, 삶과 죽음의 연결2.8. 「영자의 전성시대」의 반어성2.9. 조선작 소설의 특징3. 결론4. 작가연보5. 참고문헌현대소설의 이해 : 조선작,「영자의 전성시대」1. 서론1970년대는 가장 급진적으로 산업화를 성취하였고 그 덕분에 자본주의 체제를 나름대로 구축하였던 시대이다. 그러나 그 급진성만큼이나 모순과 병폐가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시기 또한 이 시기이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이촌향도 현상을 낳게 되고 그에 따라 농촌이 붕괴되었으며,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은 도시 빈민이 되던 때였다. 이러한 사회의 단면들이 그 시대의 소설문학에 여러 양상으로 포착되면서 1970년대는 이른바 소설의 융성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시기가 되었다.그 중에서도 주목할 것은 1970년대 소설의 특징 중 하나가 ‘호스티스’라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이다. 이들은 개발정책의 음지에서 성장한 소비향락문화의 주인공들로 물신주의와 사회적 타락의 단면을 보게 하는 존재이지만, 특히 조선작은 이들에게 순정성을 부여함으로써 소설의 대중성을 확보하는데 크게 성공했다. 조선작은 대전에서 태어나 1971년 『세대』에 단편 「지사총」을 발표하여 문단에 나왔다. 주요작품으로는 「시사회」(1971), 「영자의 전성시대?(1973), ?밀도살?(1973)등이 있다.그는 변두리 인생 그 자체를 깊이 파고들어 인간적인 미학을 발견하였다. 이는 그의 소설 「영자의 전성시대」에도 드러난다. 1973년에 발표된 「영자의 전성시대」는 소설보다는 영화로 더 잘 알려진 작품인데, 이는 당시 소설 대중화가 한편으로 한국 영화와의 만남을 통해 가능했음을 보여준다.「영자의 전성시대」는 제목에서 나타난 바와는 달리 외팔이 창녀 ‘영자’에게 전성시대 불행의 시대를 담고 있다. 어린 소년을 화자로 내세움으로써 이러한 점이 잘 부각된 작품이라 할 수 있다.2.2. 「지사총」 줄거리 및 작품해설「지사총」은 문맹인 용접공 ‘나(영식)’(이하 ‘나’)와 창녀인 ‘창숙’이 겪은 하나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영식’은 ‘창숙’의 요청으로 6 ? 25 때 죽은 이들을 합장한 무덤인 지사총에 같이 가게 되고, 거기서 지사총의 내력을 알게 된다. 또한 ‘나’가 군대 영장으로 여겼던 편지가 사실은 유족에게 보내는 지사총祭 초청장이라는 것이 판명난다.이 작품은 부모의 죽음, 다시 말해서 부모 부재의 연유와 그 자식의 현재 처지를 나란히 제시함으로써, 밑바닥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나’와 ‘창숙’의 삶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넌지시 암시하고 있다. 그들의 삶이란 그들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처지에 분개하거나 세상을 향한 적개심을 품지 않는다. 그 상태로 끝나버리는데, 마지막에 그들의 결합 가능성을 보여 줌으로써, 같은 상처를 가진 자들이 서로 화합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2.3. 「영자의 전성시대」인물분석2.3.1. ‘나’‘나’의 직업은 때밀이이다. 때밀이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군대에서 돌아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나’는 때밀이를 밖에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군대에서 같이 있던 중대장이 차린 목욕탕의 때밀이. 때밀이는 특별한 자격 요건이 없는 직업이다. 때문에 하층의 직업이라 여겨졌다. 때밀이가 되기 위해서는 그저 성한 몸 하나만 있으면 된다. 이는 산업화 시대에서 소위 기술자들이 각광 받던 시대에 기술이나 배운 것 없는 사람들은 자연히 도태될 수밖에 없고 하층민이 될 수밖에 없는 삶을 그리고 있다.‘나’는 소설 속에서 의식적으로 행동하기 보다는 다소 우발적이고 충동적인 행동을 보여준다. “언젠가 한번 대문을 열어주는 영자의 그 큼직한 젖통을 슬쩍 건드렸던”일이나, “영자에게 의수를 하나 만들어주겠다는 생각을 갑작스럽게 해내게 된 것”이 그것을 보며 자신도 어디 한 군데 싹 쓸어 불 질러 버리고 싶다고 말하며, 이 사회의 부조리함에 대한 자신의 적의를 표출하는데 이러한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가 이제는 ‘의수’와 같은 해결점을 지향해 나갈 것이라 조심스레 짐작할 수 있다.2.3.2. ’영자‘‘영자’는 1970년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칸 드림’처럼 당시 ‘기회의 땅’은 서울이었고, 저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로 상경하는 사람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던 때였다. 상경하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중학교를 갓 졸업한 소녀들이었고 이들은 집안의 생계비와 좋은 회사에 출근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소박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배우지 못했던 여성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부잣집의 식모살이나 봉제공장, 버스 차장 등을 전전하는 것이었다. 이 같은 당대의 여성상이 바로 ‘영자’로 대표되는 것이다. 조선작은 ‘영자’를 통해서 그 시대 여성이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보여주며 참혹하고 비극적인 삶을 드러내는 것이다.소설 속에서 ‘영자’는 창녀로 전락한 자신의 굴곡진 삶에 있어서도 씩씩함을 잃지 않는다. 의도했던 바와 달리 엉망이 된 자신의 삶 속에서도 자기연민을 드러내는 대신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에서 열심히 돈을 벌기 위해 의욕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원망하는 모습보다는 “그렇지만 나는 지금부터야”라며 그런 상황 속에서도 의욕을 불태우는 것이다. 이는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인 ‘영자’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고 원망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영자의 굴곡진 삶이 자칫, 한 개인의 잘못된 선택에 기인한 비극적 삶으로 치우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 구조적 문제를 들춰내기에 적합한 씩씩하고도 의욕적인 모습을 통해 이런 모습임에도 나락으로 떨어지는 영자를 통해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하는 것이다.2.4. ‘나’와 ‘영자’의 관계‘나’는 ‘창숙’이를 찾으려다가 우연히 만난 ‘영자’를 계속 만난다. ‘창숙’이를 찾는 것을 포기 할 정도로 ‘영자’와 오랜 시간 함께 한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 폭력 등을 총체적으로 그리고 있다.또한,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비극의 원인이 일차적으로는 산업화된 한국사회의 구조적 모순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 단속반의 ‘불도저 작전’이 ‘나’가 월남에서 몸담던 “중대가 평정지역의 베트콩 잔비들을 깨끗이 소탕했듯이 소탕시킬 계획”이라는 것과 연결되고, 외팔이 ‘영자’를 포함한 “세 구의 시체들은 마치 화염방사기에 타죽은 베트콩의 그것들처럼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고 말하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국가가 행하는 폭력과 연결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군과 베트콩과의 관계로 맞대어져 비교된다는 것은 ‘창녀’를 내세운 것과 더불어서 새로운 차원의 문제의식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따라서 조선작이 그의 소설에서 ‘창녀’를 전면에 내세운 것은 단순히 자극적 소재로 이목을 집중시켜 주목을 받고자하는 상업적인 문학을 지향했던 것이 아니라 ‘창녀’를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밑바닥 사회를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기에 적합하다고 보았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창녀’와 관계를 맺는 ‘나’의 상황까지 아울러 또 다른 문제의식을 생각게 한다는 점에서 당대사회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는 긍정적 평가를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토대로 소설 전면에 ‘창녀’를 등장시킨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2.6. ‘영자의 외팔’ 및 ‘의수’의 의미‘영자’는 이촌향도의 당시 풍정에 따라 농촌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식모살이로 열심히 살아보고자 했으나 성적인 모욕감을 느끼고 다시 버스 여차장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도 만원버스에서 떨어져 삼륜차에 팔 하나를 잃고 밥을 벌어먹기 위해 택한 직업이 결국엔 창녀로 마감된다. 이런 ‘영자’는 다시 말해서, 창녀임과 동시에 한쪽 팔마저 없는 장애인이다.이는 ‘영자’를 통해 밑바닥 인생이 제대로 된 삶을 살기 위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좌절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뿌리 뽑힌 삶이 개인적 실패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조적 모순에 의해 생산된 것임을 말해준다.군대는 하나의 매개물로 여겨진다.그러나 이것이 ‘영자’와 마찬가지의 삶을 살고 있던 소시민인 ‘나’가 만든 것이기에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영향력은 크지 못했다. 의수를 만들 때 청소원인 ‘박군’과 보일러실 ‘천씨’는 그를 의아하게 생각하였고 ‘천씨’는 “미친 새끼”라고 까지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입을 열 수 없었다. 창녀촌의 나이롱 아줌마 역시 “미친 것들, 그게 뭐 그리 대단타고 그 지랄발광들이야”라면서 의수를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하지만 그럼에도 ‘영자’는 의수를 달고 나자 말 그대로 잠시나마 전성시대를 누린다. 자신이 노력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이다. 도시빈민으로 살던 때와는 달리 노력한 만큼의 벌이를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를 볼 때 외팔을 보완하는 의수는 외팔로 표상되는 부조리한 모순을 타개하기 위한 해결책을 찾는 움직임이 분명 있었음을 암시한다.2.7. ‘불’, 삶과 죽음의 연결이 소설은 처음과 끝에 불이 등장한다. ‘나’가 월남에 있을 때 화염방사기로 베트콩들을 불태워 죽였다는 것과 ‘영자’가 포주에게 돈을 받으러 갔다가 방화에 의해 목숨을 잃었을 때에 각각 불이 등장한다. 표면적으로 본다면 불로 사람을 죽여서 살아난 ‘나’와 불로 인해 목숨을 잃은 ‘영자’가 대비되어 삶과 죽음을 갈라놓는 소재로 인식할 수 있다.10그러나 당시의 서울이 전쟁터와 비견될 적자생존의 공간이었던 점을 볼 때 전쟁터에서 살아남게 해준 불이나 서울의 일상에서 죽음으로 내몰리게 한 불은 연속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타서 없어지게 한다는 속성을 가진 불은 ‘영자’를 나락으로 몰고 간 그 삶의 터전을 ‘영자’와 함께 싹 쓸어 버려서 ‘영자’ 자신마저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하지만 다시는 ‘영자’같은 삶이 나오지 않길 바라는, 새로운 삶이 도래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다시 말해서, 소멸을 통한 재생의 상징적 매개물이 바로 ‘불’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추수가 끝나고 병해충을 없애기 위해 논밭에 불을 질렀던 것처럼-물론 현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