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
검색어 입력폼
  • 논어독후감,공자의말
    Ⅰ.서론1.논어란?유가의 성전이라고도 할 수 있는 논어는 사서의 하나로, 중국 최초의 어록이기도 하다. 고대 중국의 사상가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전하는 가장 확실한 옛 문헌이다. 공자와 그 제자와의 문답을 주로 하고, 공자의 발언과 행적, 그리고 고제의 발언 등 인생의 교훈이 되는 말들이 간결하고도 함축성있게 기재된 것이다.①공자(孔子)란 누구인가?공자(孔子)는 노나라 창평향 추읍에서 BC551년에 태어났다. 자는 중니(仲尼),이름은 구(丘)이다. 공자의 ‘자(子)’는 존칭이다. 춘추 말기 사람으로 주나라의 봉건질서가 쇠퇴하여 사회적 혼란이 심해지자, 주왕조 초의 제도로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사상은 인(仁)이며, ‘극기복례(克己復禮)’를 그 핵심으로 여기고 있다. 그는 인(仁)을 단지 도덕규범이 아닌 사회질서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치사상으로 생각했다.Ⅱ.본론1.제1편~제20편제1편 학이(學而):제1편 학이에는 논어의 서편(緖編)으로 학문의 중요성과 공자의 사상이 깃들어 있다.“배우고 난 뒤 그것을 일정 기간동안 실제 생활을 통해 익히면, 그 역시 기쁘지 않겠는가? 나와 뜻을 같이하는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나를 찾아오면, 그 역시 즐겁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그로 인해 화내지 않는다면, 그 역시 군자가 아니겠는가?”(子曰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明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 不亦君子乎)제2편 위정(爲政):제2편 위정에는 정치에 대한 내용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정치적인 법으로써 백성들을 인도하고, 형벌로써 그들을 안돈시키면, 백성들은 잠시 죄를 면하고자 할 뿐 염치를 모르게 된다. 만약 도덕으로써 그들을 인도하고, 예교로써 그들을 안돈시키면, 백성들이 염치를 알게 될 뿐만 아니라 인심이 돌아와 감복케 된다.”(子曰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제3편 팔일(八佾):제3편 팔일에는 무악(舞樂)의 이름인 팔일을 편명으로 삼아 예악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 놓았다.“하(夏)나라의 였으되, 백성들은 어떤 적당한 말로 그를 칭송해야 할지를 모르는도다.”(子曰 泰伯 其可謂至德也已矣 三以天下讓 民無得而稱焉)제9편 자한(子罕):제9편 자한에서는 공자의 언행에 대한 기록과 공자의 출처진퇴(出處進退)에 대한 기록이 많이 있다.“공자께서는 다음의 네 가지 결점을 갖고 계시지 않으셨다. 근거없이 추측하지 않으시고, 절대 긍정을 하지 않으셨으며, 편협하게 고집을 부리지 않으셨고, 나만이 옳다 하지 않으셨다.”(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제10편 향당(鄕黨):제10편 향당은 공자님의 용모, 음성, 의식주 등과 같은 일상생활과 공자님의 생활태도를 기록하였다.“먹으면서 말을 하지 아니하고, 자면서 말을 하지 아니하였다.”(食不語 寢不言)제11편 선진(先進):제11편 선진에서는 문인들과 그 외의 인물들에 대한 평이 많고 논어 전권을 선진을 기준으로 상, 하로 나누는 경계로 삼았다.“착한 사람이란 다른 사람의 족적을 밟지 않고 나아 갈 수는 있겠지마는, 학문 도덕 역시 어떤 경지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子張 問善人之道 子曰 不踐迹 亦不入於室)제12편 안연(顔淵):제12편 안연에서는 공자와 제자, 제후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것으로 주로 정치쪽으로 많이 기록이 되었고 바름(正)과 솔선을 이상형으로 삼았다.“안연이 인에 대해 묻자 공자께서 ‘자기를 억제하고 언어와 행동을 모두 예에 맞게 하는 것이 곧 인이니라. 이렇게 하면 천하의 사람들이 너를 어질다 할 것 이니라. 인을 실천함에 있어 자기자신에 의지해야지 어찌 다른 사람을 의지할 것이냐?’라고 말씀하셨다. 안연은 다시 말씀해달라고 청했다. 공자께서 ‘예에 맞지 않는 말은 하지 말 것이며, 예에 맞지 않는 일은 하지 말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顔淵 問仁 子曰 克己復禮 爲仁 一日克其復禮 天下 歸仁焉 爲仁 由己 而由人乎哉 顔淵 曰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廳 非禮勿言 非禮勿動)제13편 자로(子路):제13편 자로의 앞부분은 정치에 대한 기록이 많으며 뒷부분은 성인 군자에 대한 문답으로 이루어져있다.“자로가 정사“자장이 말했다. ‘덕에 대해서는 행위가 굳세지 못하고, 믿음이 충실하지 못하다면, 이런 사람을 어찌 도와 덕이 있다 없다 하리오.’”(子張曰 執德不弘 信道不篤 焉能爲有 焉能爲亡)제20편 요왈(堯曰):제20편 요왈은 3절로 구성 되었으며 논어 20편 중에서 체제가 가장 다르게 꾸며졌다. 요, 순, 우, 무왕 등의 정치적 성격과 일반 위정자를 위한 훈계가 많이 있다.“천명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고, 예를 모르면 사회에서 입신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의 말을 분별해 듣지 못하면 사람을 알아 볼 수 없다.”(子曰 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2.논어의 성립과 전래성립 : 맹자(孟子)나 순자(荀子) 등 옛 문헌에는 공자의 말이 ‘공자왈’ ‘중니왈(仲尼曰)’ ‘전왈’이라고 인용되었으나, 그것이 논어에 기재된 것과 반드시 같은 것도 아니며, 또 논어가 성립되었다는 것을 제시하는 기술(記述)도 없다. 그러나 한(漢)나라 때에는 제(齊)나라 학자의 제론 22편, 노(魯)나라 학자의 노론 20편이 전해졌고, 따로 공자의 옛집의 벽 속에서 고론 21편이 나왔다.한(漢)의 장우는 제 ·노 양론을 교합하여 장후론 20편을 만들었고, 이어 후한의 정현은 이 세 가지와 고론을 교합하였다. 이 정현본을 바탕으로 위(魏)의 하안이 논어집해(論語集解)라는 주석서를 저술함에 이르러 현존본의 원문이 결정되었다. 근대에 와서 내외의 학자들이 공자의 가르침의 근본을 추구하여, 여러 각도로 논어의 문헌을 비판하고, 논어성립까지의 전승계통을 탐색하였다. 한편 한(漢)나라까지의 증보의 경과를 더듬는 등 많은 가설을 내세우고 있으나, 아직 정설은 수립되지 않았다.전래 : 유교의 경서는 많지만, 그 중에서 논어는 효경과 더불어 한(漢)나라 이후에 지식인의 필수 서책이 되고 있다. 그 해석의 전거가 된 것은 논어집해이다. 송(宋)나라 때에는 유교의 공맹사상에 의한 집주 통일화가 이루어졌다. 특히 주희가 사서로 추존하고, 이를 통일하여 논어집주를 저술한 후에는 이것이 고주에 대체되었사람은 인을 희생하면서까지 살려고 하지 않고, 또 인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다(志士 仁人 無求生以害仁 有殺身 以成仁)”라는 극단적인 진술을 펼 때, 공자의 가치관이 ‘인(仁)’의 덕목을 의(義)의 덕목보다는 물론 예(禮)의 덕목보다도 더 핵심적 위치에 놓고 있음을 의심할 수 없다. 「논어」는 인간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덕목, 더 정확히 ‘인(仁)’이라는 이름이 붙은 덕목에 관한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책이다.①인(仁)의 개념「논어」에서 ‘인(仁)’은 그냥 존재하는 어떤 사물 혹은 사실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인간다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마땅히 지향해야 할 가치를 갖는 덕목을 말한다.4.「논어」의 정치철학공자는 왕도, 황제도, 군주도 아니었고, 부농이나 호상도 아니었다. 그는 위대한 사상가이며, 집필가였으며, 교육자이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나를 써주는 이가 있으면 1년만 되더라도 괜찮아질 것이다. 3년이면 성과가 있으리라(苟有用我者 朞月而已 可也 三年 有成)”. 「논어」의 이 구절로 알 수 있듯이, 노장 사상의 추종자들과는 반대로 사회 참여가 인간다운 삶의 필수 조건임을 간파한 공자는 일찍부터 그러한 삶의 철학을 실천에 옮기는 한 방법으로 자기 자신도 정치에 자신을 갖고 참여하고자 오랫동안 애썼다. 그는 좁은 의미의 정치참여를 원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공자의 정치 철학은 ‘인(仁)’이라는 도덕적 원칙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공자의 ‘인(仁)’은 인간적 가치에 속하고 도덕적 가치가 내재적이다. 그리고 공자의 정치철학은 다소 법치주의적이어서 전체주의적이고 불평등하며 억압적인 점이 있지만, 객관적인 인간 사회의 현실을 보다 잘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공자는 “군자는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되 화합하지 않느니라(君子 和而不同 小人 同而不和)”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공자의 정치 철학 즉 공자가 이상으로 한 정치는 ‘군자 정치’였으며, 그러한 그의 이상적 정치 이론을 ‘군자 정치 철학’이라는 밥 먹는 사이에도 인을 어김이 없으며, 급히 갈 때도, 넘어질 때도 인을 어기지 않는다."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목숨을 유지하려고 인을 팽개치지 않고 몸을 죽여서라도 인을 이룬다." "인에 대해서는 스승에게도 양보하지 않는다." '인은 공자 사상의 핵심이다. [논어]에는 어질 '인(仁)' 자가 100번도 넘게 나온다. 공자는 '인'을 '사람다움이다(人)', '남을 아껴 주는 것이다(愛人)', '자기 욕심을 누르고 보편적 규범에 따르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그 외에 '자기가 당하기 싫은 일을 남에게 하지 마라', 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남이 먼저 할 수 있게 해 주어라'라고 한 말도 '인'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다. 공자는 어떤 제자에게도 선뜻 '인'이라는 점수를 주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인'을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인'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한다. '인'은 강제로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인'은 사람과 사람이 공감하고, 서로 통하게 하는 '인간애'의 근원이기 때문에 모든 선행의 바탕이 된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다움'을 실현할 수 있다. 하지만 공자는 가장 뛰어난 제자 안회가 석 달을 '인'할 수 있고 다른 제자들은 하루나 한 달밖에 가지 못한다고 했다. 이렇게 볼 때 공자의 '인'은 매우 높은 경지의 도덕적 자각 상태, 심리 상태를 가리킨 말이라고 할 수 있다.덕치주의(德治主意), 공자는 윗사람과 백성의 관계를 바람과 풀의 관계와 같다고 보았다. 풀은 바람이 부는 대로 눕듯이, 백성을 올바른 방향으로 지도하는 것은 윗사람의 책임이다. 윗사람이 정의를 몸소 실천하여야 백성들도 그것을 따르게 된다는 것이다. 공자의 이러한 정치 사상을 '덕치주의'라고 한다. 덕은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상대방을 감화시킨다고 보았다. 정치를 이끌고 형벌로 행동을 통제하면, 백성은 감시를 빠져 나간 뒤에는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 행동을 가다듬게 하면, 잘못을 부끄러워할 줄 알고 행동이 높 했다.
    독후감/창작| 2008.05.29| 12페이지| 1,500원| 조회(880)
    미리보기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17일 일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2:41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