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안교육의 개념대안은 영어의 alternative'에서 비롯된 것으로 ‘둘 이상에서 하나를 택할 여지’를 말한다. 즉, 하나의 안을 대신하는 새로운 안을 대안이라 일컫는 것이다. 대안이라는 개념은 기존의 그 무엇과는 구별되는 다양한 형태의 다름을 뜻한다.대안교육은 영어의 ‘alternative education’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대안교육은 대안적 교육으로서 “어떤 교육에 대한 또 다른 어떤 교육” 의 의미이다.대안학교는 미국에서 1960년대 중반에서 1970년대에 걸쳐 기존의 학교에 비해 학생들의 요구에 좀더 부응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학교들이 등장했고 이를 가리켜 자유학교’ 또는 ‘대안학교’라고 불렀다.? 대안교육의 의미대안교육은 19∼20세기에 개발 중심의 근대적 가치가 생존경쟁의 가치, 적자생존의 가치로서 인간간의 유대를 단절하고, 공동체를 와해시키고, 자연환경과의 친화력을 약화 시키고, 인간성을 비인간화하는 교육에 대한 반기로 나타난 운동이다.이러한 움직임 중 대안학교는 정규학교나 비정규학교에서 교육 이념 및 운영방식의 독특 성을 가지고 기존의 학교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시도하는 대안적인 학교의 형태를 말 한다. 즉, 지식 위주의 기존 학교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차원에서 모색되고 있는 다양한 실천운동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대안교육은 교육을 대신하는 개념이나 교육을 부정하는 개념이 아니라 지금의 교육형태-학교라는 기관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획일적이고 관료화되고 경직화 되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교육형태-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교육을 의미하며 이미 기존의 제도교육을 대신하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거나 장차 대신할 가능성도 있는 실천 지향적 교육의 한 흐름이다.? 대안교육은 유일한 형태의 특정교육을 지칭하는 말이기보다는 일련의 교육적 흐름을 통칭하는 복수의 개념이다. 대안교육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여 다양한 각각의 교육 형태들은 기존교육에 대한 일맥상통한 비판과 함께 비교적 비슷한 교육적 가치관을 보여 준다.? 대안교육은 기존의 교육을 할 수 있으려면, 학교가 학부모의 참여 속에 운영될 수 있으려면, 당연하게 요청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화 교육사람됨을 일깨워주는 교육 지향한다. 삶과 문화와 역사에 대해 아름다운 꿈을 키워주는 문학, 역사, 철학 등을 주축으로 하는 인문교육(초등교육 단계에서는 독서 교육 등), 최고의 가치는 각자의 개성의 실현에 있다는 각자의 정체성과 주체성 확립교육, 그리고 교사와 학생과의 인간적인 관계의 정립, 즉 인간의 사귐에 관한 것이 요청됨.? 대안학교의 유형1. 제도교육과의 관련1) 제도교육 틀 속교육과정 운영이나 학교운영에 있어서 국가의 감독과 통제를 받는 공사립학교.2) 제도교육 틀 곁정규학교는 아니지만 각종학교인 학력인정 고등학교와 같은 형태.3) 제도교육 틀 밖제도교육과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형태의 대안교육.2. 교육이념과 관련1) 자유 학교형 대안학교1970년대 미국, 독일 등지에서 등장한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학교 설립의 주된 동기가 종래의 학교 교육이 지나치게 아이들을 통제, 억압하며 교사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비판하고, 아이들의 무한한 잠재 가능성에 대한 굳은 신녀을 기초로 하는 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것이었다.대표적인 사례로, 영국의 "섬머힐", 독일의 "자유 대안 학교", 일본의 "기노쿠니 아이들의 마을" 그리고 우리나라의 "자유 학교 물꼬"(2000년대 초반 상설 학교 설립 예정)가 가장 가까운 형태라고 볼 수 있다.2) 생태 학교형 대안학교이 유형의 전형은 1982년에 설립된 영국의 하트랜드 지방의 "작은 학교"라고 할 수 있다. 이 학교는 마을 안에서 소규모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지식 교육뿐만 아니라 의식주에 관련 된 기본적인 활동들을 교육내용으로 삼고, 마을의 다양한 생산자들이 교사로 봉사하는 것 으로 유명하다. 이 학교에서는 주로 생태와 노작, 지역 사회와 학교의 결합을 중시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개교한 간디 청소년학교가 교육이념이나 방식에서 유사하다.3) 재적응 학교형 대안학교부적응 학충분히 하게 된다. 이 학교에서는 운동 자체로써 본래적인 역할을 다할 뿐이다.2. 일본의 도쿄 슈레아사히(朝日)신문 3월27일자 조간에 효고(兵庫)에서 치바(千葉)현 중학교로 전학한 야스노리(15)의 애처로운 사연이 소개됐다.야스노리는 전 학교에서 부회장을 맡고 성적도 좋았지만 새 학교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4일 정도 등교한 후 학교에 가지 않았다. 별다른 이유가 없었고, 본인 스스로도 까닭을 몰랐다. 마침내 정신병동 환자가 됐지만 부모가 학교가지 않는 것을 승인한 뒤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도 등교거부 이유가 잘 정리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알 수 있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한 순간, 부모도 선생도 다른 생물로 보는 것 같은 눈으로 그를 보았다. "등교거부가 그렇게 나쁜 일인지, 학교 가는 일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하면 안 되는 것인지"그는 반문한다.일본에서 60년대의 주입식 교육은 대량의 '낙제생'을 낳았고, 70년대에 들어서는 폭력, 비행 청소년이 줄을 이었다. 80년대에는 '이지메'가 학교마다 심각한 문제로 나타났다. 이렇게 학교 교육 환경이 열악해지면 서 '또 하나의 학교'를 찾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각 지역 사회에 작은 모임들이 만들어지고 참다운 교육을 찾는 노력이 하나 둘 늘어났다. 모임을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6,70년대 운동권 세대였고, 또 학교를 가지 않게 된 아이의 부모들이었다. 프리스쿨의 대표적인 학교 '도쿄슈레' 프리스쿨은 민간운영 교실로, 전국에 600개쯤으로 추정된다. 보통 그 지역 부모들이 자금을 출자해서 만들고 학생 수는 50명 이하인 작은 규모이다.도쿄슈레는 서머힐이 지향했던 '높은 뜻'과는 달리 학교 가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이 시간을 보낼 배움터를 만들자는 소박한 뜻에서 시작했다. 도쿄슈레가 만들어진 1980년대 일본에서는 학교 폭력이 난무했고, 이지메 현상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그래서 학교 가기를 '몸으로 거부하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이 학교는 설립 자체를 통해서 학교를 가지 않으려는 아이들 받은 상처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자 신이 기꺼이 한 개인으로 가져야 되는 권리와 의무가 있음을 알게 하도록 하였다.2)무반덱의 생활과 교육초기에는 네 살에서 열 살의 어린이 20명으로 시작하였다. 현재 (1999년) 162명의 어린이와 20명의 어른이 있다. 무반덱은 계속해서 부모로부터, 어른들로부터 학대받아, 반항하고 공격성을 띠거나, 평정을 잃으면 욕지거리를 하는 어린이들을 받아들인다. 이런 어린이들을 자연환경 속으로 불러들여, 그들의 부모와는 다른 방법으로 보살펴주고, 풍부한 음식을 먹게 하며, 권위적인 어른들의 말에 따르지 않게 하며, 사랑과 친절로 대해 주고, 따뜻하게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채워주려고 노력한다. 무반덱에서의 생활은 가족, 교육, 생산 그리고 문화 예술과 종교라는 네 개의 요소의 시스템으로 구성된다.3) 일과기상시간의 정해져 있지 않지만 식사시간은 정해져 있다. 읽기, 쓰기, 수학과 같은 학문적 수업은 오전 9시에서 낮 12시 사이에 이뤄지고, 실용적인 수업은 오후에 있으며, 교실이나 집 또는 마을 어느 곳이나 모두 학습의 장이 된다. 무반덱은 학습이 나이에 따라 일괄적으로 이뤄지는 강제 교육에 반대하며 모든 아이들이 자신이 시작할 시점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다. 오후에는 음악, 미술, 도자기 만들기, 목공, 바느질, 독서, 정원 가꾸기 등과 같은 이런 일들과 더불어 훈련하고 놀거나 일한다. 활동실에는 전문가가 일하고 있어 어린이들을 돕는다. 각 활동실에 참여하는 어린이의 수는 많지 않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반별로 균등하게 분산되어지고, 몇몇은 그들의 선택에 의해 몇 년간 야외에서 뛰어 논다.초등학교 6년을 마친 어린이들, 또는 15세 이상의 사람은 하루에 적어도 두 시간은 채소 밭에서 일하도록 되어 있다. 이 생산 활동은 살충제와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자연농법으로 이뤄진다. 불교의 원리를 바탕으로 화학 농법에 대해 윤리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자연농법을 실시하는 것 이다.4) 생활의 목적이러한 활동들은 두 가지 공통적인 목적이 있다.의 수업을 하지 않는 에포크 수업(Epchenunterricht)방 식으로 진행된다. 이 수업 방식은 주의집중과 깊이 있는 학습을 가능하게 하며 잊어버리 는 시간을 통해 학습한 것을 소화할 수 있도록 해준다.③ 조기 외국어 수업발도로프 학교는 조기 외국어 교육을 실시한다. 1학년부터 영어, 불어, 러시아어 중에서 2개의 외국어를 배운다. 이렇게 일찍 외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다양한 언어 세계를 경험 함으로써 어린이의 영혼이 풍부해지기 때문이다.④ 예술 수업발도로프 학교는 예술 수업을 강조한다. 12학년 내내 회화, 조소, 노래와 악기연주, 오이 뤼트미, 체조, 시낭송 등의 다양한 예술 수업이 이루어진다. 이들 수업 중 오이뤼트미 (Eurythmie)는 발도로프 학교의 독특한 예술 교과이다. 오이뤼트미는 창조된 몸을 움직 이는 놀이 수업으로서 음악이나 언어에 따라 신체의 움직임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 수 업이다.⑤ 노작 수업발도로프 학교는 노작 활동을 강조한다. 사물과의 직접적인 접촉에 의해 인간은 육체와 영혼, 정신을 새롭게 갱신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 1, 2학년에서는 뜨개질을 3학 년에서는 바느질과 목공을 남녀 학생 모두에게 가르친다. 4, 5학년이 지나면서 농사, 속 기, 측량술, 응급처치, 공업기술, 공장 및 농장 실습 등으로 옮아간다.⑥ 평가발도로프 학교는 성적 등급에 의한 학생 평가를 하지 않는다. 학생들의 성취를 숫자로 환산하는 대신 담임교사가 상세하게 진술하는 서술 평가와 함께 전문교사의 평가를 보충 해서 1년에 한 번 성적표를 내준다. 이 성적표는 학생의 장점과 단점을 관찰 기록함으로 써 장래의 성장을 위한 계기로 삼는다.? 대안교육의 시사점- 생태주의적인 측면생명 가치를 존중하며, 모든 것을 생태적으로 사고하자는 생태주의는 근대적인 기회에 대한 전면적인 변혁을 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기존의 인간과 자연의 적대적 또는 ‘나-그것’의 관계를 공존적인 관계로 회복하며 돌이킬 수 없는 파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가꾸고 활용할 것을 주장있다.
스포츠교육 모형 이론을평균대운동에 적용한 창의성수업 반성자료평균대 운동은 체조경기 여자 종목의 하나로 한 가닥으로 된 좁은 대(臺) 위에서 운동을 하기 때문에 평형감각과 평균을 유지하는 조정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자칫 잘못 발을 내딛으면 다칠 확률이 크기 때문에 항상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운동이었다.우선 우리는 첫 수업시간에 번호 별로 조를 나누어 각 조마다 나라 이름을 붙였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 나라별로 점수 합을 계산하여 올림픽처럼 등수를 나열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4조로 나라명은 이집트라고 붙였었는데, 이렇게 조별로 학생들을 묶어주니 다른 조와의 경쟁 심리를 통한 협동심도 생기고 평균대 운동이 부족한 아이는 조원들이 서로 도와주는 등 학생들 간의 편차도 줄어들었다. 그리고 기존에 평균대에 관심이 없던 학생들도 수업도 즐겁게 참여할 수 있었다.개인적 활동에서 생각해보면, 나는 이번 평균대 운동을 경험하면서 성찰을 통한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수업에서 계속적으로 나의 무엇이 잘되고 잘못되고 있는가를 탐구하며, 얻어낸 자료를 바탕으로 그 원인에 대한 파악과 성찰을 통한 발전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이같이 '의문제기 - 실천반성 - 원인파악 - 해결방안마련 - 개선계획실천 - 실천반성' 의 활동이 내 머리 속에서 계속적으로 이루어졌었다. 수업을 통해서 그 수업내용에 대한 나의 활동을 반성하고, 그 반성을 토대로 다음의 수업에서의 목적을 계획하고 그 목적을 다음 수업에서 직접 실현하고 또 그 수업을 통해서 나의 활동을 반성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반성이 수업의 진행 속에서 이루어지고 수업의 과정 후에 지속된 반성이 다시 수업으로 실천됨으로써, 수업이 바로 반성이 되고 반성은 수업이 되는 것이다.또한 이번 수업은 체육의 이론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었다. 주심과 부심을 경험하면서 학습목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타당성 있는 학습평가를 가능하게 하는 이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체육 활동이 그러하지만 이번 수업은 특히 나 자신의 노력이 많이 요구되었으며 나의 수업활동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중요하였다. 이렇게 되면 평균대 운동은 나 혼자 한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도 있었는데, 조를 나누어 줌으로써 체육은 나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 주었다.
E. 라이머의 ‘학교는 죽었다’를 읽고‘학교는 죽었다’ 제목만으로도 비판적인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책이었다.이 책의 글쓴이 E. 라이머는 부정적인 시각에서독서와 작문사회, 교육, 학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교육이 자본가 층의 기호에 맞는 계층구조를 정당화하며 지속시키는 도구라고 비판하며 교육의 쇄신을 주장했다. 일리치와 라이머의 15년간의 대화의 결과인 이 책은 인간사회를 바다 속 동물들의 이야기로 비유해 풍자하며 본래의 사명을 잃은 학교를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 또한 교육의 현장인 학교에서조차 친구를 밟고서라도 이겨야 한다는 이러한 교육 현실을 라이머는 본문에서 비판하고 나섰다.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학교를 들어가기 전의 아동은 대부분의 기능을 스스로 익히려 노력하나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이러한 가치들은 모두 역전되어버려 학생은 전적으로 학교에 의지하게 되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좋은 것이라고 믿어버린다. 이로써 주입은 성공하게 되고 계속 위계질서의 가치, 교과과정의 주입을 받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학교의 노예가 되고 만다.’ 는 부분이었다. 이때껏 학교 교육에 충실하게 몸담았던 나로서는, 학교는 무조건 옳은 일만 하고 올바른 지식만을 가르치는 신성한 교육의 장소로서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공간으로 믿어왔기에 그것이 사실이라면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때껏 살아온 내 모습이 학교가 의도한 교육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그러나 나는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아직까지는 학교라는 사회를 대체할 만한 교육기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교육이 바뀌기 위해서는 사회전반적인 제도도 바뀌어야 한다는 라이머의 생각에 따르면, 우리의 사회제도는 공산주의도 자본주의도 모두 성공하지 못한 채, 현재 대체할 사회 제도도 뚜렷하지 못한 실정이므로 학교라는 교육기관이 없이는 우리 사회가 유지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그의 약간은 급진적인 생각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라이머는 사회를 지배 - 피지배 관계라는 두 부류로만 나눠서 생각하였기 때문에 학교의 장점까지 무시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현재의 학교는 조선의 양반 세습제를 붕괴시킴으로써 모든 국민의 사회적 신분을 상승시키고 기본적인 지식을 평등하게 갖게 해주어서 전반적인 사회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었다. 라이머는 이 책에서 학교의 부정적인 측면만 너무 강조한 나머지 학교의 긍정적 측면을 간과한 잘못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나는 학교자체가 붕괴되는 것까지는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붕괴되기엔 학교는 너무나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머의 주장과 대안은 나에게도 꽤나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만 약간은 이상적인 의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즉, 라이머의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 지지만 지금 사회를 이만큼까지 끌어올린 것은 현재의 교육제도와 학교라는 점에서는 라이머도 동의할 것이다.
◎ 페미니즘의 의미여성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그 이론.◎ 초기 페미니즘 등장의 시대적 배경17, 18세기 당시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이성과 기회의 균등을 강조하였다. 남성에게만 그 권리가 국한되었다. 최초로 자유주의를 생각한 사람들은 남성이여, 그들은 남성을 위해 남성에 대해 쓰고 여성은 이성이 없는 생물체로서 인간 이하로 간주했다. 그 예로 미국 독립선언서를 들 수 있는데, 독립선언서에는 “천부인권”이라 하여 모든 국민은 통치권이 개입하지 못하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지지만 여성은 제외가 되었다.17, 18세기 유럽의 자연과학발달과 산업혁명을 인한 경제구조의 변화(가내생산의 중심이 가정에서 공장으로 옮겨짐)로 남성의 노동력만을 이용하기 시작하였고, 가족 내에서 여성의 위상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가운데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권을 강조하는 계몽주의를 바탕으로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게 되었다. 비록 프랑스혁명이 대부분 여성의 권리가 무시되고 남성 시민만의 사회를 건설할 것을 공공연한 목표로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파장은 여성들의 각성을 가져왔다. 프랑스 혁명은 여성들은 오래된 종속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다주었고, 자신들의 권리를 자각하는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정치적 참여만이 여성의 권리를 관찰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게 되어 평등한 권리와 기회를 요구하는 사상이나 운동을 연동해 갔다. 이러한 시대를 바탕으로 18세기 후반에 출판된 메리 울스톤 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의 저서 「여성 권리의 옹호(1792)」는 역사상 최초의 페미니즘 선언서라 할 수 있다.이 책은 여성의 참정권과 교육권, 직업에 대한 권리 등을 주장한 것으로 계몽주의 사상을 여성 문제에 체계적으로 도입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페미니즘 역사를 대략 200년으로 계산하는 것도 이 책에 나타난 이론 체계를 현대 페미니즘의 시초로 보기 때문이다. 그녀는 최초의 페미니히 아들을 위한 삶으로 일관되는 갇힌 삶의 여성들에게 자신을 위한 삶을 추구하라고 주장한 것이다.이들은, 여성문제의 근원이 여성에게 불리한 제도적 불평등과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남성지배적 인식에 있다고 본다. 평등한 법률 확보 등 제도개혁을 주장한다. 초기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심리체계와 성적 특성은 본질적으로 남성의 그것과 동일하나 왜곡된 역사, 문화의 진행으로 인하여 변형되었기 때문에 남성의 사회, 문화적 영역에 여성이 동참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평등을 위해 왜곡된 역사, 문화에 투쟁해야 하며 이 과정을 통해야 만이 여성의 자아실현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따라서 그러한 투쟁은 종종 여성들을 남성처럼 되게 하는 작업으로 간주되었다.20세기 후반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결성된 전미여성연맹의 활동으로 대표된다고 할 수 있다. 전미여성연맹은 여성의 지위를 조사하기 위하여 조직된 여성지위위원회의 제 3차 연례회의에 참석한 몇몇 여성들을 중심으로 결성되었다. 프리단을 회장으로 하며, 전문직 근로직, 정부/언론/산업단체 등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온건파에 속하는 이 단체는 성별에 따른 차별을 철폐하라고 주장하면서, 고용/교육의 기회균등, 동일노동/동일임금 보장, 낙태의 자유 등을 호소하였다.문학 연구에서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실천적 행동은, 주로 백인남성 작가들과 작품 위주로 형성된 표준정전(canon)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외된 위대한 여성작가들과 작품이 포함되도록 요구하고, 학계에서 활약하는 여성들에게 남성과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도록 사회 여러 분야에 촉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은 기성의 정치적 사회적 구조를 완전히 무시하거나 혁파하기 보다는 기존의 틀 안에 여성의 입장이 반영되도록 개량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다. 이들의 수정주의적 태도는 혁명적 철학을 지지하는 급진적 페미니스트들로부터 미온적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자유주의 페미니즘은 일부 백인 지식층, 상류층 여성들에 의해 제기된 남녀평등의 주장이 자유주의 무관한 현실을 고발한다.“여자는 우발적인 존재이다. 여자는 본질적인 것에 대하여 비본질적인 것이다. 남자는 주체이다, 남자는 절대이다, 그러나 여자는 ‘타자’이다. … 여자의 초월은 다른 본질적, 주권적 의식, 즉 남성에 의하여 영원히 초월되기 때문에 여자는 늘 객체로 응결시키며 내재 속에 갇혀있기를 요구 당한다.”보부아르는 실존철학에서 설정하는 인간의 범주에는 남성만이 속하고 있으며, 여성이 처한 상황은 동, 식물의 존재를 나타내는 개념인 비존질, 즉자존재, 내재의 개념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인간인 남자가 규정짓는 존재, 본질인 남성이 규정짓는 부차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는 “제 2의 성”으로 존재할 뿐이다. 남성이 본질적 존재이며, 여성은 소외되고 비본질적 존재라면 양성의 관계는 실존철학에서 규정짓는 인간 관계와는 상이한 특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샤르트르가 사회관계를 타자를 객체로 만듦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회복하고자 갈등하는 대자존재들의 관계라 규정하고 있다면, 보부아르는 남녀사이에 이러한 상호성이 존재하지 않는 사실에 주목한다. 보부아르의 여성주의적 존재론은 성의 구분 없이 정의된 성중립적인 자아개념을 넘어서서, 여성적 자아의 회복을 문제 삼는다.여성적 자아에 대한 보부아르의 이론은 가부장제 사회에 의해 주입된 여성의 거짓된 자아의 모습을 밝혀내어, 여성의 참 자아 창조를 위해 기폭제 역할을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보부아르는 인간 존재가 자신 스스로의 자유로운 결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 간주하는 실존주의적인 입장에서, 여성 존재가 지닌 자아 회복을 위한 가능성을 역설한다. 여성 존재에게 각자의 결단과 선택에 따라 자신이 삶을 결정하고 창조하는 가능성이 부여되어 있으며, 여성의 노력으로 이것이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보부아르는 실존철학의 이론틀을 그대로 양성관계에 적용하기를 거부한다. 이것은 인간의 실존적 자기 실현에 관한 실존철학의 성중립적인 개념이 여성존재에 그대로 적용될 수 엇다는 여성주의적 인식에서 연유한다. 보부아르의 이러한근거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라 하였다.또한 노동의 성적 분업에 의한 노동 가치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여성이 공공산업에 투입되는 경우, 그녀는 그곳에서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교육, 간호, 서기일, 요리 등등을 수행하는 경향이 있고, 더군다나 남성의 일과 필적할 만한 일에 대해서 지불되는 여성봉급은 평균 잡아 남성봉급의 3분의 2가 채 못 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여성의 일은 가정에서와 같이 평가절하 당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면서 만일 봉급을 받는 여성들이 그들의 직업의 가치만큼 급료를 받게 된다면, 남성들에게 소속될 필요 없이 적절하게 자립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전통적인 여성의 일에 더 많은 임금을 제시하게 되면 남성들도 적어도 어떤 직업에는 매혹되리라고 주장한다.◎ 사회주의 페미니즘[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발생 배경 및 정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서구의 주요 페미니즘 이론 중의 하나로서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이 가부장적 자본주의에서 이등급 시민들이라는 것을 믿는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1970년대 무렵에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반발로 제기되었다.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계급' 뿐만 아니라 '성별'도 여성 억압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과 다르다.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들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성 문제에 무관심했으며, 성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 그리고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지나치게 생물학적인 성에만 관심을 두고 '가부장제'를 심리적, 문화적 상부 구조로만 보는 것을 비판하였다. 즉 사회주의 페미니즘은 자본주의, 남성 지배, 인종 차별, 제국주의 등을 분리할 수 없는 문제라고 파악하기에 자본주의 체제와 남성 지배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위해서 이들 사이의 긴밀한 관계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그러므로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 보는 여성문제는 가부장제만을 여성 억압의 체계로 보는 급진적 입장이나 여성 억압을 낳는 근본을 자본주의제로 보는 마르크스주의적 입장과는 달리, 여성 문제 자체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결합에서 복합적티그는 레즈비어니즘을 남성과 여성이라는 성의 범주를 뛰어넘는 유일한 개념으로 파악했다. 왜냐하면 레즈비언은 이성애적 사회 관계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남성, 여성이라는 이분법에 속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여성을 만드는 것은 한 남성과의 특정한 사회적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레즈비언은 이성애자가 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개인적, 육체적, 경제적 예속의 의무를 암시하는 남성과의 사회계약적 관계인 결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이성애를 거부하여 레즈비언이 된다는 것은 여성이라는 범주에서 탈출하여, 여성도 아니고 남성도 아닌 범주에 드는 것이다. 섹스/젠더는 제도화된 이성애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성애 조직은 이성애를 실행함으로써 재생산을 구조해 나간다. 이성애의 실행을 위해서는 성적 욕망이 이성애적이 되도록 두 가지의 성 구별의 창출이 필요로 한다. 이성애 제도 안에서 용인되는 성별은 성의 실행과 욕망을 계속해서 유지시키는 두 개의 성별뿐이다. 재생산, 해부 구조, 이성애적 욕망, 성별 형태의 표준을 위반한 개인은 뚜렷한 성 정체의 영역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다. 그들 가까이 있는 섹스/젠더라는 범주는 그들에게 적합하지 않다. 그들은 해부학적으로나 욕망, 그리고 성별로도 ‘여성’이라는 범주에 자연스럽게 연결지어지지 않는다. 현대의 성 과학이나 의학은 동성애자나 레즈비언들의 태생적 다름의 가능성에 대한 연구 결과들을 종종 발표한 바 있다. 예를 들면 해부학적으로 약간 다른 성기 구조나 뇌의 호르몬에 대한 것들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레즈비언의 해부학적 구조만으로 그녀들을 ‘여성’이라는 범주에 속하게 할 수는 없다.레즈비어니즘이 거짓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남성/여성이라는 해부학적 차이가 남성과 여성의 성애적, 사회적 관계의 다름을 나타낸다는 것과 혹은 남성/여성으로 각각 다르게 기능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은 레즈비언의 생물학적 여성 육체는 여성과의 관계에서 남성으로 기능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레즈비언되었다.
Ivan Illich의 ‘학교 없는 사회’ 를 읽고‘학교’는 나에게 22년간 신성한 교육의 장소로서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공간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공교육의 붕괴라는 기사를 읽거나 교사의 권위가 떨어져가는 현대사회의 교육의 현실을 접할 때면 학교의 개선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한 심정으로 지금의 학교는 지식정보제공의 독점적 지위를 상실한지 오래이다. Illich는 학교를 ‘과정과 목적이 혼동되는, 제도화된 공간’이라 칭하며 이 학교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되며 더더구나 평등교육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학교의 존재자체에 대해서 의심조차 해본 적 없던 나에게 Illich의 이러한 주장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Illich는 의무취학이 사회를 양극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는 학교제도의 극복을 통해 현대산업사회와 그 문화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려 하며 이 책에서 교육의 새로운 국면을 제시하고 있다. 나는 자본주의에서 부와 빈은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믿지만 차이를 줄이려는 Illich와 같은 노력과 시도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독서와 작문2년이면 2010년을 바라보는 현대를 사는 나에게도 이 책은 제목부터 꽤나 급진적으로 느껴졌다. 하물며 이 책이 출판된 1970년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파격적이었을까? 그의 시대를 앞선 생각에 나는 혀가 내둘러진다. 학교의 폐지는 어떻게 보면 곧 교사가 될 교대에 몸담고 있는 나의 가치관에 반하는 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4년 후의 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현장에 던져졌을 때 맞닥뜨릴 학교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 한번쯤 미리 생각해 볼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뿐만 아니라 교사가 될 많은 학생들이 이 책을 읽고 학교의 어두운 면을 깨닫고 또한 이런 문제점에 대하여 생각해보며 이를 개선하려는 태도를 가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높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학교라는 제한된 틀 안에서 익숙해져 학생들을 그 틀에 맞추기보다는 아동들의 여러 가지 발전성과 창의성을 발견하고 키워 줄 수 있는, 그런 조력자로서의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었다.그리고 나는 그의 극단적인 생각에서 우리는 학교 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한다. 극단적인 생각이지만 그에 따른 대안과 근거가 꽤 체계적이고 탄탄한 면까지 가져서 나로 하여금 놀라게 하였다. 나는 이때껏 교육 = 학교로 인식하고 살아왔다. 나 또한 학교의 한계에 대해서는 Illich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교사가 방해가 된다는 의견엔 쉽게 긍정이 가지 않는다. 내가 교대에 몸담고 있는 것이 이유가 되겠지만 나는 교사는 교육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예절도 가르치며, 또래와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사회를 가르쳐주는 어른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학교도 문제점을 보완해가며 발전의 노력을 비치고 있다. 각 대학마다 실천하고 있는 평생교육원이나 쌍방향 상호소통이 가능한 사이버 교육이 바로 그것이다. 아직 실용화 단계에 까지는 아니지만, 이는 학교 교육이 특정 나이에 국한되어 있고, 폐쇄적이라는 기존의 관념을 부수기에는 충분하다. 물론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노력과 시도가 필요하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이 같은 노력을 긍정적으로 보고 힘을 실어주는 자세가 필요하다.내가 Illich의 생각 중 가장 마음에 들면서 동의한 부분은 평생교육이란 부분이었다. 즉 누구든 학습하려고 생각만 한다면 연령에 상관없이 교육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나 교재를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는 뜻이다. 나는 배움에는 나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재수학원에서 만났던 같은 반 오빠와 언니들과 교대에 와서 다른 대학까지 마치고 온 동기 분들과 자신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더 절실히 느꼈다. 자신의 꿈을 위해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내 생각과 그러한 나의 믿음에 힘을 실어준 Illich의 생각에 매우 동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