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존경 받는 기업 - 유한킴벌리유한킴벌리는 제약회사인 유한양행이 미국의 킴벌리클라크와 합작투자로 1970년 3월 30일 설립하였으며, 1984년 8월부터 실시한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캠페인을 통해 널리 알려진 기업이다. 유한양행의 창립자인 故 유일한 박사가 전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고하는 등 뛰어난 업적을 남겨 전문경영인 등장의 길을 여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기에 유명하였고, 이에 더해 1990년대 IMF를 맞은 우리나라에서 많은 회사들이 구조조정과 감원을 겪어야했음에도 불구하고, 감원은커녕 오히려 인력을 새로 뽑는 등 획기적인 조치를 감행하였기에 더욱 유명해진 기업이다.이 때의 기업 사장이었던 문국현 사장이 개척한 것이 뉴패러다임이다.뉴패러다임(NewParadigm) = 조직 재편성 내지 인프라의 개조 + 평생학습 체제 구축⇒ ‘근무조 확대를 통한 근로시간 단축과 직장 내 평생학습 체제 구축 → 과로체제 탈피를 통한 삶과 직장의 조화와 지식노동자 양성 →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경쟁력 제고 → 고용 안정’∴ 노동자를 주인의식을 갖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창의적 인간으로 생각사원들의 높은 주인의식과 자부심cf) 대기업의 ‘고용없는 성장’뉴패러다임을 통해 유한킴벌리는 유수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문국현 사장은 뉴패러다임연구소의 대표를 맡는 등 다방면의 활동을 펼칠 수 있었다. 또한 ‘유한킴벌리 배우기’라는 형태로 중국의 ‘드리커아카데미’, 유한킴벌리의 모회사격인 킴벌리클라크와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한 일본의 ‘크레시아’가 유한킴벌리가 추진했던 모든 경영방식을 옮겨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이러한 뉴패러다임으로 인해 탄생하는 것이 직원의 마음과 열정으로 발하는 업무성과다.3H이론 = 직원의 손(Hands)을 움직이게 하면 개인 잠재능력의 20~30%, 머리(Heads)를 움직이는 지식노동자로 양성하면 40~50% 발휘하게 할 수 있지만 마음(Hearts)을 움직이면 80~90%까지 가능하다.이는 유한킴벌리의 기업문화를 살펴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는데, 자율성과 투명경영이 그 모토이다. 자율복장제가 실시되는 금요일의 사내분위기, 누구나 컴퓨터로 확인 가능한 경영지표, 사장에 의한 직접적인 경영상황 계시와 나아갈 방향 제시를 알려주는 비디오 사보 등을 통해 회사와 직원간의 신뢰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사실 이러한 것만으로 회사가 발전의 길을 내달리는 것만은 아니다. 좀 더 뛰어난 생산력, 획기적인 경영을 통해서 회사는 더욱 성장하는 것이다.4조 3교대의 경우 ⇒ 7일간 야간 근무 → 2일간 휴식이나 교육 → 7일간 주간(낮) 근무 → 2일간 휴식과 교육 → 하루 교육 → 7일간 오전 근무 → 2일간 휴식과 교육.∴ 노동자 1명이 연평균 320시간의 교육 받음. (이는 특별근무로 인정돼 급여 지급)이러한 생산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이 기계부품처럼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장 내 모든 기계를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유한 킴벌리의 실적을 살펴보면 재해율이 감소, 불량률이 낮아지고 생산성이 증가하였는데. 이는 4조 근무제로 충분한 휴식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유한킴벌리의 사내활동도 뛰어나지만 사외적활동, 즉 사회활동도 우수하다. 유한킴벌리의 대표 홍보문구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는 회사를 모르는 사람도 알 정도로 유명한 어구인데 이 캠페인을 시작한 사람이 바로 문국현 전 사장이었다. 캠페인을 통한 환경기금 조성, 나무심기, 환경교육, 전문가 양성에 힘쓰는 한 편, ‘생명의 숲가꾸기 국민운동’ 등을 행하기도 하였다. 이를 통해 ‘글로벌 500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2011 한국사회공헌대상’에서 환경생태보존부문 대상에 선정되었다.진실된 환경경영이라 할 수 있는 것이, 그 당시에는 한국전쟁과 1960~1970년대 막연한 경제개발로 인해 이른바 ‘민둥산’이 팔도강산 곳곳에서 흉측한 모습을 드러내던 시절이었고, 나무가 없었기에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도 막기 힘들정도였다. ‘국가가 있어야 기업이 있다’라는 마인드로 시작된 국제 경제발전이라는 대명제 하에 시작된 국가적 차원의 숲가꾸기 캠페인이였기에, 국·공유림 나무심기를 통해 2009년 기준으로 505만여그루의 나무를 국내에 심었다. 이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지구온난화, 황사 등 글로벌 이슈와 부합되어 북한, 몽골 등 인접 국가 숲 복원 차원에서도 1800만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꾼 것이다. 진정한 환경경영이라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사회활동만으로 끝이 아닌 것이, 실제로 연구하고 제품으로 판매하고 있는 제품들 중 많은 제품이 친환경 소비에 앞장서고 있다. 기획 상품 포장재 소재를 더 가벼운 재질로 변경했고 포장재 두께를 줄이고, 이중 포장 자체를 없애는 등 판매제품에서도 환경경영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어불성설로 들릴 지도 모르는 얘기지만 유한킴벌리는 OECD 꼴지의 기록을 해마다 유지하는 우리나라의 출산율에도 많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2010년 회사 여직원들의 평균 합계출산율은 1.84명으로 우리나라 평균인 1.22명을 크게 웃돌고 OECD의 평균인 1.74명보다 높은 기록을 세운 것이다.유한킴벌리1.00(명)1.271.311.561.741.84우리나라1.08(명)1.121.251.191.151.222005(년)2*************092010이를 통해 본다면 유한킴벌리가 우리나라 출산율에 지대한 도움을 주고있다고 하는 것이 어불성설만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출산율이 나오게 되는 데는 유한킴벌리의 가족친화경영 때문이다. 대학학자금 지원 자녀의 수를 폐지하고, ‘가족사랑의 날’을 매주 한 차례 정해 정시에 퇴근하여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도록 한다. 또한 임산부나 어린 자녀를 둔 여직원들을 배려한 유연근무제와 현장출퇴근제도 시행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인해 2008년도에는 보건복지부로부터 ‘가족친화우수기업인증’을 취득하기도 했다.지금까지 살펴본 것에 따르면 직원을 상대로한 조사에서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96.3%, 2010년 이직률 0.1%의 경이적인 수치가 나오는 것이 의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다 아는 화장지의 ‘뽀삐’, ‘크리넥스’, 귀저기의 ‘하기스’, 생리대의 ‘화이트’, ‘좋은느낌’을 생산하는 유한킴벌리는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직원가치와 사회공헌과 환경경영 활동 등을 평가해 측정하는 사회가치 등의 평가항목을 종합해 나오는 결과를 살펴보면 유한킴벌 리가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30대 기업에 들어가는 것은 결코 의아한 얘기가 아니다. 이러한 결과는 사실 IMF 때부터 지속적으로 나온 결과로서 이는 장기간 유한킴벌리가 국민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이렇게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 중 하나이지만 나는 그다지 좋아하는 기업은 아니다. IMF를 맞이해 혁신적인 경영방침을 내세워서 이후 전국민적으로 이슈가 된 기업이고 그로 인해 국가적으로도 상당히 많은 지원을 해주었고, 다른 기업에서도 친유한킴벌리 사규를 펼쳤다. 이러한 관계는 몇 년 째 지속되어오고 있는데, 좋은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고, 문국현 전 사장의 정치출범과 대통령 후보 출마로 인해 그 이미지는 더욱 하락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확실히 가족친화경영, 환경경영, 윤리경영의 모습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요즘에서야 직원들의 평생교육 등의 복리후생은 어느정도 큰 규모의 회사에 들어가면 어디에나 있는 얘기기 때문에 선구자적 의미가 퇴색되었다고 할 수 있지만, 유한킴벌리의 인간존중과 사회공헌의 경영철학은 어느 기업을 둘러봐도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유형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8년 째 1위 행진을 지속해온 삼성전자와 비교를 해보아도 그렇다.
-공연예술전위 의 1. 작품의 주제 및 작가의 현실인식지금에서는 볼 수 없는, 옛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빛나던 예술의 혼을 다시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이 드러난 연극. 이 연극은 그러한 마음에서 탄생해 우리의 불우한 현실을 잘 나타내면서, 그러한 현실 속에서 벗어나 ‘유토섬’이라는 이상향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각박하고 꿈이 적은 현실에서라도 우리는 지향하는 곳으로 떠나야한다는 주제가 잘 나타나 있다. 세상에 타살 당했다는 시인은 세상이 암막한 것 같다는 작가의 현실인식이 잘 반영된 장치라 할 수 있다.2. 배우의 연기1) 앙상블 - 연극에서 중요한 흐름, 조화를 이 극에서는 인물의 각 행동을 통해 이루어 내었다. 포장마차하면 생각나는 풍경들을, 자기에게 주어진 대사가 없고 장면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손님의 입장의 개인들은 앞에 놓인 술을 마시고, 여주인은 안주거리를 만드는 식으로 조화롭게 장면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차례가 아니라고해서 행동을 멈추고 있었다면 조화가 깨졌을 것이다. 특히 각 인물이 양산박에 들어올 때마다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인물에게 옮겨가는 것은 바람직한 모습이었다.2) 반응연기 - 인물들간의 대화에서 화자의 말에 적당히 추임새(음, 허 등)를 넣으면서 작은 액션을 취해줬다. 희극적인 요소로써 칼을 휘두르는 범죄자에 대해 여자배우 뒤로 꼬리빠지게 도망치는 현대병중증이라는 장년의 반응은 굉장히 재밌는 모습이었다. 극 중후반에 가서 나오는 노래(봄날은간다?)에 대해서도 노래를 따라부르는 등으로 반응연기를 보여주었다.3) 대사의정확성 - 시쳇말로 “대사를 씹다”라는 것을 새소리를 좇던 청년이 몇 번 보였던 것을 빼면 다들 잘 대사를 전달해 줬다고 본다. 처음에는 말더듬이의 행동과 그 언행의 부조리(더듬는 말투에 반해,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가 눈에 밟혀 집중이 안 됐지만 상황을 이해하고 난 다음에는 그럭저럭 넘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본극(양산박에서의 이야기)의 서막과 종막에 나오는 시인의 시는 정말로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됐는지 의문이다. 쓸쓸한 노래와 고독한 걸음이 시에 곁들어져있어 분위기적으로는 올바르다 보지만 시를 듣는 것보다 읽는 것에 길들여져있는 우리들에게는 다소 음미하기 힘든 전달방식이 아니었나 싶다.4)내면적연기표출 - 이런 내면 표출을 가장 많이 나타내고 잘 나타낸 인물은 범죄자이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릴 때마다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거나 발을 둥둥 구르는 등으로 잘 표현해 줬다. 대사로는 자신은 전혀 겁먹은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실제 행동은 전혀 달랐는데, 이러한 것이 마임적 표현이 아닌가 싶다. 또한 강간당할 뻔 했던 여자 역시 정말 참을 수 없다는 듯한 마음을 괴성이나 몸을 격하게 흔드는 등으로 잘 나타내주었는데, 이런 마음이 시간이 지나가면서도 아직 남아있다는 듯이 행동으로 지속적으로 보여주었다. 겁먹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여자들 뒤에 숨는다거나, 너무 화가나서 멱살을 잡는 등 다른 장면에도 내면표현은 많이 있었다.3. 무대 미술 및 장치극 배경으로 사용된 도심의 거리사진은 전체적 부산이라는 이미지에 잘 어울렸다고 본다. 또한 포장마차라는 분위기를 정말 잘 살렸다고 본다. 요즘 포장마차 중에 등을 달아놓는 곳이 있는가 싶기도 하지만, 옛 양산박을 본 따 만든 것이라 생각하면 납득할 수준이다. 옛 양산박, 즉, 예전과 같은 어두운 사회 속에서도 불타는 혼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이 아닌가하다. 군더더기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이, 무대를 전체적으로 잘 활용했다. 이는 무대를 테이블 2개와 포장마차 1개로 모두 세 부분으로 나누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선을 이리저리 옮기게 만들었는데, 한 장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기에 다소 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점을 테이블을 이용해서 잘 소화했다.4. 조명의 역할(기능)전체적으로 컷 인·아웃이 사용됐는데, 장을 구분하는 용도로 쓰였다. 사실 장의 구분이 전체적인 분위기의 전환 시점인데,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나 새로운 사건이 발생할 때에 컷아웃인이 됐다. 이 장의 변화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겁탈의 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여자가 급하게 달려오면서 겁탈 당할 뻔 했다고 한 다음 컷 아웃되면서 장이 전환되는데, 컷 인이 되고 난 이후 안경 쓴 청년의 인물상이 탁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여성들을 희롱하는 범죄자에게 격하게 반응했다면, 이 장면에서는 청년이 형사와도 변호사와도 같은 성격을 띄게 된다. 청년은 사건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진술하게 만들어 사건을 표현해 내는데, 이는 조명의 끊고맺음으로 갑작스런 성격의 변화에 따른 관객들의 당황스러움을 잘 감싸주었기에 가능한 것이다.5. 연출의 특징퉁퉁배의 소리와 함께 본극은 시작했는데, 그 장소가 여객터미널과 가까이 있다는 것을 청각적으로 잘 나타냈다. 가끔 깔리던 드라이아이스와 같은 것들도 의도와는 조금 다르긴 하지만 안개와 같은 느낌이 들었기에 좋았다. 코믹릴리프로 쓰인 연출도 있었는데, 범죄자와 안경 쓴 청년이 싸우는 긴장감이 높은 장면에서 주먹을 내지를 때 슬로우모션과 익살스런 음향효과로 연출했다던가, 화장실에서 시체를 발견했기에 극이 절정에 올랐나 싶었더니, 말더듬이의 입이 뻥 뚤린 것을 서로 축하한다는 식으로 연출했다. 이는 현실의 상을 반영한 것이기도 한데, 사회에의 무관심이나 진지하지 않다는 점을 나타낸 것이 아닌가하다. 물론, 이런 역전으로 다음에 올 상황이 더 효과적이고 인상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독특한 연출법이라 느낀 것은, 극의 마지막에서 나온 기계에 관한 것이다. 사실 기계라고는 말을 하지만 이는 단지 기계음이 들렸기 때문에 나오는 말인 것이고 기계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보여준 것은 아니다. 왜 이런 연출법을 사용했는지 한동안 생각해봤는데, 사실 현실이 아니다라는 것을 다소 몽환적인 연출들로 표현해왔기에 그런 세계관의 분위기다 라고 납득하고 보아왔다. 그 와중에 나타난 SF적 요소에 의해 세계관이 이그러지고 관객들에게 당황스러움을 안겨주었는데 직접적인 묘사와는 다른 청각적인 표현만을 통해 이를 경감시켜준 것이 아닌가하다. 주제와 연관지어보자면, 인정이 사라져 딱딱하기만한 오늘날의 인간상을 기계의 형태가 아닌 소리로 제시해서 옛 양산박의 환생이라고도 할 수 있는 꿈을 좇는 양산박 사람들과 대비시킨 것이 아닌가하다.
미야자와 겐지의 『은하철도의 밤』이 책을 어떻게, 왜 읽게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중학교 때쯤 읽었던 것을 생각해본다면, 아마 독후감 숙제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유추해볼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상에 깊이 남은 문학작품을 떠올리자면 이 작품이 바로 생각날 정도로, 저에겐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작품입니다.동화라는 미명 아래, 잔혹이라고 써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을 무심한 결말은, 이 책을 읽는 모든 아이들에게 충격을 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감수성이 풍부했던 나이이니만큼, 아름다운 별세계를 감상하다 캄파넬라의 죽음을 직면했을 때의 충격은 오죽할까요. 그 당시 저는 캄파넬라가 왜 죽어야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그저그렇게, 이 작품은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니라 생각하며 책을 닫을 수 밖에 없었죠.이번에 과제를 받아보며, 이 의문을 해결해보자 『은하철도의 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죠반니에게 있어 소꿉친구였던 캄파넬라는 동경의 대상이고, 어디까지나 함께하고 싶은 소중한 사람이었죠. 그런 두 아이에게는 모델이 있었다고 합니다. 소극적이고 고독했던 죠반니는 미야자와 겐지 자신이고, 캄파넬라는 그의 여동생인 토시라 알려져 있습니다. 두 살 터울인 남매는 어릴 때부터 무척 사이가 좋았다고 합니다.열여덟 살 때 법화경에 눈 뜬 겐지(작중에도 불교사상의 색채가 은연 중 흐른다.)는 열렬한 정토진종의 신자였던 아버지와 대립하게 되죠. 토시는 그런 겐지를 이해해주고, 가족 중 유일하게 법화경의 가르침을 믿으며 겐지의 버팀목이 되어줍니다. 겐지에게 토시는 단순한 동생 이상의, 사상을 공유할 수 있던 유일한 존재였다고 합니다. 이를 생각해보면, 죠반니가 캄파넬라를 그렇게 좇은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캄파넬라가 죽은 것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힘들죠.겐지가 26살이 되던 해 겨울, 그렇게 사랑했던 동생 토시는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렇게 유일한 길동무를 잃은 겐지는 동생이 죽은 지 2년 뒤에 『은하철도의 밤』의 초고를 완성하게 되죠. 그 뒤에도 겐지는 슬픈 일을 수없이 겪습니다. 흔히, 겐지가 고향의 농민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성인이라 칭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간관계가 서툴러 아버지와 친구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고, 작가로서 인정받지도 못했습니다. 흉작에 고통받는 농촌 사람들 앞에서 전공을 살려 토마토나 튤립 등의 작물을 재배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괴짜 취급을 받곤, 친구에게 고향을 폄하하는 편지를 쓰기도 했답니다. 생전에 출판한 단 두권의 책, 시집 『봄과 아수라』와 동화집 『주문이 많은 요릿집』은 평가도 좋지 않았는데, 책이 팔리지 않아 자신이 재고 200부를 살 정도였었죠. 그만큼 겐지는 괴로움과 절망, 현실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동화를 지었다고, 처음에는 생각했습니다.비에도 지지 않고바람에도 지지 않고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튼튼한 몸을 갖고욕심은 없이결코 성내지 않고언제나 조용히 웃고 있고가뭄 때에는 눈물을 흘리고추운 여름은 허둥지둥 걸어사람들에게 멍청이라고 불리고칭찬받지도 않고걱정시키지도 않는그런 사람이난 되고 싶다.겐지의 유명한 시 『비에도 지지 않고』는 병상에서 쓴 작품입니다. 이 당시 겐지는 죽음을 각오하고 유서를 쓸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고 합니다.그럼에도 시 안에 절망의 기색은 없습니다. 괴로움에 몸부림치더라도, 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있죠. 겐지는 생애 몇 번이나 좌절을 겪었지만, 자신이 어떤 입장에 처해있든, 이상을 품어 나갈 거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마음 속에 그린, 그런 자신이 되고싶다고 말하는거죠.『은하철도의 밤』은 9년 간 몇 번이나 수정을 거쳤다고 합니다. 현존하는 원고는 네 번째 원고까지인데, 세 번째 원고까지 나오던 불카니로 박사라는 인물은 네 번째 원고에서는 사라졌습니다. 세 번째까진 캄파넬라가 강물에 빠진 사실이 독자에게 확실히 전달되지 않지만, 네 번째 원고에서 불카니로 박사가 사라지고 등장한 캄파넬라의 아버지에 의해 캄파넬라가 강물에 빠져서 죽었다는 얘기가 전달되죠. 죠반니에게 앞길을 제시했던 불카니로 박사가 사라졌기에, 네 번째 원고에서부터는 죠반니가 캄파넬라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독자에게 맡기는거죠.
사회를 향한 고발, 그러나 ….- 철강, 스테파노 모디니 감독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듣고, 관심을 가지는 노동자계급. 노동자계급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대립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만큼 노동자계급이라는 것은 문화인에게는 친숙하고 받아들이기 쉬운 메시지 중 하나 일 것이다.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언급한 것을 보고, 이 영화 역시 이 노동자계급의 피폐한 일상을 그렸고, 사회에 고발을 하기 위한 영화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하기에 부산국제영화제를 즐기기 위한 전채요리로서,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 영화로 이 영화를 골랐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실비아 아발로네의 소설, Acciaio를 재탄생시킨 영화, 철강은 크게 두 집단을 내세워 이야기를 짜나간다 할 수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기도한 안나와 그녀의 둘도 없는 단짝 프란체스카의 이야기, 안나의 오빠이자 거대한 제철소의 노동자인 알레시오의 이야기. 그러나 영화의 대부분은 안나 쪽 이야기에 집중되어져있다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임팩트의 대부분이 안나에게 쓰였기에 아쉬운 점이 많다.영화는 안나와 프란체스카의 관능적인 여러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쩌면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관능적일 뿐, 먼 이탈리아에서는 당연한 소녀들의 일상일 지도 모른다. 그러한 일상을 안나는 자유롭게 즐기며 그네 또래의 당연한 고민인, 미래에 대해서도 상상해본다. 이런 안나와 다르게 프란체스카는 안나에게 얽매여있어서, 아이를 갖고싶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안나와는 달리, 안나가 아이를 갖는다면 자신도 갖는다고 대답한다. 자연스럽게 안나에게 키스도 건낸다. 이 뿐 아니라, 안나는 자연스럽게 남자와 놀지만 프란체스카는 남자와의 접촉을 살짝 꺼리고, 안나가 좋아하게 되는 알레시오의 친구 마티아를 질투하고 기윽고 안나와 절교까지하게 된다. 절교 후 프란체스카는 비행을 일으키며 지내는데, 이런 많은 장면들을 통해 프란체스카는 동성인 안나를 좋아하는 동성애자가 아닌가 관람객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고, 둘의 관계가 ’ 알레시오의 옛 애인이자 제철소의 사무원인 엘레나에게 소리치는 장면 뿐이라 할 수 있겠다.실제로 GV에서 감독을 향한 질문은 대부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안나의 미래에 관한 것이었지, 영화에서 그려지는 노동자계급의 삶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감독이 직접 GV에서 언급한 ‘권력있는 사람들에게 접근조차할 수 없는 노동자계급의 삶, 이탈리아의 이런 전반적인 상황을 알리고 싶었다’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질문들이었다. 그러하기에 감독이 영화의 핀포인트를 잘못 잡은 것이 아닌가 감히 생각해보지만, 애초 목적했던 내용이 아니더라도, 영화가 자아낸 다른 삶의 모습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있게 다가온 영화가 아니었다 싶다.그 중 하나가 아버지와 아들의 대립구도이다.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없는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도맡게되는 알레시오와 갑작스럽게 집에 돌아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되받는 아버지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대립된다. 이 영화의 묘미는 이 대립구도에서 나타나는 아이러니함에 있다. 젊은 나이에 가장의 역할을 떠맡게 되는 것은 분명 힘들고 고단 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알레시오의 삶은 여유가 없고 피곤하기만 할 뿐이다. 집에 돌아오면 곧 침대에 누워 내일할 일을 걱정하며 잠들 뿐이지만, 이런 일상은 아버지가 돌아오면서 달라지게 된다.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버지는 보석반지와 새 차를 가지고 돌아오며 집안의 가계를 일으켜세운다. 그리하여 알레시오의 일상은 좀 더 밝아지고 여유가 생기게 된다. 아버지를 싫어하는 알레시오가 아버지에 의해 일종의 구원을 받는 아이러니함은 정말 멋지다. 하지만 이런 비틀린 구조는 단순히 생활의 구원에서만 나타나지 않는다.언뜻 보면 알레시오는 선하고 아버지는 악한, 선악의 대립구도라고 보기 쉽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느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다분히 의도적인 전개방식을 쓴 것 같다. 아버지와 알레시오가 대화하는 씬에서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구걸도 제철소 일보다 낫다. 이 곳을 떠난 뒤 회춘한 느낌이다. 또한, 제철소의 일 밖에 모르고, 당장 가정으로서의 역할이 필요했기에 다른 방식을 선뜻 찾아나설 수 없는, 자신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물들을 선악으로 명쾌하게 나눌 수 없는 것이다.부자관계의 아이러니함이 스프와도 같이 가슴 속을 따뜻하게 데워줘 다음 나올 만찬을 즐겁게해주는 멋짐을 보여주었다면, 안나와 프란체스카의 관계는 만찬을 끝낸 뒤 그 멋짐을 잔잔하게 즐기게해주는 디저트와도 같은 역할을 해주었다.알레시오의 오랜 친구 마티아에게 이끌려 그와 사귀게 되는 안나와 이를 질투하는 프란체스카의 관계는 우리나라에게는 아직은 이질적인 문화라 할 수 있다. 하리수의 데뷔, 홍석천의 커밍아웃 등으로 그 때까지 자리잡고 있던 남녀상열지사라는 철옹성은 금이가고, 퀴어문화가 대중에게 그나마 친숙하게 되어졌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이 꺼리는 게 사실이다. 극 중 내내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안나와 프란체스카의 관계를 우정으로 보아야하는지, 애정으로 봐야하는지였다. 이탈리아와는 문화권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옷을 벗고 놀거나, 키스를 하는 것이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해소되어져갔는데, 그들의 관계성의 확립은 관람객의 흥미여부와는 관계없이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카가 안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안나는 프란체스카를 어떻게 생각하든, 마티아가 나타나면서 일그러진 관계가 마티아가 사라지면서 진전·회복 되었고, 마지막에 와서는 예전처럼 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그 누구도 안나와 프란체스카에게 동성애를 언급하지 않았다. 즉, 안나와 프란체스카가 어떠한 관계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고, 이러한 만남, 이별, 재회의 구도가 성장해가는 소녀들의 성장통이며 통과의례가 아닌가를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영화 속 유일한 휴양지인 엘바섬에서 안나는 프란체스카와 재회하고 독백을 읊조리며 영화는 끝난다. ‘에서도 찾을 수 있다.’가 아닐까? 달리 말하자면, 기성세대의 답답한 고통스런 울타리 안에서도 신세대는 새로운 날개를 펼칠 수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이 영화는 전채요리로 활용될 수 있는 가벼운 영화는 아니었다. 그렇다고해서, 정찬에서 가장 기대하는 메인요리, 앙뜨레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포만감이 가득한 영화도 아니었다.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바가 분명했기에 그 것을 주(主)로서 삼아야 했지 않았을까? 극 중 가장 긴장미 넘치는 장면이자, 가장 직접적으로 관람객들에게 감독의 마음이 전해졌던 알레시오의 죽음 이외에는 이렇다 할 주제제시가 없었기 때문에 전채요리로서도 앙뜨레로서도 쓰이질 못하는 어중간한 콘스프와도 같다 할 수 있겠다. 스프로서 위장을 데워야할 것인데, 콘이 들어가 어중간해져버린 것이다. 분명 두 소녀와 부자(父子)라는 관계성을 읽고 즐거움에 빠질 수는 있겠지만, 이 또한, 여러번 곱씹어야 그 뛰어난 진미를 알 수 있을 정도여서 아쉬움이 많다. 원작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으면, 한번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그 맛은 훌륭했다 할 수 있지만, 무산계급과 유산계급의 갈등과 해소를 어떻게 표현했는가를 기대했던 입장에서는 씁쓸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콘스프라 하더라도 허기진 배를 따뜻하게 데울 수 있다. 분명 아쉬움이 많은 영화이긴 하지만, 아름답고 멋진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할 수 있겠다.국가라는 이름의 살인자. 국민이란 이름의 피해자.- 희망의 나라, 소노 시온 감독일본인의 국민성을 나타내는 단어 중 하나로 ‘태풍심리’라는 말이 있다. 이는 태풍이나, 지진, 화산폭발 등과 같은 자연재해는 인간의 힘으로는 막아낼 수 없었기에, 몇 세기를 거쳐 이런 재해에 길들여지고 어쩔 수 없이 적응하며 순응하게 되는 일련의 행동양식을 나타내는 심리용어이다. 작년 봄에 일어난 후쿠시마 현의 방사능 누출 사고는 전세계 사람들을 경악케했다. 그러나 이 것 외에도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침착한 일본 사람들의 행동이었다. ‘왜 저 나라 사람들은 방사능이 누출 되었의 생각을 직접 대변해서 말해주는데, 앞으로 일본인은 한걸음 한걸음씩 걸어가야한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한걸음 두걸음 점진적으로 나가야 할 텐데도, 여기서는 한걸음 한걸음 걸어야 한다고한다. 많은 관람객들이 이에 대해 작은 의문을 가졌을 것이고, 이에 GV에서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고도성장기에 급속하게 진흥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주위를 둘러보지 못했고, 이 때문에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지금 일본은 이런 과오를 되풀이하려하는데, 이제는 조금 더 천천히, 한발 한발 나가야 할 것이다.’올해 6월, 노다총리는 작년 3월 이후 전면 중단된 원자력발전에 대해, 불안한 감정을 나타내며 원자력 발전소의 재가동에 동의를 표명했다.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으로 생각하자면, 분명 여름의 전력난을 생각할 때, 원자력을 제외한 나머지 발전소만으로 여름의 막대한 전력소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불안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일본 국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총리의 이런 결정에 대해 크게 반발하며 그 날 이후 매주 금요일 밤 6시가 되면 총리관저 앞에 모여 탈핵집회를 개최한다. 첫 집회에 참가한 사람은 약 15만 명에 이르는데, 과거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에 의해 집회나 운동권에 대해 일반시민이 기피감과 혐오감을 나타낸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이는 정말 놀라운 일이다. 많은 이들이 재가동이 성급한 생각이고, 또 다시 사고가 일어 날 것임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것을 생각해 본다면, 소노 시온 감독이 표현한 ‘한발 한발’은 집회인들 모두의 마음을 담은 문구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구는 미츠루 커플을 통해 수없이 나오는데, 이와 더불어 함께 나오는 것이 또 하나 있다. 요코는 이후 피폭지역을 돌아다니며 ‘어이~’하며 외치기 시작한다. 이는 피폭지역에 혹시라도 남겨진 부모님을 찾기 위한 발성이기도 하지만, 쓰나미로 목숨을 잃은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부르는 호소이기도 하다. 그럼 요코는 왜 영령들을 불러야했을까? 감독이 직접적으로 언급한 바가 없기에
제 13회 부산영화평론가협회 시상식을 다녀오고...우리나라 유일의 지역 영화 평론회 시상식이라 자부하는 부산영평상 시상식을 보고왔다. 부산영평상 시상식은 1명의 심사위원장과 7명의 심사위원이 1년 동안에 모든 한국 영화를 보고, 3차례의 예심과 최종본선을 거쳐 10개의 수상작을 뽑아 상을 수여하는 시상식이다.근년과는 다르게 올해에는 몇 부분이 바뀌었다고 하는데, 먼저 재작년부터 수상분야가 대폭 축소되었다 한다. 영화계가 고무되어 상을 남발하게 되면 엄격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매우 공감하는 바이다. 상이란 상대적희소성을 충족시켜서야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나는 것인데, 우후죽순처럼 여러 상이 수여된다면 많은 이들이 그 상에 대해 신뢰성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상에 대한 엄격함을 또 알 수 있었던 점은, 올해에는 기술상이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작년에는 각본상이 없었다고 한다.) 많은 영화가 기술적 진보를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의미 있는 진보는 아니였기에 수상작은 없다는 발언을 통해 부산 영평회가 정말 공정하고 저력 있는 영화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이 말고도, 새로운 변화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기존에 전문심사위원(전문평론가, 감독, 관련학과 교수)로만 충족된 심사위원 자리를 20대의 특별심사위원에게까지 양보해주었다는 점이다. 부산영화평론가협회에서 어떠한 의도로 이러한 파격적인 행각을 선보였는지 알 수 없지만, 사회자의 말에 따르면 보다 다양한 심사를 위해서라고 한다.어린 글쟁이는 등단하기 위해 신춘문예 등에 응모를 하여 족적을 남기며 커가는데, 어려움이 많이 따르기 때문에, 자신이 커갈 수 있는 보금자리가 하나라도 더 있었으면하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 글쟁이에게 있어서는 기성 문인의 전유물이나 마찬가지인 평론회 심사위원의 자리는 대단히 감사한 커리어이다. 그런만큼 부산영평회의 이 변화는 대범하고 우미하게 보인다.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자면, 기성문인의 입장에서는 특별심사위원이 굴러들어온 돌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해, 부산영평회의 취지인 새로운 시각과 함께하는 토론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쌓인 내공의 수준이 많게는 1갑자에 이를 터인데, 특별심사위원의 글이 과연 기성문인의 눈에 찰까?부산영평상에는 심사위원특별상이 있다. 이는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독립영화 등 비주류를 위한 상인데, 취지는 좋지만 허울 뿐이라 느끼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영평상을 제정한 초기에는 시상식의 광고를 위해 기본적인 흥행작 위주로 시상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시상 연혁을 보아도 그 사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렇다면, 발전을 거듭해 규모가 커져 온 지금에서는 정말로 비주류만을 위한 상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그런데 왜 애니메이션이 시상된 기록은 없는 것일까? 애니메이션이야말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주류인 영화장르일터인데, 한 번도 시상되지 않았다는 점이 안타깝다.부산영평회는 지역영화계의 거목인 만큼, 그에 상당한 자부심 또한 가지고 있음을 잘 알 수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가치를 함껏 낮추고 마는 행태는 눈살을 찌푸리게했다.수상작과 그 이유를 스크린을 통해 귀만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여준다는 것은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지만, 내레이션의 미숙함(말의 어눌함, 미성의 여부, 표현의 자연스러움, 자막과의 일치성과 일관성 등)은 듣는 이로 하여금 부산영평상의 가치를 떨어뜨리는데 일조하였다. 한국의 영화를 조망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성우와의 관계가 좋지 않은 것인가 생각될 정도로, 왜 전문 내레이션을 고용하지 않았는지 의문이였다.또한, 부산영평상 시상식의 일정을 기획함에 있어서도 많이 의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왜 청룡영화제와 같은 날을 선정했는가이다. 꽤 많은 수상자들이 무대에 오르지 못한 것과,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생략해버린, 더군다나 올해 새로운 변신이라는, 신인남·여자연기상을 떠올려 본다면, 여타 영화제의 일정과 겹치게 한 것은 큰 미스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부산영평회가 좀 더 발전을 생각하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찾아올 수 있도록 스타들의 시상식 참석을 적극적으로 유치해야 할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은 관람객 입장에서는 부산영평상의 가치를 마음 속에서 한 단계 격하시킬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