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청전은 경판본과 완판본으로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경판본 : 24장, 완판본 : 71장문학은 당시의 사는 인생과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이상을 향해 상승을 위한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대 문학에서도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이유는, 현재에 연구가 많이 이루어진 고대 소설이나 고대 시가 등의 작품들 속에 여성이 중심제재로 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성 중에서도 특히 열녀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것이 열녀를 중심으로 하여 쓰여진 것인지, 단순히 절개의 내용만 가져오고 핵심은 다른 곳에 있든지, 어쨌든 관심 대상을 여성으로 하여 작품을 표현하고 있다는 데에서 고대 문학속의 여성상을 알아보는 것은 그 문학작품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고대 문학 속에 나타나는 여성은 위대함 같은 위상보다는 대부분 여성의 고뇌와 아픔, 슬픔 등에 대해서만 주로 다루어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저희 조는 이 두 작품들을 여성 주의적, 즉 페미니즘적 관점에 입각하여 작품의 주제와 등장인물들을 통해 살펴 볼 수 있었던 당 시대 인식 속의 여성의 존재와 여성성에 대해 공부를 해보았습니다.□ 심청전심청전은 18-19세기의 우리나라 상황을 잘 대변합니다. 가족사이의 일을 그린 이 이야기는 조선조 후기의 유교적 가부장제에서 나온 것으로 혼인과 상속 등이 남성위주고 여성은 남성에 예속되는 수단적 존재가 된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우선 심청전의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송나라 말년 황주 도화동이란 곳에 양반의 후예로 행실이 훌륭한 심학규라는 봉사가 곽씨 부인과 살고 있었다.① 황주땅 도화동에 눈먼 심학규에게는 생후 7일 만에 어머니를 잃은 심청이라는 딸이 있었다.② 심봉사가 동냥젖을 먹여 키운 심청은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지극했다.③ 심청이 15살 되던 해 심봉사는 공양미 삼백석을 시주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몽은사 화주승의 말을 듣고 덜컥 시주를 약속하고, 이내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후회한다.④ 심청은 부친의 눈을 뜨게 하려고 몽은사에 시주할 공양미 삼백석을 마련하기 위해 인당수 인제수를 구하는 남경 상인에게 자신의 몸을 판다.⑤ 그 후 심봉사는 뺑덕어미라는 음란하고 간교한 여자와 살며 세속적인 인간으로 변모하게 된다.⑥ 한편 인당수에 빠진 심청은 죽지 않고 수정궁에서 지내다가 연꽃으로 변하여 인당수에서 다시 선원에게 발견된다.⑦ 선원은 이 꽃을 건져 황제에게 바치고 청이는 연꽃에서 환생하여 황후가 된다.⑧ 심청은 부친을 찾으려고 전국의 맹인을 초대하여 맹인 잔치를 벌인다.⑨ 이 잔치에 심봉사가 나타나 부녀가 다시 만나게 되고 그 반가움에 심봉사는 눈을 뜬다.다시 심청전의 이야기를 하자면 심봉사는 양반이었다가 몰락하였고 심청의 어머니 곽씨 부인의 힘으로 가계를 꾸리며 살았다고 한다. 곽씨 부인이나 심청은 그 사회가 원하는 여성의 예속이나 희생이 당연시 요구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가부장제의 희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부장제 하에서 요구되는 덕목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살면 심청같은 선인이되고 아니면 악인으로 몰리는 판국이었다.심청전의 악인이라면 뺑덕어멈을 들 수 있다. 뺑덕 어멈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면 성의 쾌락을 추구하고, 재물을 아끼지 않고 소비하기만 하면서 남들 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로이드가 말했듯 '본능의 소리에 대한 정적윤리'에서처럼 자신의 본능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이 도덕적이며, 본능의 복권을 통하여 더욱 인간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지지받는 의견이다. 이로 본다면 뺑덕어멈도 현실의 희생양이 아닌가 싶다.□ 심청전 구성① 발단 : 심청의 출생과 성장 과정.② 전개 : 심청이 아버지 봉양과 몸을 파는 과정.③ 위기 : 심청이 인당수에 몸을 던짐.④ 절정 : 다시 살아나 왕후가 됨.⑤ 결말 : 아버지를 만나고, 심봉사는 눈을 뜨게 됨3) 곽씨부인과 뺑덕어미곽씨부인과 뺑덕어미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인 인물로 형상화되었다. 그러므로 이들을 대조함으로서 완판의 작가가 생각하는 량처와 악처의 모습을 추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사실 뺑덕어미의 긍정적 가치란 것은 다분히 역사적인 시각에서 그 가치를 찾고자 한 것으로 작품 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뺑덕어미의 긍정적 가치란 것은 주로 그녀가 이익관계를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데 있다. 이것은 현실적 이익보다 유교이념을 중시하는 인물들에 비해 볼 때, 그녀는 솔직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인물이므로 중세적인 인물의 평면성을 벗어난 새로운 인물이라는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심청이 유교이념에 투철하다는 전제 위에서 그 설득력을 더했다. 그러나 심청에 대해서 살펴본 결과 심청을 유교이념에 투철하다고 할 만한 어떤 근거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도 많고 겁도 많은 감정이 풍부한 인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심청의 형상은 현실적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뺑덕어미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으로 우리 문학사에서 새로운 인물이다.곽씨 부인은 현철하고 음전한 부인이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정작 그녀가 보여주는 모습은 이런 말로 다 설명될 수 없다. 서두의 몇 마디 설명에 만족하지 않고 좀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곽씨부인의 가장 큰 특징은 근면하며 치산을 잘 한다는 데 있다. 그녀는 ‘하루 반때도 놀지 않고’ 부지런히 삯바느질을 하여 돈을 모으고 ‘일수체계 장리변’으로 빚을 주어 적은 돈을 늘린다. 이러한 경제적 바탕 위에서 그녀는 비로서 ‘가장 공경’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심지어 산후에도 ‘외풍을 과히 쐬어’ 병이 나서 죽게 된다.) 그녀의 유언에는 남편과 아이에 대한 걱정도 많지만 경제적인 내용이 적지 않다.반면에 뺑덕어미가 가장 비난받는 것은 낭비와 게으름이다. 다음은 뺑덕어미의 행실을 묘사한 부분이다.생산적인 활동은 하나도 없다. 반면에 제일 처음부터 나열되는 것이 그녀의 낭비벽에 대한 것이다. 요컨대 뺑덕어미는 한푼이라도 벌려고는 않고 모조리 돈 쓰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결국 심봉사는 선인들이 두고 간 재산을 동네 사람들의 도움으로 착실히 늘려 놓았는데 이를 다 날리고 동네 사람들 보기가 부끄러워 타향으로 도망치듯 떠나게 된다. 정하영도 뺑덕어미의 악행을 게으름, 가산탕진, 부도덕한 행위의 세 가지로 지적하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게으름과 낭비벽은 그녀의 특질이라 할 만하다.이처럼 근면과 절약이 칭송되고 게으름과 낭비가 비난받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러한 유형의 인물이 「심청전」에서 형상화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조선 후기에 들어와 상업의 발전과 더불어 돈의 가치가 증대되면서 농민들은 농업 이외에도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에 종사하게 된다. 특히 농지에서 유리된 유민들과 조세 및 소작료 등으로 농사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진 영세농과 소작농민들은 농사일이 한가할 때에도 정말 ‘하루 반때’ 도 놀 수가 없없을 것이다. 임형택은 이러한 상황을 「흥부전」의 흥부를 통하여 당대 민중들의 생활현실을 추적함으로서 효과적으로 밝혀낸 바 있다.) 이처럼 조선후기의 민중들에게는 생존을 위해서 근면성과 절약이 절실히 요구되었고, 돈의 가치가 증대됨에 따라 치산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게으름과 낭비벽을 두루 갖춘 뺑덕어미와 같은 악인상이 창출되었던 것이다.뺑덕 어미는 곽씨 부인과 여러 면에서 대조적인 인물로 형상화되었다. 그러므로 이들을 대조함으로서 완판(完板)의 작가가 생각하는 양처와 악처의 모습을 추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뺑덕 어미의 긍정적 가치란 것은 다분히 역사적인 시각에서 그 가치를 찾고자 한 것으로 작품 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뺑덕 어미의 긍정적 가치란 것은 주로 그녀가 이익관계를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라는 데 있다. 이것은 현실적 이익보다 유교이념을 중시하는 인물들에 비해 볼 때, 그녀는 솔직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인물이므로 중세적인 인물의 평면성을 벗어난 새로운 인물이라는 주장이다. 완판본(完板本)에서 뺑덕 어미는 심청과는 정반대로 현실적이고 물질지향적인 인물로서 심봉사를 현실적이고 비속한 인물로 만드는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시대-군사독재, 경제개발 총력전 시대 여성 소설의 제양상박경리 1. 들어가며다들 아는 바와 같이 1950년대는 6.25 전쟁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어두운 전후의식에 의해 지배된 시대였다. 전쟁으로 인해 생산시설 파괴, 인플레이션의 가속화, 물가폭등, 물자부족으로 한국 사회의 정치 경제 현실은 혼란스러웠다.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까지 무너지고 공동체 의식도 약화되었다.그러나 전쟁이 야기한 상처, 아픔이 회복되기도 이전에 이승만 정권은 반공을 이용하여 정치적 반대 세력을 탄압하고, 독재 정권을 유지 강화 시켰다. 결국 경제침제와 상승작용을 일으킴으로써 이승만 정권에 대한 지지는 추락했고, 4.19혁명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그리고 1960년대 이후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행되므로써, 유례없는 고속 성장을 이룩하며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였다.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은 국민소득증가를 가져왔으나 빈부의 격차는 심해지고 농촌은 피폐해 졌다.1950년 대 말 1960년 대 초 군사독재, 경제개발에 온 힘을 쏟은 시대 당시 사람들의 삶은 망가져갔다. 특히 전쟁의 시대와 거기에 바로 이어지는 시대에는 남성의 세계가 특별히 압도적으로 부각되는 경향이 있다. 전쟁이라는 것은 원래 남성의 사업이다. 그리하여 전쟁으로 인해 가장을 잃은 가정이 많았다. 본고는 이러한 남성이 부재한 가운데 폭력적인 군사독재와 초고속 경제개발의 시대 여성 소설 에 주목하여 당시의 훼손된 국면들을 확인해 보고자 한다.문학이란 객관적 현실을 실제 있는 그대로 그려내어야 하며 있는 그대로를 단순 반영하는 데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는 것 또한 지극히 중요하다. 이와 같이 문학과 현실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작가의 인식과 현실에 대한 대응방식이 비판적 시각, 곧 이 지향이 현실 극복의 의지라고 보고 작품 를 다루게 될 것이다. 작품 속 개인이 처한 비극적 현실과 조건, 이에 인물이 어떤 식으로 대응해 나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2. 에 나타난 부조리소설 는 한 여성의 눈을 통해 감지되는 현실 사회의 타락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 속의 이야기는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평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지만 작가는 이러한 일상의 소재를 통해 당대의 현실이 지닌 병폐를 고발하고 있다.2-1. 생명의 경시와 불신 풍조당시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경찰과 군부, 청년 단체의 물리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승만이 물리적으로 남한을 장악해 가는데 최대의 지지 세력이었다. 국민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해 경찰과 군부를 보조하는 힘이 필요했고 따라서 청년단체는 군경의 보조적인 억압기구로 활동했다. 경찰과 청년단체는 대규모 모금으로써 국민들에게 탈법적인 세금을 거두어 들였다. 그는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선거 등을 통해 장기집권을 시도하면서 이러한 세력을 이용했다.이러한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사회 분위기는 작품 속에서 생명이 경시되고 서로를 믿지 못하는 풍경으로 묘사되고 있다.아이는 앓다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길에서 넘어지고 병원에서 죽은 것이다. …… 의사의 무관심이 아이를 거의 생죽음을 시킨 것이다. 의사는 중대한 뇌수술을 엑스레이도 찍어보지 않고, 심지어는 약 준비조차 없이 시작했던 것이다.에서 주인공 진영은 남편이 9. 28 수복 전야에 폭사당하고, 교통사고로 아들까지 잃는 아픔을 겪는다. 아들 문수는 사고로 죽은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생죽음’을 당했다.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서 중대한 수술을 하는데 소홀하고 나태한 자세로 한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미사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다. 진영은 긴 작대기에다 헌금주머니를 매단 잠자리채 같은 것이 가슴 앞으로 오는 것을 보았다. 아주머니가 성급하게 돈을 몇 닢 던졌을 때 잠자리채 같은 헌금 주머니는 슬그머니 뒷줄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진영은 구경꾼 앞으로 돌아가는 풍각쟁이의 낡은 모자를 생각했다.그러나 직접의 동기는 외국제 주사약의 빈 병들을 팔아버리는 장면을 본 때문이다.Y병원에서는 주사약의 분량을 속였고, S병원은 엉터리였다. 그리고 H병원에서는 빈 약병을 팔았다.진영은 간호원이 빈 병을 헤아리고 있을 때 짐작으로 가짜 주사약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H병원만이 빈 약병을 파는 것은 아니다. 상인들은 태연히 가짜를 진짜라고 나팔 불었다. 진영은 그것을 생각하니 인술이라는 권위를 지닌 의사가 그런 상인 따위들 같아서 신뢰감이 사라지는 것이었다.아들을 위해 기도하러 성당에 가고, 사고를 당한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찾아갔지만 그녀가 목도한 것은 위선과 부조리에 가득 찬 세계에 불과하다. 그 세계는 인간성을 상실해 버린 암흑의 세계이다. 세계는 인간들이 아무리 목숨을 경시해도 의사만은 마지막 보루가 되어야 하나 그렇지 않다.“그런 소리 말고 영세나 받도록 준비해. 상배도 영세를 벌써 받았어.”“그 무신론자가…… 영세를……?”……상배는 아주머니 댁에 하숙한 대학생이다. 지나간 본에만 해도 그는,“아주머니요. 예수가 물 위로 걸었다 켓능기요. 하하핫! 아마 예수는 왼발이 빠지기 전에 오른발을 올렸고, 오른발이 빠지기 전에 왼발을 올렸던가 배요. 하하핫……!”(중략) “대관절 그 전무란 사람을 어떻게 알고서 그런 대금을 주었어요.”“저…… 저 왜 그 상배 있잖아. 그 상배 아버지야.”“산뜻하게 중교를 이용했군요.”“글쎄 지금 생각하니 모두가 계획적이었어. 영세 받은 것만 해도…….”“신용보증으론 종교보다 더 실한 게 있어요?”갈월동 아주머니는 Y병원의 의사가 같은 신자이니 믿고 다니라고 했다. 그러나 여태까지 주사 분량인 한 병에서 겨우 삼분지 일만 놓아주고 있던 것을 알게 되었다.영세를 받았기 때문에 믿고 돈을 빌려주고, 신자이기 때문에 믿고 일을 맡겼지만 결국 사람들은 종교마저도 이용했다.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이기를 중시하는 타락적 세계이다.2. 2 물질만능주의와 가치전도1960년 대 초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고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경제개발에 총력을 기울었다. 단기간에 고도의 경제 성장이 이루어진 만큼 세상 한편에서는 역겨운 냄새를 피우기 시작했다.재화란 인간의 충일한 삶을 위한 한 수단일 뿐일 터인데, 그것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생겨낫다. 강파라진 인심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란 경제적 발전을 가능하게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인간적 삶을 심하게 일그러트리게 마련이다. 상품-화폐 경제의 성립은 자본이라는 무서운 괴물을 탄생시켰고, 이 괴물이 자기 운동을 시작하는 순간 인간은 공동체적 삶을 포기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라는 극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한마디로 정신적 동물왕국의 시대가 열리며, 인간의 도덕심, 인륜성의 덕목은 빛바랜 유물로 치부된다. 모든 삶의 질이 환금 가능성이라는 잣대로 평가되며 모든 가치가 교환가치로 환원된다.그리하여 “너희들도 돈을 벌어야 하느리라. 사회니 무어니 하고 떠들어도 결국 돈 가진 놈의 놀음이야. 다 소용없어! 그저 돈이다.”라는 속물적 논리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고착된다. 한국사회에서는 계산 가능성의 원리가 인간의 삶에 큰 규정력을 지니게 되며 재화를 인생의 수단이 아니라 합목적으로 설정하는 삶의 감각이 널리 퍼지게 된다.늙은 중은 대답 대신 진영의 모녀를 훑어보더니 돈의 액수가 심에 차지 않아서 무뚝뚝하게 그냥 가버린다. (중략)“아우님 빨리 하시오. 지금 막 서장댁이 오셨구려. 대강대강 하시오.”“영가 노자가 너무 적군요. 이 세상인 저세상이나 그저 돈이 있어야지. 동무하고 쓰고 놀다가 돌아가지 않겠어요?”‘이 세상이나 저세상이나 그저 돈이 있어야지요.’ 하던 말이 되살아온다. 물론 처음부터 거래였다. 그렇다면 화폐의 액수에 따라 문수에 대한 추모의 정이 계산된단 말인가. 진영이 그러한 울분에 젖어 있을 때 말쑥하게 차려입은 그 서장의 부인인 듯싶은 젊은 여인이 주지 중에게 인도되어 법당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잠깐 후 불경 읽은 소리가 저렁저렁하게 밖으로 흘러나왔다. 잠들었던 부처님이 처음으로 일어나서 귀를 기울일 만한 뱃속에서 밀어낸 목소리였다.절의 스님이 죽어서 저승을 가는 데도 노자가 필요하다는 말에서 물질적 타락의 세계를 엿보게 한다. 세상의 이기에 가장 어두워야할 스님마저 세속화됨으로써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과 목 명 :지도교수 :학 과 :학 번 :이 름 :1. 향가의 작가와 향유방식향가의 작가 연구는『삼국유사』외에 별 자료가 없었으므로 주로『삼국유사』소재 향가 작품의 작가로 기록된 인물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져 왔다. 설화집의 성격도 띠고 있는 자료속의 기록이므로 향가 작가를 설화적으로 가공된 인물로 보는 주장까지 대두하였다. 향가 작가가 가공의 인물이라면, 그 향가는 허구의 공간에 떠 있는 가상의 작품들일 것이다.본고는『삼국유사』에만 의존하였던 기존의 접근 태도에서 벗어나 그것과 함께 했던 향가 관련 기록을 참조하여 향가의 작가와 향유방식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2. 향가의 작가『균여전』제8「역가현덕분」에는 향가의 작가 열 명을 나열해 놓고 있다. 이 기록을 인용하였던 김동욱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밝혔다.여기에 인용된 불교 시가송류 작자중 현재 사적이 남아 있는 자로는 원효와 대거 뿐이나, 이러한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사학에 훤전된 사람이 삼국통일 전후기의 원효를 비롯하여 상당히 있었음을 알 수 있다.그는 원문에 기록된 마사, 문칙, 영상 등 셋을 인명이 아닌 일반 한자어구로 보았다.인용문은 열 명의 향가 작가를 기록한 것이다. 이들은 불교와 관련된 향가 작가들이므로, 신라 당대 여러 그룹의 작가들 가운데 한 부류라는 점이 전제 되어야 한다.이 중 원효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무애라는 타악기를 만들어 〈무애가〉를 지었고, 이와 함께 거문고를 뜯으며 사당에서 노래하기도 하였다 고 한 『송고승전』의 기록도 참조된다.인용문에서 열 번째로 거명된 대거는 경문왕대에 국선들이 지은 향가의 곡을 붙였고, 음악과 향가에 능통하였던 그의 작가적 면모로 인해 신라 역대 향가들을 수집하는 사업의 주동자로 발탁되었을 것이다.이 두 사람 외에 나머지 팔 명에 대해서는 알 길이 거의 없는 형편이다. 그런데 세 번째의 체원은 효소왕 7년에 우두주 총관으로 임면된 인물과 이름이 같다. 그러나 여기에 단 한 번 기록되었을 뿐이어서 향가 작가로 추정할 만한 근거가 달리 없다.한편, 여섯 번째로 거명된 영상의 존재는 금석문에서 찾을 수 있다. 「지증대사탑비」의 음기에 지증대사의 문인으로 영상 이 나온다.『균여전』의 영 자와 차이가 나지만, 같은 음을 가차한 글자로 본다면 동일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최치원에게 스승 지증대사의 비문을 부탁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지증대사 도헌은 824~882년 까지 살았고, 이비는 진성왕 7년(893) 무렵에 찬술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증대사의 문인인 영상은 9세기 후반에 활동한 인물이다.이상의 논의를 통해, 인용문에 거명된 열 명 중 원효와 대거는 실존인물임과 체원 곧, 예원과 영상은 관련 사료에 의해 실존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인물임을 알 수 있다.몇 명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추정되고 있을 뿐이나 『균여전』에 기록된 열 명의 향가 작가가 역사적 실존인물일 것이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들이었고, 그들의 향가 작품이 남아 그들이 살면서 얻었던 정서와 의식의 실체를 증명해 주고 있다.3. 향가의 향유방식『균여전』은 향가의 향유방식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기술을 해 놓았다. 전자가 향가의 향유 및 전승의 일반적인 방식을, 후자가 궁중에서의 향유방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 밖에『삼국유사』와『화랑세기』의 관련 기록들도 포함하여 살핀다면, 향가의 향유방식에 대한 이해를 좀 더 심화할 수 있을 것이다.『균여전』기록부터 살펴보면 향가는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가끔씩 담장 벽에 쓰이거나 전장류에 기록되어 읽혔다. 향가는 구비전승과 기록전승의 두 가지 방식에 의해 향유 전승되었던 것이다.구비전승에 따른 향유방식은 향가를 듣고 외우거나 읊조리는 방식인 것이다.한편, 기록전승과 관련하여, 향가는 향찰로 기록되어 읽히고 전승 되었다. 현존하는『삼국유사』의 14수,『균여전』의 11수가 모두 향찰 표기이고,『화랑세기』의 1수 역시 그러하다. 이로 보아 전성왕대에 편찬된『삼대목』도 향찰로 표기된 향가 작품들로 채워졌을 것이다.향가의 기록전승은『삼국유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삼국유사』의 두 인용문을 보면 구비와 기록이 혼합된 방식을 보여준다. 입으로 전해진 향가가 기록된 다음 읽혀지는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후자에서 최행귀가 균여의 향가를 열람하고 따라 불렀다고 하였다. 문자로 기록된 향가를 읽고서 가락에 얹어 따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이와 같이 향가는 일반적으로 구비와 기록을 통해 향유, 전승되었다. 그런데 향가가 노래로 불려 질 때에는 음악과 춤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민간 연희의 경우, 최치원의〈향악잡영〉중 월전 에서보는 바와 같은 가무악의 방식으로 향가가 향유되었다.음악과 춤이 수반된 방식으로 향가가 향유된 것은 궁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궁중에서의 향가 향유는『삼국사기』의 악지를 통해 알 수 있다.신문왕이 신촌에 행차하여 연회가 베풀어졌을 때 7곡이 연주 되었는데, 그 중 가무, 한기무, 미지무는 노래 부르는 사람 없이 악기 연주와 춤추는 사람들로 구성되었고, 나머지 하신열무, 사내무, 상신열무, 소경무는 연주자 무용수와 함께 가수가 몇 사람씩 배정되어 있다. 그리고 가무-하신열무-사내무-한기무-상신열무-소경무-미지무의 7곡은 ① 노래 없는 곡 - ②③ 노래 있는 곡 - ④ 노래 없는 곡 - ⑤⑥ 노래 있는 곡 - ⑦ 노래 없는 곡의 순서로 배열되어 있다. 이는 ①②③이 한 묶음, ④⑤⑥이 한 묶음을 이루고 ⑦이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