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란 영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저번에 본 모터 싸이클 다이어리와는 다른 무슨 달콤한 로맨스 영화 인가? 하는 생각에 은근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저번보다 더 집중하여 맨 앞자리에서 영화를 보기 시작하였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나라는 멕시코였다. 흔히 우리에게 마리아치 그 모자에 대한 연상과 열정의 나라라는 내 머릿속의 단편적인 기억 외엔 잘 모르는 멕시코 속으로 빠져 들기 시작하였다.양파를 써는 한 소녀의 독백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주인공 띠따는 ‘양파 다지는 냄새 탓에 하도 운’ 탓에 어머니 배 속에서 달도 못 채우고 세상에 나왔다. 월계수 향, 고수 향, 마늘 향과 함께 파스타를 넣은 스프 냄새가 진동하는 부엌 식탁 위로…. 거기다 막내딸인 띠따는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모셔야만 한다는 관습과 전통 때문에 평생 막중한 임무를 떠맡게 되었다. 쉽게 말해 평생 부엌데기 운명을 타고 난 띠따 띠따는 파티에서 처음 만난 베드로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사랑에 눈뜬 그녀는 결혼을 할 수가 없는 운명이다. 띠따가 못마땅한 어머니는 베드로와 그의 언니 로사우라의 결혼을 제안한다. 막내딸이 어머니를 모시는 전통을 깰 용기는 없고 띠따의 옆에서 평생 함께 하고 싶었고 방법이 그 것 밖에 없는 베드로도 결국 로사우라에게 장가를 가게 된다. 로사우라와 베드로의 결혼식 날. 띠따는 한숨과 눈물, 그리고 베드로에 대한 연모의 정으로 반죽한 밀가루를 재료로 웨딩 케이크를 만들어 손님들에게 내놓는다. 그 케이크를 먹은 사람들은 사랑 때문에 울어야만 했던 띠따의 서글픈 사연과 마음에 자신이 가슴 깊숙한 무의식속에 넣어 두었던 연민의 정을 떠올리며 발작적 울분을 토하게 된다. 띠따가 부엌에서 음식을 만드는 것은 단순히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것 그 이상임을 이야기 해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부엌은 여자들에게 있어 중요한 장소이다. 당시 이야기 할 수 없는 여인내 들의 한과 설움이 그대로 서려 있는 장소이다.이렇듯 영화 속에서 요리의 기능은 감정을 표현하는 도구로써, 과거 회상의 매개체로써,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통로로써, 사랑의 법칙을 발견하는 통로로써. 주변인물의 성격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써 이어질 내용을 암시하는 장치로써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띠따는 요리를 잘하는 비결을 물을 때 한결 같이 대답한다. 사랑이 얼마나 들어가느냐에 달려있다고......그러한 띠따는 베드로에게 꽃을 선물 받은 그 꽃을 버리지 못해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장미꽃 잎을 곁들인 메추리 요리를 만들면서 그녀는 자신의 존재 자체를 장미 소스, 메추리 고기, 포도주, 음식 냄새 하나하나 속으로 스며들게 한다. 베드로를 향한 정염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그걸 먹은 띠따의 또 다른 언니 헤르트루디스는 온몸을 이글거리게 하는 욕정에 못 이겨 샤워장으로 뛰어들지만 욕정의 불을 끄지 못한다. 거기서 물을 붓는 순간 헤르트루디스의 몸에서 연기가 나면서 야외 욕실이 불에 탄다. 분명 이 순간 등장한 혁명군의 총탄이 욕실로 날아왔기 때문이지만 그녀의 불같은 감정이 화재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조금 과장된 화면이 연출 되는데 이 영화에서 주를 이루고 있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한 예가 아닌가 싶다. 알몸으로 뛰쳐나온 그녀는 말을 타고 달려온 혁명군 장교와 함께 떠나게 되고 그 후 혁명에 가담한다.여기서 나온 마술적 사실주의에 대해서 얘기 하자면 마술적 사실주의 (Magical Realism)는 하나의 문학 기법으로 현실 세계에 적용하기에는 인과 법칙에 맞지 않는 문학적 서사를 의미한다. 이 개념은 20세기 미하일 불가코프, 에른스트 윙거 그리고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등의 많은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등장과 함께 유명해졌다. 마술적 사실주의의 이야기들은 리얼리티를 완전히 고정적이지 않은 것으로 다루며, 이야기 속의 인물들은 그러한 상황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남편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피의 흐름이 멀리 있는 그의 아내에게까지 흘러갔다 던지 하는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나고, 글 속의 인물들은 그러한 상황을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당연 스레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목할 만 한 점은 마술적 사실주의가 억압적이고 권위주의 적인 독재 사회에서 자주 나타나며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표현이 순화되어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감독이 환상의 형식을 빌어 실제 말하고자 하는 얘기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10년의 멕시코라고 한다. 바로 독재자 포르피리오 디아스에 항거하는 멕시코 혁명이 시작된 해이다. 독재자 디아스는 33년 간 멕시코를 통치하면서 반대세력을 혹독하게 제거하고 언론의 자유를 금지하는 등의 억압정책을 펴 왔다. 마치 전통을 내세워서 가정 내 독재 권력을 휘두른 띠따의 어머니처럼 말이다. 다행히 띠따 어머니가 자행해오던 불합리한 인습은 타파됐지만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다.띠따는 이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놓아 버린다. 띠따는 집의 맨 꼭대기 다락방으로 올라가 내려오지 않고 음식도 먹지 않는다. 결국 띠따는 다른 요양하는 곳으로 보내지게 되고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간다. 그리고 띠따를 극진히 돌봐주는 의사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띠따의 정신을 돌아오게 한 것은 의사의 약과 치료도 아닌 치챠가 요리해 온 소꼬리 수프이다.22년의 세월이 흐르기까지 띠따는 온갖 사랑의 맵고 쓴 맛을 다 본다. 베드로보다 더 아늑하게 자신을 돌보아줄 법한 의사와의 사랑도 경험하고 결혼도 약속하지만 마음 속 베드로를 끝내 지우지 못한다. 그러면서 음식이 아니어도 사랑은 우리를 살아가게 이끄는 진정한 동력임을 깨달아 나간다.또한 로사우라가 낳은 여자 아이를 자신과 같이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인습으로 인해 평생을 가련한 자신과 같은 삶을 살지 않고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다.결국 로사우라는 어처구니없는 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베드로와 띠따는 그제 서야 둘의 사랑을 표출하게 된다. 베드로와 띠따가 감격의 해후를 하고 애욕의 몸부림을 치다가 불길이 치솟는 것도 이들의 평생 동안 표현하지 못하고 쌓아 두기만 했었던 열정이 자초한 화가 아니었을까? 이처럼 사실적이지만 마술적이라고 생각되는 장면들이 이 영화를 압도하는 가장 큰 힘이다. 마지막에 결국 베드로와 띠따가 사랑을 나누며 해피엔딩으로 끝날 듯한 영화가 베드로의 죽음으로 마무리 되는 것은 약간 충격적인 반전이었다. 그리고 띠따도 그의 옆에서 함께 죽는다. 그냥 웃고 넘기기엔 너무 깊은 의미가 숨어 있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사랑은 결코 달콤하기만 한 게 아니라 결국엔 씁쓸한 맛이 남는다는 그런 의미로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