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열 올바로 보기를 읽고 -이종각-‘교육열’ 이 세글자는 우리 나라의 교육 현실을 압축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 나라의 교육열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학부모들의 자녀들의 교육에 대한 극성, 사교육, 조기 유학 등 학생들을 억압하는 각종 교육들과 부정적인 시각들이 떠오르게 된다. ‘강남 엄마 따라잡기’라는 드라마가 나오고 그에 대한 많은 말들이 오르내린 것들을 볼 수 있듯이 많은 이들이 우리나라의 ‘교육열’에 혀를 내두른다. 그러나 이러한 현 상황 속에 “교육열 올바로 보기”의 저자 이종각씨는 흔히 사람들이 갖고 있는 교육열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지적하며 좋은 방향으로 교육열을 이끌시에는 매우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덧붙여 교육열에 대한 선입견과 부정적인 잣대를 버려야 하며 교육열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고 이러한 교육열 정책에 대한 전환과 더불어 학부모들에게 그들의 자녀를 위한 실질적 정보와 이익을 주는 등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제1부 1장 ‘한국 교육의 꿈과 현실: 교육열 환경에 대한 총체적 진단’이라는 제목으로 저자는 우리의 교육환경을 돌아보고 있다. 한국 교육은 양적으로 넘치면서도 교육이 중복되고 반복되고 낭비되면서 질적으로 크게 왜곡되어 있다. 교육투자량이 세계 최고 수준이며 높은 교육열과 교육에 대한 관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요자의 교육만족도도 매우 낮다. 그렇다면 투자량도 많은데 효율성이 떨어지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 첫 번째로 국가에 의해 공급·통제되는 교육에서 국가의 관여가 많아 획일화되어 있으며 소비자의 요구에는 무관심하다는 것에 있다. 이데 따라 교육 소비자들은 국내 교육과 공교육이 행사하고 있는 제도적 폭력에서 도피하여 사교육의 번성, 교육이민, 기러기 아빠 등의 현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학습동기체제 역시 천민화· 황폐화시키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또한 평준화 교육도 그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학교 평준화를 실시해 놓고 평등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로는 바뀌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제도의 철저한 개선과 더불어 국가와 개인의 욕구를 접목시킨 ‘교육열 생태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평준화제도는 평준화교육을 보장하는 가에 대한 물음에 부정하며, 평등화가 합리적인 차등화란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껏 국가 개입에 대해서 반성해야 하며, 특히 지나친 개입이나 일관성 있지 못한 개입 등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결국 교육자유의 개선과 유기적인 평등을 이룰 때 진정한 교육이 설 수 있다고 보았다. 이와 더불어 국가의 요구와 개인의 요구를 수용하여 시장논리 도입을 통한 개혁, 국가의 교육에 대한 지나친 개입에 대한 반성과 그에 대한 적절한 해결방안 모색을 주장한다. 끝으로 교육은 사회의 거울이라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학교에서 전인교육을 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전인교육을 받아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탈락해야 하는 사회에 문제가 있음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제 2장 교육열에 대한 기초적 이해에서는 본격적으로 교육열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와 개념화 하는 작업이 설명 되어 있다. 교육열에 대해 알려면 먼저 교육열을 개념적으로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교육에 관한 일상적인 동기체제의 정도를 교육열이라고 하며 교육열과 교육열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이나 행동을 구분해야 한다. 교육열은 가변성, 적응성, 확산성 등의 특징을 가진다. 특히 1980년에 과외 금지 조치는 음성적 과외와 비밀과외가 생기게 만들었으며 1995년 종합생활기록부 제도에 있어서도 어김없이 교육열의 드러났다. 국가는 이런 교육열의 흐름을 이용해야 하며, 올바로 흐를 수 있는 길을 국가는 국민들에게 제공해야만 한다. 교육열이 생긴 원인으로 크게 세가지를 말할 수 있는데 먼저 특정분야에서의 전문적인 실력보다는 막연한 잠재능력을 중시하는 능력관, 교육 경쟁을 부추기는 교육구조,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학력주의가 그것이다.제 3장 ‘교육열 인식의 전환을 위한 재개념화 작업’ 에서는 교육열’인른 방향이라고 말하고 있다.제 4장 ‘교육열 정책에 대한 인식 패러다임의 대전환’ 에서는 교육열이 세계 최고로 높지만 교육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에 대학은 하위수준이고 인재들이 국내에서 잘 육성이 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교육열과 그 정책에 대해 새롭게 가져야할 사고방식 일곱 가지를 말하고 있다. 먼저 교육열은 교육정서자본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로 교육정서자본으로 인식하고 이것을 육성하고 활용하는 방안을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교육열의 자원화를 위해서는 그에 맞는 제도가 확립되어 있어야 하기에 교육 정책을 세워야 한다. 네 번째로 교육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불식 시켜야 한다. 다섯 번째로 교육열 환경이 현재도 수용 정책쪽으로 변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하며 교육열 정책은 분석적, 수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육열 정책은 기존교육 문제와 정책을 새롭게 보는데서 출발해야 한다.제 5장 교육열 운동법칙과 결합법칙에서는 입시 위주의 우리나라의 사회를 비판하고 몇 가지 운동 법칙을 제시하고 있는데, 교육열은 지위 상승이나, 인간 대접을 받는 부분, 사회적 가치의 부여 등이 작용하는 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교육열 제 1운동법칙은 교육열은 교육이 지위상승체계에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가 높은 교육장면으로 운동한다이다. 그리고 교육열 제 2 운동법칙은 교육열은 인간대접을 받는데 영향을 미치는 교육장면으로 움직인다 이며, 교육열 제 3운동법칙은 각시대의 교육열은 교육 후의 결과가 제도적으로나 관행상으로 높은 사회적 가치를 부여하는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제 6장 ‘교육열 분류에 대한 비판적 논의’와 제 7장 ‘연합적경쟁론과 교육전쟁론의 비교 검토’에서는 교육열 연구를 다시 들여다 보고, 기존의 교육열 분류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종각의 연합적 경쟁론과 박남기의 교육전쟁론을 서로 비교 검토하고 있다.제 8장 ‘교육열과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 과제’ 에서는 현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비판 그리고 칭찬을 하면서 교육열을 올바르게 잡기식도 학력 주의적 행위양식으로부터 빨리 탈피하여 능력 주의적 행위양식으로 변화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학교와 사회의 지배 원리가 일관성이 있어야 하며 대학의 교육품질화 정책이 추진되어야 한다.제10장 ‘교육체제의 재구조화를 위한 전략은 무엇인가?’에서는 공교육의 위기를 극복하고 교육열 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체제 불일치 개선, 국가 주도적, 획일적 요소를 축소시키고 자율성과 다양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과외와 사교육과의 전쟁을 포기하고 교육평등과 수월성 교육의 혼선을 찾아 양과 질의 교육을 추구해야 한다.제11장 ‘사교육,어떤 논리로 대응해야 하는가?’과 12장 ‘어머니의 교육열을 어떻게 다스릴까?’에서는 사교육비의 문제 상황을 제시하고,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종합적 ? 장기적 ? 고사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학부모님의 교육열이 올바르고 건전한 방향이 되도록 하기위해서는 국가와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마지막 13장에서는 고등학교의 목표와 대학입시를 위한 전략 등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다.몇 달 전 한 신문에서 본 기사가 문득 생각이 났다. 살갗만 닿아도 주위를 오염시킨다는 ‘불가촉 천민’으로 태어나 인도 최고의 경제학자로 자리매김한 인도의 명문 푸네 대학의 나렌드라 자다브 총장이 서울을 방문했었다. 그는 “우리 아버지처럼 카스트제도 밑에서 오랫동안 억눌린 천민들은 결사적으로 자녀를 교육시킨다.”며 “위로 치받고 올라가려는 이들의 의지가 인도 경제의 주요 성장 동력 중 하나”라고 말했다. 즉, ‘필사적 교육열’이 인도 경제의 주요한 성장 동력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러나 흔히 한국 사람들은 교육열하면 극성스럽고 유난스럽다, 치맛바람, 강남 8학군, 조기 유학...이런 부정적인 면들만 떠올린다. 또한 이런 교육열에 관한 문제점은 비단 신문 기사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 아니다. 한국 사회를 우회적으로 표현한다는 드리마, 그 중 ‘강남 엄마 따라 잡기’의 드라마를 보면 입시 지옥, 상상을 초월하는 어머니들의 교육. 흔히 생각하는 교육열은 사회의 교육 현상으로서 경제, 사회, 문화들의 상호 작용의 결과로 나타난 하나의 사회 병폐적인 현상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즉, 교육열이라고 하는 것은 교육에 관한 일상적인 동기체제로 더없이 훌륭한 하나의 중립적 가치였던 것이다. 교육열, 학구열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가치가 부모들이 자녀들에 대한 기대치를 포섭함으로써 학부모의 교육열로 전환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교육열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이를 통해 사교육 등 여러 교육 현상을 바라볼 때 그 대책이나 판단 방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도 알 수 있었다.미국의 한 방송프로그램 ‘믿거나 말거나(Believe It Or Not)’에 우리나라 교육열에 대한 내용이 방영되었다고 한다. 새벽부터 일어나 등교하고, 하교 후에도 학원에서 공부를 하다 밤이 깊어서야 집에 돌아가는 한국 학생들의 보편적인 모습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눈에는 신기했던 것 같다. 사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같은 한국인의 눈에도 한국 어머니들의 교육열은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아들이 글을 쓰는 동안 옆에서 떡을 썰었다는 한석봉의 어머니, 그녀의 피를 이어받아 아들이 공부를 하는 동안 옆에서 뜨개질을 했다는 대입 수능 만점자의 어머니. 그녀들이 줄곧 바로 한국의 모범적인 어머니 상이였다. 자원이 턱없이 부족한 조그마한 나라가 이렇게도 빠르고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 낸 것은 바로 이 어머니의 힘이였다. 부모들의 자기희생적인 투자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한국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육열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가 이만큼 발전 할 수 있었고 교육에 대한 열정이 지식기반과 무한 경쟁주의 사회에서 상호 발전할 수 있다면 그 가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맹자에게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하여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모삼천지교 역시 대단한 교육열이 발현된 것이 아닌가? 교육열이 지닌 무한한 힘, 그리고 그를 통해 넓어진 이해의 폭, 교육열로 인해 발생된 여러 제반 현상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다.
창의력이란정범모의 '창의력이란'은 창의력의 이론적 배경과 여러 관점들, 창의, 창조력을 기르기 위한 방법과 창의를 이루는 제반 풍토 등 창의력에 관련한 여러 사항들과 다양한 관점들을 서술하는 책이다. 단순히 교육학에서 배웠던 ‘창의력이란 수렴적 사고가 아닌 확산적 사고이다’라는 막연한 개념만을 가지고 있었던 필자에게 이 책은 창의력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와 그리고 우리나라의 현 교육체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주었다.이 책에서는 창의력을 ‘새로운’, ‘보람 있는’ 것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라고 말한다. 만든다는 것은 환경의 어떤 대상에 인지와 인력을 투입함을 의미한다. 피동적으로 환경의 지배만 받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환경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운 것’ 은 남들이 생각한대로 생각하고 남들이 만들어낸 대로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창의?창조가 아니다. 즉, 새로운 생각, 새로운 작품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창의력의 셋째 요인은 ‘보람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발견, 발명, 창작한 것이 그냥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문제의 해결에 실용적인 도움이 된다든지, 그 자체가 희한하게 재미있고 뜻이 있고 멋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다음으로 창의력에 관해서 역사적으로 흔한 관점에 대해 이 책에서는 몇가지 언급하고 있다. 먼저 천부론, 즉 창조적 천재들의 독특한 능력은 하늘이 내린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이러한 사고는 인간사에서 아주 비상한 사건이나 성취가 일어났을 경우 그것이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신비한 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신비주의적 사고방식이다. 두 번째로 심리 측정론적 주장으로서 ‘프로이드’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두 가지 근본적인 사고과정이 있다고 전제한다. 이차적사고과정은 우리 스스로가 알면서 진행하는 의식적 과정이며, 논리적이고 반성적이고 이성적인 사고과정이다. 이에 비해서 일차적 정신과정은 자기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욕구?충동의 과정이다. 다음, 창의력에 관한 인지론적 해석은, 창의적인 문제해결은 그저 보통의 문제해결 과정에서 작용하는 여러 인지작용, 예컨대 학습, 기억, 학습의 전이, 기억의 상기, 변별과 일반화, 분석과 종합, 유추 등의 인지작용들이 계속적 누적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문제해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창의력에 대한 사회체제론적인 접근은 개인의 창의적 능력, 성격, 동기만이 아니라 구의 주변의 여러 사회체제의 특성도 창의적 활동과 업적의 출현에 크게 관계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다시말해 환경조건이 중요함을 언급하고 있다.이러한 창의력의 정의와 관점들을 가지고 서술한 것 중에 가장 필자의 관심을 끈 내용은 창조적 인물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길러지고 출현하는 가에 관한 내용이였다. 창의적 인물의 출현에는 물론 당사자의 엄청난 노력도 필요하지만 더불어 환경적 지원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이 책에서는 말한다. 즉, 가정과 부모는 창의적 인물의 출현에 출발점에서 몇 가지 결정적 영향을 준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어떤 문화 활동에 흥미를 가지고 있어서 그 활동을 자주 하게 되면 부모는 아이에게 그 활동의 ‘모델 인사’가 된다. 우리는 주변에서 학자 집안에선 학자가, 사업가 집안에서 사업가가 태어나는 경우를 쉽게 몰 수 있는 것처럼 부모는 아이에게 모든 면에서 모방학습 또는 동일화의 모델이 된다. 모차르트는 아버지가 중학교 음악 교사였고 다윈은 할아버지도 생학학자였다고 하니 그 영향이 지대함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부분이였다. 창의적 인물은 조금 예외는 있긴 하지만 여러 영역의 많은 출중한 성취자들은 그 영역에 활동을 대개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아이들에게 느껴지는 것은 부모의 영향도 있고, 아이가 경험하는 특정 상황의 강렬한 인상도 있고, 무엇보다도 어려서부터 아이가 다양하고 인상적인 황홀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조건일 것이다. 창의력에 있어서 부모와 가정 역할이 크고 그것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이 실로 큼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하지만 창의적 자질을 가지고 태어났다 해도 부모가 그것을 키워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면 창의력은 빛을 못 보게 마련일 것이다. 또한 부모가 그것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해도 사회적 문화 풍토가 조성되지 않으면 그 또한 창의력은 빛을 잃고 말 것이다. 창의적 인물은 그 자신의 소질과 동기와 노력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한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풍토, 그리고 주로 직접적인 여러 인간관계가 결정하는 주변풍토 여하가 그의 출현을 크게 좌우한다. 사람들의 능동적 지향이 장려되는 사회풍토와, 부동의의 자유, 다양성의 허용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자유를 열어주는 개방성을 열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그러나 다원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주의인 이 나라에서 창의력을 키운다는 것은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어찌보면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 창의력과 관련하여 한국 교육에 대해 갖는 불만 중 하나는 아마 하나의 정답만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대한 민국 학생들이라면 모두 한번쯤 봤을법한 프로그램 중 하나가 공영방송에서 하는 '도전 골든 벨' 일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다보면 청소년들로 하여금 하나의 정답만을 찾도록 만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학생들을 표준화한다는 획일적인 교육이라는 비판에 맞서 21세기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인 육성에 목표를 두고 7차 교육과정을 진행하고 있지만 실상 그 내면을 살펴 보면 공영방송에서부터 버젓이 수렴적 사고를 지향하는 듯한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교육계에서 내거는 슬로건과 그 이행이 부합되지 않은 점은 현 우리 교육계 나아가 한국 사회가 고쳐야 할 점이라 생각된다. '도전 골든벨'에 나오는 학생이나 퀴즈왕, 수석졸업생은 시험선수이지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도 지적하는 것처럼 하나의 정답만 찾는 교육은 창의성을 말살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옛 조선시대의 시험이 21세기 한국보다 훨씬 다양했다. 과거에서 시제를 내면 저마다 개성적인 시를 썼다. 창의력은 정답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것이다. 지식인의 가장 중요한 능력도 정답을 찾는 것 대신 창의력과 자유로운 사고, 독립적인 정신일 것이다. 이 책에서도 창의력을 신장시키기 위해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풍토와 체제의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처럼 21세기 급변하는 사회에 필요한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해 부모로부터 시작하여 교사, 학교 그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서는 국가의 지원과 사회적 개혁이 없이는 힘들다고 생각된다. 교육도 다원적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개방사회의 큰 테두리 안에서 같이 담론하고, 소비자들이 선택토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