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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고
    R애니매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에 나타난 독특한 세계관과 일본문화E0DPOR대 학 :학 과 :과 목 :담당교수 :학번/학년:제출일자 :이 름 :T프롤로그화창한 날씨에 10살 떼쟁이 소녀 치히로와 엄마 아빠는 함께 자가용을 타고 이사를 가는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 어느 요상한 분위기의 숲길로 들어간다. 숲속 동굴 앞에 치히로와 가족들이 내리는데, 치히로는 두려움 속에 동굴을 지난다. 치히로의 눈앞에 펼쳐지는 신사처럼 보이는 건물과 석상들 이 부분은 일본인의 생활이 종교 특히 불교와 얼마나 가깝게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장면이다. 실제로 일본인에게 있어 종교가 일본의 생활문화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일본에서는 현대화된 도시에서도 몇 걸음만 걸으면 곧바로 신사나 절의 한적함으로 연결된다고 한다.또한 일본에는 일본 각지 전래민화와 토속신앙 등을 통해 전 해져 내려오는 신의 종류가 다양하다고 하는데, 이 영화에는 수많은 요괴와 별별 신들이 나오는데, 특히 센(치히로: 온천에 들어간 이후로 유바바에 의해 치히로의 이름은 센이라 불린다.)이 목욕을 해준, 강의 신, 얼굴이 없는 귀신같은 존재 카오나시 등, 센과 센의 부모를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일본 귀신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대개 이렇게 동양적이거나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띈다. 그리고 히사이시 죠의 음악 역시 그러한 분위기에 한 몫을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빠져들게 한다.이 영화에서, 특히 일본식 문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은,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서구식 의상이 아니라 일본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통의상이라곤 기모노만 알고 있어서, 온천의 사람과 요괴들이 입고 있는 것이 기모노인줄 알았는데, 이 요괴가 입고 있는 것은 기모노가 아니라 ‘유카타’ 라고 한다. ‘유카타’ 란 여름에 입는 면으로 된 안감으로 만든 기모노의 일종인 간편한 무명옷이다. 맨살위에 입기도 하고 보통 맨발에 게타를 신는다고 하는데, 기모노와는 달리 값이 저렴하고 커다란 무늬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이 영화 속에서, 치히로가 다른 세계로 간 곳은 다름 아닌 신들이 쌓인 피로를 풀러 오는 목욕탕인데, 유바바가 경영하는 이 목욕탕은 일본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는 일본의 목욕 문화가 잘 나타나있다. 특히, 가마 할아범이라는 사람이 가마를 데우고 탕에 넣는 향료도 만드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목욕탕이기에 가마를 데우는 일은 끝없이 반복되고 향료도 가마를 데우는 동시에 만든다. 이는 목욕탕 물을 보일러실에서 가마를 이용해 데우는 모습이라든가 목욕을 위한 여러 가지 향료를 사용하는 모습도 일본이라는 나라의 목욕문화를 아주 잘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가족 중 한 사람이 목욕을 하고 나면 그 물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온 가족이 차례로 사용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그 물이 식지 않도록 데우는 가마라고 하는 장치가 일본의 목욕공간에서는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린이 센에게 했던 말.. "넌 ‘예’ 나 ‘고맙습니다.’라는 말도 못하니? 가마 할아버지께 신세를 졌잖아!!" 라고 가마할아범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라고 치히로를 나무라던 린의 말 속에서도 남에게 입은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며, 예의를 중시하는 일본민족의 특성이 또 한 번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또한, 치히로와 린이 생활하는 넓은 방에서 여러 사람 이 함께 취침하는 모습이라든지 침대를 사용하지 않고 다다미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잔다든지 하는 장면에서도 일본식 문화를 엿볼 수 있었다.영화 속에서 나타나는 세계관, 문화관 재해석해 보기제목에 들어있는 ‘행방불명’이란 일본어로 ‘神隱し(카미카쿠시)’라고 한다. 카미카쿠시란 신이 장난을 쳐서 인간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을 뜻하는데, 지진 및 화산 등 자연재해가 많으며 또 한편 과거 역사에서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전쟁이 많았던 시절에 갑작스레 사라진 사람을 일컫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의 입장에서 해석해보면 ‘카미카쿠시’란 신의 영역으로 들어온 인간을 뜻하는 말이 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이처럼 자신도 모르게 신의 영역으로 들어와 모험을 펼치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의 영역이지만 현실세계의 거울인 곳.[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그렇게 거울처럼 우리의 현실을 비쳐준다.떼쟁이 치히로가 헤매다 도착한 곳은 요괴세계의 성공한 CEO 유바바가 지배하는 곳이다. 그곳은 일하지 않는 사람은 돼지나 닭이 되어 먹혀버리거나 혹은 석탄으로 변해 불에 태워진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일해야 하는 곳. 요괴들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그들은 푼돈에 유바바에게 혹사를 당하며 고된 노동에 시달리지만 마녀 유바바와의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한다. 계약을 어기고 일을 하지 않거나 도망치다가 잡히면 그대로 돼지, 닭, 석탄이 되는 운명이 기다린다.유바바는 치히로(千尋)의 이름에서 ‘尋’를 빼버리고 센(千)이라고 이름을 바꿔버림으로써 센을 지배하게 된다. 즉 이름을 지배함으로써 그 대상을 다스리는 것이다. 이런 일들은 우리 사회에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데, 그것은 ‘노동자’를 ‘근로자’로 부르면서 ‘부지런하게(라고 쓰고 쎄빠지게 일한다 라고 읽는다.)’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연장근무, 초과업무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뿐만 아니라 이름을 지배하는 것은 말과 언어를 지배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언론통제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요괴 세계의 성공한 CEO 유바바는 신들이 휴식하며 정화를 하는 온천장을 운영하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고 온천장 꼭대기의 팬트하우스에서 부유한 생활을 하며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싱글맘이기도 하다.부유층의 아이들에 대한 대부분의 편견이 그러하듯 유바바의 아이 또한 거만하고 자기 멋대로에 남을 괴롭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버릇없는 아이이다.신의 영역, 요괴의 세계이지만 어쩐지 인간세상과 닮은 공간. 그것이 바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이해하는 첫 번째 코드이다.두 번째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등장하는 신들의 모습이다.십리 밖에서도 악취를 풍기는 오물신이 유바바의 온천장을 찾아오자 오물신의 시중을 들면서 그가 사실은 오물신이 아니라 유명한 강의 신으로 오염이 되어 신으로써의 품위를 잃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작은 강이었으나 아파트가 세워지면서 매립되어 사라져버리자 방랑을 하게 된 강의 신 '니기하야미코하쿠누시'.원래 신이 아니지만 신 행세를 하며 유바바의 온천장에서 일하는 종업원들의 탐욕을 깨닫고 ‘금’으로 욕망을 조장하는 얼굴 없는 요괴 '가오나시'.이들은 각각 인간에 의해 오염되어버린 자연, 인간에 의해 훼손된 자연이 다시 재앙화 되는 것. 신이 아니지만 신처럼 숭배되는 황금만능주의와 물신주의를 뜻한다.신들의 영역, 요괴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지만 그 아래 자본주의에 대한 누구보다 냉혹한 비판과 분석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인 것이다.그런 점에서 유바바의 이름이기도 한 ‘油’는 석유에너지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한 자본주의를 뜻하며 온천장의 탐욕스러운 CEO 유바바는 자본가를 뜻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바바에게는 아주 똑같이 생긴 쌍둥이 언니 제니바가 존재한다는 것.그 제니바가 동생 유바바에 대해 평가하는 말이 아주 걸작이다.“걔가 좀 촌스럽잖니?”똑같이 생기고 마력을 지녔지만 한쪽은 탐욕스러운 CEO, 한쪽은 느긋한 Slow life를 즐기는 시골 할머니.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유바바와 제니바를 통해서 자본주의의 두 얼굴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 탐욕을 쫓다 '가오나시'에게 삼켜져버리는 요괴들. 탐욕에 빠져 금과 보석을 쌓아두지만 정작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알아보지 못하는 유바바. 부와 권력을 쫓지 않으며 자신이 직접 만든 물건으로 생활하며 ‘마법이란 사실 쓸모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제니바.인간이 강을 오염시켰기 때문에 오물신이라 오해받는 강의 신, 인간을 저주하며 더욱 강한 힘을 얻고자 했던 ‘니기하야미코하쿠누시’ 이들이 주는 교훈은 너무도 크다.‘하울의 움직이는 성’, ‘천공의성 라퓨타’, ‘붉은돼지’, ‘벼랑위의 포뇨’, ‘이웃집 토토로’, ‘원령공주’ 등수많은 애니매이션 히트작이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좋은 작품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꼽고 싶다.인물의 세세한 행동 하나하나에 웃음과 의미를 부여한 작품이기도 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그가 다른 작품에서도 그러했듯이 전작의 설정이 또 한 번 등장한다.그것은 바로 [이웃집 토토로]에 등장했던 마쿠로쿠로스케, 숯검댕이들.그리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마법을 배우기 위해 마녀를 찾아간다는 설정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마법을 배우기 위해 황야의 마녀를 찾아간 하울과 또 다시 연결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이렇듯 서로 닮거나 연결되어 있다.
    독후감/창작| 2010.06.01| 4페이지| 2,000원| 조회(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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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파르타쿠스의 죽음
    R막스 갈로의 소설‘스파르타쿠스의 죽음’을 읽고E0DPOR대 학 : 人文社會大學학 과 : 法學科과 목 : 英美法담당교수 : 정병윤 교수님학번/학년: 200410653/4학년제 출 자 : 이 재 희T‘스파르타쿠스’ 라고 하면 로마사를 언급할 때 검투사들이 일으킨 반란을 주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사 책에서도 그에 대해서는 많아봐야 한 두 줄 정도로 언급하고 넘어가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실제로 스파르타쿠스가 어떠한 사람인지 그리고 당시 로마의 상황과 반란이 어떠한 식으로 전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었다.일반적으로 역사가 왕조 중심 아니면, 권력자 중심으로 서술되다 보니 하층민이나 일반 대중의 눈을 통한 역사를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우리가 보는 역사는 실제 존재하는 역사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역사와 픽션을 가미한 역사소설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허구와 실재를 혼동하게 할 여지가 있다는 비판을 받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이 책도 그와 같이 역사와 픽션을 적절히 섞어 스파르타쿠스라는 한 인물을 통해 로마제국 시대의 사회상과 함께 자유를 얻기 위한 노예들의 처절하면서도 아름답고 숭고한 투쟁을 그리고 있다. 기존의 왕조중심 내지는 권력자 중심으로 보는 역사가 아니라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당시를 그리고 있어 보는 이에게 색다름 감흥을 불러일으킨다.어릴 적 ‘밴허’나 ‘글레디에이터’와 같은 영화를 통해 검투사들이 서로 싸우고 죽이는 장면과 황제의 명에 따라 패배한 상대방을 죽이는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이를 찬란한 로마제국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했지만, 책장을 한 장 두 장 넘기면서 비록 역사책에 한 두 줄 정도밖에 차지하지 않는 이야기라도 거기에 내포된 역사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것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들이 지은이의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지은이가 역사학자여서인지 비록 픽션이 가미되었음에도 결코 스 마치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은이의 글을 이끌고 나가는 탁월함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노예로 살기를 거부하고 하루를 살더라도 자유롭게 살기를 원하는 노예들의 모습과 자신을 따르는 수많은 노예들을 살리려고 하는 스파르타쿠스의 번민과 고뇌는 행간을 통하여 아주 강하게 다가오며, 당시 그들에게 있어 자유가 얼마나 소중하고 절박한 문제였는지를 느끼게 한다. 비단 이는 로마제국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 숨쉬는 모든 역사에 등장하는 공통 주제였고, 어떤 면에서는 역사는 피지배층의 자유를 향한 역사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기억되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라는 스파르타쿠스의 말이 오랜 동안 머리를 맴도는 자유에 대한 힘이 배어져 나오는 책이다.비록 픽션이 가미된 역사소설이지만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게 함과 동시에 읽는 이로 하여금 역사, 특히 로마역사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고 시대정신을 이끌고 가는 다수 대중의 힘이 느껴지는 매력을 가진 재미난 소설이었다.스파르타쿠스는 로마의 속국 트라키아 출신의 검투사로 기원전 73년부터 71년까지 로마 공화국을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노예들을 이끌었다. 당시는 로마 공화정 말기로, 로마는 지중해 주변의 거의 모든 나라를 속국으로 만들었고, 로마의 지배를 받는 민족은 모두 노예의 운명을 맞게 되었다. 로마 시민들은 노예를 말할 수 있는 짐승, 말하는 도구로 여기며 타락하고 사치스러운 삶의 발판으로 이용했고, 노예들에게 자유는 죽음과 같은 이름이었다.근대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예제도는 폐지되어 이제는 인간이 누군가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인간의 권리와 자유를 사고 팔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노예제도가 사라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구'로 사용되어 지면서 고통 받았었는지 지금의 우리는 알 길이 없다. 다만 과거의 자료를 통해 추측해 볼 수 있을 뿐이다. 노예제도의 비판 나아가 인종차별에 대한 비판을 주제로 만들어진 영화나 소설 등을 그동안 많이 접해 보았다.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고, 있는 사람의 시선,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되어 지기도 한다. 이러한 독특한 시선 처리는 저자가 그려내고자 하는 스파르타쿠스를 독자가 더 가까이 느끼는데 도움을 주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고 느꼈으며, 이 작품의 사실적, 극적인 효과를 높이는데 기여한다고 느꼈다.스파르타쿠스는 트라키아의 무사이며 메디아족의 왕자였다. 그는 로마인들에게 붙들려 노예시장에서 검투사로 팔려간다.노예로 끌려가 검투사로 팔린 스파르타쿠스는 동료 검투사들과 함께 검투사 양성소를 탈출한 다음, 베수비오 산을 근거지로 삼아 그들을 추격한 로마 병사들을 물리쳤다. 그들이 로마 병사들을 물리쳤다는 소문은 메마른 덤불숲을 태우는 불길처럼 주변 지역으로 퍼져나갔고 순식간에 수만 명의 노예가 그들과 합류했다. 이에 로마는 차례로 법무관과 집정관이 지휘하는 수많은 로마 군단을 보냈지만 스파르타쿠스가 이끄는 노예군의 처절한 분노와 두려움 없는 증오 앞에서 로마 병사들의 피는 강이 되어 흐르고 벌거벗겨진 시체는 짐승들의 먹이로 남겨진다. 당시 세계를 지배했던 로마는 지나가는 곳마다 초토화시키는 노예들의 반란에 벌벌 떨었고, 스스로의 삶을 증오하기에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노예들은 처음으로 누리게 된 거칠 것 없는 자유를 만끽했다.이탈리아 카푸아의 노예 검투사 양성소에 소속된 검투사로 생활하면서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자를 죽여야 한다는 것, 그러나 정작 자신의 목숨은 또 다른 자의 손가락 위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 그래서 자유를 찾아 70여명의 동료 노예들과 함께 양성소를 탈출한다. 정부에서 보낸 진압군 보병 3,000명과 싸워 이겼다는 소식을 듣고 양치기들과 소치는 사람들, 가난한 남자들과 여자들, 아이들, 다른 지역의 검투사들까지 그들과 합류하여 수천명으로 늘어난다. 계속되는 로마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그리고 점점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자유민들을 위해 스파르타쿠스는 통제가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그것 또한 쉽지가 않다. 남이탈리아에서 시칠리아 섬으로 건너가려다가 실이끄는 10개 로마 군단에게 패배했다. 하지만 누가 스파르타쿠스와 노예들이 정말로 패배했다고 말할까? 자유로운 죽음을 위해 싸운 그들은 노예가 아닌 스스로의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자유인으로 죽어갔다.노예제도 하면 채찍질당하면서 일을 하고 영원히 자자손손 노예로 살아야 하는 안타까운 존재라는 생각이 우선 든다. 그리고 노예제도가 성행했던 로마에 대해서는 잔인한 나라 찬란한 문명과 잔인한 성격을 가진 두 얼굴의 제국이라는 말들을 한다. 하지만 정말로 로마라는 나라가 잔인하고 두 얼굴의 성격을 가진 나라일까?로마는 1,000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이 나라가 노예로 인한 반란은 2~3번에 지나지 않았다. 과연 그 노예들이 처벌이 무서워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은 걸까? 그것은 아니다. 그 시대는 어느 나라나 노예가 있던 시대였다. 찬란한 문명의 아테네도 노예는 있었고 이집트 오리엔트 문명국 어느 나라나 노예제도는 존재하고 있었다.그 나라들도 노예들에 의한 반란은 있었고 강경진압으로 그 반란을 차단을 하였다. 그렇다면 왜 로마노예제도에 대해서만 관대하지 못한 것일까? 너무 찬란한 문명을 가진 나라여서 노예제도라는 제도가 너무 큰 오점으로 보여서 일까? 하지만 사실 로마제국의 노예제는 다른 나라와는 달랐다. 노예들도 실력이 있으면 로마 시민이 될 수 있는 열린 사회였던 것이다. 노예도 재산을 가질 수 있고 가정도 이루고 살 수 있는 그런 시대이다.그래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일어났지만 전국적인 노예봉기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스파르타쿠스의 저항으로만 끝이 난 것이다. 지금의 상식으로 생각해서 호불호를 말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노예제는 당연히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다. 하지만 이건 지금의 생각이고 그때 당시는 승자는 모든 것을 지배한다. 사람도 지배한다. 고로 나도 패자가 되면 노예가 될 수 있다. 라고 하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던 시대이다.그러한 시대에 로마시민도 노예가 될 수 있고 노예도 로마시민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있던 국가라고 한다면 놀라움의 대반란은 그 당시 그 노예를 소유하고 있던 자들이 몰지각하여 일어난 반란이다. 이 반란으로 로마 전체가 나쁘다고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을 읽으면서 너무 편향된 시각으로 로마를 바라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좀 들었다. 하지만 소설적인 면으로 보면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소설임에는 틀림이 없다.기원전 1세기의 노예전쟁을 그린 이 작품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바로 에필로그였다. 그 마지막 장면에서는 스파르타쿠스군의 생존자 6000명이 차례로 6000개의 십자가에 못 박히는 상황이 묘사된다. 바로 로마 제국의 힘의 상징이자 문명의 상징이기도 한 아피아 가도 양 옆을 따라서 말이다. 스스로를 '문명인'이라 자처하는 로마인들이 행한 이런 극단적으로 '야만스런'행위의 모순에 나는 놀라고 말았다.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항상 로마 제국이 가진 문명의 찬란함을 찬양하며 그것에 매력을 느꼈노라 고백해왔다. 그러나 이 문명의 찬란함, 즉 빛나는 흰 대리석 도시의 찬란함으로 표상되는 로마의 위업은 수많은 피정복민들의 피로써 완성되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결국 로마는 그들만의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제국의 십자가'에 '노예의 피'를 묻혀 온 것이다.스파르타쿠스는 이러한 제국의 십자가를 무너뜨리길 원했다.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적어도 노예의 피를 그들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유민의 피를 흘리며 죽기를 원했다. 그리고 검투장에 갇혀 맹수들에게 찢겨 소모품으로 죽을 운명만을 기다리던 다른 노예들도 또한 그것을 위해 일어났다. 이들의 정당한 분노는 눈물겨운 것이었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스파르타쿠스야 말로 '진정한 고대 프롤레타리아의 모범'이라 칭했고, 볼테르는 스파르타쿠스의 노예 해방 전쟁을 '아마도 역사상 유일하게 정의로웠던 전쟁'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그런데 로마 제국은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여지없이 진압해 버린다. 그들이 가진 '야만족에 대한 혐오'에 힘입어서 말이다. 그들이 그리스의 문화를 그대로 계승하면서,.
    독후감/창작| 2009.08.20| 6페이지| 2,000원| 조회(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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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영화 도쿄걸을 보고
    미래를 걷는 소녀 [원제: 도쿄 걸(東京少女)]2008년 PIFF, 4년 만의 부산국제영화제 관람이었다. 그리고 2004년과 2008년 모두 요트경기장인 야외극장에서였다.2004년을 추억해보면 영화 상영 전 가수 JK김동욱의 공연과 개막작인 독일영화 ‘미치고 싶을 때’를 보고 큰 감명과 자극을 받았고, 동시에 주연 여배우의 미모에 반했던 기억이 있다.이번 2008년 또한 일본영화 ‘도쿄 걸’을 다보고 나서는 여주인공 ‘미호’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영화가 시작하기 전 주연배우들과 감독, 작가 등이 무대에 올라 무대 인사를 하였다. 내가 앉은 자리는 가운데쯤이라 비록 주인공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여주인공의 “안녕하시므니까? 캄사하므니다..” 라는 말에 내 마음은 녹고 말았다. 어쩜 그리도 애교 넘치고 귀여운지...이어 야외 스탠드가 꺼지고 영화는 시작되었다.이 영화의 이야기는 100년 전 메이지 시대의 작가 지망생 토키지로와 현재 도쿄에 살고 있는 작가 지망생인 여고생 미호(미래를 걷는 소녀라는 뜻)라는 소녀 미호 사이에 다소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설정으로 시작된다. 엄마의 재혼을 반대하던 미호는 당돌히 약속장소에서 재혼 반대의 뜻을 밝히고 호텔의 계단을 내려오던 도중 지진이 일어나 놀라 떨어뜨린 핸드폰이 떨어지며 ‘웜홀’이라는 시간적 이동공간에 빠져들면서 시작된다.미호의 핸드폰은 100년 전, 현재 미호가 있는 호텔에 위치하였던 메이지 시대의 한 출판사의 계단아래 서있는 토키지로의 머리위호 떨어지게 된다. 토키지로는 희한하게 생긴 물건을 집으로 가져가게 된다. 달이 밝은 밤 토키지로가 가져온 이상한 물건에서 벨이 울린다. 이로써 100년의 시차를 가진 둘이 통화를 시작하게 된다. 다소 영화의 소재는 엉뚱하고 현실성이 없지만, 영화라고 생각하고 쭉 보다가 보니 나도 모르게 흥미는 더해갔다.둘은 달이 떴을 때만 통화연결이 가능하였고, 매일 밤 통화를 하며 서로의 고민도 나누며 힘이 되어 주었다.일상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매일 밤 통화할 시간만 기다리던 둘은, 낮에 달이 뜨는 날 긴자에서 데이트를 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둘은 100년의 시간차 때문에 만날 수는 없었으므로, 통화를 하며 토키지로는 100년 전의 그곳에, 미호는 현재의 이 곳에서 같은 장소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들뜨게 된다.둘은 같은 이름의 식당을 찾아 같은 음식을 주문하여 동시에 식사를 하고, 긴자거리를 걷는다. 그때 갑자기 토키지로가 한 선물가게에 들어선다.그곳에서 나나미라는 어린소녀를 만나게 되고, 거울을 사고서는 이 가게에 100년 동안 보관 하여, 100년 후 찾아올 미호라는 소녀에게 전해달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나나미라는 어린여자아이인데, 이 아이가 바로 미호가 들어간 선물가게의 주인인 100살이 넘는 노파라는 것이다. 그리고 할머니가 된 나나미로부터 100년 전 토키지로가 맡겨놓은 거울을 선물 받게 된다. 거울 뒤에는 이런 글귀가 써져있었다. “시간은 멀리 있지만, 마음만은 가까이 있네.” 선물을 전해 받은 미호는 감격하고, 그 선물을 지키고 전해준 나나미 할머니는 미호의 전화를 건네받아 100년 전 토키지로와 통화하는 도중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는 말만 재차 한다. 이때 영화를 보다 왜 갑자기 고맙다고 하지? 라는 의아함이 생겼다. 이는 후반부에 밝혀지는데, 토키지로가 써 오던 ‘그 소설’을 완성하여 출판사에 제출하러 가는 길에, 연못에 빠진 어린 나나미를 구하고서 그가 익사했기 때문이었다.나나미에게 있어 토키지로는 생명의 은인인 셈이다. 그러니 거울을 100년간 보관할 수 있었고, 그렇게도 감사할 수밖에...이렇게 미호와 토키지로의 꿈같은 행복한 시간들은 끝을 맞게 된다.미호는 토키지로의 흔적을 찾다 토키지로의 여동생의 손자의 집을 찾게 되고, 그 집에서 우연히 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토키지로가 쓴 ‘그 소설’을 건네받게 된다. 그 제목은 ‘미래를 걷는 소녀’, 즉 미호였고, 글의 내용은 미호와 토키지로의 만남과 미호를 향한 토키지로의 마음을 나타낸 글이었다.
    예체능| 2009.08.20| 3페이지| 2,000원| 조회(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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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감상문
    ‘프랑스 영화 산책’이라는 교양과목을 선택한 것은 나의 감성에 대해서는 정말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세편의 감상문을 쓰면서 가장 감명이 깊었던 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 그 이유이며, 강의실에서 교양수업을 통해 비록 DVD를 통해서 보았지만 그 감동은 나의 가슴에 전해져 왔다.원작을 그 유명한 장발장 이야기 의 작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에 두고 있어 감동적 요소와 탄탄한 스토리를 갖추었으며, 2005년 프랑스에서의 첫무대의 성공과 그 후 해외에서의 공연도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가장 최근의 공연이 경남 김해에서의 공연인데, 이를 기억하는 이유가 가수 SES의 멤버였던 바다가 에스메랄다의 역할을 맡아 열연을 했다고 알고 있기에 기억하고 있다.이 작품의 초연 당시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대세를 이루는 가운데 프랑스 뮤지컬의 출현은 다소 낯설었고, 최고 티켓 가격이 무려 20만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였다고 한다. 공연 초반 높은 티켓 가격 때문에 가격 저항이 있는가 싶더니 후반으로 갈수록 입소문을 타면서 우리나라의 세종문화회관의 그 넓은 좌석들마저도 메웠다고 한다.2006년 공연 역시 크게 흥행을 하면서 국내에 프랑스 뮤지컬 붐이 일게 했다. , , 등 프랑스 뮤지컬이 몰려온 것은 성공 이후의 일이다.초연 당시 일부 의 마니아 관객들은 한달 남짓한 기간 동안 10여차례나 관람하는 등 과도한 애정을 보이기도 했고, 공연 말미에는 암표가 성행하는 등 병적인 집착 증후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도대체 무엇이 에 빠져들게 한 것일까?브로드웨이 뮤지컬에 길들여진 뮤지컬 관객들에게 프랑스 뮤지컬 는 신선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스펙터클한 무대와 탄탄한 드라마 혹은 유쾌한 코미디 일색이라면 는 그것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무대는 단순했지만 상징적이었고, 탄탄한 플롯은 아니지만 비약과 비유적인 표현을 통해 정갈한 드라마를 연출했다. 가사는 격조 높고 시적이었으며, 현대무용을 위주로 한 춤은 그 자체만으로도 미적 충만함을 안겨주었다.브로드웨이 뮤지컬이 노래, 연기, 춤이 통합된 작품이라면 프랑스 뮤지컬은 각각의 전문성을 살려서 각 분야의 완성도가 높았다. 프랑스 뮤지컬은 연기(노래)를 하는 배우(가수)와 춤을 추는 댄서가 구분된다. 전문 가수와 전문 댄서가 출연하는 작품은 미적 완성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기존의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식상한 뮤지컬 관객들은 에서 미적 해갈을 경험했다. 가벼운 웃음거리와 오락적인 유흥이 위주가 된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는 감성적이고 예술적인 감동을 느끼기 힘들었다.의 높은 예술적 완성도는 뮤지컬 관객뿐만 아니라 기존에 뮤지컬을 보지 않았던 공연관객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오페라 가수와 견주어 실력이 떨어지지 않는 가수들과 현대무용 및 아크로바틱, 비보이가 혼합된 댄스는 여느 예술장르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았다. 뮤지컬이 통속적이고 가벼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장르라고 등한시하던 관객들도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일반적으로 ‘뮤지컬’하면 연상되는 것은 화려한 무대장치, 현란한 춤, 특수효과 등이다. 하지만 는 엄청난 특수효과나 기교적인 군무에 기대지 않는다.많은 현대무용가들이 극찬한, 인간의 몸이 연출해낼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자유로운 춤, 한번 듣는 것으로 머리속에 각인되어버리는 아름답고 강렬한 노래, 웅장하면서도 단순한 창조적인 무대, 몽환과 현실을 넘나드는 독특한 색채는 소름 끼칠 것 같은 장엄함과 애절한 사랑의 절규를 표현해내며, 보는 이의 가슴을 감동으로 울리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9.05.26| 3페이지| 2,000원| 조회(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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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리학과제] 심리학이론(관찰학습)과 사회현상 접목
    1. 들어가는 말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심리학의 이론은 거의 모든 부분에 작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듯하다. 타인의 행동과 표정으로 그의 심리 상태를 분석·감안하고, 또한 타인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서도 우리는 적절한 말과 행동을 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이 세상에 나오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습득하게 된 것인데 이것이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한데 이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 심리학의 소명이다. 이미 우리자신은 이론적, 체계적으로 심리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할지라도 알게 모르게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의 구조는 모르지만 잘 타고 다니는 사람과 같다고 할까. 이 같이 일상생활 속에 일어나는 행동을 보다 과학적인 방법으로 재해석해 보면 좀 더 타인과 나의 내면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아래에서는 일상생활 중에서 내가 겪은 일과 이론을 심리학적으로 고찰해 보겠다.2. 사회현상과 접목시켜보고 싶은 이론 : 학습(관찰학습)심리학에서 학습이라 함은 경험에 따른 유기체행동의 비교적 영속적인 변화라고 일컫는다. 여기서 말하는 학습의 범주 내에는 파블로프의 고전적 조건형성과 스키너의 조작적 조건형성을 포함하는 연합학습이론 외에 앤드류 멜조프, 알버트 반두라의 관찰학습이론이 포함된다. 관찰학습이란 다른 사람(모델)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 행동이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반두라의 관찰학습의 과정은 다음 4단계(A-R-P-M)로 이루어진다.① 주의집중 단계(Attentional processes)관찰학습의 첫 단계로 어떠한 행동이 관찰을 통해서 학습되려면 모델에게 주의를 기울여야한다.② 보존 단계(Retention processes)인간의 기억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지거나 사라지기 때문에 모델을 관찰한 후 모델의 행동을 상징적 형태로 기억하는 어떤 방식을 가져야만 한다는 것이다.③ 운동재생 단계(Motor reproduction processes)관찰학습과 관련된 셋째의 기본요소는 상징적으로 부호화된 기억을 외형적인 적절한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④ 동기화 단계(Motivational processes)관찰학습은 강화 없이도 관찰만으로 학습이 가능하며, 재현할 수 있다. 이 때 관찰한 것을 수행할지 말지는 동기의 영향을 받는다. 동기부여는 반응의 강도를 증가시킨다.3. 관찰학습을 사회현상과 접목하여 이해해보자.최근 가장 이슈가 되었던 Top탤런트 故최진실의 자살을 모방해 자살사고가 여러 건 발생하였다. 10월 3일 0시 전남해남의 박모씨, 같은 날 18시 강원도 강릉시의 이모씨가 연이어 자살하였다. 이외에도 뉴스에는 정치인인지 기업가인지 하는 사람도 최진실과 동일한 방법으로 자살하였다는 뉴스를 접한 바 있다.그에 앞서 발생한 개그우먼 정선희의 남편이었던 故안재환의 자살을 모방하여 연탄가스와 수면제를 이용하여 자살하는 사람들도 속출했다. 9월21일 전남 담양군에서 40대 택시기사 연탄가스 자살, 10월2일 광주 두암동의 30대 연탄가스 자살, 10월 13일 부산 동래에서 여고생이 렌트카 안에서 연탄가스를 피워 자살 등의 많은 모방 자살사고가 일어났다.전문가들은 이들 자살 방법이 이전엔 흔하지 않았던 점으로 미뤄 유명인 자살을 모방한 '베르테르 효과'일 가능성이 크다고들 말한다. 베르테르 효과란 동조자살(copycat suicide) 또는 모방 자살 이라고도 한다.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유래하였다. 이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 베르테르는 여자 주인공 로테를 열렬히 사랑하지만, 그녀에게 약혼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실의와 고독감에 빠져 끝내 권총 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이 소설은 당시 문학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면서 유럽 전역에서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시대와의 단절로 고민하는 베르테르의 모습에 공감한 젊은 세대의 자살이 급증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발간이 중단되는 일까지 생겼다. 베르테르효과는 이처럼 자신이 모델로 삼거나 존경하던 인물, 또는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유명인이 자살할 경우, 그 사람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는 20년 동안 자살을 연구하면서 유명인의 자살이 언론에 보도된 뒤, 자살률이 급증한다는 사실을 토대로 이런 연구 결과를 이끌어 냈다.위의 뉴스들을 볼 때 마다 왜 굳이 저렇게 까지 자살수단을 자세히 언론에서 보도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TV 방송매체의 관찰학습 효과를 다들 익히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아마도 자신들의 삶에 회의와 무기력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TV에서의 저런 뉴스들은 커다란 동기부여를 하였을 것이다. 울고 싶은 사람 뺨 때린 격이랄까?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자살보도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홍강의 자살예방협회장(서울대 명예교수)은 13일 제주도 칼호텔에서 열린 제75회 기자포럼에서 언론의 부주의한 보도가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국내 신문·방송 자살기사 모니터링(2006년 1월~2008년 8월) 결과 신문은 72%(적절 27.9% 부적절 49.1% 매우 부적절 22.9%), 방송은 80.6%(적절 19.3% 부적절 39.6% 매우 부적절 41%)가 부적절하게 자살을 보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 같은 언론의 대대적인 유명인 자살보도(장국영·이은주·최진실씨 등)가 일반인의 후속자살을 최대 14.3배나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홍 회장의 발표에 따르면 2005년 영화배우 이은주씨 자살 후 자살건수는 당초 2월 700명에서 3월 1300명으로, 동일한 자살방법도 2월 3백건에서 3월 7백50건으로 2배 이상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보도에 따른 ‘베르테르 효과’가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연구결과다. 이렇게 언론의 자살보도가 실제 모방 자살을 부르는 이유는 뭘까. 학계에서 역시 본인의 의견처럼 ‘방아쇠 효과’를 들고 있다.
    자연과학| 2009.05.26| 2페이지| 2,000원| 조회(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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