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르쥬 바따이유 ‘에로티즘’으로 본 감각의 제국★1.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조르쥬 바따이유의 ‘에로티즘’ 서문에서는 ‘에로티즘, 그것은 죽음까지 파고드는 삶이다.’ 라고 정의하였다.이 정의를 통해 바따이유는 에로티즘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에서 이것들을 융합하고 넘나들게 하는 가제라는 것을 이야기했다.사랑하는 사람과의 성적 합일을 통해 오르가즘에 도달하는 순간, 각 개인은 자기 망각과 영적 황홀의 상태에서 일시적인 죽음을 맛본다는 것이다.감각의 제국에서도 아베사다는 빚을 갚기 위해서 남편이 있으면서도 요정에서 일을 하게 된다. 어느 날 그녀는 요정 주인의 남편인 키치조우의 눈에 띄어 그와 성관계를 갖게 된다.그동안 몰랐던 성에 대한 쾌락을 알 게 사다는 점점 더 키치조우에게 빠져든다.결국 두 사람은 요정을 빠져나와 다른 요정에서 밀애를 즐긴다.시간이 흐를수록 사다의 집착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해지고 다른 사람의 눈은 아랑곳없이 아무 곳에서나 애정행위를 한다.그러던 중 사다는 극치의 쾌락을 느끼기 위해 키치조우의 목을 조른다.결국, 사다는 키치조우를 영원히 자신만의 남자로 남기기 위해 그의 성기를 자른다.그렇다면 이 영화에서 나타나는 죽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죽음은, 욕망의 분출에 대한 사회적 대가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는 금기를 깨뜨리면, 위반에 대한 그만큼의 대가가 돌아오게끔 되어져 있다.흔히들 말하는 자연의 순리, 섭리인 것이다. 즉 이 영화에서의 키치조우의 죽음은, 욕망의 절정을 경험한 자에게 돌아오는 자연의 섭리를 보여주는 것 같다.2.연속적으로 갈 수 있는 방법-죽음에서 바따이유는가 역설한 바, 단순한 성행위는 동물성으로, 성행위에서 인간의 내적 정신의 탐구는 에로티즘으로 분리하였다.왜냐하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성에서 인간의 내적 삶을 문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내적 삶이란, 인간이라는 각 개체가 불연속적인 상태로 존재하는 데서 오는 고립감이나 불안감을 뛰어넘고자 하는 연속성의 희구가 성행위를 통해 비유적으로 드러나는 의식을 말하는데, 이런 의식은 다시 죽음을 뛰어 넘고자 하는 생명욕을 함유하게 된다.아베사다도 불연속적인 상태로 존재하는 데서 오는 고립감이나 불안감을 뛰어넘고 키치조우와 영원히 하나가 되고자 그의 목을 졸라 죽이고, 그의 성기를 절단하였을 것이다.그의 죽음으로 불연속성이 키치조우의 죽음이라는 연속성으로 화하는 순간일 것이다.그리고 아베사다가 키치조우의 성기를 자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장면에서 에로티즘의 세속을 초월한 신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정도의 아름다움‘ - 생명과 죽음의 공존 상태에 대한 체험에서 나오는 동물적이고도 신성한 아름다움.바따이유의 이러한 이론을 마지막 장면에서 '사다와 키치, 둘이서 영원히'라는 문구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3. 금기와 위반.아베 사다와 키치조우의 성행위는 시작단계부터 도덕적으로 금기시 되었던, 불륜인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유부남과 유부녀의 관계는 불륜이다. 라는 금기를 위반하였으며, 이러한 점에서 영화 은 바따이유의 에로티즘과 유사한 부분을 나타내고 있다.인간은 스스로 금기와 구속을 부여하고 동시에 그것을 범한다. 우리는 우리가 우리를 스스로 틀에 가두고 그 틀을 깨고 나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의 이성이 그것을 억제한다고 생각한다. 에서 아베사다와 키치조우는 그 틀을 부셔버린 인물이다. 수업시간의 배운걸 인용하자면, 우리는 id가 super-ego에 지배되어서 사는 것이고 에서 두 주인공은 id가 super-ego를 지배한 것이라고 말할수 있다."위반은 금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금기를 완성하는 것이다." 이 말은 조르쥬 바따이유의 ‘에로티즘’에 나와있는 한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