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는 굶주리는가? 를 읽고(경제학입문 과제)2010311529 이명균이 책에서는 아빠와 아들간의 대화를 통해 기아가 발생하는 원인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가 흔히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이들은 왜 굶주리고 있을까? 단 한번이라도 이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적이 있을까?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단순히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식량이 부족하니까 전 세계의 경제적, 구조적 기아들에게 보내질 구호식량이 부족해 굶주리고 있는 거 아니겠어?” 라고 말이다.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진실을 깨닫게 되었다. 전 세계의 기아들에게 줄 식량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현재 지구의 1년 식량 생산력 수준은 120억의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부유한 나라들은 식량을 대량으로 폐기처분하거나, 법률이나 그 밖의 조치를 통해 농산물의 생산을 크게 제한하고 있단다. 생산자들에게 최저가격을 보장한다는 것이 그 이유이지.” 위 글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선진국에서는 국가가 생산자에게 일정한 할당량을 정해주고 그것을 초과할 경우 폐기처분하거나 벌금을 문다는 것이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후진국에서는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고, 비타민A의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음식이 남아 음식물 쓰레기 처리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게 말이 되는가? 물론 경제학에서 나오듯이 정부는 공급자를 보호해야할 책임이 있다. 이를 위해서 ‘최저가격제’를 실시하고 정부에서 곡물을 사들이는 것을 배운 적이 있다. 정부는 이를 통해 가격을 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가격을 조절하기 위해서 충분히 더 생산될 수 있는 농산물을 제제하고 이미 생산된 농산물마저 폐기처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신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사상은 본래 시장원리를 준수하고 자유경쟁을 촉진하는 사상이다. 그런데 현대에서는 이 사상이 ‘적자생존’의 의미로 와전되어 선진국들이 ‘제3세계’ 나라들이 자립을 하지 못하게 방해하고 그들을 이용한다. 무작정 식량만을 나눠주는 것은 도움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제3세계’ 사람들의 희망을 꺾어버리는 것과 같다. 동정이 깃들여 있는 도움이라면 마땅히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적자생존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3세계’를 이용한다면 그 사람들의 의지력은 점점 약해지고 결국은 희망 마져 사라질 것이다.우리나라 사람들의 냄비근성처럼 ‘제3세계’ 에 대한 세계의 관심도 이를 닮아있다. 국제원조기구들은 이들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지만, 지속적인 관심이 이뤄지고 있지 않다.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기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지만, 나중에는 분명 잊어버리게 될 것 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지구상의 소들이 사람들이 먹어야할 곡식의 많은 부분을 먹어치우고 있다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 책에서도 이점을 말하고 있다. 제3세계의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데, 소들은 지구상에서 생산되는 1/4의 식량을 먹어치우고 있다. 그런 생각도 잠시 뿐이고, 사람들은 ‘제3세계’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었던 곡식을 먹어치우며 키워진 소들을 맛있게 먹는다. 한 번씩이라도 꼭 생각해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소들이 사람이 먹을 곡식을 먹어서 사람이 굶어 죽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자신들의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굶어죽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봉사활동을 자주 다니고 다양한 캠페인에 참여를 했다. 그러다 보면 자주 볼 수 있는 내용이 가난과 배고픔이 대물림 되는 사태이다. 이러한 제3세계의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 밖에는 없다. 첫째는 기아의 근본원인인 ‘식량’을 지속적으로 공급해 주는 것과, 두 번째로는 ‘투자’를 통한 해결 방법이다.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이겨냈던 방법은 바로 ‘투자’를 통해서 우리나라의 산업을 일으킨 것이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줘라.' 라는 말이 있다.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재 식량을 지원해주는 것 보다 선진국이 앞장서서 개발도산국 이나 후진국의 산업을 일으킬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아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순환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진국들이 ‘적자생존’의 법칙에서 탈피해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장경쟁을 통한 사람들의 이기성과 황폐해진 인간성을 되찾고 ‘제3세계’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최선의 기아문제해결을 위한 방안인 것 같다.
제출자성명: 이 명 균 전화번호: 010 - 9662 - 8311※ 성적처리 중 긴급한 연락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제출자의 연락처를 꼭 기입해주세요.봉사기관명: 사회복지법인 뇌성마비재활원 양지의집 봉사기간: 3 월 7 일 ~ 5 월 2 일담 당 자: 윤 순 이 전화번호: 031 - 451 - 8799봉사 활동 보고서1. 사회봉사 했던 현장의 환경에 대해 기술해 봅시다.양지의집은 장애인 생활시설로, 심신이 부자유한 장애인들에게 보호, 재활, 특수교육 사회적응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그곳에서의 봉사는 장애인들의 잔존능력 개발과 기능 회복으로 재활 및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나아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여 장애인 복지증진을 위한 활동입니다. 양지의집 시설은 지금 까지 가본 기관들 중에 가장 시설이 좋았습니다. 모든 부분에 장애인들의 사용을 생각한 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2층에는 봉사자들이 머물고 잘 수 있는 방이있는데 매우 크고 편하게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또한 밖에는 매우 잘 조경된 마당이 있어 봉사를 하다가 쉴 때는 잠깐 그곳에 나가서 앉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녹향원은 성인 중증 장애인 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이곳은 의왕시 청계동에 있는 청계사 근처에 있는 곳입니다. 산이라 그런지 공기가 매우 상쾌하고 초록색 나무들이 무성해서 기분이 좋았으며 공기가 맑아 어르신들이 머무르기엔 안성맞춤인 기관이었습니다. 봉사활동 중에 아이들과 밖에 청계사 근처를 산책하는 활동이 있었는데 매우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가지 숨이 뻥 뚫리는 좋은 곳입니다. 장애인들이 머무는 방은 공기가 잘 통하게 일자로 배열되어있습니다.2. 사회봉사활동 과정 중에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기술해 봅시다.양지의집에는 매우 다양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두리라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제게 처음으로 다가와준 아이입니다. 그 아이 덕분에 장애인에 대한 거리감이 사라지게 되었고 그곳의 모든 아이들과도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두리는 다리가 불편해 항상 제 무릎에 와서 앉곤 했습니다. 그리고 쌍둥이 형제중에 양지의집의 대표 얼짱스타 태민이는 닥터스에 출연하기도 했고, 장난을 매우 잘치는 아이입니다. 태민이는 이번에 군포시에서 주최하는 장애인의 날 행사에서 모범장애인상을 받아 많은 자랑을 했습니다.녹향원에 어르신들은 매우 소극적이십니다. 학생인 제가 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꾸준한 봉사를 통해 같이 산책하고 운동도 하면서 어르신들과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저를 알아보고 큰 소리로 웃어주고 장난도 치십니다.3. 봉사활동 내용을 자세히 기술해 봅시다.양지에집에 매 달 가서 식사가 불편한 장애아들과 장애우들의 식사 보조, 음식 먹고 난 뒤 상 정리를 하고 빈 그릇 설거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옷, 이불 등 빨래를 했고, 목욕 도우미 때로는 과외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었습니다.녹향원에는 일층에 일자로 나열된 방들을 깨끗이 청소하고, 주변이 산이기 때문에 공기가 좋아 장애인분들과 같이 산책을 하는 활동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직접 밥도 해보고 설거지도 하고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어드리기도 했습니다.4. 활동했던 기관에 대해 느낀 점을 기술해 봅시다.봉사기관에 처음 들어갔을 때 신기한 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기관내에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신발장, 계단, 엘리베이터, 식당 등 모든 시설이 장애우들이 사용하기에 편안하도록 설비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점을 보면서 평소에 장애인들이 밖을 돌아다니려면 얼마나 불편한 점들이 많을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하철만 보더라도, 비록 장애인 전용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가 존재하지만, 실제로 장애인들이 이것들을 이용하는 모습을 거의 본적이 없습니다. 이는 즉, 아무리 장애우들을 위한 시설이 갖춰졌다고 해도, 실제로는 불편함이 많다는 것을 뜻 합니다.장애인들은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단지 신체적인 결함 때문에 사회에서 생활하는데 여러 가지 불편함이 존재하기 때문에 장애인이라고 불려지는것 뿐입니다.봉사기관의 철저한 장애인 시설을 보면서 실제 우리 주변에 개선되어야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는 점에 놀라게 되었고 하루 빨리 복지정책이 이뤄져, 장애인들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 불편함이 없도록 개선되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이 편하게 사용하는 시설을 이용하기엔 큰 불편함이 있지만, 비장애인이 장애인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시설을 이용하기엔 큰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것 같습니다.5. 사회봉사 경험과 관련해서 현재 어떤 느낌이 드는지 기술해 봅시다.“양지의집” 봉사활동에서는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어떤 일이든 지나고 나면 힘들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제가 힘들었던 다른 봉사들 보다 양지의 집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 곳에서 정을 유난히 많이 느꼈기 때문입니다.양지마을은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정신지체 아이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과연 내가 아이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처음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몇몇 아이들이 나와 저를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안으로 들어갔을 땐 거의 모든 아이들이 환희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이도 하고, 책도 읽어주고, 수학문제를 풀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식사시간에는 사방으로 흩어지는 밥알을 입에 넣느라 애쓰는 아이들의 밥을 먹여주면서 가슴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같이 보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의 표정은 더욱 밝아지고 덩달아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평소의 내 모습보다도 훨씬 더 밝게 웃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면서 내가 저 아이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봉사란 이런 것이구나.. 누가 누구를 도와주는 게 아니고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구나... 이런 생각도 잠시 해 보았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는 정이 들게 되었고 그 아이들을 닮아 긍정적인 사고도 하게 되었습니다. 헤어질 때 “형 빨리 와” 하는 아이들에게 “그래, 빨리 올게”하고 악속을 하였습니다. 저를 믿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지만 늘 부족함을 느낍니다. 지금은 내가 문을 들어서면 아이들이 먼저 나와 나를 반겨 줍니다. 그 아이들은 모든 사람에게 충분히 사랑 받을 자격이 있는 밝고 활발한 사랑스러운 아이들입니다. 하지만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 좁은 곳에서 평생을 지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신체의 장애는 장애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의 장애가 진짜 장애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몸이 불편해도 마음이 올바르고 성실하다면 장애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신체는 멀쩡해도 마음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면 진짜 장애가 있는 사람입니다. 봉사를 하면서 내가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준다는 생각보다는 내가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르신들한테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정신지체 아이들에게서는 천진난만한 밝은 표정을 배우고, 많은 사람들을 대하면서 그들 하나하나가 나의 선생님 이란 걸 느낍니다. 저는 열악한 환경에도 항상 밝은 아이들을 보면서 항상 짜증만 부리던 철없는 저에 대한 반성을 해 보았고 지금은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보고 제가 미래에 어떠한 직업을통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지에 대한 포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봉사를 마치고나니 여러 가지 아쉬운 점이 생각납니다. 장애우 분들에게 좀 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점, 가족같이 편안하게 대해드리지 못한 점 등 여러 가지 안타깝고 아쉬웠던 일들을 제 마음속에 담아봅니다.봉사를 통해 지금까지 느끼고 배운 점을 늘 가슴에 되새기며, 저를 더욱 더 갈고 닦는 계기로 삼아 이 사회에 소외되고 외면당하는 주위의 외로운 사람들을 가까이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계속 해 나갈 것입니다.6. 사회봉사 경험을 6개 내지 7개의 형용사로 표현해 봅시다.뿌듯한, 보람된, 자랑스러운, 존경하는, 아낌없는, 지속적인
(제목: 내마음속에도 사이비적 사고가!? )반 : 1조 이름 : 이명균(독자의 관심 유도와 논의 주제 설정 및 자신의 견해 제시)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사이비과학적인 사고가 자리 잡고 있다. 지금 자기 자신에게도 분명히 사이비과학적인 사고는 존재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우리에게 좋지 못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렇다고 사이비과학적인 사고방식이 완전히 우리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저자는 사이비과학적인 사고의 부정적인 측면만 주장하는 편향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지금부터 저자의 어떠한 주장이 편향적이고 잘못된 것인지 지적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알아보자.--------------------------------여기까지 서론-----------------------------------------(간략한 요약)본문 요약:사람은 생각의 오류를 저지른다. 심지어 사회에서 지식인계층에 속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도 이러한 생각의 오류를 갖고 있다. 이유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심리 때문이다. 저자는 누구나 구조적으로 저지르기 쉬운 생각의 오류를 일일이 지적하면서, 자신의 사고체계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아울러 사이비과학과 과학의 정의를 분명히 하고 차이를 확실하게 구별함으로써 대중매체 전반에 만연된 위험한 사고방식을 점검하고, 사이비과학적인 사고와 터무니없는 믿음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큰 피해를 가져오는지를 경고한다.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데 저자는 사이비과학적인 사고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이 완고하다.(논평지침에 따를 논평글)명확성의 기준1.사이비의 원래 의미는 겉으로는 그것과 같아 보이나 실제로는 전혀 다르거나 아닌 것을 이르는 말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저자는 사이비적 사고를 언급할 때의 ‘사이비’는 이와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진다. 이 글에서 사이비는 ‘엄정한 통제연구가 배제된 체로 일화적인 증거나 직접적인 증언처럼 질이 낮은 자료들에서 결론을 이끌어 낸 것‘ 의미 한다.2. ‘믿음’이라고 하면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한 믿음, 즉 종교에 대한 믿음이라고 이해되기 쉽다. 이 글에서는 믿음의 정의를 종교적 믿음 뿐 아니라 우리 삶에 연관된 모든 것에 대한 믿음을 의미함을 언급해 명확히 하고 있다.유관성의 기준에서1. 이 글의 주된 내용은 비과학적인 것을 믿지 말자는 것인데 전체적인 글의 흐름과 내용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논점의 일탈 없이 글쓴이는 자신의 주장을 피력하기 위해 적절한 주장과 그에 알맞은 예시를 들고 있다. 따라서 유관성의 관점에서도 문제가 없겠다. ?합리적수용가능성의 기준에서1. 글에서 제시된 많은 주장들과 근거는 사실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이 진실인지는 확신할 수 없고 각자가 판단해야 할 것 같다. 대중매체가 믿음을 조장한다는 부분에서 제시된 “음모이론”에서 저자는 음모이론에서 제시된 주장들을 “검증되지 않은 이상한 주장들”이라고 표현해 이를 거짓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하지만 미국 아폴로호가 달에 착륙했다는 것을 입증해줄 과학적인 확실한 근거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는 합리적이지 못하다.2. 대중매체의 영향성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글쓴이는 터무니없는 믿음을 가진 언론대학원생들이 앞으로 편향적인 기사를 쓸 것이란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과학적인 믿음을 지녔다 할지라도 만약 기자의 직업의식을 제대로 갖춘 기자라면 ?객관적인 증거가 없는 사실을 섣불리 대중에게 선보이려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로지 비과학적인 믿음을 가졌다고 해서 기사가 비과학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쓰여 진다는 생각은 옳지 못하다.논의의 폭과 깊이의 기준에서1. 저자가 제시하는 근거들은 궁극적 주장인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자’ 라는 결과로써는 손색이 없다. 하지만 결과를 도출하기위한 과정에 있어서 저자는 글 전체적으로 다소 편협한 입장에서 주장을 펴고 있다. 이글은 과학을 절대적으로 긍정하고 실증주의적 관점에서 인간의 정신적 차원의 행동을 완전히 비판하고 있다. 인간의 정신도 존중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물론 실증론이 정신과 마음을 완전히 배척하는 사상은 아닌 걸로 알고 있기에 부정적인 측면은 아니다. 이성과 감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룰 때 가장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듯이,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기본 신념 바탕아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건 저자의 편협적인 개인적 결론일 뿐이다.(대안 제시)이 글에서 제시한 오류들은 인간이라면 모두가 갖고 있는 공통된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오류들을 쉽게 간과하지는 말고 비판적인 사고를 갖고 오류들을 다시 한 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오류하나가 가끔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재앙으로 다가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모든 오류는 인간이 만들어냈기에 얼마든지 그 오류들을 극복하고 자신의 믿음과 결정을 향상시킬 수도 있다.이글의 단점은 저자가 너무 편협적인 입장을 가지고 대안을 찾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이비과학적인 사고가 아예 필요 없는 것이고 인간에게 피해만을 끼치는 것으로 정의하며 이를 과학적인 시각을 통해 옳지 못하다고 증명하려 한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이비과학적인 믿음은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보다는 심리학적 접근을 통해 해답을 얻을 수 있는 현상으로, 저자의 사고방식으로는 해명할 수 없다.인간의 마음가짐, 즉 ‘믿음’ 의 힘은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는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어떤 것을 믿음을 통해서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마음가짐을 좋은 방향으로 갖고 건설적인 사고를 통해 인생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이와 동시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가 갖고 있는 다소 허구적이라 할 수 있는 '믿음'도 인간 세계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오장군의 발톱’ 연극을 보고1. 공연 시작 전, 제목에 대한 이해이번 연극 ‘오장군의 발톱’ 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연극하면 대학로나 그런 곳에서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항상 명동에 옷을 사러 다니면서 스쳐지나가면서 보아 왔던 건물에서 연극을 한다고 해서 시작부터 왠지 모를 기대감이 생기게 되었다. 건물 겉으로 보기에는 별거 없어 보이는 건물 이였지만, 건물 안에 들어서는 순간 내 생각은 완전히 뒤집혔다. 객석은 2층으로 구성되어있었고 매우 클래식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공연장 안내원들은 매우 단정한 복장을 입고 지정 객석 위치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처음에 ‘오장군의 발톱’ 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에는 연극의 내용이 전쟁과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있었다. 나는 ‘오장군’ 이라는 인물이 지위가 무척 높고 똑똑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고, 내용 또한 그 인물과 관련된 고위층들 간의 사건을 다뤘을 거라고 예상했다.2. 공연 시작국악에 쓰이는 악기들이 몽환적인 배경음을 깔아준다. 국악에 쓰이는 악기들의 소리라서 그런지 뭔가 더 한국적이고 향토적인 느낌이 더욱 잘 살아나는 듯 했다. 음악이 잔잔하게 깔리고, 조명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마음을 안정시켜 줬고 공연은 시작되었다. 내 예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공연무대의 배경은 산속 시골의 감자밭이였고, 무대에는 어리숙하고 순진무구해 보이는 농부 한명과 시골의 정취를 흠뻑 느끼게 해주는 소 한 마리가 등장했다. 무대배경을 언제로 잡아야 할지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있을 때인 것은 확실하므로 1940년대 정도로 추축할 수있다.주인공 농부의 이름은 ‘오장군’ 이였다. ‘먹쇠’ 라는 소와 대화를 나누며 즐겁게 감자밭을 일구는 오장군의 모습을 보면서 주인공은 세상에 때타지 않은 순진한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에 등장하는 ‘먹쇠’라는 소는 일반적인 연극의 소와는 틀렸다. 먹쇠는 외곽만을 가진 소 가면을 쓰고 있어서 배우의 표정연기와 감정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이점이 다른 연극과 좀 독특한 점 인 것 같았다. 소 말고도 사냥개나 너구리 같은 동물들도 등장하는데 모두 윤곽만 지닌 가면을 써서 생동감이 한층 더 잘 전달되었다. 주인공의 목소리는 털털했고 우렁찼다. 마치 정말 산속에서 외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오장군에게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여자 꽃분이가 있다. 오장군의 어머니는 전형적인 어머니의 체형이나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오장군이 새참을 다 먹고 어머니 무릎에 누워 1500초 동안 잠을 자겠다고 한다. 이는 어렸을 때 누구나 어머니의 무릎에 누워서 해봄직한 일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해 자식과 부모간의 깊은 정을 잘 보여주었다.그러던 어느날 우체국에서 사람이와 오장군에게 병역통지서를 전해 준다. 우체국 집배원의 복장은 눈 한쪽에 아대를 차고 있었는데 이는 전쟁의 치열함을 나타내고자 사용한 장식품인 듯 하다. 그 때부터 본격적인 연극의 내용이 시작된다. 장군이는 군대를 가기전에 꽃분이와 결혼을 하는데, 서로 안고 있는 오장군과 꽃분이를 둘러싼 나무들이 은은한 조명아래에서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 이는 아무리 순진무구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청년 장군이의 결혼일 지라도, 결혼 그 자체의 신성함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고, 뭔가 아름다운 느낌 까지도 받을 수 있었다.3. 공연의 본론! 오장군 군대가다.장면이 산속의 감자밭에서 군대부대 안으로 바뀐다. 바뀜과 동시에 오장군의 머리는 짧은 군대식 머리로 바뀐다. 난 가발인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오장군의 어리숙함은 군대에 가서도 여전하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들었던 군대에피소드중 많이들어왔던 숫자를 잘못세는 것을 연기하면서 관객들에게 공감을 유도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군대조교들이 군인이등병들의 군기를 잡는데 오장군은 그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어수룩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 곳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군대 안에도 사걍개 한 마리가 있었는데 윗옷을 벗고 있었다. 배우의 근육이 뚜렷하게 들어났는데 이는 사냥개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오장군의 어머니와 꽃분이는 군대에서 보내진 편지를 받고 기뻐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우체국에서 사람이 다시 장군이네 집을 찾아간다. 산속 시골마을에 또 다른 오장군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장군이는 다른 장군이의 병역통지서를 받고 군대를 간 것이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연극속의 시대배경을 생각해보면 가능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속 시골에서는 더 더욱이나 말이다. 장군이의 어머니와 꽃분이는 장군이가 훈련받고 있는 군대로 찾아가 장군이를 다시 돌려받고자 한다. 이 장면에서 어머니와 꽃분이는 땅바닥에 몸을 구부정하게 움츠리고 있고, 군대의 각종 부서의 사람들은 의자 위. 탁자위. 박스위, 로 그 자를 점점더 높여가면서 군대부서내의 위계질서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각각의 부서들은 이러한 자기들의 실수가 행여나 피해를 가져오게 될 까봐 책임을 회피하며 다른부서로 가보라고 장군이의 어머니와 꽃분이를 돌려 보낸다. 이 장면에서 나는 현 사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 주변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는 부정적인 모습이다. 부서마다의 복잡한 구조와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기 위한 모습과 어리숙해보이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이러한 정도가 심하다는 점도 있는 것 말이다.4.오장군 최전방으로 발령가다.오장군은 군생활을 하다가 최전방으로 발령을 받는다. 최전방으로 가기 전에 발령받은 군인들은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듯이, 힘이 없는 표정으로 자신의 발톱을 깎는다. 최전방으로 가는 길에 트럭을 타고 가는데 길이 매우 험했다. 무대의 달이 파랑색에서 빨강색으로 바뀌고, 배경음으로는 포 소리가 들려와 최전방의 살벌한 기운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달이 수많은 군사들의 피에 물든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장군이가 속해있는 부대의 상황은 적군의 공격 준비로 인해 좋지 못했다. 부대의 장교는 하나의 전략을 준비하는데 이는 바로 인질을 일부러 잡히게끔 하고난 후, 적군에게 거짓 정보를 알려주게 해 아군의 병력을 부풀려 이로 하여금 적군이 공격계획을 중단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작전을 위해서 희생양이필요하다. 장교는 희생양을 물색 중 자신을 안마해주러 온 오장군을 선택한다. 단지 아무것도 모르고 어리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결국 오장군같이 순진무구하고 세상에 때 타지 않은 사람이 다시 한번 사회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 결국 장군이는 희생양이되 거짓정보를 진술했다는 이유로 적군의 총에 참수를 당하고 만다. 참수를 당할 때 오장군의 표정연기가 너무나 리얼해서 아직도 눈앞에 보이는 듯 하다. 오장군의 어리숙함은 남아있지만 지금 상황에 대해 이해는 하지 못하고 있고, 단지 지금 상황에 대한 두려움만이 있는 표정연기를 보여주었다.
02반 사회과학계열 2010311529이명균말이 여기까지 미친 김에 얼마 독단일지는 모르나 언문일치 문장에의 포폄(褒貶)을 분명히 해보고 싶다.‘말을 문자로 기록한 것’ 은 문장이라 하였다. 물론이다. 그러나 언문일치의 문장일 따름이다. 한 걸음 나아가, ‘말대로 문자로 기록한 것’ 은 문장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말대로 문자’ 가 일반적으로는 ‘문장’일 수 있으나 ‘말대로 문자’ 가 문학, 더욱 문예에선 ‘문장’ 일 수 없다는 말이 ‘현대’ 에선 성립되는 것이다.말을 그대로 적은 것, 말하듯 쓴 것, 그것은 언어의 녹음(錄音)이다. 문장은 문장이기 때문인 것이 따로 필요한 것이다. 언어형태가 아니라 문장 자체의 형태가 문장 자체로 필요한 것이다. 언어미(言語美)는 사람의 입에서요, 글에서는 문장미가 요구될 것은 자연이다. 말을 뽑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문장의 허무다. 말을 뽑아내어도 문장이기 때문에 맛있는, 아름다운, 매력있는 무슨 요소가 남아야 문장으로서의 본질, 문장으로서의 생명, 문장으로서의 발달이 아닐까? 현대, 또는 장래 문장의 이상은 이곳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언문일치는 실용정신이다. 일상의 생활이다. 연기(演技)는 아니다. 평범한 것이요, 피상적인 것이요, 개념적인 것이다. 일일이 예리하려, 심각하려, 고도의 효과로 비약하려 하지 못한다.예술가의 문장은 일상의 생활 기구(器具)는 아니다. 창조하는 도구다. 언어가 미치지 못하는 대상의 핵심을 집어내고야 말려는 항시 교교불군(矯矯不群)하는 야심자(野心者)다. 어찌 언어의 부속물로, 생활의 기구로 자안(自安)할 것인가!그러나 누구나 먼저는 언문일치 문장에 입학해야 한다. 그리고 문예가가 되려면 이 언문일치 문장을 완전히 소화하고 나서야 할 것이다.주관적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 언문일치 문장의 옳고 그름을 분명히 하려 한다.‘말을 문자로 기록한 것’ 은 문장이라 한다. 그러나 이는 언문이 일치한 문장일 때 해당하는 것이다. 즉, ‘말 그대로를 문자로 기록한 것’ 은 문장이 아닐 수도 있다. 이에 따르면, 언문오류가 많은 현대 문학이나 문예의 ‘말 그대로의 문자’ 는 ‘문장’ 이 아닐 수도 있다.말을 그대로 적거나 말하듯 쓴 것은 언어의 녹음(錄音)이다. 문장은 문장자체로서의 의미와 가치가 필요하다. 또한, 언어형태가 아니라 문장 자체의 형태가 필요하다. 사람의 입에서는 언어미(言語美)가 요구되고, 글에서는 문장미가 요구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말을 꺼냈을 때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면 그것은 문장의 허무다. 말을 뽑아내어도 문장이기 때문에 맛있고 매력 있는 요소가 남아있어야 한다. 이것이 문장으로서의 본질, 생명, 발달이 아닐까? 현대 또는 장래 문장의 이상은 이곳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