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의미와 변천과정1. 들어가기바보1. 지능이 부족하여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2. 어리석고 멍청하거나 못난 사람을 욕하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바보는 사전적으로는 위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으나 문학에서는 더 다양한 바보 형태가 나타난다. 이것을 크게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과 ‘순수한 사람’으로 나눌 수 있으며, 전자는 고전문학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으며, 후자는 현대문학에서 많이 찾아 볼 있다. 앞으로는 이 두 가지 의미의 바보를 상세 분류하고 그것을 시대별로 정리하고자 한다.2. 살펴보기1.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바보의 사전적의미를 많이 포함하고 있으며, 고전소설에서 많이 나타난다. 처음은 어리숙하고 미성숙한 인물들이다. 그러나 후에 비범한 인물로 바뀌느냐 그러지 않느냐를 따져 ‘성숙하는 바보’와 ‘단순 바보’로 나눠 볼 수 있다.(1) 성숙하는 바보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의 이야기는 예부터 많이 전해져 내려왔다. 그러나 태어나서 바보로 자라 여러 사람의 놀림을 받지만 상황의 변화와 어떠한 사건으로 점점 성숙하여 일반 사람보다 뛰어나게 되는 바보의 이야기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① 온달온달은 ‘바보 온달’로 잘 알려져 있으나 사실 그는 가난한 가정환경으로 공부를 할 수 없었고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의 놀림에도 화를 내지 않아 바보라고 불린 인물 이다.그러던 중 그는 평강공주를 만나 숨겨져 있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꾸준히 갈고 닦아 후에는 평민들보다 더 훌륭한 인물로 성장한다.② 서동서동을 바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으나 그가 왕의 딸을 농락하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것을 보면 매우 생각이 짧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또, 선화공주와 연을 맺은 후에 산처럼 쌓여있던 황금의 가치를 모르고 있었다는 장면에서도 그를 바보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후에 무왕이 되는 비범한 인물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러한 바보스러운 행위는 그의 비범함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2) 단순 바보위의 바보에서 비범한 인물이 되는 사람들과 달리 단순 바보는 말 그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지능이 떨어지는 행위를 보이는 사람을 말한다. 이러한 인물들은 옛 민담과 설화등에서 많이 전해지며 사람들의 입을 통해 우스움과 재미를 제공했다.① 바보 사위단순 바보의 모습은 남자와 여자 중 특히 남자에게 많이 보여 진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바보 사위의 우스운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지는데 특히 친가의 장인어른과의 격식으로 인한 갈등을 주제로 많이 다룬다. 이것은 우리가 느끼는 격식에 대한 긴장감과 그로인한 부담감을 시원히 풀어주기도 하며 사회적 인습을 비판하는 등의 의식도 담고 있다. 이것은 특히 성적인 부분같이 단순한 주제와 연결되어 가벼운 웃음을 자아낸다.② 봉산탈춤조선시대의 봉산탈춤은 양반을 바보로 만들어 조롱하면서 양반의 허위와 지배체제의 모순을 풍자하고자 한 점에서 위의 바보사위와 비교해 더 의식있는 웃음을 제공한다. 특히 시조를 우스꽝스럽게 지어 말한다든가, 한자가 아닌 것을 한자인척 쓰는 모습등에서 양반을 말뚝이보다 더 어리석고 무식하게 표현하는 것이 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서민들의 억눌려있던 마음을 표출하는 통로가 된 것이다.2. 순수한 사람현대소설에서 많이 보여 지는 바보 유형이며, 단순히 지능이 떨어지기보다 우직한 성품이나,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 또는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다. 현대 소설로 갈수록 이러한 바보의 형태는 더욱 다양해졌다.(1) 예찬 받는 바보가벼운 웃음을 주기보다 배울점을 찾을 수 있는 바보유형이다. 이들이 주는 감동이나 교훈은 일반인이 주는 것보다 독자들에게 더 효과적으로 다가오며, 오래 기억에 남는다.① 벙어리 삼룡이벙어리 삼룡이는 말도 못하고 지능도 떨어지는 인물이긴 하지만 여기에서 바보의 의미는 우직한 성품과 희생의 정신이다. 낮은 신분과 장애 때문에 여러 핍박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을 말없이 이겨내고 자신이 사랑하는 아가씨를 살리기 위해 목숨까지 거는 삼룡이의 모습은 매우 아름답고 희생적이다. 이 작품에서 바보인 삼룡이는 웃음의 대상이나 희화화거리가 아닌 감동과 동경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우직한 성품을 본받을 만한 인물로서 예찬 받고 있는 것이다.② 김유정 작품의 바보들김유정의 작품에 나타나는 바보들은 지능이 떨어지지는 않지만 남을 잘 믿고 순수하며,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봄봄」에서 화자인 ‘나’는 점순이의 키가 커야 시집을 보내주겠다는 장인어른의 말만 믿고 점순이네 집에서 일을 해주고 있다. 순진하게 매일 점순이의 키가 자라기만을 바라는 모습이나, 점순이의 말을 듣고 정말로 장인어른의 수염을 낚아채서 얻어맞는 장면들은 독자에게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매우 정직하고 순수함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작품「동백꽃」에서는 점순이의 애정 어린 행동과 말투를 바보처럼 못 알아채는 ‘나’를 통해 눈치는 없지만 매우 순수하고 천진한 모습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처럼 김유정의 작품은 바보같이 순수하고 정직하며, 때로는 눈치 없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향토성을 느끼고 그들의 순수함을 동경하게 된다.③ 바보 용칠이용칠이는 자신이 사랑하는 처에 불륜 사실을 알게 되지만 아내를 벌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죄를 나눠 갖고 정든 고향을 떠난다. 이러한 줄거리로 볼 때 용칠이는 용서면에서 바보라고 불릴 만큼 너그럽다. 이기적이고 너그럽지 못한 사람들은 바보 용칠이가 지니고 있는 인간다운 진실성과 순박성을 느끼며 예찬하게 되는 것이다.(2) 연민, 공감의 대상현대 소설에서 나타나는 바보는 좀 더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지능이 떨어지는 사람이나 순진하고 어리숙한 사람을 넘어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일상적인 생활을 탈피하고자 이상스러운 행동을 하는 사람 등 조금 더 세분화 되고 다양화 되었다. 그리고 이런 바보들은 현대인들에게 연민과 공감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①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이 작품에서 지식인 남편은 봉건적 사고를 지닌 무지한 아내를 이해시키는데도 실패하고 사회에서도 적응하지 못한다. 또한 아내역시 남편이 ‘사회가 술을 권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사회’를 요리 집 이름 정도로 생각하는 무지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 작품의 이러한 무지함은 읽는 독자에게 가벼운 웃음이나 예찬을 자아내지 않는다. 그들의 무지함을 나에게 적용시켜 연민과 공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다. 특히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의 발맞추지 못하는 많은 바보들의 공감을 얻어낸다.② 이상의 「날개」이 작품에서 ‘나’는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도 모르며 돈을 받아도 그것을 어떻게 써야할지도 모르는 매우 무지한 사람이다. 또한 경제적 생활 능력도 결여 되어 있으며, 일절 사회활동도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어도 질투를 느끼지 못하며 더 나아가서는 무엇인 행복인지 불행하지도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이상 작품에 나타난 바보는 무지함을 떠나 일상에서 모든 것에 무력감을 느끼는 작가가 만들어낸 새로운 현대적 바보이다. 그가 만들어낸 바보는 일상을 탈피하고자 하며 현실세계와 쉽게 타협하지 못한다. 이러한 바보의 유형은 약삭빠르고 이기적인 현대인들 사이에서 차라리 바보가 되고 싶은 작가의 바람을 담은 게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볼 수 있다.
목 차Ⅰ. 작가 연보Ⅱ. 1960년대 문학1. 시대적 배경2. 1960년대 문학의 특징Ⅲ. 김춘수의 시 세계1. 전기 ? 전환기 ? 후기2. 의미와 무의미의 시기Ⅳ. 오세영의 해석1. 김춘수의 상반되는 두 유형의 시들2. 시의 수정3. 시어 해석4. 눈짓과 꽃이 지닌 상상력의 유사성5. 내용 분석Ⅴ. 의 또 다른 해석1. 조두섭의 해석2. 김종구의 해석3. 고경희의 해석Ⅰ. 작가 연보1922년(1세)11월 25일 경남 통영에서 태어남.아버지 김영팔, 어머니 허명하의 3남 1녀 중 장남임.1929년(8세)안정의 간이보통학교 입학. 이후 통영공립보통학교로 전학.1935년(14세)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경성공립제일고등보통학교(후에 경기공립중학교로 교명이 바뀜)에 입학.1939년(18세)경기공립중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과의 알력으로 인해 자퇴하고 11월에일본 동경으로 건너감. 대입 준비를 하던 중 일본의 어느 고서점에서 릴케의 시집을 발견하고 시계에 빠져듦.1940년(19세)4월 일본대학 예술학원 창작과에 입학.대학의 하기하라 사쿠타로 교수의 시론 강의로 인해 문학의 길에 매진하게 됨. 그리고 소설가로서 영어를 가르치던 이토 세이의 강의를 통해 소설 공부를 함.1942년(21세)일본의 항구도시 카와사키 부두에서 하역 작업을 하던 중, 일본 천황과 총독정치를 비판하여 불경죄로 헌병대에 끌려감. 요코하마 헌병대, 세다가야 경찰서 등에서 7개월 동안 갇혀 있다가 서울로 송치되고, 학교에서는 퇴학처분 됨.1943년(22세)유치장에서 위장이 상해 출감한 뒤에 금강산에서 한 달 가량 요양.1944년(23세)명숙경과 중매결혼, ‘불령선인)’이라는 낙인 때문에 이 무렵에도 숨어 삶.1945년(24세)통영에서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통영문화협회를 결성해 근로자를 위한 교육기관을 운영하면서 예술활동을 함. 이때부터 시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극단을 만들어 연기자로서 경남 지방 순회공연을 하기도 함.1946년(25세)통영중학교(5년제) 교사로 부임. 1948년까지 근무.해방 1주년대하고 시의 예술성과 순수성, 서정성을 형상화한 순수 서정시를 추구하기도 하였다.③ 현대시조의 발달: 우리의 전통적인 정서를 계승하면서도 현실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현대적 감각을 살린 현대시조가 원숙한 경지에 이르렀다. 김상옥 ‘사향’, 이호우 ‘개화’, 정완영 ‘조국’ 등3) 문학사적 의의① 현실 참여 문제 : 전쟁과 4·19, 5·16이라는 정치적 소용돌이를 거치는 동안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관심의 고조로, 사회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비인간화 현상에 대한 비판,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 의식을 형상화한 현실 참여적 성격의 문학이 대두되었다.② 문학의 순수성을 지향하는 서정주의와 기교주의의 문학: 현실 참여의 문학이 강력한 세력을 형성한 한편에서는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는 전통적 서정주의와 기교주의 문학이 뚜렷한 맥을 형성하여 문학의 예술성을 재고하는 데 기여하였다.③ 사실주의 문학의 경향: 민족의 분단이라는 비극성, 전쟁의 상흔으로 인한 비참한 삶에 대한 인식이 고조되면서, 이를 사실적으로 증언, 조명하고자 하였다. 역사에 대한 반성과 비판, 사회 현실에 대한 통찰과 인식을 바탕으로 한 사실적 묘사를 통해, 현실 비판적인 사실주의 문학이 전개되었다.Ⅲ. 김춘수의 시 세계1. 전기 ? 전환기 ? 후기1) 전기(1) 순수 서정과 서구 지향김춘수의 전기 시는 릴케의 동경과 서정주와 유치환의 영향이 문체, 어조, 모티브 등에 있어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이때에는 기존의 시적 문맥에 의존하는 시를 썼으며 전통적 언어관에 의한 순수서정을 바탕으로 비애의 정서를 짙게 노래한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첫 시집 에서 ‘구름’으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것들에 대한 탐구와 ‘장미’로 상징되는 이국적 취미는 각각 ?귀촉도 노래?, ?밝안제?와 ?예배당?, ?창에 기대어?, ?막달라 마리아? 등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후 두 번째 시집을 거치면서 ‘구름’은 서정주와 유치환의 시적 영향으로 구체화되고, 장미는 릴케로의 지향성으로 나타나는데, 김춘수는 점차 장미의 상징성을 통해 (1) 언어의 해체그는 자신을 비극적 인식으로 치닫게 한 역사적 공간의 상실과 죽음 가운데서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시에서 찾는다. 그리고 계속되는 좌절에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시의 실험을 거듭하다 실존적 존재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언어의 의미를 파괴하는 이른바 무의미 시로 나아감에 이른다.(2) 동물의 언어와 무의미시의 극단 탐구처용단장 3,4부에 이르러 그의 무의미시는 동물의 언어로 심화된다. 그가 추구하는 인간과 사물이 공존하는 원초적인 동일성의 공간은 이성적 사고가 지배하는 현실에 내재되 있던 비이성적이고 무의식적인 언술의 세계이다. 그는 사회적 상징체계인 지금의 언어, 그 이전의 단계인 무의식의 언술로 인간과 사물, 인간과 동물이 교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기존의 담론 체계를 완전히 파괴하고, 상실된 동일성의 공간을 원상 복귀시키고자 노력했다.2. 의미와 무의미의 시기김춘수의 시는 세 단계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는 큰 변화의 단계가 있다.첫 번째 시기는, 첫 시집이 나오던 47년 무렵부터 50년대의 ‘꽃’에 대한 일련의 시가 생산되던 시기까지이다. 이 시기를 시인 스스로 이야기하기를 '자기내 세계'의 시절이라고 한다.두 번째 시기는, 57년의 시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이후로 시작되는 ‘말의 트레이닝’ 단계이다. 이 때 시인은 의식과 무의식의 시작에서의 상관관계에 천착하게 된다.마지막 시기는, 두 번째 단계의 시도가 거의 완성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보는 를 시작하던 무렵부터로 본다. 이때부터 시인은 완벽하게 보통 시 속에서 보여 지는 통일된 이미지를 버리고 일정하고 보편적인 세계관에서 이탈하며 철저한 허무 속으로 빠지게 된다.1) 의미의 시기, '自己內 世界' (자기내 세계) 의 시절첫째 시기는 ?꽃?, ?꽃을 위한 서시?, ?나목과 시? 같은 작품들을 중심으로 요약된다. 이 시기의 시에서 읽을 수 있는 두드러진 특성으로는 이른바 존재에의 탐구를 들 수 있다. 많은 이론가들은 그것을 존재와 언어의 탐구 혹은 존재의 조명 등으로은 이와 같은 소멸의 되풀이가 낳는 리듬이고, 그것은 자유와 불안의 논리를 띤다.돌려다오불이 앗아간 것, 하늘이 앗아간 것, 개미와 말똥이 앗아간 것,여자가 앗아가고 남자가 앗아간 것,앗아간 것을 돌려다오.불을 돌려다오, 하늘을 돌려다오, 개미와 말똥을 돌려다오.여자를 돌려주고 남자를 돌려다오.쟁반 위에 별을 돌려다오.돌려다오.- 처용단장 제 2부 -이러한 탈 이미지의 세계는 다음과 같은 시행들이 암시한다.위 시에서 읽게 되는 것은 모든 대상이 소멸한 다음 겪게 되는 불안의 세계이다.Ⅳ. 의 오세영 해석꽃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내게로 와서꽃이 되었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잊혀지지 않은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1. 김춘수의 상반되는 두 유형의 시들김춘수는 60년대 이후 연작시를 발표하면서부터 내면풍경의 회화적 제시라는 독특한 모더니스트적 기법의 시를 써 자신의 개성을 굳힌 시인이다. 그러나 은 타령조 이후의 시들과 다르다. 그 이전의 시들(초기시) 이후의 시들(후기시)전통적 서정성모더니즘적 실험성‘의미’의 시‘무의미’의 시객관적 묘사의 형식주관적표출의 형식이처럼 서로 상반하는 두 유형의 시들 가운데서 문단이나 학계의 비평적 관심이 되어왔던 것은 을 비롯한 그 이전의 시들이다. 김춘수 자신도 이후의 시에 그의 문학적 운명을 건 듯 이들 시를 합리화한 ‘무의미의 시론’을 제창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공인된 김춘수의 대표시가 ‘무의미의 시’와는 거리가 먼 이라는 것은 아이러니이다.2. 시의 수정1) 연의 통합은 1959년 출판된 김춘수의 두 시집 『꽃의 소묘』와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에 수록된 작품이다. 그런데 시기적으로 조금 앞선 『꽃의 소묘』에서 모두 5연으로 되어 있던 시가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와 등가의 뜻을 지닌 말로 해석된다. 여기서 이름은 단순히 명사형의 존재만이 아니라 행위나 상태를 호칭하는 언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의 ‘이름’은 국어사전적 의미를 벗어나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기능적, 일상적인 언어 이전 즉, 발생 당시의 본질적, 원초적인 언어를 지칭하는 것이다2) 그‘그’는 품사적으로 실체에 대한 인식 없이도 대신 할 수 있는 대명사이다. 여기서 ‘그’는 처해진 상황에 따라 두 가지를 대신하고 있다.몸짓 : 이름을 갖기 전그꽃 : 이름을 갖게 되면서 어떤 성숙한 존재성을 가짐.즉, 이름을 갖기 전의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으나 ‘꽃’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서 비로소 ‘꽃’이 된 어떤 존재이다.3) 몸짓아직 불확실하고 미성숙한 존재를 표상하는 상징어이다. 인간의 성장과정에서 몸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육체와 정신, 본능과 이성의 분리가 이루어지지 못한, 즉 카오스)의 상태에 해당하며, 또한 우리는 흔히 언어화, 즉 의미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본능적 느낌을 몸짓으로 표현한다. 이런 의미에서 ‘몸짓’으로 머물러 있는 ‘그’는 의미나 존재가 확립되기 이전의, 무엇이라 이름 할 수 없는 미지칭으로서의 어떤 것이라 할 수 있다.4) 하나‘하나의 몸짓’에서 ‘하나’라는 말은 수의 개념이 아닌 부정관사로서 ‘어떤’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ex) 하나의 그릇 -> 특정한 하나의 그릇이 아닌 그릇이라면 ‘어떤’ 그릇이라도 좋다는 뜻.따라서 ‘하나의 몸짓’은 어떤 특별한 몸짓이라는 뜻이 아니라 의미 없는 몸짓이라는 뜻이다. 이는 ‘몸짓’에 뒤따르는 ‘지나지 않았다’라는 수식어에 의해서도 특별한 몸짓이라는 뜻이 아닌, 의미 없는 몸짓이라는 뜻이 된다.5) 꽃‘몸짓’이 이름을 갖게 되었을 때 확립된 실체이다. 이는 진정하게 확립된 ‘존재’이자 ‘의미’를 상징하는 사물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잊혀지지 않은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에서 단정적으로 진술된다. 즉 ‘의미’는 ‘꽃’의 원관념이 되는 셈이다.6) 눈짓* 사전적 의어렵다.
목차Ⅰ. 속담과 수수께끼…………………………………………………1Ⅱ. 한국어 교육의 현황……………………………………………51. 한국어 교수법의 역사적 흐름………………………………?52. 문화교육의 중요성………………………………………………53. 한국어 교재로 본 속담 교육…………………………………64. 한국어 교육에서의 문화 교육 및 속담 교육 현황…………7Ⅲ. 한국어 교육에서의 속담………………………………………81. 한국어 교육에서의 속담의 교육적 가치……………………82. 속담의 문화적 양상……………………………………………8Ⅳ. 속담을 이용한 한국어 교육 교수-학습 모형………………12Ⅰ. 속담과 수수께끼1. 속담의 정의속담은 옛적부터 전래하는 민간의 격언으로 흔히 속설, 속언, 이어, 이언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는 관용어구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각 명칭들은 의미의 차이가 있지만 이러한 명칭은 통속성이나 민중성을 나타내는 선형요소이다. 속담은 민간에서 구비 전승되어 온 짧고 명쾌한 언술로 정의된다.- 광의의 의미 : 그 민족이 오랜 기간에 걸쳐 경험에서 얻은 지혜를 간결한 형식으로 표현한 말.- 협의의 의미 : 성인군자 등 식자층 사람의 말이 아닌 속된 일반 민중의 말 중 지혜나 교훈을 담은 짧은 관용어.2. 속담의 특징1) 시대성 및 문화성속담은 속담이 생성된 그 시대와 문화를 반영한다. 속담의 생성과 정착 과정 중 언중의 공감과 대중적 지지 속에 창조와 소멸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그 중 살아남은 표현만이 생명력을 유지한다. 속담은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사상, 생활모습 등이 반영된 대중들의 생활 철학이다. (예: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2) 교훈성 및 풍자성속담은 속언이나 격언 등과 같이 직설적이지 않다. 짧은 문장 속에 인간의 행동 양식이나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숨어져 있다. 속담에는 인간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 진선미를 가르치는 것이 많으며, 대부분의 속담은 인생 및 인간에 대한 비평으로서 처세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예: 염불에는 마음이 어상의 대결자가 벌이는 고도로 정돈된 언행이며, 그 본질상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의 긴장과 갈등을 초래한다. 단편적이고 해답을 요구하는 문장 형식은 신속하고 지속적인 수수께끼의 교환을 가능하게 하여 경쟁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대립형은 수수께끼가 겨루는 놀이라는 특징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따라서 이 유형에 속하는 수수께끼는 다른 유형에 비해 좀더 완전한 서사구조를 이룬다.Ⅱ. 한국어 교육의 현황1. 한국어 교수법의 역사적 흐름문법 번역식 교육(Grammar-Translation Method) → 직접 교수법(Direct Method) → 청각 구두식 접근 방법(Audiolingul Approach) → 인지주의적 접근 방법 → 의사소통적 접근 방법(Communicative Approach)2. 한국어 교육에서 문화교육의 필요성일반적으로 문화는 그 사회 구성원의 사고와 행위 양식을 담고 있는 총체적인 개념으로 정의되며 언어는 바로 그러한 문화에 기반 하여 구성원의 문화적 양태를 담고 있는 가장 적절한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언어와 문화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는 것으로 언어 교육은 바로 문화 교육이며, 언어 학습은 바로 문화의 학습으로 이어진다.(1) 언어의 반영성언어에는 그 언어가 속해 있는 사회의 문화적 양식이나 관습이 반영되어 있다. 원활한 의사소총을 위해서는 언어 속에 담겨 있는 함축적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문화를 통한 한국어 교육은 한국어에 들어 있는 문화적 내용을 이해하여 한국어의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하도록 돕는다.(2) 문화 충격의 극복외국어를 학습하는 사람은 대부분 문화 충격을 경험한다. 문화 충격을 경험할 때, 학습자는 자기와 다른 문화를 ‘잘못된’ 또는 ‘이상한’ 것으로 간주해버린다. 문화를 통한 한국어 교육은 학습자가 한국 문화를 바르게 이해하도록 도와 문화 오해로 인해 한국어의 의사소통 능력을 저해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학습자는 언어 능력과 문화 이해 능력에 따라 단계별로 설정한 문화 내용의 학습을 통해 문화 이식의 단계를 빠르게 침 뱉기)(p.119), 말과 속담(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p.134) 등이 있다. 이상과 같이 주로 속담과 연관하여 한국어문화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중급 2에서는 7과가 ‘한글’이 한국어문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과라고 할 수 있다. 제시된 내용으로는 속담과 연관된 것이 ‘중급 1’과 마찬가지로 주를 이루고 있다. ‘속담 속의 떡’(금강산도 식후경/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다/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그림의 떡/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p.42), ‘생활 속의 관용 표현’(한 턱 내다/눈 감아주다/눈 감다/기가 막히다/바람을 맞았다/바가지를 썼다)(p.72), ‘동물과 관련된 속담’(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민다)(p.110), ‘효와 속담’(찬물도 위아래가 있다/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긴 병에 효자 없다)(p.142) 등이 속담에 담긴 문화적 특성을 분류하여 제시하고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2) 연세대학교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1999년에 펴낸 단계별 읽기 교재를 살펴보면 먼저 2급 ‘재미있는 한국어 읽기’에서 ‘한국 사람과 질문’ 부분, 3급 ‘즐거운 한국어 읽기’ 에서는 ‘실수와 사과’에서 인사말을 통해 한국문화에 대해 제시하고 있다. 또한 4급의 ‘생각하는 한국어 읽기’ 중 제 3 과에서는 한국인의 예절이 바뀌고 있는 모습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이처럼 연세대학교의 한국어 교재에서는 한국문화에 대하여는 가능한 한 많이 제시하고 있으나 ‘한국어 속에 담긴 한국문화에 대한 요소’는 그다지 많이 제시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3) 이화여자대학교이화여자대학교의 언어교육원에서 출간한 한국어 교재 ‘말이 트이는 한국어’는 서 속담 교육은 대체적으로 비유적, 관용적 표현의 하위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속담 교육 자체의 의의나 가치는 주목되지 않고 있다.Ⅲ. 한국어 교육에서의 속담1. 한국어 교육에서의 속담의 교육적 가치외국어 학습이라는 것은 단순히 언어 학습뿐만 아니라 그 언어를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것이다. 한 나라의 사상과 문화, 역사, 풍속 등은 여러 가지 어휘적 언어 형태를 통해서 표출되는데, 그 중에서도 속담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1) 의사소통적 측면의사소통은 수준상으로 정확한 의사소통과 효율적 의사소통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속담은 정확한 의사소통보다는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필요로 할 때 더 많이 쓰인다고 보인다. 속담의 이러한 특성은 발신자가 정보를 전달하는 목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보다는 수신자를 설득시킬 목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에 속담을 훨씬 더 많이 사용할 것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속담은 친교적 목적으로 사용되기 어렵고, 정서적 표현적 목적에서도 관용성으로 말미암아 신선한 맛이 덜하므로 자주 쓰이지 않는다. 속담은 설득적 목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에 종종 효과를 본다. 즉 이것은 속담 자체의 설득적인 기능으로 인해 교육 현장에서 사용하기에 매우 유용한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2) 문화적 측면속담은 문화적 측면에서 교육적 의의를 지닌다. 속담은 오랜 세월에 걸쳐 민중들의 생활 속에서 형성되어 내려온 것이기에 우리나라 전통 문화를 구성하는 일부분에 해당한다. 속담은 민중들 사이에서 구어로 사용되고 구전되어 내려온 것으로 문화적 속성을 지니고 있기에 구비 문학에 속한다. 속담은 관용 표현의 일종으로 국어 어휘 항목에 속한다. 따라서 속담에 대한 연구는 민속학, 고전 문학, 국어학 등에 서도 수행되어 왔다. 이러한 연구들의 결과들은 국어사용에 관한 원리의 기저에서 그 원리에 영향을 미치는 지식과 정서를 형성한다. 언어 사용의 원리와 문화의 원리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즉, 속담은 내용상 우리 조상들의 삶의 교면에서 내세울 만한 조상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서낭이나 산신 같은 민간신앙과 의례가 성행했다.위의 특징에 따라 속담을 분류해 보면 다음과 같다.(1) 낙천적, 숙명론적 인생관우리 민족은 예부터 평화적이고 타협적이며 매사에 인내하고 양보하며 숙명론적인 인생관, 강요되는 순종, 체념 등을 미덕으로 알며 낙천적 기질이 농후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농경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하늘과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초인적 신령에 대한 샤머니즘적 운명론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리고 유교의 정책적 윤리에서 오는 관존민비의 불평등한 차별적 인간관계의 억압 속에서 자아를 박탈당하고 수탈에서 오는 경제적 핍박으로 인해 순종하는 소극적 생활태도가 밑바탕에 흐르고 있다.꿩 대신 닭.웃는 낯에 침 뱉으랴.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랴.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있다.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라.(2) 농경 생활 문화우리는 예로부터 농경 사회였다. 농사를 천하의 근본 되는 일이라 생각했던 전통사회에서 소는 한 집안 식구처럼 생각되어‘생구’라 불렀다. 생구는 한집에 사는 하인이나 종을 일컫는 말로, 소를 사람으로 대접할 만큼 소중히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도 소는 농자를 짓는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풍부한 노동력을 제공해줄 뿐 아니라 무거운 짐을 나르는 효용성 높은 가축으로, 또 민가의 가장 귀한 재산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속담 중에 ‘소’에 관한 속담이 유난히 많음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뿐만 아니라 속담에는 ‘물, 불, 돌, 바람, 비’등의 자연이나 날씨가 속담의 재로 많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농경사회에서 일상생활의 가장 민감하게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소 닭 보듯 한다.쇠뿔도 단김에 뺀다.길마 무거워서 소 드러누울까.소가 뒷걸음질 하다가 쥐 잡은 격이다.가뭄에 콩 나듯.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개미가 이사하면 비온다.참나무에 새순 나면 장마 진다.낫 놓고 기억자도 모른다.호미로 막을 데 가래로 막는다.수숫대도 아래 옷마디가 있다.(3) 효(孝)하였다.
중세문학에서 근대문학으로의 이행기 문학-제1기 조선 후기-9,1 민족 수난에 대응한 문학◎ 시대변화의 계기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수난 겪으면서 왕조의 지배체제의 한계를 드러났다. 그러나 다행히 민족의 역량이 살아있어 외침을 물리치고 문화공동체를 수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집권층은 무력해지고 이로 인해 하층의 비판과 창조적 세력은 대두되었다.이러한 두 차례의 전란을 겪고 나서 동아시아의 세 나라는 함께 변화를 겪었는데 이로 인해 조선왕조는 사회통제 능력을 상실하고 모순이 격화되었다. 이러한 변화에도 신분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던 조선왕조의 노력은 무색하게 되었고 결국 전인구의 과반수가 양반이 되는 사태를 맞이하였다.이러한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 지금까지 존중하던 격식을 버리고 보고, 느끼고 통탄한 바를 생생하게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는 데 집중되었다. 이것은 누구든지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어 당연히 상하층의 간격도 과거 어느 때보다 좁아졌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문학의 출발점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임진왜란을 증언한 실기임진왜란을 겪은 경과, 여러 관원의 활약상과 공과에 관해서 국가에서 작성한 공식적인 기록은 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정확한지는 알 수 없다.실제로 벌어진 사태를 그리려고 노력한 결과 임금의 무능과 직결된 지배체제의 파탄을 외면할 수 없었다. (조경남의 , 신경의 민순지의 ) 또한 오늘 날의 잘못을 경계로 삼아 뒷날의 근심을 덜자는 말로 표제를 삼고, 사태의 진상을 파헤쳐나가 통치체제가 무너져 내린 양상이 숨김없이 드러낸 작품도 있었다. (유성룡)뿐만 아니라 신변의 자질구레한 일이나 뚜렷한 근거가 없더라도 생길 수 있는 내심의 번민에 관한 내용도 많았다. (이순신의)이노의 에서는 김성일의 활약상을 대신 기록했다. 정경운은 의병으로 나서서 겪은 전란의 경과와 함께 견문해서 알게 된 전국의 상황을 을 써서 기록했다. 윤국형은 , 권두문은 을 써서 기록했다. 이탁영은 난후에 전란의 사적을 모은다는 국명에 호은 지배체제 정비에 필요한 이념 수립에 깊이 유의했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가 시작된 것을 인정하면서 급격한 변화는 막고 안정을 얻으려고 했다.서인정권의 담당자들은 인맥이나 학통과 깊이 연관된 이이의 사상을 이어받아 실천에 옮기겠다고 했다. 이이의 철학이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이념으로서 큰 설득력을 가져, 중세에 머무르려는 이황의 철학보다 앞서 나갔다. 사림파문학의 오랜 주장을 스스로 버리고, 관인문학의 보수적이고 형식주의적인 전통을 받아들여 명분과 실제가 달라졌다.사장파 관인문학의 시대가 재현되는 것 같았다. 이정구는 최립과 차천로의 뒤를 이어 집권층의 문학이 얼마나 대단한지 입증하는 임무를 맡아 관인문학의 오랜 이상을 재현했다. 글에 능한 사람은 세상일을 소홀하게 하기 쉽고 나서서 경륜을 펴다가 보면 문학이 뒤떨어질 수 있다고 에서 말하고, 자기는 그 둘을 온전하게 아우르는 본보기를 보인다고 했다.한문사대가는 모두 시인을 겸하고 있으면서 문을 더욱 소중하게 여겼다. 그런데 이정구는 문의 효용성과 설득력을 널리 입증한 공적이 대단하지만, 타고난 재질을 바탕으로 즉석에서 쉽게 쓰며 고고하고 간결한 맛은 부족하고 체제가 엄정하지 못하다는 평을 들었다.신흠은 이정구가 지닌 그런 결함을 시정했다고 평가 되었다. 임진왜란 동안에 외교의 임무를 담당했다. 도학과 문학 가운데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려고 하면서, 을 지어 심성의 바른 도리를 찾고, 에서는 문학에 대한 논의를 다양하게 폈다.이정구나 신흠은 고문의 본보기를 보여주어 높이 평가되면서 격식을 더러 어긴다는 말을 들었다. 이들에게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절심하고 아려하고 간정한 기풍을 갖춘 문장은 한문사대가의 마지막 두 사람 이식과 장유가 마련했다.이식과 장유는 문학 그 자체를 한층 더 존중하며 산문도 시에 못지않은 예술품일 수 있게 하려고 했다. 그래서 이룩된 작품은 현실의 문제의식을 되도록 배제하고 고답적인 취향을 구축하는 폐단을 지니면서도, 문학이 도학의 규제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한 공적이 있다.자신은 이름난 가문에서 태어나 순조롭게 벼슬길에 올랐으나 반발적인 기질 때문에 지배체제에 불만을 품었다. 에서 시작된 영웅소설이 한동안 소설사의 주류를 차지했다.은 영웅을 내세워 그릇된 사회와 대결하도록 한 점에서 과 가까운 관계를 가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도술을 부려 변혁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을 두고 심각한 고민을 한 자취가 작품에 나타나 있다., , 은 모두 영웅소설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면서 과도 다르고 서로 차이가 있다.은 여러 영웅의 활약상을 한데 모아 보여준 ‘녹’이다. 어느 것이든지 전란의 경과를 연대기 형식으로 서술하면서 여러 영웅의 활약상을 다채롭게 포괄했다. 나라에서 인정하고 평가하지 않은 민중의 역량이 안에서 시련을 겪어 지속적인 과업을 성취하지 못한 사정을 납득할 수 있게 부각시켰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영웅은 김덕령이다. 민중적 영웅의 전형적인 모습을 생동하게 그려 심각한 의미를 지니게 했다.과 은 ‘녹’이 아니고 ‘전’이다. 과 같은 일대기소설이다. 의 주인공은 비극적 영웅의 일생을 보여주었다. 명나라 편에 서서 의리를 실현하고자 호국이라고 한 청나라와 완강하게 맞서서 대의명분을 구현하면서 민중의 기대를 모으는 영웅이기도 했다. 충의와 용맹이 대단했으면서도 국내외의 복잡한 상황을 타개하지 못하고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임경업을 발탁했다는 이시백의 아내 박씨를 주인공으로 삼아 과 연결되는 은 사실과는 거리가 먼 거의 신화적인 설정을 통해서 상층의 명분론에 대해 한층 적극적인 반론을 폈다. 박씨는 자기를 온통 드러내 박해를 자초하지 않았으므로 김덕령이나 임경업처럼 패망하지 않았다. 허균이 한문으로 지은 전의 주인공들과 상통하되 세상과의 부딪침을 좀 더 설득력 있게 나타내고, 설화로 전승되는 미천한 이인 이야기와 서로 호응하면서 깊은 의미를 보탰다.◎ 불교적 상상의 경이소설의 원천의 하나가 불교설화이다. 불교는 원래부터 교리를 윤색하고 풀이하기 위해서 설화를 적극 이용했다. 경전에 근거를 둔 본래의 전승의 증거들을 에서 찾을 수 있다문학 인식에서도 허균이 선구자 노릇을 했다. 우리나라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근본이 되는 도리를 소홀하게 한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을 읽었다고 했다. 근본이 되는 도리를 그렇게 이해한 점이 주목할 만하다. 에서 정철의 가사를 들어 국문문학에 대한 관심을 보였다.민족문화의 독자적인 가치를 인식하면서 문학관의 전환에 기여한 인물이 있었다. 이만부는 중국을 따르려고 하지 말고 자가의사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민족의식에 해당하는 말을 처음 사용해 소중한 의의가 있다. 조귀명은 중국의 옛것을 답습해서 비슷하게 되려고 하는 어리석은 풍조에서 벗어나, 말과 글의 불일치에서 빚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 문학의 독자적인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김만중은 비교문화론의 관점을 마련해 그런 주장을 더욱 발전시켰다. 불교문화의 광대한 영역이 한문과 유학 문명권에 들어앉은 사람의 편견을 시정해주는 데 유용하다고 보아, 양쪽의 비교론을 자주 폈다.에서 “ 중국에서만 그러는 것이 아니고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네 말로 절주를 삼는다.”고 했다. 문학작품을 글이라고 하지 않고 말이라고 했기에 그릇된 전제를 일거에 타파할 수 있었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를 넘어서서 근대 민족주의에 이른 의식을 보여주었다.그 뒤를 이어 홍만종은 국문시가에 관한 논의를 좀더 구체화하는 작업을 에서 했다. 우리말과 문학의 관계에 대해서 다양한 관심을 보였다. 한문으로 글을 쓰더라도 우리말을 버릴 수 없다고 했다. 우리 민요에 근거를 두고 독자적인 시가를 창작하는 데 힘쓰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에서 에 이르기까지 국문가사 열네 편을 들어 작자를 밝히고, 주제를 지적하고, 가치를 평가했다. 관심의 폭이 자못 넓어지고 다루는 방식도 작품의 실상에 맞게 다양하게 선택했다.김천택이 에다 자기가 쓴 것을 포함한 몇 가지 서문을 싣고 국문시가의 의의를 주장한 논거는 홍만종의 전례와 바로 이어진다. ‘시’와 ‘가’는 성격이 다르지만 대등한 의의를 가져야 마땅한데, 우리 경우에는 ‘시’인 한 이치에 구애되지 않은 천진함 간직하며 민요의 가치를 옹호했다.(대동풍요서) 위항시인들은 작품집을 엮고 , , 이라는 제목을 붙였다.실학파들은 한시를 지으면서 중국 전래의 격식에서 벗어나 민요를 본뜨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을 했다. 박지원, 박제가, 정약용이 그들이다.중세의 가치체계는 문학활동의 서열도 분명하게 했다. 그런데 하층민의 민요가 가장 가치 있다고 하면서 서열을 역전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 문학사의 전환을 예고했다. 민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근대적인 의미의 민중문학 또는 민족문학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의의가 있다. 민요를 본뜬 한시에서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문학의 전형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다.◎ 민요의 실상과 변모오늘날 조사한 자료는 기본 형태나 기능을 그보다 훨씬 앞서서 마련된 바에 따라서 전승해오면서, 조선후기의 사설을 대폭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논매기노래(기음노래)는 위백규의 시조 농가구장에서 받아들였으며, 가사 중 기음노래는 민요의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드문 자료이다. 나무꾼노래(초가), 와고기잡이노래(어가)는 지역적이며 일의 성격상 다양하다. 어부가는 뱃노래와 상당한 거리가 있으며, 잡가 뱃노래는 유흥적 사설일 따름이다. 또한 해녀노래에서는 노동적 성격을 확인할 수 있다.또한 강강술래나 놋다리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 장례 절차에 따라서 부르는 남자들의 노래인 상여소리와 달구소리도 있었다.동요는 아이들의 노래로 놀이를 하면서 부른다. 또한 사회모순이 심각해지면 풍자의 노래나 항거의 노래가 생겨나고, 그런 것을 창작해 퍼뜨리는 사람도 있었다.이처럼 문학의 다른 영역과 민요 사이의 교섭은 어느 때든지 있었지만 조선후기에 이르러서 한층 활기를 띠었다.◎ 한시의 민요 수용한시를 쇄신하는 방안을 민요와의 관계에서 찾자는 움직임 활성화되었다. 따라서 등장한게 민요시였다.최성대는 시를 동요에 접근시켜 , , 등을 지었다. 이사질은 을, 김창흡·최성대·신유한·이덕무·이학규 등 역시 산유화가를 지었다.홍양호는 을, 이옥은 을 지어 한.
정지용의 유리창엔 무언가가 있다.나는 지금 고등학교 2학년 여학생의 국어 과외를 하고 있다. 용돈을 벌고자 시작한 것도 있지만 미래의 국어 교사를 꿈꾸는 사범대학생으로서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도 갖고 있었다. 수업은 현대시와 현대 소설 작품들을 설명해주고 문제를 함께 풀어주는 식으로 진행하는데 정지용의 시 또한 현대시를 설명해줄 때 살펴본 적이 있다. 나는 과외를 할 때 학교 수업과 완전히 다른 독창적인 수업까진 아니지만 재미있게, 비유를 하자면 그냥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수다 떨 듯이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한다. 밑줄을 쳐라, 꼭 외워라. 여기서 쓰인 기법은 무엇이다. 라든가의 설명은 나부터가 지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사람은 이 시를 쓰면서 무지 슬펐던 것 같애.’ 라든가, ‘이건 뒷 얘긴데...’ 하면서 시의 배경을 설명하곤 한다. 정지용의 ‘유리창1’을 설명할 때 나는 이런 말로 시작한 것 같다. ‘정지용의 유리창엔 무언가가 있어.’라고.사실 정지용의 ‘유리창1’은 나부터도 매우 좋아하는 시이다. 현대시 수업 때 몇 차시에 걸쳐 책도 읽고 발표도 들으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정지용의 시에서 기억나는 것은 아들을 잃은 정지용의 마음을 대변한 시라는 것, 또는 대위법이 쓰였다던가, 유리창은 소통과 단절을 나타내는 소재라던가 뭐 이런 형식적인 것들이었다. 그런데 대학에서 배운 정지용의 유리창은 많은 함축적 의미와 ‘유리창’이라는 소재에서 파생되는 많은 심상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 이 시를 쓴 정지용의 심정과 그것을 훌륭하게 표현하는 그에 글 솜씨에 놀라움과 부러움을 갖게 되었다. 너무 단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그는 표현에 있어서 참으로 천재적이다. 시어 하나 하나가 매우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고른 티가 난다고 할까. 정지용의 시는 그 자체로서 더하고 뺄 것 없이 완벽하다. 수식어 하나도 그의 시에서는 그 역할을 너무나도 완벽히 하고 있어 마음대로 뺄 수 없는 것이다. 유리창에 서린 입김에서 아들의 영혼을 찾고 그것을 ‘차고 슬픈 것’이라고 표현 하는 것이나 입김의 커지고 작아지는 모습들을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다거린다.’ 라든가의 표현은 정말 내 머릿속에서는 도저히 떠올릴 수 없는 신선한 표현인 것이다.‘유리창1’의 또 하나의 매력은 감정의 절제이다. 엉엉 울어 토해내야 할 감정을 마음속으로 삭히는 것, 하지만 나는 이 시를 보면 오열하는 남자,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무겁고 찡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시의 표면에는 그러한 직접적인 표현은 쓰지 않는다. 그나마 ‘차고 슬픈 것’의 ‘슬픈’정도만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의 눌려있던 감정이 ‘아아, 늬는 산ㅅ새처럼 날러갔구나!’에서 터져 나온다고 생각한다. ‘아아’로 시작하여 느낌표로 마무리되는 이 문장이 나는 그 어떤 단어보다 극적이고 가슴 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