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26
검색어 입력폼
  • 지정사 관련
    ◆ 지정사‘이다’ ◆‘이다’는 명사, 구, 절 등 다양한 문법 범주와 함께 쓰여서 서술어로 기능하는데, 활용을 하고 문장의 서술어 역할을 하면서 동사, 형용사와는 다른 특성들을 지니고 있어서 국어문법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즉 ‘이다’는 형태적으로는 활용을 한다는 용언의 특성을 지니면서도 통사적으로는 항상 선행하는 체언에 붙어 비자립적으로 쓰이며, 선행하는 체언에 조사가 실현되지 않아 일반적인 용언의 특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또 의미적인 면에서도 어휘적인 의미를 가지느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와 같은 특성으로 인해 ‘이다’는 학교 문법에서 ‘서술격조사’로 분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연구자에 따라 ‘지정사, 형용사, 계사, 접사’등 다양한 범주로 기술하고 있다.‘이다’의 품사 설정은 전통적으로 잡음씨로 함께 분류되어 왔던 ‘아니다’의 품사 설정 문제와도 관련이 되는데, ‘아니다’의 경우 대부분의 논의에서 ‘형용사’, ‘용언’ 등으로 ‘이다’보다 일관되게 기술되고 있는 편이지만, ‘이다·아니다’의 통사·의미 대응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아니다’에 대한 기술 역시 일치된 결과를 보인다고 말하기 어렵다.‘이다’와 관련된 지금까지의 연구 논의의 일치를 보지 못하거나 명쾌한 설명에 이르지 못하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이다’의 특수성 및 ‘이다’구문의 다양성에 기인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연구자들이 몇몇 작례들과 제한된 문법적 현상만을 기준으로 ‘이다’의 전체를 설명하려고 한 데에도 원인이 있다. 따라서 대량의 말뭉치에 나타난 ‘이다’의 용례를 통해 ‘이다’구문을 총체적으로 살펴봄으로서 ‘이다’의 실제적인 쓰임을 포괄적으로 살펴보는 것은 의의가 있다. 본 연구에선 기존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문어·구어 말뭉치에 나타난 다양한 ‘이다’ 구문의 유형을 분류하고자 한다.1. ‘이다’에 대한 선행 연구와 문제제기1.1 선행 연구에서의 ‘이다’의 품사 분류이광정에 의하면 대략 9가지로 정리가 되는데 즉, ‘서술격어미활발해지면서, ‘이다’를 핵 범주 이상의 투사 범주에 접미되는 통사적 접사의 일종으로 보는 논의도 있다. 이러한 논의는 전통문법에서 단어 형성의 기능에 국한되어 있던 국어 접사의 개념을 확장시켜 어미, 조사 등에까지 확장시킨 것으로 ‘이다’의 선행 명사항에 격실현이 되지 않는다는 점, ‘이다’가 형태·통사적으로 비자립적이라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1.2 ‘이다’는 계사인가?‘계사(copula)’는 ‘copula’의 어원 라틴어 명사 ‘link or tie’에서 온 것이라는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형태·통사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의미적 개념에 가깝다. 따라서 ‘계사’는 일반적으로 문장 주어와 보어 또는 서술어를 연결시키는 단어로 정의되지만 유형론으로 ‘계사’의 문법적 범주나 어휘 의미의 유무 및 의미 유형은 언어에 따라 다르다. ‘이다’를 계사의 일종으로 볼 경우에도 ‘이다’의 품사나 의미, 문법적 특성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고 할 수 있다. 계사에 대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세 가지 견해는 다음과 같다.① 주어와 술어 사이의 연결어 기능② 동사의 굴곡 범주가 붙을 수 있는, 통사적 지점의 기능③ 스스로 술어가 되지 않는 어휘소에 부가되는 술어의 기능이러한 계사의 대표적인 예로, 영어의 경우 be동사(copula)는 ‘linking verb’라고도 하며 동사의 범주로 인정되고 있고, 정체성 지정(identity), 부류의 일원(class membership), 속성 서술(predication : property and relation attribution)을 나타내는데, 국어의 ‘이다’ 역시 Regina Puster(2003)에서의 계사의 특성이나 영어 be동사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다.‘이다’의 대표적 기능은 두 명사항을 연결하는 것이며, 의미 기능상의 특성으로 보아서도 계사라는 범주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사로 본다는 것은 ‘이다’의 품사 설정과 별개의 문제라는 점에서 계사설은 논의가 필요하다.실제 영어 이외에,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다’ 구문이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다’의 범주 설정은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설명력 있는 논의를 요구한다.기존의 연구에서 ‘이다’의 범주에 대한 논의가 가지는 장·단점을 정리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첫째, 학교 문법에서와 같이 서술격조사로 보았을 경우는 국어 문법에서 활용하는 조사를 두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으며, 국어 문법에서 ‘격’을 어떻게 정리하느냐에 따라 ‘서술격조사’라는 용어 및 범주의 정당성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이다’가 같은 조사임에도 불구하고 어원적으로 ‘이다’에서 출발한 조사인 ‘이며/며, 이고/고, 이나/나, 이든지/든지…’등의 형태론적 교체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도 설명이 되어야 할 것이다.둘째, 첨사나 통사적 접사등으로 볼 경우, ‘이다’의 비자립성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으나 이때 ‘통사적 접사’라는 개념은 형태적 결합 관계와 분포를 중시한 용어로 문제가 제기된다. ‘통사적 접사’라는 개념은 일부 ‘이다’의 선행 명사형과의 결합 분포와 비자립성을 설명해준다는 장점이 있으나, 형태, 기능, 의미를 기준으로 분류한 현행 국어 품사 체계 내에서 이질적 부류의 품사들과 ‘이다’를 함께 범주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한편, ‘이다’를 용언으로 볼 경우, ‘이다’의 통사?의미적 서술성과 형태론적 활용, 특히 활용에 있어 ‘아니다’와 대응 관계를 보이면서 ‘-라서, -로구나, -에요, -라’등의 특정한 어미와 함께 쓰인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나, 선행 명사구에 격실현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명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 선행 명사구에 격실현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용언설리 설명해야 하는 부담이다.이러한 용언설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기존의 논의 중 대표적인 것을 들면, 정렬모(1916)에서는 ‘그이도 사람이다’와 같이 ‘이다’를 동사의 일종으로 분류하면서 띄어 쓰고 있으며, 엄정호(1989)에서는 ‘이다’의 선행 명사구에 격이 있으나 격 실현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아니다, 되다, 같다, 틀림없다, 맞다…’ 등과 같이 두 개의 논항을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용언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조사설, 접사설, 용언설, 각각의 주장은 논의의 초점을 ‘이다’의 자립성, 생략 가능성, 결합 분포, 의미 등의 어떤 측면에 맞추느냐에 따라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조사설과 접사설은 ‘이다’의 비자립성과 생략가능성에 주목한 논의로 그 중에서도 접사설은 선행 구의 통사적 범주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할 수 있다. 용언설은 ‘이다’의 활용 가능성과 ‘아니다’ 와의 대응, ‘지정’의 의미 등에 비중을 둔 관점이다.2. 말뭉치에 나타난 ‘이다’의 특징2.1 형태·통사적 특성‘이다’의 형태, 통사적 특징 중에 가장 특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활용과 통사 구조에 대해서 살펴볼 것이다.활용은 크게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일반적인 활용의 관점에서 ‘이다’가 가지는 활용상의 특징이고, 다른 하나는 특정 구문에 한하여 나타나는 선어말어미, 어말어미의 결합 양상의 특성이다.이때 전자, 즉 일반적인 지정사‘이다, 아니다’의 활용은 결합하는 어미가‘-ㄹ세, -라, -라도, -라서, -라야, -랍시고, -로구나, -로군, -야, -에요’ 등으로 불규칙하므로 어미 불규칙 활용의 한 유형으로 분류될 수 있다.후자의 경우는 말뭉치를 살펴보면 모든 ‘이다’구문이 자유로운 활용 형태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다’구문 유형에 따라 선어말어미, 어말어미 등과의 결합에 있어 제약이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래 통사 구조와 함께 살펴보기로 한다.‘이다’구문에 따른 형태·통사적 특성구문 유형용례특성NP1-이NP2-이다.지시적 구문나는 박진현이다.?‘아니다’의 어휘부정 가능속성적 구문1아이가 요즘 사춘기이다.?‘아니다’의 어휘부정 가능속성적 구문2나는 서울로 출발할 예정이다./그녀는 뭔가 아쉽다는 표정이었다.?‘이다’앞 명사구는 필수적으로 관형절 수식을 받음? NP2: 예정/생각/표정/느낌…?‘아니다’ 어휘 부정 일부만 가능NP1-이{NP3에/와/로, S잡음씨)어떤 사실을 가리키어 그러함(긍정)을 나타내는 말. 『우리말큰사전』② (조사) ((체언 뒤에 붙어))주어가 지시하는 대상의 속성이나 부류를 지정하는 뜻을나타내는 서술격조사. 『표준국어대사전』③ (조사)받침 있는 체언에 붙어서 사물을 지정하는 뜻을 나타내는 끝맺는 어미.『새우리말큰사전』④ 바꿈토의 하나. 체언을 용언형으로 만드는 데 쓰인다. 『조선말대사전』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기존의 사전에서는 대부분 ‘이다’의 의미를 ‘지정, 긍정’이라는 단일한 의미로 파악하고 전형적인 ‘NP1-이 NP2-이다’의 구문에서만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이다’구문에서의 ‘이다’의 의미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말뭉치에 나타난 ‘이다’구문의 전반적인 유형을 파악하고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우선, [NP1-이 NP2-이다]의 구문 내에서‘이다’의 의미를 살펴보면, 이때‘이다’는 ‘NP1’과‘NP2’의 관계를 지정하는 역할을 한다. 단, 이때의 관계 지정은 속성을 지정하는 것과, 동일 대상을 지정하는 것으로 구분 될 수 있다.(1) ㄱ. 김철수는 학생이다. ⇒ 비등가적(non-equative) 해석ㄴ. 너는 바보다.(2) ㄱ. 김철수는 그 학생이다. ⇒ 등가적(equative) 해석ㄴ. 영희가 그녀다.(1)은 NP2가 비지시적(non-referential) 명사와 함께 쓰여 주어 NP1이 어떤 속성이나 특성이 있음을 나타내며, NP2가 지시적(referential) 명사와 함께 쓰인 (2)는 NP1과 NP2가 지시적으로 동일함을 나타낸다.[NP1-이다]구문은 주로 발화 현장에 있는 대상을 지시하는 체언 뒤에 쓰여서 현장에 있는 사실에 대한 감탄, 놀라움 등을 나타내거나 어떤 사실을 알릴 때 쓴다.(3) ㄱ. 와, 눈이다.ㄴ. 경찰이다! 어서 뛰어.ㄷ. 손님, 주문하신 카페라뗍니다.이들은 ‘현재’라는 시간적 조건과 발화가 일어나고 있는 현장이라는 공간적 조건 내에서 존재하는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감탄, 제시, 알림’의 뜻을 나타낸다.마지막으로 위의 논의와는 별도로, 명사류가다.
    인문/어학| 2017.08.02| 10페이지| 3,800원| 조회(256)
    미리보기
  • 고려전기 귀족문학 -김부식과 정지상을 중심으로-
    고려시대 귀족문학 이해-정지상과 김부식의 작품을 통해-- 목 차 -1. 서론1.1 고려시대 사회의 특징2. 고려전기의 인문지향과 한문학3. 문학적 배경4. 고려전기 대표문인 정지상과 김부식의 작품과 사상5. 결론 (문학사적 의의 및 평가)1. 서론1.1고려시대 사회의 특징고려는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신라를 계승하였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그러나 고려는 신라가 안고 있던 고대 신분체제와 수취체제를 폐기하거나 개혁함으로써 상당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고려에서는 신라와는 다른, 보다 확대된 정신세계를 발견하려는 운동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고려의 이 같은 사회와 문화현실에서 문학도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간 것은 사실이다.고려조 문학에 있어서 특징적인 사실은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신라향가를 수용하지 못하고 귀족문신들에 의해서 한문학 지상주의로 흘렀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보면 당시의 문학이 더욱 중국적인 것으로 경도)되어 갔고, 당시 문인들의 문학성향도 자연히 그러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태조가 내린 훈요십조 가운데서 우리나라는 중국과 서로 다르고 민족의 개성이 다르기 때문에 중국의 문물과 한가지로 이룰 필요가 없다고 강조한 것에서 당시의 문학이 중국적인 것으로 기울어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전기의 문학은 다분히 귀족중심의 한문학이 주류를 이루었고, 이들에 의해서 고려문학은 창도되었다고 할 수 있다.또 하나는 고려문학이 다른 제도와 마찬가지로 신라를 계승함으로써 전통적인 맥락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라가 멸망한 뒤로 고려의 문인들은 그 나름대로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왔지만 신라가 쌓아올렸던 한문학의 성과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특히 고려 전기는 전대의 문학에 대한 발전적인 해석과 이해에 치중하였을 따름이지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나타내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고려 전기는 신라가 축척해 놓은 한문학 성과를 그대로 수용했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상황에서 출발한 고려 전기의 고려는 이 원대한 과제를 잊지 않았던 듯하다. 고구려 영토 수복을 위한 전진 기지로서의 평양에 대한 중요성 인식과 역대 군주들에 일관한 서경 경영이 바로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고려 왕조의 북진 의지는 순조롭게 실현되지는 못하였다. 곧 이어 등장한 거란족과 여진족의 강성에 밀려 오히려 그들에게 정치적 사대의 상황을 맞이하면서 타의적으로 좌절된 측면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구강 수복 의지의 좌절은 어쩌며 내재적 요인에서 먼저 찾을 수도 있다. 잃었던 고구려 구강을 다시 수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군사력의 강화가 우선되어야 하며, 이와 병행하여 역사 인식의 무장이 필요하고 역사인식의 무장을 위해서는 고려에 앞서 고구려의 계승을 표방한 왕조인 발해사의 서술이 절실한 급선무였음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과거제의 지속적인 실사를 통해 문서화의 길로 방향을 틀었고, 역사 인식의 부분을 소홀히 함으로써 후일 유득공 같은 사학자로 하여금 통한을 금치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광종때에 실시된 과거제도는 호족세력의 기세를 누르고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일단 정치적 의미가 인정되어야 할 것 이며, 신라의 독서삼품과보다 응시 자격의 폭이 확대되었다는 점에서도 일종의 발전된 형태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과거제의 실시에 의해 형성된 신관료층이 문무를 겸하지 못하고 문신으로만 이루어졌다는 점은 당장의 국가 경영적 측면에서도 화랑제도 등에 비하여 볼 때 지극히 편향된 것이었으며, 고구려의 구강을 회복하겠다는 왕조의 기본 이념과 비교해서는 물론 고려전기가 한국사의 중요한 한 시기임을 생각한다면 실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좌우간 이와 같은 대내외적 요인은 고려로 하여금 문치를 지향하게 하였고, 후일 유교적 문화 비평가는 이를 두고 인문으로 교화가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고려는 타의적 자의적으로 인문을 지향하게 된 것이다. 인문 중에서도 역사학에의 비중을 소홀히 한 채, 국교로서의 불교와 과거 시험 내용으로서의 한문학과 유학을 중심으로 한 것이다.과거제는 고려왕조의 인문지향 귀족문화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 잡고 있었던 화엄종과 천태종이 세계관의 근본적인 문제를 담당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4. 고려전기 대표문인 정지상과 김부식의 작품과 사상? 정지상고려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그가 쓴 서정시는 한 시대 시의 수준을 끌어올렸고, 그는 대대로 시인의 모범이 되었다. 다른 한 편 그는 한 시대의 풍운아였다. 서경 천도를 주장하는 무리들과 어울려 새로운 시대를 여는 데 적극 나섰다. 그러나 정치적 포부는 좌절되었고, 우리에게 그는 다만 몇 편의 시로 남아 전해진다. 정지상은 문인으로서 특히 뛰어난 시인으로서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그의 시재에 관해서는 이미 5세 때에 강 위에 뜬 해오라기를 보고 "어느 누가 흰 붓을 가지고 乙자를 강물에 썼는고(何人將白筆乙字寫江波)." 라는 시를 지었다는 일화가 야사로 전해올 만큼 뛰어났다고 한다.)? 대동강 (송우인 ,송인)雨歇長堤草色多 (우헐장제초색다) 비 멎은 긴둑에 우거진 풀빛,送君南浦動悲歌 (송군남포동비가) 슬픈 노래 남포로 임은 가신다.大同江水何時盡 (대동강수하시진) 강물은 어느 제 밭아진다냐,別淚年年 添綠波 (별루년년 첨록파) 창파를 보내 주는 이별의 눈물너무나도 유명한 정지상의 대동강이란 작품이다. 우리들에겐 칠언절구의〈送人〉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시이다. 대동강가에는 연광정(練光亭)이란 정자가 있었는데, 경치가 너무나 아름다워 이곳을 찾은 유명한 시인묵객들이 지은 시가 어지럽게 많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중국 사신이 오면 모두 떼어 내고 정지상의 이 작품만을 남겨 두었다고 한다. 이 작품만은 중국인 앞에 내 놔도 손색이 없겠다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이 시를 본 중국 사신들은 하나 같이 귀신같은 솜씨라고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정지상의〈송인〉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심정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는 작품이다. 떠난 이를 그리며 흘리는 눈물로 대동강 물이 마를 날 없다는 엄살은 허풍스럽기는 커녕 그 곡진한 마음새가 콧날을 찡하게 한다. 이 섬세한의 없으니, 이를 가지고 새로운 표현을 얻어 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실제 이 작품 뒤로도 아예 `다(多) 가(歌) 파(波)`의 운을 1.2.4구의 끝에 그대로 달아 차운한 시가 적지 않으나,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작품은 찾아보아도 얻기 어렵다. 이제 와서 운자는 한시 감상에 있어 고려의 대상이 안되게 되었지만, 중국 사신의 찬탄 속에는 앞서 남포가 주는 정운의 위에, 이러한 운자 사용의 산뜻함도 용해되어 있는 것이다.? 송인庭前一葉落 (정전일엽락) 뜰 앞에 한 잎 떨어지고床下百蟲悲 (상하백충비) 마루 밑 온갖 벌레 슬프구나忽忽不可止 (홀홀불가지) 홀홀이 떠남을 말릴 수 없네만悠悠何所之 (유유하소지) 유유히 어디로 가는가片心山盡處 (편심산진처) 한 조각 마음은 산 다한 곳孤夢月明時 (고몽월명시) 외로운 꿈, 달 밝을 때南浦春波綠 (남포춘파록) 남포에 봄 물결 푸르러질 때君休負後期 (군휴부후기) 뒷기약 그대는 제발 잊지 마소오언율시 역시 남포라는 지명이 드러난다. 가을 날 임을 떠나보내며 忽忽, 悠悠의 시어로써 구슬프게 노래한다. 임을 향한 일편단심과 외로운 꿈에 사무치면서, 물결 푸른 봄이 오면 재회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애틋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화자의 소망일 뿐 임의 심경은 전혀 읽어낼 수 없다.)대동강을 소재로 한 두 편의 이별시에서 우선 발견되는 것은 정태적인 아름다움이다. 대동강의 물결이 푸르게 일렁인다. 더욱이 새파란 풀잎이 너울거리는 비 개인 긴 둑, 시리도록 푸르른 정경 속에 임을 보내며 울음을 삭히고 섰는 여인의 모습이 선연히 그려진다(칠언절구). 임의 어떤 언약도 받지 못한 채 달빛 서린 봄물결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임을 기다리는 청초한 여인의 모습도 물결에 어리는 듯하다(오언율시). 이렇듯 南湖는 오늘을 사는 이 땅의 우리들에게 대부분 한 번도 본 적 없는 대동강을, 마치 눈앞에 넘쳐흐르기라도 하듯이 한 폭의 그림으로 선물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시를 읊다보면 자연스럽게 고려가요 과가 연상된다 유사나 대조로 검소와 영광, 사지와 폐허를 병렬시켜서 현재의 상황을 반성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도덕성과 교훈성은 김부식의 효용적 문학관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러한 효용론적 문학관은 유학적, 공리적 문학관의 일단으로 규정지을 수 있다).일상적이며 사실적인 기존의 관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는 이라는 작품을 한 번 보자.? 주성유감天淨雲飛暑向殘 하늘 맑고 구름 나니 더위는 쇠잔해지는데淸風落日小?干 맑은 바람 지는 해 작은 난간일세.老來生計皆知足 늘그막에 생계 족함을 안다 하니方信劉伶席幕寬 바야흐로 믿노라 유령(劉伶)의 자리와 장막 넓은 줄을.저녁나절 자신이 거처하는 방에서 내다 본 자연 풍경이다. 인간의 보편적 경험세계를 일상적이고도 사실적인 어휘를 사용하여 읇고 있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바람에 날리고, 저녁이 되어 더위는 쇠잔해지는데 맑은 바람 지는 해는 작은 난간에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이미 알고 있고, 그리고 경험한 극히 일상적인 세계이다. 시인에게 있어 자연은 낭만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적이고 객관적이다. 김부식의 이러한 특징에 대해서 일찍이 성현(成俔)은 "담하나 화려하지는 않다"라고 표현했다.김부식에게도 번잡한 현실을 떠나서 자연에서 한적함을 구가한 시가 없는 것은 아니다.?동교별업水穀微黃風浩蕩 물결은 노르스름하고 바람은 일렁이고園蔬?碧雨淋浪 채소밭 푸성귀는 비에 젖어 짙푸르다有時閑步田邊踞 이따금 한가한 걸은 밭가에 주저앉아逢着漁樵笑語長 어부며 나무꾼을 만나 웃고 이야기 길어라풍간이니 교훈이니 하는 현실적 굴레를 떠나서 자연에서의 한적한 심경을 읊고 있다. 여기에는 서정도 서경도 보인다. 그러나 전반적인 김부식의 문학관에서 보면 자연의 서정이나 서경은 그의 문학의 본령은 아닌 것이다.이 같은 김부식의 시작 태도는 후세들에게 개성적이거나 독창적이지 못하다는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에 전하는 시 33수 중 22수 가량이 전고를 인용하고 있는데, 내면적 통일성과 순수한 경험으로 형상화시키지 못하고, 단지 고인의 뜻을 그대로 옮기는데 그치고 있어 더있다.
    인문/어학| 2013.06.22| 11페이지| 5,000원| 조회(301)
    미리보기
  • 사랑에속고 돈에울고
    Ⅰ. 신파극의 이해1. 신파극의 정의신파극은 일본에서 처음 생겨난 근대적 연극형태이다. 일본근대극의 초기형태인 가무기(歌舞伎)와 서양의 멜로드라마를 조화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가무기가 양식화(樣式化) 되는 과정에서 17세기 스페인의 바로크극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때, 신파극은 거의 서양연극의 영향권 내에서 형성된 통속적 대중 연극을 말한다. 한국 신파극은 일본 신파극을 직수입한 것이기 때문에 초창기 신파극은 언어만 달랐을 뿐 연극내용부터 무대장치 ?의상 ?소도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극 양식이 일본색 그대로였다.2. 신파극 작품의 성격1) 주제-전통적 이념과 근대 이념추구의 이중적 양상 (과도기적 성격)-계급타파를 주제로 한 작품군-신교육을 주제로 한 작품군-봉건적 가족제도의 모순을 비판한 작품군-새로운 애정관을 다룬 작품군-자아각성을 주제로 한 작품군-조국의 독립을 주제로 한 작품군2) 성격-인물 :유형적인 성격과 인물의 통속성심리적 상황을 제대로 형상화 하지 못하는 한계평면적 인물3) 구성비유기적 구성 즉, 우연적 구성 (상업 주의적 발상에서 비롯), 해피엔딩 ,권선 징악 (우연적 구성 남발하게 됨)4) 대사-서사적 대사: 과장된 연기와 억양-설교조의 대사: 계몽을 목적으로 하는 것-독백: 내면의 갈등 표현3. 한국 신파극의 흐름한국 신파극운동의 흐름을 보면, 시대적 조건과 연극 여건에 따라 성쇠의 굴곡이 발생부터 소멸까지 40여 년 동안 세 번 나타난다. 1910년대 초 ?중반과 1930년대 중 ?후반, 그리고 1947~1948년이다. 1910년대에는 새로운 양식의 신파극이 처음 들어와 붐을 이루었고, 1930년대에는 동양극장 건립, 광복 직후는 사회적 혼돈상태와 문화정책 부재 때문이었다.- 1930년대1930년대에 이르러 대중극단들은 동양극장의 탄생으로 그 구심점을 이루었고, 동양극장을 중심으로 한 극단과 그렇지 않은 극단으로 양분되어 활동을 전개해 나간다.동양극장시대는 신파극이 완전히 토착화된 시기로서 당시 대중의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창작극과 시대극이 압도적이었으며 대중의 반응도 절대적으로 좋았다. 당시의 대표적인 공연은 임선규의「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일명 홍도야 우지마라)」와 이서구의「어머니의 힘」, 최독견의「승방비곡(僧房悲曲)」, 박진 각색의「황진이」등이었다.Ⅱ. 신파극이 대중극으로 자리잡는 과정1. 대중극으로써의 신파극이 장을 전개하기에 앞서 기억해 두어야 할 점은 개화기 이후 새로운 연극 양식이 시도되면서 창극과 신파극이 1910년대의 대표적인 대중극으로 공연되었고, 1920년대 이후에는 신파극과 함께 신극이 대중극으로 변질되어 활발히 공연되었다는 사실이고, 이러한 의미에서 종래 신파극=대중극으로 설정해 온 개념을 지양하고 신파극은 어디까지나 대중극의 한 양식으로서 1910년대의 특수한 공연 양식에만 국한시켜 사용되어야 할 용어라는 점이다.개화기 이후 대중연극으로서 소위 일본 신파극이 이 땅에 상륙한 뒤 극장문화는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즉 수백년 동안 흘러온 전통 연극이 서양정신문화에 밀리면서 무대를 점령한 것은 역시 신파극이었고, 그것이 초창기의 어설픈 시험단계(일본 신파극의 답습과 모방)를 지나 상업성이 강한 전문연극으로 자리잡아 가는 것이 1920년대 말엽에서부터 1930년대 초반이었으며, 1935년 동양극장과 부민관의 개설로 그 절정기를 맞는다.1920년대의 신파극은 그 존속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3.1운동 직후여서 궁핍과 각성의 시대였던 데다가 학생 청년들의 민족적 색채가 짙은 소인극운동의 바람이 휩쓸었고, 토월회가 소위 전문극을 내걸고 대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영화가 나름대로 자리를 조금씩 잡아가기 시작한 때문이다. 특히 서양영화가 많이 들어옴으로써 진부한 신파극은 자꾸만 대중과 멀어질 수 밖에 없었다.어쨌든 이 시기의 전반부를 이끈 극단인 취성좌가 무너지고, 진일보한 극단인 조선연극사가 일본색 짙은 극단 취성좌의 저질 신파극을 극복하고 건강한 대중극을 표방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왔다. 후반부에서는 동양극장의 청춘좌와 호화선 두 전속극단이 이끌어 왔는데 흥미로운 것은 조선연극사로부터 동양극장으로 이어지는 소위 전문성 극단에 자극 받아서 1930년대 이후 소위 흥행성 극단들이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신파극이 이 땅을 밟은 지 20여 년 만인 1930년대에 와서야 어느 정도 우리 나라에 맞는 연극양식으로 굳어져 갔다는 이야기가 된다.종래에 타성적으로 해오던 일본적 신파극의 투를 과감히 벗어 던지고 뭔가 새로운 연극을 해보려고 노력이었다. 그것이 일종의 개량신파극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대중의 시선을 끌 만큼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것은 동양극장에서 대중극이 꽃필 수 있는 토대로 발전하고 신극사의 뒤안길로 신파극은 사라진다.신파극의 토착화의 결과 전문 극작가들이 등장했고 전문 연출가도 나왔으며 특히 무대 미술이 일신되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과장에서 많이 벗어났다. 이러한 결과 앞서 밝힌 바와 같이 1930년대는 개량된 신파극이 대중극으로 확장되어가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열악한 연극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대중에게 오락을 제공하고 어떠한 내용의 작품으로 대중과 호흡을 같이 했는지에 대한 극단의 활동을 살펴보는 것이 다음 장들의 목표가 될 것이다.사실 초창기 신파극의 맥을 이어온 대중극이 그 나름대로 토착화했다고 보아줄 수 있는 것이 대체로 1920년대 후반부터였다. 신파극에도 익숙하고 토월회가 제시한 대중성 짙은 과도적 신극을 배운 것이 다름 아닌 극단 조선 연극사 부류의 대중극이었다. 이들은 우선 창작극을 주요 레퍼토리로 삼았고 연출도 도입했으며 무대미술도 사실적으로 가져갔다. 그 점이 바로 일본 신파를 답습한 초창기 신파극을 뛰어넘은 것으로서 우리가 토착화된 신파극을, 즉 대중극으로 불러줄 수 있게 된 이유이다. 가령 조선연극사를 비롯하여 신무대, 연극시장, 황금좌, 연극호 등 1930년대 전반기를 주도한 극단들의 연극이 바로 그러한 대중극인데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흥행극이라 불렀는데 이는 아마도 예술보다는 순전히 흥행만을 목적으로 삼았던데 그 원인이 있지 않았나 싶다.따라서 대중극은 인텔리층의 비판 대상으로서 언제나 부정적 평가만을 받았다. 그러니까 대중극은 타락의 길만을 재촉하는 저질 연극의 대명사처럼 취급받은 것이다. 가령 질 낮은 극본들과 절제없는 신파적 즉흥적연기투, 무대미술과 조명의 엉성함, 그리고 주변 배우들을 내세워 관객의 흥미를 돋구려는 막간 등이야말로 당시 대중극의 성향과 수준을 극명하게 나타내준 것이었다.특히 노래, 재담등이 주가 되는 막간은 대중을 유혹하는 작품 외적 수단으로서 연극을 타락시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막간은 뜻있는 사람들로부터 항상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대중극단들로서는 작품만 가지고서는 관중을 붙잡을 수 없었고,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막간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던 것 같다. 비록 막간은 1940년대 전후해서 사라지지만 1930년대까지는 대중극단들의 운명적 필요악이었다고 할 수 있다.요약해보면 신파극이 대중극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 시기는 신파극의 토착화 과정과도 접맥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세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졌는데 첫째는 일본색 탈피를 위한 것으로 극작가를 우선하는 자세를 취했으며, 둘째로는 연기, 무대 미술 등에서 변화를 모색했다. 가령 3.1운동 이후의 신파 극본의 상당수가 우리 극작가들이 쓴 작품이었고 전문적 무대미술가도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신파극도 흥미본위의 오락성만 추구한 것은 아니고 미약하나마 연극의 사회적 기능도 염두에 두었다는 점이다. 1920년대 이후 신파극이 명맥을 이르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러한 시대적 사명에도 관심을 기울인 때문으로 볼 수 있다.물론 신파극이 점차 대중극화하면서도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고 할 수 있다.Ⅲ. 한국 근대 대중극과 신파극1911년 임성규의 혁신단의 활동을 한국 신파극의 시발로 잡을 때 그 이전 시기의 연극은 이른바 ‘신연극’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물론 신파극 유입 이후의 초기에는 간혹 신파극을 신연극이라고 부르기도 하였지만 1900년대 신연극이란 일반적으로 ‘창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신연극이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한국 연행 예술의 실상은 이른바 후대에 와서 전통연희라고 불리는 탈춤과 판소리가 중심을 이루고, 소학지희의 전통이 겨우 명맥을 잇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중 탈춤이 민속 예술(folk art)의 범주에 머물고 있는 반면 판소리는 민속 예술에서 출발하여 대중 예술의 영역에 수용된다. 창극은 바로 이러한 판소리의 대중성(popularity)과 실내 극장 무대가 지닌 대중 예술(mass art)적 성격에 힘입어 1900년대의 대표적인 대중극(popular theatre)으로 자리잡는다.이른바 구극의 활동도 여전히 성황을 이루어 1910년대 초기는 신?구파가 동시에 각광을 받는 연극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원각사(문수성), 연흥사(혁신단), 장안사(판소리), 단성사(기생의 연예), 광무대(기생의 연예) 등 당시의 대표적인 한국인 운영의 극장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연극이 공연되고 있었다. 아울러 ‘신연극’에 대해서는 우호적이고, ‘구연극’에 대해서는 비판적 격려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 당시 지식인의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이와 같이 신파극은 처음에는 지식인들이 적극적인 향유층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이러한 연극계의 현실은 1913년 이후부터 자못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그 계기는 바로 매일신보의 신문 연재 소설의 극화에서 비롯된다. 신파극은 바로 이러한 공연의 대성황에 힘입어 1910년대의 대표적인 대중극(popular theatre) 양식으로 자리잡는다. 이에 따라 그 동안 지녀 왔던 구연극의 우세적 지위는 신파극의 대중성에 눌려 역전되고 말고, 1910년대 후반부터는 구연극 주체들도 신파극을 공연하거나 신파극단의 공연에 합세하는 상황으로 공연의 비중이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인문/어학| 2012.04.13| 5페이지| 5,500원| 조회(272)
    미리보기
  • 병자삼인
    ◆ 작품 소개「병자삼인」은 1921년 11월 17일부터 12월 25일까지 총 31회에 걸쳐 매일신보의 3면에 연재되었으며,?전 4막으로 구성되어 있다.『매일신보』에 연재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희곡으로 알려졌으나 「우승열패」라는 작품을 번안했음이 밝혀짐으로써 최초의 희곡이라고 보기는 어렵다.1910년대 초반이 신파극의 전성시대라고는 하지만 막상 희곡, 그러니까 연극의 대본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실상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한국의 신파극이나 서양 연극(신연극)에 대한 연구는 당시의 신문 기사나 회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 점에 비춰 보더라도 〈희극 병자삼인〉의 의의는 만만치 않다이 작품이 발표된 시기는 연극사적으로 볼 때 신파극 시대로 규정되는 시기로 「병자삼인」 역시 당대 유행하고 있던 신파극의 수법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신파극에 대체로 비극(특히 가정 비극류)이 많았던 것에 반하여 「병자삼인」은 희극으로 분류되는 작품이다.그 웃음의 수법이 소극(笑劇)에 가깝고 리얼리티를 결여하고 있지만, 우승열패(優勝劣敗)라는 전환기 가치관의 혼란을 당대로는 보기 드물게 희극적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병자삼인」에 나타나는 희극적 원리는 역할의 전도에서 발생하는 웃음의 원리하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부부간의 역할 전도를 의미하는데, 그것이 더욱 희극적일 수 있는 것은 근대 전환기라는 시대적 특수성 때문이다. 즉 전통 사회에서 근대 사회로의 급격한 이행기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문화적 혼란상을 희극적 소재로 다룬 것이다.전통 사회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 근대 사회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당대인에게는 가치관의 커다란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한 문화적 충격 가운데 하나가 여성의 지위 문제이다. 근대 사회에서의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남성과 대등한 지위에 설 수 있다는 사실은 봉건적 의식에서 미처 깨어나지 못한 당대 남성들에게는 하나의 문화적 충격이었다. 이러한 문화적 충격을 우스꽝스럽게 과장하여 희극적 상황으로 재구성한 것이 바로 「병자삼인」이다.◆ 의 구성전 4장으로 구성된 은 남성의 능력보다 여성의 능력이 더 뛰어나기 때문에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전도된 남녀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세 쌍의 부부들 사이에서하루 동안에 일어난 요절복통할 병자소동을 그리고 있다. 1장에서는 정필수, 이옥자 부부 2장에서는 하계순, 공소사 부부, 3장에서는 박원청, 김원경 부부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난 남편들의 병자 소동을 그리고 있으며,4장은 지금까지 전개된 사건들이 어떻게 해결되는지를 보여주는 결말로 이루어져 있다.대부분의 선행연구에서 의 극구성에 댜한 평가는 다소 인색하였다. 병자삼인은 단순한 에피소딕 플롯의 형식이어서, 단편적인 사건의 나열, 반복에 불과하다.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5단 구성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도입-사건의 얽힘-해결'의 3단 구성은 갖추고 있다.은 하나의 결말을 위해서 종속 접속하는 사건의 조합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인물들의 개입을 통해서 유기적인 인과관계가 드러나는 잘 짜여진 구조를 보여 주고 있다.◆ 의 삽화적 플롯텍스트의 극적 구조와 의미 구조 및 현실 구조간의 관계를 밝히려면 우선 줄거리 마디를 준거로 하여 그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① 정필수는, 아내 이옥자와 함께 상경하여 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시험을 쳤으나 하인이 되자, 교사가 된 아내까지 심부름을 시켜서 피곤하여 결근한다.② 정필수는 ①을 중얼거리면서 밥을 짓고 있다.③ 정필수가 아내와의 지위 전도에 따른 자신의 처지와 아내의 언행을 이야기하면서 음식 배달을 부탁하자 업동모도 그러한 처지를 비웃으면서 그의 부탁을 들어준다.④ 아내가 귀가하여 하인으로서의 역할 준수와 교사되기를 바라면서 국어공부를 가르치자, 정필수는 부부로서의 역할 준수와 교사되기를 이야기 하다가 귀머거리 행세를 한다.⑤ 하계순이 그녀의 구박으로 정이 귀머거리가 되었으므로 아내로서의 역할 의무를 다해야 낫는다고 하자 이옥자는 그러겠다고 하면서 하계순 부부의 지위 같음을 부러워하고 정이 하인됨을 귀찮아한다.⑥ 이옥자와 공소사가 재진으로 정의 꾀병을 알아 같이 분풀이 할 계교를 마련하고, 정이 음식 배달 소리를 듣고 그 음식을 먹자 그녀들은 기가막혀 바라본다.⑦ 공소사가 늦은 귀가와 귀머거리 진단에 관하여 따지면서 문간 심부름이나 하라고 하자, 하계순은 정필수 병문안을 이야기 하다가 벙어리 흉내를 낸다.⑧ 정필수가 하계순의 진찰 덕분에 가장으로서 대우를 받다가 공소사의 진찰로 핍박을 받는다고 재진을 요구하자, 계순은 이옥자와 공소사의 보복임을 이야기해 주다가 자신의 벙어리 흉내도 꾀병임을 공소사에게 들킨다.⑨ 하인이 계집을 찾아왔음을 전갈하고, 박원청은 세음의 연기와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다가 매화의 편지와 세음을 맞바꾸자, 설원은 그의 놀이 형태를 나무라면서 세음을 받고 나간다.⑩ 박원청은 노름채 세음과 매화의 편지를 들켜서 장님 흉내를 내자 김원경은 그를 회계에서 그만두게 하고 서방의 지위를 파직시키겠다고 위협한다.⑪ 공소사가 김원경이 학교직원 중에 꾀병을 하는 사람들을 징계하여 다스리자고 하면서 공소사가 칼로 눈을 도려내려고 하자 박원청이 달아난다.⑫ 정필수와 하계순 및 박원청이 귀머거리와 벙어리 및 장님 노릇을 하는 사연을 말하면서 학교의 돈을 분배하고자 하자 이옥자와 공소사 및 김원경이 남편들에게 이혼을 선고한다.⑬ 헌병 보조원 길춘식이 세 쌍 부부들이 다투는 걸 보면서 남편들을 잡아가서 감옥에 보내려 하자 아내들이 만류하여 병신흉내 내지 않기를 바란다.텍스트는 세 쌍의 부부들이 살아가고 있는 현재적 삶의 양상과 그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제 1장(② ③ ④)은 정필수와 이옥자 부부의 삶, 제 2장(⑦)은 하계순과 공소사 부부의 삶, 제 3장(⑨ ⑩)은 박원청과 김원경 부부의 삶, 제 4장(⑫)은 이러한 세 쌍의 부부들의 관계적 삶이 전개된다.그리고 ①에서는 부부 간의 지위가 전도된 정필수와 이옥자 간의 관계, ⑤⑥과 ⑧에서는 정이 부부와 하공 부부간의 관계, ⑪에서는 박김 부부와 하공 부부간의 관계, ⑬에서는 이러한 세 쌍 부부들 간의 관계를 각 장의 끝부분에서 연결시켜서 보여 주고 있다.장의 구조에서 본다면 텍스트는 전 4장을 장 단위로 분할하고 있다.
    인문/어학| 2012.04.13| 3페이지| 2,500원| 조회(230)
    미리보기
  • 국물 있사옵니다 해피
    ◎ 서사극 소개브레히트가 제시한 새로운 극 이론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극작론을 부인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연극의 목적은 관객들에게 환상적인 사건 진행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유도하고, 관객과 극중 인물과의 감정 교류와 공감이 중요했다. 극중 인물의 고뇌가 ‘나(관객)’의 고뇌요, 그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라는 것이 전통적 연극이 요구하는 관객 태도이다. 브레히트의 서사극은 카타르시스를 요구하지 않고, 관객의 반환상적인 냉철한 관찰을 통해 비판력과 판단력을 부여하는 데 있다. 이성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감정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되고, 극은 서사적인 서술 기법을 통해 관객에게 일정한 거리를 제시한다. 서사극은 사회적 모순들에 대응할 수 있는 냉철한 분석력을 키워준다. 형식면에서 극의 발단이 없고 막을 통한 구분도 불분명하며 열린 드라마이다.서사극 이론은 피스카토르의 『정치극』, 『시대극』, 『교술극』등의 영향을 받는다. 서사극의 기원은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스』, 『오디세이』, 서양 중세극 내지 근세 초기의 교술극, 영국의 엘리자베스극, 독일 낭만주의 작가 티크의 동화적 서사 정신, 뷔히너의 드라마, 이탈리아의 피란델로, 중국 원나라 시대극, 일본의 노(No: 능, 能)극, 그리고 인도극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브레히트가 구분한 전통극과 서사극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1)전통극에서는 일정한 플롯과 사건의 ‘발단’ · ‘상승’ · ‘정점’ · ‘하강’ · ‘파국’이 요구된다. 서사극에서는 이러한 플롯이 서사적 이야기로 전환된다. 자서전, 역사 또는 비유 등을 전통적인 것과 다른 플롯으로 서술한다. 이것을 ‘감정이화작업 혹은 소외효과’라고 하는데, 이 이화작업은 현재의 사회적 문제를 과거의 어느 특정한 전설적 · 역사적 · 자서전적 혹은 비유적 상황 하에 관객에게 일정한 거리를 제시한다.(2)전통극은 관객을 극중의 사건에 몰입하도록 유도하며, 관객의 반응도 수동적이다. 서사극은 관객을 객관적인 입장에 머물게 하며, 유동적인 사건의 전개에서 능동적으로 작품을 이해하고 분얻어 학문적 분석을 한다.(5) 전통극은 동정, 증오 혹은 의구심 등을 느끼며 정신적으로 정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서사극은 관객의 독자적 판단을 촉구한다.(6) 전통극은 관객에게 암시를 준다. 서사극은 관객에게 토론을 위한 논쟁거리를 제공한다.(7) 전통극은 주인공이 유명한 인물로 등장한다. 서사극은 주인공이 실험 대상이 된다.(8) 전통극은 변함없는 인간상을 보여준다. 서사극은 변화하는 인간상을 제시한다.(9) 전통극은 결론부에서 긴박감을 준다. 서사극은 과정 그 자체에 긴박감을 준다.(10) 전통극은 한 사건이 중심이 되어 한 장면이 다른 장면으로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서사극은 장면과 장면이 명확한 줄거리를 갖고 독립적이다. 희곡의 각 부분을 분리하고 병렬적인 극 진행 등으로 서사를 중단하고, 관객이 성찰과 비판의 여유를 갖도록 한다.(11) 전통극은 사고가 존재를 결정한다. 서사극은 사회적인 존재가 사고를 결정한다.(12) 전통극은 사건 전개가 직선적이고, 진화론적이다. 서사극은 사건 전개가 곡선적이고, 극중에서 전개되는 사건의 내용을 종합 설명하는 중간발언을 통해 사건의 진행 중 단순히 극에 몰입되고 환영을 갖는 것을 방해한다.(13) 전통극은 무대에서 모든 사건, 그리고 인물이 현실 그대로임을 강조한다. 무대에서의 메피스토펠레스는 정말 메피스토펠레스이며, 배우 그륀트겐스의 사적 존재는 잊혀진다. 서사극은 이런 도식적인 무대약속을 거부한다.(14) 전통극은 무대위의 어둠을 밝히는 조명을 통해 극의 시작을 알린다. 극장 내의 불을 끄는 것은 관객을 극장 안팎의 현실과 구분 짓기 위함이다. 무대 위에 떨어지는 여러 색의 조명은 환영을 자아내기 위한 수단이고, 관객은 긴장된 상태에서 무아의 경지에 빠져들기도 한다. 반면 서사극은 환상 속에 나오는 인물이 허구적이며, 전통극의 비현실적 분위기를 경계한다. 극이 진행되는 동안 조명은 그대로 있고, 관객이 극장에 들어오면 막은 이미 열려진 채 있다. 조명 기구 및 장치도 그대로 볼 수 있다. 무대 전면을 넘어 배우 사실적이다. 서사극은 상징적이다.(16) 전통극은 특수한 상황 속에서 특수한 욕망을 갖고 고민하는 인물상을 보여준다. 서사극은 보다 긴 시간과 넓은 공간을 통해 다각적으로 사건과 인물을 관찰하고 사회 비판적이다. 연극의 사회 참여로 인해 인간 및 사회를 개조한다.(17) 전통극은 감정이 위주가 된다. 서사극은 이성이 위주가 된다.(18) 전통극은 폐쇄된 희곡 형식이고 극중의 현실은 보호를 받는다. 서사극은 개방된 희곡 형식이고 연극을 단순한 연극으로 보여주며, 환영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 작품소개줄거리소심하고 어리 숙한 김상범은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정직하게 살아왔지만, 그에게 찾아오는 것은 실패와 손해뿐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사장의 눈에 들게 되어 상무로 특진한다. 이후 사장의 자리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된 김상범은 자신의 출세가도를 위해 과감한 행동을 개시한다. 사장의 며느리이며 비서인 성아미가 박전무와 간통하고 회사공금을 유용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미끼로 하여 임신 중인 성아미와 결혼한다. 상범은 아미가 임신한 아이가 박전무의 아이임을 짐작하고 있지만, 이를 부정하고 스스로 자신을 위로하며 애쓰며 신혼여행지에서 부산으로 출장을 떠난다.인물분석김상범 : 처음에는 평범 했으나 출세에 눈을 뜬 후부터는 비열하고 냉혹한 인간으로변한 다.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출세지향주의이자, 황금 만능주의에 빠지게 되는 인물이다.김상학 : 동생이 결혼하려고 했던 여자와 결혼한다. 결혼을 핑계로 아버지의 환갑연을동생에게 미루는 이기심을 가진 인물김상출 : 정당한 방법으로 출세를 하며 '신지식'에 물들지 않아 상범과 대조되는 인물성아미 : 겉으로는 죽은 남편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나 실제로는 다른남자를 만나 불륜을 저지르는 이중인격자이다.상범과의 결혼을 통해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인물임을 보여준다.탱 크 : 돈에 눈이 멀어 물불을 가리지 않으나 상범에 비해 치밀하지 못하여 결국죽음을 맞이하는 인물이다.현소희 : 탱크와 비슷한 성격을 5월 극단 민중극단에 의해 초연된 작품으로, 1960년대 산업사회의 대두와 더불어 고조되기 시작한 출세주의와 배금주의 풍조를 아이러니컬하게 투시한 본격적인 서사극이다. 한 청년의 세속적인 출세기를 다룬 이 작품은 당시 유행하던 ‘국물도 없다’는 말을 반어적으로 활용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욕망 충족을 위해 전력 투구하는 비정하고 동물적인 인간상을 다각도로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 김상범은 애초에 소심하고 어리숙한 젊은이로 등장한다. 그러나 출세의 방법에 눈을 뜨게 되자 무모할 정도로 과격해져 남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는 일도 서슴지 않는 냉혈한이 되고 만다. 드디어 그의 세속적인 처세술은 그의 도덕적인 규범으로 굳어지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손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성취해야 한다는 것, 양심적인 갈등은 백해무익하다는 것 등이 그의 생활신조가 되는 것이다. 그 청년뿐만 아니라 주변의 등장인물들의 행위에도 이른바 국물 처세술이 다각도로 펼쳐진다.이 작품은 그 형식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 이근삼 특유의 우화극적 시각과 희극적인 언어의 바탕위에 서사극을 차용하여 연극적인 즐거움이 풍만한 풍자극으로 형상화 되어 있다. 서구의 연극 형식 가운데 서사극, 소극, 우화극이 갖는 장점들을 취합하여 개방적이고도 익살스러운 사회 풍자극을 새롭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설명역의 해설이나 인물이 독백을 통해 나타난 인생의 자세나 세계를 보는 시각등 당대적 풍자를 뛰어넘으려는 시도들은, 애매모호한 운명론, 무책임한 허무주의, 혹은 전근대적인 계몽성으로 귀착될 우려가 있기도 하다.이 작품은 김상범이라는 청년의 무모하고 불합리한 출세과정을 '국물을 찾는 인간'으로 부각시킨다. 애초에 그는 매우 소심하고 어리숙한 청년이어서 회사의 임시직을 면치 못하고, 마음에 둔 여자에게는 내심을 털어놓지 못한다. 이웃 사람들에게 이용당하고 매양 손해만 입는 처지에 살아간다.'국물'은 '약간의 대가'혹은 '약간의 수고료나 분배경주의)에 눈뜨게 되자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기이익과 이해'에만 전념하며 신속하게 교활한 인간으로 변질된다. 신세대들의 출세주의와 이윤추구의 행동양식을 냉혹하게 제시함으로써 비판적인 웃음을 이끌어낸다.◎ 의 서사적 기법서사극은 사실주의극의 극적 환상을 제거하기 위한 여러 극적 장치를 활용한다. 연극을 현실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연극을 통한 사회비판과 참여를 목적으로 하기 위해서다.이근삼의 희곡에서는 이런 서사적 기법이 자주 등장한다. 이것은 그가 어떻게 당대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 다시 말하면 그가 연극을 통해 사회 모순과 부조리를 어떻게 보고 비판하고 있는가하는 문제로 연결된다.그의 희곡에 자주 등장하는 서사적 기법 중 설명역의 등장과 극중극, 무대와 객석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한다.1)설명역의 등장자신이 직접 소개할 뿐만 아니라 극중 장소와 시간을 직접 관객에게 알려준다. 행동을 통한 보여주기가 아니라 마치 서사문학의 서술자처럼 관객에게 직접 알려주는 방법이다.설명역은 직접 자신을 소개하고 앞으로 자기가 맡게 될 역을 미리 알려주기도 하며 극중 시간을 말을 통해 알려주기도 한다. 등장인물이 무대 밖의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행위는 관객으로 하여금 극중 사건에 대해 거리를 가지게 하며 이 거리로 인하여 관객은 극적 사건에 대해 판단을 가할 자세를 취하게 된다.ex) 상범) 오늘 일요일 아침, 저 김상범은 몹시 피곤을 느낍니다. …전 아직 총각입니다. 나이 서른하나에 이 사실이 자랑이 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으나, 그렇지만 이건 부득이 한 겁니다.2) 극적 공간의 확장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없애버리는 것은 극적 공간을 확장시키는 것으로써 이는 막을 사이에 두고 공간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서로 넘나드는 것을 말한다.무대장치는 사실주의 희곡에서 보이는 세부적인 묘사가 보이지 않고 극의 주제가 요구하는 단순화된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극적 공간의 확대는 연극을 극적 환상을 얻기 위한 닫혀진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연극이다.)
    인문/어학| 2012.04.13| 6페이지| 3,800원| 조회(277)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2
2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1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04일 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2:24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