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행위론[경주 최 부잣집 300백년 부의 비밀]2006033156 경제통상학부최보나얼마 전 누리사업단에서 주최하는 '카네기 리더쉽 캠프'를 다녀왔다. 카네기는 그냥 재단이름이라고만 생각 했었는데 알고 보니 그 재단을 만든 사람의 이름이 '카네기'였다. 도대체 얼마나 부자였으면 이런 재단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우리나라 부자들은 자기 이익을 챙기기에만 급급하여 이러한 사회공헌을 하지 못하는 사실에 대해 안타까웠다. 그러다 '경주 최 부자 집 300년 부의 비밀'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카네기재단보다 훨씬 먼저 존재했던 최 부자 재단이 있었다. 최 부자 가문은 가치 있는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기쁘게 버릴 줄 알았다. 최 부자 가문의 마지막 부자 최준, 그는 300백년 모은 재산을 독립운동을 위해 기부했고 마지막 남은 자신의 재산을 모두 바쳐 현 영남대학교를 세웠다.'경주 최 부자 집 300년 부의 비밀'에는 최진립(1568~1636)에서 시작되어 최준(1884~1970)에 이르기까지 10대 300년 동안 지속적으로 유지된 그 부의 비밀이 담겨 있다. 그 비밀은 현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다. 신처럼 숭배되어 온 서양 물질만능주의 사회의 모순이 하나 둘 나타나면서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 하던 시대는 지났다. 경주 최 부잣집 이야기는 21C가 원하는 기업인 상을 이미 400년쯤 전부터 보여 주고 있다.기업들이 이익관계자, 즉 주주의 만족만을 고려하던 시대는 지났다. 최근 국내외 기업들의 이익추구 활동에 대한 불신이 쌓여 가면서 종업원과 사회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 진짜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이윤추구 뿐 아니라 종업원과 지역사회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 즉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중요시 되고 있는 것이다. 경주 최 부자 집의 부를 추구하는 정신이 이러한 현실사회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준다. 최 부자 가문의 마지막 부자였던 최준은 다음과 말을 평생 잊지 않고 살았다고 한다. “ 재물은 분뇨와 같아서 한 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지만 골고루 사방에 흩뿌리면 거름이 되는 법이다.”300백년간 부를 유지해온 조선후기의 최고 재벌, 경주 최 부잣집에는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부를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 된 6가지 가훈 '육훈(六訓)'이 있다.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이상은 하지마라.둘째, 재산은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넷째, 흉년에는 남의 논밭을 매입하지 말라.다섯째,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히라.여섯째,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과거를 보되 진사이상은 하지 마라는 말은 벼슬이 높아질수록 당쟁에 휩쓸리기 쉬웠고 사람은 지위가 높아질수록 더욱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를 경계한 것이다. 재산을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라는 말은 1년의 소작료를 만 석 이상 받지 말라는 말이다. 소작료를 만석으로 한정지으므로 최 부자의 땅이 자꾸 넓어질수록 개별 소작인들의 부담은 줄어든다. 따라서 소작인들은 최 부잣집의 논이 늘어나기를 원하였으며 좋은 땅이 있을 때 마다 최 부잣집에 소개해 주었다 한다. 또한 최 부자는 1년 소작 수입인 쌀 3천석 정도 중 1천석은 집안에서 쓰고, 1천석은 주변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용도로, 나머지 1천석은 과객을 접대하는데 썼다. 이렇게 함으로 인해 교통이 발달하지 못해 여행이 어려웠던 조선시대에 과객들로부터 새로운 정보를 수집하고, 다른 지방 소식들을 전해 들었다. 과거 농업중심의 사회에서는 흉년이 되면 땅을 헐값에 팔기위해 내놓은 사람이 많아 재산을 늘리기 쉬웠다. 그러나 이러한 흉년에 땅을 사게 되면 농민들로부터 원한을 사게 되어 그 원한이 부메랑이 되어 날아온다. 최 부자는 약점을 이용해 재산을 늘리는 대신 소작료를 줄여주는 등 백성들의 생활을 먼저 생각하였다. 이처럼 최 부잣집은 어려운 사람들과 과객 등 외부 손님에게는 후했지만 집안 살림에는 그렇지 않았다. 다섯째 가훈 최씨 가문 며느리들은 시진 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히라 라는 말처럼 곳간열쇠를 가지고 집안 살림을 담당하는 여자들에게 절약정신을 가르쳤다. 마지막으로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가훈에서도 최 부자의 덕망이 나타난다. 경주교동에서 사방 백리라 하면 동으로는 경주 동해안 일대에서 서로는 영천까지고, 남쪽으로는 울산까지, 북으로는 포항까지의 영역이다. '백 리'라고 한 것은 당시 도보로 하루에 왕복할 수 있는 거리가 그쯤 되었고 또한 최 부자의 땅이 그 정도 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범위 내에 있는 사람들은 공동체로 생각하고 돌보았던 것이다. 최 부자는 매일 솥에 죽을 끓여 먹을 것을 제공하고 헐벗은 이에게는 옷을 해 입혔다.또한 경주 최 부잣집에는 6가지 가훈 말고도 자식들 교육용 훈계지침과 처세술을 담은 ‘육연(六然)’이라는 가훈이 있었다. 이는 자신의 몸을 다스리기 위한 지침이라고도 할 수 있다.자처초연(自處超然):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대인애연(對人靄然): 남에게는 온화하게 대하며무사징연(無事澄然): 일이 없을 때는 맑게 지내며유사감연(有事敢然): 유사시에는 용감하게 대처하고득의담연(得意淡然): 뜻을 얻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며실의태연(失意泰然): 실의에 빠졌을 때는 태연하게 행동하라.최 부잣집은 이 육연(六然)을 한 달에 한 번씩 집안 아이들에게 쓰게 하고 그 뜻을 마음에 담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