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Ⅰ. 서론 : ‘고귀한 존재’ 인간?Ⅱ.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Ⅲ. 인간의 특성에 대한 생물학적 단상들1. 인간의 성2. 불의 사용3. 죽음을 알다.4. 언어의 구사Ⅳ. 결론Ⅴ. 참고문헌 목록Ⅰ. 서론 : ‘고귀한 존재’ 인간?현대 과학에서는, 인간을 더 이상 동물과 다른 그 무엇으로 구분하지 않으며 자연보다 상위에 있는 어떤 존재로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이 자신들이 다른 자연적 존재들과는 다르다고 말하기 위한 근거되는 특성들은, 여기선 인간이라는 종이 지구상에서 더 많이 번식하고 유전 형질을 많이 퍼뜨리기 위한 도구로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옛날 서구 철학에서 그토록 극찬했던 날카로운 이성, 어떤 소설가가 즐겨 사용했던 문구 ‘유일하게 신을 생각할 줄 아는 동물’ 그리고 그에서 더 나아간 일반적인 철학적 명제들, 탐욕스러운 자연의 동물들과 달리 인간만이 소유한 절제, 생존을 떠나서 적용되는 유희와 미학, 조직의 사회성 등등은 지금까지 인류가 자신들을 일반적 자연과는 다른 무엇으로 만들기 위해 그 근거가 되어왔던 것들이었지만 이러한 것들도 각각의 자연 개체들이 자연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해 그 형질을 독특하게 변용한 것의 연장선으로 분해된다(철학적 의미 따위는 모두 사라져버리고 ‘생존을 위한 진화’에 요구된 하나의 ‘형질’이 되는 것이다.). 바깥 어두운 숲 속의 나무 한 그루의 형질, 그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형질,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나라는 ‘인간’의 형질은 비록 그 모양은 다르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질이 다르다고 말할지 몰라도 결국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결단과 진화라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잠시 우리 이전의 서구 철학자들이 그렇게 극찬해 마지않았던 이성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 서구 철학자들이 이야기할 때에 인간이 다른 생물들과 다른 것은 이성이 있기 때문이며 이것의 존재에 의해 인간은 만물을 지배할 수 있고 만물 위에 군림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연원을 파헤쳐 들어가면, 이성이라는 것은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이야기를 볼 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을 인간으로의 루비콘이라 명명한다. 발루아(Valois)라는 학자는 두개골의 용량 800cm³에서 뇌의 루비콘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두개골 용량 800cm³, 그 이하는 동물, 그 이상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점진적인 진화의 결과일 뿐이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인과 초기 인류(400~600cm³), 직립인 호모 에렉투스 및 호모 에르가스테르와 호모 사피엔스(800cm³~1300cm³)로 그 간극은 명백히 어떤 의미를 나타낸다.)하지만 두뇌 용량 하나를 가지고서 인간의 이성 활동을 설명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9kg이라는 전대미문의 뇌 용량을 가진 향유고래라는 생명체가 초월적인 지능을 가진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인간의 뇌가 다른 동물들의 뇌와 다른 것은 인간의 뇌 중 변연계라는 부분인데 이것이 인간의 기억과 사고를 관장하며 다른 동물들과 인간을 다르게 한다. 인간과 다른 개체들과의 차이라는 것, 그리고 홀로 오롯한 인간의 지능이라는 것은 두뇌 구조의 차이로부터 기인한다 할 수 있다.어찌하였든 인간이 이성이라는 것에 의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라는 것 또한 인간의 진화에 있어 나타난 것이라는 걸 부정할 수는 없다. 이성을 예로 들었지만 다른 면들을 생각해도 인간이라는 존재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전혀 특별하지 않다. 우리가 인간을 특별해 마지않은 존재, 신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게 하는 많은 근거들 - 우리는 신을 생각하고, 윤리는 알고, 도덕을 사고하며 그 밖에 기타 등등은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의 과정에서 안정성과 다양성을 담보하기 위해 만든 스스로의 자기 제어 장치(Self Control Device))에 불과하다. 이 전제를 머리속에 담아두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는 종을 논하기에 중요하다. 인간을 여타의 생물 종들과 다른 위치에 놓고 생각하면 생물의 공통적 속성을 논하는 생물학의 시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Ⅱ.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과연 인간이라는 것은 어디에뿐인 것이다.‘아니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께서 저기 나무위에 뛰어다니는 원숭이 한 마리라고? 아니, 난 인정할 수 없어!’라고 누군가 말할 지도 모르겠다(필자 본인만 해도 나의 핏줄은 고귀한 왕족인 김수로왕에서 ‘짠’ 하고 나타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확실히 우리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의…아버지는 인간이다. 그렇게 우리의 조상들 중에는 PD도, 상이군인도, 농부도 있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어딘가의 왕족, 어딘가의 노예, 어딘가의 무당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조상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음의 한계는 어디인가? (한 세대를 30년이라 가정했을 때) 20만 세대를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의 조상은 더 이상 인간이라 불릴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1925년 남아프리카에서 출토된 최초의 화석 인류의 형질은 그것이 원숭이와 별로 다를 바 없음을, 또한 그 이전에 발굴된 화석은 우리의 조상이 나무 위에서 살던 개체였음을 보여준다.)원숭이에서 인간이라는 새로운 종은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가? ‘새로운 종은 어떤 오래된 종이 계속 이어져나가는 과정에서, 작은 변화들이 완만하고 점진적으로 축적되어 그것이 영속적으로 유전됨으로써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종은 갑작스럽게(수천 년 혹은 그보다 약간 짧은 기간에) 형성될 수도 있다.’라는 명제를, 현대 과학의 패러다임은 기본적으로 깔고 있다.그렇다면 생물학적으로 보았을 때, 인간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왔을까? 학계의 정설에 따르면, 지구상에 최초로 나타난 최초의 세포는 조류(藻類)이다. 바다 위에 떠다니는, 식물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생명체에서부터 모든 생명체가 기원한 것이다. 그리고 이 조류 세포를 LUCA(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라 칭한다. 그리고 이 최초의 세포 또한 지구의 탄생부터의 10억년의 시간을 몸에 담고 있다. 이렇듯이 지금 지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들은 모두 그 조상대로 유구보자. 앞으로 짧은 지면이지만 인간의 특성들을 살펴보는 부분에서 주목하게 될 것은 우리가 인간만의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생물학적 표현 - 자기 제어 장치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것이다.Ⅲ. 인간의 특성들에 대한 생물학적 단상들1. 인간의 성일차적으로 살펴볼 것은, 인간의 성이다. 수많은 진화를 거치면서, 생물종의 진화에서 생식 방법의 패러다임은 무성생식에서 유성생식 쪽으로 옮겨왔다. LUCA에서 진화론적으로 그리 많이 뻗어나가지 않은 종들은 대개 무성생식을 한다. 조류와 아메바, 플랑크톤 같은 단세포 생물들 등은 스스로의 유전자를 그대로 복사하는 무성생식을 한다. 무성생식의 경우에는 쉽게 자손을 번식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여기에는 크나큰 단점이 하나 있다. 바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대처가 불가능한 것이다.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종이 널리 퍼져 있을 때 만에 하나 크나큰 전염병 같은 것이 돌거나 기후의 급작스런 변화가 생기게 된다면 그 종은 그대로 지상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다.이러한 단점을 타개하기 위해 진화의 과정에서 탄생한 생물들의 ‘발명품’이 유성 생식이라 할 수 있다. 유성 생식의 경우 유전자의 복제가 불안정하거나 그 속에서 치명적인 돌연변이가 생기는 등의 결함이 일어날 수 있으나 아버지 종의 유전자와 어머니 종의 유전자를 반반씩 가져가 합성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진화 과정에서 필요한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 성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관점에서 보아 ‘교배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대개의 동물 종들은 성의 이런 점에 충실하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새끼를 낳고 양육한다. 그러나 이런 성의 의미가 인간에게 있어선 조금 특별해 보인다. 생태학적으로 보았을 때 전혀 그다지 이해될 구석이 보이지 않는 동성애라는 것의 존재 등이 그런 것이다.성의 분화라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개체를 낳고 양육하기 위한 수단’인데 성의 관념에서 그것에 반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하지만 여기에 대해선 또 다른 생태학적 견해가 존재한다. 인류의 사회 를 파고들어가 보면 불이라는 것에 대해 가지는 문화적, 심리적, 사회적 코드의 존재 위상은 대단한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와 불에 대한 이야기는 불이라는 것이 신이 인간에게 특별히 준 선물이라 표현하는 것에서 인간의 관념 속에서 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아이덴티티와 경외심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그런 의식은 조로아스터교에서 모든 것을 정화하는 불을 숭배하는 것 등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하지만 불을 사용한다는 것으로 인간이 동물과 다른 무언가라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불이라는 것은 침팬지가 개미집을 뒤질 때 나뭇가지를 사용하는 것과 크게 다르게 보이지 않는다. 불이라는 것은 숭배라던가 경외라던가 하는 문화 심리적 요소를 떠나서 엄연히 인간의 손에 의해 다루어지는 도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불을 단순한 나뭇가지와는 다른 무언가로 생각하고 숭배하는 이유는 불이라는 것을 인간이 완전히 통제하기엔 인간이라는 종이 미숙하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불의 도구적 요소를 떠나 불의 파괴력에 대해 가지는 경외감이 수백, 수천 세대를 거치며 누적되어 결국 집단 무의식적 요소가 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다.)3. 죽음을 알다.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생명의 한 기능이다. 그 기능이 선충류에서는 ‘아포토시스’라는 ‘계획된 세포의 죽음’(programmed cell death : 세포가 적절한 신호 자극을 받았을 때 스스로를 파괴하는 메커니즘이다. 이는 세포 증식과 균형을 이루는 정상적인 생리적 과정으로, 세포 안팎에서 전달되는 자극에 의해 작용을 시작하도록 유전적으로 계획되어 있다.)이라는 현상으로, 다세포 생물에서는 ‘첨가/제거’의 현상(생쥐의 경우, 팔다리는 20일의 잉태기간 중 9일에서 10일째 사이에서 토시 모양으로 나타난다. 13일째가 되면 네 줄의 세포소멸 띠가 관찰되는데, 이것들이 손가락 사이의 조직을 제거하고 손가락을 형성하게 된다.)으로 설명된다. 인간의 관점에서 신체는 오래가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고, 서없다.
철장 격투의 세계화, 그리고 한국0. 목차1 - UFC, 철창의 세계화2 - 한국의 진입장벽3 - 월담시도4 - 전망5 - 참고자료, 사이트※ 본 주제에 대한 연구는 학적인 차원에서 다루어진 면이 전무하기 때문에, 대개의 자료가 국내외의 전문 칼럼들과 커뮤니티, 뉴스에 기반 한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1. UFC, 철장의 세계화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는 1999년 11월 12일 미국 덴버이서의 경기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는 종합격투기 대회이다. 흔히 생각하는 사각 링에서의 경기와는 달리 이 경기는 옥타곤이라고 불리는 넓은 8각형의 철장 안에서 치러지며, 옥타곤은 곧 UFC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UFC의 본토인 북미 지역에서는 ‘격투기=UFC'라는 인식이 퍼져 있고(성민수, 07.08.29) UFC의 PPV) 판매량은 UFC 66(66번째 대회)의 105만개를 필두로 UFC 61의 77만 5천, UFC 71의 67만 5천, UFC 81의 65만 등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북미 지역에서의 탄탄한 기반과 그에 못지않게 두터운 선수층은 UFC가 K-1, PRIDE(이하 ’프라이드‘)와 함께 세계 3대 격투 대회로 불리게 한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2008년 현재 이러한 전통적인 인식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우선 UFC와 함께 종합격투기계의 양대 산맥이었던 프라이드의 몰락을 들 수 있다. 프라이드의 경우 비교적 탄탄한 단체 시스템과 선수 유입 시스템을 지니고 있었으며 독보적인 홍보력과 포장능력을 바탕으로 일본과 한국을 기반으로 한 넓은 지반을 가졌었으나, 2007년 자금 운영에 야쿠자가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후지TV와의 계약을 해지하게 되었다. 이는 경기 당일 티켓 판매 이외에도 TV를 통한 수입을 주로 하고 있었던 프라이드의 자금 운영에 결정적인 타격이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프라이드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K-1의 경우 유럽, 아시아, 북미 등지에서 대륙을 단위로 한 지역 예선을 치추구하는 세력들은 많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것이 프라이드의 시장 기반과 운영진을 이어받은 DREAM(이하 ‘드림’), 미국 격투기의 상징적 스타라 할 수 있는 킴보 슬라이스를 영입한 ELITE XC(이하 'EXC'), 공인된 탑랭커인 예밀레예넨코 표도르와 기존 UFC 헤비급의 스타였던 팀 실비아, 안드레이 아를롭스키 등의 영입으로 ‘헤비급 최고 단체’의 모습을 갖춘 Affliction(이하 ‘어플릭션’) 등이다. 그러나 2008년 하반기 불어 닥친 경기 침체는 이런 군소 단체들의 생존을 위협하였다. 드림은 부풀려진 대진표와 파행적인 경기 운영 등으로 이미 예전 PRIDE의 입지를 잃었고, EXC는 10월 20일 파산신청을 하였다. 어플릭션의 경우 7월 열렸던 Affliction 1 대회에서 대회 티켓이 매진되고 1만 4천명의 관중을 동원할 정도로 희망적인 모습을 보였으나(mmapayout.com 집계, cafe.daum.net/ssaumjil 재인용) 11월 예정되었던 2번째 대회에서 유료 티켓 판매량이 300장이라는 루머가 돌 정도로 저조한 흥행을 보였고 결국 잡혀있던 경기가 취소되기에 이른다. 2번째 대회의 저조한 흥행은 어플릭션의 상황이 걸린 흥행 카드인 표도르의 불참으로 인한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며 이는 앞으로 안정적인 대회 운영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또한 어플릭션 대표였던 토드 비어드의 범죄 행각들이 밝혀지면서 이는 북미에서의 사업 확장을 어렵게 하고 있는데, 이는 북미에서는 전과자와 함께 사업을 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 UFC는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10월 26일 치러진 90 경기에서 62만장, 91 경기에서 48만장)의 흥행 실적을 올렸으며 2009년에도 20회 이상의 이벤트를 기획중이다. 경기 수가 단체의 흥행이라는 점에서 UFC는 2009년에도 독보적인 단체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 UFC는 현재 무대인 북미, 영국을 넘어 필리핀, 한국 등지까지 진출할 것이라는 UFC 대표 데이나 화이트의 결과 현재 한국에선 ‘격투기=K-1’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프라이드 역시도 국내에 상당한 지지 기반을 두고 있었다. 격투기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크로캅, 표도르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정도이니 말이다. 이들은 정서적인 측면에서 동양적인 것에 부합하는 마케팅을 이루었다. 대표적으로 선수 존중, 등장 씬, 선수 소개 영상 등에서 그러한 모습들이 보인다.) 또한 프라이드는 K-1과 마찬가지로 한국 선수의 발굴과 영입에 힘을 쏟았다. 대표적으로 윤동식, 이태현 선수 등을 들 수 있다.두 단체의 이러한 활동의 결과로 국내에서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넓어졌다. 위의 두 단체와 달리, UFC의 현재까지의 한국에서의 흥행과 인식은 미미한 수준이다. 대부분의 대중들이 크로캅과 표도르는 알아도 UFC의 대표 선수들인 척 리델, 리치 프랭클린, 안드레이 아를롭스키 등등의 선수는 국내 마니아층에서마저도 그 지지 기반이 턱없이 얇았다.)UFC는 비단 현재까지 한국에서의 홍보가 아니더라도 한국 시장으로의 진입에 여러 가지 불리한 장벽들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무대이다. 상기한 것처럼 UFC는 4각형의 링이 아니라 8각형의 넓은 철장인 옥타곤에서 대회를 치르며, 옥타곤은 UFC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어두운 조명이 더해져 일견 투견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는 국내 시장 진입에 있어 큰 장벽이 아닐 수 없는데, 국내 대부분의 대중들과 K-1, 프라이드에 익숙해진 격투기 팬들은 선수를 투견처럼 보이게 하는 무대와 조명에 거부감을 가지기 때문이다(성민수, 07.06.22).두 번째 요인은 관중의 분위기이다. 이는 첫 번째 요소인 무대와 맥락이 닿아 있다. 미국의 관중 문화는 동북아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른 것이어서, 미국 관중들은 대개 선수의 타격 공방전과 피에 열광하며 교착적인 그라운드 공방전에서는 야유가 쏟아진다. 이 열광과 야유의 표현이 동북아의 문화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라, 관중의 야유 소리가 캐스터의 목소리를 덮어버국에서 진행되는 UFC의 경우 한국과 상당한 시차를 지닌다. UFC 역시 최대의 관중을 동원할 수 있는 7시 경에 이벤트를 하는데, 이 시각은 한국에서는 일요일 아침 10시경에 근접한다. 이는 UFC의 대중화에 상당한 걸림돌로 작용하였으며, 실제로 국내 마니아층은 이러한 요인 때문에 UFC를 꺼리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네 번째 요인은 문화적인 것이 아닌 경제적인 요소인데, 급증한 환율이다. 국내에서 UFC의 방영은 PPV가 아닌 방송사의 이벤트 수입으로 이루어진다. Superaction(이하 ‘슈퍼액션’)에서 이벤트를 수입하여 방영하는데, 급증한 환율은 국내 팬을 확보해가는 슈퍼액션의 입장에서 걸림돌로 작용한다.3. 월담시도이러한 장벽들에도 불구하고, UFC는 치밀하게 한국으로의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데이나 화이트는 인터뷰에서 UFC의 한국 진입을 상세하게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이석무, 08.11.06) 이유는 상기한 것처럼 한국 시장이 이미 잠재 차원을 넘어서 확실한 시장이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미 K-1과 프라이드가 한국 시장 진출에서 득을 본 바가 있으며 이 시기 형성된 마니아층의 포섭과 또한 잠재 대중에 대한 홍보는 상당한 수입이 될 수 있다. UFC의 한국에서의 시장 확대는 비단 현재의 수입원인 PPV 측면이 아니라도 슈퍼액션의 성공과 궤를 같이하는 윈윈전략으로 해석된다. 이에 UFC는 상기한 장벽들을 넘을 수 있는 다차원적인 ‘월담시도’를 계획 중이다.대표적인 월담시도는 선수의 차원이다. UFC가 보유한 세계적인 선수들의 홍보를 첫 번째로 볼 수가 있는데, 이미 국내에 상당한 마니아층이 확보된 노게이라, 크로캅, 브록 레스너) 등의 선수를 통한 단체 홍보 측면을 들 수가 있고, 과거 프라이드에서 행했던 수준을 통한 선수의 홍보를 들 수 있다. 현재 UFC의 슈퍼스타인 랜디 커투어, GSP, BJ펜 등의 선수들은 홍보를 통하여 과거 프라이드 선수들이 국내에서 가졌던 인식의 차원에 조금씩 도달하고 있다.거기에, UFC는 현재 한국의 슈퍼스타를적극적인 영입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외에도 데이나 화이트는 "구체적인 선수 이름은 지금 언급할 수 없다(계약성사 전까지는 비밀이다). 그러나, 분명히 진지하게 영입을 고려하고 있는 몇 명의 선수가 더 있고, 아마 그 들 중 일부는 아주 가까운 시일 내에 계약을 완료할 것이다"(같은 기사)라는 발언으로 한국 선수의 영입이 비단 데니스강 뿐이 아닌 다른 선수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임을 명확히 하였다.UFC의 또 다른 월담시도는 시차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벤트의 성공 전략은 시차이며, 시차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가 11월 16일 열렸던 UFC 91 대회에서 처음 있었다. 그것은 슈퍼액션 측에서 이벤트를 입수하여 과거 프라이드가 공략했고 K-1이 현재 공략중인 주말 저녁 시간대에 지연 중계를 하는 것이었다. 이번 시도는 시차라는 자연적 장벽을 넘어서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마니아층에서는 미리 경기가 열리는 시간대에 경기 결과를 입수한 것이라고 하겠다. 지연중계의 결과 마니아층이 대거 포진한 커뮤니티에서 본방송에 대한 시청 흥미를 잃어버리기도 하였고, 다음이나 네이버 등 뉴스에는 경기 직후 스포일러들이 터져 나왔다(사실 이것이 가장 큰 한계였다). 하지만 이런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시차를 넘어서기 위한 시도는 현재 마니아층에 포함되지 않는 대중들을 공략하기 위한 의미 있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4. 전망선수와 시차의 차원에서 진입장벽에 대한 월담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UFC가 월담할 수 없는 부분은 무대와 관중의 차원이다. UFC의 본토가 미국이며 한국 대중들이 접하는 이벤트는 미국에서 열린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UFC가 무대나 관중의 매너 차원에서 한국 대중들을 설득시키기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그러나 무대와 관중이라는 요소가 진입장벽이 되기에 한국 시장은 아직 블루오션이라 말하겠다. 선수에 대한 예우와 관중의 태도라는 것 이전에, 이미 프라이드와 K-1 등을 관통하는 ‘실전을 표방한 격투기’라는 것.
1. 도입청소년의 문화적 생산력의 향상과 구매력의 증가는 대중문화에 큰 회오리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청소년의 요구가 대중문화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청소년과 대중문화는 긴밀한 관계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으며, 마침내는 청소년이 없는 대중문화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청소년이 대중문화의 생산자와 소비자로서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청소년과 대중문화와의 관계를 알아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본 논문은 청소년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인 대중문화 수용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팬클럽에 가입한 학생들을 중심으로 청소년의 스타 문화 수용의 실태를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2. 스타에 열광하는 이유현대사회에서 대중매체의 영향력은 매우 증대되고 있다. 대중매체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대중매체에서 전달되는 내용은 일반 대중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원이 되고 있다. 대중매체를 통해 생산된 우상이 바로 스타이다. 21세기 들어오면서 청소년의 우상이 대중 스타로 전환되었으며 형태는 집단화되었다. 대중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스타의 일상과 생활 습관, 스케줄 등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대중스타에 열광하는 것을 손쉽게 한다.스타에 열광하는 청소년들은 스타 따라 하기를 열심히 한다. 스타의 옷차림과 말투, 헤어스타일을 따라하고 이들의 변화에 즉각 반응한다. 이런 모습은 청소년이 매체에서 보여주는 상품을 그대로 수용하여 따라하는 것은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청소년들에게 대중스타가 보여주는 정보를 어떻게 수용 하느냐에 따라 그들의 사회화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2.1. 그냥 좋다대중스타를 좋아하는데 그 이유를 하나로 꼬집어 분명하게 지적하기는 어렵다. 느낌이 좋고, 첫눈에 들어오는 멤버들의 춤과 노래가 한꺼번에 어울려서 좋다는 느낌을 형성한다. 그래서 스타의 총체적인 면들이 스타를 좋아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냥 좋다고 표현하는 중학생들에 비해서 고등학생이 되면 자기가 특정 스타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좀 더 분명하게 밝힐 수 있다.중학교 시기는 초기 서 벗어나 육체의 동적인 움직임을 수반한다. 팬클럽간의 경쟁적인 응원 열기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학업을 통해 성취할 수 없었던 다른 성취감을 얻게 해준다. 이와 같은 성취감이 스타라는 매개로 얻어진다고 하더라도 청소년들에게는 스트레스의 해소 방법이 된다. 대중음악을 듣고 가수에 열광함은 청소년들에게 육체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공간을 마련해준다. 그러한 공간에서의 육체적인 발산은 일탈적인 행동이 아닌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이 억압적이고 정적일수록, 비정규적이고 비일상적인 ‘스타의 열광하기’를 통한 스트레스 해소의 의미는 크다.2.3. 억압된 청소년들의 현실에 대한 대리만족청소년들이 느끼는 억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학업을 위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미루고 참아야하는 억압은 특히나 크다. 공부만 잘하며 다른 어떤 일이든 부모가 알아서 해결해주겠다는 정도로 공부 잘하는 것’이 청소년의 삶에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열심히 공부하기만을 바라는 부모, 공부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사회, 공부하는 것을 위해서는 어떠한 비인간적 대우도 용인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학교 분위기 등등은 청소년들에게 억압으로 작용한다. 공부를 잘하던 못하던 간에 공부 이외의 것에 열중하거나 시간을 보낸다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사회는 청소년의 학업 성취의 수준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모든 청소년들에게 공부만 할 것을 요구하고, 이런 분위기는 청소년들의 숨을 막히게 한다. 청소년들이 경험하는 좌절에서 음악으로 도피하고, 음악에서 표현된 내용들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시원스럽게 해결해 주었다는 환상을 갖게 해준다. 환상의 방법에 의한 억압의 해소라는 형태를 취하더라도 이는 청소년들에게 사회가 청소년들에게 억압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의 위한 방식이다(손승경 외(2001)).청소년들은 스타에 빠져 환상적인 대리만족을 구하고 있지만 그들의 부모는 이들의 열광을 청소년기에 거쳐 가는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생각한다. 물론 부모세대도 청소년들이 스타에 열광하는 현상이 하나의 반항의 형태라는 나와야하기 때문에 진학한 경우도 있다.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은 그것을 이룬 것으로 보이는 스타들을 역할 모델로 삼아 그들을 따라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이러한 청소년들의 생각에 대해 부모들은 부정적이거나, 자녀의 그런 역할 모델에 대해서 모르고 있다. 자녀들이 자신의 진로로 연예활동을 설정하는 것에 거부감이 많이 없어졌다지만, 부모세대에는 여전히 연예인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특히 남학생들의 경우에는 부모가 청소년 자녀가 스타에 열광하고 있는지 그 스타를 좋아함으로써 그와 같이 되려고 진로를 설정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한 인문계 고등학교 남학생의 어머니는 자녀가 기타를 배우고 음악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알지만 서태지를 좋아해서 서태지의 음악적 기준을 최고로 생각하고 서태지와 같은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그의 어머니는 자녀가 좋아하는 스타는 김희선이라고 알고 있다. 실업계 고등학교의 남학생 아버지도 자녀의 진로에 대해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한다고 알고 있지만 자녀는 드럼을 배우고 싶어 하고, 아버지의 반대로 음악을 계속하지는 못하지만 연예인을 호위하는 경호원이 되고 싶어 한다(이민희(1999)). 즉 자신이 연예인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연예인과 함께 생활하며 그 환경에 속하는 역할모델을 설정한다.2.5. 이성으로서의 스타스타에 열광하는 현상은 남학생보다 여학생에게서 심하게 나타난다. 왜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더 스타에 열광하는가?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현실에서의 성적이 억압이 더 심하기 때문에 스타를 성적인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기는 성적인 호기심과 욕망이 강하게 나타나는 시기이다. 남학생들은 스포츠와 같은 활동을 통해 육체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지만 여학생들은 이러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통로가 많지 않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성에 대한 이중적인 기준은 남학생보다 여학생에게 더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 비틀즈에 열광하는 소녀 팬들의 행동을 억압된 성적 에너지의 표출이라고 분석한 연구는 스한 상황에서 공부를 통해 성취감, 가치감을 느낄 수 있는 청소년들은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인정되는 스타가 자신을 알아준다는 것은 청소년들의 자족감을 높이는 좋은 방법이다.널리 알려진 스타를 개인적으로 만나 자신도 그와 동일한 지위에 속한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것, 스타가 나에게 잘 대해 주는 것은 나의 중요성을 높여 주는 사건이라는 느낌, 또한 다른 누구도 모르는 유명한 스타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은 내가 이들 스타와 매우 가깝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청소년들은 누구보다도 스타에 대한 정보 모으기에 열심이며, 스타와 직접적인 접촉을 누구보다도 많이 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대중가수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은 대중가수로부터 개인적인 접촉이나 인정을 얻기가 쉽다. 게다가 망이 잘 알지 못하는 그룹에 대한 정보나 접촉은 이들 청소년들이 남이 하지 못하는 것을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 중에 하나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스타에 대한 정보는 희소성을 갖기가 어렵다. 아직 over-ground로 나와 활동하지 않는 대중가수에 대한 정보는 그 자체도 신선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므로 이를 통해 자신의 가치나 자족감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3. 청소년들의 스타 따라잡기스타를 좋아하는 청소년들이 스타 따라잡기를 하는 유형은 매우 다양하다. 스타에 열광하는 정도와 몰입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다. 단지 음악을 듣고, 음악을 좋아하고 그들의 콘서트가 있으면 1년에 한두 번 참여하는 정도로 스타를 좋아하는 경우에서부터 학교도 빠지고,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거의 매일 스타를 쫓아다니는 정도에 이르기까지 그 폭은 매우 넓고 다양하다.우선 음악 자체에 대한 관심을 쏟는 수준의 스타 따라잡기의 유형의 청소년들은 스타의 현재의 음악뿐만 아니라 과거의 음악에 대해 완전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스타의 기호나 일상생활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따라잡기의 정도가 심한 청소년들은 모든 유형의 행위들을 다 하고 있다.3.1. 음악 듣기, 음반사기, 콘서트에 가기좋아하는 스타의 음악을 따라 부르고 그들이 나오는 콘서트에 가는 것은 기본적인 것이다. 스타에 열광하는 정도의 차이에 따라 얼마나 자주 음악을 듣고, 콘서트에 가고, 얼마나 많이 음반을 사느냐는 다르다. 음악을 듣고 따라 부르고 하는 정도는 부모들에게도 용인이 되나 학교를 빼먹거나 거의 매일 콘서트에 간다면 부모와의 갈등이 예상된다.3.2. 스타의 사진이나 포스터 수집스타의 음악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스타를 성적 대상으로 보고 성적인 표현을 한다면, 애인의 사진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 현실 속에 애인이 아니기 때문에 커다란 사진을 가지고 다녀도, 커다란 포스터를 자기 방에 붙여도 허용될 수 있다. 현실 속의 이성이라면 이런 행동의 하는 것에 대한 제약이 받겠지만 스타에 대한 이런 표현을 스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규범적인 행위라고 인정된다. 누구누구의 팬이라는 명칭에 알맞은 행위는 사진이나 포스터를 갖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상업화된 판매 경로는 스타의 사진이나 포스터를 구하기 쉽게 만들었다(강현두(1998)).3.3. 정보 수집스타가 자신들의 애인이라면 스타에 대해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스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타가 오늘은 무엇을 할 예정인지, 스타가 누구를 만나는지 등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며, 스타의 현재 뿐 아니라 과거까지도 관심거리가 된다. 이를 통해 남보다 더 많은 정보, 혹은 더 신빙성 있는 정보를 알고 있다면 자신과 스타와의 관계는 특별한 관계가 된다. 스타를 성적 대상으로 생각하는 청소년들에게 스타와 특별한 관계가 된다는 것은 애인관계처럼 해석된다. 환상 속의 스타이지만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실재적 관계인 것처럼 느껴진다.3.4. 팬클럽 활동팬클럽 활동에서도 여학생들의 적극성이 두드러진다. 팬클럽 구성원의 다수가 여학생들이며 여학생들이 팬클럽 활동에 주도적이다. 팬클럽을 공개적으로 결성하고 단결력다.
기호품의 역사를 통해 본 유산자와 무산자1. 문제 제기 : 기호품의 변화와 사회의 재구조시대가 변화한다는 것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부분에 있어 전반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전반적인 부분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등의 다양한 영역들이 포함된다. 하부 구조적 수준에서부터 시작되는 변화는 정치, 사회를 아우르고 이는 종국에 가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자체를 뒤바꾼다. 이러한 변화는 특히 소비품의 영역에서 그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본 리포트에서는 방대한 기호품 변화의 역사 중 산업 혁명기에 나타났던 기호품의 변화에 주목한다. 여기서 선택하게 되는 범주는 ① 근대 부르주아의 근면함의 상징인 ‘커피’와 ② 근대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주인 ‘브랜디’이며, 이를 통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산업 혁명기의 사상, 문화적 차이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본문은 전반적으로 의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여기에 세계적 차원에서의 분석을 덧붙인다.2. 커피의 유행과 부르주아중세 유럽에서 유행했던 음주 관행은 종교 개혁의 절제 문화를 거치면서 퇴색하게 되는데, 신교 진영에서 금주 문화를 위해 선택한 교두보가 바로 커피였다. 여기서 19세기의 역사가 쥘르 미슐레는 커피가 전시대를 각성시키는 역사적 사명을 완수한다고 보았다.) 또한 미슐레는 “흥분된 성적 감정 대신에 정신을 자극하는 반색정적인 커피”에 대하여 언급한다.) 각성제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성적 충동을 억제하는 커피는 그리하여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의해 육체의 살을 떼어 영혼에게 준다는 영육(靈肉)의 음료로 사랑받게 된다. 합리주의가 뿌리박힌 시대인 17세기의 부르주아적 인간들은 이데올로기적 측면에서 전시대의 인간들과 명확하게 구분되며, 커피는 이러한 합리주의 경향에 가장 잘 맞는 음료인 것이다. 근대화와 함께 부르주아적 혹은 자본주의적 근면과 성실의 상징이 된 커피는 17, 18세기를 거치며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갔으며, 현재에 이르러서 사회의 전 계층에서 소비되는 음료가 되기에 이르렀다.)초기 커피의 등장이 단순하게 이런 자본주의적 합리, 효율성에 입각했다고만 볼 수는 없게 하는 것이 홍차의 존재이다. 홍차는 커피보다 많은 카페인을 함유하고 있으며, 그래서 커피보다 좋은 각성 효과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홍차는 대표적인 동방 수입 물품의 하나로써 구체제의 기호품이었고, 근대 부르주아들이 커피에 주목하게 된 것은 단순히 각성 효과만이 아닌 구체제와의 차별성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그만큼 커피가 구체제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함의를 그 뿌리에 내포하고 있으며, 각성이라는 신체적 효과만이 아닌 자본주의적 가치라는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상징함을 보여준다.3. 브랜디의 유행과 프롤레타리아트근대화 이전의 유럽에서 주요하게 소비되는 주류는 맥주였다. 맥주는 근대 이전의 주요 생산 작물 중 하나였던 보리를 그 원료로 하고 있으며, 가공이 쉽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한 면에서 맥주는 하층, 나아가 사회 전체의 소비문화를 대표하는 주류였다.주목할 점은 초기 근대의 작업장 문화와 맥주의 연관성이다. 근대 초기의 작업장 풍습은 지금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그것은 특히 노동 규율의 영역에서 그러하다. 근대 초기의 작업장에서 노동 규율의 수준은 매우 낮았으며 그것조차도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이 태반이었다. 이것은 중세와의 단절이 명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근대 이전의 공업은 가내 수공업을 기반으로 하였으며, 이는 주거와 작업장의 분리가 모호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작업은 주거 생활의 연장이었으며 자신의 공간 속에서 강력한 노동 규율이라는 것은 성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근대 초기 공장제로의 변화와 함께 이루어진 노동과 작업장의 분리는 이런 전근대적 풍습이 남아있었던 탓에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이것과 맥주의 소비가 궤를 같이한다. 맥주는 노동계급의 식생활의 일환으로써 존재하였으며, 알코올의 함유량이 낮아 술자리가 길어진다. 이는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노동 생산성의 가장 큰 적이었다.브랜디의 등장은,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러한 점에서 환영받을 일이었다. 16세기 단지 의약품으로만 활용되던 브랜디는 17, 18세기 개인의 원자화를 거치며 빠르게 사회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브랜디의 알코올 함유량은 당시 맥주의 10배로, 이는 그만큼 빨리 취하고 술자리를 빠르게 끝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또한 브랜디는 맥주와는 달리 작업장 안에서 작업과 함께 섭취할 수 있는 주류가 아니며, 이는 역시 브랜디의 알코올 함유량에서 기인한다. 브랜디의 등장은 작업장에서의 음주 문화를 몰아내는 데 1등 공신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역시 근대화와 함께 전반적으로 이루어진 작업장 내에서의 규율 강화와 닿아 있다. 근대화가 진전될수록 작업 규율은 강력해졌고 노동자는 이제 일터를 더 이상 일상의 연장이 아닌 일상과 분리된 활동으로 느끼게 되었다. 이는 높은 작업 능률을 지닌 공장제가 설립하는 데 필수 요소였다.
Ⅰ. 모든 개체는 죽는다.죽음[death]생명활동이 정지되어 다시 원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생물의 상태로서 생(生)의 종말을 말한다. 고등동물에 한정하면 그 개체를 구성하는 전조직(全組織) 세포의 생활기능의 정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죽음의 종말은 심장고동과 호흡운동의 정지이다.위에 쓰여진 것은, 현재 국어사전)에서 죽음에 대해 내린 정의이다. 생명 활동이 완전히 정지하여 복구불능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죽음이라 정의내리고 있으며, 유감스럽게도 이 상태에 이르는 것을 피해 간 생명체가 있다는 사실이 보고된 적은 없다(1800년을 살다가 신선이 되었다는 등등의 말들이 있긴 하지만 논외로 치겠다.). 즉, 죽지 않는 생명체는 없다. 죽음의 상태에 돌입한 유기체는 ‘복구불능’의 상태로 자신을 소진하게 된다. 즉, 그 유기체 자체는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생명체 중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체는 없다. 이 명제에서 인간이라는 종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인간은 살아가면서 혹은 선천적으로 터득해가게 된다. 다정하게 지내던 사람이 죽음에 직면하면 인간은 그 사람의 삶이 끝나고 영원한 이별이 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임종의 생리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뇌를 목격하면 죽음의 원인에는 상관없이 죽음의 무서움에 몸서리치게 된다. 죽은 사람에 대한 애정이 깊을수록 슬픔도 깊다. 그리고 인간이란 제아무리 발버둥 쳐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그러나 죽음이 언제 닥쳐올지 모르고 저승에 가서 돌아온 사람이 없으므로 죽음의 저편에 무엇이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그리하여 인간은 죽음의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같은 이별 ·비탄 ·공포 ·불안 등은 살아남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죽음의 현상에 대해서 갖는 체험이지 결코 죽은 사람 자신의 체험 그 자체는 아니다.)위와는 조금 다르게, 인간이 날 때부터 무의식 속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는 말도 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생명체가 자신의 유전자를 복사하한 조류(藻類)들의 세대부터 형성되었던 것이므로 수십억년의 진화과정을 거쳐 모든 인류 개체가 가지고 있고 거부할 수 없는 태고유형(Archetype)의 하나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즉, 융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이라는 개체는 태어나기 이전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것을 무의식 속에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어찌되었건,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것을 피하고자 한다는 사실은 뒤집어질 수 있는 성질의 명제가 아니다. 이 명제에 의해 지금까지 기나긴 인류의 역사에서 수많은 신화와 전설, 민담들이 생겨났다. 지금 세계에 존재하는 무수한 고대 신화들은 공통적으로 사후세계를 가정하고 있다. 이집트의 신화에서는 태양신 라(Ra)의 배를 타고 태양 너머로 항해하는 사후세계를 그려냈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망령이 되어 배를 타고 네 개의 강을 건너는 장면을 그려냈다. 고대 북구 유럽의 신화에서는 죽은 전사들의 낙원인 발할라(Valhala)를 설정하며, 중국 신화에서는 죽어서 옥황상제에게로 가는 장면을 말하고 있다. 이 신화들은 공통적으로 죽은 후에 ‘영혼’이라는 불멸의 상태가 되는 것을 가정한다. 즉, 공통적으로 인간이 죽음에 대해서 가지는 두려움 그리고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불멸에 대한 욕망을 우리 생애에 영원한 미스테리로 남을 수밖에 없는 사후를 불멸로 가정함으로써 표현하고 두려움을 이겨내고자 한 것이다. 현대 종교들 또한 사후의 불확실성을 자신들만의 목소리로 가정하고 엮어내고 설파하며 그런 의미에서 현대 종교들은 고대 신화들과 같은 논리와 도식을 가진 그 연장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종교들에 기대고 사는 사람은 현재 인구의 대다수이다. 즉, 현대인들의 가슴 속에 자리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멸에 대한 욕망은 수천년, 수만년 전의 조상개체들과 똑같으며 현대의 역사 또한 죽음에 대한 저항과 불멸의 염원에 대한 추구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Ⅱ. 죽음을 피할 수 있다 - 생명공학의 미래.‘죽음은 피할 수 없다’. 이것은 뒤집어 질 수 없는, 말 그대로 절대명제이며 이 명설화의 메인 스토리 중 하나인 길가메쉬 서사시의 후반 부분은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던 초인 길가메쉬(Gilgamesh)가 마지막 적인 죽음을 이기기 위해 불로초가 피는 삼천년에 한 번 열리는 섬 딜문(Dilmun)을 향해 여행하는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신화와 전설이 아니더라도, 생태학적 입장에서도 인류는 - 종의 테두리를 넘어 모든 종은 지금까지 불멸을 추구해 왔다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있다. 종은 자신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복제하고 싶어 하며, 그 이유는 지상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겨둠으로 인해 자신의 후손 개체들의 속에서 자신이 영생하고 있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물의 삶과 서로간 그리고 자연에 대한 투쟁은 모두 더 우수한 자손 형질을 얻고 자신의 유전자를 더 널리 퍼뜨리기 위한 활동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엔 인간도 예외라 할 수 없다. 즉, 인간의 모든 역사가 자신들의 유전자를 더 멀리 퍼뜨리기 위한 활동들의 부딪힘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이 내용은 21세기 들어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 하나인 ‘이기적 유전자’에서 저자의 기본적인 입장이기도 하다.).불멸을 추구하는 이야기들과 신화들 그리고 생태학적 입장에서의 불멸은 그 내용은 달라도 하나의 공통된 가정을 두고 있음은 확실하다. 그것은 ‘지금까진’ 절대적으로 참이었던 명제 - 바로 하나의 ‘개체’는 반드시 소멸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상에 존재했던 생명체 중죽음을 피해간 개체는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 한 것이고 불멸을 추구했던 것이며, 그 불멸의 추구를 생태계의 역사 나아가 인간의 역사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이 절대적인 명제는 더 이상 참이 아니게 되었다.하나의 유기체가 복구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게 되는 방법은 참으로 다양하다. 사고로 인해 신체의 일부분 또는 전체가 훼손될 수 있고, 특정 질병으로 인해 유기체의 유지 자체가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거나 유기체의 유지에 필수적인 내부 기관들이 손상될 수 있으며, 유기체가 스스로를 유지할 수 있는 수명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그리도 바라오던 ‘불멸’인 것이다.Ⅲ. 과연 그것이 장밋빛 미래인가 - 아일랜드를 기준으로.영화 아일랜드(The Island, 2005)는 생명공학이 제시하는 바로 그 장밋빛 미래, 인간의 불멸을 소재로 삼고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일랜드가 제시하는 장밋빛 - 불멸을 손에 담은 미래는 그렇게 밝아 보이지 않는다. 아일랜드는, 인류가 불멸로 나아가기 위해 지금 닦고 있는 기술적인 면들을 천천히 검토하면서 그것에 의문부호를 제기한다. 현대에 있어 ‘인간복제’는 단연 최대의 화두라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인간복제가 인류 - 모든 생명체가 지금까지 극복하지 못했던 죽음의 장벽을 넘게 해준 방법이기 때문이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생명체가 불멸의 개체가 아니라는 사실은, 인류에게 다른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해주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은 불멸의 개체가 아니기 때문에 인생은 한정돼 있을 수밖에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인생이란 ‘가치’를 가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유한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 유한한 삶을 더 ‘열심히’ 살고자 한다. 인간이 사는 것은 자신의 유한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유전자를 지상에 뿌리는 것이라는 생태학적인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인간의 모든 활동이란 자신의 유한성을 극복하기 위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모든 활동들이 가치있음은 인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전제로만 성립한다. 또한, 인간의 짧은 삶이 가치를 가진다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인권’이라는 사상으로 이어졌다.그리고 지금, 인간은 이러한 유한성을 뛰어넘고 불멸로 나아가기 위해 인간복제라는 방법을 사용하려 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지금 불멸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은 위의 ‘인권’이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극히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영화 아일랜드의 주제라고 말할 수 있다. 아일랜드에서는 인류의 인간복제 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를 상상하고 있다. 여기서 다시 돌아가 인간이 어떻게 유기체가 재생할 수 없는 상태로 나아가는 것을 뛰어넘었는수 있고, 배아줄기세포를 통해 배양해 낸 인공 장기로 손상된 내부 장기를 손쉽게 교체할 수 있으며, 유기체가 스스로 붕괴한다는 극한수명 120년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들도 개발 중이다. 이것이 위에서 든 생명공학이 제시한 장밋빛 미래다.아일랜드에서 이것을 그려내는 구체적인 모습은 참으로 끔찍하다. 아일랜드에서, 인간복제를 통해 사람들은 자신과 똑같은 복제인간을 만들어내어 그들 자신이 복제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는 특수한 구조물 속에 가두어두고 끊임없는 정신교육을 가한다. 그리고, 필요할 때마다 그들을 ‘사용’한다. 사고로 인해 신체의 일부분 또는 전체가 훼손되었다면 복제인간들의 신체의 일부분 또는 전체를 이식한다. 유기체의 유지에 필수적인 내부 기관들이 손상되었다면 복제인간의 내부기관을 떼어다 사용한다. 여기서, 복제인간들은 ‘재료’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즉, 복제인간들은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는 단지 하나의 도구일 뿐이며 그들의 ‘인권’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무시되는 것이다.Ⅳ. 복제의 규제 그리고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제도와의 충돌들.아일랜드는, 이렇게 유전공학을 통해서 인권이라는 것이 어떻게 유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수많은 단체들이 생명공학 기술이 발달되는 것에 반대를 하고 연구 자체를 폐기하라고 말한다. 수많은 종교인들은 생명공학의 연구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배아는 그 자체도 생명이라고 말하며, 그런 차원을 떠나서 아일랜드가 그린 것처럼 생명공학을 통해서 생명체가 가지는 가치가 어떻게 훼손될 수 있는가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고 이 땅에 생명경시풍조가 창궐하게 될 암울한 미래를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가지는 생각 속에 생명공학의 발전이란 일정한 부정적인 수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생명공학이 가져다 줄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다. 아니, 정확히 말해 생명공학의 부정적 측면을 외치는 사람들 또한 그들의 가슴속에 생명공학이 가져다 줄 불멸로의 도약에 대해 일정한 기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