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치질 하는 마음과 손, 그 사이에 ‘심장’이 있네Hammering ManJohnathan Borofsky2002steel, aluminum, motor1000×49×2200(H)cm1. 누가 내 마음을 옮겼을까작년 한 해, 휴학을 계기로 서울 시내의 곳곳을 둘러볼 기회를 많이 가졌다. 종로와 광화문 일대를 비롯해 근처 이름 난 곳은 대부분 방문 했다. 고궁에 가서 궁궐지킴이의 안내를 받기도 했고,시립 현대 미술관에서 서울사진 아카이브를 보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삭막한 시내 한복판에 이렇듯 문화공간이 조성되어 있고, 전시회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어쩌면 도심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혜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이런 문화 체험을 하는 데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전시관이나 명소 등은 적긴 하지만 입장료를 내야 했고, 둘러보는데 소요되는 시간도 만만치 않았다. 배움의 즐거움을 좇다가 금새 피곤하거나 지루해지곤 했다.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전시된 ‘80일간의 세계 일주’ 사진전의 경우, 무료로 관람하는 행사였지만 며칠 밖에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었다.건물 외곽에 설치된 조형물이 좋아진 것은 그러한 한계를 뛰어넘는 ‘개방성’과 ‘영구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굳이 작정을 하고 가서 작품을 보기 위해서 표를 끊을 필요도 없고, 늘 그 자리에 붙박이처럼 세워져 있으므로 오가며 편하게 보면 되는 것이다.큰 건물에 달린 조형물 중에서 흥국생명 신사옥 앞에 서 있는 ‘망치질 하는 사람’을 택한 가장 큰 이유는, 이 작품이 그 거대한 규모로 인해 두드러져 보일 뿐만 아니라 다른 조형물이 갖지 못한 ‘역동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한매일신보사 앞의 이나 파이낸셜센터 앞에 세워진 등은 늘 보면서도,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아무런 감흥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도 미술 작품이었다는 것을 이번에 자료조사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러한 단순 비교가 아니더라도 작품 자체가 주는 매력은 알면 알수록 증폭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2. 작품, 밖에은 대체로 처음부터 건축물의 특성에 맞춘 계몽적인 작품과 유명 작가의 가치를 존중한 순수작품의 미술장식품 대용품화로 크게 나뉜다. 이 작품은 후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를 보았을 때 누군가의 유일무이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바젤, 미국의 LA와 시애틀 등에 이어 세계 7번째 작품이다. 물론 그 중 가장 규모가 큰 작품이며, 국내에서 작가의 진두지휘하에 제작된 작품으로는 ‘유일’하다고 할 수 있겠다.제도를 뛰어 넘어건축물을 지을 때 미술품을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는 것은 수업시간을 통해 처음 들었다. 이 ‘건축물 미술장식 제도’는 1984년 서울시에서만 시행되다가 1995년부터는 전국적으로 의무화 되었다고 한다. 삭막한 도시 경관을 예술작품으로 꾸민다는 생각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또한 흥국생명의 신사옥 앞에 세워져 있어 이러한 의무 이행의 결과일 거라고 생각했다. 뛰어난 작가의 작품을 들여오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을 들였을 것이고(건축비의 0.1~1%라는 제한에도 적합해 보인다), 건물 앞에 상징적으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건축비의 제한과 심사라는 법적 의무사항과 관계 없이 별도로 설치되었다고 한다. 작품 주문자로 알려진 일주학술문화재단은 거리미술에 대한 훌륭한 사회적 서비스 정신을 보여준다고 하겠다.이 조형물이 설치될 때, 한 큐레이터는 자조적이지만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한국에서 심사를 했으면 이 작품은 아마 떨어졌을 것이다.” 이는 법적 의무조항 때문에 국내에 수준 낮은 조형물의 설치되고, 이와 관련된 커미션과 리베이트 관행이 오가는 현실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한다.J. Borofsky와 Hammering Man이미 설치된 작품에 있어서 감상은 작품을 바라보는 감상자의 몫이지만, 그것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는 것은 작품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준다는 데서 그 의의가 있다. 다음의 글은 그가 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말해준다.는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하는 일하는 사람의다’고 말하고 싶다.’는 1979년 Paula Cooper Gallery의 설치미술의 일부분으로 사용된다. 작가의 처음 생각은 많은 를 만들어 세계 곳곳의 각각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망치질을 하게 하는 것이었다. 오늘날 는 나무로 제작되어 실내에 설치되어 있는가 하면, 다양한 지역에 설치된 거대한 철로 만들어지고 있다. 단순한 작품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하나로 아우르고자 하는 작가의 생각을 전하는 숭고한 메신저로서의 임무까지 맡고 있는 것이다.3. 작품, 그 안을 해부하다.작품의 상징작가의 일련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대표적 상징은 ‘불안, 꿈, 고통, 행복, 폭력, 압박, 탈출’ 등이다. 작가는 ‘이러한 상징을 통해 예술이 계속되는 사회적 비행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상황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권은희는 그의 논문에서, 가 상징하는 것이 현재사회의 저임금노동자이며 자동화 혁명 속에서 노동의 대가를 충분히 지불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주의를 인식하게 한다고 말한다. ‘조립라인 노동자들에 대한 존경의 의미도 포함’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제한적인 해석에서 조금 확장해 나가면 일하는 모든 사람, 즉 우리의 자화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작품이 상징하는 바는,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이 설치된 2002년에 쓰여진 다음의 신문 기사들을 통해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거인의 망치질 동작은 일에 대한 인간 본연의 시선을 극명하게 잡은 것’(6월 20일자 한겨레)이라는 말에서는 상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 본연의 시선’은 해석에 따라, 고통일 수도 있고 행복일 수도 있으며 압박이거나 탈출하고 싶은 대상도 되기 때문이다. J. Borofksy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하늘에 살면서 인간들에게 선한 일을 행한다는 착한 거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고 한다. 이에 주목한 동아일보는, ‘하늘에 대한 경외심의 발로이자 일의 숭고함에 대한 찬사’(9월 2일자)라고 말하고 있다. 즉, 일하는 것이 기쁨이자 행복 그 는 핵심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역동성의 중심엔 모터를 이용한 움직이는 팔이 있다. 끊임없이 망치질을 하고 있는 팔은 무엇을 상징하는가.이 작품을 처음 본 것은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마침 가 설치된 건물 지하에서 영화를 관람하고 나왔기 때문에 ‘쉴 새 없는 망치질’은 기계화된 인간의 혹은, 퇴근하지 못하고 일하는 불쌍한 현대인을 대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묵묵하게 일하기에, 현대인의 고독을 상징적으로 형상화 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다음엔 낮에 작품을 보게 되었다. 그것도 맞은 편 건물에서 거대한 를 보는 순간, 뿌듯함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남들도 일하는 시간에 열심히 일하고 있었기 떄문이다.일상에 지친 직장인이 를 보면서 근로 의욕을 돋우는 장면을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렇듯 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서도 작품은 다르게 보일 수 있다.4. 작품, 속 마음을 털어 놓다.보편적 주제의 발현보로프스키의 작품은 사람을 이야기한다. 는 노동은 신선한 것이라는 그의 철학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노동하는 사람에 심취했다고 말한다. 그는 “내 스스로 움직이는 어떤 육체적인 일을 했을 때 항상 만족스러운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다”라고 했다.인간이라면 누구나 일을 한다는 점에 있어서 그의 작품은 평범한 일상 속의 우리를 표현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 일이라는 것이 거창하거나 범접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도 작품과 감상자와의 거리를 좁혀주는 요소가 된다.‘노동’이라는 주제는 비단 의 노동자에서 뿐만 아니라, 나 등에서도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다. 현대인들은 이러한 작품을 통해 일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작가 정신 구현작가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작품을 이해하는 폭은 넓어질 수 있다. J. Borofsky의 기본 사상은 ‘예술은 정신을 위한 것’이라는 사상과 ‘All is One’이라는 개념이다. 작가는 동양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며, 일상생활과 정신적 가치를 통합시키는 것을 지향한다분명히 밝혀 관객이 자신의 진의에 쉽게 다가가도록 하고 있다.꿈의 세계 확장공공미술작품에 있어서 대중들에게 공감을 얻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다행히 의 경우는 리처드 세라가 겪었을 만한 철거 요구를 받지 않았다. 인터넷 상에 올려진 많은 사진과 관련 글에서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발견되지 않았다.이러한 이유를 작가의 긍정적인 생각이 담긴 일련의 작품 세계에 두기로 한다. 그의 작품은 ‘실험 정신’-가끔 무모하거나 받아들이기 힘든-으로 가득 차 있지만 새롭고 신선한 ‘꿈’을 창조하기도 한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이나, 국제화랑의 는 실험정신을 가지고 있다. 조각에 ‘음향’을 도입하는가 하면, 조각이 지붕 위에 올라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공간을 다시 보게 한다. 공간과 사람을 꿈꾸게 한다. 또한, 같은 제목의 작품은 앞으로 작가가 펼칠 ‘꿈’의 행보를 주목하게 한다.공간 구성의 벽를 사전 정보 없이 보게 된다면 못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아마 덩치에 비해 터무니 없이 작은 공간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에 대한 안목이 부족한 행정당국이 양해해 주지 않아 건물에 바짝 붙여 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전시되는 모든 공간을 활성화 하고’, ‘모든 공간을 포함하는 총체적 공간을 이루어’ 내는 J. Borofsky 작품의 특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그만큼 보는 사람들도 이 작품을 여유 있게 관람할 권리를 박탈 당하고 가지고 있어야 할 공간을 갖지 못하고 세워진, 미완성 작품을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5. 누가 에게 망치질을 하는가하나의 좋은 작품이 공공미술로서 세워져 일반인의 시야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과정이 따르는가를 알 수 있었다. 훌륭한 사상을 가진 작가와 그 정신이 투영된 작품, 그리고 그것을 볼 줄 아는 제도를 뛰어 넘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 이후에 이것을 설치하는 데 있어서 당국의 ‘방해’가 아닌 협조가 절실하다는 것도 더불어 알았다.예술은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거리의 예술이라면 더욱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