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 Du-Novy 장력계를 이용한 용액의 표면장력 측정Object : Du-Novy 장력계를 이용하여 용액의 농도에 따른 표면장력을 측정할 수 있다.Theary1. 표면장력(surface tension)액체의 표면장력은 같은 분자 사이에서 서로 당기는 힘에 의한 응집력(cohesive force)과 서로 다른 성질의 분자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 즉 부착력(adhesive force)에 의한 성질이다. 유체 내부에 인접한 분자와 분자 사이의 응집력이 같은 분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표면 근처에서는 공기와 액체분자 사이의 응집력보다 액체분자들 사이의 응집력이 크므로 합력은 액체의 안쪽으로 향하여 작용한다.
프리다 칼로처음 보기에는 다소 끔찍해 보이는 그림, 부서진 기둥이라는 작품으로 프리다 칼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우연히 접하게 된 작품으로 호기심이 생겨 작가에 대해 찾아 보았는데 대부분의 그녀의 삶을 표현하는 많은 글들의 키워드는 고통이었다. 다른 작품들을 보니 비교적으로 부서진 기둥이라는 작품이 프리다 칼로의 많은 자화상들 가운데에서 육체적 고통을 여실히 보여주는 그림이었고 또 그녀의 고통을 표현한 그림들 가운데에서도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그림이 아니라 그녀의 삶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바로 이해하기 쉬운 그림이었기에 프리다 칼로에 대한 이미지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게 육체적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로 남았던 것 같다.사실 육체적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그 자신도 힘들지만 그 주변의 사람들도 함께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타인의 고통은 듣고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할지라도, 공감한다 할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결국은 내가 그 고통을 직접 겪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고통을 듣는 것도 보는 것도 지치고 질리게 된다.그러나 고통을 그림으로 그려내니 대부분 그림의 주제를 자신의 고통으로 삼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프리다 칼로 자신의 고통을 계속 듣고 보게 함에도 수 십 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고통에 공감을 하며 그녀의 그림을 통하여 오히려 힘을 얻는다. 프리다 칼로의 작품은 이처럼 예술의 이상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에 꾸준히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영화를 통해 자세히 알지 못하였던 프리다 칼로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이 그렇게 강렬할 수 있을까 싶다. 그녀의 고통은 사고로 인한 육체적 고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한 편의 영화 속에 프리다 칼로의 삶을 전반적으로 담았지만 그녀의 삶의 한 사건, 한 장면만으로도 주제를 삼아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남들에게는 쉽게 허락되는 것 같은 건강, 사랑, 아이 그 무엇도 그녀가 평생 진정으로 원하던 것은 결국 얻지 못한 삶을 산 것 같다. 그녀는 생전에 많은 예술가들, 평론가들에게도 작품을 인정받고 루브르에서 작품 한 점을 사들이는 등 화가로서의 명예를 누렸지만 병상에서는 그 지루함, 고통을 달래기 위해서 그림을 그렸고 디에고 리베라의 아내로서는 디에고가 화가로서 뉴욕에서도 명성을 누릴 때 내조에 더 힘썼던 것 등을 보면 화가로서의 성공이 그녀의 궁극적 목표와 기쁨은 되지 못했을 거 같다. 개인 전시회를 열었던 기쁨보다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기쁨이 그녀에게는 더 크지 않을까.영화를 보면 프리다 칼로의 삶이 연대기도 흘러가면서 그녀가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자신을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는 프리다 칼로의 말처럼 영화도 프리다의 삶에 집중하여 흘러가기 때문에 자신의 자화상 그림이 대부분 나왔으나 작품을 찾아보았을 때 인상 깊게 남은 것은 ‘도로시 헤일의 자살’이다. 나는 이 그림이 그녀의 성격과 내면을 잘 표현하는 그림인 것 같다고 생각한다. 추모를 위해 그림을 의뢰한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그러한 이미지으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그림을 의뢰한 루스 베네딕트의 경악했을 표정이 짐작할 만 하다. 분명한 목적이 있는 의뢰 받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보다 자신의 영감이나 느낌을 더 표현한 그 성격이 대단하게 여겨진다. 아니면 프리다 칼로의 특유의 표현력을 볼 때 도로시 헤일의 자살에 대해 이 그림에 표현한 이미지 외에 다른 이미지는 떠올릴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림을 그릴 당시 자살에 대해 프리다 칼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오버 더 레인보우.영화에서의 배경음악의 대부분이었던 노래.왜 나는 날아갈 수 없을까라고 묻는 가사가 나오는데 이 가사가 병구의 마음을 대신 한 가사가 아닌가 싶다.어릴 때 눈앞에서 보았던 아버지의 죽음, 고등학생 때 저질렀던 살인 미수죄, 교도관에게 맞아 죽은 사랑하던 여자, 마지막으로 현재 가장 큰 고통의 원인인 병실에 누워 계신 어머니. 어릴 때부터 쌓여 온, 강만식이 말하기를 실험을 위해 유전자 구조를 약하게 하기 위한 불행이었다던 그 고통들 때문에 병구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그렇게 고통스러운 현실인 지구를 병구가 지켜야 하는 이유는 뭘까.단순히 네가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 때문일까?병구가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하룻밤을 자신의 집에서 묵은 한 형사에게 알려 줄 정도로 병구의 외계인과 외계인의 지구 침략에 대한 믿음은 강하다.지금까지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이던 것도 모두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지켜야 한다는 핑계를 가지고서였다. 그러나 말 그대로 핑계일 뿐이다.여느 연쇄 살인범들처럼 병구는 불우한 시절들을 보내왔고 그에 대한 고통을 병구는 이렇게 말한다. ‘고통이라는 건 절대로 익숙해질 수가 없거든.’절대 익숙해 질 수 없는 고통을 해소할 방법에 대한 핑계를 병구는 어머니의 말씀으로부터 찾았을 뿐이다.외계인에 대한 믿음은 그냥 현실도피가 아니었을까. 그냥 이 현실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구멍은 병구가 강만식의 작은 구멍을 통한 탈출시도를 쉽게 막은 것처럼 쉽게 막혀버린다. 구멍은 그냥 구멍일 뿐이다.그렇게 치밀하게 납치를 준비 한 병구는 마지막 자신의 생각을 읽은 강만식의 말에 혼동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기까지 한다. 자신이 어쩔 수 없던 고통, 결국 병구는 그 고통을 준 당사자에게 죽임까지 당하고 만다.그러나 영화에서 형사들이 피해자였던 강만식만 챙기고 병구나 순이의 시신을 단순히 치울게 있다고 말하는 부분을 통해 병구의 죽음이 하찮게 여겨지게 한다.
누가 전기 자동차를 죽였는가1996년 캘리포니아에서 100년 전 석유 자동차의 편리함에 밀려 사라지게 된 전기 자동차가 GM에 의해 부활하였다. 점점 대두되고 있는 석유 자동차로 인한 환경문제, 특히 스모그로 인한 문제를 없앨 수 있는 전기 자동차가 개발 된 것이다.부족함 없는 축전기 기술로 인한 걱정 없는 주행거리, 비싸지 않은 이용비용, 가장 중요한 환경보호. 그러나 이것들은 정부, 자동차 기업들, 석유회사들에게는 관심 대상이 되지 못하였으며 심지어 GM의 목적조차 위의 것들이 아니었다. 그들의 공동 목적은 돈이었다.전기자동차가 개발되면 당연히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석유 회사는 무늬만 소비자 단체인 가짜 소비자 단체를 만들어 전기 자동차의 보편화를 막으려 하였으며 이들과 이해관계로 얽힌 정부, 또 석유 자동차보다 전기자동차로 인한 수익이 더 적을 것을 염려한 자동차 회사들도 이에 가담하였다.전기 자동차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전기 자동차를 지키기 위해, 대중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전기 자동차의 장례식을 행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GM,이 개발한 EV1은 결국 모두 수거되고 압착기에 눌리게 된다. 그러고 남은 78대의 EV1. 사람들은 남은 EV1을 지키기 위해 교대를 서면서 그들의 행동을 주시하고 시위를 계속 하지만 결국 2005년 3월 15일 모든 움직일 수 있는 EV1은 압착되었고 지금은 움직일 수 없는 한 대의 Ev1 만이 전시형태로 남아있다.사람들 다수가 원하는 일인데, 또 어떤 것이 옳은 일이고 옳지 않은 일인지 모두가 알 터인데 어떻게 그런 일들이 변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떻게 잘못 된 것을 알면서 유지될 수 있는지, 설마 하는 일들이 지금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 전기 자동차의 예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일들이 소수의 권력자들에 의해 결정되고 행해진다.과학기술의 발전과 그 발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사람들.그들의 사고는 돈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돈들은 다 어디에 쓰시려는지. 다 못쓰고 죽으면 자식에게라도 물려주시려는 생각들이신가? 앞으로 더 악화 될 환경과 함께 자식들에게 돈을 물려주어봤자 무슨 소용이겠는가. 그들이 그렇게 경제적으로 생각을 한다면 지금 환경에 대한 투자와 이미 늦게 되어버린 후에 환경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경제적인지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요즘 전기 자동차에 대한 기사들이 뜨고 있다. 옆 나라인 일본은 이미 전기 자동차 대량생산 시대에 진입하였다. 다시 한 번 전기 자동차로 세계의 관심이 주목되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2013년까지 4000억 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실제 공도를 달릴 수 있도록 규제를 푸는 데 있어서는 또 황당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동물실험동물실험이란 동물을 사용하여 의학적 실험을 행해 생명현상을 연구하는 일이며 여기서 동물이란 사람만을 제외한 원생동물에서 포유동물 영장류까지를 말한다. 인간의 삶을 위해 동물들을 희생시키는 실험이 동물실험이다.생명의학 연구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사용하는 것이 의학발전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보편적 믿음이 깔린 상태로 동물실험은 행해진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윤리라는 문제를 들고 일어난다. 오랜 시간 인간과 생물학적으로 가장 가깝다는 침팬지를 연구한 동물학자 제인구달은 ‘동물도 감성과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근거로 동물실험의 비도덕성을 비판해왔다. 그러나 동물들은 인간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들의 감성과 지혜는 무시된 채 인간들을 위해 고통 받고 있다. 동물실험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도덕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오랜 시간동안 실험이 행해진 이유는 실험 목적의 정당성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동물들의 고통만이 아니다. 동물실험의 근본 목적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둘 또는 그 이상의 생명체가 지닌 모든 요소 사이의 일대일 대응관계를 가리키는 동형이종이라는 말이 있다. 문제는 인간은 어떤 동물과도 동형이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간의 신체처럼 복잡한 체계에서 매우 작은 차이는 동형이종을 부정한다. 크게 보면 동물은 서로 비슷하나 인간은 세포와 분자 수준에서 동물과 다르며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세포나 분자가 바로 질병이 발생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인간들은 동물실험을 통해 소아마비, 결핵, 풍진, 홍역 등 치명적 질병에 대한 예방 백신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실험의 목적대로 의학발전에 일조한 것이다. 그러나 진정 동물실험이 필요했던 경우는 얼마나 될까. 인간의 HIV 레트로바이러스를 침팬지에게 감염시켜 행하였던 실험에서 감염된 수많은 침팬지들 중 어느 것도 전형적인 인간의 에이즈 증세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연구에 수백만 달러의 돈이 사용되었고 그보다 더 많은 돈들이 쓸모없는 수많은 동물실험에 쓰였다. 가장 웃긴 예는 1957년 임산부 입덧 방지를 위한 약 탈리도마이드에 대한 것이다. 쥐에 대한 임상실험을 거친 후 확신을 가지게 된 제약회사는 ‘유례없을 정도로 안전한 기적의 알약’이라는 문구와 함께 판매를 시작하였다. 얼마 후 전 세계 46개국에서 1만 명이 넘는 기형아가 태어난다. 1962년 탈리도마이드 성분의 부작용을 뒤늦게 인정한 제약사가 인체에 나타난 부작용을 재현하기 위해 개, 고양이, 닭, 햄스터 등으로 재실험을 하였으나 이들 동물에게서 탈라도마이드는 어떠한 독성도 나타내지 않았다. 오직 인간에게만 해로울 뿐이었다. 어떻게 동물실험만을 가지고 안전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가. 동물실험으로 안전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것은 그 실험의 원래 목적에 어긋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과학이다. 사람에게 직접 적용되는 것이다. 어느 정도라는 것은 통할 수 없는 말이다. 완벽이 아닌 어느 정도의 결과라는 것은 동물실험의 정당성을 뒷받침해 주지 않는다.동물실험이 필요악이 아니라는 것, 동물실험의 역사가 실험 찬성자들이 제시한 것들로부터 매우 벗어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왜 동물실험은 계속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