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학년도 학사청구논문박경리의 문학에 나타난 페미니즘과지식인 여성상 고찰연구목차1. 문제제기와 연구의 시작1-1. 법에 대한 소극적 저항과 주체의 형성1-2. 법에 대한 무조건적 순응의 주체1-3. 법으로 일탈과 사회적 주체 형성의 좌절1-4. 법에 대한 저항과 복종을 통한 새로운 주체의 형성1-5. 결론2. 박경리의 탈식민주의 페미니즘2-1.「토지」의 비극에서 한으로, 삶의 고통과 소설의 향기2-2.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으로 본「토지」의 여성인물3. 결론4. 참고문헌박경리 소설 전반을 대상으로 하여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지식인상을 다각적으로 조명하려한다. 여성 지식인 인물들이 법에 대응하는 양상에 주목하여 법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인물과 법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는 인물, 법으로부터 일탈을 자행하는 인물, 법에 대해 저항과 복종의 양가적 태도를 취하는 인물로 유형화를 하였다. 나아가 이러한 법에 대한 대응 양상에 따른 여성 주체의 형상을 고찰하려했다. 첫 번째 유형의 여성인물은 현실적 장애를 극복하지 못하고 가족제도라는 법에 복종한다. 그러나 이들은 현실적 장애로 인해 상실한 사랑의 대상을 자신의 에고에 합체함으로써 ‘우울증적 주체’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 가족관계 내에서의 정체성을 실제적으로 거부함으로써 법에 소극적으로 저항한다. 두 번째 유형의 여성인물은 가족제도의 법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지만, 사랑의 부재 혹은 이러한 사랑의 자질이 없음이 결정적 이유가 되어 가족관계 내에서 허명에 불과한 정체성을 유지하거나 상실한다. 이들이 주체적 사유 없이 행하는 사회적 활동을 두고 호명된 사회적 주체 역시 허명이라는 평가가 가능하다. 세 번째 유형의 여성인물들은 법으로부터의 일탈을 수단으로 하여 사회적 주체를 형성하려 하지만 좌절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유형의 여성인물은 법에 대한 저항과 복종의 양가적 태도를 취하는데 이를 통해서 이상적인 주체를 형성한다. 다양한 유형의 지식인 여성상 고찰을 통해 주로 긍정적 여성상 조명에 그친 기존 논의의 한계를 극복하 역시 그 대상을 자신의 에고에 합체한 우울증적 주체를 형성한 것으로 볼 수 있다.「눈먼 실솔」의 옥여사처럼 혼전에 아이를 가졌던 유혜련 역시 오해로 인해 이영설과 이별한 이후, 자신을 사랑해주는 문명구와 결혼한다. 이 결혼은 유혜련의 입장에서는 사랑이 없는 결혼으로서 이 역시 사생아를 낳을 위기에 처한 여자가 법의 질타를 모면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결혼제도 내로의 안착을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그러나 유혜련이 스스로 인생을 잃은 여자로서 단정 짓는 부분에서 드러나듯이, 문명구와 이룬 가정에서 유혜련의 아내로서의 합법적인 지위는 가면이라 할 수 있겠다. 「눈먼 실솔」에서와는 달리 이 작품에서는 결코 사랑할 수 없었던 남편 문명구에 대한 유헤련의 가책과 연민이 짙게 드리운다. 이는 첫사랑에 대한 상실의 거부를 역설적인 방식으로 드러낸 것이라 여겨진다.「내 마음은 호수」역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사회의 지배담론에 복종한 지식인 여성인물이 사랑의 부재로 인한 결혼 생활 내에서 아내로서의 정체성을 완곡하게 거부함으로써 법에 대해 소극적으로 저항하고 있는 양상을 보여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가을에 온 여인」은 지식인 여성인물 오세정을 통해 상실한 사랑에 대한 반응이 왜곡된 방식으로 드러남으로써 괴기적 분위기를 풍기는 작품인데, 이 작품 또한 애정 부재의 결혼제도에 대한 저항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앞의 작품들과 같은 부류로 묶어볼 수 있다. 오세정은 피아니스트였던 과거의 연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여 자신을 떠나자 그와의 정사를 시도하여 그를 죽게 할 만큼 집착과 아욕이 강한 여자로 등장한다.연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그녀는 스스로를 학대할 요량으로 죽은 연인의 형과 애정이 없는 결혼을 감행한다.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현실인가. 자기학대를 위해 결혼이라는 제도권 내에 편입한 오세정은 그 안에서 주체를 드러내는데 그녀를 관찰하는 제3자의 시선에는 그녀는 소리 없는 통곡과 같은 것이 서리는 듯 한 처절한 표정의 인물로 본문에서 포착된다. 이러한 표정은 그녀가 연인의 한 여성 지식인 인물 가운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과 죄의식 없이 법으로부터 일탈함으로써, 이를 수단으로 사회적 성취를 이루려는 인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토지」의 홍성숙을 통해 이와 같은 면모를 살필 수 있다. 홍성숙은 사회적 명성을 얻기 위해 법으로부터 일탈을 자행하는 부정적 지식인 여성상을 볼 수 있는데, 홍성숙은 성악가로서의 입신출세를 위해 친일파 조선의 귀족이자 자산가인 조용하와 아무런 죄의식 없이 불륜행각을 벌인다. 이 같은 법으로부터의 일탈이 조용하 편에서는 아내인 임명희를 학대하기 위한 의도로 벌이는 일시적 유흥의 성격을 띤 것이라면, 홍성숙 편에서는 가정을 버리고서라도 조용하의 후원에 힘입어 성악가로서 성공하고자 하는 목적의식을 가진 것이다. 따라서 조용하·홍성숙의 불륜에는 법과의 충돌을 하나의 딜레마적인 상황으로서 고민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 주는 사랑의 감정이 부재하며, 이에 단순한 위법인 즉 간통의 의미 이상을 부여할 수 없다 할 수 있다.홍성숙은 남편이 자신의 불륜을 알아차렸을 때, 조용하를 찾아가 남편과 기꺼이 이혼할 의사가 있음을 밝히면서 그의 후원을 기대하지만 조용하로부터 차갑게 거절당한다. 이러한 홍성숙의 법으로부터의 일탈은 사랑이 부재하기에 당대의 신여성들이 누렸던 자유연애의 명분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라 하겠다. 결국 사회적 출세라는 목적의식을 가진 홍성숙의 조용하와의 불륜행각은 그녀가 무골호인인 남편에게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귀결된다. 「토지」의 후반부에서 홍성숙은 유한마담으로 전락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실력으로써 사회적 주체 형성의 길에 매진하지 않고, 성을 수단으로 유력한 남성의 후원에 힘입어 성공하고자 하였던 홍성숙은 자질이 뛰어나고 정통적으로 공부한 후배들에게 밀리면서 급속하게 퇴조의 길을 걸었던 것으로 드러난다.박경리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은 상당수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논의를 통해 드러난 것에 의한다면 이들의 지식인으로서의 자의식은 모두 미약하기 그지없는 넘어서야 올바르게 작동할 수 있게 된다. 타자를 존중하는 민족 담론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 타자 존중의 민족담론이 저항적 민족주의이다.저항적 민족주의는 자유와 평등을 현실화하려는 아래로부터의 민족주의로 실제로 평등한 민족공동체에 접근해 가는 타자 중심적 민족주의라 할 수 있다. 때문에 탈식민주의를 넘어서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조선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저항적 민족주의가 나타난다. 일본 제국주의의 시기 혹은 지배적 시기에 일어나는 민족주의는 억압받는 피식민자에게 폭력에 대항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하며 이 경우 민족주의는 선한 민족주의 혹은 정당한 민족주의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선에서 저항적 민족주의는 양반이 주축이 된 위로부터의 저항적 민족주의와 조선민중이 주축이된 아래로부터의 저항적 민족주의로 구분할 수 있는데『토지』의 동학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적 민족주의, 즉 타자 중심적 민족주의에 해당한다.일본이 제국주의로 나아간 과정은 서구와 다르다. 일본은 서양의 타자로서 구미열강의 침략에 대해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자유민권운동의 실패로 인해 아래로부터의 자본주의화가 좌절되었다. 일본은 자율적인 주체를 형성하기 어려웠고 자유로운 주체이념 대신 억압의 이양을 통해 독립된 국민의식을 형성했다. 천황에 예속됨으로써 독립된 국가와 국민을 형성하는 일본 특유의 초국가주의 형태를 띠게 된 것이다. 이런 특수성으로 인해 더 가혹한 수탈을 받은 조선민중을 파악하는 데에는 그래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게 된다.식민자는 문명을 피식민자에게 전해주는 것으로 식민지배의 당위성을 갖는다. 하지만 일본과 조선은 문명의 측면에서는 동등했다. 따라서 일본은 왜곡된 문명과 야만을 조선에 주입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문명은 크게 쓰인 문화다. 문명과 문화는 주어진 사회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세대들이 우선적으로 중요성을 부여한 가치, 기준, 제도, 사고방식을 담고 있다. 제국은 일어섰다 무너지고 정권도 왔다가 사라지지만 문명은 유지되며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념적 격변의 와중에서 없다. 야만적인 탄압은 공포에서 오는 것, 생명이 없다는 것, 창조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일본 스스로도 피해자인 셈이다.아홉째, ‘동화주의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소수 교양 있는 조선 사람말고는 모두 왜놈, 쪽바리라 부른다.’ (15권 131) 결코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열 번째, ‘휴머니즘을 결여한 새 질서는 허구이며 허구에서 시작되는 파괴는 남뿐만 아니라 자신도 무너지고 마는 결과를 초래’ 한다. (18권 22∼23) 일본의 패망이 이를 증명한다.2-1.「토지」의 비극에서의 한으로, 삶의 고통과 소설의 향기박경리는 성장의 체험을 통하여, 자기 의식을 소유하지 않은 삶은 허망하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세상의 인습에 얽매여 산다는 것은 의미 없다는 것, 한 인간의 선택과 결단의 결과로 자신의 삶이 꾸려지지 않은 경우, 순간적으로 다가오는 행복감마저도 불행일 뿐이라는 것, 이것은 남편을 붙잡아 두려한 어머니가 역설적으로 알려주었다. 이는 사랑을 구걸한 어머니와 어머니에게 혹단한 채찍을 내렸던 아버지에 대한 반감에서 형성된 것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이유는 사랑의 본질이란 자기 자신의 의식을 포기하는 것, 다시 말해서 하나의 다른 자아 속에서 스스로를 망각하고 동시에 이러한 소멸과 망각 속에서 비로소 자기 자신을 획득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후에 간단히 언급하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한 자기의식은 자리 할 틈이 없었다.자기의식이 원하지 않더라도 어떤 사회적 격변에 몸 닫지 않는 경우, 그것은 곧 고독이었고 불행이었으며 죽음이었다. 때문에 자기의식에 강렬한 열망은 사회로 향하지 않고, 대신에 사랑으로 향한다. 때문에 박경리의 소설에는 낭만적 사랑과 좌절을 다룬 소설이 많다. 『가을에 온 여인』,『노을 진 들녘』, 『영원한 반려』, 『단층』, 『성녀와 마녀』등이 직접 이 문제를 다룬 소설이거니와 , 이외의 다른 소설에도 이 주제는 반드시 끼여 있다.이 낭만적 사랑에의 열정은 여성 억압적 현실에도 눈돌리게 한다. 작가는 여성인 어머니된다.
‘8명의 여인들’ 작품 속에 나타난 여성원형 분석 및 나와 여성원형프랑스의 어느 크리스마스 아침에 온 가족이 시골집에 모인 가운데, 그 집의 가장이 죽었다. 정확히 말하면 살해된 것이다. 오빠의 죽음을 듣고 찾아온 누이동생, 그의 부인, 장모, 처제, 두명의 가정부, 두 딸들까지 모두 8명의 여인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모이게 되었고 범인은 분명 외부사람이 아니고 이 8명의 여인들로 용의자가 추정됨에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전날 알리바이를 밝힘으로써 범인을 찾아내려고 한다. 범인이 누구인지를 알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추궁하는 가운데 이 8명의 여인들의 감춰진 비밀과 허물이 밝혀지게 되는데 결국 사춘기 딸의 재미로 시작한 가짜 살해사건계획에 동참한 남자는 자기가 살해된 와중에 보여진 그녀들의 행동과 속마음을 알고 좌절에 자살을 선택하고, 이 8명의 여인들은 공동살인자가 되어버린다는 내용이다.1).게비(까트린느 드뇌브)2).수잔(비에르지니르도엔)3).까트린느(뤼디빈 사니에)4).마미 (다니엘 다리유)5).어거스틴(이자벨 위빼르)6).삐에르뜨(화니 아르당)7).샤넬(휘르민 리샤르)8).루이스(엠마누엘 베아르)2. 나의 이상형 여성원형8명의 여인들은 사회적 지위와 금전적인 욕망, 애정을 보장ㄴ받기 위해 저택의 가장인 남자를 두고 서로 견제하며 경쟁하고 있다하지만 여성들에게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남자는 실체가 점점 사라짐에 따라 그 영향력도 사라진다.집주인의 정부였던 루이스는 부인인 게비를 사랑하는 것으로 들어난다. 하녀는 자신이 전 주인도 역시 사랑했다며 게비에게 고백한다. 이 장면ㅇ레서 하녀가 진정으로 욕망하고 있는 대상이 바로 안주인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준다. 남편의 동업자를 사랑해서 그와 떠나기로 결정하고 여동생인 피에르트역시 동일인물과 사랑에 빠진다
영화 ‘아무도모른다’ 감상문10.05.06아이가 아이답지 않다는 것이 너무 슬펐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싶지만 가지 못한다. 나가서 뛰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동생들을 돌보는 아키라의 모습은 마치 부모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아키라가 생활비를 얻을 마음으로 예전 엄마의 애인들을 찾아가지만 다들 변명뿐이다. 다들 현실에서 스스로를 도피시킬 뿐이다. 말이 없고 우울한 모습의 아키라는 동생들의 부양에 전력을 다하지만 이런 아키라도 어른들과 닮아가는 것처럼 동생들을 부양하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아이들은 엄마가 떠난 것을 알았다. 아키라는 엄마에게 전화를 하지만 성이 바뀐 것을 알았기에, 교코는 봉투의 필체를 비교해보고 이미 엄마는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아이들의 엄마는 말했다. “엄마는 행복해지면 안 되는 거니?” 라고 말이다. 철없는 싱글맘은 무책임하게 행복만 추구한다. 막내 유키가 아끼던 아폴로초코가 한 개 밖에 남지 않았을때, 아키라의 하나뿐인 운동화가 더러워졌을 때, 엄마가 교코의 손가락에 발라주던 매니큐어가 다 지워질 때, 유키의 생일날에 아키라가 신발을 꺼내주었을 때, 마지막까지 자신의 행복만 추구하고 막내딸이 죽은 것조차 모른다. 엄마가 잘 못일까? 쉽게 단정을 짓진 못한다. 엄마 또한 특수한 상황의 피해자다. 어쩌면 그 또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사랑 한 것 인지도 모른다.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어른이 아니다. 아이들 자신이며, 그들은 버려진 희생자라는 것을 모를 뿐이다. 결국 마지막까지 살아있던 건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었다. 정말 아무도 몰랐을까? 라는 제목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누군가가 자신의 존재를 알아주기 때문에 우리가 꼭 살고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한 아이의 삶이 죽음으로 끝났을지언정 남은 아이들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지 아무도 모른다. 산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누굴 탓 하겠는가? 우리는 이웃집의 가족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영화에선 딱 한번 밀린 집세를 받으러 주인이 아이들을 찾지만 엄마는 출장을 갔다며, 나머지 아이들은 사촌이란 말만 듣고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돌아설 뿐...이 시간에도 사회의 어딘가에서 소외받고 외면당하는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구석에서 흘리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나보다.
고전시가론에 대한 문학치료학적 조명10.04.28Ⅰ. 서론오늘날은 다양한 문화와 그 문화를 접할 기회 또한 많다. 그러나 문화산업의 전반이 수익성을 중시하는 나머지 문화 소비자들에 대한 배려는 상대적으로 소홀해졌다.이러한 문화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결코 쉽지 않다. 특정 집단, 문화적 편견 등을 배제하고 문화상품 소비자들의 이익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어떤 문화상품이 계층이나 같은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도 부작용이 있거나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동원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상품의 하나인 문학치료학은, 어떤 문학작품이,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이로움과 해로움이 있는가를 판단하는데 중요한 학문이 될 것이다. ‘환자’와 ‘치료’를 전제로 하는 문학치료학의 관점에서 ‘약품’의 위치에 있고 그 효능이나 부작용까지도 좀 더 확연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우리의 고전시가론에 나타난 문학치료학적 단서들을 탐색하여, 고전시가론에 대한 문학치료학적 재해석의 전망을 가늠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고전시가론은 오늘날의 문화 상황과 관련하여 보다 생산적인 방향에서 거듭날거라 기대한다.Ⅱ. 시가문학과 개인치료『 한국고전비평론자료집 (韓國古典批評論資料集) 』 ( 계명문화사, 1988 )에서최치원(崔致遠:857~?)의「여객장서(與客將書)」(『최문창후문집(崔文昌侯文集)』)으로부터 김택영(金澤榮:1857~1927)의 「잡언일(雜言日)」(『소호당문집(韶濩當文集)』)에 이르기까지 47건의 문학치료학과 직접적으로 관련지을 수 있는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먼저 노래를 듣고 마음의 병을 고쳤음을 직접 언급한 자료로는 정내교(鄭來僑, 1681 ~ 1757)의 「청구영언서(靑丘永言序)」에서 “아아, 무릇 이 노랫만을 지은 것은 오직 그 생각을 말하고 그 우울함을 펴는 데 그칠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보아 느끼어 흥기(興起))하게 하는 것을 또한 그 가운데 붙인 것이니, (중략) 내가 일찍이 침울하고 시름겨움으로친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씻어내는 일인 것이다.위에 관한 언급은 이현보(李賢輔)의 「어부가구장병서(漁父歌九章幷序)」, 권호문(權好文)의 「독락팔곡병서(獨樂八曲幷序)」, 홍성민(洪聖民)의 「이학위시설(以學爲詩說)」, 유성룡(柳成龍)의 「시교설(詩敎設)」에서 볼 수 있다. 이러한 자료를 볼때 마음속 찌꺼기는 세상의 공명(功名)이며, 세상의 티끌이요, 그로 인한 사특(邪慝))한 마음, 어그러진 뜻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마음 속 더러운 찌꺼기들을 씻어내면 어떠한 경지에 이르게 되는가? 유성룡(柳成龍)이, “대게 시는 마땅히 청원(淸遠))하고 충담(沖澹))하며 뜻을 말 너머에 붙이는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진부(陳腐)한 말일 뿐이다. (중략) 그 다음은 유우석(劉禹錫)의 시, ‘봄 맞은 강에 달이 뜨니 큰 강둑 평활한데, / 강둑 위엔 소녀들이 소매를 맞대고 걸어간다. / 새 노래 다 불렀는데 정인(情人)은 보이지 않고, / 붉은 노을 나무에 비치니 자고(??))가 우짖는다.’ 고 한 것은 절창(絶唱)이어서, 읽음에 사람으로 하여금 신기(神氣))가 서창(敍暢))케 한다.” 라고 한 것이나, 신흠(申欽)이, “시험삼아 무릎을 치면서 노래하면, 읽는 이가 마음이 맑아지고 창자가 깨끗해지니 (중략)”, 라고 한것, 그리고 위백규(魏伯珪)가, “주남(周南)에 이르기를, ‘칡의 넝쿨짐이 / 골짜기 안으로 뻗어서 / 그 잎이 무성하거늘, / 꾀꼬리의 날음이 / 떨기나무에 앉아서 / 그 울음이 명랑(明朗)하더라.’ 하였으니, 읽음에 사람으로 하여금 심신(心神)이 화이(和怡))하고 정채(精彩))가 표창(?暢))케 한다.” 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보건대, 마음의 병이 치료가 되었을 때에는 위와 같은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해서 마음속의 더러운 찌꺼기를 씻어내느냐 하는 것이다. 이이(李珥)의 「정언묘선서(精言妙選序)」에서는, ‘시(時)가 성정(性情))을 음영(吟詠))하여, 청화(淸和)를 선창(宣暢)하여, 가슴 속의 지꺼기 더러운 것유형이나 부류에 각각 어떤 효과가 있는가를 논하고 있어서 작품을 문학치료에 사용할 때의 구체적인 처방을 마련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Ⅲ. 시가문학과 사회치료문학치료는 개인들뿐만 아니라 집단 내지 사회 전체를 치료 대상으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둘의 치료는 상호 관련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우리의 고전시가론은 집단 내지 사회의 개선에 관심을 끊임없이 보여 왔다. 노래를 개인적인 마음의 병과 관련시켜 논의한 정내교(鄭來僑)도, “아아, 무릇 이 노래말을 지은 것은 오직 그 생각을 말하고 그 우울함을 펴는 데 그칠 뿐만 아니라, (중략)그 노랫말이 비록 시가(詩家)의 공교로움을 다한 것만은 아니지만 그 세도(世道)에 유익(有益)함은 도리어 그보다 많음이 있다.”고 하여, 사회의 개선 가능성 여부를 가치 평가의 준거로 삼고 있으며, 정약용(丁若鏞)은, “(전략) 애군(愛君)하고 우국(憂國)하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요, (중략) 치군(致君)과 택민(澤民))의 마음을 갖지 못하는 이는 능히 시를 지을 수가 없다.”고 하여, 사회 개선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시가 아니라고까지 했다. 여기서 세도(世道), 애군(愛君), 우국(憂國), 치군(致君), 택민(澤民) 등은 집단 내지 사회의 개선을 염두에 둔 말로서, 집단치료 내지 사회치료라는 개념으로 접근해도 좋을 것이다.그러면 시나 노래를 통하여 집단 내지 사회를 치료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유성룡(柳成龍)은 「시교설(詩敎說)」에서, “만일 시도(詩道))의 전체(全體)를 논한다면, 곧 반드시 성군(聖君)이 위에 있어서 오륜(五倫)의 도(道)로써 그 표준을 세우고, 몸으로 말미암아 집안에, 나라에, 천하에 미쳐서, (중략) 시교(詩敎))의 전체(全體)가 이루어질 것이다.” 라고 하였다. 요컨대 사회에 시도(詩道) 내지 시교(詩敎)가 온전하게 구현된다면 그 사회의 인간관계가 올바르게 정립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시나 노래를 통해 집단 내지 사회를 치료한다는 것은 그 집단 내 것에 속했다.”하였다. 이로써 본다면 감발과 징창의 감동은 성정으로부터 유래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륜(河崙)은「포은집서(圃隱集序)」에서, “공자(孔子)께서 산시(刪詩))하심이 삼백편(三百篇)에 그쳤다. 그러나 천리와 인륜에 근원을 두고, 정교(政敎)와 풍속에까지 도달하여, (중략)부릇 가히 선심을 감발하고 일지(逸志))를 징창케 하는 것을 갖추지 않음이 없으니, 시(詩)의 시(詩)가 됨은 어찌 많음에 있겠는가?” 하였는데, 이로써 보면 감동의 근원은 천리와 인륜이다. 또한 허균(許筠)은「제당절선산서(題唐絶選刪序)」에서, “우유돈후(優遊敦厚))하여 감발징창(感發懲創))하기에 족한 것은 국풍(國風)이 가장 성(盛)하고, 아송(雅頌)은 곧 이로(理路)에 빠져서 성정과 떨어짐이 조금 멀다.” 하였고, 남구만(南九萬)은「금호유고서(琴湖遺稿序)」에서 “시의 가르침이 됨은 본래 온유돈후(溫柔敦厚))로써 성정을 다스리고 풍화(風化)를 드러내며, 인심을 감동시키고 세정(世程))을 도우려는 것이다.” 하였으니, 이로써 보면 감발징창의 근원이 온유돈후인 것이기에 시나 노래를 통한 집단치료 내지 사회치료의 근본은 온유돈후인 셈이다. 그런데 온유돈후, 성정을 다스림, 감발과 징창, 세교의 전 과정을 한꺼번에 지칭하는 말로 흥관군원(興觀群怨)이 있다. 여기서 흥(興)이나 관(觀)은 성정의 천리와 인륜에 근거하여 선심을 감발하고 일지를 징창하는 일과 관련될 것이며, 군(群)이나 원(怨)은 올바른 인간관계의 회복을 통하여 세교를 이룩하는 일과 관련될 것이다.Ⅳ. 시가문학의 문학치료학적 양면성이렇게 우리의 시가문학이 개인치료에 소용이 되고, 집단치료 내지 사회치료에까지 소용이 되지만, 언제나 유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홍석주(洪奭周)가 원시상「原詩上」에서, “그러므로 쉽게 다스려진 이는 또한 쉽게 어지러워지고, 쉽게 선해진 이는 또한 쉽게 악해지니, (중략)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시(詩)만한 것이 없고, 배고픔에 배부르게 하고 목마름에 적셔주는 데 음식이 부족한 것이 아니(雕繪繡藻)를 일삼은 작품, 흐드러지게 놀며 돌아올 줄을 모르는 뜻이나 위미(委靡))하고 퇴타(頹墮))한 기운이 있는 작품, 자신을 뽐내고 능력을 자랑하는 태도와 승진을 바라고 구차하게 구하는 욕심 등을 드러낸 작품, 기습(氣習)이 오만(傲慢)하고, 위의(威儀)가 소방(疏放)한 작품, 첨세(尖細)하고 파쇄(破碎)하고 현박(?薄)하고 촉절(促切)한 소리를 힘쓴 작품 등이며, 이런 작품들이 끼치는 해악이란, 음란함을 더하는 일, 뜻을 방탕케 하는일, 이정탕심(移情蕩心))케하는 일, 상지(喪志))케 하는일, 성정(性情)을 내버리게 되는 일 등이라는 것이다.이러한 시가문학의 해악은 해악이 되는 지점에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특수한 효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도 탐색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학치료를 수행하고자 할 때의 문제는 해악을 끼치는 작품들 때문만은 아니다. 작품 자체의 속성이 문제가 된다면 작품 선정을 신중히 하면 될 것이다. 환자의 마음을 치료 하고자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환자 자신의 심리적인 결함 내지 약점을 인정하거나 드러내기를 꺼린다는 점이다. 이런 저항을 극복할 수 있을 때 문학치료를 비로소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김택영(金澤榮)은「잡언일(雜言一)」에서, “음분(淫奔))한 아낙네가 평소 사람을 대할 적에는 그 종적(踪跡))을 꺼려서 엄닉(掩匿)하고 복개(覆蓋)하여 이르지 아니하는 바 없이 하다가, 불행히도 쫓기게 되면 꺼리기를 더욱 심하게 하니, 이는 진실로 사람의 상정(常情))이다. (중략) 이 어찌 성정이 감발하여 유연하고 약연하여 자신도 또한 스스로 그것이 그러한 줄도 모르고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시가 성정에 공이 있음이 이와 같도다!” 하였다. 완강히 은폐하고 있던 환자 자신의 심리적 결함 내지 약점이 시를 읊조리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드러내고, 그리하여 성정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로써 보건대 환자 자신으로 하여금 감정을 시로 읊조리게 하거나 노래로 부르게 한다면 자연스럽게 치료에 대한 저항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다.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지도자로서 지닌 장점내가 존경하고 닮고 싶은 인물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중 한명이자 미국의 초대 정치인 중 한명이다. 그는 특별한 공식적 지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프랑스 군(軍)과의 동맹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 미국 독립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계몽사상가 중 한명으로서, 유럽의 과학자들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는 알짜 미국인으로 절제, 근면, 그리고 자립의 덕을 격찬했다. 그의 지도자로서 영향은 사회 전체에 미쳤고 그의 지혜는 필라델피아 거리의 평범한 사람과 같이 쉽게 파리의 철학자에게 까지도 마음을 움직였다. 그는 개인의 치부나 영달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을 기울였고, 인쇄공으로 시작하여 출판업자, 저술자, 신문발행, 철학자, 외교관, 발명가로서 다양한 인생 경력을 쌓았다. 시대상으로 봤을 때 84세까지 장수하면서 독학으로 학문에 정진하여 당시 이론이 정립되지 않았던 전기에 대한 이론을 확립하고 피뢰침을 발명하여 사람의 생명과 재산을 재앙에서 보호했다. 프랭클린의 가장 뛰어난 재능은 그의 조직적이고 정치적인 구조 그리고 의사전달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정보나 믿음 또는 요구사항을 나눌 수 있게 만드는 리더십 스킬의 사용능력인 것을, 관찰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벤은 이론가나 훈련된 연구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그저 아이디어는 그 시대의 기본적인 해결문제와 연계되지 않거나 그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이 일반 시민들에 의해 평상시 생활에 이용되지 못한다면 소용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우친 아주 영리하고 정치적인 사람이었다. 우리는 프랭클린을 생각할 때 그가 번개가 치는 폭풍 속에서 연을 날리며 거기에 달린 열쇠에 번개의 에너지를 찾으려 서 있는 전경을 기억할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을 서술한 것이기 보다 프랭클린의 개성과 성향을 보여주는 아이콘과 같다. 그는 어떻게 그의 주위에 창조적인 에너지를 모이게 하고 그것을 유용하고 발전적인 것으로 승화하는 법을 알았기 때문이다. 1784년 벤자민 프랭클린은 파리에서 미국 대사로 근무를 했다. 당시 상인들과 시민들에게는 저녁시간에 불을 밝히는 양초 값으로 너무 많은 돈을 지출하는 것이 큰 문제였다고 한다. 특히 여름철보다는 겨울이 문제였다. 겨울에도 대부분의 가게들이 초저녁까지 문을 열고 장사를 했다. 때문에 양초의 값으로 상인들과 시민들은 너무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 문제를 공무원들은 해결해야 했다. 공무원들은 먼저 양초의 유통을 투명하게 해서 혹시나 있을 수 있는 중간 상인들의 매점매석을 철저하게 단속해야 했다. 그것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양초를 만드는 기술을 향상시켜서 더욱 더 싼값의 양초를 만드는 기술을 개발하거나 기존의 것보다 더 밝고 더 오래 가는 효율이 높은 양초를 개발해야 했다. 또는 양초를 대신할 수 있는 값이 저렴한 새로운 대체재를 개발하는 것이 필요했다. 당시 파리의 공무원들에게는 서민들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이 양초의 문제가 가장 큰 관심사였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었다. 미국 대사 프랭클린은 다른 공무원들과 다른 방법으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고 문제를 독창적이고 획기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완전히 새로운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문제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제안을 하게 된다.“1년에 두 번 온 나라가 시계를 다시 맞추면 가게의 영업시간을 해가 떠 있는 시간에 맞게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가게 주인도 양초를 훨씬 적게 쓸 수 있고 시민들도 양초 값을 아낄 수 있지 않을까?”프랭클린 이전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다. 하지만 시간을 바꾸는 개념으로 이 문제에 접근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시간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라는 가정을 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랭클린의 제안은 전 세계를 통해 굉장한 양의 에너지를 절약하고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된 서머타임제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