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아트의 대표적 작가리히텐슈타인목 차1. 팝아트(Pop Art)의 등장2. 리히텐슈타인의 생애3.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세계4. 리히텐슈타인의 주요작품 및 작품소개5. 작품의 대한 대중의 평가6. 리히텐슈타인 작품의 미술사적 의의1. 팝아트(Pop Art)의 등장- 2 -팝아트는 순수미술의 반전과 대중적 통속이미지를 통합시키면서 1960년대 서구 일반사회의 환경을 미술로 수용한 예술사조이다. 고상한 기존 미술에 대한 비속한 미술의 모반이라고 할 수 있는 이것은 삶 그 자체를 표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소재를 다양하게 다루는 자유성격이다. 추상표현주의가 성공을 거둔 후 그 고정관념을 초월한 사조로써 원래 영국에서 출발했으나 미국에서 성공한 예술이다. 공식화된 미술의 규범으로부터 벗어나 한층 더 진보된 성격으로 현실세계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로 대중운동보다는 순수 본능적인 시대형식이다. 여러 가지 양식을 융합하면서 수평적으로 일어난 예술이다.팝아트의 출발은 1954년 영국의 미술 평론가인 로렌스 알로웨이가 처음으로 팝아트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원래는 매스컴이 지배하는 대중문화가 만들어지면서 `대중 예술`을 가리키기 위한 편리한 명칭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 후 1962년 알로웨이가 그 의미를 확대시킴으로써 팝아트는 대중적 이미지를 `순수 미술`의 문맥 안에서 사용하고자 하는 미술가들의 활동을 가리키는 명칭이 되었다.오늘날 우리 가정을 색다르고 실감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1955, Richard Hamilton- 1 -팝에 대한 의미를 지적해보면 팝아트라는 말은 랜덤 하우스 사전에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그것은 1960년대 초 미국에서 현저하게 전개되고 유행된 형상적 회화의 양식으로서 순수미술 분야와 특히 신문만화(Comic strips)나 광고 포스터(Advertising posters)와 같은 상업미술의 장르로부터 추구되어 확대된 형(form)과 이미지(image)들로 특정지을 수 있다.` 바로 이 시기에 팝아트라는 용어가 확립되었으며 팝아트가 예술 운동으로써 예술운동의 이름이라기 보다는 속어처럼 되어 그 용어는 패션, 영화, 실내, 장식물, 파티, 장난감, 도시계획에도 적용되었는데 이런 점에서 팝아트는 엄격히 말해서 운동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경향과 현상으로서 그것도 영국과 미국이라는 두 지역, 좀 더 구체적으로 지적한다면 런던과 뉴욕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환경과 비평적 풍토에서 출발하고 있다.흔히 형식을 결여한 미국적 현상이라고 표현되는 대중예술인 팝아트는 맨처음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영국의 팝아트는 기준 관념과 반대의 입장에 선미학으로서 발전하였다. 그러나 팝의 미학이 널리 퍼지면서 각양각색 화가들이 그것을 흡수하여 여러 가지 형태로 적용했다. 그러한 적용의 과정에서 그것은 회화적 추상미술과 구상미술의 부활로 취급되어 왔다. `영국의 팝아트는 구상미술의 부활인가?` 라는 질문에 대하여 존스는 `그렇다`라고 말했다. 영국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진정한 팝아트 작품은 1965년 리처드 해밀턴이라는 영국 작가가 당시 산업 사회의 시각 이미지라고 할 수 있는 각종 광고 이미지들을 꼴라쥬하여 `오늘날 우리 가정을 색다르고 실감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란 작품을 제작하였는데 이 작품 속의 보디빌더가 쥐고 있는 사탕 포장지에 새겨진 `POP`이란 글에 착각하여 로렌스 알로웨이가 `Pop Art`란 말을 사용하였던 것이다.2. 리히텐슈타인의 생애리히텐슈타인은 1923년 10월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9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회화를 공부하면서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오하이오 주립대학을 졸업한 뒤 공학제도사로 일한 적이 있고, 여가가 생기면 그림을 그렸다. 1960년에는 뉴저지에 있는 주립대학 럿커스(Rutgers)의 부교수로 재직하기 시작한다. 그는 이 대학에서 오늘날 해프닝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란 캐프로우를 만나 우정을 나눴다. 캐프로우를 통해 클래스 올덴버그, 짐 다인, 루카스 사마라스, 그리고 조지 시갈을 알게 된다. 그들은 모두 해프닝을 소개하는 일에 열심이었으나 리히텐슈타.미키야, 여길 보아라(Look, Micky)1961, Roy Lichtenstein- 2 -그가 만화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한 것은 어린 아들에 의해서였다. 어느날 리히텐슈타인의 아들이 미키 마우스가 그려진 동화책을 읽다가 말했다.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데, 아빠는 이렇게 그림을 잘 그릴 수 없을 거야』 그말에 자극받은 리히텐슈타인은 그날 여섯점의 만화를 그렸는데 그 중 하나가 「미키야, 여길 보아라」(Look, Micky)이다. 그 그림은 도날드 덕이 커다란 물고기를 낚았다고 낚싯줄을 끌어올리는데 미키마우스의 저고리가 올라오는 장면이다. 이때부터 그는 원래의 만화를 형태와 색을 조금 변경한 모습으로 그리기 시작했으며, 말을 말풍선 안에 써 넣어 그림의 내용을 서술적으로 표현했다. 만화를 화랑에 전시한다는 것은 정말 웃기는 일이라고 화랑 주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할 때 이탈리아 사람 레오 카스텔리가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을 그의 화랑을 통해 소개하고 적극 후원했다.- 3 -1962년부터 평론가들도 그의 그림에 호감을 표시했다. 흥미로운 것은 당시까지 리히텐슈타인과 교류가 없던 워홀이 카스텔리 교수의 권유로 화랑에 와보고 「나 말고 또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있다니」라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누가 먼저 만화를 그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두사람이 거의 같은 시기에 육중한 몸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대중문화에 시선을 돌렸다는 것이다. 리히텐슈타인은 1966년에 베니스비엔날레에 참여했고, 1969년에 구겐하임 뮤지엄이 회고전을 열었으며, 이듬해 예술원의 회원이 되었다. 만화와 같은 그의 그림에는 궤변과도 같은 익살이 있었다. 그 이후 작품생활을 계속하던 그는 1997년에 사망하였다.3.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세계리히텐슈타인은 화가로서의 이력을 1951년부터 시작한다. 1957년에 이르기까지는 추상표현주의 작품의 방식에 경도되어 있었으나, 1960년 무렵부터는 이러한 양식적인 특성을 극복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이무렵부터 그의 회화에 코믹한 이미지들을 넣기 시작했는데들을 위한 미키마우스 드로잉과 풍선껌 포장을 위한 드로잉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3 -그런 뒤에는 큰 작품에도 껌의 포장과 같이 보이도록, 이러한 포장과 같은 유형의 그림을 시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매우 흥미있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이러한 방식으로 광고와 같은 이미지를 사용하는 기법을 창안했으며, 그 뒤로 일약 뉴욕 팝아트의 스타가 되기에 이르렀다. 그에게 왜 이런 저급이고 미적이지 않은 소재를 사용하였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세상에 단순히 그러한 사물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였다.또한 그는 "광고 속에 등장하는 기호와 코믹한 내용들은 대단히 재미있는 소재이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상업 미술 속에는 쉽지 않지만 강력하고, 훌륭한 소재가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리히텐슈타인의 초기작품인 , , 등에는 일상적이며 전혀 새롭지 않은 소재를 특유의 재치로 응용하였는데 총괄적이며 힘차고 사리가 분명한 형식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러한 작품들의 형상적인 이미지들에서 전통적이 회화의 특징인 색채와 선, 형태, 구조 등의 모든 요소를 찾아낼 수 있다. 특히 의 경우에는 그리드의 표현과 머리카락의 선묘가 대단히 탁월하고, 풍부한 표현력과 복잡성이 결부되어 있어서 그 구성적인 특이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3 -1960년대 중반에 그는 대단히 추상적인 특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선과 색채와 형태에 있어서 매우 추상적으로 변화되었으며, 주제에 있어서도 두드러진 특성을 보여 주기 시작하였다. 그 주제는 삶과 대단히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것으로서, 로맨스와 전쟁에 관한 내용들이다. , 의 경우는 여인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그녀의 표정이나 분위기로 보아서 많은 문학성이 엿보인다. 그래서 그녀는 어떤 여인이며,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누구를 오랫동안 기다렸는가 하는 등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자아내기도 하였다. 관객들은 이러한 작품에서 매우 흥미 있는 관찰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갖가지의 내용은 미리 계획되어 나온 것으로서, 매우 흥미 있는 로맨스 코믹회화의 전형적인 표현이 되고 있다. 또한, 무엇보다도 멸시되어 온 기법이든 간에 그러한 천박한 것으로 여겼던 것을 사용하는데 진정한 팝아트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였다.가장 실제적이고 순수미술의 입장에서는 비(非)미학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던 광고 분야에서 순수 회화적인 소재를 찾아내어 그것을 순수한 회화라고 고집한 사례에 해당되는 작품이 그의 회화였다. 그는 출발점에는 반(反)회화를 만들려고 하고 있으나 기실은 회화가 되어 버렸다.4. 리히텐슈타인의 주요작품 및 작품소개공은 든 소녀(Girl with Ball)1961, Roy Lichtenstein- 4 -그의 작품 중 ‘공을 든 소녀’는 윤기나는 머리와 빨간 립스틱을 한 여자가 비치볼을 높이 들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여자의 모습은 매우 진부하지만 리히텐슈타인은 이 그림에서 색채 사용을 제한하고 원래의 흑백 이미지의 소박한 효과를 단순화하였고, 몇 안 되는 색깔이 각기 다른 기능을 완수하는 싸구려 인쇄만화처럼, 그의 경제의 원칙에 따라 색을 사용하였다. 리히텐슈타인의 초기작에는 ‘공을 든 소녀’에 나오는 이런 젊은 여자들이 계속 나온다. 후기 만화 그림에 나오는 여자들은 좀 더 세련된 모습이며, 말이나 생각을 나타내는 말풍선과 함께 등장한다.Aloha1962, Roy Lichtenstein이 작품에서는 배경의 점들의 교차 지점을 살펴보면 문질러 제작한 흔적이 드러난다. 초벌 그림을 그린 종이 아래에 질감이 있는 물체를 놓고 그 위에서 연필로 문지르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다소 회화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였다.Whaam!1963, Roy Lichtenstein- 5 -두 대의 제트 전투기가 격돌하는 결정적 찰나를 포착한 것으로 리히텐슈타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의 하나이다. 전쟁 만화회화들은 어떤 전쟁의 현실적 감각이 거세된 우화적 표현 스타일을 구사한다. 은 내용의 공포와 그것이 묘사된 경쾌한 기법사이의 모순이 너무나도 확연하기 때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