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상자의 역습- Everything Bad Is Good for You -여섯 살 터울의 남동생과 형제처럼 자란 터라 비디오게임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없다싶을 만큼 가깝게 자랐다. 책에서 등장한 같은 게임도 에 익숙한 내 또래 친구들에게는 낯설고 생소한 게임이지만 나는 종종 퀘이크 아레나가 없었다면 서든 어택도 없었을 것이라며 게임의 숨겨진 역사를 혼자 신이나 열강하고는 한다. ‘GOD game’이라는 용어도 이 책에서 처음 접하였으나 단어를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거나 이러한 개념이 낯설지 않았다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배경 때문이다. 그렇다하여 필자가 하루에 몇 시간씩 할애해가며 비디오 게임물에 빠져있는 성인으로 성장하지는 않았다.몇 년 전, 미국의 비영리단체 'TV 끄기 네트워트(TV-Turnoff Network)'는 매년 4월 'TV 끄기 주간'을 정해 ‘TV를 끄고 산책, 자전거 타기, 독서 등을 해보자’는 캠페인을 벌이며 많은 이의 호응을 얻은 적이 있다. 이와 더불어 영국의 찰스 왕세자는 ‘웨일즈 왕자 예술 어린이 재단’을 세운 뒤 어린이들에게 연극 공연을 보여주고 책 읽기를 장려하며 동화 구연술을 개발하는 등 어린이들로부터 TV를 떼어놓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는 과는 정면에서 충돌하는 내용이다. 라는 책은 굳이 시간을 할애하여 책을 읽는 공을 들이지 않아도 제목에서부터 TV의 부정적 측면에 대해 정면에서서 직설적으로 언급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러한 기대에 발맞추어 이 책에는 TV와 컴퓨터와 우리 삶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TV로 인해 자녀와 가정이 얼마나,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다룬다. 또한 TV가 집중력 저하, 소아정신질환, 수면장애, 비만, 요통, 성인병 등 각종 질병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논거를 각종 사례와 국내외 연구 결과를 들어 제시한다. 여세를 몰아 TV를 버림으로 인해 진정한 행복을 찾는 사람들의 삶의 행로를 다루고, 독자로 하여금 TV 없는 삶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이 책을 읽고 있자면 지루하리만큼 당연한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재간이 없다. 공격적이고 건조한 책 속의 목차―TV는 아이의 지능을 떨어뜨린다, 내 아이를 자폐아로 만들 것인가, 범죄에 물들어가는 아이들, ‘아이다움’이 사라지고 있다, TV는 소아비만의 원인―를 읽고 있노라면 ‘아, 이것이 진리. 내가 이 사실을 왜 진작 인지하지 못한 것인가. 당장 TV를 내다 버리겠어!’라는 근원 불분명의 사명감까지 생긴다. 하지만 책을 덮은 후에도 필자의 집에는 TV가 여전히 거실 벽에 잘 걸려있고, 심지어 볼록 TV에서 벽걸이 TV로 그 양태와 기능까지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 하여 맹자의 어머니는 자식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감행했다는데, 책의 무섭고 공격적인 목차처럼 TV가 해롭기만 하다면 TV쯤이야 요즘표현대로 진작 ‘쿨하게’ 버리지 않았을까.고증을 거치지 않은 영화라고 많은 비평가들 사이에서 지적을 받았던 영화 ‘300’은 ‘테르모필레 전투’를 배경으로 한다. 테르모필레 전투는 BC 480년 제 3차 페르시아 전쟁 때 테살리아 지방의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일어난 전투를 말한다. 이 전쟁 후 동서양의 역사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할 만큼 손에 꼽히는 세기의 전쟁이었다. 이 영화가 이슈화됨에 따라 영화 속 대사인 ‘This is Sparta'는 단연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물론 많은 이들이 이 영화의 화려한 비주얼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소위 말하는 ‘몸짱’ 사나이들의 마초적 삶을 보여주면서 관객들로 하여금(특히나 남성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이 영화는 고증을 거치지 않은 영화라는 지탄을 받았는데, 영화를 보는 내내 필자도 썩 유쾌하게 관람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주얼이 뛰어난 만큼 함정도 있었던 것에 눈살을 찌푸렸는데, 그 이유는 페르시아군이 야만인으로 그려졌다는 점과 반대로 그리스인들은 문명인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당시 지중해에서 중심지는 분명 페르시아였으며, 문화적?경제적 면에서 페르시아가 그리스보다 더 발전 되었었다. 또한 당시 페르시아는 북쪽의 스키타이와 전선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이는 곧, 그리스 전쟁에는 충분한 전력과 주력군이 투입 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에서 고증을 거치지 않은 지탄을 받을만한 함정이다. 언급한 이 사실들이 세계사 수업에서나 들을법한 내용인 것 같지만 실제로 필자는 이러한 정보를 게임에서 얻었다. 바로 GOD game의 예로 위에서 언급한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Age of Empires, AoE))’라는 게임에서 말이다. 수많은 시리즈가 만들어질 만큼 인기를 끈 이 게임은 요즘 표현대로 라면 ‘GOD game계의 Legend’이다.허버트 갠스(Herbert Gans))는 사회계층에 따른 문화적 분화를 ‘취향공중?취향문화’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갠스는 미국과 같은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취향과 미감이 공존하며 수용된다는 논거를 펼친다. 이와 같은 논거에서 조명해야할 점은 여러 종류의 심미적 기준들이 있어 사람들은 이들 중에 어떤 곳을 고를 기회가 공평하게 제공되어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은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미적인 모든 감각?경험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 즉, 절대적인 평가 기준이 없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더불어 갠스는 고급문화의 미적 기준만을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잘못된 것이며 각 취향문화의 고유한 미적 가치와 기준을 인정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갠스의 ‘취향문화론’은 고급문화를 유일한 미적 기준으로 삼으면서 대중문화의 심미적 가치를 저급한 문화라 무시하는 엘리트주의적 대중문화 비판론에 대한 반론으로 제시 되었다. 그래서 그는 사회 내에 존재하는 다양한 수준의 문화적 취향을 가능한 한 중립적으로 범주화 하고 대중문화의 다양한 취향이 나름대로의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강변한다.그러나 갠스의 이와 같은 이론은 대중의 취향과 대중문화의 미학에 대한 가치평가와는 거리가 먼 것이 사실이다. 갠스 역시 대중의 취향이 저급하다는 엘리트주의적 비판론인 부정론자들과는 다름없이 고급문화의 미적가치를 기준으로 대중문화의 다양한 취향을 위계화 하고 있다. 다만 기존의 부정론자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그는 대중이 고급한 문화를 수용하지 못한 이유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들에게 고급문화를 즐길만한 교육의 기회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다원론적 입장에서 본다 해도 갠스의 논거에는 오류가 있다. 그러나 고급문화의 미적 기준만을 유일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은 잘못된 것이며, 각 취향문화와 고유한 미적 가치와 기준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주목할 만하다.지적 사고에는 필연적으로 문자와 활자라는 체계가 따라야 한다는 통념 때문인지 많은 이점에도 불구하고 대중매체―TV, 인터넷, 영화 등―는 교육과 거리가 먼 것으로 낙인이 찍혔다. 만화는 유희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고, 비디오게임은 아이들의 폭력성을 배양하며 TV는 저급한 대중문화를 담고 있다는 통상적인 이유 때문이다. 이와 같은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교육이 문자와 활자라는 체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고, ‘학교 교육’에서만 교육이 일어난다는 사고의 오류를 범했기 때문이다. 다음 인용문을 이러한 사례를 잘 지적하는 예이다.존듀이는 《경험과 교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교육계에 만연한 가장 잘못된 생각은 지금 공부하고 있는 것만 배운다는 믿음이다. 공부를 하면서 형성되는 태도나 호불호를 통한 부차적인 학습은 받아쓰기나 지리, 역사, 수업을 통해 직접적으로 배우는 내용만큼이나 중요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사는 동안 계속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몇 해 전 미국 만화시리즈 ‘심슨가족’에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영부인 카를라 브루니 풍자편이 방송되었는데, 세계 동영상 공유사이트들에 공개 된 이 영상이 카를라 브루니를 ‘요부’로 풍자하였다는 내용으로 뒤늦게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애니메이션계에서 해학과 풍자로 따를 자가 없는 ‘심슨가족’은 이처럼 단순히 오락적 유희만 제공하지 않는다. 여러 가지 사회문제도 더불어 생각해볼 수 있는데, 사실 양태만 애니메이션이지 내용과 구성 자체는 성인들도 가끔씩 고민하며 봐야할 만큼 어려운 ‘어른 만화’이다. 과 ‘델프트의 스핑크스’라고 불리는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Jan Vermeer)의 작품 는 범속한(mediocre)문화와 저속한(brutal)문화를 양분하는 기준이 ‘상징적, 미학적 가치를 내포한 것’이라고 할 때, 과 의 차이점은 무엇일까.개인들 사이에는 수많은 차이점이 존재한다. 이러한 ‘차이’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에서부터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것까지 그 양태가 다양하다. 그런데 각 개인이 지닌 무수한 차이들 가운데는 사회적으로 그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차이들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것들도 있다. 예를 들어 남녀의 성별, 연령에서 일어나는 차이, 소속 친족 집단, 소유 재산의 많고 적음에 따른 차이 그리고 종교의 차이 등은 거의 모두 사회에서 중요한 차이로 간주되는데 이런 차이들은 한 사회의 구성원이 몇 개의 상이한 사회범주(social category)로 분류되어 속하게 되는 기준으로 작용한다. 인간은 보다 나은 편리와 이익을 위해 기계를 비롯한 많은 매체를 발전시켜왔다. 이렇게 발전된 것들은 인간 생활 저변에 영향을 미치는 ‘교육’에도 도구로서 적용해왔다.
뮤직박스(Music Box, 1989)악한 아버지도 사랑해야 하는가음악이 흐르고 댄스파티 장면으로 시작한 영화는 ‘가볍게, 편안하게 볼 수 있겠다.’ 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영화의 방향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일류 변호사인 주인공 앤 탤버트(Ann Talbot: 제시카 랭 분)의 아버지 마이크 라즐로(Mike Laszlo: 아민 뮬러-스탈 분)가 이민할 때에 전범을 숨기고 위장이민을 한 헝가리의 군인 출신이이며, 유태인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전범자라는 통보를 받게 되었다. 탤버트의 끈질긴 변호 끝에 아버지는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헝가리에서 평생 아버지를 협박한 자의 동생을 찾아가 아무것도 모르는 동생에게 그의 오빠의 유품을 찾아주기 위해 전당포 표를 받아온다. 탤버트는 전당포에서 뮤직 박스에 있는 사진을 보고 엄청난 충격에 빠진다. 끔찍한 비밀이 바로 그 뮤직 박스 안에 숨어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법정에서 보았던 증인들의 사진이었다. 그것도 증언과 일치하는 비극적인 진실이 쏟아져 나왔다. 조금은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보고 있는 나도 숨이 막히는 장면이었다.제목을 비롯하여 영화 도입부까지 가볍게 볼 수 있을 거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영화의 주제는 굉장히 무거웠다. 이 영화는 진실을 규명하여 사회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가치와 가족에 대한 사랑과 보호라는 가치가 서로 충돌하는 상황을 제시하고 이러한 상황에서는 무엇을 더 높은 가치로 두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진실로 인간적인 고뇌에 중점을 맞춘 영화인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가족의 사랑과 보호라는 가치보다는 진실 규명과 정의의 실현이라는 가치에 손을 든다.뮤직 박스처럼 많은 정치, 사회적인 색채의 영화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진 진실을 밝혀내고, 그에 대한 사회적 파장을 영화 안에 담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려낸 영화는 진실 규명으로 인한 ‘사회적 파장을 감수하더라도 진실을 밝혀야한다’와, 사회적 파장의 역효과를 감안해 진실을 숨기는 ‘사회적 안정’을 바라는 두 가지 입장으로 나뉜다. 대부분의 영화는 사회적 파장을 알지만 진실을 규명해야한다는 쪽의 입장이다.아버지는 딸에게서 진실을 듣고도 뉘우침이나 아주 조금의 죄의식도 없이 무죄판결의 기쁨에 젖어 너무도 당당하게 웃고 있었다. 손자에게 말을 태워주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자상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러한 아버지를 바라보며 탤버트가 진실을 밝히기까지의 많은 내적 갈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현실 세계에서는 진실을 규명하는 것보다 진실을 은폐하는 일이 더 많지 않았나, 혹은 많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사회적 위치, 명예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져버리고 진실과 정의를 선택한 ‘변호사’ 탤버트. ‘당장의 악보다는 편협한 이념이 더 큰 죄를 저지르게 된다.’는 말에서 보았을 때 탤버트는 진실을 밝히는 것보다, 진실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서 최고의 변호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국가가 바라고 국민이 지향해야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Ⅰ. 작가Ⅱ. 작품Ⅲ. 작품해석 및 다른 사조와의 비교- 에로티시즘 측면에서의 몽고반점- ‘식물성’을 꿈꾸는 몸- 비디오 아티스트 : 포스트모더니즘 / 화공 : 낭만주의(유미주의)→ 몽고반점과 「광화사(狂畵師)」의 비교- 도덕적 윤리와 금기라는 선위에 공전하는 예술- 원초적 순수성을 추구한 예술가 소설) -「몽고반점」Ⅰ. 작가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작가는 1993년 겨울 호에 시가,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어서 다음해인 1995년에 ≪한국일보≫가 뽑은 우수소설가상을 수상하고, 1999년 중편소설 「아기 부처」로 한국 소설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2000년에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그리고 2005년도에 이상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작가는 아버지 ‘한승원)’의 뒤를 이어 이상 문학상 수상자가 됨으로 부녀가 나란히 동일한 문학상을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Ⅱ. 작품이상 문학상 심사평에서 밝힌 것처럼 「몽고반점」은 탄탄한 줄거리와 예사롭지 않은 문체로 인간의 근원적인 성적 욕망과 예술혼이라는 진지한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 인간에게 성적 욕망(Libido)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몽고반점」은 이런 인간의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욕망을 ‘예술혼’이라는 것으로 승화시키고, 여성의 이미지로 상징되는 ‘꽃’과 ‘식물성’을 조합해 다분히 페미니즘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하여 이 소설에서 ‘식물성의 이미지’가 기존의 페미니즘 소설에서 상징하는 유연성이나 부드러움, 포용성, 반문명성 등의 이미지에 국한되어있지는 않다. 이 소설에서 등장하는 식물 내지 꽃은 에로티시즘)과 긴밀히 연결되어있는데, 작가는 이를 인간의 원초적 욕망인 성적 욕망과 예술혼을 연결시키는 구조에서 식물과 꽃을 매개체로 사용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약간의 학위논문이 나오고 있고 「채식주의자」와 관련하여 학술지 논문이 발표되고 있으나, 「몽고반점」은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발표된 지 5년이 지나도록 작품에 대해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연구가 거의 없는 편이다.Ⅲ. 작품해석그제야 그는 처음 그녀가 시트 위에 엎드렸을 때 그를 충격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모든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것이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라는 모순, 그 모순에서 배어나오는 기이한 덧없음, 단지 덧없음이 아닌, 힘이 있는 덧없음. 넓은 창으로 모래알처럼 부서져 내리는 햇빛과, 눈에 보이지 않으나 역시 모래알처럼 끊임없이 부서져 내리고 있는 육체의 아름다움…… 몇 마디로 형용할 수없는 그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와, 지난 1년간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던 성욕조차 누그러뜨렸던 것이었다.)- 에로티시즘 측면에서의 몽고반점에로티시즘은 다양한 심리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데, 에로티시즘은 대개 ‘모태회귀’를 상징한다. 모태회귀는 달리말해 ‘육체성 회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인간이 모태와 분리되는 순간 느끼는 자아 상실감은 몸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필연적으로 자아 상실감을 느끼며 태어난다. 그런데 에로티시즘에서 자아 상실을 고지하는 곳은 바로 ‘몸’이다. 따라서 몸은 자아 상실을 고지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된다. 몸의 욕망은 성적 욕망으로 표출되어 나오기 때문에 에로티시즘에서 타자와의 성적 결합은 상실한 육체성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에로티시즘은 몸을 그 의미의 지평적인 공간으로 삼고 있으며 몸은 에로티시즘의 해석적 토대인 자아와 타자, 그리고 욕망을 한데 집약하고 있는 상징적 공간(Space)이 되는 것이다.작가 한강은 「몽고반점」에서 인간의 유미적 추구를 통한 그 욕망의 종국을 그려내고자 했다고 밝힌바가 있다. 작가의 말처럼 「몽고반점」은 주인공(화자)가 성년이 넘어서까지 몽고반점을 지니고 있는 처제를 향한 도덕적, 윤리적으로 금지된 성적, 예술적 욕망을 품고, 결국 파멸로 치닫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처제에 대한 형부의 금기시된 욕망이라는 다소 파격적이면서도 진부한 소재를 바탕으로 삶과 예술에 대한 근원적이고 원초적인 것에 대해 심도 있게 탐구하고 있다.알몸의 두 사람을 상상하는 순간, 그것은 모욕이라고, 더럽힘이라고, 폭력이라고 그는 느꼈다.가장 추악하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의 끔찍한 결합이었다.- ‘식물성’을 꿈꾸는 몸처제가 아내의 또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는 고도의 상징성으로 인하여 작가는 ‘형부와 처제’라는 구조에서 간통이라는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에서 능숙하게 잘 벗어났다. 그리하여 ‘형부와 처제’ 이 두 사람의 결합이 육체적 욕망을 초월한 심미적 기구(祈求)로 변모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몸을 매개로 하는 ‘섹스’ 역시 이른바 ‘몸 담론body discourse)'으로 순수와 아름다움의 극단적 추구를 상징하는 하나의 제스처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제스처를 통해 미의식은 식물성을 꿈꾸는 몸, 식물성과 관련- 에로티시즘 측면에서의 몽고반점된 에로티시즘의 상징과 금기시 되는 욕망으로 드러난다.“그러니까…… 이제 알겠어요. 그게 내 뱃속 얼굴이라는 걸. 뱃속에서부터 올라온 얼굴이라는 걸.”그제야 그는 그녀의 표정이 마치 수도승처럼 담담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나치게 담담해, 대체 얼마나 지독한 것들이 삭혀지거나 앙금으로 가라앚고 난 뒤의 표면인가, 하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하는 시선이었다.이처럼 처제의 ‘몸’은 식물성의 세계를 꿈꾼다. 대개 여섯 살이 되면 저절로 없어지는 것이 성인이 되어서까지도 엉덩이에 이를 지니는 처제는 이미 이 현실세계에서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추방된 자의 상징임과 동시에 ‘원형적 순수’를 의미한다. 여기서 식물성의 세계가 단순히 유약한 세계만이 아니라 원시의 순수한 생명력을 상징한다는 것에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그것이 태고의 것, 진화 전의 것, 혹은 광합성의 흔적 같은 것을 연상시킨다는 것을, 뜻밖에도 성적인 느낌과는 무관하며 오히려 식물적인 무엇으로 느껴진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비디오 아티스트와 화공 : 몽고반점과 「광화사(狂畵師)」의 비교작가는 주인공의 직업을 ‘비디오 아티스트’로 설정하였는데 현대 예술가로 상징되는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기존의 ‘화가’라는 직업이 화폭이라는 2차원의 세계에 미(美)를 ‘재생’하거나 ‘모방’하므로 예술을 빗어냈다. 그러나 「몽고반점」에서는 주인공 자신의 몸에 꽃을 페인팅 하였는데 이러한 행동은 화폭을 위한 ‘모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모든 ‘행위 자체’가 예술이 되도록 하기위한 행동이었다. 플라톤이 예술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차용해 쉽게 말해보자면 ‘모방에 대한 모방’이 아니라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직업 설정을 통해 자신이 직접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수일 후부터 한양 성내에는 괴상한 화상을 들고 음울한 얼굴로 돌아다니는 늙은 광인(狂人) 하나가 생겼다.그의 내력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그의 근본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괴상한 화상을 너무도 소중히 여기므로 사람들이 보자고하면 그는 기를 써서 보이지 않고 도망하여 버리곤 한다.이렇게 수년간을 방황하다가 어떤 눈보라 치는 날 돌베개를 베고 그의 일생을 막음하였다. 죽을 때도 그는 족자를 깊이 품에 품고 죽었다.-김동인 「광화사(狂畵師)」 부분-위에 인용된 작품은 김동인의 「광화사(狂畵師)」로 1935년 《야담》에 발표되었다. 일전에 1929년에 발표된 「광염소나타」와 함께 김동인의 유미주의적 경향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광염소나타」에서는 방화를 비롯해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명공을 하나씩 지어내던 음악가 백성수에 대해 화자가 “있으나 없으나 한 쓸데없는 목숨보다는 위대한 음악이 더 소중하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음에 반해, 「광화사」에서는 그런 식의 예술 지상주의는 보이지 않는다.김동인의 예술 지상주의적 취향이 작품 인물인 ‘솔거’를 통해 드러나는데, 솔거는 미인도 제작에 열정을 비롯해 자신의 삶을 받히는 화공이다. 작가는 솔거를 통해 가장 소중한 것의 희생 위에서만 위대한 작품이 완성된다는, 따라서 예술의 가치는 그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작가의 성향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사료된다. 이는 솔거로 상징되는 예술가의 강렬한 예술에 대한 갈망의 비극적 결말을 통해 ‘절대적인 미(美)’의 추구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정인지를 암시를 통해 알 수 있다.이처럼 「광화사(狂畵師)」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솔거에게는 예술이 방화나 살인 같은 파괴적인 행위와 맞바꾸어지는 대상이 아니다. 그에게 예술이란 사람들로부터의 소외를 지워주는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그는 너무도 추한 얼굴로 인해 사회에 정상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고 예술을 통해 위안을 얻는 예술가의상(像)으로 그려진다. 예술가들은 어느 정도 광기를 가지고 있어 세상에 적응할 수 없는 인물이며, 그러한 인물이어야만 뛰어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낭만주의의 예술가상 이었다. 솔거가 보여주는 이러한 예술가상이 바로 낭만주의의 예술가상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므로 사회에게 소외된 솔거의 미인도는 자신의 도피처이자 세계에 대한 일종의 반항으로 생각할 수 있다.솔거는 처녀를 데려와 미인도를 그리며 그의 예술 세계를 완성해 가기위해 노력했다. 그의 예술 세계는 속세의 어떠한 가치도 침범하지 않은 ‘순수’의 세계이며, 온전히 자신만의 세계였다. 그러나 그가 미인도를 완성하기 직전인 미인도의 눈동자를 그리기에 앞서 치명적인 오점을 남긴다. 그것이 바로 솔거가 처녀에게 세속적인 욕망을 가르친 것인데, 이를 달리 보면 그것은 솔거가 자신의 예술 세계에서 속세와의 타협을 한 것이라고 볼 수 도 있다. 이러한 행동은 큰 대가를 불러온다. 처녀의 눈에서 청순함과 깨끗함 대신 세속의 욕망을 알아버린 눈동자를 봤을 때 그는 자신의 예술세계가 깨진 것을 알았다. 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처녀를 다그치고, 결국에는 처녀를 죽이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솔거의 행동과 이야기의 전개과정은 작가 김동인의 예술가에 대한 입장을 잘 나타내준다. 예술가에게는 평범한 보통 사람과는 다른 ‘천재성’과 ‘광기’가 내제되어있으며, 자신의 예술 세계 창조를 위해 필연적으로 고독이 동반 된다는 것이 바로 김동인의 생각하는 예술가상인 것이다.
-지능이 학업 성취에 미치는 영향-‘I.Q’의 정의는 ‘Intelligence quotient의 약어로 지능 검사 결과로 지능의 전도를 총괄하여 나타내는 수치’이다. 뿐만 아니라 지능은 인간의 지적 능력을 표명하는 대표적인 심리학적인 개념으로 이해된다. 일반적으로 학업 성취에 차이가 생기는 가장 큰 요인으로 학습자의 능력 즉, ability 차이 때문이라고 받아들인다. 여기서 ‘지능’은 이러한 ability를 측정하는 것으로 가정 되어왔으며 이로 인해 도출된 결과인 I.Q는 학생의 지적 특성을 이해하고 진단하는데 중요한 지표로 활용 되었으며 혹은 아이가 훗날 학업 성취도 면이나 직업에서의 성공을 가늠하고 예언하는 데 차용 되었다. 필자가 초등학생인 시절만 해도 일반적으로 ‘I.Q와 학업성취의 관계는 비례한다.’ 라고 알려져 있었다. 아이들의 성향, 관심분야 등과 같은 다각적 측면에서의 사료는 ‘I.Q’라는 수치 앞에서 과감히 생략 되었다. 필자의 경우도 이러한 ‘생략’ 과정으로 인해 곤욕을 치를 적이 있다.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당시 12살짜리 필자는 곱셈을 힘들게 외우느라 수학시간이면 괜스레 배가 아파오고, 리가 아플 만큼 수학을 ‘못해서’ 싫어하는 학생이었다. 곱셈을 외는 과정을 힘겹게 거친 필자에게 나눗셈 개념이 쉽게 이해될 리 없었다. 그런 필자가 단지 I.Q 측정 지수가 높다는 이유로 재학 중인 초등학교 내에서 시행하는 수학 경시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참여 인원이 저조하여 각 반 담임선생님의 추천을 받아서 말이다. 문제지를 받는 것조차 싫었던 필자는 ‘8점’이라는 점수를 받았다. 당연히 꼴찌였다. 그것도 내 전(前) 석차 학생과는 엄청난 점수 차이로 말이다. I.Q를 이유로 수학 경시대회에 차가해야 한다는 사실은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교실에 앉아서 펜과 종이로 소금물의 농도를 구하지 못하면 숙제로 그 문제를 10번 써서 제출해야 한다는 것만큼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나눗셈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수학 경시대회에 참가한 이유가 단지 I.Q 때문이라는 것도 억울한데, 그 경시대회에서 꼴찌를 한 사실이 알려지자 필자는 한동안 친구들 사이에서 놀림감이 되었다. 이로 마음이 많이 상해있던 필자에게 어머니께서는 수학 학원에 보내는 즉각적인 조치보다 오히려 평소 필자가 관심 있어 하고 잘하는 점을 이야기하며, 풀이 죽어있는 모습에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음대 진학을 목표로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친 필자는 음악 시간이 되면 해당 학급의 반주자로 수업 진행에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피아노 연습을 위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 혼자 시간을 보내는 법에 대해 상당히 익숙한 편이었는데 그때 선택한 방법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각종 문예창작에서 두각을 보였다. 필자의 어머니는 바로 이점을 들어 용기를 북돋아 주신 것이다.에서 요리는 수준급이나 사교서이 부족한 아이, 축구를 굉장히 잘하지만 미술에는 감각이 부족한 아이 등과 같이 강점과 약점이 공존하는 아이들이 등장했다. 이와 동시에 한 분야에서 성공했다 알려진 저명한 사람들에게도 강점뿐만 아니라 단점 또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제시 되었다. 에서 끊임없이 언급하는 불변의 주제는 바로 ‘가장 잘 즐기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성공한 사람들로 제시된 모델로 디자이너 이상봉, 가수 윤하, 발레리나 박세은, 송명근 박사 들은 자신들이 가진 ‘장점을 잘 활용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강점과 단점이 공존했다. 눈에 띠는 공통점이 있다면 이들 모두 바로 ‘자기이해’ 즉, 자기 성찰 지능이 높았다.H. Gardner는 ‘신체-운동(bodily-kinesthetic)지능, 음악(musical)지능, 언어(linguistic)지능, 대인관계(interpersonal)지능, 논리-수학(logical-mathematical))지능, 공간(spatial)지능, 내성(intrapersonal)지능, 자연탐구(naturalist)지능’과 같이 서로 독립적인 다양한 능력이 인간에게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여기서 지능이란 특기나 재능과는 이질적인 개념으로 쓰이는데 말 그대로 ‘Intelligence'이다. 이 여덟 가지의 지능은 ‘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 MI'라 하여 번역하면 ‘다중지능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Thurstone의 기본 정신 능력)와 유사한 구조적 개념을 보인다. L. Thurstone은 단일한 구조의 지능에서 다요인 구조의 지능으로 전환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사람으로서 다요인 분석의 이론을 개발, 적용하여 7개의 ‘기본 정신 능력’―언어 이해요인(verbal comprehension factor, V), 단어 유창성 요인(word fluency factor, W), 수 요인(numerical factor, N), 공간 시각 요인(spatial visualization factor, S), 기억 요인(memory factor, M), 추리요인(reasoning factor, R), 지각 속도 요인(perceptual speed factor, P)―을 확인 함. 일반적으로 시행되는 집단 지능 검사는 이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이론 기초의 초석이 되었다.다시 Gardner로 돌아가서 다중지능 이론을 살펴보자. 위에서 언급한 여덟 가지로 분류 가능한 지능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Gardner는 문화 인류학, 인지 심리학, 발달 심리학, 심리 측정학, 인물 전기연구, 동물 생리학, 신경 해부학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분야의 연구 결과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8개의 준거를 설정 하였다. 다중지능이론이 기존의 이론들과 차별되는 가장 중요한 점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지능이라 생각하지 못하였던 능력―예를 들어 내성 지능(intrapersonal intelligence)의 경우 스스로를 잘 이해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자아 성찰이라는 개념으로 통용 된다. Gardner는 이러한 것도 지능으로 보았다는 것―들이 ‘지능의 기능’을 할 수 있다는 가정이다. 이러한 가정이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현재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학교 교육이 특정 지능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정면으로 지적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큰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제시된 여덟 가지의 지능을 다 가져야 훌륭한 사람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말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야 제시된 모든 지능을 다 가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Gardner의 다중 지능 이론에서 말하는 ‘지능’은 타고난 기질 외에 풍부한 환경을 통해 다른 지능이 촉진 될 수 있다는 특성을 가진다.다큐멘터리에서 언급 된 수업 방식 중 하나인 ‘Pod 수업’은 스스로 강점을 선택하여 수업을 진행한다.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인 것으로 본다는 시각을 근거로 시행한 수업인데 변화와 발전을 위해서 아이들의 ‘호기심’을 활용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주목해야할 점은 강점을 선택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동시에 단점 또한 인지시킨다는 것이다. 이러한 장점, 단점의 동시적 인지를 통해 아이들로 하여금 의식적 노력을 도출한다. ‘Pod 수업’을 공식적으로 받은 경험은 없지만 필자는 Pod 수업과 같은 유사한 논리로 학습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채보) 훈련을 하던 필자는 박자표를 기준으로 음표가 마디 안에 적절히 배치된다는 점을 상기하다가 우연히 나눗셈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게 되었다. 방학 특별 과제로 담인 선생님께서 내주신 숙제인 ‘문제집 한 권 끝까지 풀기’도 해결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보면 정말 어이없게 해결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는 단점을 강점과 연결시켜 뒤처지는 지능을 의식적 노력을 통해 자발적으로 이끄는 원리인 ‘Pod 수업’과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다큐멘터리 중반부에 등장한 ‘Savant Syndrome'은 자폐증 등의 뇌기능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이와 대조되는 천재성을 동시에 갖게 되는 현상을 일컬어 말한다. 그에 대한 예로 레인맨의 실제 주인공인 ‘킴 픽’ 등이 소개 되었다.A: 레인맨의 주인공 킴 픽은 어떻게 기억력이 98.7%나 되는 걸까? 사전 1만개를 아예 통째로 외운 다면서?B: 그게 바로 서번트 신드롬의 예야. 내가 알기론 세계에서 약 100명밖에 되지 않대. )위의 인용문에서 등장하는 이 Savant Syndrome의 증상을 보이는 사람은 3/4 이상의 지능이 70 이하라고 한다. 필자는 일 년 전, ‘두뇌 클리닉’에서 파트타임을 한 경험이 있는데, 그곳에는 발달장애 아동들이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치료를 받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아스퍼거 장애’) 아동을 몇 개월간 지켜본 적이 있다. 아스퍼거 장애는 자폐증과 유사한 발달 장애인지라 놀이 치료과정에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자폐아동은 대개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반복적으로 하려는 특징이 있어서 놀이 치료 과정에 대해 좋고 싫음에 대한 행동이 확연히 드러난다.) 당시 필자가 하던 일은 아이들의 상태를 분석하기 위해 시행하던 테스트 결과 수치를 기록하는 일이었다. 그때 한 아스퍼거 장애 아동에게서 굉장히 놀라운 점을 발견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단어와 문장만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의사소통이 쉽지 않은 아동(이하 ‘윤수’:가명)의 한 행동 때문이었다. 테스트가 끝나고 잠시 쉬는 시간에 윤수는 로비에 계신 부모님께 자신의 가방을 가지러 갔다. 윤수가 가지고 온 가방 안에는 악보 노트가 들어있었는데 언뜻 보기에도 그건 채보 노트였다. 윤수는 쉬는 시간 내내 악보를 읽으며 음을 흥얼거렸고, 빈 부분을 끊임없이 채워나가고 있었다.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윤수의 행동에 대한 의학적 해석은 할 수 없으나, 필자는 에서 Savant syndrome 이 언급 될 때, 일 년 전 만난 윤수를 떠올렸다.
‘럭셔리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크리스찬 디올과 이브생로랑, 루이뷔통, 지방시 명품 브랜드가 LVMH회사의 제품들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나이 든 창업자와 무능한 후계자들은 경제력을 갖춘 금융전문가와 재벌 그룹 총스들에게 명품을 팔나 넘겼고, 재벌들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하여 제품의 원가를 대폭 낮추고 최고급 이미지로 상품을 재포장했다. 대부분의 명품족들은 디올과 루이뷔통과 같은 명품 브랜드는 단지 17, 18세기 장인들이 귀족과 왕실에 대준 최고급 수준의 가방과 액서서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명품의 이미지는 이미 50년 전에 사라졌다. 결국 ‘최고급 수제품’이라는 명품의 가치는 사라지고, 명품은 대량 생산 되어 비싸게 팔리는 제품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 되어버렸다. 『럭셔리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이라는 이 책은 섬뜩하리만큼 무섭게 명품의 그림자를 설명해준다.젊은 여성을 겨냥한 영미권 소설을 지칭하는 신조어로 한 때 ‘칙릿 소설’이 서점가를 비롯해 영화 산업을 휩쓴 적이 있다. 여기서 칙릿이란 ‘chick+literature’가 어원이며, 20대 여성 독자를 겨냥한 영미권 소설로 90년대 중반에 나온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그 시발점이라 할 수 있는데, 칙릿 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 되자 ‘칙(Chick)’이라는 단어 자체에 담긴 약간의 비하적 시각을 문제 삼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시대 변화를 보여주는 문화적 흐름이라는 것으로 귀결 되었다. 칙릿의 색깔을 가장 잘 입은 작품으로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sex and the city’ 등이 있는데 칙릿 소설의 예로 제시된 이 두 영화는 ‘명품’ 이라는 또 다른 카테고리로도 묶인다. 이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남자 때문에 질질 짜는 신파적인 여자들이 아닌 자기를 사랑하고, 능력이 있으며 그리고 삶의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여자들이 등장한다.영화에서 등장하는 기생 독신자(Parasite Singles)라 불리는 신종 사회 계층은 대학 졸업 후 보수가 많은 비서, 교사, 기업 중역 등과 같은 직종에 종사하며 스물다섯 살에서 서른네 살까지의 미혼 여성들을 말한다. 이들의 경제력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막강하다. 비단 일본만 하더라고 기생 독신자는 전체 인구인 1억 3천 만 명 가운데 약 1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분석 된 사례도 있다. 게다가 인구의 10퍼센트를 차지하는 이들에게서 명품 시장의 23퍼센트 수익이 나온다 한다. ‘럭셔리 그 유혹과 사치의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다음은 미우치아 프라다의 말이다.“갈등이 심해요. 나는, 사치란 하인과 16세기 식 서비스라고 말하고 싶어요. 희귀한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그게 어떤 건지 난 알아요. 요즘은 명품을 만들기가 쉬워요. 브랜드의 전통에 약간의 디테일과 약간의 사치스러운 소재를 가미하면 명품이 되죠. 난 그런 것을 참을 수 없어요……. 진짜 럭셔리한 사람들은 지위를 싫어해요. 부티 나는 옷을 입었다고 해서 부자로 보이지는 않아요. 당신은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정신을 보나요, 아니면 섹시함이나 독창성을 보나요? 그냥 큰 다이아몬드를 쳐다보기만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만족감이나 얻을 뿐이죠. 이런 식으로 돈을 기준 삼아 판단하는 건 끔찍하다고 생각해요. 명품의 상징을 지니고 다닌다 해서 더 나아 보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이에요. 사실 그건 아무것도 주지 못해요. 그것은 진부한 생각일 뿐이에요.”)명품(名品)은 ‘이름이 난 물건’ 이라는 한자의 직역과 그 본뜻이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훌륭하여 이름이 난 물건, 장인 정신이 살아 있는 그리고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예술적인 물건’을 ‘명품’이라 명명(命名)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명품은 조금은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정신’이 거세되고 거대 자본을 입게 됨으로써 고가의 사치품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제 명품은 마케팅 과정에서 새로 도출 된 의미와 상징성으로 ‘사치’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오늘날의 명품 업계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것은 ‘최대한 좋은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닌 ‘최대한의 수익성’이다. 이는 지난 30년 동안 한결같은 명품 업계의 양상이다. 예전에는 명품 브랜드가 개인의 회사였다. 하지만 재벌 기업가의 인수 이후 명품 업계는 거대 자본과 손을 잡으면서 이른바 ‘명품 숭배’ 현상이 ‘명품 업체’의 주요 목표가 되었다. 이들은 핸드백, 지갑, 심지어 비키니에 이르기까지 판매되는 모든 제품에 로고를 뿌림으로써 자신들의 ‘명품 업체’의 상표를 강화 했다. 이는 곧 대중에게 새로이 전파되는 복음처럼 무지막지한 광고와 함께 ‘명품 숭배’의 초석을 닦았다. 다음은 이러한 거대 광고 결과로 나온 제품 라인에 대한 아르노의 견해이다.“그것은 환상을 충족시켜주죠. 또 아주 새롭고 독특해서 구매하고 싶어집니다. 사실, 그것을 꼭 구매하지 않으면 허무할 것 같은 느낌이 들 겁니다. 자신이 뒤처지는 듯 한 기분이 들 거예요.”)수요는 소비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반영하는데,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실현하는 방식은 경제적 요인만으로는 설명 될 수 없다. 이와 관련하여 차별화, 모방, 유행과 같은 소비의 메커니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소비를 통해 자신이 속한 집단의 정체성을 표현할 뿐 아니라, 다른 집단의 차별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소비의 차별화 전략은 ‘계급간의 문화적 구별 짓기’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부르디외)는 현대 프랑스 사회에서 문화적 취향과 사회 계급 간에 매우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주장했다.이는 음악, 회화 등과 같은 예술에서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스포츠, 패션 등을 향유하는 방식에서 학력 수준과 사회 계급에 따라서 뚜렷한 차이가 발견 된다는 것이다. 취향의 경우는 가정환경 같은 개인이 성장한 생활 조건에서 배양 된 것인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을 ‘타고난 성향’으로 인식하고 다른 사람의 취향에 대해서는 배타적 경계성을 가지게 됨으로써 계급을 구분하고, 다른 사람의 취향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가지게 됨으로써 계급을 구분하고 경계 짓는 강력한 심리적 기제로 작용한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상민 이라는 신분에 따른 소비 품목이 명시적으로 규제 되었다. 하지만 산업화가 진행 되고 시장 경제체제가 통용되는 현대 사회는 어떤가. 형식적으로는 소비의 대중화와 민주화가 이루어졌지만, 사실상 소비의 ‘차별화 전략’을 통해 계급적 지위의 표현이 재생산 되고 있다. 거대 광고 결과로 나온 제품 라인에 대한 아르노의 견해는 소비를 통한 계급적 지위의 표현이 재생산 되고 있음을 아주 잘 보여주는 예이다.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개념으로 계급에 따른 소비의 차별화 전략 양상은 한국 사회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그에 대한 단적인 예를 ‘개인 자가용’을 이용하여 들 수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기업 회장’의 이미지는 그랜저나 고급 외제 승용차와 함께 하여야 자연스럽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대기업 회장이라는 이미지에 1000CC 이하의 경차를 대입한다면 의외로 당혹해 하거나, 블랙 코미디의 일부인가 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반면 신입 사원이 그랜저나 고급 외제 승용차 따위를 타고 다닌다 하면 어떤가. 대기업 회장의 경차와 신입 사원의 고급 외제차 이 두 경우 모두는 지위에 어울리는 암묵적 규범을 깨뜨렸다는 이유로 구설수에 오르게 된다. 이는 즉, 현대의 소비는 단순히 상품 자체보다는 그 상품이 표상하는 ‘이미지’와 ‘기호’를 소비하는 성격이 필연적으로 동반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우리는 재화를 흔히 필수품과 사치품으로 양분한다. 어떠한 문화권에서든 이러한 구분은 존재하지만 무엇이 필수품이고 무엇이 사치품인지에 대한 기준은 각 문화마다 다르게 규정되어있다. 이처럼 경제는 문화와 사회의 영역으로부터 떨어져서 자율적으로 존재하는 영역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관 되어있다. 경제적 합리성은 인간의 의사결정 방식의 한 측면 일뿐, 사회제도와 문화적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보편적 원리가 아니라는 것인데 이는 인간의 경제 활동을 순수하게 공리적, 실용적인 것으로 환원할 수 없음을 소비, 교환, 생산 이라는 복합적인 관점에서 시사해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 된다.같은 사회 내에서도 필수품과 사치품의 구분이 변화하지 않고 항상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한 때 사치품으로 여겨졌던 것이 아무런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하거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하기도 하며 그 반대로 필수품이었던 것이 사치품이 되기도 한다. 사치품의 일환이었던 ‘설탕’이 필수품으로 자리 매김한 경우를 위에대한 예로 들 수 있다. 중산계급과 노동자 계급의 설탕 소비는 처음에는 귀족 계급의 소비를 모방하는 정도로 통하였지만 설탕이 대중적인 필수품으로 대두되면서 더 이상 특별한 사회적 지위를 표시하는 수단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사치품이 필수품으로 전환 되는 현상으로는 ‘텔레비전’을 예로 들 수 있다. 1970년대 우리나라만 해도 집에 텔레비전 보유 유무는 그 집의 생활수준을 판가름하는 잣대로 여겨졌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텔레비전은 더 이상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으로 자리매김을 하였다. 물론 경제적 가치의 차등은 있지만 이는 ‘상품’에 대한 수준의 차등 일뿐 앞에서 언급한 필수품과 사치품의 양분에 따른 갈등으로 문제가 야기되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