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건강 간호학 교육자료 - 임신 성 당뇨의 원인과 대처방법 - 교육장소 : 광주광역시 00 복지관 센터 교육자 : 간호학생 이원평 0591037 이 원평목차 1. 임신 성 당뇨란 ? 2. 임신 성 당뇨의 원인은 ? 3. 임신 성 당뇨와 일반 당뇨의 구분 4. 임신 성 당뇨가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 5. 임신 성 당뇨가 임신부에게 미치는 영향 6. 임신 성 당뇨에 좋은 생활습관 7. 참고문헌♣ 잠깐 들어가기 전에 이것은 알고 넘어가요 ~ ♡ 당이란 무엇인가요 ? - 우리 몸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ATP 라는 물질이 필요한데 , 이 ATP 라는 물질은 당을 분해해서 얻을수 있어요 ♡ 그럼 인슐린은 무엇인가요 ? - 우리 몸에서 음식물을 섭취해서 얻은 당이라는 영양물질을 ATP 로 분해하기 이해서 필요한 호르몬 입니다 .♡ 우리 몸에 분비되는 인슐린 췌장에서 분비되어 당을 분해하는 인슐린은 당뇨환자의 경우 이렇게 주사약이나 , 약물형태로 피하 지방을 통해서 몸에 주입을 해주기도 합니다 .♡ 당뇨병이란 무엇인가요 ? 당뇨병의 증상들 - ( 다뇨 , 다식 , 다갈 , 체중감소 ) 곧잘 피곤해진다 . - - 우리 몸에서 에너지를 얻어내기 위해서 분해되어 야할 당이 당을 분해시키는 인슐린이 잘 분비가 되지 않거나 , 몸이 인슐린을 잘 이용하지 못해서 체내에 분해되지 않은 당이 남아 있어 우리 몸에 여러 가지 제를 일으키는 내분비계의 질환이에요★ 임신 성 당뇨란 ? - 임신으로 인한 임부의 생리적인 변화와 관련되어 발생하는 당뇨병의 한 형태 ,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임부의 2~3% 에서 발생하고 있음 - 임부의 체내에서 당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 할만큼 인슐린 이 생산이 되지 않거나 임신 중 인슐린에 길항작용 이있는 호르몬이 증가해서 인슐린 의 조절능력이 감소해서 생기는 당뇨병의 유형 - 우리나라 모성사망의 3 대 원인 중 하나임 .★ ( 여기서 잠깐 !) 한국의 3 대 모성 사망원인이란 ? - 임신 중독증 - 임신성 당뇨병 - 분만후 질 다량의 질출혈 - 그외 ( 산과적 색전 증 , 산후감염 , 분만력의 이상 등 )★임신 성 당뇨의 원인 - 임부의 체내에서 인슐린의 생산이 결핍 - 임부의 체내에서 인슐린의 이용이 부족 - 임부의 체내에서 인슐린 길항제 과다생산 즉 , 임신을 유지하기 위한 임부의 체내에서 일어나는 호르몬의 변화로 인해서 인슐린의 생산이 결핍되거나 , 효율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거나 인슐린에 길항하는 물질을 과다하게 생산하게 되어 임신 성 당뇨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 임신 중 인슐린 대사의 변화는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요 ? 가 . 임신을 하게되 면 임신을 유지 하기 위해서 태반에서는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이라는 호르몬이 분비가 됨 나 .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 은 인슐린에 대하여 길항작용을 함다 . 임신 중에 부신피질에서 코티졸 이라는 호르몬 분비가 증가되고 , 이 호르몬이 모체의 세포나 조직에서 당이 이용을 감소 시켜서 고혈당 상태를 유발함 . 라 . 아기의 성장을 위해서 분비되는 성장호르몬 , 갑상선 호르몬이 고혈당 상태를 유발함 . - 가 , 나 , 다 , 라 와 같은 요인들이 모체에서의 인슐린 요구량을 증가시키는데 , 임부의 신체가 이 요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 인슐린 대사를 잘 하지 못하게 되면 당뇨병을 발생시키게 됩니다 .★ 임신 성 당뇨병에 잘 걸리는 임부 가 . 25 세 이상의 나이 나 . 임신 이전부터 비만인 경우 다 . 당뇨병의 가족력이 있는 경우 라 . 이전에 거대아 나 선천성 장애를 가진 신생아를 출산하거나 사산의 경험이 있는 경우 마 . 이전에 임신 성 당뇨병 병력이 있는 경우 바 . 양수의 양이 지나치게 많은 경우 ( 양수 과다증 )★임신 성 당뇨와 일반 당뇨의 차이점 임신 성 당뇨 일반 당뇨 가 . 임신을 한 후 발생하고 , 임신이 끝나면 당뇨증상이 사라짐 나 . 태반호르몬의 인슐린길항작용 으로 인하여 생김 다 . 태아의 기형을 유발하지 않는다 . 라 . 당뇨로 인한 합병증이 많다 . 가 . 임신여부와 관계없이 임신 전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 임신이 종결되어도 사라지지 않음 나 . 췌장의 내분비질환 장애로 인해 생김 다 . 일반당뇨가 있는 상태에서 임신을 할 시 태아의 기형을 유발할 수 있다 . 라 . 임신 성 당뇨에 비하여 당뇨로 인한 합병증이 적다 .★ 임신 성 당뇨가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 가 . 거구 증 - 임신 중반기 이후 임부의 몸에서 인슐린이 충분히 생산되지 못하여 고혈당이 생기고 , 태아에게도 고혈당이 생김 . 이때 인슐린이 포도당을 자극시켜서 태아의 세포 내로 다량의 포도당을 옮기게 되고 태아가 거구 증이 됨 - 이때 , 태아는 얼굴이 둥글고 토실토실하고 , 뭉툭해 짐 - 신생아는 간 , 비장 , 내장 , 심장비대 등의 증상이 있음나 . 저 혈당 증 - 출산 시 , 태반이 자궁 밖으로 나올 때 , 급작스러운 혈당의 공급의 중단으로 인해 저 혈당의 증상이 생기고 , 이로 인하여 뇌 손상이 유발될 수 있음 . 다 . 호흡곤란 증 - 태아의 혈액 내 높은 인슐린 농도로 인해서 폐가 잘 성숙 되지 않아서 생길 수가 있음라 . 선천성 기형 - 임신 중 혈당조절이 잘 되지 않아 발생하는데 , 신경관 결함 , 심장결함 , 위장계통 결함 , 신장기형 등이 있음 . 마 . 당뇨병 및 비만의 발생 율 증가 - 임신 기 후반의 태아의 대사장애로 인해 비만 및 당뇨발생 위험율 증가함 바 . 신생아의 사망 - 태반의 혈관합병증으로 인한 태반의 기능이상 , 혈당조절 불량★임신 성 당뇨가 산모에게 미치는 영향 가 . 감염 - 혈당관리가 잘 되지 않으면 비뇨생식기계의 감염증가 나 . 임신 성 고혈압 - 정상임부 보다 4 배 이상 높아짐 다 . 양수과다증의 빈도 증가 - 산모의 호흡곤란 빈도를 늘림 라 . 케톤산증 - 분만 전 태반 순환감소와 저산소증으로 인한 태아사망률을 50~80% 까지 증가시킴 마 . 산후출혈 빈도 증가★ 임신 성 당뇨의 위험성을 줄이는 방법 가 . 적당한 수준의 체중을 유지하기 나 . 고지방 , 고탄수화물 , 고단백 음식보다는 섬유질이 많고 , 고지방 , 저탄수화물 식이 섭취 다 . 식사량을 적당히 조절한다 .( 포만감을 느낄정도 ) 라 . 평상시에 꾸준히 운동하기♡ 임부의 운동 ( 체중조절과 태교 겸한 ) 임부의 운동은 적당한 체중의 조절 및 태아에게도 좋아요 ~♡ 임신성 당뇨임부에게 좋은 음식들★임신 성 당뇨산모에게 좋은 식이습관 과 생활습관 ♣ 식이 가 . 하루 에너지 섭취량은 2200~2500kcal 나 . 하루에 3 끼 식사와 3 번의 간식으로 소량씩 자주 먹기 다 . 곡류군 에서 단순당질의 섭취를 줄이고 복합 당질섭취 라 . 섬유질은 다양한 식품에서 하루 20~35g 정도 섭취 ♣ 조심해야 할 음식 가 . 탄수화물 나 . 단백질 다 . 지방 라 . 칼슘 마 . 철분♣ 운동 - 규칙적인 운동은 임부 체내 인슐린의 효율과 효능을 증가시켜 적은 양의 인슐린으로도 혈당을 정상수치로 유지할 수 있게 함 - 적당한 운동은 식욕을 둔감하게 하고 , 체중을 정상수준으로 유지하게 함 ♣ 임신 성 고혈압 산모의 운동 가 . 일주일에 3 번 이상 운동 ( 관절 , 근육에 무리가 안가는 ) 나 . 반드시 식이요법과 병행하여 실시 다 . 4 주 정도가 지나야 효과가 점차 나기 시작함 라 . 심박수가 분당 140 회를 넘지 않게 하고 , 20~30 분 정도가 적당함 마 . 운동 중 흉통 , 어지러움 , 가슴 두근거림 등이 있으면 중지♣ 혈당수치를 자주 체크하기 ♡ 가정에서 쉽게 사용할수 있는 혈당기를 구입합니다 . ( 의료기 상사에서 쉽게 구매할수 있어요 )♡ 혈당의 정상수치 - 70- 110mg/dl ♡ 당뇨의 합병증 유발하는 혈당 수치 - 125mg/dl 이상 ♡ 저혈당 ( 혈당 정상수치 ) - 50mg/dl 이하 ( 저혈당이 오면 공복감 , 허탈감 , 두통 , 식은땀 , 손발저림 , 무력감 , 아찔함 , 의식몽롱 , 경련 ) ♡ 식전과 식후 혈당차이 ( 혈당 정상수치 ) - 식후에는 30~50mg/dl 정도의 혈당치가 높아졌다가 식후 2~3 시간 후에는 정상 혈당치가 된다 .♡ 아이는 하나늠이 주신 축복이요 선물이라고 합니다 . 모두 건강한 아이 낳으세요 ~ ♡참고문헌 성인간호학 /2005/ 김조자 외 / 현문사 여성건강간호학 /2008/ 강남미 외 / 현문사 기초간호과학 /2005/ 송희영 외 / 현문사{nameOfApplication=Show}
0591037 간호학과 이 원평1.사교육의 유래고려시대고려시대 교육신라의 자멸로 전쟁 없이 평화 속에 수립된 고려는 신라의 문물제도를 크게 수정함이 없이 계승하였다. 따라서 이 시대 역시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불교가 사상의 주류를 이루었고, 교육은 당나라 제도에 따른 유교식이었다.고려시대의 학교제도는 930년(태조 13)에 경학(京學)을 세웠고, 992년(성종 11)에 국자감(國子監)을 창립하였으며, 1053년(문종 7)에 사학(私學)이 일어나기 시작하여 최충(崔沖) 등 12인이 사설의 학당을 개설하게 되어 소위 사학십이도(私學十二徒)를 이루게 되었다. 1271년(원종 12)에는 동서학당(東西學堂)을 세웠다. 지방에는 이와 대등한 향교(鄕校)가 있었으며, 국자감과 향교에는 공자의 위패를 모신 문선왕묘(文宣王廟)를 두고 이를 중심으로 학문을 강(講)하는 명륜당(明倫堂)이 있었다.특기할 것은 중국 후주인(後周人)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958년(광종 9) 과거제를 실시한 일이다. 과거제가 시행됨에 따라 유학이 흥하게 되고 대유학자와 대정치가가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학교는 과거를 위한 시험준비에만 급급하여 후일에는 과거제도의 폐해도 생겨났다.사학십이도 (私學十二徒)고려의 12개 사학(私學:私塾)이다. 12도의 시초는 1055년(문종 9) 문하시중(門下侍中:首相)으로 있다가 퇴관한 해동공자(海東孔子) 최충(崔; 984~1068)이 개성의 송악산 아래 자하동(紫霞洞)에 설립한 구재학당(九齋學堂:후에 문헌공도)에서 낙성(樂聖) 대중(大中) 성명(誠明) 경업(敬業) 조도(造道) 솔성(率性) 진덕(進德) 대화(大和) 대빙(待聘) 등의 9재를 가르친데서 비롯한 것이다. 이는 당시 국학(國學:국자감)이 시설 ·교육면으로 유명무실하여 학업 지망생이나 과거 응시자가 권위 있는 유학자가 세운 사학으로 모여들어 성황을 이룸으로써 다른 현관(顯官) 퇴직 유학들도 사숙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개경(開京)에 세운 사숙이 12개에 이르러 그 권위는 관학(官學)인 국자감을육의 이상을 실현해갔고, 교육의 주체도 관학에서 사학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물론 사림의 서원이라고 해서 과거를 아예 등진 것은 아니었지만, 과거는 출세를 위한 목표가 아니라 대의와 명분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해졌다.3) 초등교육서당서당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른 어떤 교육 기관보다도 숫자가 월등히 많았고 또 오랫동안 유지되던 사립교육기관이었다. 서당은 조정의 규제를 받거나 유림의 공론을 거쳐 설립되지도 않았다.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그 규모에 상관없이 서당을 열어 학생을 가르칠 수 있었다.서당은 가장 대중화된 교육기관이기도 했다. 양반집 자제 뿐 아니라 평민 자녀들까지 서당에 다니며 기초 글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양반 자제들에게 서당은 더 높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한 기초 과정이었던 반면, 평민 자제들에게는 처음이자 마지막 교육의 기회였다. 이런 점에서 서당은 가장 널리 퍼져있던 기초 교육기관이었던 것이다.서당은 운영 주체에 따라 여러 가지로 나뉠 수 있다. 가난한 선비가 생계를 위해 아이들을 가르쳤던 생계형 서당이 있는가 하면, 부잣집 자제를 위해 가정교사를 들였던 독선생 서당도 있었고, 한 집안에서 후손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개설한 문중 서당과 마을 사람들이 뜻을 모아 자치적으로 설립한 마을 서당도 있었다.a. 선생님과 학생어린이는 보통 7-8세 때 서당에 입학했는데, 보통 동짓날에 입학식을 했다. 입학한 후 대략 15-16세까지 서당을 다녔다. 지금으로 치면 중학교 과정까지 서당에서 마쳤던 것이다. 학생수는 적게는 서너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까지 되었고, 학생 연령은 7세에서 16세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종종 20세가 넘는 늙은 학생이 어린 아이들과 함께 글공부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서당의 개설에 어떠한 제재도 없었듯, 서당 훈장의 자격에도 특별한 기준이 없었다. 그래서 훈장들의 실력은 천차만별이었다. 경서와 역사 등에 박식한 훈장은 거의 드물었고, 대개가 주석서와 한글 언해본을 참고하며 경서의 뜻을 해독하는 수준이었다. 더구나 작문을 할 입학할 수 있었다.c. 교육과목서원에서는 유교의 경전을 가장 기본적인 학습 교재로 삼았다. 은 물론이거니와 그 범위에서 확대되어 유교의 을 숙지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성리학 관련 서적들을 공부했다. 예를 들어 주돈이의 , 장횡거의 , 이정 형제의 , 주희의 , 등이 그것이었다.그러나 서원의 공부가 유교 경전이나 성리학자들의 저서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경전 학습과 함께 강조되었던 것은 역사 공부였다. 그래서 , , 같은 방대한 역사서도 함께 공부했다. 그리고 정서를 함양하고 표현력을 키우기 위해 각종 문학서적들도 공부했다. , 과 같은 문학서적들이 그 교과서가 되었다.또 역법(曆法)이나 산술, 간단한 의학지식을 쌓는 실용 학습도 간간히 이루어졌다. 하지만 깊이 있는 사상 서적이라 해도 노장철학이나 불교에 관한 책은 절대 금지되었다. 이것들은 정통 유교의 정신을 해치는 이단사설로 판정되기 때문이었다.--------------------------------------------------------------------(Q&A)1. 조선시대에도 현재 우리나라의 학원 같은 사교육 기관이 존재 했었는지요?조선의 교육기관은,관학(공립)은 성균관과 4부학당(중앙), 향교(지방)이 있습니다.사학(사립)은 서원과 서당이 있습니다.2. 초등교육 기관이라고 할수 있는 서당에는 양인의 자제들이 다녔나요?서당은 고려시대에 등장 조선시대에 계승되어 더욱 발전된 민중교육기관으로 근대교육이 실시될 때까지 존속해온 가장 보편적인 교육기관이었습니다. 이 서당은 사적으로 설립되었기 때문에 특별히 기본자산이나 인가를 요하는 것이 아니었고 특별히 입학 자격에 제한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법적으로는 양인이면 누구나 서당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3. 이름 높은 양반의 자제들은 개인 과외 처럼 개인 교습을 했었나요?조선 초기에는 경제적 여유가 있고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양반 관료들이 자식들을 서당에 보냈습니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가면서 농업 생산력의 발전`부익부 빈익빈'이란 사실이 실증적으로 증명됐다.사교육 현황을 나타내는 실례① 서울 J고 3학년생 남모양(18)의 별명은 ‘학원녀’. 학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이유로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다. 미대 지망생인 남양은 오후 3시반경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오전 1시까지 미술 영어 국어학원에 다닌다. 일주일에 3일은 오전 1시부터 3시까지 집에서 수학 개인과외를 별도로 받는다.② 서울 S초등학교 5학년생 박모군(11)은 오전 7시에 일어나 세수와 아침식사를 한 뒤 7시40분부터 20분간 영어 과외교사로부터 전화 수업을 듣고 등굣길에 오른다. 오후 2시에 학교 수업을 마치면 3시부터 각종 학원수업과 개인과외 교습이 박군을 기다린다. 저녁식사를 마친 뒤에는 오후 7시부터 한 시간 동안 테니스 강습도 받는다.박군은 밤 9시부터 수학 국어 과학 등 3개 과목 학습지를 풀고 학원과 학교에서 내준 숙제를 하고 나면 밤 12시가 넘어 잠자리에 든다. 주말에는 한강시민공원에서 축구 농구 뜀틀 등 체육 과외도 해야 한다.3.사교육의 문제점과 병폐가. 사교육이 존재할수 밖에 없는 이유ㄱ. 제도권안에서 이루어지는 국가주도의 공교육과정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가 이루어지지않았다.교육을 통해서 얻을수있는 사회적 자원과 기회는 유한하며 그에대한 접근경로는 획일화되어있고 통제적이다.(교육과정이 제도권안에서의 초중고 대학 교육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제도권안에서의 교육으로 인해 성취해낸 대학이나 학벌을 기준으로 해서 사회적 자원이 분배되고 있기때문)공교육이라는 사회적 자원과 기회에 대한 접근이 경로가 있기는 하지만 사회구성원들의 현 세대와 다음 세대의 사회적 위치및 자원과 기회에대한 접근에대한 배려로 인하여 공교육이외의 개인적인 사교육이 생기고 있다.ㄴ. 실제로도 공교육은 사회적 자원의 재분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다.공교육은 사회구성원각가이 요구하는 사회적자원에 접근에대한 기회와 그 기회를 살릴수있는 역량을 키워줄수 있는 공교육의 자체적인 역량과 기능에 대하여 끊임없이 비난을 받고있 그들 부모의 가난이 온전히 세습되고 있는 것이다.▶ 박해와 내몰림의 역사 - 포이동 266번지의 과거 그리고 현재전쟁고아로 혹은 극빈층에서 태어나 넝마주의가 된 그들은 불도저식 개발이라는 용어가 판치던 시절, 자활이라는 화려한 명분으로 당시 양재천 둑변에 불과했던 지금 그곳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왔다.이렇게 흐른 세월이 벌써 20년. 그러나 그들의 시간은 당시 이 마을에 들어올 때 멈춰버렸다. 불과 몇 년 전에 수도가 들어왔고, 서울 시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연탄이 이들이 겨울을 나는 주요 수단이다.이 마을 주민들은 여력이 있어도 시멘트는 고사하고 흙과 벽돌로조차 집을 고칠 수 없다. 20년 전 강제로 이들을 이 곳으로 데리고 온 정부는 언제부턴가 그들이 서울시 땅을 무단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266번지로는 주민등록전입신고가 되지 않아 편지도 제때 받을 수 없고, 조그마한 아이들이 큰 길 건너 먼 초등학교를 다녀야 한다.< 이 상 >포이동 266번지 가족의 한달 생활비를 강남 타워펠리스 거주민들은 하루 술값으로 씁니다. 그리고, 옆에 그렇게 어렵게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한 순간도 고민하지 않고 오직 집값이 땅값이 더 오르지 않나 고민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강남 아파트 값 상승세를 주도했던 타워팰리스 1차 102평형의 경우 기준시가가 18억원에서 27억원으로 올랐습니다.1년새 무려 9억원이 뛰어올라 전국에서 상승금액이 가장 컸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전국에서 기준시가가 가장 높은 아파트는 이곳 서울 서초동에 있는 트라움하우스 3차 180평형으로 나타났습니다. 32억4천만원으로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그런데도 그들은 불만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가난한 마을이 옆에 있어 이미지 버린다고 어디론가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세금안낸 사람도 그 동네에 가장 많이 삽니다. 돈이 없어서 못 내겠다고 죽는 소리 하면서.이것이 빈부의 격차의 현재 모습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사유재산이 인정되고, 개인 능력에 따른 재산축적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냉정다.
영화의 이해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교 간호학과0591037이원미영화대 영화동방불패(1,2) 대 소호강호1.대결에 앞서서 영화의 소개..소호강호와 동방불패(1,2를 포함해서 전부)소호강호.김용의 무협소설 소호강호를 원작으로해서 소호강호라는 무협 영화역사상 최고의 대작이 탄생하게 되었다. 본시 김용의 원작소설 소호강호 그 자체는 무협소설이라기보다는 무협소설의 옷을 입힌 정치 풍자소설 이다. 소호강호의 배경이 되는 명나라 신종 당시의 무림의 정세와 각 무림문파들 간의 세력다툼 무림의 인물들 고수들간의 일상적인 무공다툼등이 소설의 모태를 이루고 있으나 소호강화라는 소설 그 속에는 현실의 정치 아니 더 그 크게는 세상사에 대한 김용의 시각이 반영되어 있으며 소설자체에서 풍겨나오는 허심탄회함과 호연지기가 역설적이게도 강호무림으로 대표되는 현실세계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러한 현실자체를 오시할수있는 비범함함을 표현하고 있며 이것이 허관걸이 주연을한 영화 소호강호의 영상으로 서 표현됨으로써 한층 그 재미를 더하게 되었다. 소호강호의 주제가인 창해일성소 를 부르는 영화속의 화산파의 장문일들처럼 영화 소호강호가 내뱉어내는 호연지기와 허심탄회한 심정으로 영화는 강호무림에 대해서 아니 현실속의 세상사에 대하여 영화의 제목처럼 허허하고 웃으며 오시하며 볼수 있는것이다. 소호강호라는 영화가 정말 무협영화로서가 아니라 영화로서도 명작일 수밖에 없고 명작인 이유는 바로 소호강호라는 영화는 관객이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소호강호라는 영화가 관객을 바라보는 그것도 그냥 바라보는것이 아니라 오시하면서 바라보는 정말 위대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소호강호는 현실을 바라본다. 수많은 사람들이 세력들이 자신들의 명예와 이익 부질없는 욕망을 위해서 싸우고 일어서고 쓰러지는 그렇게 명멸해가는 수많은 인간사를 바라보며 영화의 주제곡처럼 그렇게 우리들을 바라보며 소호강호라는 영화는 관객들을 아니 세상사를 웃으면서 바라본다. 소호강호의 매력이자 영화적 즐거움의 핵심이라고 감히 말할수 있겠다. 소호강호의 주제곡인 창의 한 구절처럼 정말 복잡하고 어떤 의미로는 살벌한 세상사도 알고보면 그저그런 허무한것에 지나지 않는 것일진데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복잡하게도 살아가는것 같다. 그러니 소호강호라는 영화가 영화가 관객을 바라보며 그것도 오시하며 바라보는 일이 생겨나지 않았을까?소호강호의 영화적 재미만큼이나 그러한 재미가 나올수 있게된 현실적 배경이 왠지모르게 씁쓸해지는것은 비단 영화속의 영호충만은 아닐것이다.우리들이 사는 현실세상자체가 바로 영화속의 강호무림이고 우리가 쫓는 명예 돈 행복 사랑들이 영화속에 나오는 규화보전과도 같은것은 아닐까? 나는 혹시 임평지 같이 살아가고 있진 않은가.. 오랜만에 소호강호를 보면서 스스로 생각해본다.동방불패(1,2)동방불패..임청하의 , 임청하에 의한, 임청하를 위한 영화라고 생각했던 정말 배우임청하가 단연 돋보였던 영화였다.이영화를 통해 임청하를 알게 되었고 그녀의 팬이 되었다.그러나 아름다운 영화속의 임청하의 미소만큼이나 더 아름다운것은 영화적 판다지 의 매혹적인 유혹이 아니었나 하고 생각해본다.동방불패라는 인물 그자체는 김용의 원작 소호강호에선 그저 강호무림의 고수들가운데 좀더 유별난 인물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였으나 영화 소호강호에서 그 탄생을 예고 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동방불패 그만을 위한 그를 위한 그에 의한 영화가 만들어 지고 말았다. 동방불패라는 영화의 탄생은 영화 소호강호의 또다른 영화적재미가 만들어내었다. 바로 영화의 관객들에게 마지막 결말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하는 그러한 영화적 장치가 동방불패를 만들어 냈다. 소호강호를 본 관객이라면 알수 있는 그장면..바로 마지막 장면에서 임평지가 규화보전을 가지고 도망을 치는 장면이다.그 다음 결말에 대해선 독자들의 상상력에 맏기게 되었다. 동방불패에서 규화보전을 익혀서 동방불패가 된 인물이 소호강호에서 마지막에 규화보전을 들고 도망을 쳐 나온 임평지라는 소문이 영화팬들 사이에서 들불처럼 퍼졌던 적이 있었다.임평지가 규화 보전을 들고나와서 규화보전을 익혔으며 그를위해 거세를 하였소 의 교주가 되었다 라는 설도 있고 다른 영화팬들사이에선 규화보전이 바람에 날라와서 우연히 동방불패 앞에 떨어졌다라는 설도 있었다.별 로 그렇게 중요한 문제 같진 않지만 실제로 영화팬들 사이에선 참으로 중요한 문제 였던것 같다.소호강호의 매력이 허심탄회한 미소로서 영화가 관객들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동방불패의 매력은 허심탄회한 호연지기가 주연배우들의 화려한 액션연기와 웅장한 배경음악으로 살아나면서 소호강호에는 없는 판타지적 멜로적 요소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는 점이다.실로 이러한 영화적 재미와 매력에 임청하의 미소가 절대적 영향을 끼쳣음은 물론이다. 남자였던 동방불패 는 규화보전을 익히게되어 거세를 하게 되고 여자가 되어간다.그렇지만 그런그는혹은 그녀는 절대적 무공을 가졌으나 너무나도 외로운 존재가 되어버리고 갑자기 나타난 영호충을 사랑하게 된다. 영호충에 대한 사랑으로 그녀는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포기한다.그러나 마지막가는 그녀의 미소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그녀의 미소가 슬프면 슬플수록 영호충의 마음이 아프면 아플수록 동방불패라는 영화는 너무나도 아름다워 질수 있었다.그렇기 때문에 동방불패의 골수 팬이 생겨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든다. 동방불패의 압도적인 재미는 비단 영화의 화려한 영상과 판타지적 멜로 에만 있는것이 아니다. 바로 동방불패의 주제곡또한 영화의 압권중 압권이다. 아마 동방불패의 영화적 화려함과 웅장함은 영호충의(이연걸 분)의 화려한 액션씬과 함께 웅장한 사운드를 가진 주제곡이 단단히 한몫을 했으며 임청하의 미소만큼이나 경심이라는 동방불패의 주제곡은 환타지적 멜로가 진정 슬프고 애잔할수 있게 만드는 아주 영화적 소재의 효과를 극대화시키 는역할을 하였다. 동방불패의 압권은?바로 판타지적 멜로와 주연배우들의 카리스마와 액션신 그리고 배경음악이다.2.소호강호와 동방불패의 공통점ㄱ.정서: 소호강호와 동방불패에는 공통적으로 흐르는 영화적 시대적 정서가 있다. 소호강호에는 허심탄회함과 호연지기의 기상이 동방불패에 역시 그러한 정서가 흐르고 있다.림인들의 일상적인 삶과 무인들간의 끈끈한 애정과 교류가 소호강호의 주제가를 부르는 주연배우들의 입에서 느껴지듯이 동방불패에서는 영호충과 그의 사제들의 관계에서 호연지기와 허심탄회의 정서를 느껴볼수있다.물론 소호강호와 동방불패에서는 조금 각색되어서 사용된 배경음악과 주제곡이 이를 잘 뒷받침 하고 있는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또한 이러한 허심탄회와 호연지기의 기상이 영화적 스토리와 주인공들의 대사와 분위기에 따라서 세상세에 대한 아니 인간의 마음에 대한 오시로서 비추어질수 있다는것이 두영화에 동시에 흐르는 분위기이고 특성이다. 또한 이러한 정서는 소호강호와 동방불패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코믹적 장면구성과 분위기를 형성하는데에도 기반이 되어지고 있다.ㄴ.코믹적 요소: 홍콩의 무협영화 답게 두영화에는 역시 코믹적 요소가 다분히 내포되어있다. 단, 동방불패2(풍운재기)에서는 그러한 요소를 찾아볼수가 없다. 소호강호와 동방불패1의 코믹적요소를 가지고 서로 비교해 보도록 하자. 소호강호의 코믹적 요소는 단연 주연인 허관걸의 코믹연기에서 찾아볼수있다. 한편 동방불패의 코믹적 요소는 주연배우 이연걸의 열연에서 찾아볼수 있었다. 특히 소호강호에서나 동방불패에서난 극중에서는 모두 같은 역할인 영호충과 그의 사제들그리고 사매 악소영의 일상적인 대화나 행동에서 잠시 잠깐 무거움을 벗어 버리고 하하하 하고 웃게 만들 수 있는 활력적인요소 영화의 또다른 재미를 만들어 내는 요소들을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코믹적요소가 동방발패나 소호강호에서나 함께 흐르는 호연지기의 기상 혹은 허심탄회함과 인간에대한 오시에 대한 정서에서 출발한다는것을 잘 상기해 보아야 한다.ㄷ.주제에 흐르는 정서 : 소호강호에서 동방불패 1 그리고 동방불패2(풍운재기)를 막론하고 3작품 모두에 흐르는 정서와 일관된 주제는 무엇일까? 가장 근원적인 주제 는 바로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허탈한 비웃음 정도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인간은 나약하다. 소호강호에 영호충의 사부였던 악불군을 비롯하여 임평지도 그러했고 임평지의 상관인 환러했다.심지어 동방불패의 동방교주인 동방불패마저도 그러한 나약한 인간에 속한다. 왜 그들이 나약한것일까? 단지 무공이 약해서? 더 높은 성취를 이루지 못해서? 아닐것이다. 그들은 나약한 인간이였다. 고강한 무공앞에서 명예욕앞에서 성취욕과 권력욕앞에서 그들은 무릎을 꿇어 버렸다.그리고 그들은 외로운 존재였다. 소호강호에서 영호충의 사부인 악불군. 무엇이 그를 규화보전에 탐하게 만들었는가? 무공비급하나에 제자들과 자식까지 버릴수있는 그는 이세상 누구보다 나약한 인간이다. 최고의 무공을 성취했으나 일월신교의 교주가 되었으나 그역시 나약한 인간이였다. 무공 비급 하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렇게 이룬 자신의 위치와 무공 그렇지만 영호충에 대한 사랑으로 그 역시 무너져버리고 마는 나약한 인물이다. 그리고 서로 죽이고 죽고 살아가는 험난한 강호무림 그안의 수많은 사람들도 나약한 인간이다. 단지 동방불패는 영호충을 사랑하므로서 나약하되 비정하지 않은 마지막 순수와 순정을 지켯을 뿐이였다. 하지만 그때 뿐이였다. 결국 동방불패는 나약한 인간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풍운재기에서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존재들을 모든 사람들을 버리고 만다.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던 자기 자신안의 어떠한 한계 때문에. 그는 절세 고수였지만 그역시도 나약한 인간이 었던것이다.ㄹ.규화보전 : 소호강호부터 풍운재기에 이르기 까지 영화적 구성의 이루어질수 있게 만든 바로 그 소재 이다. 이 규화보전과 관련하여 영화적 스토리의 전개에 대하여 영화팬들의 많은 논란이 있었다. 소호강호에서 동방불패로 넘어갈 때 동방불패가 이를 습득하는 과정에대한 논란, 풍운재기에서의 동방불패는 그 전편에서보다 더욱 강력해졌다는 논란이 있었다. 또한 풍운재기가 시작되는 스토리의 전개의 도입부분역시 규화보전에서 시작된다. 규화보전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시작되고 규화보전으로 인해 비극으로 끝난다. 규화보전은 세편의 영화 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인간에대한 나약함에 대한 질타를 위해서 동시에 등장하는 영화적 소재라고 할다.
교육철학사상 중간고사 대체 레포트- 교육철학의 네가지 패러다임-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 간호학과0591037 이원미컨텐츠........프로필로그컨텐츠 1- 인간컨텐츠 2- 철학컨텐츠 3- 욕구프로필로그 -교육학적 편견과 오류들-교육철학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러한 의미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 일까? 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교육철학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 그 자체도 어떻게 생각해보면 방대한 작업임에 틀림없다. 교육철학을 하기에 앞서서 그간의 암기식 입시교육에 찌들어 있던 본인의 사고방식으로서는 교육철학을 내용적으로 보는 것 에만 치중하였을 뿐 감히, 교육 철학을 해본다는 것에 대해서는 상상을 해본바가 없다. 교육철학사 교수님께 무려 3번에 걸쳐서 수업도 듣고 있고, 과제며 레포트며 하면서 많은 교육학적 자료도 접해 보았지만 그것에 대한 내용을 수동적으로 접하고 단순히 외우려고 만 했을 뿐 능동적이며 창조적인 문제의 제기나 해결해나가려는 시도는 없었던 것 이 본인의 현주소 였다. 그간 교육철학사 수업에 참여함에 있어서 상당히 많은 부분 수업의 내용이 난해하다라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그것은 교육이나 철학, 교육철학 그체 를 내용적으로만 보고 이해하려는 데에서 기인한 현상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철학이라는 학문 자체는 아주 능동적인 학문이며 방법론적인 실체 그 자체인지라 철학의 내용을 구성함에 있어서 도 그 내용이 나오기 까지 의 문제 상황 과 사건, 그에 대한 고뇌의 결과로서 나온 것으로서 하는 것임에도 가시적인 결과물 만 을 보고 본질을 보지 못했던 것이 철학을 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교육철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교육이라는 명제 그 자체에 대한 내용적인 분석에 치우치는 것은 말 그대로 교육철학을 그야말로 수동적으로만 만드는 것이다. 다양한 교육적 상황들과 사건들을 상정해내고 그에 대한 끊임없는 고뇌와 성찰이 바로 교육철학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고민과 성찰을 아무 근거도 없이 무턱대고 할 수는 없는 것이고 무엇인가 의 교육현실은 그러하지가 못하다. 기본적으로 교육이라고 하는 것 은 개별적인 실체들과 실체들 사이의 의사소통이며 생산적이며 실천적인 변화를 위한 활동이 지 단순한 지식의 주입이나 사상의 확립이 아니다. 교육이라 함은 본질적으로 아주 활동적인 것이고 교육의 본질은 활동이다. 움직이는 것이다. 내용적인 측면으로서의 확충은 교육 그 자체이기 보다는 교육을 위한 준비과정이다. 집을 짓는데 언제까지나 철근, 목재 ,시멘트 벽돌만 만들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교육학적 논의에 있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내용적인 측면에서의 검토에서 벗어난 실천적이며 생산적인 활동을 위한 방안의 강구이다. 그러한 방안의 강구는 교육의 기본적인 전제인 교육의 대상자인 인간 과 논의에 있어서의 방법론적인 실체가 될 철학과 생각들(사상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을 방법론적인 실체에 의하여 변화되고 실제적으로 변화할 수 있게 하는 욕구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짐으로서 이루어 질수 있을 것이다.패러다임 1 -인간-교육이란 무엇인가? 교육이란 무엇으로서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등의 질문을 해결하기위해서 수많은 교육철학 사상가들이 참으로 지대한 세월동안 고민해왔다. 대한민국에서 초 중 고등학교 교육을 받고 현제도 대학교육을 받고 있는 본인조차도 한번쯤은 그러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 그렇지만 공식적인 자리에서나 혹은 사적인 술자리에서 교육에 관하여 논할 때 즉,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논함에 있어서 어느 누가 있어서 교육이란 이런 것 이오 라고 말을 할 수가 있엇던가 ? 그 누구도 속 시원하게 정답을 제시할 수 없었던 것은 교육에 대한 가장 공통적이면서 영원불변한 기초적 전재를 읻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전제란 무엇인가? 바로 ‘인간’이다. 그렇다. 교육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학 아니 교육 그 자체를 논하기에 앞서서 ‘인간’ 에 대한 논의 가 교육적 논의의 전제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교육이전에 인간에 대하여 논해보아야 한다는 것 까지는 알겠는데, 그냥 인간혹은 그러한 상호작용에 의한 그‘수업’ 이란 것 의 본질적인 의미는 무엇인지에 대하여 고민을 했었다. 수업이라 함이 전달 적 의사소통이 전제가 되는 만큼 전달 적 의사소통의 핵심에 대하여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데 바로 그것이 우리가 가르침 즉 Teaching이라고 하는 것이다. 가르친다고 하는 것은 전달하는 것이며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는 것이다. 아! 이 얼마나 기가 막힌 교육학적 발견인가 말인가> 가르침 이란 것은 전달하는 것이고 길라잡이역할을 하는 것이다. 즉 수업이란 것 이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과 다른 존재적 실체나 개체간의 상호작용에 의한 소통이며 대화하는 것이란 것이다. 교사중심의 교사 주도적 수업이 되었든지 아니면 내용중심의 수업이 되었던지 혹은 학븝자 중심의 수업이 되었든지 격국 수업이라함은 상호작용이며 대화익 전달적 의사소통이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좀더 달리 생각해보면 어차피 수업이라던지 g속은 교육이리란것이 어떠한 형탤 이루어지던 간에 교수 자 와 학습자가 혹은ㅇ 교육의 정책입안자가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든간에 어차피 교육적 상황 하에 처해진 인간이라는 개체는 결국은 다른 존재적 실체와 상호작용 하며 의사소통을 할수밖 에 없다. 하다못해 아무리 주입식 암기교육 이라던지 입시교육을 받는 경우를 전제해 본다고 해도 어차피 어떠한 컨텐츠, 텍스트라던지 영상매체 혹은 선생님의 판서가 되었던지 간에 소통을 하게 되어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교수자중심의 교육방식에서도 교수자는 어떠한 컨텐츠 가 되었던지 간에 학생에게 전달을 하고 학생은 전달자의 의도와 맞던 맞니 않던간에 어찌되었던간에 반응을 한다. 혹은 좀더 낫다고 일컬어지는 학습자 중심의 교육방식 역시 학생은 혹은 교수자역시 학생과 교수자 사이에 혹은 칸텐츠나 교육재료와 함께 소통을 한다. 어떠한 교육적 형태를 가지고 수업을 하든 혹은 어떠한 환경아래에서 수없을 하던 혹은 혼자 독학을 한다고 손쳐도 교육적 상황아래에 처하게된 인간이라는 실체는 어찌되었던지 간에 교육적 본질, 즉 인간과 다른 실체적 각했다. 교육학을 배우는 대학생으로서 말이다. 수많은 교양광좌를 듣고 학교에 다니면서 전공과목도 듣고 삶아가다가 뉴스도 듣고 여러 가지 맣은 것들을 접하며 살아왔다. 그러면서 나는 인간으로서 나의 친구들과 상호작용하며 주위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현제의 혹은 과거와 미래와의 상황과 사건들과도 상호작용하며 의사소통하고 대화를 하면서 지낸다. 개별적인 존대인 나는 항상 그러한 것들과 접촉하며 살아가고 잇다. 결국 나는 개별적인 실체로서의 인간이면서 항시 주위의 환경과 대화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으니 나역시 교육학적 본질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은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만일 교육적 상황아래에서의 인간의 모든 삶의 과정을 교육이며 혹은 공부라고 지칭한다면 알고보면 인간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위대한 교육적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는 공부적 존재인 것일까?패러다임2 -철학-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다음뉴스를 보니 해마다 인문학을 전공하던 대학생들의 수가 줄고 경영학과라던지 경제학부 혹은 사회과학부 등등의 실속있는 인문계 학과로 전과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또한 철학과에는 점점 정원이 줄어들어 가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사태의 이유에 대하여 내가 어디서 얼핏 들은바 로 는 철학을 ‘하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학 그 차체를 내용으로만 보고 철학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디아. 여기서 잠깐, 철학이라 함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누가 그러기를 ‘문제의 본질적인 속성에 대한 탐구’라고 하였다. 문제의 본질론 적인 속성 이라..그런데 대체 그 문제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 문제라는 것을 문제로 보는 사람은 철학을 내용으로 보는 자요, 그 문제를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자는 철학을 하는 사람이다. 즉, 철학이라는 것은 방법론적인 실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즉 철학을 한다는 것 은 사물이나 어떠한 것 , 문제를 등등을 볼 수 있는 틀이며 유용한 컨텐츠 라고 할수 있다. 그러한 문제와 사물을 볼수 있는 틀을 배우기 위해서 수많은 철학 사상가들의 이론과 생각에 대하여 공부를론 적 탐구의 과정이라면 교육철학은 교육적 상황과 문제에 대한 본질론 적인 탐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교육철학을 한다는 것은 어떠한 교육적 상황에 대한 능동적인 설정과 그 상황에 대한 문제의 도출과 함께 그에 대한 본질론적 인 탐구 라고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교육철학함의 핵심은 교육적 상황의 설정과 문제적 상황 의 도출이다. 교육철학함의 기본적인 전제가 바로 문제의 도출이다. 만약에 제시된 문제적 상황에 대한 본질론 적 탐구를 한다라고 만 한다면 그것은 교육철학 함 이란 바로 교육철학을 내용으로서만 보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밑바탕도 없이 교육적 상황에 있어서의 문제제기나 해결방안을 모색한다는 것 은 역시나 말도 안 되는 것 이다. 일단은 철학함에 앞서서 철학을 내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냥 철학을 함에 있어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내용적으로 보는것 에만 치중해 왔던 것이 인문학 하는 사람들의 특성이 엇고 교양과목을 듣는 학생들의 일반적인 태도가 그러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루소 로크 듀이 등의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하여 내용적으로 배우기도 하면서 귿들의 철학을 하고 또한 교육학적으로 적용하고 교육학적 상황하 에서 문제제기를 가고 해결하는 활동을 한는 것 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 로크의 루소의 교육철학을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교육철학사조 이던 사상이든 교육이론이든지 간에 그러하다. 하지만 교육철학을 한다는 것은 역시나 무척 어려운 일이였다. 교육철학을 배우는 일은 쉬웠지만( 물론 그렇게 쉽지 않은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철학을 하고 더 나아가 교육철학을 실천적으로 수행하고 행동으로 옮기는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책에 나와 있는 철학사조에 대하여 혹은 단순한 지식을 내용적으로 보는 데는 그간의 중 고교 시절에 해왔던 것처럼 그저 외워버리 기만 하면 그만이겠으나 철학을 한다는 것 즉, 문제적 상황을 도출해 낼 수 있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끊임없이 생각 한다는 것에 대하여 너무나도 익숙하지 않았던 탓이다. 가령 ‘
교육학개론 중간고사 대체 과제레포트 (에밀을 읽고나서)원주의과대학교 간호학과 0591037 이원미루소의 에밀이라는 교육소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읽혀져온 베스트 셀러이다.교육과 인간이 성장하고 발달해가는 자연안 본질적인 과정안에서의 인간과 인간본연의 인간성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하는 이 소설의 화두는 단연 ‘자연’ ‘인간’그리고 ‘교육과정의 자연성, 순차성’ 정도로 정의될수 있을것이다. 교육이라는 주제는 그 주체이며 대상자이자 변할수없는 논의의 핵심인 인간과 관련이 되어 인간의 자연성의 회복과 그에대한 구체적인 과정과 그에대한 교육적 자연적 과정에대한 논의가 전제되어 생각되어 질수 있다는 것을 에밀이라는 책이 시사해 주고 있다. 우리의 교육학적 관심과 인간의 발달과 성장에 관한 논의에관련한 사람들과 그외 독자들의 교육, 인간, 자연에 대한 논의를 확장시키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교육학적 ,인간학적 주제의 선정과 논의의 범위와 그러한 토론주제의 설정과 진행에 대한 지침서로서 에밀이라는 교육학적 소설은 꽤나 유용하다고 할수 있겠다.1.우리는 누구나 자연 인간 사물 이 세스승에 의해 교육된다.그에 대한 나의 개략적인 생각과 구체적인 반응은 어떤식으로 나타났엇는가?나름대로의 결론에 도달하기 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면 대략 이러하다.인간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위해서 무엇이 전제 되어야 할것인가? 우리의 인간에 대한 관심과 논의의 범위를 인간의 성장과 발달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이 인간을 교육함 이라는 형태로 즉 교육 이라는 형태로 정의 됨을 전제하기로 한다. 교육함 이라는 것의 논의의 전제가 인간임이 부인할수 없는 사실임에 분명하고 그러한 인간에 대한 교육적 논의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선행 되어야한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그러한 일련의 활동의 교육으로의 대입은 인간의 본질적인 인간성에 대한 인지와 그에대한 논의의 필요성과 구체적인 이해와 논의 에대한 실천이 있어야 이루어 질수있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논의는 인간의 자연그대로의 상태에 대한 논의이다. 또한 인간의 자연 본연의 상태는 다른 인간존재에 의하여 보존될수도 있으며 훼손뒈거나 어떠한 식으로던지 고쳐지는 등의 영향을 받음을 생각해볼때 인간과 인간존재에 대한 논의역시 인간본연의 자연과 인간에대한 논의의 바탕이 될수있을것이며 인간 본연그대로의 개념에 배치될수 있는 개연성을 지니고 있으며 실제로도 어떠한 현상의 내면적으로나 표면적으로나 그러한 사물에 대한 논의를 진행함으로서 루소의 교육소설 에밀은 그의 이야기를 크게 소리내어 독자들에게 말하는 입이되고 교육소설 에밀 더나아가 루소와 루소의 인간 본연에 대한 이해와 교육학적 대입과 결과물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의 바탕이고 자료가 되는 기초적인 개념이 될것이다.2그 교육(학교 교육)은 상반된 두개의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어느한가지도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루소 ,소설 에밀에서는 교사 혹은 선생님은 교육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 학교란 어떠한 곳이였는가? 학교의 교육이라 함은 우선 공공교육 즉, 공교육을 의미함을 이 소설에선 전제하였다. 학교의 교육 , 즉, 공공의 교육은 모순에 가득찬 그 무엇이다.자연으로서의 인간, 이상적인 교육의 혹은 자연적인 과정으로서의 인간을 자연이라고 하면 그와 반대되는 개념은 계획적이고 체제적 조직적 과정으로서의 인간을 시민이라고 한다. 시민이라 함은 조직안에 편입되는 체제적 인간이다. 공교육의 표면적 이념이 그러한 시민과 자연으로서의 인간의 종합적 복합적 양성임을 감안해 보면 공교육의 구체적인 결과적 산물은 그러한 목적을 그다지 잘 이루어 내고 있지는 않은것 같다. 여기서 드러나는것이 루소의 자연적인 과정으로서의 교육과정의 구체적인 적용 방법과 그에 전제 되는 교육학적 생각 즉,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자연적인 인간 자연인을 키워내기 위한 기본적인 에밀의 키워드이자 교육학적 개념이라고 할수있겠다. 그것이 바로 가정교육과 자연교육이다. 가정교육과 자연교육의 진행으로서 자연인 인간의 본연의 가능성에 대한 순차적 자연적 발현에대한 그의 구상이 드러내놓은 중요한 개념이며 어쩌면 이것은 한국의 교육학적 교육사적 현실과 미래의 긍정적인 발전을 위해서 고려되어 마땅하다고 생각해 보았다.3.이성이 성장할때 까지 아이가 타인이 보고 있다거나 듣고 있다는 이유때문에, 즉, 타인과이 관계에 의해 지시되서는 안되며 오직 자연이 요구하는 것만을 해야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한 개인의 혹은 인간이라는 유기체의 성장의 자연적인 발달과정에 있어서의 교육자의 인간학적인 관심과 배려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부분이다. 또한 인간과 인간존재의 상호작용에 대하여 언급되기 시작 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인간의 성장발달에 있어서 타인 즉 인간 이라는 나라는 존재에 대하여 타인 이라는 이름의 인간존재의 개입이 필연적으로 이루어질수 밖에 없는 인간관계와 인간존재의 성장과정과 상황에 대하여 주지할필요가 있음을 에밀을 통하여 이야기 하려고 하고있다. 인간의 자연과정적인 성장과 교육을 위해서 혹은 이끔을 위해선 아이의 자연적인 성장과정을 배려해주어야 하며 그러한 과정이란것은 아이의 자연성을 어느정도 시기까지 어떻게 보존시켜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이 이후 언급되기 시작할것이고 그러한 언급이전에의 자연적 과정에 대한 배려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의 틀을 마련하기의 위한 언급이며 고민의 흔적을 볼수가 있다.4.여러분이 한 인간을 만들어 내려고 하기전에 여러분 자신이 인간이 되어야 한다.에밀의 교사는 그의 교육학적 관심이 인간에 대한 자연성의 보존과 그를 위한 교육학적 논의의 설정과 진행에 대한 계획을 하는 데에 머물러 있었음알고 소설이 조금씩 지겨워 지고 있던차에 그의 교육학적 주제와 목적에 도달하기위한 구체적인 시도가 이루어 짐을 보여줌으로써 책을 덮고 피씨방에 가려던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인간을 만들어 내려고 하기 전에 여러분 자신( 교육자 혹은 선생님 이라고 한다)이 인간이 되어야 한다. 라고 언급을 하였다. 이제 그는 그의 교육학적 목표를 슬슬 이루어 나가려고 하는 모양이다. 인간의 (여기서는 제자의 ) 자연 본연의 본질적인 모습과 과정을 보존하는데 만족치 아니하고 보존된 모습을 바탕으로 하여 이제 그의 본연의 가능성을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형태로 발현시키려고 하는 단계에 그의 제자에대한 관심이 진전되기에 이르럿다. 즉 이러한 언급은 어렵게 이해되지 않아도 되는 아주 본질적이고 당연한 것이다. 아이의 본질적 자연성의 보전과 올바른 발현에 지대하고 막대한 영향을 끼칠수있는 교육자 혹은 선생님 스스로가 직접 올바른 실처사례가 되어야한다는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여 모범이 되어라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소리이지만 이러한 논의로 인해 제자에 대한 교육학적 시도는 어느정도의 실효를 거두기 시작할것이다.5.가르치기에 적당한 시기를 선택해야 하는것과 마찬가지로 무엇을 가르칠것인가도 선택해야 한다.정말 결정적인 한마디가 아닐수 없다. 에밀의 선생님이 왜 위대한 교육자인가?에밀의 선생님이 결코 어설픈 사이비가 아닌 위대한 교육자이고 바람직한 교육상에 대한 이상향을 제시했음을 알고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거나 혹은 지기의 책을 제본하지 않고 직접 서점에 가기위하여 왕복 2000원의 차비를 지출하엿으며 책을 찾기위해 서점직원과 실랑이를 벌였으며 9,000원이나 되는 돈을 투자하였으며 돌아오는 만원버스안에서 30분동안이나 서있었던것에 대하여 그다지 괘념치 않게 되었다. 또한 한편으로는 만약 내가 이 대목을 고3시절에 읽엇다면 아마 책을보며 눈물을 흘리는것을 주저치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감격해 마지 않아햇다.가르치기에 적당한 시기를 선택해야 하는것과 마친가지로 무엇을 가르쳐야 적절한지 생각한다. 인간에 대한 교육학적관심이 제자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된 이한마디이며 한국의 교육적 상황에 대입시켜마땅한 선생님의 언급이 아닐수 없다. 제자에 대한 인간발달의 자연스러운 과정을 배려하였으며 그로인해서 제자의 자연성을 보존시켯으며 그로인해 제자는 인간이 됨에 있어서 올바르고 학고한 과정과 단계를 밟아 나가게 되었으니 참으로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수없다.이 땅의 교육학적 논의에 관계한 모든 인사들 특히 그러한 관계가 공식적이며 현실적인 교육과정에 실질적 힘을 행사하며 그에 관계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점을 명심해야 할것이다.6.나의 교육 방침은 많은 것을 가르치는것이 아니라 정확하고 명백한 관념만을 그의 머리속에 심어주는데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라.선생님은 이제 제자의 교육에 있어서 진실된 인간으로서의 중심을 세우는것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하였다. 분명한 사실은 제자는 아직은 스스로 자기 자신이 본질을 지켜나갈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생님의 교육학적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선생님은 어떠한 조처를 단호하게 시행해야 할필요가 있었다.자연스럽게 발달하기 시작하는 제자의 판단력과 이성은 세상의부적절한 상황과 인간존재들의 관계함으로부터 오는 편견의 더미들에 아주 취약하기 그지 없다.이것은 자연스르러운 인간의 성장 과정이나 명백히 선생님이나 제자들의 교육자들에 의해서 항시 관찰되어야 하며 보호시켜야 하며 그러한 편견들에 의한 물듬으로 부터 선생님은 제자의 의 혹시라도 잘못된 발달의 과정은 확실하게 시정되어 올바른 상태로 이끌어 져야 할것이다. 정확하고 명백한 관념이란 , 확고부동하고 강력한, 편견과 부적절한 과정에서 파생하는 오해에 대한 극복의 방안이 될수 있을 것이다.7.말하자면 우리는 두번 태어나는 것이다. 한번은 존재하기 위해 태어나고 한번은 생활하기 위해서이다.에밀의 스승은 권투선수를 해도 아주 성공적이였을 것이라고 생각해게 되는 이유가 괜히 생기는것이 아니다. 그는 그의 이론이 아주 화고 부동할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존재의 이유가 있음을 그도 모르게 피력하고 있으며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그의 의견에 대하여 반박할수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존재가 태어나는 이유는 말그대로 존재하기 위해서이다. 존재함의 절대적인 전제 조건은 존재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