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이두 향찰1. 이두/향찰의 개념이두/향찰이란?이두 -우리말을 한자(漢字)를 빌려 표기(表記)하던 방법(方法) -삼국(三國) 시대(時代)부터 한자(漢字)의 음과 뜻을 빌어서 우리말을 표기(表記)하던 방법(方法)의 하나 향찰 -한자의 음과 석(釋)을 빌려 국어 문장 전체를 적은, 신라 시대에 발달한 표기법. - 가요 특히 향가의 표기에 이용되었기 때문에 향가식 표기법이두의 역사이승휴의 제왕운기(帝王韻紀)를 비롯한 많은 문헌에서 설총의 제작설을 보여주고 있지만 설총이 이두를 제작했다기보다는 이를 집대성했다고 보는 것이 더 일반적인 시각향찰의 역사향찰이란 명칭은 '균여전(均如傳)'(1075) 역가공덕분(譯歌功德分)의 최행귀(崔行歸)의 서문에 비로소 나타난다. 국어의 전면적 표기인 향찰로서 현존 향가 중 가장 오랜 것은 '혜성가(彗星歌)'로 진평왕대(579 632)의 것이다. 6 -7세기 전후에 발달하여 '찬기파랑가', '제망매가', '도천수관음가', '안민가', '도솔가' 등 향가 14수 가운데 5수가 지어진 경덕왕대(742 765) 무렵에 그 전성기에 달했으며, 균여대사의 '보현십원가' 11수로 그 명맥이 고려에 이어졌으나 점차 쇠퇴하였다. 고려 예종의 '도이장가'는 그 마지막 일례가 된다.이두와 향찰의 차이점이두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은 표기법 -신라 때에 발달한 것으로, 넓은 의미로는 향찰, 구결 및 삼국 시대의 고유 명사 표기 따위의 한자 차용 표기법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쓰나, 일반적으로는 한자를 국어의 문장 구성법에 따라 고치고 이에 토를 붙인 것 향찰 -신라 때에,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국어 문장 전체를 적은 표기법. 특히 향가의 표기에 쓴 것을 이른다.2. 吏 讀한자의 음과 훈(訓:새김)을 빌려 한국어를 적던 표기법이 두한자로 표시할 수 있는 것은 그대로 적고 고유의 우리말을 한자로 적으면서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적음 예) 대명률직해의 무릇 성이 같고(이고) = 凡同姓是遣 여기서 우리말 '-이고'를 한자 '-是遣'으로썼으니 是는 뜻(訓)을 사용하고 遣은 음(音)을 사용함이두표기 남산신성비辛亥年二月卄六日 南山新城作節 如法以作 後三年崩破者 罪敎事爲 聞敎令 誓事之 (축성 책임자가 성의 축조법을 엄수하여 성을쌓되 3년 이내에 붕괴되는 일이 일어나면 그 죄과에 대한 어떤 처벌도 감수하겠다) 節, 以, 者, 敎, 爲, 令, 之가 이두 요소로 추정 – 후대의 이두에서 지위 , 으로 , , 이시 , 야 , 시기 , 이오 로 읽혀짐넓은 의미의 이두넓은 의미로는 향찰까지 포함 한자차용표기법 전체를 가리킴 향찰, 구결 및 삼국시대의 고유명사 표기 총칭 (향찰식 이두 또는 구결식 이두) 신라 초기부터 발달 추측 의미부(意味部) – 한자의 훈 형태부(形態部) – 한자의 음 곡용(曲用)이나 활용(活用)에 나타나는 조사나 어미표기좁은 의미의 이두한자를 한국어의 문장구성법에 따라 고치고(통칭 誓記體表記) 이에 토를 붙인 것에 한정 이두(吏頭), 이토(吏吐), 이투(吏套) 훈민정음이 창제될 때 까지 한문번역의 구실을 함 소송문, 고시문, 보고서 등의 관용(官用)문서에서 여전히 쓰임대명률직해 권6-호율 남녀혼인조“凡男女定婚之初 若有殘疾 ·老幼 ·庶出 ·過房 ·乞養者 務要兩家明白通知 各從所願 寫立婚書 依禮嫂嫁 若許嫁女已報婚書及私約” “凡男女定婚之初良中 萬一殘疾 ·老弱及妾妻子息 ·收養子息等乙 兩邊戈只 仔細相知疾爲良只 各從所願以 婚書相送 依例結族爲乎矣 女家亦 婚書乙 曾只通報爲旀 私丁音定約爲遣”良中 → 아 ·아에 ·아의(∼에, 處格을 나타내는 말) 等乙 → 들을('들'은 複數接尾辭),'을'은 목적격) 戈只 → 이, 익기('이' 또는 'n'의 뜻으로 主格을 나타내는 말) 爲良只 → 얏기('하여'와 같은 뜻)/以 → 으로(造格의 뜻) 爲乎矣 → 오되(하되)/亦 → 여, 이(여기서는 주격을 나타내는 말로 쓰임) 曾只 → 일지기(현대어와 같음) 爲旀 → 며(하며) 私丁音 → 사사로이, 아뎌(현대어와 같음) 爲遣 → 고(하고)3. 鄕 札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어 한국어를 표기하는 방식인 차자(借字)표기향찰의 특징향찰은 중국어 표기의 한문 어순과는 달리 우리말의 어순대로 표기한 것이다.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의 형태와 의미 요소를 전면적으로 기록하는 표기 체계. 실질적인 의미를 가진 부분은 훈(뜻)을, 조사와 같은 문법적 요소는 주로 음을 빌리는 것을 원칙.향찰의 한계향찰은 음절구조가 복잡하여 국어를 만족스럽게 표기하지 못했다. 우리말 소리를 정확히 옮길 수 없다.향찰의 표기법의미적 요소는 한자의 뜻을, 형태적 요소는 한자의 음을 사용해서 표기향찰의 표기법향찰의 표기법향찰의 종류향찰의 쇠퇴향찰의 주요 작자층이던 화랑이 사회적으로 쇠잔함. 특수계층의 전유물로 인식되면서 향유층이 제한 되었다.{nameOfApplication=Show}
1. 위안부 문제의 시발일본은 만주사변(1931년)과 중일전쟁(1937년 발발)으로 전선이 확대되고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늘어나는 주민 강X과 성병을 막고 군의 사기를 진작한다는 명목 하에 ‘군위안부’ 제도를 만들었다. 일본군이 군 위안소를 만든 시기는 1932년경이며 본격적으로 설치한 것은 중일전쟁이 일어난 1937년 말부터이다. 일본군은 위안소의 설치 목적, 관리감독, 위안부 동원에 대한 명확한 원칙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실행했다. 일본,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많은 여성들이 은밀하면서도 체계적으로 군위안부로 동원되었다. 총 숫자는 적게는 5만 명에서 많게는 수십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당시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수가 동원되었으나 정확한 숫자는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끌려간 여성들의 나이는 10대 초반부터 40대까지 광범위했다. 가난한 집안의 여성들이 식당종업원, 간호사, 여공 모집 등 취업사기에 속아 끌려갔으며, 유괴나 강제 연행 형식으로 끌려간 경우도 많았다. 일본군이 직접 나서거나 군의 협조 하에 민간인이 동원을 담당하였다. 끌려간 여성들은 열악한 군위안소에서 치욕적인 성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다. 위안소는 군부대 주둔지 근처에 별도의 건물로 들어서거나 군용 막사나 트럭이 이용되기도 했다. 서너 명에서 많게는 수십 명의 위안부가 같이 생활하는 위안소는 변변한 위생시설조차 갖추지 않은 열악한 환경이었으며, 피해 여성들은 인권을 유린당한 채 소모품 취급을 받았다.
출산율 저하 문제와 그 극복 방안Ⅰ. 현재의 현안우리나라의 인구는 현재 인구는 5 천만 명으로 계속 증가해왔다. 이 숫자는 전 세계 국가 중 26위를 기록하는 수치인데, 장기적으로는 계속 떨어질 위험에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의 저 출산 문제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2010년 1.24명으로 186개국 중 184위이며 OECD 국가 중에서는 최하위이다. 또한 2010년은 백호띠해 덕분으로 1.2명대를 기록했지만, 2008년부터는 계속1.0~1.1명 웃돌았다. 과거에 최고 출산율 6명을 기록하던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1950년대 말부터 1960년 초까지 우리나라는 6.25 전쟁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탄생으로 출산율을 6명까지 기록했다. 하지만 높은 출산율에 정부는 60년대 초부터 출산억제 정책을 펼쳤고, 출산율이 어느 정도 낮아진 때인 80년 초에도 계속 실시를 하여 결국 출산율이 1.6명으로 되었을 때까지 출산억제정책을 지속하였다. 이렇게 출산율이 낮아진 원인은 무엇일까?Ⅱ. 출산율 저하의 원인1. 여성의 경제활동 증가그 이유의 첫째로,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를 들을 수 있다. 1차 산업 때에는 농업을 주로하며 가부장적인 남존여비 사상이 만연해 있었다. 남자는 밖에서 일해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살림을 하는 집이 대부분이었지만, 산업사회가 2, 3차 산업으로 발전하면서 여성이 할 수 있는 직군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통계청의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대 남녀 고용 비율이 1980년에는 남자가 77.9%, 여자가 41.4%였지만, 1990년에는 남자가 74.7% 여자가 51.7%이며, 2010년도에는 남자가 58.2%, 여자가 58.3%로 시대가 갈수록 20대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여성이 사회에 진출하였지만 육아에 대한 인식은 아직 구시대의 사고에 머무르고 있다. 높은 사회진출에 비해 남자보다 길지 않은 근속기간을 가졌고, 출산 시 쉽게 퇴직을 하는 현상이 만연하였다. 이로 인해 출산을 하는 것은 승진에도 불리하고, 업무복귀에도 쉽지 않아 결국 출산을 늦추거나 줄이는 등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증가로 출산율이 감소하였다.2. 핵가족화와 산업화두 번째로 가족의 핵가족화와 산업화가 있다. 핵가족화의 원인은 자본주의의 진행과 산업화의 결과로 볼 수 있는데, 산업이 발전 할수록 도시화와 핵가족화가 촉진되었다. 과거 농업사회에서는 많은 자녀가 노동력에 도움이 되어 다자녀인 집이 대부분이었고, 특별한 능력이 없어도 몸만 건강하면 농촌사회에서는 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산업화가 가속화 되면서 도시로의 진출이 많아졌고, 3차 산업부터는 지식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그리하여 자녀의 대한 인식도 많이 낳아서 노동력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닌, 소수의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켜 질적으로 좋은 삶을 살게 해주는 부모에게 기쁨을 주는 역할이 되었다. 한편 수도권의 인구 집중으로 인해 서울·경기도의 집값은 끝없이 상승하였고, 결혼을 해도 집을 바로 구매할 수 없어 전세, 대출 등으로 좀 더 편안한 상황에서 아이를 낳자는 생각이 많아졌다. 또한 아이를 낳는다 해도 공교육의 불신에 따른 사교육비의 증가로 90년대에 비해 사교육비가 3배나 증가하여 교육비의 부담 또한 저 출산의 원인이 되었다.서울의 가구 수 변화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 및 교육비 추세3. 결혼인식의 변화세 번째로, 만혼, 미혼, 이혼의 증가와 부부인식의 변화를 들을 수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대학진학률은 약 8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남자는 군복무도 있으므로 대기업 기준 남자 입사 평균연령은 28~29세이고, 여자는 24~25세이다. 통계청의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학력이 높아질수록 결혼을 늦추는 경향이 있는데, 여성 고학력자 비율이 늘고 있다"며 "특히 직장에서 자리를 잡은 뒤 결혼하려는 사람이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30세 이상 여성 인구 가운데 대학이상 학력을 가진 비율은 2000년 33.9%, 2005년 38.4%. 2010년 41.6%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높은 진학률과 전문분야의 수준의 향상으로 일이나 공부 또는 다른 것들에 집중이 늘어났고, 결혼상대의 높은 기대감으로 인해 미혼 및 만혼이 증가하였다. 반면 결혼 후에도 이혼율이 증가했는데 2011년 7월 분석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의 7%이상이 이혼을 했다고 한다. 이 수치에 의하면 이혼상태인 가구주가 5년 전에 비해 약 40%, 36만 3천명이 늘어난 수치이다. 이혼에 대한 원인으로는 과거에 배우자의 외도와 직계가족과의 갈등이 대부분지만 2000년대는 성격차이, 경제 갈등, 장기별거가 주원인으로 확인되고 있다.아울러 이런 사회현상을 통해 부부인식의 변화상을 설명하게 해주는 딩크족이란 말이 있다. 딩크족(DINK: Double Income, No Kid)이란 90대 중반이후 생겨난 말로 여가와 취미생활을 중요하게 여기며, 아이가 없는 맞벌이 부부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아이로 인해 생기는 경제적 부담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에 의한 딩크족들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이러한 미혼, 만혼, 이혼의 증가 및 부부인식의 변화는 출산율을 더욱 악화 시키고 있다.여성 미혼 증가율이혼 및 사별 추이Ⅲ. 출산율 저하의 문제점1. 노동력의 감소첫 번째로, 노동력 감소를 들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1.24명으로 2018년이 되면 총인구가 감소추세에 이르게 된다. 인구가 감소함으로써, 국가 경제 전반에 활력이 없어지게 된다. 당장 출산율 6명이상을 기록한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게 되면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고, 은퇴하면서 소비가 상대적으로 줄어 시장도 위축될 것이다. 그리하여 생산량과 소비량이 줄어 내수가 위축된다. 이것은 또한 내수위축의 문제를 야기 시킨다. 인구부족의 문제는 생산물에만 제한되지 않는다. 주택의 경우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이후 큰 집과 대도시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급격히 악화 될 수 있다. 두 번째로 고령화 사회를 들을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이며 노인인구비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 저 출산 고령화로 인해 인구 그래프가 피라미드형에서 역 피라미드형으로 바뀌면서 일할 젊은 인구는 줄어들고 노인인구만 늘어나게 되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기게 된다. 현재 근로자 5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면 되는데 2050년이 되면 근로자 1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하게 되어 부담이 매우 커지게 된다.2. 학령인구의 감소두 번째로, 학령인구의 감소를 들을 수 있다. 최근 통계청의 발표는 지금 학생인구가 전체인구의 20%인데 40년 후에는 10%로 반이나 줄 것이라는 통계가 나왔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1 청소년 통계'를 보면 올해 학령인구 수는 지난해보다 19만2,000면 감소한 970만9,000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0.5%포인트 낮아져 19.8%를 기록했다. 학령인구 비중은 1970년 40%에 달했지만, 지속적인 저 출산 추세 속에 40년 만에 그 비중이 반 토막 나게 됐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계속될 전망이다. 1970년 17.7%에서 올해 6.4%로 급감한 초등학교 학령인구(6~11세) 비중은 40년 후엔 3.6%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통계청 관계자는 "학령인구의 감소는 결국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의 감소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문제로 장기적으로는 교육계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다. 현재 지방에서는 일어나는 일이기도 한데 초등학교는 계속 폐교하는 학교가 나올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중·고등학교 예외가 아니다. 요즘 대학교도 지방은 통폐합이 되고 있는데, 앞으로 폐교되는 대학도 계속 나올 것이다. 학원 및 교육출판계에도 수요 감소에 따른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악순환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학령인구 비중 추이3. 국가 재정적자 증가세 번째로, 국가 재정 적자 문제를 들을 수 있다. 2009년 말 우리나라의 재정적자 359.6 조원 규모이다. 세계적으로는 양호한 수준이라 할 수 있으나 문제는 증가속도이다. 현재 대규모의 추가경정예산, 4대강 살리기 등 사회간접자본시설(SOC) 투자 증가, 고령화에 따른 복지예산 증가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급격히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2018년부터 인구가 감소하게 되면 연금, 사회복지 등으로 막대한 세금이 들어가게 된다. 또한 인구감소로 세금징수가 적어지면 심각한 재정적자를 겪을 수 있다.
학교현장에서 느낀 문제점과 대안실습을 하는 동안 상처가 많고,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담임 학급 학생들도 그랬지만, 담임 학급 학생이 아닌 학생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원하고 바라는 모습을 보니 내가 정말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선생님이 아니고 교생선생님이라서 아이들에게는 다른 존재로 인식되어서 그런 것 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진지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 놓고 고민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니 도움을 주고 싶었다. 이것은 아이들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느낀 것이 아니라, 어떤 말로도 설명 할 수 없는 피부로 느낀 내 감정이었다. 사실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고 때때로 나도 모르게 벅차올라서 제어 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선생님으로서 지식을 가르치는 법만 배웠지 그 가르침을 받는 학생이 사람이라는 것은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누구를 위해서 베풀 수 있고 이해 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사실 배울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은 알지만 내가 그만한 그릇은 가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준비는 되어있었어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23년 동안은 온전히 ‘나’로서의 삶만 살았었는데, ‘학교’라는 곳에 와보고 나니 ‘나’로서의 삶은 이기적이었던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곰곰이 내가 그동안 어떤 열정으로 살아왔는지,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생각해봤다. 실습을 오지 않았더라면 할 수 없었던 고민이었다. 또 느낄 수 없었던 고민이었을 것이다.학교현장에서 느낀 문제점을 말해보자면,첫 번째는 소외가 존재하고, 그 존재를 인정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다는 것이다. 학교에 다닐 때 는 학교에‘나’와‘선생님’이 있는 줄 알고 있었고, 학교를 졸업 하고 나서는 학교에 ‘학생’과‘선생님’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등학생이 아닌 입장에서 학교 안을 들여다보니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처음 교생이라는 입장으로 학교를 방문 하였을 때 내가 가장 객관적인 통찰이 가능했던 때가 아닐까 싶다. 그날 내가 보고 느낀 것은 이렇다. 한 시간 가량 학교 안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의 소외를 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나와는 다른 사람이 발견이었다. 내가 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장애우 친구를 볼 수 없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다른 친구들을 볼 수 있었다. 학교 밖의 나는 전혀 다름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학교 안의 나인 학생들을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외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괴롭히거나 문제가 되는 상황을 일으키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생각이나 행동을 소외시키는 모습을 발견하였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학생도 있겠지만 그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들이 단순히 자신과 다르다고 그들의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틀렸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학생들을 보니, 육체적으로 어떤 물리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심한 영향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학생들은 금방 잊겠지만 그것에 상처를 받거나 충격을 받은 학생들은 그런 상태를 복구하거나 치유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며, 쉽지 않을 것이다. 내가 현장에서 활동 하고 있는 교사였더라면 이런 문제들을 보고 대처하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누군가가 꼭 필요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두 번째는 자신의 소외였다.아이들을 죽 지켜보니 자신을 미워하고 믿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무리 안에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았다. 특히 담배를 피거나, 위험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을 보니 내면이 궁금해졌다. 분명 관심 받고 싶어 하고, 관심을 보여주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때 뿐 이었다. 자신을 학교라는 단체에서 선생님이라는 어른으로부터 소외시켰다. 사실 이유는 모르겠다. 사춘기의 반항인지, 갑갑함의 일탈일지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이기에 더 어려웠다. 같은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것 이지만 시간의 차이는 어쩔 수 없음을 느꼈다.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소외시키고 자신만 뿐이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자신을 전폭적으로 믿어주고 언제든지 의지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것 이었다. 그것이 지금의 학교나 선생님으로는 부족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되든 간 자신을 통제하려는 누군가보다는 자신과 소통하려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들에겐 학교나 선생님의 역할은 자신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느껴질 수 밖 에 없으니, 이에 반하여 더 문제 행동을 쉽게 일으킨다고 생각 할 수도 있었다. 그들도 감정을 가진 사람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또 어떻게 보면 아직 성장을 다하지 못한 아이에 불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항상 보듬어 주고 믿음을 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으로부터 던지 소외되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장치나 연결고리가 필요하다고 본다.세 번째 책임감이 부재 한다는 것이다.내가 또 문제점이라고 느낀 것은 ‘책임감의 부재’이다. 사실 학교 다닐 당시에는 자신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나는 그런 학생이 아니었지만 다른 친구가 이렇게 하였다하더라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 다시와서보니 이것이 굉장히 큰 문제라는 것을 느꼈다. 요즘 아이들이 학원이다 과외다 여러 가지로 바빠서 자신이 맡은 일을 잊을 수도 있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맡은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려 하는데 어떻게 학업이 유지되고, 반이 유지되고, 학교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의 기본은 학생이다. 학생이 있음으로서 반이 존재한다. 반이 존재함으로서 학교라는 조직체가 운영된다. 하지만 작은 책임감조차도 받아들이지 않고 모른 척 한다는 것은 자신을 부정하고 학생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느껴졌다.한 학생이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주번이 도망을 갔는데 문은 누가 잠가요?” 나는 잠시 머리가 멍했다. 이 질문에 과연 내가 어인가 너무 혼란스러웠다. 만약 나에게 이런 상황이 왔다면 물어 볼 필요도 없이 우리 반 학생인 내가 잠가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 한 학생이 말했다. “주번이 도망갔으니까, 교생 선생님이 잠가야죠?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요.”저 정도는 나는 해줄 수 있다.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는“응, 해줄 수 있는데 선생님 혼자라면 안할래. 이건 우리 반 일이잖아. 선생님은 비록 주번은 도망갔지만 남은 사람들끼리 같이 했으면 좋겠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반응은 모두 ‘내 일 아닌데?’ 식 이였다. 너무 충격을 받은 날이었다. 집에 돌아가서는 몇 번을 더 생각했다. 별 일 아닌 것이라고, 내가 유난스러웠던 것이라고 하지만 이내 화가 났다. ‘나’, ‘너’는 이렇게 구분이 잘되고 빨리 계산이 되는데 어째서 ‘우리’는 안 되는 것인지... ‘우리 반’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누가 하지 않았다면, 나도 할 필요 없다 식의 생각은 아직 아이들이 알기엔 너무나도 냉혹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을 수도 있겠지만 반이나 학교라는 곳이 그 어느 때보다 이기적인 공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갖지 못하는 이 상황을 나는 어떻게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것인지 너무나 많은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것이 이런 상황을 만들게 되었는지도 궁금하였다. 공부나 경쟁이 우선시되기 보다는 적어도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맡은 일이라면 책임감을 가지고 노력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줄 수 있는 명분보다는, 인성적으로 도움을 주고 지도해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본다.네 번째 수준별 수업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에는 수준별 분반제도가 없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나 잘 못하는 친구나 한 반에서 같은 수업을 들었다. 나는 수학을 못하는 편이였지만, 공부를 잘하는 친구를 보며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난다. 학교로 돌아와서 보니 수준별로 반이 나누생들이 몇 단계로 나누어져 각기 다른 교실에서 다른 수업을 듣는다니 나로서는 상상이 되질 않았다. 사실 효율적인 교과목 운영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실제로 저 방법이 효율적인 교과목 운영에는 가장 실제적이고 실용적일 것이다. 하지만 분반된 반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하는 학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에 들어가지 않고 앞에서 서성거리는 학생을 보았는데 그 학생을 직접을 본 뒤로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도 수학을 잘하지 못해서 선생님께 보충을 권유 받아서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생각이 났다. 나머지 공부하는 느낌이 들어서 수업을 제대로 안 들었던 적도 많고, 도망가기도 부지기수였다. 나는 친구들이 모르게 혼자였지만, 이 학생은 모두가 알고 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쓰였다. 물론 이런 이유 때문에 절망해서 열심히 안하는 학생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어떻게 보면 분반의 의미는 상실 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하는 분반의 의미는 잘하는 학생은 더 잘하게, 잘 못하는 학생은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절망하고 있는 학생이 있다는 것은 잘 못하는 학생은 학생이 원하는 효과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 일지도 모른다. 분반은 장점도 많겠지만, 이렇게 개개인으로 살펴보자니 문제점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전체로는 효율적이지만 학생 개인으로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이 이런 시스템으로서 피드백을 받고 올라선다면 그것이야 말로 아주 좋은 교육적인 시너지를 발산 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겠지만, 계속해서 패배의식이나 자격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면 수정할 만한 방법이 또 도입되어야 한다고 본다. 교장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대로 힘들어하는 학생이 있다면, 꿈과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면, 그것을 고쳐주어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시스템과 더불어서 확실하게 학생들과 소통하고 좋은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또 더 큰본다.
REPORT반딧불의 묘를 보고과목명:교수명:학과:학번:이름:제출일:특별히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인지 제목을 듣고는 그저 즐거운 가족애를 다룬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 하고 있었다. 교수님께서 이웃집 토토로와 번갈아가며 상영했고 굉장히 대조적인 내용이었다고 말씀 하셨지만, 나는 실제로 내용도 잘 모를뿐더러 대도적이라는 의미조차 장르의 차이라고 생각했다.또 애니메이션이 시작되기 전에 교수님이 약간의 염려의 말씀을 하셨지만 이것 또한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장르의 차이 일 뿐인데” 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작 부분에서 1945년이라는 자막을 보고는 전쟁영화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장르를 떠나서 앞서 상상하고 있던 내용과는 정반대였다. 전쟁영화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그제 서야 교수님께서 왜 염려의 말씀을 하셨는지 알게 되었다. 자칫하면 양단의 시선이 논란을 일으킬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고정관념으로는 보지 않았다. 애니메이션의 목적자체를 일본의 피해의 문제로 제작되었다고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애니메이션에 비춰지는 일본의 입장의 의미가 모두 옳지 않다는 입장도, 옳다는 입장도 아니다. 단지 극단적인 양단의 시선은 배제하고, 인간 대 인간의 시선으로 애니메이션을 감상 했을 뿐이다.그래서 그랬는지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세이타를 처음 보자마자 내가 한 말은 “14살이 왜 저렇게 어른 같지?”였다. 내가 느낀 세이타는 행동이나 내양이 어른같이 보였다기보다는 세이타라는 캐릭터의 겉모습이 커보였다. 하지만 보는 내내 세이타의 모습이 어른 같아 보였던 이유를 점점 알아가게 되었다. 물론 감독이 의도해서 캐릭터의 형태를 묘사했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를 잃고 오로지 생존을 위해서 갖은 애를 써야하는 모습으로는 충분히 그렇게 비춰 질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이런 부분 외에 여러 부분에서 현실과의 괴리를 느꼈다. 실제로 내가 전쟁을 겪어보지 않아서 이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본성은 극한의 상황이 되어봐야 알 수 있다고는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애니메이션처럼 내용대로 된다고 생각하면 누가 겪는다 해도 너무나도 가혹한 상황이 아닐까? 만약 주제가 전쟁이 아닌, 다른 극한의 상황이라도 결과는 같을까?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애니메이션을 보는 나의 시선의 첫 시작점은 참혹한 전쟁으로 인한 극도로 감정이 섞인 슬픔이었지만 스토리가 전개되는 동안 세이타 개인의 슬픔과 아픔으로 옮겨가고, 그 뒤는 전쟁을 겪고 있는 다른 이들로 옮겨갔다. 하지만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 세이타 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내의 전쟁과 상관없는 사람들은 아픔만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 했지만, 아니었다. 죽은 사람을 덤덤하게 불에 태우는 사람,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려 하지 않는 사람, 물건을 훔치고 매매가 가능한 상황, 사람의 생명을 가볍게 여겨 함부로 대하는 사람, 전쟁이 끝났다며 행복해 하는 사람, 이외에도 애니메이션 내에서 정말 여러 가지 캐릭터가 묘사되었다. 어떻게 보면 여러 방면으로 일본의 입장을 보여줬다고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일본은 국외, 국내를 포함해서 피해만 본 것은 아니다와 같은 것처럼 메시지를 전달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이다.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내가 양단의 입장에서 아니라고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 것 같았다. 남보다 가족이 못한 상황,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드는 상황, 행복함은 사라진지 오래되고 죽지 못해 사는 상황, 결국 끝은 죽음일 이런 상황을 겪었던 사람들은 누구에게 책임을 묻고 위로 받을 수 있을까? 전쟁을 일으킨 나라에게도, 전쟁 때문에 먼저 죽게 된 부모님에게도,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어린동생을 돌봐야 하는 세이타도, 부모님 대신의 역할을 해주지 못한 친척에게도, 이것이 진짜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도 위로를 받을 수도 없다는 것이다.내가 이렇게 생각 한 이유는 일본의 역사교육이 제대로 되어지고 있지 않고, 명확히 어떤 일인지 모르는, 순서가 바뀐 상태로는 책임, 위로, 사과의 차원을 벗어나, 잘잘못의 거론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은 것을 내포해야 하는 것이 영상매체의 성격이지만, 만약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것을 표현하려 했다면 정말 말도 안 되는 것이다.앞에서 말했듯이 나는 전쟁 상황보다는 인간의 감정에 중요함을 두고 감상했는데, 사실 이 부분에서 조금 이상했던 점이 있었다. 또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빠진 것이다. 일본국내에서 전쟁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아픔이나, 주인공인 세이타 가족의 아픔은 전쟁과 관련해서 자세하게 묘사되고 비참하게 평가된 반면, 결과 위주의 전개와 함께 전쟁의 전후사항 설명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고 전쟁에 대해서만 초점이 맞춰진 점이 조금 혼란스러웠다. 물론 세이타의 개인적인 사건의 초점으로 만들어진 상황이라고 생각했지만, 또 단순히 애니메이션이라고 치부 할 수도 있었지만, 비단 영상매체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것은 그게 어떤 의미든지 무언가를 알리려 했다는 의도라고 생각한다. 설사 그런 의도가 없었다 하더라고 어떻게든 해석을 해야 하는 관객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교육이 제대로 되어지고 있지 않은 실정이니 만큼, 역사를 중요히 인식하고 있지 않은 국민일수도 있는 관객에게 단편적인 아픔만 보여줄 것이 아니라, 왜 전쟁이 일어나게 됐는지, 전쟁의 의의가 뭐였는지, 전쟁으로 인해 어떤 피해를 주고받았는지,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집고 이해시켜야할 역할과 책임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