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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민족문학사 강좌] 요약 평가A+최고예요
    한국문학사 교재 요약총론: 민족문학의 개념과 그 사적 전개‘민족문학사 강좌’의 총론에 해당하는 이 글에서는 무엇보다 두 가지 문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우선 ‘민족문학’의 개념을 해명하고 문학사를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인식의 구도를 잡아본 다음, 신문학으로 출발하여 식민지 상황을 통과했던 한국의 근대문학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서설 차원에서 언급할 것이다. 요컨대 이 글은 민족문학사 정립에 필요한 체계적인 인식논리를 세워보는 데 목적이 있다.1. 민족문학의 개념과 민족문학사의 인식한국의 근현대 상황과 민족문학1900년 전후 신구 문명의 전환과 함께 근대적 변혁이 일어난 시점에서 한글이 ‘국문’으로 부각됨에 따라 “동국(東國)의 시란 무엇인가? 동국의 글, 동국의 소리로 지은 것이다”(신채호「천희당시화」1909)라는 주장이 처음으로 나온다. ‘자국어문학의 수립’이란 역사적 과제는 3?1운동 이후 활발해진 문화운동으로 성취된다. 바로 1920년대의 신문학이다. 신문학의 주체들은 ‘현대성’(근대성)을 지향한 동시에 민족국가적 정체성을 확실하게 의식했다.이와 같이 창작적 실천의 차원에서 한국문학(조선문학)의 개념이 성립하면서 그것을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에 따라 한국문학의 학적 인식이 발전했던바, 언어?역사? 문화와 함께 근대 학문의 하나로서 ‘한국문학의 학’(국문학)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1920년대로부터 1930년대 사이의 일이었다.그런데 21세기로 들어서면서 ‘세계화’가 피할 수 없는 대세로 급속히 진행 중이고, 이에 따라 민족문학의 이념은 이미 낡은 것이니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변화에도 불구하고 민족문학의 개념을 견지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첫째, 한국의 상황을 고려해볼 때 아직은 민족문학을 폐기할 단계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북으로 분단된 현실은 심각한 역사적 결손을 가져 왔으며, ‘통일’을 위해서는 민족문학의 이념이 아직도 유효하다.둘째, 오늘의 현실에서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의 「최치원」은 전기소설의 면모를 충실히 갖추고 있다. 그런 사실은 중국 당나라 때의 전기소설 「유선굴」, 「심경」, 「낙신전」과 분위기나 구조 가 매우 흡사하다는 점 말고도 「임씨전」, 「진랑비」 구절을 직접 인용했다는 데에서도 확인된다.부귀영화를 갈망하던 육두품 지식인 최치원이 그 덧없음을 깨닫고 백운에 몸을 맡기겠다고 다짐하는 대목은, 원혼녀와의 만남이라는 전기적 서사를 통한 삶의 전환을 보여준다. 최치원은 유명세계를 경험하고 나서 전신적 전환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는 나말여초라는 문화적 전환기를 경험하며 이루어낸 전기소설의 빛나는 문학적 성취이다.5. 나말여초 서사문학의 층위와 과제지금까지 동아시아 서사문학 교류의 국면, 그를 통해 새롭게 전개된 초기 서사문학의 지평을 『수이전』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았다. 그리하여 『수이전』의 지괴는 나말여초 문인지식층의 유명세계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려는 의도를 담은 서사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이전』에 실린 「최치원」은 이런 지괴와는 다른 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바로 작가 자신이 구축해놓은 서사세계의 주인공을 통해 현실을 바라보는 인식의 질적 상승, 또는 새로운 전환을 보여주려 했던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지괴와 전기가 구분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물론 삼국시대에서 나말여초에 이르기까지의 서사문학을 살피기 위해서는 더 폭넓은 문헌을 연구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더욱이 지괴가 서사적 초점을 거대한 ‘세계’에 맞추고 있는 반면, 전기소설은 그런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점을 더욱 세밀하게 비교?고찰할 필요가 있다.나말여초의 문학사적 전환과 최치원1. 전환기로서의 ‘나말여초’9세기에 접어들면서 남북국시대의 균형이 깨지고 역사는 새로이 전환기를 맞았다. 북쪽의 발해가 세력을 잃으면서 북방은 다른 세력권에 넘어갔으며, 남쪽의 통일신라 지역에는 후삼국시대가 도래하였다. 이후 우리 역사는 남쪽 중심의 체제로 축소?개편되는데, 신라에서 고려로의 전환은 단순히 국가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지배구조 그것은 정권이나 지배세력에 대한 비판이지 봉건사회에 도전하는 체제비판적 성격을 띤다고 보기는 어렵다.『금오신화』의 출현과 김시습의 문학사적 위상1. 『금오신화』의 저술과 그 배경김시습의 『금오신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라말 고려초에 중국 당에서 유행하던 ‘전기’ 양식을 차용한 「최치원」「김현감호」같은 작품이 창작된바 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금오신화』에 붙은 ‘최초’라는 찬사는 초기 작품들에 비해 형식과 분량, 작품성에서 ‘완성도가 높은 최초’의 소설로 이해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김시습은 5세에 “학문이 성취될 때를 기다려 장차 크게 등용하겠다”는 세종의 성지를 얻어 ‘오세’라 일컬어진 신동이었다. 그러나 계유정난이 일어나자 과거를 준비하던 김시습은 사흘 동안 두물불출하다 자신의 서책을 모두 불사른다. 그의 역정은 이런 역사적 모순과 관계가 있다.현재 『금오신화』는 5편만이 남아 있다. ‘신화’라는 제목의 유사성이 말해주듯 중국에서 유입된 구우의 저술은 좋은 자극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오신화』를 단지 『전등신화』의 모방으로만 단정할 수는 없다. 『전등신화』가 ‘술이’에 관심을 보였다면, 『금오신화』는 ‘우의’에 더 집중했음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금오신화』는 작자와 조선사회의 불협화음, 즉 “세상과 자아의 모순”이 문학적으로 형상화된 작품이다.2. 기이로 빚어낸 만남과 이별의 미학,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만복사저포기」는 남원의 양생이 만복사 연등 행사에서 부처님과 저포 놀이를 해서 이기고 아름다운 여인을 짝을 맺게 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 여인은 현실의 인물이 아니라 3년 전 전쟁터에서 절개를 지키려다 죽은 원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제사를 지내러 오는 부모와 다시 찾아줄 것을 약속하며 양생과 헤어진다. 이후 양생은 여인과의 약속대로 여인의 부모에게 자초지종을 말해 그 사실을 확인하고 여인의 넋을 위로한 후 세상을 등진다.「이생규장전」은 전?후반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궁핍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유배가사가 대표적이다. 조위의 「만분가」, 정철의 「사미인곡」과 「속미인곡」이 이에 해당한다. 정철의 4편의 가사를 창작했지만, 그의 작품은 하나같이 이전의 작품을 계승하여 이를 새롭게 재창고하고 있으며, 언어 활용면에서 탁월한 성취를 보여준다. 이런 점 때문에 그는 조선전기 가사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받고 있다.5. 여류문학의 성취: 기녀시조와 규방가사기녀시조에서 중심적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이별의 문제다. 강릉기 홍장, 송도기 황진이, 부안기 계랑, 경성기 홍랑 등이 이런 시조를 남긴 기녀들이다. 이 중 가장 탁월하여 독보적 경지에 오른 이는 역시 황진이라 할 수 있다.규방가사는 허초희 또는 허균의 첩 무옥이 지었다는 「규원가」 한 편만이 전하지만 사대부 여성의 꿈과 소망, 그리고 이것의 좌절에서 오는 신세 한탄을 솔직히 드러냄으로써 조선후기에 규방가사가 대거 창작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6. 조선전기 국문시가의 변모양상17세기는 기본적 측면에서 16세기와 동질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세부적으로는 당쟁이 격화되었고, 사족층 내부의 분화가 가속화되었으며, 가부장적 특징이 강화되는 등 많은 변화가 나타났고, 이런 변화는 국문시가에도 반영되었다.우선 처사적 삶을 형상화한 작품들의 경우 강호시가의 큰 틀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나 내적으로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난다. 사시가의 경우 치사한객의 낙관주의적 세계상을 드러내면서도 ‘강호’가 ‘전원’으로 바뀌고, 전원의 성격 또한 일상적 생활공간과 분리되지 않은 공간으로 나타나게 된다. 어부가의 경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는 이현보의 「어부장가」와 「어부단가」를 통합한 형식을 취했으며, 내용 면에서 시름의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보길도의 수려한 경관을 바탕으로 한 화자의 고양된 흥취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육가의 경우, 실질적으로는 17세기 역사상에 밀착된 상태에서 각각의 독자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이 시기 한문서사시의 최고봉은 역시 중세사회 모순으로 야기된 여성의 애정갈등과 기구한 삶을 담은 작품들이다. 성해응의 「전불관행」의 경우, 주체적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조선후기 서사한시의 최고 걸작은 정약용의 「도강고가부사」와 김려의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이다. 정약용의 이 시를 통해, 우리는 소경에게 시집간 여성의 삶의 역정을 통해 체제모순이 침음하는 비극적인 민중의 전형을 만난다. 김려의 「고시위장원경처심씨작」내용과 형식이 단일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다채로운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다.이처럼 한시의 서사화로의 이행은 한국한시에서 현실주의의 한 획을 긋는 성취로 볼 수 있으며, 조선후기 서사한시는 한문학사에서도 뚜렷한 자기위상을 구축했으니 주목할 만하다.조선후기 시가문학의 분화1. 조선후기 시가사에 접근하는 방식조선문화의 중심은 사대부문화라 할 수 있다. 주류 사대부문화와 구술로 전승되는 기층의 민중문화로 양분되던 흐름은 18세기 이후 서울을 비롯한 도시 기반의 시정문화가 성장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 시작을 알린 것은 유흥문화의 출현과 이를 주도한 새로운 문화담당층의 부상이라 할 수 있다.유흥문화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가무와 향락을 제공하는 기녀?악공 등 관의 구속에서 벗어난 민간예능인이 필요하다. ‘왈짜 무리’가 중심이 된 유흥문화가 시정문화의 주류를 이루면서 문학?예술의 향유관습은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이 시기 시정문화의 중심은 가악이었다. 예악의 이상 혹은 사대부의 절제된 정신세계를 표현하던 가악에도 상업적 수요가 생겨났고, 이는 자연스럽게 음악과 결합한 시가증르의 변화를 초래했다.경험의 확장과 대상을 인식하는 관점의 변화로 시가가 포괄할 수 있는 영역이 한결 넓어졌다는 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조선후기 시가사는 이렇듯 당대 예술사의 흐름, 시대정신의 변화, 시정문화의 경향과 이를 주도한 담당층의 부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2. 시정담론의 동향과 시조의 통속화시조는 조화와 균형을 이상으로 하는 사대부의 미의식을 드러내기에 적합한 장르로 알
    인문/어학| 2010.08.20| 60페이지| 4,000원| 조회(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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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공저널리즘 프로젝트 계획서
    강의명: 공공저널리즘교수님: 조인호 교수님제출자: KE 200500280 김경훈주제: 무상급식이 가져온 변화와 앞으로 나가가야 할 방향주제 선정 이유: 무상급식은 6.2 지방선거와 관련해서 최고의 정책 이슈로 떠올랐다. 무상급식은 한국의 선거에서 보기 드물게 이슈가 된 정책 의제라는 점에서, 특히 복지정책으로 이슈가 됐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무상급식을 주제로 선정하였다.대상지역: 경남 합천대상지역 선정 이유: 경남 합천을 대상지역으로 선택한 이유는, 경남 합천이 초중고 100% 무상급식을 실시하고 있는 지역으로 무상급식이 시행됐을 때의 장단점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무상급식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1) 사전 준비 단계경남 합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배경과 현황 등 지역 사회의 특성을 파악하는 다게를 말한다. 이 단계에서는 시민 저널리즘을 본격적으로 실시하기에 앞서 지역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이 이루어지는 시민 공간과 시민 지도자 및 시민단체의 유형 등 지역 사회의 특징에 대한 사전 조사를 통해 시민 저널리즘 프로젝트 추진에 필요한 기초적 자료를 수집하게 된다. 사전 준비 단게는 이후의 이슈 조사 및 선정 단계, 이슈 토론 단계 등 전반적인 시민 저널리즘 프로젝트 추진 과정과 계획 수립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사전 준비 단계는 지역 사회의 특성이 이미 파악돼 있거나 지역 사회에 관한 정보나 관련 자료가 확보돼있을 경우에는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영남권 1,075개 동네 정치 지도 분석투표율과 주택 소유율의 상관관계가 높게 나타난다. 투표율과 다주택자 비율, 투표율과 종교 인구 비율에서는 일부 제한적인 상관관계가 나타나며, 투표율과 거처, 1인 가구, (반)지하 등 거주 가구, 대학 이상 학력자 비중, 정당별 득표율 간에는 상관관계를 찾기 어렵다.? 투표율과 주택 소유율투표율이 높은 3,4분위로 높아질수록 주택 소유율도 60%?65%?73%로 높아지며, 투표율이 가장 높은 상위 20% 5분위에서 주택 소유율이 81%로 가장 높다.역으로 집 없는 가구 비율이 낮은 동네일수록 투표율이 낮고, 동네 사람 중 주택 소유 가구가 많은 동네일수록 투표율이 높다. 주택 소유율이 평균 이상인 651개 동네의 투표율은 63%로 평균 미만 424개 동네의 58%에 비해 5%가 높다. 또 주택 소유율이 가장 낲은 1분위의 투표율은 57%인 데 비해, 주택 소유율이 2,3,4분위로 높아질수록 투표율도 59%?62%?64%로 높아지며, 주택 소유율이 가장 높은 5분위에서 투표율도 68%로 가장 높다.? 투표율과 다주택자, 종교 인구 비율동네별 투표율과 다주택자 비율 사이에는 어느 정도 상관관계가 보이지만 투표율이 가장 높은 5분위 동네에서 다주택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타난다. 또 다주택자 비율에 따른 투표율 분포에서도 주택 소유 가구 비중이 평균 미만인 동네에서만 상관관계가 발견된다.동네별 투표율 분포에 따른 종교 인구 분포에서도 일정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만 투표율이 가장 높은 5분위의 종교 인구 비중이 2분위보다도 낮게 나타난다. 또 종교 인구 비중에 따른 투표율 분포에서도 동네 사람 중 종교 인구가 많은 동네로 갈수록 투표율이 올라가는 추세는 확인되지만 1분위와 2분위, 3분위와 4분위의 투표율이 똑같아 상관관계는 제한적이다.◎ 한나라당 득표율과 동네별 특성한나라당 득표율과 아파트 거주자 비중, 1인 가구 비중에서 일부 상관관계가 보이나 제한적이며, 동네의 다른 특성과는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한나라당 득표율과 아파트 거주 가구 비중한나라당 득표율 평균 이상 657개 동네의 아파트 거주 가구는 34%인 데 비해 평균 미만 418개 동네는 48%로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동네일수록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적다. 득표율이 가장 낮은 1분위의 아파트 거주자는 53%인 데 비해 2,3,4분위로 갈수록 40%?38%?36%로 낮아져 5분위에서 27%로 가장 들수록 득표율은 53%?55%?58%로 올라간다. 다만 아파트 거주자가 가장 적은 1분위의 득표율이 57%로 떨어져 상관관계는 제한적이다.? 한나라당 득표율과 1인 가구 비중한나라당 득표율 평균 이상 657개 동네의 1인 가구는 22%인 데 비해 평균 미만 418개 동네는 19%로 한나라당을 많이 찍은 동네일수록 1인 가구가 많다. 득표율이 가장 낮은 1분위의 1인 가구는 18%인 데 비해 2분위는 20%, 3분위와 4분위는 21%로 더 낮고, 5분위에서 23%로 가장 높다.역으로 1인 가구가 많을수록 한나라당 득표율도 높다. 1인 가구가 평균 이상으로 많은 368개 동네의 한나라당 득표율은 56%로 평균 미만 707개 동네 50%보다 6%가 높다. 또 1인 가구가 가장 적은 1분위의 득표율이 50%로 가장 낮고 2,3,4분위로 갈수록 52%?55%?57%로 올라간다. 다만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5분위의 득표율은 56%로 떨어져 상관관계는 제한적이다.? 아파트 거주 가구와 1인 가구 비중을 제외한 다른 동네의 특성과 한나라당 득표율 간의 상관관계는 나타나지 않는다.◎ 민주(+열린우리)당 득표율과 동네별 특성민주(+열린우리)당 득표율 역시 아파트 거주자 비중, 1인 가구 비중에서 일부 상관관계가 보이나 제한적이며, 동네의 다른 특성과는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는다.? 민주(+열린우리)당 득표율과 아파트 거주 가구 비중민주(+열린우리)당 득표율 평균 이상 434개 동네의 아파트 거주가구는 46%인 데 비해 평균 미만 641개 동네는 35%로 민주(+열린우리)당을 많이 찍은 동네일수록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많다. 득표율이 가장 낮은 1분위의 아파트 거주자는 25%인 데 비해 2,3,4분위로 갈수록 37%?41%?44%로 높아져 5분위에서 48%로 가장 높다.역으로 아파트 거주 가구 비중별 민주(+열린우리)당 득표율 분포를 보자. 아파트 거주자가 평균보다 많은 779개 동네의 민주(+열린우리)당 득표율은 31%로 평균 미만 296개 동네 29%에 비해 2%가 높다. +열린우리)당 득표율 평균 이상 434개 동네의 1인 가구는 19%인 데 비해 평균 미만 641개 동네는 22%로 민주(+열린우리)당을 많이 찍은 동네일수록 1인 가구가 적다. 득표율이 가장 낮은 1분위의 1인 가구는 24%인 데 비해 2분위와 3분위는 21%, 4분위는 20%로 더 낮고, 5분위에서 18%로 가장 낮다.역으로 1인 가구가 많을수록 민주(+열린우리)당 득표율은 낮다. 1인 가구가 평균 이상으로 많은 368개 동네의 민주(+열린우리)당 득표율은 28%로 평균 미만 707개 동네 31%보다 3%가 낮다. 또 1인 가구가 가장 적은 1분위의 득표율이 31%로 가장 높고 2,3,4분위로 갈수록 30%?29%?26%로 내려간다. 다만 1인 가구가 가장 많은 5분위의 득표율은 27%로 4분위보다 1% 높아 상관관계는 제한적이다.? 아파트 거주 가구와 1인 가구 비중을 제외한 다른 동네의 특성과 민주(+열린우리)당 득표율 간의 상관관계는 나타나지 않는다.? 합천 기초 통계 자료(출처: 합천군청 홈페이지)1km2당 인구밀도: 56명1가구당 가족수: 2.3명농가당 경지면적: 1.15ha1사육농가당 한우: 6.5두1인당 주민수 의사: 304명1사육농가당 양돈: 831두1일 출생: 0.7명1일 사망: 2.1명1일 혼인: 0.7쌍1일 이혼: 0.3쌍1일 전입: 19.7명1일 전출: 26.9명1인당 급수: 277L학생 1인당 교원수: 9.8명1.5가구당 자동차 1대1가구당 학생: 0.23명1인당 군예산: 5,893,020원지방세: 1인당 329,284원, 1가구당 760,984원가구당 주택: 1동1인당 연간우편: 0.43통정치적 배경: 합천군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고향이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적이고, 정당으로 따지면 한나라당이 지지를 받는 곳이다. 경남, 특히 그중에서 합천군은 한나라당의 안방이라 할 수 있다. 심의조 현 합천 군수는 한나라당 소속이고, 군의회도 한나라당이 장악하고 있다.경제적 배경: 인구 5만2000여명의 작은 군이고,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다. 1년 을 모집해 '합천 종합교육회관'을 운영했는데, 그 결과 이제 더 이상 학생들이 도시로 떠나지 않고 오히려 도시에서 합천으로 오게 됐다. 무상급식도 그러한 교육 강화의 일환으로 실행되었다. 심의조 현 합천군수는 "주민과 학생들의 호응이 아주 높다"고 평가했다. 실제 합천군은 5년 전부터 인구가 줄지 않고 있으며, 학생들은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2) 이슈 조사 및 선정 단계두 번째 단계인 이슈 조사 및 선정 단계는 이슈 여론 조사, 포커스 그룹 인터뷰, 시민 공청회, 시민 포럼, 시민 패널 등을 통해 경남 합천에서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나 이슈 혹은 주민들의 주요 관심사를 파악하는 단계를 말한다. 이 단계에서는 시민의 관점에서 지역 사회의 현안은 무엇이고 주민들이 무엇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의견은 어떠한지 등을 파악해서 마지막 단계인 이슈 토론 단계에서 논의하게 될 이슈의 종류와 범위 등을 결정하게 된다. 그러나 이슈 조사 및 선정 단계 역시 지역 사회가 해결해야할 이슈가 명백하게 드러나 있는 경우에는 생략되는 경우가 많다.? 포커스 그룹 인터뷰- 횟수: 2회- sample: 첫 번째 포커스 그룹 인터뷰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자녀를 둔 40~50대 학부모 10명 내외를 대상으로 실시, 두 번째 포커스 그룹 인터뷰는 무상급식의 대상자인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10명 내외를 대상으로 실시.- 시간: 2시간- 질문첫 번째 포커스 그룹 인터뷰① 전국적으로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는 지역이 많지 않다.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경남 합천에서 초중고 무상급식이 전면 실시된 배경은 무엇인가?② 무상급식 실시 후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특히 가계 부담은 얼마나 줄어들었나?③ 교육적으로 봤을 때, 아이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긴 것 같나?두 번째 포커스 그룹 인터뷰① 이전과 무상급식이 실시된 지금과 비교하면 어떤가? 급식비를 못 내는 아이들이 눈치를 받는 상황은 없어졌나?② 급식의 질은 어떻게 변화했는가?급식의 질에 대한 예상답변영양교사
    사회과학| 2010.06.28| 8페이지| 1,500원| 조회(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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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용학-<원형의 전설> 서평
    원형의 전설-근친상간의 모티브와 관념성한국현대소설교육론제출일: 2005.12.19-근친상간의 모티브일단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상당히 관념적이고, 좀 난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금지와 죄와 신을 넘어서 제 4차원, 인간을 산다고 말했는데 그 부분이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다. 금지와 죄는 근친상간이라는 모티브와 연결시켜 이해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신이란 키워드가 가진 의미는 무엇인가. 카인과 그의 여동생 아다의 이야기가 잠깐 나오기는 하지만 나 처럼 신과 인간의 이야기가 중요한 상징으로 쓰인 것도 아니고, 카인과 아다의 이야기는 정말 스쳐지나가는 것뿐 성경을 읽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은 그 이야기가 뭔지도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내가 성경을 읽었다면 이렇게 스쳐지나가는 부분만 보고도 신이란 키워드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을 텐데 애초에 그걸 알지 못하니 여기서 신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이 소설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 근친상간의 모티브이다. 털보영감이 첩의 딸인 윤희를 강간하는 것, 오택부가 자신의 동생인 오기미를 강간하고 임신시킨 것, 그렇게 해서 태어난 이장이 다시 자기 동생인 안지야와 결혼하는 것. 근친상간의 결과로 태어난 이장이 다시 근친상간을 한다는 아이러니, 그건 마치 역사의 수레바퀴가 한 바퀴 돌았다는 느낌을 줬다. 이장은 근친상간을 한 털보영감과 오택부를 죽였다. 오택부는 이장 자신의 손으로 죽인 것은 아니지만 이장이 그를 죽음으로 유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자기 자신은 근친상간의 죄를 범했다. 이 대목에서 ‘이것은 모순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들의 근친상간에 어떤 차이점이 있기에 털보영감과 오택부는 죽을 죄를 지은 것이 되고, 이장은 ‘인간’을 사는 것이 되는 것인가? 털보영감의 근친상간과 오택부의 근친상간, 그리고 이장의 근친상간에서 다른 점은 이장의 근친상간은 이장과 안지야의 암묵적인 합의 하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털보영감이나 오택부와는 달리 이장은 안지야와 함께 의식적으로 근친상간이라는 선을 넘었다. 그러나 털보영감과 오택부도 근친상간이라는 선을 넘은 것은 마찬가지이고 어쩌면 그것은 금지와 죄를 넘어선 행동, 즉 진정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이장 자신도 안지야가 자신의 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직후에 “나는 오택부가 될 뻔했다. 아니 오택부다!”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장과 오택부 사이에는 대체 얼마만한 차이가 있는 것인가? 아니, 오택부는 강간이라는 죄까지 범했으니 이장보다 훨씬 더 ‘인간’으로 살 수 있게 된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택부와 이장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의식범과 무의식범-이런 말이 옳은지는 모르겠으나-의 차이? 아니면 강간과 화간의 차이? 그렇다면 ‘이장은 안지야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녀와 선을 넘지 않았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하긴 안지야가 이장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 이야기가 성립이 안 될 것이고 그랬다면 정말로 이장과 안지야는 선을 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묘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의식범과 무의식범의 차이만으로 이렇게 두 사람이 다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그리고 근친상간이라는 이 작품의 중심적인 모티브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근친상간은 금기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을 예로 들어 봐도 남매 간의 사랑은 동생의 죽음이라는 비극적인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들이 근친상간이라는 금기를 어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근친상간이란 혈연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들끼리의 성적 결합이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에 대한 사랑이자 갈망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건 어쩌면 피로 강하게 이어져 있는 두 사람이 하나로 결합함으로써 보다 완벽한 자신이 되려고 하는 자연스러운 욕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에서 나온 남매 간의 근친상간은 원래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둘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되고 싶어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실제로 고대에는 근친혼이 성행했다고 하며, 특히 왕족들 사이에서는 혈통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근친상간이 자주 행해졌다고 한다. 성경에서도 롯과 그의 딸들 사이에서 모압과 암몬이 태어났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근친상간은 자연스런 욕구이며 자연스러운 욕구인 근친상간을 억제하려는 것은 이장이 말한 것과 같이 우생학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 작품 속에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근친상간의 모티브는 무엇을 말하기 위함일까.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구를 인정하고 인간이 스스로에게 덮어씌운 ‘인간적’임, 즉 금지와 죄와 신을 벗어버리고 진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함이 아닐까.그렇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근친상간의 의미가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면 털보영감과 오택부의 근친상간은 무엇인가? 근친상간이 ‘인간적’임을 벗어던지고 진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행위라면 어째서 그들은 죽음이란 결과를 맞이해야만 했는가. 한발 양보해서 그들의 근친상간은 상대방의 의사를 무시한 단순한 욕정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그 결과로 상대방-윤희와 오기미-이 불행한 결과를 맞이했기 때문에 털보영감과 오택부가 비참한 결과를 맞은 것이라 해도, 그런 식으로 비참한 결말을 맞는 것은 ‘근친상간’이 가지는 의미-‘인간적’인 죄와 금지, 신을 뛰어넘어 4차원으로 도약하는 것, 즉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희석되는 느낌이 든다.그 외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든 의문은 ‘공자는 어째서 이장과 맺어지지 못했는가’ 하는 점이다. 어머니가 사랑했던 현만우의 딸, 성결하지만 차라리 짓밟아버리고 싶은 존재, 안지야만큼은 아니더라도 마음속으로 사랑했던 존재. 여러 모로 객관적인 조건을 따져볼 때 안지야보다 훨씬 낫고, 더구나 안지야가 자신의 친동생이라는 걸 생각하면 공자를 택하는 게 당연했던 걸지도 모른다. 공자도 이장에게 “저를 아내로 삼을 생각은 없으세요?”라고 하지 않았던가. 공자도 아마 이장에게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장은 안지야를 선택한 것인가.그것은 일단 공자보다 안지야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공자는 피가 이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속에서 맺어지는 사람들은 대체로 근친상간을 통해 맺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까 말한 털보영감과 윤희, 오택부와 기미, 이장과 안지야가 그런 경우이다. 앞의 둘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몸만 가졌고 마음을 가지지 못했다는 점에서 맺어졌다고 하기는 좀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맺어졌다. 윤희는 이장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이장과 하룻밤을 보낸 뒤 자살하고, 기미는 현만우와 서로 사랑했지만 결국은 친오빠 오택부의 아들을 낳지 않았는가. 어떤 의미로든 근친상간이라는 관계가 성립된 것만은 사실이다. 장용학이 어째서 근친상간의 모티브에 이렇게 집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공자와 이장이 맺어지지 못한 것도 근친상간이 아닌 일반적인 사랑의 형태를 띠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생각해봤다.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근친상간의 모티브를 중심으로 이 소설을 한번 살펴봤다. 원래 근친상간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근친상간을 통해 금지와 죄와 신을 넘어서 진정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이 흥미로웠다.장용학-관념성의 문제윤상기 씨가 쓴 ‘장용학 소설에 나타난 관념성의 근본문제에 대하여’란 논문을 읽고 나서 쓴 소감을 쓰겠다. 을 읽으면서 관념적이고 난해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기존의 장용학 연구에서도 장용학소설의 관념성에 대해 탐구를 했지만, 그런 관념성이 나타난 근본원인에 대한 연구는 별로 없었다. 이 논문에서는 장용학 소설에서 관념성이 나타난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독후감/창작| 2009.10.31| 4페이지| 1,000원| 조회(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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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 루이스 개디스-<새로 쓰는 냉전의 역사> 서평
    ‘새로 쓰는 냉전의 역사’수업: 한국의 사회운동교수님: 고지훈 교수님제출일: 2006.5.17처음에 교수님께서 ‘끝나지 않는 신드롬’과 ‘새로 쓰는 냉전의 역사’ 중 하나를 선택해서 서평을 쓰라고 하셨을 때, ‘끝나지 않는 신드롬’이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새로 쓰는 냉전의 역사’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한국 전쟁을 비롯해서 2차 세계 대전 이후의 세계 질서를 지배했던 냉전에 대해 좀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나라의 인명과 지명 때문에 읽으면서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고 좀 더 사전지식을 가지고 읽지 못해 이해도가 떨어지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냉전이 어째서 발생했는지 그리고 냉전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새로 쓰는 냉전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미루어볼 때 기존에 냉전을 이해하던 방식과는 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냉전의 기원에서 종말까지를 살펴본 책인 거 같은데, 사실 기존의 냉전을 보는 관점에 대해서 거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전적으로 이 책에 의존해서 살펴볼 수밖에 없었던 점이 아쉽게 느껴진다.일단 냉전이 시작되는 데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쪽은 스탈린-즉 소련 측임을 알게 되었다. 1947년 이전에는 미국과 서구 동맹국들은 러시아 인들이 결국은 전후의 경제 제건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1) 그러나 소련의 스탈린은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질서가 재편되는 것에 반대했다. 그는 보다 많은 국가에서, 세계적인 차원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길 원했다. 그에 비하면 미국은 상대적으로 그러한 소련의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수동적으로 움직였다고 할 수 있다. 유럽에 경제 지원을 해줌으로써 유럽의 공산화를 막는다는 마셜 플랜도 그러한 대응의 일환이었다.사실 이 책에서는 미국과 소련을 놓고 봤을 때 대부분의 경우 소련이 먼저 공격적으로 대응하고 미국은 그러한 도발에 대해서도 대체로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하는 등, 미국이 대체로 소련보다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졌는데 저자가 미국인임을 감안할 때 다소 객관적이지 못한 입장에서 미국을 우호적으로 바라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달리 냉전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던 나로서는 이 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며, 객관적인 시각이라는 것이 무조건 양쪽에 50%씩 잘못이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님 또한 자명하기 때문에 일단은 이 책의 내용을 믿고 따르기로 하겠다.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본 부분은 역시 한국전쟁 편이었다. 1949년 마오쩌둥의 공산당에 중국에 집권했는데, 미국과 소련은 모두 중국 국민당을 지원하고 국민당이 집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2)는 것이 재미있었다. 미국과 소련 모두 공산당이 국민당을 이기고 집권할 것이란 사실을 예측하지 못한 것일까. 또 미국과 소련 모두 중국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은 것도 생각해 볼만한 일인 것 같다. 만약 미국이나 소련이 중국 내의 상황-국민당과 국민당의 싸움-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더라면 냉전 시대에 일어난 가장 큰 분쟁은 한국전쟁이 아니라 중국에서 일어난 전쟁이 되지 않았을까.미국도 소련도 모두 국민당이 이길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중국 문제에 개입하지 않은 것인지는 몰라도 만약에 그들에 중국에 개입했다면 여러 모로 아시아 내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의 공산화가 한국전쟁이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만약 미국이 중국 문제에 직접 개입해서 국민당을 지원했다면, 그래서 국민당이 승리했다면 우리나라에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탈린이 박헌영과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승인했던 것은 ‘중국이 공산화될 때 그랬듯 이번에도 미국은 한국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닌가. 미국이 직접 중국 국민당이 승리하도록 도와줬다면 스탈린은 미국의 개입이 두려워서라도 북한의 남침을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북한이 독자적으로, 혹은 스탈린을 어떻게든 설득시켜서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해도 중공군이 개입해 전쟁의 피해가 더 커지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랬다면 한국전쟁 때 남한군과 유엔군에 의해 무력통일이 이뤄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력통일이 이뤄지는 경우 우리나라 입장에서 꼭 좋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한국 전쟁이 일어나지 않거나 중공군의 개입을 전쟁의 피해가 더 커지지 않았다면 그것은 분명히 우리나라를 위해서 다행이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가정은 가정일 뿐이지만 만약 미국에 중국 문제에 직접 개입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것은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만 살펴본 것이고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이 중국 문제에 개입할 경우 그 자체만으로도 전쟁이 확대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소련이 개입할 가능성도 있다. 소련까지 개입할 경우에는 전쟁이 더욱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이다. 아마도 그랬다면 한국 전쟁보다 더 큰 전쟁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계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미국이 중국 국민당이 승리하도록 도와주지 않은 것이 오히려 다행일 수도 있겠다.또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미국이나 소련에게 있어 ‘주변적 가치’였던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큰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 당시 한국이 미국에게 있어 상당히 중요한 땅인 줄 알고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한국 근현대사 수업 시간에 애치슨 선언에 대해 배울 때, 선생님께서 “한국은 아시아의 공산화를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따라서 애치슨 선언에서 한국을 미국의 방어선에서 제외시킨 것은 미국이 일부러 북한의 남침을 유도한 것이다”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와 더불어 미국이 북한이 남침을 하자마자 파병을 결정한 것을 두고, 미국은 일부러 북한의 남침을 유도했고 거기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소련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 했다고 배웠는데 이 책을 읽고 그런 선생님의 말씀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미국에게 있어 한국은 유럽에 비해 별로 중요한 땅이 아니었다. 애치슨 선언에서 제외된 것도 사실은 그런 이유였고 북한의 남침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미국이 그렇게 빨리 국회에서 파병을 결정한 것도 순수하게 중국이 공산화된 마당에 한국까지 공산화되게 놔둘 수는 없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싶다.위에서도 말했듯이 한국은 미국에게 있어 주변적인 가치였고, 그것은 소련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사실 유럽이었다. 그런데 그 ‘주변적 가치’인 한국에서 냉전시대에 일어난 무력 분쟁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 책에서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주변적 가치가 아니라 유럽과 같은 중심적 가치에서 싸움이 벌어졌다면 서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것이고, 미국과 소련은 둘 다 그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3) 그런 이유야 어쨌든 미국과 소련 모두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한국에서 냉전역사상 가장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재미있었다.소련이 한때 이데올로기적으로 미국에 밀리지 않았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1945년 소련은 완전 고용을 달성했지만 미국을 포함한 자본주의 세계는 1930년대에 대공황을 맞았고 이는 2차 세계 대전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4) 자본주의가 대공황을 극복하기는 했지만 그 방법상에서 상당부분 사회주의적 요소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한때는 사회주의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자본주의에 우위에 있다, 아니 그렇진 않더라도 최소한 자본주의에 밀리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원래 아담 스미스가 주장한 자유방임주의는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데 미국이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실시했던 뉴딜 정책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서 시장 내의 불균형과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자유방임주의의 기본원칙에 위배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한다는 것은 공산주의의 계획경제를 연상케 한다. 물론 결국엔 소련이 경제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에 현실적으로 패배하고 내부의 체제 모순으로 무너지기는 하지만 한때, 적어도 냉전이 시작되던 무렵에는 소련이 이데올로기적으로 결코 미국에 밀리지 않았다는 사실은 흥미롭게 느껴졌다.
    독후감/창작| 2009.10.31| 4페이지| 1,000원| 조회(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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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영래-<전태일 평전> 서평
    을 읽고내가 처음으로 전태일이란 이름을 접한 것은 초등학생 때 도서관에서 빌린 이란 책을 읽었을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이미 10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이기에 그 당시의 감정과 생각들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책을 읽으면서 한 인간이 배우지 못하고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는 것을 보며 많이 슬펐고, 노동자들의 현실이 얼마나 비참했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것만은 기억난다. 그리고 나이를 먹고 대학교에 입학해서 조영래 변호사가 쓴 을 읽게 됐을 때, 그 어린 시절의 내가 느꼈던 것과는 또 다른 것들을 새로이 느끼게 되었다.전태일은 박정희 정권의 엄혹한 군사독재 하인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 길거리에서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죽어갔다. 그리하여 평화시장의 노동자들이 처한 참담한 현실과 더 나아가 전체 한국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인간 이하의 고통이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랬기에 전태일의 죽음은 단순히 한 노동자의 죽음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곧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냉혹한 현실에 대한 고발이었으며, 자신의 목숨마저 바쳐 현실을 개혁하고 인간을 사랑하려 한 뜨거운 ‘인간선언’이었다. 노동자들이 기계가 아니라 한 명의 인간임을 온몸과 자신의 생명을 던져 세상에 선포한 것이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사회개혁이란 잘못된 사회에 대한 분노보다도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구나’하는 것이었다. 전태일도 처음부터 자신의 생명까지 바쳐가면서 투쟁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사회가 어딘가 잘못됐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적극적인 투쟁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원래는 ‘어서 빨리 재단사가 되어서, 노임을 결정하는 협의를 할 때는 약한 직공들 편에 서서 정당한 타협을 하리라 결심 했’을 뿐이다. 장기표도 이야기하듯이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투사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는 성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은 그의 이러한 성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이 당시 그와 함께 한미사에서 시다로 일하였던 어느 여공의 말에 의하면, 그는 시다들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하고 정성껏 작은 일이라도 도와주려고 하여 시다들이 모두 그를 상당히 좋아했다고 한다. …(중략)…때때로 그는 점심을 굶고 있는 시다들에게 버스값을 털어서 1원짜리 풀빵을 사주고 청계천 6가부터 도봉산까지 두세 시간을 걸어가기도 했다. 일이 늦게 끝나는 날은 주린 창자를 안고 온종일 시달린 몸으로 다리를 휘청거리며 미아리까지 걸어가면 밤 12시 통금시간이 되어 야경꾼에게 붙잡혀 파출소에서 밤을 새우고, 새벽에 다시 도봉산까지 걸어서 집에 당도하는 일도 있었다.-, 122p~123p 중에서이처럼 전태일은 성자의 인품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직공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서도 결코 무관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생각했던 것처럼 개인적으로 재단사가 되어서 직공들을 돕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 자신 혼자만의 힘으로는 그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느끼게 된 것이다. 또한 업주들은 그가 그나마 직공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것까지 막으려 들었고, 실제로 시다들에게 잘 대해준다는 이유로 주인과 싸우다 해고를 당하기도 했다. 성자의 인품을 가진 전태일이었지만 투사의 길을 선택했던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인간을 억압하는 사회 현실에 대한 분노를 느끼고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잘못된 사회에 대한 분노와 인간에 대한 사랑, 이 두 가지는 모두 필요한 것이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을 때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잘못된 사회에 대한 분노를 어떻게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설령 그런 분노를 가진다 하더라도 그런 분노는 가슴에 우러나오는 진정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개혁에 대한 의지는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을 읽으며 새삼스럽게 느꼈다. 또한 우리가 바꿔야 할 사회의 모습이 인간을 위한 사회라는 점에서 더욱 인간에 대한 사랑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그가 근로기준법을 품에 안고 죽어갔던 것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한때는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책. ‘여름밤이면 모기가 달려들어 잠시도 신경을 안정시킬 수 없는 그의 방에서 책을 읽기 위하여 온몸에 모기약을 뿌려놓고 잠과 모기를 쫓으며 밤을 새웠’던 그 책. 그 책에 나온 어려운 용어들을 알지 못해 ‘대학생 친구가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책. 그러나 그는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하면서 자신의 몸과 함께 그 책까지 불태워버린다. 그것은 근로기준법이 지켜지지 않는 현실과 허울만 좋은 근로기준법에 대한 분노였고, 더 나아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진정으로 보장하는 것은 종이 위에 쓰인 법 조항 따위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노동자들의 행동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언제까지 침묵해야 하는가.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노동자들 스스로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는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또 그가 죽으면서 했던 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그 말이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사실 근로기준법은 기본적인 수준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이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들이 사용자들의 횡포와 탄압에 맞서 노조를 결성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저 노동자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이다. 그런데 당시 1970년대의 그 엄혹했던 정치 현실에서는 그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 젊은 노동자가 스스로의 목숨을 불살라야만 했다. 전태일은 또한 이야기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이렇게 전태일이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면서 이야기했던 것은 단지 노동자도 인간이며,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는 말이었다. 고작 그 말을 하기 위해 그는 목숨을 버려야 했다. 산업개발과 경제발전이란 미명 하에서 노동자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와 인간성은 얼마나 억압받고 억눌려있었던 것일까. 과연 인간의 희생과 고통을 강요하면서 이룩한 경제 발전이란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는 것인가…
    독후감/창작| 2009.10.31| 3페이지| 1,000원| 조회(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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