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우리가 겪어 보지 못한 다른 차원의 시간을 여행하다.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간, 기억은 과연 실재하는 것일까? 자연스럽게 당연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조금 생각의 전환을 가져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대답할 수도 있다. 여기서 나는 실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주목하기로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은 이 온 우주를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것일까? 우리의 시간이 흐르는 방향과 그 상태와 같게 저 멀리 태양계를 벗어난 행성에서도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을까? 어쩌면 저 멀리 다른 우주 속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 이외의 차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던 중 ‘Mr. Nobody’라는 영화에서 나의 생각과 비슷한 이론을 보았다. 그 이론은 초끈이론이라고 하는데, 간단히 말해 초끈이론에서는 현재 우리가 존재하는 4차원(상하,전후,좌우,시간)이 아니라 10차원 혹은 11차원에서 만물의 법칙을 설명한다. 여기서 우리가 아는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가 경험한 차원이다. 오직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시간. 이 때 밝혀지지 않은 남은 6개의 차원이 시간과 관계있다면 우리는 현실과 환상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는가?‘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동화 중간 부분에서 해티와 톰이 서로의 존재를 의심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 둘은 숨겨진 시간의 차원을 몰랐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도 자신의 현재가 다른 사람의 과거 혹은 미래와 겹쳐진다는 것을 쉽게 믿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른다.’라는 고정관념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가능할 수도 있다고 본다. 앞에서 언급한 영화 ‘Mr. Nobody'에서도 시간은 쉽게 이동할 수 있으며 원한다면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기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영화에서는 시간 차원에서의 이동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시간의 불가역성을 무시하고 있다. 아버지의 담배에서 나온 연기가 다시 돌아가기도 하고, 마요네즈와 케찹을 섞었던 것도 다시 분리해낼 수 있다. 이런 생각은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생각을 가지고서는 절대 인정할 수 없는 내용이다. 이 고정관념을 깨고 생각했을 때, 톰의 13시 차원과 해티의 꿈의 차원이 만나게 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톰이 해티를 만날 수 있는 기회와 타이밍을 알려 준 것은 13번 종을 울린 괘종시계다. 일반적으로 모든 시계들은 종소리를 12번 이하로만 친다. 우리의 시간이 12시를 기준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톰이 머물렀던 이모네 집 바솔로뮤씨의 괘종시계는 매일 13번 종을 울렸다. 그 13번의 종소리로 인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12시와 1시라는 시간의 차원 사이에 새로운 시간의 차원이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새로운 시간의 차원이 열릴 때마다 톰은 현관을 통해 해티와 만날 수 있었고, 괘종시계의 종소리를 듣고 톰은 해티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사물로 인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영화가 또 한 편 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는 오래된 연습실의 피아노가 바로 그 매개체이다. 구 피아노로 ‘Secret'이라는 곡을 연주하게 되면 시간여행을 할 수 있게 되는데, 그로 인해 과거의 샤오위라는 여자가 20년의 시간을 건너 뛰어 상륜이라는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옥색 사금파리 한 조각의 꿈의 가치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 예술가는 숱하다.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서 탄생한 원석 폴포츠, 힘든 발레연습을 한 번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강철 나비 강수진, 까막눈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맡은 연기로 훌륭하게 커버한 성룡과 탐 크루즈. 이들이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저 멀리 작게 보이는 꿈을 위해 끝없이 달리고 눈물 흘리고 땀 흘려 성취한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꿈이라는 것은 아름다운 존재이며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선 꿈을 가져야 하고 그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과 태도가 필요하다. 도예가가 되고 싶어 민 영감의 밑에서 일하던 목이는 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수많은 갈등을 겪으며 꿈에 한 발씩 다가간다. 그렇다면 목이는 어떤 노력과 어떤 갈등을 겪었을까?첫째로 목이는 민 영감의 아래에서 온갖 잡일을 떠맡았다. 진흙에서 불순물을 거르는 작업을 수도 없이 반복했고, 가마터를 채우기 위해 수레 한 가득 나무를 베어오기도 했다. 민 영감의 구박과 다그침 속에서도 자신이 할 일을 조용히 해냈다. 둘째로, 목이는 나이가 든 민 영감을 대신 해 민 영감이 만든 꽃병을 왕실 감도관께 보여드리기 위해 송도로 운반 하는 것을 자진하였다. 목이는 그 여행을 하면서 강도를 만나고 결국 꽃병은 깨어지고 목이는 심하게 맞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목이는 민영감과 주변 사람들과 한 약속 때문에 깨어진 꽃병의 사금파리 한 조각을 들고 결국 송도까지 간다. 오직 도자기 굽는 법을 배우기 위해 민 영감의 질타와 수많은 사람들이 주는 눈치 속에서도 꾸준히 자신이 할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한 목이. 그리고 그 속에서 목이는 또 여러 가지 갈등을 겪는다. 목이가 민 영감 아래 있던 이유는 오직 도자기 굽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고려 시대에는 도자기 만드는 일은 가업으로 이어지는 관습이 있었다. (이전에는 법으로 제정 되었었지만 작가는《사금파리 한 조각》에서 관습으로 이어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가정을 두었다.) 목이는 고아였고, 민 영감의 아들도 아니었기 때문에 민 영감은 목이에게 도자기 굽는 법을 가르쳐주려 하지 않았다. 도자기 만들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꿈으로 삼던 목이가 느낀 절망은 엄청났을 것이다. 두 번째 갈등은 가족과도 같고 친구와도 같았던 두루미 아저씨와의 이별이다. 목이가 송도로 꽃병을 운반하던 중 줄포에서는 갑작스런 사고로 두루미 아저씨가 세상을 떠난다. 줄포로 돌아와 이 이야기를 들은 목이는 “두루미 아저씨, 어디로 떠나더라도, 멀쩡한 두 다리로 여행하시길 빕니다.” (본문 p.132) 라고 외치며 처음에는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낸다. 자신을 가장 이해해주고 챙겨주고 아껴주던 소중한 사람을 잃은 목이의 슬픔은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일 것이다.그러나 목이는 이런 수많은 노력과 눈물, 절망과 어려움을 겪고 드디어 자신만의 도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민 영감이 목이를 인정하고 목이에게 도자기 빚는 법을 가르쳐주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족이 없던 목이를 가족으로 받아준 아줌마. 목이는 두루미 아저씨를 잃는 대신 새로운 가족을 얻은 것이다. 그리고 목이는 민 영감에게 배울 도자기 빚는 기술을 이용해 자신이 앞으로 만들 도자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책은 끝나고 마지막에 덧붙여 의 이야기가 나온다. 독자는 이로 하여금 혹시 이 도자기를 만든 사람이 목이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이는 아주 재밌는 요소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작가가 이를 의도 했던 그러지 않았던 간에 독자에게 열린 결말을 제시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시대의 파편에 상처 입은 몽실언니.만약 베토벤이 21C에 태어났다면 우리가 현재 즐겨 듣는 ‘월광’, ‘비창’, ‘운명’ 등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김연아가 조선시대의 여성이었다면 과연 그녀는 ‘피겨여왕’이라는 호칭을 가질 수 있었을까? 또, 영국의 구족(口足)화가 피터 롱스탭이 산업혁명 시대의 사람이었다면, 그는 그때도 구족화가로서 이름을 떨칠 수 있었을까? 이 세 가지의 질문에는 공통적인 내용이 있다. 바로 ‘그 사람과 그 사람에게 적합한 시대에 대한 내용’이다. 베토벤은 17-18C의 사람이었고, 그 때 당시의 음악은 고전파 형식을 띄고 있었다. 그렇기에 베토벤은 그에 걸 맞는 곡들을 만들어 냈고 그 작품들은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고 있다. 조선시대는 대표적으로 남녀불평등 사회의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여성은 남성의 권위와 억압 아래 자신의 주장을 함부로 펼칠 수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많은 재능과 특출한 면모가 있어도 함부로 나서서 그 재능을 보여줄 수 없었다. 산업혁명 시대 당시는 노동력과 자본이 중요 되는 시기였으므로 팔이 없거나 몸이 불편한 사람은 환영받지 못하고, 천대받던 시대였다. 또한 그 당시는 ‘물질만능주의’의 시대였으므로 미술 등을 하는 여러 예술가들은 굶주렸다. 이렇듯 시대적 ? 공간적 상황, 배경은 한 사람, 나아가 그 나라와 역사에 큰 영향을 끼칠 만큼 중요한 요소가 된다.《몽실언니》는 1945년 해방이후 혼란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기회와 자본이 있던 사람들은 부를 잡을 수 있었다. 정치인들은 정치권력을 잡겠다며 자기들끼리 치고 박으며 싸우느라 가난한 소시민과 평민들의 고통어린 울부짖음을 들을 겨를이 없었다. 《몽실언니》에서는 계속해서 해방과 전쟁, 이념갈등과 남북 대립의 우리 현대사에서 눈물과 상처로 남은 사건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배경을 통해 작가는 ‘몽실언니’를 더욱 더 안쓰럽고 안타까운, 민족을 대표하는 희생양으로 내 세운다. 시대적 상황으로 만들어진 날카로운 잔류들에 의해 자신을 희생할 수 밖에 없던 몽실언니. 그렇다면 그 당시 시대 상황은 몽실언니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었을까.첫 번째로 그 당시 시대는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눈물 짓게 하고 한숨 내쉬게 했던 시대였다. 해방 직후 나라의 경제는 혼란과 패닉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경제 안정의 발판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고, 일본인이 약탈하여 점유했던 농지도 주인을 잃음에 따라 농업생산마저 원활치 못했다. 소위 ‘배운 사람들’은 정치적?국가적 문제에 신경 쓰느라 경제문제에는 미처 신경을 제대로 쓰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또 1950년 6·25 전쟁 당시, 우리 군대의 전비조달은 물론이고 미군과 유엔군의 전비조달을 한국은행 발권력에 의존함으로써 물가 폭발을 불렀다. 이런 여러 상황에서 생겨난 피해는 고스란히 하층민, 소시민들의 몫이 되었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나오는 김 첨지는 가난한 하층민의 눈물 겨운 생활을 보여준다. 돈 많은 일본인과 사람들을 위해 인력거를 몰던 김첨지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도 돈이 없어 어떻게 할 수 없었고 그 답답함과 괴로움을 표현할 길 없어 죽은 아내를 향해 울부짖는다. 돈과 풍족한 생활을 위해 정씨 아버지를 버리고 김씨에게 간 밀양댁 엄마, 동생을 키우기 위해 동냥질을 한 몽실언니. 그리고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판 금년이는 당시의 힘들게 살았던 우리 민족을 대표한다. 돈을 위해 자존심을 버리고 몸을 팔았던 그들은 그 시대적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큰 피해자다. 다음은 본문에 나오는 내용이다.금년이의 손을 잡고 이 층 계단을 오르고 있는 남자는 시퍼런 군복의 흑인 병사였다. 몽실은 움찔했다. 언젠가 읍내 최 씨 집에 있을 때, 버려진 검둥이 아기를 안고 오다가 죽어 버렸던 일이 번개같이 떠올랐다.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팔고 양공주가 되어야 했던 그 시절, 먹고 살기 위해서 자신의 생계를 자기가 직접 벌어야 했다. 그 누구도 그녀를 손가락 질해서도, 욕할 수도 없는 시대였다. 그녀를 그렇게 만든 것은 그 시대였다.두 번째로 6?25 등 전쟁은 분단가족과 수많은 재산의 피해, 인명 피해를 냈다. 정치인들의 정치적 대립과 분분한 의견을 결국 전쟁을 일으켰다. 그들이 일으킨 전쟁에 많은 남성들은 군대로 징용 되었고, 남겨진 사람들은 전쟁을 위해 일해야 했고,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노동해야 했으며 더 나아가 비극적으로 자신들의 가족을 잃기도 했다. 영화 〈피아니스트(2002)〉,〈태극기 휘날리며(2003)〉은 이처럼 본인들이 원치 않은 전쟁을 위해 희생 당한 사람들의 눈물과 애환을 그려 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과 꿈을 잃게 만든 전쟁. 그 전쟁 안에는 몽실언니도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아버지를 군대로 보내야 했던 북촌댁과 몽실이, 불타버린 고모와 고아원으로 가게 된 고모댁 아이들. 원치 않는 전쟁으로 인해 한 핏줄의 사람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다. 그러나 너무 어렸던 몽실언니는 전쟁이 왜 일어나는지도, 왜 서로 죽여야 하는지, 누가 착하고 나쁜 건지도 알 수가 없었다. 다음은 본문 내용이다.
《만국기 소년》, 이기적인 어른들의 세계?!‘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이 궁금하면 직접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라.’ 아이들이 보는 어른들의 세계는 어떠할까. 아침이면 출근을 하기 위해 콩나물 버스와 만원 지하철로 자신의 몸을 밀어 넣고, 저녁이면 지친 어깨와 얼굴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그것들’속에 자신을 밀어 넣는 어른들. 어른들은 어느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웃는 법을 까먹은 듯 싶고 ‘나 먼저’를 위해 그들의 걸음은 빨라진 것 같다. 아이들이 보기엔 어른들의 세상이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또 자기가 커서 저렇게 될까봐 걱정도 된다. 어렵기만 한 어른들의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들은 결국 이기적으로 변하고 아이들이 보기에도 그 모습은 안타까워만 보인다. 그런 아이들의 시각으로 본 어른들의 세계와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동화집이 있다. 유은실의 《만국기 소년》. 이 동화집은 단순한 ‘아이들의 동화집’이라고 하기엔 씁쓸한 어른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어른들의 동화집’ 정도가 된다고 본다.1. 어른들의 쉽지 않은 세상 살이“나중에 아빠처럼 닭을 자르고 살아도 말이지…… 나라 이름이 바뀔 때는 잘 알아 둬.”“네.”“그리고…… 똑똑한 친구를 한 명은 꼭 사귀어라. 아빠는 ‘나린다’가 맞는지 ‘내린다’가 맞는지 물어볼 친구가 한 명도 없다. 내 친구들은 죄다 무식해서 말이지……”)아빠의 말 없는 뒷모습과 ‘나’에게 외친 이 한마디는 읽는 이로 하여금 어른들의 씁쓸한 세상살이를 보여준다. ‘닭 집’을 하는 ‘나’의 아빠는 평소에는 사람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나타샤를 두고 논쟁하는 데에 있어 아빠는 엄마와 건어물 아저씨에게 화를 낸다. 자신에게 말대꾸를 하는 아내는 물론 아내와 자식 앞에서 망신을 주는 건어물집 아저씨에게도 화가 났을 테지만 아빠가 정말 화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자신의 무지가 아니었을까. ‘내’가 보기에 어른들이 살기엔 너무나도 힘든 세상처럼 보인다. 평소엔 그렇게 착한 아빠였고 좋은 닭과 좋은 달걀을 파는 양심적인 아빠였다. 그런 아빠가 시인 백석의 시를 모르고 ‘나린다’가 맞는지 ‘내린다’가 맞는지, 소련이 러시아로 이름을 바꿨는지도 모른다. 세상 살기에 시인 백석을 몰라도 살 것만 같고 러시아도 몰라도 잘 살 것만 같다. 그러나 어른들의 세계는 그렇지 않다. 아빠가 무식해서 건어물집 아저씨는 아빠를 무시했고, 엄마는 아빠와 말다툼을 했다. 그리고 결국 아빠는 말없이 뒤돌아 닭을 손질 하였다. ‘내’가 괜히 아빠에게 백석에 대한 얘기를 한 것만 같아 미안 하지만 자신을 향해 소리치는 아빠의 모습에서 ‘나’는 다시 아빠의 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어른들의 세계를 엿본 나는 왠지 모를 마음에 “그저 입을 다문 채 백석 시집을 손에 땀이 나도록 쥐고 있을 뿐이었다.”(본문 p.20). 어른들의 세계는 결코 쉽지 않았고 착하다고 다 되는 세계가 아니었다. 또 처음 보는 아빠의 씁쓸한 뒷모습은 아마도 ‘나’에게 결코 만만치 않은 어른들의 세계를 마음 속 깊이 새기게 했을 것이다.2. 자신만 생각하는 어른들〈선아의 쟁반〉에서 외할머니와 친할머니는 선아를 너무나도 사랑했다. 극심하게 사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선아를 자신의 취향에 맞는 손녀딸로 키우고 싶어 했다. 결국 두 할머니들은 일주일을 나누어 선아를 키웠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는 외할머니가,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친할머니가 선아를 맡았다. 그래서 선아는 두 할머니 사이에서 마치 ‘인형’처럼 살아야 했다. 할머니들은 자신들의 욕심과 욕망을 채우려고 선아를 자신에게 맞는 ‘인형’으로 만들어냈다.(물론 선아에게 해가 될 것들은 없었지만.) 그 결과 선아는 점점 지쳐갔고 할머니들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부침개 사건’을 계기로 선아의 불만은 마침내 터져버렸고 할머니들의 울타리를 벗어나 옥상으로 올라갔다. 갑갑한 할머니들의 욕망의 울타리가 아닌 옥상에 널어놓은 자유로운 이불위에서 따스한 봄볕을 받으며, 그렇게 선아는 할머니들로부터 벗어난다. 할머니들의 울타리와 옥상 위에 펼쳐진 이불이 대조 되면서 선아를 향한 할머니들의 이기심의 울타리 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게 한다. 자신만 생각하는 어른들은 선아의 할머니들 뿐이 아니었다. 〈어떤 이모부〉의 ‘어떤 이모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얘기와 불만들을 털어놓기 위해 ‘나’의 가족들을 괴롭힌다. 처음에는 어떤 이모부의 흉보기를 가족들은 받아준다. 비록 지나치게 정확성을 따지고 구두쇠에다가 말이 가장 많은 이모부지만 ‘가족’이기에 우리 가족은 어떤 이모부의 수다를 다 들어준다. 그러나 점차 어떤 이모부의 흉보기는 엄마를 아프게 하고 아빠와 싸우게 하더니 결국 금요일 밤마다 엄마를 집에서 몰아냈다. 그 뒤를 이은 아빠도 결국은 어떤 이모부의 흉보기를 못 견디고 어떤 이모부의 전화를 피해 ‘나’에게 전화와 집을 맡기고 나가버린다. 자신의 취미생활 아닌 취미생활 때문에 ‘나’의 가족들을 모두 몰아낸 어떤 이모부나, 그 전화 때문에 집을 나가버린 엄마나,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에게 전화를 맡기고 나간 아빠나. 세 어른 모두 자신들의 안위와 편안함을 위해 결론적으로는 어린 ‘나’에게 책임을 떠맡겼다. 그리고 그 어른들을 따라하듯이 ‘나’ 역시 내 동생 성우에게 내 책임을 떠맡기려 한다. 이 역시 자신만의 이익을 위한 어른들의 태도가 결론적으로는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아이들을 실망하게 만들며 이를 따라 하게까지 만든다. “내 동생 성우도 이제 인생을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본문p.108)라는 표현을 하며 결국 ‘나’ 역시 나의 편안함을 위해 동생에게 자신의 책임을 전가하려는 모습이 예상 된다. 이는 결국 ‘나’도 어른들의 이기적인 행동을 따라하게 되는 모습을 연상케 한다. 또 〈어떤 이모부〉에서는 이중적인 잣대로 세상을 복잡하게 살아가는 어른들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고 풍자적으로 그려 유쾌함을 더하고 있다.“네가 외운 나라 중에서, 너는 어느 나라에 제일 가 보고 싶니?”진수는 대답이 없다. 그 대신 진수 얼굴에 표정이라는게 생겼다. 슬프고 겁에 질린 표정. 나는 선생님이 그걸 묻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만국기 소년〉인 진수는 과연 자기가 원해서 그 수 많은 나라이름과 수도를 외웠던 것일까. ‘나’가 겪은 이야기와 진수를 보며 우리는 그 해답을 추측할 수 있다. 답은 ‘아니’라고. 진수는 상자로 만든 것 같은 ‘컨테이너 박스’ 집에 6명의 식구가 산다. ‘우리 집’ 싱크대를 고치러 온 진수네 아빠 이야기를 들으며 그 가정 환경을 우리는 대충 알 수 있었다. 다른 집 싱크대를 고쳐주고 옷이나 책을 받아 왔던 아빠 덕분에 진수네 형제들은 남이 입던 옷을 입고 남이 읽던 책을 읽었던 것이다. 아마 진수는 그 중 만국기에 대한 책을 달달 읽었나보다. 그 결과 책 내용을 자연스레 외우는 경지에까지 도달한 거겠지. 그러나 진수의 책읽기는 단순한 ‘책 읽기’였을 뿐, 그 수많은 국가와 수도를 읽고 외우면서 진수는 꿈을 키울 수가 없었다. 무의미한 책 읽기는 진수를 ‘걸어 다니는 만국기’로 만들었지만 그에게 ‘꿈’을 심어 주진 못했다. 삽화에서 보여지듯이 진수의 입에서 뻗어져 나가는 만국기와 그 뒤에 이어지는 싱크대의 그림이 뜻하는 것은 진수가 읊조리는 나라와 수도는 나라에 대한 관심이 아닌 그저 무의미한 ‘외우기’의 결과들이 진수의 입을 통해 나오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건 아닐까.아이가 넷이라는 진수 아빠의 말에 너무 많이 낳았다는 엄마의 말을 ‘나’는 하지 않았으면 했다. “네가 외운 나라 중에서, 어느 나라에 제일 가 보고 싶니?” 라는 선생님의 물음을 ‘나’는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에 대한 일말의 배려나 진지한 관심이 없는 엄마와 선생님을 보는 ‘나’의 시선은 차갑게 창 밖으로 돌려진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밝은 날” 나는 진수의 슬프고 겁에 질린 표정을 마주하고 있다는 모습을 통해 어른들의 이기적인 세상을 비관하는 ‘나’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시대에 던지는 작가의 뜨거운 이야기주체적이지 못한 사람은 매력이 없다. 자신의 의견 하나 당당하게 내세울 수 없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다른 사람이 하자는 대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사람은 결국 줏대 없고 우유부단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성격의 사람은 본인은 물론 주변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기 마련이다. 김유정의 작품〈봄봄〉에서 구장어른은 소작인 신분으로, 마름인 장인에게 꼼짝 못하는 인물로 나온다. ‘나’의 장인어른 봉필이 뇌물을 먹이자 냉큼 봉필의 편을 든다. 그러나 ‘나’의 입장도 이해를 하는 지 차마 말을 똑 부러지게 못하고 말끝을 흐린다. 구장 어른 역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고, 줏대 없는 성격을 갖고 있다. 또 과거 방영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의 현진헌 (현빈 역)은 우유부단의 극치를 달렸다. 과거 사랑하던 희진과 현재 사랑하고 있는 삼순 사이에서 자신의 입장과 사랑을 당당히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자신은 물론 희진과 삼순 둘 모두에게 상처를 주고 만다. 개인적으로 그런 진헌의 모습이 너무 짜증이 나서 처음에는 드라마를 보지 않기도 했었다.《사슴과 사냥개》,《떡배 단배》를 지은 작가 마해송의 배경은 순탄치 못한 역사를 갖고 있다. 북한에서 남부럽지 않을 지주계급이었던 그들 가족에게 김일성의 ‘토지 무상몰수 무상분배’ 라는 정책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정책으로 수많은 지주들이 월남했지만 마해송의 가족들은 월남하지 못했다. 그런 그의 가족들에게 엄청난 압력과 크나큰 압박이 가해졌을 것이라는 것은 북한의 정치 성격 상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마해송은 반공주의자가 되었으며 잘 사는 사람을 옹호하는 입장을 내세웠다. 그가 지주층에 있었던 이유인지 그는 계급간의 갈등 해결보다는 조화를 더 주장하는 입장이었다. 그런 그가 《사슴과 사냥개》,《떡배 단배》를 통해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주체적인 정신의 함양을 지향하고 자 함이었다. 《떡배 단배》에서는 1945년 광복시기에 미국과 소련에게 유상?무상의 원조를 받고 그 원조에 익숙해 져 결국 종속 상태가 심화된 당시의 모습을 섬 사람들과 갑동이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먹을 것이 떨어지면 그때야말로 저 사람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이오. 온 섬을 수수깡 밭을 만들어서, 그것을 바치라면, ‘예예’ 하고 그대로 해야 하고, 저 사람들의 말을 무엇이든지 듣고 심부름을 하고, 주는 것을 얻어먹게 되는 것이 아니오? 개가 되는 게지!” )그는 《떡배 단배》에서 안위와 짧은 쾌락을 즐기며 살아가기 위해 ‘떡배’사람들과 ‘단배’사람들에게 익숙해지는 섬사람들을 보여주어 독자들이 주체적이고 자기주도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 또, ‘떡배’ 사람들과 ‘단배’사람들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 팽이, 긴 것, 굵은 것, 댓자탕 등을 이용해 사람들을 죽였다. 이 역시 미국과 소련의 자국 이익을 위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피해 본 일을 우화하는 것으로 더 이상은 그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슴과 사냥개》에서 역시 작가는 사람들이 더 독립적이고 독자적일 수 있길 바랐다. 권력 하에 있을 때는 그 누구도 부럽지 않던 비호가 주인에게 버림 받은 이후로는 자신이 위협 했던 사슴과 산 속 친구들에게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비호는 다시는 짖지 않다가 염소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짖으며 염소를 죽이려는 사람에게 달려들어 죽고 만다. 작가는 비호라는 존재를 만들어 친일?친미?친러파들에게 깨달음을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비록 지금 당신들이 권력 하에 있다 하여 낮은 사람들을 무시하고 막 대하지만 권력에서 버림 받았을 때 당신을 도와주고 살려줄 사람들은 당신들이 무시했던 사람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