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스 컨 츄 리교과명 : 영화속의 법과 인간학과 : 의상디자인학과학번 : 07148019이름 : 김영하1989년 북부 미네소타 주에서 실제로 있었던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집단 소송을 바탕으로 영화로 만들었다. 아버지가 다른 아들과 딸을 키우는 조시는 남편이 있지만 실직상태에다 툭하면 폭력을 쓴다. 인간답지 못한 결혼생활을 견딜 수 없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나와 친정에서 살게 된다.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 일자리를 찾던 중에 학창시절 친구를 만나 광산에 여성들을 위한 일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광산에 취직하게 되었는데, 광산에서 오래 동안 일해 온 아버지는 남자들의 일에 함부로 끼어든다며 불만만 하신다. 그래도 조시는 남자들이 하는 일이라 힘들지만 월급이 높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뭐든지 다 해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서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러나 동료 남성 직원들의 수치스런 성희롱과 차별대우에 힘들어 진다.이 영화에서는 남성 직원들의 성희롱을 생각 보다 아주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형태나 방식에 있어서 상상을 뛰어넘는 경우가 갈수록 많아지고 그 수위도 점점 높아진다. 남성의 성기 모양의 모형을 여자 직원들 도시락에 넣어두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일하고 있는 여성 직원들에게 담배를 빌려달란 말을 하며 가슴을 만지려 하였다. 또 벽에는 직원 이름까지 써 넣어 성적 농담까지 수시로 적어두고, 여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간의 화장실에 여성 직원을 가둬 두고 엎어서 오물을 뒤집어쓰게 하고, 탈의실에 배설물로 욕을 적어놓았다. 끔찍하고 잔혹한 짓들이었다. 보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같은 여자로서 너무 화가 나고 치욕스러웠다. 너무 빈번하게 반복되는 성적 학대에 환멸을 느껴 광산 회가 사장까지 찾아가서 여성 직원들의 권리를 보장해 줄 것을 얘기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사퇴를 빨리 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었다. 조시는 아이들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만 둘 수 없었다. 그래서 조시는 회사와 남성 직원들을 상대로 싸우기로 결심을 한다.함께 성희롱, 성적차별을 받았던 다른 여성 직원들은 이런 상황에 혼자 맞서는 조시의 편이 되어 주지 않았다. 다들 일을 크게 만들었다며 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마음에 안드는 시선으로 조시를 보고 등을 돌렸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영화를 같이 본 학생들 모두 나와 같은 생각 이었을 것 같다. 그 여성 직원들은 아마도 이런 생각 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마저도 직장에서 잘릴까봐 두려워서 쉬쉬하고 있었던 터라 이렇게 끔찍한 상황에도 모두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보호막을 세우기에 바빴던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헤아릴 수가 없어진 것이다. 오로지 자기 보호에만 신경 쓰며 상대방은 보지도 않고 돌을 던지기에 바빴던 것이다. 아마 내가 그 여성 직원 중에 한 사람이었다 해도 그랬을 것 같다. 돈을 벌어야 했고,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 둘 수 없으니까 나조차 쉬쉬하며 살아남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보다 나은 환경의 직장에서 일하고 싶고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하고 싶던 조시였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대응하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겐 그 모습이 그저 불만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불만이 있으면 그 불만 있는 사람이 떠나야 하기에 기어이 조시를 내모는 남성들과 조시를 도와주지 않고 등을 돌린 여성들 사이에서 법정에 서기로 한다.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었다. 법정에서는 성희롱에 대한 문제가 아닌 조시의 치부를 건드리기 일쑤였고, 고등학교 때 성폭력을 당한 과거가 폭로되면서 사건은 더더욱 더러워 진다. 유일한 그 성폭행의 증인이었던 학창시절 친구이자 지금 직장 남자동료가 사실과 다르게 성폭력이 아니라 즐긴 것이라고 말도 안되는 증언을 했다. 아마 그도 다른 여성 직원들과 같이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소송에서 이기기 위함이었을 것이지만 정말 열받아서 미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마지막에 진실이 밝혀지면서 조시가 승리 하게 된다.이런 종류의 사건은 미네소타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전 세계에서 여전히 발생하고 있는 일로 미네소타 주민들은 그런 사건에 변화를 일구어냈으므로 그에 자부심을 느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들은 진실을 알리고 싶어 했고 우리는 그래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성폭력, 성희롱, 성차별은 오늘날에도 큰 도시에서 살아가는 도시 사람들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법은 바꿀 수 있지만 하룻밤 사이에 사람들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 그래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법이 바뀐 후에도 계속 노력해야 한다. 이 영화는 그런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매우 좋은 수단으로 이용 되었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성적 폭력 문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성추행 문제는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권력과 성의 상관관계와 남녀 간의 시각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노조에 있다는 얘기가 있다. 정규직을 중심으로 한 노조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비협조적이고 심지어 해결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움켜쥔 밥그릇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것을 염려한 나머지 이들은 가해자 편에 서거나 침묵이라는 편한 길을 택한다.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한 한국 노동운동은 또 급격하게 조합주의로 기울어져 버렸다. 이런 걸로 보아 지금 우리 사회의 차별은 단순히 여성과 남성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에 대한 문제이며, 계층과 공간을 초월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우리는 때때로 과거의 불합리한 상태에 비해 현재는 얼마나 진보된 상태인가에 초점을 맞추며 중요한 문제는 이미 해결되었다고 떠들어 대곤 한다. 하지만 는 그러한 문제들이 얼마나 많은 ‘조시’들의 희생적인 투쟁과 가족과 동료들의 지지와 지속적인 관심을 요구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 속의 대사처럼 약자는 뭉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무너지는 수밖에 없다.
피아니스트,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주인공 블라디 슬로프 스필만은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고 그가 쓴 회고록이 이 이야기의 바탕이 되었다. 이 영화의 감독은 이 역사를 직접 경험했던 폴란드인이라서 이 영화는 매우 사실적이다. 이 영화의 감독 로만 폴란스키는 “폴란드 역사에서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기억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빠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또한 있었다. 그러나 블라디 슬로프 스필만이 쓴 회고록의 첫장을 열자마자 이것이 바로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그 영화가 될 것이란 직감을 했다. 마침내 그토록 찾았던 이야기를 만난 것이다. 그 회고록은 참혹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낙관적인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곳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나를 끈질기게 괴롭혀왔다. 절대 다수가 싸늘한 시체로도 남아나지 못한 그곳에서의 살아남음은 절대로 안도가 아닌 죄책감으로 나를 눌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조각난 기억들을 다듬고 재창조해 나가면서 나는, 아니 우리는 또 다른 역사의 단면을 완성해 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 피아니스트가 우리가 겪었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기를 원한다”라고 말했다. 그 말에서 그 시대적 상황의 느낌을 깊이 느낄 수 있었다.폴란드의 한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스필만은 유태인 피아니스트였다. 주인공은 유태인이라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살다가 유태인들만의 집단 수용소인 게토라는 곳으로 쫓겨났다. 독일은 전 세계의 다른 인종들과 자신들의 인종을 차별화 하며 세계를 대상으로 벽을 쌓았다. 독일 병사들의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에 유태인들을 무시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 보였다. 인종차별의 무서움을 영화 속에서 느껴 볼 수 있었다. 인종차별, 홀로코스트라는 말은 우리 시대의 사악의 상징이 되어 있다. 다른 많은 상징과 마찬가지로 홀로코스트는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유대인, 비유대인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에 의해 홀로코스트는 유대인, 동성애자, 집시, 전쟁 포로, 신체 불구자들에 대한 대량학살의 공포를 상징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나치주의를 주장하는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단체들로 인해서 독일은 물론 전 세계가 홀로코스트의 악몽을 되살리며 긴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인종차별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사회는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한 몇 가지 제도적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인종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지적됐다. 한국 사람만 외국에서 차별대우 받는것이 아니라 한국에 들어온 非백인계통 외국인은 다 차별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보다 못하다는 잠재의식이 우리 속에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동남아 노동자들에게 하고 있는 짓들을 생각해보면, 죽이지만 않을 뿐 힘없는 인종들을 무시하며 못살게 하고 있고, 그들의 인권을 존중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제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이 했던 짓과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했던 짓들과 근본적으로 다를 게 없다. 똑같다. 내 생각에는 우리가 단일 민족성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실제적인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민감해 하지 않는 것 같다. 인종차별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지만 나조차도 무의식중에 인종차별적 행동들이 나오기 때문에 뭐라고 말하긴 어렵다. 언젠가는 우리도 역사의 심판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이 사건이 주는 역사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우린 우리식대로 약소국을 보살펴주고 정의를 실천해나가야 한다. 이 영화에서 유대인들은 게토로 옮겨지게 되는데, 꼭 우리나라의 일제치하의 시대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다. 친일파 같은 변절한 사람들도 있었고, 독립투사같이 신문을 찍어 사람들을 각성시키는 등 유태인의 독립을 위한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독일 군인들이 유태인을 벌레보다 못한 존재로 삶고 있었다. 이 강제 노동 이야기에서 나는 특히 독일 나치장교가 한말이 기억에 남았다. “안심해라 너희는 먹여주면 뭐든 돈으로 만드는 유태인 아니냐 돈 만드는 게 너희 전공이지 않느냐” 사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왜 독일인이 하필 유태인을 그렇게 미워했고 학살이란 잔혹한 역사를 만들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이 대사에서 그 이유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서 고생을 하던 스필만은 탈출을 성공했다. 전부터 친분이 있던 부부의 도움으로 은신처를 구했고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해 나갔다. 얼마 후 일어난 폭동은 독일인들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들의 죽음에서 스필만은 자신도 저렇게 허무하게 죽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고, 단지 무력앞에 자신들의 무기력함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다른 곳으로 은신처를 옮겼고 내내 굶주렸다. 독일군에 저항했던 유태인들은 자신들을 위해 멋있는 죽음을 맞았다.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모습들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저 당하고 앉아있는 것보다 뭐라도 하고 의롭게 죽는 것을 택한 것 아닌가... 정말 멋진 사람들이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나도 멋있게 싸우다 죽겠다고 말은 하겠지만, 사실적으로 내가 진짜 이 상황에 처해 있다면 주인공과 같은 도망자 쪽이 아닐까 싶다. 무섭고, 두렵고, 살고 싶고, 싸워서 이길 수도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무조건 살기위해 같은 민족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길 바라며 하루하루 목숨만 이어가는... 나도 그러지 않았을까... 영화를 보는 동안은 주인공을 속으로 욕했지만 이렇게 생각해보니 이해가 갔다. 은신처에 혼자 남겨져 낡은 피아노에 앉아 건반 위 허공에서 상상으로 연주를 했던 장면은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그때는 그에게 피아노 연주가 사치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예술가로서 기질을 몸에 담고 있었다. 결국에는 상황이 악화되어 완전히 폐허가 된 게토로 돌아가서 은신처를 마련하게 되는데, 텅 빈 폐허에서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그의 모습은 극한 상황에서 인간의 처절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의 이런 모습들은 유태인 뿐 아니라 긴 전쟁에서 상처받고 지친 모든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 같다. 이 영화 속에서는 한 피아니스트를 통해 나치의 만행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전쟁 속에서 폭력과 무력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지, 고통스러울 정도로 천천히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인간이 인간으로부터 받는 전쟁속의 상처가 얼마나 크고 깊은가, 비인간적일 때 인간은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이 영화에서는 무척 담담하게,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전쟁은 일어나서도 안 될, 일어나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몇 번이나 다시 생각하고 느끼게 되었다. 참으로 무섭고도 잔인한 것 이라는 걸... 그리고 그가 통조림 하나를 따려다 독일인 장교와 마주치게 된다. 장교가 뭐하는 사람이냐 물어봤을 때 I am... I was a pianist... 라고 했다. 그의 과거형 대답에서 왠지 더 서글펐다. 전쟁은 평범한 사람들을 군인과 난민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커다란 이념의 모토아래서 서로를 죽이고 또 죽어가는 것이다. 스필만은 그 장교의 명령에 의해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된다. 그는 처음에 긴장해 어눌하게 연주했지만 곧 그의 잠재적인 생각을 나타내듯 가슴이 뻥 뚤릴 만큼 혼을 실은 감동적인 연주를 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내 가슴도 뭔지 모를 통쾌함이 흘러나왔다. 스필만이 친 곡은 당시 나치 정부에 금지된 폴란드 작곡가 쇼팽의 곡이라고 한다. 나치 정부에 의해 금지된 곡을 독일군 장교의 앞에서 연주하다니... 그가 지켜보았던 다른 유태인들의 과격한 저항이 아닌 그가 가진 연주하는 능력으로 저항을 하는 스필만의 모습을 보며 정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긴 압박의 시간 속에서 숨을 죽였던 스필만도 죽음의 문턱 앞에서는 그가 게토 밖에서 지켜본 유태인들의 저항과 같이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했던 것이다. 마냥 무능력하고 소극적으로만 보였던 스필만도 마지막에 와서는 이렇게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던 사람이었구나 싶었다. 그리고는 그 시절보단 굉장히 평화로운 현재에 살고 있는 우리가 그를 평가하기엔 우린 너무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다. 그 시대의 어두운 배경을 전달해 주는 작고 힘없는 한 사람으로서 그를 영화의 주인공이 아닌 그 시대의 피해자로서 영화 속에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유태인 민족과 그 시대 사회인 것 같다. 이 상황에서 그를 살아남을 수 있게 한 정신적 힘을 주는 것이 바로 예술이었다. 그의 인생과 예술은 살아남기 위한 고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의 연주에 독일인 장교는 감동을 받았고 그가 살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도움을 줬다. 먹을 것을 주고 격려를 해 주기도 했다. 난 독일 장교가 등장했을 때 두려웠다. 이 장면에서 스필만도 죽는구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 한 것은 아무리 연주가 환상적이라 할지라도 독일인 장교가 유태인인 스필만을 살려주는 것, 도와주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 독일 장교는 아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원래 감수성이 풍부했고, 음악을 사랑했지만 환경과 사정 때문에 음악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아닐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을 죽일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웃긴 생각을 해본다. 결국 이 전쟁에 독일이 패배하고 스필만은 제 자리로 돌아왔다. 그러나 자신을 구해준 독일인 장교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서 도와주진 않았고 러시아 포로수용소에서 죽었다. 안타깝지만 이로서 더욱 이 사건의 비극성이 강조되어 나타나는 것 같다. 독일은 영원히 다 갚지 못할 죄를 지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다원화된 사회,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 약육강식이라는 말대로 강한 자가 군림하여 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사회, 즉 공동체로서의 세계와 사회로 살아가라는 교훈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