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등록금, 어떻게 실현해야하나-목차-1. 서론-반값등록금이란?2. 본론-반값등록금의 당위성-반값등록금의 필요성-반값등록금이 나에게 필요한 이유-진행상황-반값등록금 실현가능성-실현방안가. 국가a. 정권교체시b. 정권연장시나. 학생(개인)3. 결론-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서론-반값등록금이란?2007년, 당시 한나라당은 참여정부 때 오른 살인적인 대학등록금을 절반으로 낮추겠다며 반값아파트공약과 함께 상대적으로 지지층이 적은 20~30대를 공략하기 위해 대선캠프 내에 반값등록금추진위원회를 설치하여 2030세대의 표를 많이 받아 정권탈환에 성공했다. 앞서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이주호 당시 한나라당 제4정책조정위원장은 “정부가 4조원에 가까운 돈을 대학당국에 지원하고, 10만원 이하 기부금을 내면 세금을 공제해주는 등의 방안으로 대학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일 수 있다”고 언급하며, 사실상 반값등록금 공약을 처음 내걸었다. 이렇게 20대에게 파격적인 정책공약을 내놓고 청년층의 지지를 받아 출범한 MB정권은 당선직후부터 교묘한 말 바꾸기로 반값등록금 공약을 이행하지 않았다. 심지어 MB본인이 직접 방송에 나와 “내 자신은 반값으로 등록금을 하겠다고 공약을 한 일은 없다”고 이야기하며 사실상 반값등록금 공약은 표를 끌어 모으기 위한 사기였음이 들어났다.대학생과 국민들이 이해하는 반값등록금이란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이 말하는 것처럼 교묘하게 장학금규모 및 지원을 확대해서 심적으로 등록금 ‘부담만’ 반으로 줄이는 것이 아니라, 고지서 상에 등록금이 지금의 절반으로 찍혀 나오는 실질적인 반값등록금이다. 현재 서울시립대가 지난 10.26 재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자 실질적인 반값등록금이 됐다.정치권에서는 가능하다, 불가능하다, 전면적이다, 선별적이다 논란이 많은데 이런 반값등록금이 나에게 왜 문제인지, 나와 지금의 대학생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야기해보고자 한다.본론-반값등록금의 당위성당위성이란 사전을 찾아보면 ‘마땅히 해야 하거나 마땅히 있어야 할 성질ECD국가 중 가장 높은 대학진학률을 가진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다. 이런 사회적 풍토는 시간의 흐름이 쌓임에 따라 국가에서, 사회적으로 비롯된 것이므로 지금 우리 대학생세대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살인적인 대학등록금으로 인해 대학생들은 등록금을 벌기위해 공부할 시간도 없이 아르바이트를 두 개, 세 개도 하며 등록금을 벌기위해 휴학도 하고, 사채를 쓰기도 하고, 심하게는 자살 혹은 아르바이트 중 사망하는 사건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부모님들 역시 대출을 받고, 그것마저 불가능한 한 학부모는 ‘대학등록금조차 마련해주지 못해서 너무나 미안하다’라는 유서를 쓰고 자살을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이러한 상황들로 인해 반값등록금은 반드시 실행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진다.-반값등록금의 필요성앞서 말한 ‘반값등록금의 당위성’과 상당부분 겹치는 부분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살인적으로 높은 대학등록금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 및 포기하는 학생의 수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 20대는 교육받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기간이다. 언론을 통해서 보면 고졸과 대졸의 평균적인 연간 수입 차이가 매년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사회적 풍토는, 즉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리 곱지는 않다. 나도 개인적으로 무조건적으로 대학에 가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 더 많이 배우고 싶은 사람, 꼭 가야하는 사람들만 진학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직도 사회적으로는 차별을 받는다. 당장 손에 쥐는 임금부터가 다르다.그렇다면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를 알아야 하는데, 당장 높은 등록금이다. 내 경험이 모두의 객관적인 자료는 되지 않겠지만, 내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당장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이유, 진학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등록금 때문이라고 했다. 당장 돈을 벌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친구들도 굉장히 많았다. 이런 학립대학에 다니고 있어서 다른 사립대학들과 비교했을 때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그러나 내 동생은 이제 곧 13학번으로 사립대에 진학한다. 중산층의 가정도 한 번에 두 명의 자녀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 가정 형편은 중산층도 아니고, 차차상위계층이다. 결국 차상위계층에는 포함이 되지 않아, 등록금마련이 실질적으로 부담이 된다. 어쩌면 집을 팔아서 대학을 다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예전에는 대학을 소를 팔아서 대학등록금을 마련했다는 말에서 ‘우골탑’이라 불렀건만, 앞으로는 집을 팔아서 대학을 보냈다는 뜻으로 ‘우골탑’이라 불릴 수도 있을 것 같다.3. 선별적인 반값등록금은 공평하지 않다. 선별적인 반값등록금은 결국 장학금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장학금은 어떻게 받는가? 결국 성적과 스펙아닌가? 그런데 등록금이 너무 비싸 아르바이트를 두 개, 세 개 하는 학생들의 성적이 과연 좋을 수 있겠는가? 교과목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데 스펙을 쌓을 수 있겠는가? 노력하면 된다고 하지만, 이 말은 평범한 학생들에게 평범하지 말고 비범해지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선별적인 반값등록금이 아닌 전면적인 반값등록금, 즉 고지서상의 대학 등록금이 반액으로 찍혀서 나오는 실질적인 반값등록금이 필요하다.4. 대학 졸업 전부터 나는 빚을 지게 됐다. 집에 빚이 많다. IMF 때 아버지께서 30대의 젊은 나이셨지만 희망퇴직이라는 좋은 말로 포장된 사실상의 정리해고를 당하시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사업도 실패하셨다. 그래서 빚이 많다. 어릴 때부터 다짐했던 것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빚은 지지말자’ 였다. 그래서 여태 친구들에게 돈을 달라고 하면 달라고 했지 단 돈 500원이라도 빌려 달라 말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결국 이번 학기부터 대출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등록금은 이미 마련해 놨으나 등록금을 내고나니 생활비가 없어서 생활비대출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나의 문제지만, 나뿐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내 주위에도 학자대하고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며 1000km 자전거 대행진도 있었고 이때부터 등록금 인하구호가 탄생됐다. 정부에게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교육재정을 GDP의 6% 수준으로 확보하라고 요구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고, 이에 정치권에서, 특히 당시 한나라당이 발 빠르게 채택하여 결국 2007년, MB정권이 시작됐다. 그러나 MB정권의 반값등록금공약은 처음부터 단지 표만 얻기 위한 공약이었다는 것을 알게됐다. 대학생들의 저항은 더욱 격렬해 졌고, 사회적 담론도 꽤 많이 형성이 됐다. 우리학교는 학생들의 요구와 학생회의 노력으로 2009년부터 지난 3년 간 등록금을 인상하지 못하고 동결했다. 그러나 다른 학교들은 MB정권에서도 역시 등록금은 올랐다. 대학생들은 2009년 4월, 서울에서 MB정권에 반값등록금 공약을 이행하라고 요구하며 삭발식을 비롯한 기자회견, 농성, 집회 등도 진행했다. 이로 등록금 문제를 전 사회적 이슈로 끌어냈다. 그리고 2010년, 국회 교과위에서는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ICL)’도입을 위한 특별법과 등록금 상한제) 실시를 위한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취업 후 상환제는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이 그 대출금을 취업 후에 상환하는 제도로 등록금 인하, 나아가 반값등록금은 아니었다. 2010년, 대학생들은 ‘대학생 정치권리선언’을 통해 대학등록금문제를 대학생들만의 문제로 가지고 있지 않고 정치 쟁점화 시키는데 성공했다. 2011년 5월 29일, 광화문 거리에서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 이행을 요구했다. 그러나 MB정권은 이들을 연행해갔다. 그러나 대학생들의 행동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른바 ‘날라리 선배부대’라 불리는 연예인들이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요구에 지지를 표명하며 전국적으로 반값등록금에 대한 여론이 형성됐고, 그 해 있었던 10.26재보궐선거에서 서울시립대에 대한 즉각적인 반값등록금을 약속한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면서 반값등록금이 시작이 됐다. 더불어이 대학선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렇게 등록금 인하는 현실로 나타났다.그러나 등록금인하에 대한 대학생들의 요구는 더 강력하다. 반값 등록금에 대한 사회적 요구에도 불구, 2012학년도 전국 대학교들의 평균 등록금 인하율은 4.2%에 불과하여 결국 시늉만 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등록금을 인하하고 이에 따라 수업 일수나 시간강사, 교내 생활 및 많은 학생지원금액도 함께 줄였다. 2012년 4월 11일, 등록금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가짜 반값등록금 공약을 내건 새누리당이 예상 밖의 승리를 거두자 반값등록금은 실현가능성이 없는 듯 했다. 실제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의 야당의원들이 반값등록금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법안심의를 하고 입법까지 예고했으나 국회 교과위 내 반값등록금 찬성의원 12명, 거부의원 12명으로 팽팽히 맞서고 있어 국회 본회의에 조차 상정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제 1당도 야당과 국민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다. 12월 1일 알게 된 사실인데 내년부터 국공립 8개 대학에 반값등록금을 하기 위한 예산안이 심의중이라고 한다. 부디 그 예산안이 여당의원들에 의해 깎이지 않길 바란다.-반값등록금 실현가능성반값등록금은 실현가능하다. 서울시립대도 하지 않았는가? 예산을 이야기 하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부분을 세금으로 채워야하는 것 아니냐 반문하기도 한다. 또, 비리 사학재단들이 있는데 사립대에도 해줘야 하나, 국가세금이 비리재단으로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등의 반대의견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주장하는 ‘진짜 반값등록금’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먼저 예산부분이다. 당연히 어떤 정책을 실행할 때에는 예산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의 정부 예산구조를 현 정권이 그렇게 외치는 ‘글로벌스탠다드’에 맞춰 OECD 국가들이 예산에서 잡는 GDP대비 교육재정을 늘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증세가 아니라 국가의 낭비성 예산, 토건사업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이고, 교육재정으로 돌리면 충분히 실현가능하다가?)
슬럼, 지구를 뒤덮다휴학 기간 중 시민단체에서 인턴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한 여름,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서 교육도 받고, 일도 하며 즐거운 나날들을 보냈었다. 그런 인턴기간 중에 서울역 옆, 동자동 쪽방촌과 신용산역 앞의 지금은 철거된 옛 남일당 건물 터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체험방문프로그램의 일종으로 방문했는데, 특히 동자동 쪽방촌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조명하기 보다는 그 어려움 속에서 자립하기 위해 생활협동조합을 만들고 살아가는 공동체를 알기 위해 간 곳이었다. 그러나 도시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동자동 쪽방촌은 애초 방문목적과는 별개로 무분별한 도시개발의 폐해를 보여주는 단상이었다. 또한 옛 남일당 건물 터는 그날의 아픔은 온데간데 없이 그저 새로 개발되고 정비되는 하나의 구역으로 변해있었다. 옛 남일당 건물터는 현재 주차장으로 별해있었고 그 곳에서 벌어졌던 잔혹함은 그저 사람의 기억 속에만 머물 뿐이었다. 참 마음 아팠다. 도시개발이, 도시가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의문이 자꾸자꾸 들었고, 도시환경이 인간의 삶을 결정하는 것만 같았다. 나아가 사회와 도시는 날로 발전한다고 하는데, 왜 그 안에 피해 받는 이들, 가난해지는 사람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은 더욱 많아지는 걸까 의문이 들었고 고민하게 됐다.‘사회는 진보하는데 개인은 왜 더 빈곤해 지는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본다. 그 와중에, 이 책을 만났다. 저번에 읽었던 ‘도시의 승리’와는 전혀 달랐다. 책에 기술된 단어, 문장 등은 좀 더 어렵게 느껴지긴 했지만, 개의치 않는다. ‘도시의 승리’의 저자는 도시예찬론자인 반면, 본 책의 저자는 스스로 국제 사회주의자, 마르크스주의 환경주의자 라고 밝히고 있다. 도시의 문제점에 대해 서술했다는 점이 앞에 읽었던 도시의 승리와 다른 점이다.저자는 주로 제 3세계 국가의 도시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내가 이해한 이 책의 주장을 요약하자면 간단하다. 제 3세계 국가들의 농촌의 몰락이 도시화를 가속화 시키고, 신자유주의가 세계 도시의 불평등을 더욱 증가시켰다는 것이다. 그렇다. 신자유주의의 성행은 각 국의 도시질서를 재편성했고, 또 도시 내부의 갈등도 부추겼다. 이에 저자는,‘동아시아 해안 지역이 부상하면서 도쿄-상하이 ‘세계도시’가 구축될 것이며, 이곳은 전지구적 자본과 정보의 흐름을 통제하는 데 있어서 뉴욕-런던 축과 동일한 지위를 획득할 것이다.’‘이러한 새로운 도시질서에는 대가가 따를 수 밖에 없다. 도시의 규모와 경제가 차별화되면서 도시 내부의 불평등 및 도시 사이의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은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도시의 상황을 볼 때 정확한 것 같다. 또, 도시화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도시화란 연속체 전체의 구조적 변영인 동시에 각각의 지점들 사이의 상호작용 강화를 뜻한다.나는 책의 본문내용 중에서도 나와있지만 도시빈곤이 이번 세기의 가장 심각한 문제이자 정치적으로 가장 폭발적인 문제가 되리라는 세계은행의 경고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도시빈곤의 문제는 실로 심각하다. 동자동 쪽방촌만 봐도 그렇다. 동자동 쪽방촌 주변은 고층건물들로 둘러 쌓여있다. 마치 고층 건물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고, 이런 느낌은 그 자리에 서는 것 만으로도 ‘이곳과 저곳은 다르다’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화려한 고층건물과 사회적으로 화려하다고 생각되는 화이트칼라의 사람들과 극심한 빈곤에 허덕이며 자립하기 조차 힘든 사람들이 똑같은 장소에 공존하지만 생활적으로 보이지 않는 벽에 의해 완전히 다른 생활을 하는 곳, 그 곳이 바로 동자동이다. 동자동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그리고 사회에 대한 동자동 사람들의 불신 등이 바로 도시빈곤, 이 문제가 정치적으로 폭발적인, 나아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리라는 것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나아가 본문의 내용에는 슬럼지역의 주거문제에 대한 부분이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심각한 문제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기본이 되는 것이 의식주인데, 슬럼에서는 이 최소한의 것이 보장되지 않는다. 실제로 동자동사람들은 대부분이 기초생활수급자이다. 그리고 이들은 수급비의 30%이상, 많게는 50%이상을 주거비로 사용하고 있다. 그들의 수급비는 45만원에서 50만원 내외이다. 사회적 불평등, 나아가 도시간, 도시 내부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 저자는 이런 불평등에 대해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으나 나는 조금 다르게 말해서, 결국 이런 불평등은(특히 도시 내부의 불평등) 사회 계급간, 혹은 사회 계층간의 불평등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불평등’의 심화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 나의 생각과 상당부분 일치했다.또 우리나라의 사례를 하나 들어야겠다. ‘도시미화’문제. 도시미화 라는 단어만 놓고 봤을 때, 정말 필요해 보이고 시민들에게 꼭 필요한 사업으로 느껴진다. 그렇다. 실제로 도시미화는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있어 일정부분 필요하며, 21세기 들어 도시간 차별화를 위해서라도 매우 중요시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실상은 어떤가? 전두환의 독재신(新)군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유치했다. 그러고는 도시미화를 이유로 올림픽 준비기간 동안 낙후된 주거지역을 일제히 정리하기 시작했고, 실제 통계에 의하면 당시 철거민이 72만 명이다. 본문 142p에 나타난 바와 같이, 한 가톨릭 NGO는 ‘남한이야 말로 강제퇴거가 가장 잔인하고 무자비하게 이루어지는 나라, 남아공보다 나을 것이 없는 나라’라고 했을 정도였다. 이러한 가난한 주택소유자, 스쿼터, 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은 비단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용산참사. 불과 3년 전 2009년 1월 20일, 용산4구역 남일당 건물에서는 세입자에 대한 공권력의 폭력적 진압으로 철거민 5명, 경찰특공대 1명이 사망했다. 1988년 서울과 2009년 서울은 다르지 않다. 적어도 철거민들에게 1988년은 2009년이고, 2009년은 1988년 이다.책을 읽으면서 시민단체 인턴기간에 느꼈던 감정들이 다시금 생각났다. 비록 책은 무수한 수치들로 마치 연구논문을 나열해 놓은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것들로 인한 팩트의 전달은 나의 경험과 어우러져 나의 가슴 한 켠을 때렸다. 도시에 관심이 많은 나로써는 이런 도시문제들, 특히 ‘불평등’에 관한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 지가 주 관심사이다. 계급간 분리된 도시가 아닌 함께할 수 있는 따뜻한 도시를 만들고 싶다는 나의 인터뷰발언이 생각난다. 어떻게 하면 그러한 도시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봐야겠다.
꾸리찌바 에필로그를 읽고…이번 학기 마지막 독후감으로 ‘꾸리찌바 에필로그’를 골랐다. 도시의 무분별한 개발에 반대하는 입장의 나에게는 정말 좋은 책이었다. 특히 도시를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것은 지양하되 발전은 있어야 한다는 추상적인 나의 생각, 주장을 다시 한 번 구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도시에 어떤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어떤 것들을 바꾸고 개선해 나가야 하는지 대충의 느낌을 가지게 해 줬다. 특히 첫 장에서의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사례는 굉장히 의미 있게 읽었다.프롤로그와 본문에서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이 참 많다. 특히 ‘경제성장이 무한정 가능하다고 믿는 개발 패러다임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아주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지역화는 바로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는 금융 위기는 물론 피크오일과 기후변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도구이자 전략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누군가에게 조종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데 기본적으로 필요한 생활지침이기도 하다.’는 프롤로그의 글은 참 좋았다. 책을 읽기 전부터 내가 느끼고,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정확히 정리해 준 글이다.본문 1장은 ‘차 없는 도시를 향한 실험 : 프라이부르크’이다. 다른 장도 충분히 좋았지만 실제 사례와 적용 가능성, 그리고 구체성에 있어서 1장이 가장 좋았다. 프라이부르크는 독일의 환경수도라 불린다. 프라이푸르트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바로 ‘자동차 의존도를 줄이는데 성공한 도시’라는 점이다. 자동차 의존도를 줄인다는 것은 복합적인 내용들을 많이 함축하고 있다. 일단 자동차 수가 줄어든다. 의존도가 줄어들기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이다. 자동차 수가 줄어들면 교통체증이 줄어들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줄고, 석유의존도도 낮아진다. 이 같은 현상은 도시공간활용, 주민생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또 대중교통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높아진다. 그럼에도 프라이부르크에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고용은 독일전체보다 3배 성장했고 2005년 기준 1인당 소득은 독일전체보다 29%나 더 높았다. 80년대 초부터 프라이부르크는 환경과 태양광, 생명공학산업의 발전을 촉진해 고용을 비롯한 지역경제면에서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나아가 프라이부르크의 관광산업은 1995년 이래로 약 2배 증가했다. 이 모든 지표들은 프라이부르크가 실제로 지속가능성의 측면에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빼어난 도시임을 보여주며, 우리나라가 벤치마킹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방향이라 생각한다.이런 사례와 지표들은 번창하는 경제와 높은 1인당 소득이 반드시 높은 자동차 소유와 이용 수준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또 소득증가와 환경보호 등 삶의 질 상승이 자동차 수요를 자극하지는 않았는데, 이러한 것의 핵심은 자동차 이용을 제한하고, 대중교통, 사이클링, 보행을 촉진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가능 했던 것은 결국 주민들의 풀뿌리 운동이었다. 시민들이 자각하고 시민들의 운동으로 각종 정부정책을 요구했고, 시민들의 힘으로 이루어 낸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시민운동의 필요성을 느낀다.도시와 토지 수업이었는지, 도시지리 수업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교통량으로 인한 교통체증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가장 효율적인 것은 도로망확대 등이 아니라 오히려 자동차를 운전하고 다니기 ‘불편하게’ 하면 된다는 말이 기억난다. 사람들이 자동차를 운전하면 할 수록 더 불편함을 느껴야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또 지금 우리학교 교내의 ‘달래지역’처럼 도시공간에서도 자동차의 이용을 제한하고 도시 중심지에는 자동차 의존적인 업종의 입지를 제한해야한다. 프라이부르크의 사례가 딱 그 사례 같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정책들도 대중교통에 대한 개선 없이는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도 프라이부르크가 그랬듯, 보행, 사이클링과 대중교통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분명하게 대중교통여건을 개선해나가야 한다.그러나 의아한 면도 있었다. 바로 근린주거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프라이부르크 시민들 대부분은 경전철 노선까지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 300미터 안에 살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게 과연 우리나라에서 가능한 일일까? 물론 대중교통을 개선해서 구석구석 노선을 확장해서 대중교통의 접근성을 신장시킬 수는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교통이 좋은 곳이면 땅값이 엄청나게 비싸고, 이는 독일도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교통시설 확충으로 인한 대중들의 투기심리는 어떻게 잠재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 및 대안도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은 프라이부르크에서 진행된 대중교통체계의 개선과 획기적으로 값싼 요금이 엄청난 규모의 정부 보조금을 요구할 것이라 걱정했지만 실제로는 그리 되지 않았다. 대중교통시스템의 개선으로 인한 수요 증가는 도시공간의 공공성과 환경의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도시민의 경제적 측면에서도 좋은 영향을 끼쳤다. 비용은 물론이거니와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도 절약했고, 자동차를 운전했을 때와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를 비교, 연간 총비용도 상당한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프라이푸르크의 사례뿐 아니라 책의 제목인 꾸리찌바도 역시 흥미로웠다. 현 정권뿐 아니라 역대 정부가 늘 토건경제에 의존한 정부였다는 사실도 새삼스럽지는 않았지만 안타까운 점도 많이 보였다. 우리나라도 이제 이러한 토건경제를 넘어 혁신과 창조 등의 지속가능한 시스템으로 나아가야한다고 믿는다. 혁신, 창조는 불가능한 게 아니다. 충분히 가능하다. 혁신, 창조, 지속가능성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다만 널리 퍼지지 않았을 뿐이다.앞으로도 도시를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들, 좀 더 인간다운 도시를 만드는 시도들이 지속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원순 서울시장님이 전시행정에 대한 부분을 올 스톱시켰고, 인간적인 도시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이런 변화의 추세들을 지켜보며 세계적인 변화의 추세가 우리나라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한다.책에 쓰여진 프라이푸르크에서 얻은 교훈 중 두 가지 글만 발췌해서 마무리 하고자 한다.‘도시계획가와 정부 관리들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광범위한 경제, 환경과 사회적 이점을 설명하고, 지속가능한 교통의 편익에 대해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해야만 한다.’‘시의 정책은 특히 중심도시와 주거지 마을에서 자동차 이용을 철저히 제한해야만 한다. 그리고 자동차 이용이 덜 편리하고, 느리고, 더 비싸게 만들어야 한다.’아주 조금, 불편함을 감수한다면 보다 더 큰 이익과 편리함을 얻을 수 있다.
도시의 승리도시의 승리는 경제학자이자 도시예찬론자가 바라본 도시에 대한 역사와 현재를 보여주며 ‘도시는 인류 최대의 발명품’이라 이야기 하는 책이다. 경제학자의 시각에서 쓰여진 책이라 역시 경제적인 논점들이 대다수였고, 대부분의 설명을 경제현상과 연관하여 서술해 놓은 책이다. 나의 개인적인 생각과는 상당부분 충돌되는 부분도 있었으나 때로는 동의하는 부분도 많았다. 그래서 나의 생각과 충돌된 부분, 그리고 동의된 부분을 하나하나 적어보고자 한다.사실 전반적인 느낌은,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도시예찬론자이기 전에, 금융예찬론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특히 ‘뉴욕 시의 부활’ 이라는 주제에서는 ‘제조업에서 탈피한 도시공간이 쇠퇴하는 중에 뉴욕 시는 금융이 있기에 부활했고, 디트로이트는 금융업이 없어서 지속적으로 쇠퇴한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디트로이트뿐만 아니라 지금의 거의 대부분의 도시들) 겉으로는 기술의 혁신을 이야기 하는 듯 하지만 대부분의 논의는 금융업의 성장과 관련하여 이야기한다. 이는 20p의 서론을 봐도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세계화가 제조업 허브로서 뉴욕이 가진 이점을 앗아갔지만 그것은 뉴욕의 아이디어에 기반한 생산성 우위를 끌어올려 주기도 했다. (중략) 국제 금융 흐름을 관리하면서 뉴욕에서 활동하는 은행가들은 거액의 돈을 벌고 있다. 보다 많이 연결된 세상은 이제 수익을 좇아 전 세계를 누빌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기업인들에게 막대한 이익을 안겨준다.’ 저자가 생각하는 기업의 새로운 아이디어의 대표적인 예는 기술혁신 등이 아닌 2008년 미국 발 세계경제불황을 불러온 금융인가? 금융 전문가들 중 일부는 대공황을 일으킨 주범이지만, 그들에게 거처를 제공한 도시는 그런 폭풍을 견뎌냈다고 이야기한다. 이는 당시 월 가에서 행해진 소위 금융전문가들의 행태와 도시혼란, 국가혼란, 나아가 세계적 경제위기가 가져온 전 세계적 혼란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은 것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한다. 또, 전형적인 주류경제학자의 논점에서 경제부분을 이야기 하며 노조활동에 비판적이다. 방대한 공장들과 강력한 노조들이 활동하던 산업 도시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한다. 허나, 저자의 말대로 산업 도시에서 ‘금융 도시’로 변화했음에도 금융노조가 있다는 사실은 간과한 듯 하다. 또한 저자가 바라보는 노조활동은 단순히 임금 인상 만을 요구하고, 이로 인해 기업이 도시를 떠난다고 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작은 부분과 기업이전 특징의 작은 부분만 보는 듯 하다. 노조가 없다면 기업은 노동자들을 더욱 착취할 것이며 노동강도는 강해지는 반면에 노동임금은 더욱 낮아진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의 생활은 자연히 더욱 열악해 진다. 이러한 시각은 ‘사람’을 중시한다기 보다는 ‘기업’을 중시하는 시각이라 생각한다. 특히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는 ‘상경한 노동자들(책에서는 ‘근로자’지만)은 농촌 공동체에서 고립된 생활을 접고 세계 경제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으로, 그들이 생활했던 농촌공동체에서 벗어나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고, 산업화의 현장에 있으면서 산업화의 주역이었으나 철저하게 착취당하고 경제, 문화 등 사회전반적으로 고립되고 빈민이 되었으며, 특히 주거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러한 논지의 전개는 책의 내용에 상당히 많이 나온다. 이를 통해 저자는 도시민들 개개인의 삶 보다는 도시를 인격화하여 이른바 ‘도시의 품격’만을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 결코 나는 동의하지 못한다.‘부유한 서방 국가들에서 도시는 격동적인 산업 시대가 종말을 고한 후에도 살아남았고,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부유하고 더 건강하고, 더 매력적으로 변했다. 세계의 가난한 지역에서 도시는 엄청난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도시의 밀집된 인구가 가난으로부터 번영으로 가는 가장 깔끔한 길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중략) 지금까지 도시는 승리했다. 그러나 우리 중 다수가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듯이 도시의 도로가 간혹 지옥까지 포장되어 있을 때도 있다. 도시는 승리할지 모르지만, 도시민들은 지나칠 정도로 자주 실패를 맛보는 것 같다. 사람으로 따져서 아동기에 해당하는 시기에는 어떤 도시나 사람들이 겪는 특별한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과연 그렇다. 도시는 살아남았고, 어느 때보다 물질적으로 부유하다. 매력적이다. 그러나, 저자도 이야기 했듯이 도시민들은 그렇지 않다. 도시는 역사의 진보에 의해 발전하고 승리할지 모르겠으나 그 도시의 구성원인 도시민들도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는 승리하는데 도시를 구성하고 도시에 살고 있는 도시민들은 승리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저자는 책을 통해 도시의 빈곤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그러나 나의 시각으로 봤을 때 저자가 정리한 도시빈곤의 긍정적인 면은 한마디로 말장난 같다. 사회과학에서는 인과관계가 정확한 것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하나의 이유로 정리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사실관계에 있어 지대한 혼란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이러한 생각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정말 가슴으로 동의하는 부분도 있었다. 바로 ‘건물’이 아닌 ‘인간’중심의 도시개혁 인데, 많은 부분에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휘황찬란한 새 건물은 쇠퇴하는 도시의 미관을 멋있어 보이게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도시의 근본 문제를 치유하지는 못한다. (중략) 건물 중심으로 도시를 개편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은 도시는 구조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는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맞장구 쳤다. 실제로 건축물을 크고 화려하게 짓는 것은 망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는 역사에서 입증된다. 도시도 그렇고, 국가도 마찬가지다. 망하지 않고 건재하다는 것을 무엇인가를 통해 드러내야 하는 데, 건축이 가장 가시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시의 성장, 혹은 재생을 위해 공적자금을 투입하는데, 이 공적자금이 대규모 건축, 화려한 건축을 만드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도시민을 위해 쓰여야 한다. 굳이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겠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자신의 성과물을 남기기 위해 무리하게 예산을 투입해 벌이는 토목사업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의 한국이 그랬고, 서울시가 그랬고, 기타 많은 지자체장들이 그러한 과오를 저질렀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분명한 ‘정부의 실패’이다. 다만 저자의 논점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거주민의 이주를 너무나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재건축을 너무나 쉽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원래 주민들이 살고 있던 터전을 허물고(아무리 문제가 있더라도) 원주민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고 새로운 것을 짓는 다는 것은 잠깐은 위험이 사라진 것 같고, 개발 후 청사진만 보이겠지만 실제로 원주민들은 큰 고통에 시달린다. 많은 철거민들이 철거에 반대하는 이유이다.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이 책을 무조건 거부할 이유는 없다. 충분히 저자와 같은 입장의 사람들에게는 설득력이 있고 ‘도시’에 대한 생각에 있어 많은 도움이 되는 책임은 분명하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도시에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해 객관적이기 보다는 주관적이며 다양하기 보다는 지협적인 관점으로 본다는 점이 아쉽다.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생각하는 도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도시의 방향은 저자가 생각하고, 바라보고, 기술해놓은 도시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다음 책으로는 ‘슬럼, 세계를 뒤엎다’를 읽을 계획인데 과연 이 책과 얼마나 다른 도시의 모습들이 소개될지 무척 궁금하다.
평소 세계 금융과 세계 시장의 흐름에 대한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독후감으로 읽을 마지막 한 권의 책을 놓고 ‘빅숏’을 읽을까, 아니면 ‘부동산 10년 대폭락’을 읽을까 참 많은 고민을 했었다. 앞서 읽었던 두 권의 책도 사실상 부동산 거품에 집중된 책이었기 때문에 이번엔 좀 색다른 내용의 책을 읽을까도 생각 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부동산 투기의 종말’과 ‘위험한 경제학’에서도 미국발 금융기위, 서브-프라임에 대한 자세한 과정과 예가 나와 있었기 때문에, 지나간 사건에 대한 공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단 차라리 ‘현재진행형’으로 나타나고 있는 부동산거품붕괴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아보는 것이 내 개인적으로는 미래에 대한 도움이 될 것 같아 이 책을 선정하게 됐다.또 단순히 앞서 읽었던 두 권의 책이 단지 현재 상황에 입각하여 미래에 대한 대처 방법을 서술했다면, ‘부동산 10년 대폭락’은 실제로 일본에서 일어났던 버블붕괴현상,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이를 바탕으로 한국은 어떤 상황에 있는가, 어떻게 미래에 닥쳐올 위험을 해쳐나가야 하는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되풀이 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었기에 책을 읽으면서 ‘잘 선택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부동산 거품 위기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우리나라가 20여년 전 일본의 상황과 비슷하며 이대로 가다간 실제로 일본에서 터졌던 경제 불황이 고스란히 한국에서 되풀이 될 것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서로 비슷하기는 하나, 서로 엄연히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일본과 같은 상황을 되풀이 하지 않고 현명하게 해쳐나갈 수 있다고 역설한다. 먼저 일본과 한국의 상황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면, 첫째, 거품의 대상이다. 일본은 주거지인 ‘아파트’(혹은 맨션)이 아니라 ‘토지’ 그 자체에 대한 거품이었다면 한국은 ‘토지’보다는 ‘아파트’, 즉 주택에 대한 거품이라는 것이다. 둘째, 일본의 토지버블은 은행이 기업에 과잉 대출을 한 결과 법인이 주도했던 버블이었다면 한국은 기업 같은 법인이 아닌, 가계가 직접 주택토지시장에 뛰어들어 형성된 버블이라는 것이다. 이는 거품의 붕괴 후에 나타나는 결과에도 상당히 다른 구조를 나타낸다. 일본의 경우는 법인이 주도했기 때문에 개인 가계의 고통은 비교적 크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은 가계가 직접 뛰어들었기 때문에 거품이 붕괴되면 가계와 가계에 대출한 은행이 함께 궁지에 빠지는 구조를 띄게 된다.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중산층 이하가 지니고 있는 가계 자산의 80% 정도가 부동산 자산에 편중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과정에서 가계 빚도 빠르게 증가했다. 많은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오른다는 전제 하에서 자신의 빚을 어떻게 갚을지에 대한 계획이 분명하지 않은 채 금융기관의 ‘대출’에 힘입어 오로지 부동산 구입이 열중했기 때문에 이런 상태에서 만일 어떤 계기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게 된다면 가계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생각 이상 큰 폭으로 가계 자산이 떨어질 수 있다. 이는 결국 가계의 소비를 얼어붙게 만들고 그렇다면 당연히 기업은 생산을 줄일 것이다. 기업이 생산라인을 축소시킨다면 고용은 더 이상 창출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기존의 고용자들의 해고도 뒤따를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그 타격은 다시 가계가 받고, 다시 소비시장이 얼어붙고, 생산도 하지 않는, 흡사 과거의 과잉생산 과잉소비체제에서 나타난 ‘경제대공황’과 같은 경제적 악순환이 나타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업은 투자에서도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다. 결국 꼬리에 꼬리는 무는 악순환 반복적으로 일어나며 경제 전반에 걸친 경제적 장기 불황이 일어난다. 한국의 경우, 이런 경제 악순환 속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역시나 가계이다. 셋째, 다행스럽게도 현재 한국의 상황은 일본보다 거품의 깊이와 넓이가 작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국내 은행권이 튼튼해져 금융 시스템이 붕괴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일본이 경험한 극심한 장기 불황의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거품 붕괴는 이미 취약해진 가계에 커다란 충격을 줘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기 침체를 장기화 시킬 수 있다. 넷째, 한국은 IMF로 인해 IMF가 금융시장에 개입하면서 자본시장의 미국화 현상이 강해졌다. 최근 견고한 흐름을 보이고 있는 한국 주식시장도 미국 주식시장과 연동하여 움직이고 있으며 자산시장의 최대 양대 축의 하나인 부동산 시장이 미국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단정 지을 수도 없다. 이는 한편으로 굉장히 고무적이다. 일본에서 나타난 거품붕괴는 ‘프라자 합의’에 의해 일본 당국의 저금리 정책이 주된 요인이다. 저금리 정책이 거품을 양산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 정책과 부동산시장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은 이미 2004년부터 저금리 정책에서 벗어났다. 일본은 금융에 대한 정부의 여러 정책들이 실패하면서 급속한 시장악화가 곧 부동산시장의 거품붕괴라는 결과가 가져왔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거품붕괴가 그 정도로 심각하게 일어나지 않았으며 또 미국이 저금리 정책을 벗어난 만큼 적정 수준으로 금리를 끌어 올리며 서서히 거품은 빼되,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지 않을 정도로 실행한다면 충분히 부동산가격의 안정화와 경제공황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그러나 결코 이런 다른 점이 있다 하더라도 거품붕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공통적인 것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공통적이면서 다른 것도 있다. 일례로 지가의 상승을 들 수 있다. 일본은 거품경제시기에 도시의 평균지가가 약 300% 이상 상승했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보자. 일본은 주요 6개 도시에서 시작해서 전국적인 상승, 그 후에 붕괴 됐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전국주택지수는 152%, 강남 11개구 아파트는 218%정도 상승했다. 서울의 일부 지역은 평균을 훨씬 웃돌았다. 비정상적인 상승이었다. 넓이 면에서 일본의 부동산거품은 전 국토로 확대된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과 충청도 일부 지역 등을 중심으로만 버블이 확산되어 아직도 부동산 불패가 끝나지 않았다는 인식이 있다. 과연 그럴까? 나는 결코 아니라고 본다. (저자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거품의 넓이 면에서 우리나라에서 서울 수도권 지역이 차지하는 인구나 경제적 비중을 따져보면 일본보다 지역적인 넓이가 좁아서 괜찮다고 할 수는 없다.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나 GDP 비율이 일본의 절반 수준이라는 점에서도 일본과의 단순 비교가 어려운 이유이다.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의 큰 이유 중 하나는 정부이다. 일본은 정부의 적절한 대응 부족으로 장기침체 국면으로 진입했다. 따라서 세금과 금리 정책을 적절히 조합해 선의의 피해자-실수요자-를 구제하고 특정 지역의 투기적 가수요를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 또 무리한 지역개발 공약을 자제해 주택 원가가 되는 지가의 급증 현상도 억제해야 한다. 투기 세력에 동조되지 않도록 개인과 금융기관 등에 현재의 버블의 속성과 붕괴 후 폐해 등을 이해시키는 것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