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인간과 자연은 필요한 것들을 상호간에 공급해주는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서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각자 자신의 역할을 다함으로써 상대에게 생명이 되어 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빗물을 흡수하고, 죽은 개체들을 비료로 삼은 식물체가 자라서 홍수를 예방해 준다. 그리고 광합성을 함으로 인간에게 영양물질과 공기를 공급하여 인간이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어 주기도 하고, 인간이 호흡과 원료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광합성에 다시 이용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지구의 에너지 흐름과 물질 순환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공생관계가 산업혁명과 더불어 산업이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생물구성의 변화를 초래하여 자연과 인간 사이의 공생관계를 훼손시키고 한쪽의 희생만을 요구하는 관계가 되어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이기심과 우월감으로 인한 자연의 무분별한 희생이다. 공생하는 관계에는 서로 상호보완이 되어야 하는데 한쪽은 도움을 받고 그것으로 인해 안락함을 누리지만 다른 한쪽은 희생을 하고도 그 대가로 큰 몸살을 앓고 있다.어느 날 이후 인간이 이 지구상에 남김없이 사라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화할까? 쓸쓸한 인간 종말론을 이르는 이야기가 아니다. 호모사피엔스라 불리는 현 인류의 등장 이래 지구상의 모든 식물과 동물을 포함하는 자연이 그들의 의지와 관련 없이 도태되고 진화하였다. 인간들이 저지른 극악한 환경의 침해에 적응하기 위해 불가피한 진화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었다는 이야기이다.현재 지구에는 과거 65만년 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산화탄소가 떠다닌다고 한다. 현 인류가 자연에 실력을 행사하는 존재가 되면서부터 우리는 지구를 폐허로 만들기 시작했다. 북미 대륙에는 대형 포유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우리들이 상상 속의 그림만으로 대하는 매머드는 인간에 의해 멸종되었다. 그리고 북미 고유의 낙타와 아안타까운 소식이다. 작년에는 서울에 십여 마리의 멧돼지가 출몰해서 우리를 긴장시킨 적도 있었다. 한강을 유유히 건너 다니는 모습도 목격 됐고, 멧돼지에 물려서 다친 사람도 있었다. 일본에도 야생 반달곰들이 주택가에 나타나서 심각한 문제라고 한다. 올해에만 세 명이 사망했고, 10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는 것이다. 곰들의 양식인 너도밤나무 열매가 흉작인 탓이라고 한다.복잡한 진화의 과정에서 새로운 생물종이 등장하는 과정은 현대의 첨단 생명과학으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난제(難題) 중의 하나다. 그러나 새로운 생물종의 출현이 그렇게 단순한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렵게 등장한 생물종이 영원히 자취를 감춰버리는 멸종(滅種)은 안타까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45억 년이 넘는 오랜 지구의 역사에서 멸종은 결코 드문 일이 아니었다. 거대 화산의 폭발이나 운석의 충돌, 급격한 기후 변화와 같은 자연 재앙에 의해 당시에 살고 있던 생물종의 95퍼센트가 멸종해버린 경우도 있었다. 공룡이나 매머드처럼 잘 알려진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생물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쓸쓸하게 사라져버렸다. 끔찍한 자연 재앙에 의해 멸종이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자연에서의 치열한 생존 경쟁이 멸종의 원인이 된다. 어떤 생물종이거나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 환경에 적절하게 적응하지 못하거나, 천적이 지나치게 번성하면 멸종의 위기에 빠지게 된다.문제는 지난 1만여 년 동안 놀라운 수준으로 번성하게 된 우리 인간이 이제는 다른 생물종을 멸종의 위기로 몰아넣는 주범이 돼버렸다는 사실이다. 1790년에 모리셔스에서 자취를 감춰버린 도도새, 뉴질랜드의 마오리 족에게 몰살을 당해버린 모아스 등이 모두 저자가 이야기 하는 우리 인간에 의한 멸종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우리의 무자비함이 그런 정도에 한정된 것도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축으로 기르고 있는 소나 돼지는 물론이고, 우리의 주식인 쌀과 옥수수도 원시 야생종들은 모두 오래 전에 사라져 버렸다. 아메리카나 오스트레일리아에 살 자체가 근원적으로 그런 뜻을 담고 있다.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은 먹이사슬의 또 다른 표현이고, 평화로운 공존은 바로 그런 한계 안에서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우리 인간도 그런 점에서는 예외일 수가 없다. 우리와 같은 생활 공간과 먹이를 공유하는 경우에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 스스로가 어느 정도의 손해나 희생을 감수하거나, 아니면 맹수들을 퇴출시킬 수밖에 없다. 특히 호랑이, 늑대, 반달곰처럼 우리를 직접 공격해서 피해를 줄 수 있는 맹수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결국 생태계의 보호가 우리의 피해와 희생을 요구할 수도 있다. 효과적인 삼림녹화 노력 덕분에 번성하게 된 멧돼지가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덩치도 크고, 호전적인 멧돼지도 어엿한 생태계의 일원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농가에 심각한 피해를 주어왔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그 수가 너무 늘어나서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멧돼지만큼 위협적인 것은 아니지만 노루와 꿩도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과연 우리가 생태계의 보호를 위해 농가들의 피해를 무시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만약 생물종 다양성을 위해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면 피해를 입은 농가에 대한 사회적 보상도 마련해야 한다. 야생 짐승에 대한 섣부른 동정심으로 확실한 대책도 없이 반달곰과 같은 동물을 마구 방사(放飼)하는 것은 과학기술중심사회의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할 수는 없다. 자연에 대한 막연한 동경(憧憬) 때문에 우리 이웃에서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다. 야생과의 평화로운 공존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저자는 두 번째로 남획과 오염, 간척사업으로 인한 생물종의 피해를 이야기한다. 무분별한 남획으로 전세계 해양 어종(漁種) 중 3분의 1이 이미 멸종됐으며 현재 추세대로라면 앞으로 50년 안에 어종이 전멸할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마치 건물을 지을 때 여러 개의 골조 가운데 한 종류만 사라져도 구조 자체가 무너지는 것처럼 어종의 다양성 파괴가 도미노처럼 다른 어종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이 독특한 자연현상과 지형을 가지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해양생물의 60% 이상이 이곳에서 산란, 서식하고 있다. 또한 시베리아를 번식지로 하고 호주를 월동지로 하는 무수히 많은, 그리고 국제적으로 중요한 도요· 물떼새들의 중간기착지이기도 하다. 즉 갯벌은 쓸모 없는 땅이 아니라 살아 숨쉬는 생명들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살아있는 땅이자, 우리 국토의 일부인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생태계 파괴로 인한 환경재앙, 국민혈세 낭비, 지역공동체 파괴라는 새만금 간척사업을 용납할 수 없다. 새만금 갯벌은 세계 최대 규모로서 현세대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며, 우리 후손에게 되돌려 주어야 할 천혜자연이다. 우리는 더 이상 우리 미래세대들의 자산을 국책사업이라는 이유로 강탈해서는 안될 것이다.이 책에서는 개발과 보전의 딜레마를 소개하며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기근에 닥친 아프리카코끼리를 집단 도살하는 것이 왜 자연에 맡겨 죽도록 하는 것보다 나은지를 소개한다. 1960년대 말 케냐에 최악의 가뭄이 덮쳤을 때 굶주린 코끼리들이 차보 국립공원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코끼리를 3천 마리쯤 도살하자는 의견과 자연이 해결해 줄 테니 내버려두자는 의견이 맞섰다. 그 결과 자연의 치유력을 믿는 후자가 논쟁에서 이겼지만 코끼리 9천 마리가 굶어 죽었고, 굶주린 5만여 마리의 코끼리가 나무를 뿌리째 파헤쳐 공원은 사막처럼 황폐해졌다. 결과적으로 보면 차보 국립공원에서는 자연에 손을 대는 것이 옳았다. 그것이 당장은 비인도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코끼리와 국립공원 식생의 파괴를 막는 길이었다.지역개발과 환경보전은 팽팽한 평행선을 달리며 대립적인 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 둘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지역개발과 환경보전은 어느 하나만 강조될 수 없으며 이 둘이 적정하게 균형을 이루어 나갈 때 국가라는 큰 수레가 굴러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발 사업을 둘러싼 환경갈등을 원천적으로 예방고 생각한다.마지막으로 저자는 이와 같은 의견에 부응하여 실제로 자연과 화해를 하고 조화롭게 살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들을 소개하며 글을 마쳤다. 차체의 철을 몰아내고 탄소섬유를 사용하여 자동차를 초경량화 함으로써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는 하이퍼 카, 자연 친화적인 농법의 개발 등이 그 예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연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므로 이를 위한 우리의 구체적인 노력을 간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결론자연은 그 안의 사물들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구조적, 기능적 통합체를 이루는 실체이며 사물들의 복합적 관계의 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간은 이러한 자연 속에서 가장 강력한 작용을 하는 하나의 개체군이다. 인간은 자연계의 구성부분인 동시에 인공계와 사회계라는 새로운 환경을 창출하는 동물의 한 종이기도 하다. 또한 인간은 자기가 속해 있는 자연계뿐만 아니라 스스로 조성해 놓은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자연과 인간은 직접, 간접으로 상호작용을 한다.즉, 인간이 환경에 영향을 주기도 하고 환경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한대 내지 열대에서는 사람들은 발전하지 못하며 온대 내지 한 대의 기후대역에 사는 사람들은 잘 발달한다. 또한 건조한 지역의 고원지방에 사는 유목민은 발달하고 비옥한 삼각주에서 사는 농경지를 경작하는 사람, 해안 또는 하천의 모래환경에 많은 도시를 건설하는 경우를 보면 자연은 인류에게 다양하게 영향을 주므로 그 영향 하에서 인류는 발전했다. 또한 반대로 인간은 자연의 여러 가지 조건에 대하여 영향을 준다. 인간은 유수, 조석류, 바람 등의 자연의 힘을 이용하여 자원을 유용한다. 소택지와 조간대를 옥토로 바꾸어 농경작지로 유용하며 얕은 천해를 매립하여 다양한 목적의 항만도시, 휴양지, 비행장, 스포츠 공간 등으로 활용한다. 이와 같이 매몰, 굴착, 착공 등 지구표면을 변화시키며 동식물을 다량으로 사육하므로 변종이 생기고 그 종은 멸종되는 경우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산림을 벌채하므로 간접적으로 지형의 변화를 초래케 하고 심지어 기후까지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