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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십자가
    독서보고서『십자가』를 읽고본서를 읽으며 얼마 전 읽었던 다시 복음 앞에가 떠올랐다. 먼저 책이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기 위한 신앙의 시작점을 말했다면 십자가는 진정한 기독교인의 매일매일의 삶을 말하고 있는듯 하다. 타락한 인간을 회복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주신 선물이 예수님의 십자가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거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회복과 신앙적인 성장을 위하여 십자가를 찾고 의지하거나 그 앞에 나오는 사람들이 점차 줄어가고 있는 추세다. 더군다나 시대가 끝을 향해 가면서 기독교인들 안에서도 진리 아닌 것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 십자가인데 그 십자가가 외면당하면서 비본질적인 것이 부각되고 드러나는 것에 대해서 마음이 아프다. 정말 목숨을 건다고 한다면, 내 시간을 투자한다고 한다면, 가장 본질적인 것에 투자를 해야 옳은 것 아닌가?십자가는 그 안에 담겨 있는 능력이 경험되어지지 않으면 우상이 될 수 있다. 십자가 목걸이, 반지를 한다고 해서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 기자가 한국에 와서 인상적이었던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빨간 네온 십자가였다고 한다. “그 십자가는 한국 교회의 무덤을 상징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십자가가 능력이고 생명이지만, 그것이 경험되어지지 못할 때 죽음을 상징하는 표상이 되기도 한다. 교회는 많은데 그 교회의 숫자만큼 한국 땅이 변화되고 있지 못한 부분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삶에서 십자가의 능력이 경험되어지면, 생명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생명을 경험한다고 하는 것은 희망, 소망, 평안, 기쁨, 희락 등 생명이 동반하는 삶의 정서들이다. 이것들이 실질적으로 내 삶 안에서 누려지기 시작한다. 돈은 없어도, 환경은 어려워도, 문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그 문제를 뚫고 찾아오시는 주님 때문에 소망이 있고, 기쁨이 있다. 그런데 생명이 사라지면 죽음이 찾아온다. 죽는 것과 다름없는 삶, 혹은 그와 다.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치유도 하고 회복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십자가를 통해 내 죄 된 모습을 모고 울고 그런 나를 받아주시는 그 사랑 때문에 울게 되는 것이다. 그 이후 십자가를 바라볼 때 이제는 하나님의 삼판이 있다고 하는 것이 나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적용되었다. 십자가를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니 하나님의 심판이 있는 줄 알지 못하고 그렇게 죽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 영혼들을 불쌍해 지기 시작한다. 심판과 사랑이 십자가의 본질적인 두 가지 요소는 매우 중요하다. 십자가의 이 두가지 거울로 나를 바라보고 세상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이 두가지의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경험해 가는 것이 가장기초이다. 바울 사도는 이 세상에 자기지혜로 하나님의 지혜를 알지 못하여 하나님은 진도의 미려한 것으로 사람들을 구원히ㅏ시를 기뻐하셨다. 십자가의 도가 사람들에게 어리석은 것이었다.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은 미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비밀을 깨들은 자들에게는 십자가를 경험한 자들에게 십자가는하나님의 최고의 능력과 지혜가 되었다. 십자가의 능력을 부인하고 그 본질을 왜곡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도가 미련한 것이었다면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표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이 지신 십자가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비밀이다. 그 비밀을 온전히 깨달아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만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그분이 구속사역을 할 수 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하나님에 의해 구원을 얻고, 현재에도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에게는 십자가에 대한 말씀이 더 이상 미련하거나 허탄한 것이 될 수 없으며, 오히려 구원을 담보하는 하나님의 약속을 경험하게 된다. 이후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신다. 모든 죄를 다 씻으시고, 죄의 흔적도 보혈로 덮는다. 그리고 강력한 사랑으로 용서하십니훼방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의 아들에게 십자가를 지우셨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와 능력이다. 우리가 무슨 수로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의롭게 할 수 있을까? 어려서부터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늘 악한 생각만 하는 우리들이 어떻게 의로워질 수 있겠는가? 우리가 선하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우리 죄가 없어지고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절대로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의 죄를 없앨 수는 없다. 우리가 우리의 죄악을 부인하거나 잊고 살수는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의 책에 기록된 우리의 죄를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달았던 사도 바울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그것을 해결해 주셨다. 할렐루야!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지시고 대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던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에 나오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아무리 크고 많은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흘린 예수그리스도의 거룩한 보혈로 모든 죄가 씻겼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예수님 옆에 매달려 죽어가던 강도는 행악자였다. 큰 죄를 지은 대가로 죽게 된 죄인이었다. 그는 아무 소망이 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인생은 죄로 얼룩져있는 완전히 실패한 인생이었다. 이제 죽으면 그는 지옥행이다. 그런데 그가 죽음의 순간에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만나고서 주님과 함께 낙원에 갔다. 죄만 짓다가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던 죄인이 죽음 직전에 구원받게 된 것이다. 그는 어떤 위대한 일을 한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선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단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영접했을 뿐이다. 사랑에는 두 가이 없다고 하였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담고 이 땅위에 오셔서 목숨을 버려 사랑하셨으니 세상 어디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비밀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숨겨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또 하나의 비밀은 하나님의 공의가 숨어있다는 점이다. 사랑과 공의는 서로 섞일 수 없는 상치점에 있다.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 공의와 사랑이다. 공의의 판단을 가지고 형벌을 내리면 사랑을 성취할 수 없다. 공의와 사랑은 동시에 이룰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비밀 속에 이 공의와 사랑이 함께 만나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룬 놀라운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중심이다. 십자가가 신앙의 중심이 되지 않고는 능력도 없고 승리도 없다. 이것도 기독교의 기본진리이다. 아무리 강조해도 십자가의 강조는 지나치지 않는다. 인간들을 향한 절대자이신 하나님의 지고지순한 사랑의 결정체인 것이다. 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며 자신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바르게 가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나 이 시대와 역사앞에 분명히 할 때 자신의 소명을 뚜렷하게 발견하고 그 길을 묵묵히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 사역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십자가를 경험해야 한다. 십자가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은 바로 내가 죄인이라는 점이다. 나는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또한 스스로 의로와 질 수 없는 죄인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할 때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모든 삶이 십자가 앞에서 시작해야 한다. 십자가 앞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그 사랑만을 깨닫게 된다면 폭풍우라도 하늘이 무너져도 땅이 흔들려도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십자가 앞에서 우리의 삶의 방향성을 깨달고 설정해야 한다. 가끔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고도 그 방향성을 제다로 잡지 못해 방황하거나 혹은 십자가의 능력을 이다. 우리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명확히 했다면 이 시대를 분별해야 한다. 이 시대속에서 이전의 하나님의 역사를 지식으로 알고 이 시대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역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십자가를 돌아가야 한다. 다시 십자가 앞으로 돌아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십자가를 중심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십자가의 능력과 승리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다. 십자가 안에서 모든 것이 꿰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십자가를 통해 회복된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뤄나가기 위함이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이뤄나가기 위해 필연적으로 치러야 하는 것이 영적인 전투이다. 이 모든 것이 십자가를 통해 가능한 것이다. 십자가의 승리가 이미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그 승리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싸우며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서 확장해 나가는 축복이 사역자들에게 있기를 소원한다. 저자는 말한다. 예전의 모든 자아가 깨져야 한다고 말이다. 그렇다. 하지만 자아가 깨지는 것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광야와 같이 세상적인 것을 끊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십자가 앞에서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케 되어야 한다. 광야로 나아가면 하나님의 음성이 분명하게 들린다. 오직 주님 앞에 모든 것을 의탁하면 마치 의사가 수술을 하듯 나의 어린 시절부터의 모든 죄성을 끄집어 내시고 수술하기 시작하신다. 그렇게 나의 자아가 죽게 되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수술된 곳에 주의 말씀으로 새살이 돗아야 한다. 마치 하나님의 학교에 입학하여 오직 일대일로 주님께 말씀을 배우듯 그렇게 앉아 있어야 한다. 말씀대로 주님께 의탁하면 주는 의롭고 자비하셔서 주의 증휼을 베풀어 주신다. 십자가의 능력은 바로 이것이다. 나의 것을 부인하고 사라질수록 주의 능력과 주님의 것이 빛을 발한다. 이것이 십자가의 비밀인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움켜쥐고 있으면 그 손으로는 주님의 손을 잡을 수도 없고 주님의 주시는 것들을 받아 누릴 수 없음을 말이다. 자아가 깨지는 것은 결코
    사회과학| 2012.11.14| 4페이지| 2,500원| 조회(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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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종
    존 바비어「순종」 읽고제 1장 그분의 날개 아래 거하기에서 먼저 나의 피난처 나의 요새, 나의 의뢰하는 여호와에서는 하나님의 예비하심과 보호하심이라는 계획에서 떼어 놓으려는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 가장 큰 자유와 보호를 누리게 하는 것은 달콤한 말이 아니라 뼈아픈 말이라는 사실이다. 즉 주사가 아프다는 것을 알지만 더 큰 아픔을 겪지 않으려면 주사를 맞아야 한다. 두 번째 권의의 근원이신 하나님에서 하나님 나라는 왕이 다스리는 곳이며 서열과 질서와 권위가 있는 곳이다. 하나님 나라의 법은 중론이나 선거나 여론조사로 대치하 ㄹ수 없다. 우리가 청종할 대상은 하나님이다. 그분의 권위에 복종하면 그 결과 공급하시고 보호하신다. 중요한 것은 먼저 다스리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이 세우셨다. 두 번째 인간 권위에 반항하는 것은 곧 주님의 명령이나 하나님에게 반항하는 것이며 그것은 심판을 자취하는 것이다. 위임된 권위에 저항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권위에 저항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외면적 순종이 아니라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에 뜻에 주리고 목마른 마음이다.제 2장 순종함으로 자유하기에서는 먼저 기쁘게 순종하는 자녀를 찾으시는 하나님에서 불법은 하나님의 법이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죄는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고백할 뿐 아니라 행하는 즉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사람들만 천국에 있게 될거라 말씀하셨다. 두 번째 미혹의 대가 사탄에서는 두가지 질문을 던진다. 먼저, 미 미혹의 근원은 무엇인가와 이 미혹이 저지당하지 않고 위력을 발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해 불법은 헬라어로 ‘아노마’이다. 하와는 속아서 불순종하게 되었으니 아담은 자기가 하려는 일을 잘 알았다. 첫째 밤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문에 제기하자 여자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답하지 않고 자기 생각부터 밝힌다. 여자의 대답이 하나님의 본래 명령과 다르다. 그것은 계시된 지식이 아니라 전달된 지식이었다. 계시된 지식은 하나님을 간절는 것이 하나님의 본질이며 하나님은 동산 안에 당신을 살아하며 당신께 순종할 벗을 원하셨다. 뱀의 전략은 하나님의 명령의 강조점을 왜곡시키는 것이고,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하심을 무시한채 예외 조항만을 끄집어 내었다. 주님이 불공평한 존재로 보이게 함으로 하나님의 통치권을 공략했다. 하와는 그 나무 하나에 집중하다보니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하심과 선하심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불순종과 함께 영적 죽음이 찾아왔다. 이 전략은 지금도 동일하다. 예수님을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은 사탄을 물리치시고 하나님이 공급하시기를 기다리셨다. 대적이 하나님의 성품을 왜곡하게 놔 두지 않으셨다. 순종의 씨앗, 불순종의 씨앗에서 선악이라는 지식의 원리는 옳고 그름에 따라 사는 것이다. 타락 전에 그들의 행동은 선악의 지식이나 옳고 그름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지배되었다. 믿음은 순종과 동등한 것이며 순종을 기초로 한 것이다. 네 번째 순도 백퍼센트 순종을 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은 십자가 지는 것이 유일하게 순종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섯 번째 생명을 향해 열린 문 순종에서 하나님이 밝히 계시하신 내용에 불순종할 때마다 사술의 저주의 영향력 아래 제 발로 들어간다는 것이 거역의 사술이기 때문이다.제 3장 하나님의 질서에 뿌리내리기에서는 먼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권위를 존중하며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도록 남겨 놓는다. 각 사람은 자기 삶을 다스리는 모든 권위를 하나님이 정하셨기에 권위에 굴복해야 한다. 하나님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우면 인간에게 하나님이 이임하신 권위도 쉽게 인식할 수 있다. 권위는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권위를 존중하며 복중하라고 명령하신다. 심판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이 하시도록 남겨 놓으라고 하신다. 두 번째 하나님 나라의 법 왕을 공경하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아야 한다고 주님이 말씀하셨다. 또한 악을 악으로 갚는다고 선이 되지섬기는 사람들 특히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사람들을 더욱 그러하다. 판단은 하나님이 하신다. 하지만 떠나야 할 때가 있따. 교회에서 권위 있는 사람이 노골적인 타락이나 죄 가운데 있다는 것이 드러난다면 그 사람의 더러운 샘에서 더는 물을 길ㅇ 마시지 말아야 한다. 간음, 동성애, 착취, 절도나 이단이나 그 외 죄에 빠졌고 회개하지 않는다면 떠나야 한다. 영적 권위는 하나님, 예수님, 선지자, 의인, 소자 이 다섯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사역자를 하나님이 보내신 사람으로 영접하고 공경하는 만큼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에게 받게 된다. 우습게 여기면 그렇게 받는다. 극진히 공경하면 당신에게도 그 공경에 돌아온다. 네 번째 순종하는 마음 복종하는 태도 순종이 권위에 대한 행동의 문제라면 복종은 권위에 대한 태도의 문제다. 유일하게 권위에 순종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가 있다. 유일한 예외다. 바로 하나님이 말씀에 명시하신 것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경우다. 다섯 번째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하는 능력에서는 권위의 계시만이 하나님 자신의 계시만이 많은 의문에 답을 찾고 무수한 문제들이 풀린다. 여섯 번째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심판아래 그분의 보호 아래 남기 위해 예수님은 자기 변호를 하지 않으셨다. 일곱 번째 생명을 살리는 메시지는 권위를 공경하는 자들은 큰 권위를 얻게 되며 존경을 받고, 하나님의 복이 뒤따른다. 영적 권위에 도전하다 받는 심판이 결국은 배우고 성장하는 기회가 될 때가 많다. 진정 하나님의 권위가 있는 사람들이 싸움의 대상인 경우가 가장 많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싸우는 대상이 하나님의 권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우신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기에 애써 자기 직분을 입증하려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람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무시무시한 심판은 섬뜩한 사실을 두 가지 가르친다. 첫째, 그들은 사실 하나님을 대적하면서도 끝까지 자기들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굳게 믿었다. 둘째, 신약 성경에서 유다는 마지막 때에 교회에도 비슷한 사람들경은 하나님이 거역을 싫어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이 거역을 미워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거역에 대한 하나님의 시각은 단순히 싫은 정도보다 휠씬 더 심하다.제 4장 순종으로 깊어지는 믿음의 우물에서는 먼저, 모든 영역에서 권위 인정하기 두 번째 순종으로 자라는 믿음에서 진정 구원받은 자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은 교회 안의 바른 권위를 식별한다. 교회나 정부나 사회의 권위가 있기 전에 가정이 있었다. 다른 새 영역의 건강이 가정에 달려 있기 때문에 가정의 기능은 가장 중요하다. 예수님은 모든 일에 부모님께 순종했으나 부모님이 아버지의 명령에 거역하게 하려 할 떄는 순종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면 하나님이 친히 자기를 보호하시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내가 실수 할때도 아내를 지켜 주셨고 아내에게 평안을 주셨다. 아내가 복종하면 남편이 아무리 지혜롭지 않은 결정을 내려도 하나님이 아내를 보호하신다. 순종하는 자는 순종만 하면 된다. 주님은 우리에게 잘못된 순종의 책임을 묻지 않으신다. 반대로 그분은 잘못된 행동의 책임을 위임된 권위에게 물으실 것이다. 그러나 불순종은 반역이다. 권위아래 있는 자들은 그 점에서 하나님에게 책임져야 한다. 거짓지도자들의 권위의 특징은 성경에 맞지 않은 교리를 가르친다. 그리고 거짓 지도자들은 교회 내에서 자기 스스로 일어난다. 순종으로 자라나는 믿음 즉 복종의 차원이 깊어질수록 우리의 믿음도 커진다. 보호아래 거하는 모든 이들에게 임하는 엄청난 보상과 축복이 임한다. 권위에 대한 복종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행했기 때문이다.항상 살아가며 인생의 순간순간마다 전능자의 그늘에 거하고 싶었다. 전능자의 그늘은 내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유일한 안전한 곳이기 떄문이다. 그것은 보호아래 있는 것이기도 하다. 하와의 전달된 지식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왜곡했고,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했다. 하지만 순종하는 자, 더 깊이 복종하는 자는 하나님의 날개 아래 은밀한 처소가 있다. 그 곳에 자유와 공급과 보호가 있다.계신 세상에서 자유와 안전을 구한다. 참되고 영원한 자유는 하나님의 권위 밖에 있다는 속임수를 믿고 살 수는 없다. 신자들에 대한 사탄의 미묘하면서도 과격한 진술을 막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순종이다. 우리에게는 당당히 그분의 권위 아래로 걸어 들어가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 그것이 순종이다. 그런 의미에서 순종은 영원한 보호의 길이며, 안식의 길이다.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하는 축복의 길인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만난 절대 인간적인 마음으로 순종할 수 없는 지도자들의 말도 안 되는 명령에도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난 이 부분에서 내 마음의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먼저는 치유의 눈물이었다. 말도 안 되는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그들의 말을 듣고 순종할 때의 마음은 정말 생살을 쥐어짜는 듯한 아픔이다. 아니 뽀족한 송곳을 연한 가슴살을 깊이 수셔되는 아픔이 있다. 이 아픔을 주님이 아신다는 생각, 성령님이 아셨다는 위로, 그 과정속에서 하나님이 보고 계셨다는 믿음이 생겼다.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말도 안되는 명령을 받을때의 그 외로움은 사무친 것이기에 인생의 고독의 끝에 서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하나님이 계셨다. 아버지는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명령에 순종하기 원하셨던 것이다. 감사하다. 두 번째, 그들을 정죄한 것을 참회하게 되었다. 말로 할 수 없었지만 그들을 말씀으로, 상식으로, 내가 아는 훌륭한 리더쉽으로 정죄했다. 정말 잘 손질된 생선같이 그들을 사정없이 정죄하였다. 하지만 이는 나의 몫이 아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몫이었던 것이다. 모세를 정죄한 미리암같이, 예수님을 정죄한 바리새인같은 마음이었다. 가장 내 마음을 찔리게 한 것은 바로 이런 정죄함의 마음의 시작이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바로 반역하고자 하는 마음, 루시퍼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통회할 마음이다. 세 번째, 마음의 참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진정한 인식, 전능자의 그늘, 그 날개아래 거하며 펀안하게쉬는 것, 내가 꿈꾸고 유일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유일한다.
    사회과학| 2012.11.14| 4페이지| 2,500원| 조회(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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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원운동이 현대에 끼친 영향에 대한 고찰
    수도원운동이 현대에 끼친 영향에 대한 고찰(논지: 교회사에 나타난 수도원운동의 긍정적인 면은현대 교회의 영성에 필요하다.)Ⅰ. 서 론A.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현대를 과학과 물질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불리 운다. 당연히 그 속에 사는 현대인들은 물질의 풍요속에 살아가지만 마음속에는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문화와 종교 속에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채우고자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방황 속에서는 결코 자유함도 평안도 누리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들을 영적인 공허함속에 다른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으며, 심하면 물질만능주의자로 만들어 가 인간상의 상실까지 가져오게 될 것이다.현 시대의 이러한 상황은 교회사에서 수도원운동이 나타나게 된 시대적 배경이 비슷함을 볼수 있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마다 수도원운동은 신앙의 갱신과 사회적 봉사와 전통의 보호와 선교적 사명까지 감당하였다. 즉, 수도원운동의 역사와 고찰은 교회사의 고찰만큼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초대교회사의 사막에서 그들만의 공동체를 구성하여 엄격한 규칙 속에서 생활하며 그들의 영성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한 것을 우린 교회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이들은 인간의 본질을 잃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온전히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말미암아 삶의 풍요를 누리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수도적인 삶 속의 자유함 그리고 구원을 향한 열망, 자신을 스스로 채워가는 방법들을 그들을 통해 배울 수 있다.1) 또한 중세시대에는 어려운 시기 때마다 수도원적 운동은 믿음의 사람들을 지키게 하였으며,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중세의 수도원은 암흑의 시기라고 불리운 시기에 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을 통해 나타난 수도원적 운동에 대한 복음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분석함으로 수도원운동의 현대에 까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수도원운동의 평가를 가지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분석하여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긍정적인 면을 적용하여 그리스도인초연한 모습을 하면서 그들의 이상을 이루려는 노력 가운데 마침내 교회를 탄생케 한 것이다. 기독교가 시작한 이래로 이와 같은 질문은 계속해서 진실되게 살아가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장소와 시간 그리고 누구에게든 있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1. 사회적 원인-기독교 공인 이전 시대의 “기독교 박해”이다. 기독교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심한 시기였다. 네로 황제로부터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에 이르기까지 소위 “10박해”로 당시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끊임없는 박새와 위협속에 살고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4)2. 사상적 원인- 수도원을 생성케 한 요인은 금욕주의와 신비주의의 영향이 있다. 기독교 이전 시대에 있었던 금욕주의나 또 초기 기독교 시대의 노스틱주의, 마니교에 있던 금욕주의와 수도원 제도는 주로 물질과 정신의 이원론적 사상에 근거를 둔 것이다.5)B. 중세교회사세속적이고 제도적인 시대의 사람들은 사회를 떠나 관상과 금욕주의에 의해서 개인적 거룩을 획득하기 위해 홀로 은둔생활을 하곤 했다. 외부적으로는 신민족의 이주로 인한 사회시림의 변동이다. 당시 나라의 세금이 가혹하고 병역이 흑심하여 시민의 생활을 괴로움에 시달리게 하였다. 계속되는 전쟁과 사회적 불안정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과 심적인 평안과 안정을 사랑하는 자들이 수도처로 모여들게 되었다.6) 로마 제국이 내부적으로 쇠퇴해가는 시기에, 수도원 운동은 많은 사람들에게 강력한 감명을 주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회를 버리고 수도원을 택했다. 중세 교회사에서의 수도원 운동은 인물을 통해 살펴보았다.1. 안토니그는 20세가 되면서 20년이 마쳐질 때 안토니는 몇몇 친구에 의해 그 요새에서 강제로 나오게 되었으며, 이와 함께 그의 삶의 활동적이고 공적인 부분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많은 사람이 그에게로 이끌려 왔으며 그 주위에 수도원들이 발생하였다. 그는 주후 250년경 중앙 이집트의 코마에서 출생하였다. 이집트의 부유한 그리스도인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안토니는 어려서부터 양정적인 요소는 수도사들의 의지의 실현이며, 초인적인 인내와 절제에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파코미우스의 경우도 그랬다. 파코미우스는 중앙 수도원에서 여러 수도원을 다스렸다. 또한 남자들의 수도원을 먼저 세우고 나중에 여자들의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는 수도사들의 육체 노동, 저녁의 예배, 금욕을 높이 평가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이웃들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오직 자신만의 영혼 구원만이 과제였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생각이 그들에게는 불가능했던 것이다. 파코미우스 수도원은 고도의 조직화된 집단이다.11)3. 베네딕트그의 지도를 받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모여든 사람들로 인하여 12명의 단위로 나누어 12개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베네딕트는 480년경에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의 시골 마을 누루시아에서 한 로마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 로마 상류사회 아들들이 공부하는 예 대로 14세, 15세경에 공부를 하기 위하여 큰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로마로 수학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로마의 타락하고 부패하고 부도덕함을 보고 그는 학문을 포기 하게 되는 결단을 내리게 되었다. 이 시기가 있었기에 그는 자신의 삶을 전적으로 헌신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기회가 되고 이후에 수도사로서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배움을 포기하고 수도사의 길을 선택한 것은 그의 생애와 영성 그리고 관계되어진 모든 것들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베네딕트가 로마를 떠난 후의 삶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전심전력을 하는 모습으로 일생을 일관되게 보내었다. 그야말로 3년간은 애굽의 금욕적인 수도자들의 생활모습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이 초기 수도생활의 단계에서 욕정을 제어하고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 경지에 달한 베네딕트의 명성은 하나님의 종으로 존경을 받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며 그에게로 모여 들었다. 그리고 가까운 비코바로수도원의 원장이 별세하므로 그곳의 원장으로 취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엄격한 지도에 불만을 품고 수도사들이 란시스 수도회 영성은 단순히 십자가를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가난을 경험하고 거기서 하나님의 내면으로부터 그의 긍휼한 지혜를 아는 것이다. 그 지혜는 예수께서 고난당하고 소외당한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에서 그의 아버지를 아신 것처럼 십자가의 가난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보나벤투어가 주님의 탄생에 대한 그의 두 번째 설교에서 “광대함이 작음으로, 강력함이 연약함으로, 명료함이 불명료함으로, 불멸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신성이 인성으로, 부가 가난으로 완화되는” 연합으로 설명한 것도 바로 이 지혜다. 작음과 인성과 가난은 아씨시의 프란시스의 부요한 유산이다. 이런 영성은 권력 지향적인 세상에서 철저한 권력 부인을 선포한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 대한 프란시스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이 온유함을 전하며 전쟁과 소외로 찢겨진 세상에서 무엇이 가능한지를 증언한다.14)5. 도미니크도미니크 수도회로서 알려져 있는 탁발전도 수도회의 설립자로서 스페인 출신 도밍고 드 구쯔만이라는 인물이다. 그는 1170년 카스틸 지방에서 출생하였다. 펠렌시아 지방의 학교들에서 상당한 수준의 인문과학과 신학을 수업하였는데, 그는 찍부터 스스로를 희생하는 정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겨우 21세의 나이에 그 지방에 기근이 엄습하자 애지중지하던 책들을 비롯하여 전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에는 그의 주교와 동반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 남부 프랑스 랑구에독 지방에 들어가 알비젠시안들을 개종시키는데 조력하였다. 그는 툴루즈에 머물면서 플루일 수도원을 설립하고, 가난한 소녀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수녀원들을 세워 이단사상을 주입하였던 알비젠시안들의 영향에 대비하였다. 그는 알비젠시안들과 마찬가지로 한 사회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교리에 달려 있음을 알고 있었다. 다행히도 동시대인 묘사한 젊은 도미니크의 모습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그는 구두도 샌달도 신지 못한 채 노변이나 촌락의 시가에서 전도하였으며, 마치 거지처럼 빵을 구걸하였다. 비록 사람들, 소공동체성, 가정교회적 성향등을 통하여 서술하는 한편, 이 작은 모임이 사랑의 공동체로서 즉, 기도, 말씀, 세례 그리고 성찬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공동체로서 선행과 구제를 추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일종의 내적 규범에 대해 서술하기도 하였다.경건주의 시대 (17-18세기)에 교권주의를 대치하며 민주주의를 권장하는 제 3형태를 따르는 교회 구조는 더욱 수용될 수 없었다. 1670년대에 와서는 개혁교회뿐만 아니라 루터파 교회 내에서도 ‘가정집회’와 ‘속회’들이 생겨났으며, 이러한 모임들 내에서는 공동기도와 성경읽기 그리고 그것에 관한 대화가 이루어졌는데 이러한 양상은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그렇게 쉽게 수용되거나 이해되어지지 않았다.각성주의 시대(18-19세기)에는 유럽대육에서 경건주의 물결이 일고 있을 즈음에 윤리폐기적이었던 영국의 교회와 사회에는 웨슬린의 영향이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웨슬리는 좁은 의미에서의 ‘신자들의 교회’를 세우려 하지 않았다. 그의 공동체에 가입하기 위한 조건은 다가오는 진노의 심판을 피하고자 하는 의지표명이었다. 독일내의 개신교 소공동체들과 모임들은 이미 17세기 후반부터 존재했다.현대에는 1963년 처음 생긴 가정교회들 중에는 네덜란드와 벨기에 설립된 스얄롬 단체가 있다. 그 단체의 구성원들은 여러 교회들 내에서 활동하는 그리스도인들이었다. 그들의 중심지는 우트레히트 근처의 오디크였다. 북미에서도 가정교회 운동이 매우 신속히 펴져나갔다. 현재 가정교회는 각 나라마다 존재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가정교회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거대한 숫자 때문만은 아니라 “문화혁명”(1966-1976) 당시 교회가 살아 남기 위해서였다.Ⅲ. 수도원 운동의 평가A. 긍정적인 평가1) 영적인 부분에서파코미우스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공동생활의 친교를 통해서 마음 안에 깊이 숨겨져 있는 자신의 진정한 동기들을 발견하고 자기의를 내세우는 교만이라는 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자연과 밀접한 생활을 한 단순한 사람들의 경우에, 이웃의 행복과
    사회과학| 2012.11.14| 14페이지| 2,500원| 조회(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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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사 5000년 서양편
    1부 고대문명1. 고대 오리엔트 : 가장 오래된 문명의 무대여러 민족이 번갈아 지배한 메소포타미아는 가장 오래된 문명의발상지로서 서아시아에서부터 이집트에 이르는 지역이다. 메소포타미아란 "두 강 사이의 땅"이란 뜻으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을 가리킨다. 기원전 3000여년경에 수메르인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하루 지역에 도시 국가를 건설했다. 수메르인은 청동기 채색토기, 원통형 인장등을 만들었다. 농경과 제사를 위해 천문학과 역법을 발전시켰다. 이 지역에 바빌로니아 왕국이 있었는데 여섯 번째 왕(기원전 1729-1686)에 국가를 건설했다. 그리고 '함무라비 법전'을 편찬했다. 282개조로 이루어졌고 신분제를 근거로 하고 있다.기원전 2000년경 중앙아시아의 인도유럽 어족계 유목민이 아리아인의 이동이 시작됐다. 이들은 바빌로니아왕국을 멸명시켰다.(기원전 1530년) 파라오의 제국인 이집트의 역사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시작하낟. 노모스를 통합한 통일국가를 형성하였으며 그리고 다섯왕조로 나뉜다. 고왕국 시대에 이집트는 고대국가 체제를 완성하였다. 파라오의 절대 권력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피라미드이다. 관개농업을 하였기 때문에 천문학과 측량술이 발전하였다. 그리고 산수와 기하학도 발전하였다. 이집트의 예술은 피라미드. 스핑크스, 신전등 거대함을 자랑한다. 동부지중해 연안에서는 셈계의 유목민들이 활동하였고 알파벳을 만들어 그리스인들에게 전파했다. 헤브라인은 기원전 1000년경 다윗왕과 솔로몬왕 때 가장 번영했다.네 나라로 나뉘어 대립하던 오리엔트를 다시 통일한 나라는 페르시아 고원에 있던 인도유럽 어족의 페르시아였다. 특히 다리우스 1세 때 대제국으로 발돋움하였다. 종교로는 광명신과 함흑신의 대립과 항쟁을 설교하는 조로아스터교를 믿었지만 다른 민족들의 종교도 인정하였다. 기원전 4세기전 각지의 총독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다가 그리스 세계를 통일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기원전 330년경에 정복되었다.2. 고대 그리스 : 폴리스의 민주정치지중해 동부했다. 마케도니아 왕국은 폴리스체지가 아닌 신흥 왕국으로서 기원전 4세기 후반 필리포스때 폴리스들을 타도하고 그리스 전체를 통일했다. 필리포스가 암살된후 왕위에 오른 알한 렉산드로스 대왕은 기원전 334년에 동방으로 페리스아 원정을 나서고 330년경에 페리시아를 정복하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폴리스 정치가 아니라 오리엔트적인 전제 정치를 폈기 때문에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동쪽으로 옮기워졌다. 그의 나이 33세에 죽고 그 후계자들 사이의 분쟁으로 제국이 3개로 나누어졌다. 미케도니아, 시리아, 이집트로 나뉜다. 그리고 이 시대를 헬레니즘 문화라 하며 보편적이고 세계시민적인 성격이 강했다. 자연법과 보편적인 정의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 국가에 대한 구상을 가진 스토아 학파의 펄학에서 잘 드러난다. 스토아학파의 철학에서 드러나듯 세계시민주의의 시대인 동시에 철저한 개인주의의 시대이기도 하다.3. 로마: 도시 국가에서 제국으로기원전 12세기경 인도 유럽어계의 고대 이탈리아인이 이탈리아 반도를 남하했다. 에트루리아인의 지배를 받았고 기원전 6세기 때 에트루리아의 왕을 추방하고 공화정을 세웠다. 이후 군대의 중심이 기병에서 평민의 중장 보명으로 바뀌면서 귀족과 평민 사이에 신분 투쟁이 시작되었다. 기원전 451년에는 12표범으로 알려진 성문법이 제정되었다. 이후 신분 투쟁은 리키니우스 법을 거쳐 호르첸시우스법까지 옴으로써 평민이 승리하였다. 하지만 곧 다시 노비레스라 부르는 새로운 지배층을 형성하였다. 기원전 396년 로마는 북쪽의 에트루리의 가장 중요한 도시인 베이이를 점령하였다. 로마의 식민권 정책 자체가 개방적이었다. 대외팽창으로 기원전 272년에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은 이후 로마가 지중해로 뻗어나가기 위한 발판이 되었다.기원전 3세기 무렴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로마와 해상무역으로 급속하게 발전해 북부아프리카 해안 지대와 시칠리아 서부 코르시카 사르데냐등 서부 지중해의 중심으로 떠오르면 가르타고가 충돌하였다. 3차에 결친 포에니 전쟁으로 계속 승리한 로마는 마케도아들 피핀이 왕이 되면서 그는 롬바르드족을 격파하여 교황에게 바쳤다.800년 카를ㄹ의 대관으로 오늘날 유럽이라고 하는 지역의 물리적, 정신적 경계가 그어졌다. 그것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 문화 요소와 게르만적 요소가 융합된 것이었으며, 그것을 밑받침했던 것이 기독교이다.5. 서유럽 봉건 사회의 발전카를 대제가 건설한 제국은 언어와 관습을 달리하는 여러 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지방 분권적인 경향이 강했다. 카를 대제의 계승자인 루이 경건왕이 죽은후 베르덩 조약과 메르센 조약으로 인해 이탈리아 동프랑크 서프랑크로 분열되었다. 이탈리아는 9세기 후반에 동프랑크는 10세기초에 카롤링거 왕조가 단절되었다. 10세기에는 서프랑크마저 단절되었고 선거왕제가 마련되어 대제후들의 느슨한 연합체가 되었다. 노르만 인의 활동과 10세기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침입한 마자르 인의 활동은 유럽에 커다른 위협이 되어TEk. 이들로 인해 사회의 봉건화를 축진한 외적인 자국제였다. 민족대이동이 시작된 것은 4세기 후반부터 8-9세기경에 결쳐 성립되었으며 11-13세기에 절정을 이룬다 봉건사회와 더불어 로마 카톨릭 교회는 서유럽 전체의 정신적 지도자로서의 권위를 누리게 되었다. 그 예로 '카노사의 굴욕'을 들수 있다.6. 비잔틴 제국 : 중세의 로마제국민족 대이동속에서 서로마는 몰락하였지만 동로마는 그후에도 1000년동안 이어진다. 비잔틴 제국은 로마 제국의 황제 정치와 중앙집권적인 행정기구를 계승했다. 그리고 그리스정교를 국교로 삼았다. 그리고 그리스어를 사용하였고 중세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는 1050년경부터 1300년경까지 유럽인들은 상당한 물질적 발전을 이루었으며, 새로운 교육제도와 사상, 문학과 예술을 창조했고, 국민 국가의 기초를 닦았다. 1050년경부터 1500년까지 중세인들은 심각한 경제 불황과 질병 그로 인한 사회 혼란이라는 일대위기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근대라는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출신의 고통이었을 따름이다. 한편 중세 시기에 로마 제국의 동부 지역에서는 비잔틴과 출해 그곳을 순례하는 기독교도를 박해하는 일이 있었다. 1차 십자군 운동은 1096년 초가을에 가슴에 붉은 십자가를 새기로 육로를 통해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 들어갔다. 다음해 안티오크를 점령한 십자군 본대는 제노바 함대의 지원을 받으면서 1099년 7월 예루살렘을 점령했다.이어 제 2차 십자군이 조직되었으나 별다른 성과는 이루지 못했다. 1190년에 여름 리처드 는 각지에 진정하다가 결국 살라딘과 협상해 순례자들의 자유로운 예루살렘 출입을 보장받고 귀국하고 말았다. 그후 4번에 걸쳐 십자군 운동이 있었는데 제 7차때 1291년 시리아의 지중해 연안에 있던 십자군 최후의 거점인 아크네가 함락됨으로써 기독교도는 서아시아에서 완전히 철수할 수에 없었다.9. 중세 도시의 발달11세기부터 유럽에서는 농업 기술상의 혁신이 이루어져 생산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중세 도시는 12-13세기경부터 상공업자가 모여들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유럽에는 지중해 상업권과 북유럽 상업권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북유럽 상업권의 중심은 폴랑드르 지방이고 폴랑드르의 경제적 번영은 이후 북부 독일 연안의 도시들과 영국으로 번져갔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도시들은 봉건 영주가 보기에 수입을 올리기 좋은 과세 대상이었다. 이렇게 자치권을 획득한 도시들은 그 다음 공통의 이익을 위해 동맹을 결성했다. 한편 중세 도시의 상인과 수공업자달은 공동의 이익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상인 길드를 조직해 활동했다. 화폐경제가 활성해 지자 장원결제가 붕괴되어고 결국 봉건제도를 뒤흔들었다. 또한 시민 세력의 증가로 인해 르네상스 등 근대화 운동이 탄생되었다.제 3부 근대로의 가교중세 말기에 유럽인들이 맞이한 심각한 경제 불황과 무시한 질병은 한 시대의 종말을 가리키는 징표였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도전이 없었다면 근대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 도전이란 르네상스. 종교개혁, 해외 팽창이다. 1350년경 이탈리아에서는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새로운 문화 운동이 등장했다. 르네상스인들은 중세의 종교적 사고에92년 8월 산타마리아호를 기함으로 나갔다. 이어 포루투칼도 나갔다. 이러한 항로개척은 고립되어 있던 문명들을 이어주며 교류하게 하였다.13. 종교개혁16세기 초반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의에 대해 심각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결국 로마 교황의 권위를 부정하며 로마 교회로부터 분리해 새로운 기독교 교회를 수립한 움직임을 말한다. 당시 독일은 다수의 영방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종교심도 높아 교황들이 관리하게 수월했다.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판매하였다. 루터는 이에 인간은 선행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신앙에 의해서만 구원받음을 설교하고 가르쳤다. 이러한 종교개혁은 점점 커져 사회적인 운동이 되었다. 이에 스위스에서 츠빙글리에 이어 칼빈까지 계속적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또한 영국에서는 헨리8세가 형의 아내와 이혼을 허가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거절함으로써 로마 교황과는 단절되고 칼빈 교리가 영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종교개혁을 인해 중세 귀족 중심의 종교에서 근대 시민 사회의 종료로 탈바꿈하였다.제 4부 근대 사회의 형성과 발전근대 초기는 절대주의 국가가 차지하고 있다. 절대주의 국가는 신분제도등 봉건적 잔재를 지고 있기는 했지만 관료제와 상비군등 근대국가의 요소들을 발전시켰으며, 대외팽창, 중상주의 정책등을 통해 국민 경제를 성장시켰다. 하지만 절대주의는 자본주의 경제 속에서 성장한 부르주아지에게 그 자리를 내어 주어야 했는데 프랑스 계몽 사상은 인간이 시성을 통해 자연의 한계를 극복하고 끊임없이 진보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그리고 이는 프랑스 혁명과 산업 혁명의 토대가 된다.과학혁명과 계몽 사상 근대로 가는 정신적 입구였다면 프랑스 혁명은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이라는 이중혁명은 근대 사회로 가는 대로였다. 여전히 미완성이긴 하지만 자유 평등, 우애라를 보편적인 이념과 산업주의는 인간 능력에 대한 확신과 그 실천이었다.14.절대주의의 시대 : 근대 사회로 가는 과도기태양왕 루이 14세는 절대 왕정의 절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중상주의 정책
    사회과학| 2012.11.14| 10페이지| 2,000원| 조회(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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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교회사 하
    제 6장 중세 초기의 선교와 교황제도1. 중세 초기 유럽의 복음화북유럽에 거주하던 야만인(고트족, 반달족, 프랑크족, 앵글족, 색슨족, 롬바르드족등은 350년경부터 무력을 앞세우며 서서히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단지 참략과 파과하는 명분속에 서서히 남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단지 참략과 파괴라는 명분속에 로마제국을 침공한 것이 아니라 제국의 문명과 문화의 혜택을 원하기도 하였다. 즉 410년 고트족이 로마 시를 점령함에 따라 제국의 이곳 저곳에 많은 독립 왕국들이 건설되었다. 이들의 침략을 통해 결국 서로마제국은 476년 멸망하게 된다. 역사적 상황은 오히려 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의 확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1) 야만인들의 침입과 서유럽의 교회1)북아프리카 지역407년 반달민족이 드디어 라인강을 건너 현재의 프랑스와 스페인 지역을 침공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북아프리카에 들어오기 이전에 이미 아리우스주의 형태의 기독교 사상을 받아 들였다. 북아프리카를 무력으로 정복한 반달족은 이 지역의 주민들에게 정통주의 교리를 버리고 아리우스주의를 따를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이 가지온 동방교회의 문화나 사상은 서방교회의 그것들에 오랫동안 익숙해진 북아프리카 주민들의 신앙을 다시 혼돈의 신앙을 다시 혼돈의 상태로 이끌어갔다.2)스폐인 왕국또다른 야만족 비스고트족이 378년경 발칸반도 일대를 휩쓸며 약탈을 일삼다가 아리우스파 기독교인들이었던 올필라스는 고트인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라고 소명을 느끼고 4세기 중반경부터 그들에게 선교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성경을 번역하였다. 589년 국왕리카드가 소집한 톨레드 회의를 통해서 니케아 정통신앙을 수용하도록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다.3)프랑스의 복음화5세기 초엽 야만인들이 대 이동을 하면서 이 지역에 두 개의 왕국을 세웠다. 남쪽에는 부르군디족이 부르군디 왕국을 북쪽에는 프랑크족이 프랑크 왕국을 건설하였다. 516년 지기시문드 왕이 정통 삼위일체 교리를 수용하면서 전 국민들이 그의 뒤를 따랐기 때문이다.4헝가리인들 역시 그들이 침략했던 게르만족의 문화와 신앙에 융화되기 시작하여 기독교 복음을 조금씩 접하였다. 즉 11세기경에는 이미 거의 모든 유럽의 국가과 민족이 기독교 복음으로 하나의 큰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2.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황 제도(1) 로마 교회와 감독의 우월성 주장감독들 중에서 로마교회의 감독이 특별한 권한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서방교회 안에서 일ㅉ기이 발생하였다.(2)로마 감독권의 강화와 교황 제도의 발흥에루살렘, 인디옥, 에베소, 고린도, 알렉산드리아,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로마 등 일곱교회를 들수 있다. 일곱교회의 균형은 330년 콘스탄틴 황제가 지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기면서 깨지기 시작했다. 로마 감독의 강력한 지도력은 영국과 북유럽에 복음이 전파되는 만큼 비례하여 확장되었다.(3) 그레고리 1세와 로마카톨릭 교회역사적으로 레오 1세에 의해 강조된 로마교회와 감독의 우월숸은 교황 그레고리 1세에 의해서 교회 안에 제도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그레고리는 뒤어난 정치적, 외교적 능력을 발휘하여 롬바르드족의 로마 침략을 효과적으로 대처하였다. 그레고리는 교회음악과 선교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졌다.그는 예배의 발전을 위해 예배순서를 정하였다. 또한 심위일체론과 기독론 등에 있어서는 니케아 회의로부터 칼케돈 회의에 이르는 정통적 신앙과 신학을 따랐다. 반면에 인간론과 구원론에 있어서는 전통적인 방향에서 이탈하여 반 펠라기우스적인 형태의 신앙을 갖고 있었다.(4) 로마 교황권의 절정프랑스에 캐롤링가라는 새로운 왕조 샤를마뉴가 등장한다. 교황의 권력이 높이 향상되지 이 교황권을 차지하려는 자들 간에 음모와 폭력 그리고 살해가 난무하기 시작하였다. 가노사의 귤욕 사건은 로마 교황권의 절정을 상징하며 황제 헨리4세와의 충돌이 원인이었다. 고국으로 돌아온 헨리는 세력을 규합하여 반대파를 평정하고 그의 추종자들과 더불어 클레멘트 3세라는 새로운 교황을 임명하였다. 첫째로 교황과 황제간의 독립적인 통치권이다. 둘째 황제가 교황보다 우위에4,000명이나 죽었다. '회색수사'라고 불리었다. 마지막으로 도미니크회는 1215년 스폐인 출신의 도미니크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곧 유럽으로 확장되었다. 여긴 소위 '이단'에 대항하였으녀 훗날 그들은 '이단'에 대한 가장 열렬한 박해자가 되었다. '탁발 수사들'이라고 불리었다. 그들은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수집한 구제물로 생계를 유지하였기 때문이다.4. 수도원 운동의 평가남녀를 무론하고 철저히 자기 희생적인 자들에 의해 설립되었다.선한면으로 얼마는 악한 면으로 영행을 미쳤다. 이때 토마스 아퀴나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은 수도원들 안에 세워진 것들이다. 수도원 주의는 고상한 삶으로서의 독신주의를 주창하는데 이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며 비성경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평화시에도 전쟁시에도 국가기 필요로 하는 선량한 남자들이 수도원들에게서 게으름을 피우면서 지냈다. 나중에 수도원 초기의 봉사 정신대신 부유한 수도원안에서의 안일한 생활과 결부된 개인구원 추구 현상이 일어났다. 16세기 종교개혁이 발발했을 때 북유럽에 있던 모든 수도원은 사람들의 낮은 평가로 인하여 억압을 받게 되고 수도원 내에 남아 있는 자들은 그들의 생활 유지를 위해 강제적으로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제 8장 16세기 종교개혁과 개혁가들1. 종교개혁의 배경콘스탄틴노플이 함락된 이후 신`구교간의 30년 전쟁이 종식되기까지 세인의 주목을 가장 크게 끄는 것은 종교개혁이다. 여러 요인들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르네상스이다 그리고 인쇄술의 발달은 종교개혁의 날개를 달아 준 것이다. 아울러 유럽에서는 민족주의 정신이 일고 있었다. 이러한 민족주의적 정신은 개혁 정신을 강하게 둿받침해 주었다.2. 독일의 종교개혁개혁과 독립정신이 온 유럽을 일깨우고 있을 동안에 첫불길은 독일에서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수사이며 교수로 있던 루터에 의해 일어났다. 그 당시 건축중이었던 로마의 베드로 성당을 완성하기 위해 많은 돈이 필요로 했던 교황 레오 10세는 텟절에게 독일로 가서 면죄부를 팔 것을 허락하였다. 루터는 텟절데 16세기 말이전에 러시아의 서쪽에 있는 모든 북유럽의 나라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결별하고 자체의 민족교회를 설립하였다.제 9장 경건주의.1. 경건주의가 발단된 나라(1) 영국경건주의의 기원은 영국의 청교도 운동에서 찾을수 있다. 다시 말해 16세기에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성행하고 있었던 청교도주의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퍼킨스를 들수 이TEk.(2) 네덜란드네덜란드에서는 개혁교회의 청교도적 교회 갱신 운동이 '나터레레포르마티'라는 이름으로 푸치우스를 중심으로 일어났다. 고케우스는 인간과 맺은 하나님의 동맹으로 이루어진 신약과 구약에 대하여 이미 칼빈에 의해 발전되었던 교리를 하나의 완결된 '동맹신학'으로 완성하였다. 네덜란드의 경건주의의 또 한 사람으로 라바디가 이TEk.(3) 독일경건주의의 시작을 독일로 보는 견해가 가장 지배적이다.라츨은 경건주의를 루터의 종교 개혁의 완성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완화된 제세례파이며 종교개혁의 좌파와 관련되어 있다. 그륀베르크는 전기적이고 지역사적인 연구를 통하여 리츨의 연구에 대해 측면으로 공격을 하였다. 루터와 영성주의는 루터교 정통주의가 개혁에 대한 의향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개혁에 대한 열정을 갖고 있었다고 본다. 그는 경건주의자 특히 슈페너와 프랑케는 루터에 접근해 있었다고 주장한다.2. 경건주의의 주요인물들요한 아른트, 필립 아곱 슈페너, 아우구스타 헤르만 프랑케, 친첸 도르프 백작, 고트프리트 아르놀트, 요한 알브레히브 벵엘, 프리드리히 크리스토프 외팅어등이 있다.제 10장 부흥운동부흥운동은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일어났다. 이 운동은 국가 교회 제도와 17.18세기의 통용한 세력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고 스스로 그 안에서 순응하려고 했던 계몽주의를 반박하였다. 이러한 경향들은 유럽의 프로테스탄트즘에서 부흥운동으로 합류되었다. 먼저 개인의 회심과 그리고 신앙에 대한 능동적인 증거에 대한 경건주의적 요청이 잇었다. 둘째 단계에서 부흥운동의 특징은 교회의 재발견과 형성에 관하여하였다. 가장 위대한 영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은 '북부의 거인'으로불리는 하만이다.그러나 하만은 성경적 종교 개혁적인 기독교와 공존하는 이 제 2 강조점에 있어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것이 어떤 의미를 지녔는가에 대한 연구는 아직 일치되어 있지 않다.4. 그외의 유럽덴마크에서는 목사로서 시인이자 역사가이며 교육자인 그룬트비히가 교회생활에 있어서의 자유였다. 이외에 스칸다나비아에서의 부흥운동은 무엇보다도 먼저 루터와 헤른후트에 의해 결정되었다. 하우게는 평신도 성교자로서 큰 영향을 끼쳤으며 국교로부터 분리를 거부했에도 불구하고 수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제 11장 근대 선교와 새로운 변화1. 산업혁명인류의 삶에 있어서 큰 전환기는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었다. 영국은 산업혁명뿐만 아니라 농업혁명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영국은 산업혁명을 가능하게 한 정치적 경제적 하부 구조를 갖고 있었다. 눈부신 기계의 발달로 인한 산업혁명은 면직류 산업에서 비롯되었따. 산업화는 1820년 빌기에와 프랑스로 확산되었고, 1830년대에는 미국과 독일로까지 뻗어가게 되었다. 자본가들은 영국에서 발전된 이론을 활용하여 자국의 산업발전에 기여하게 되었다.2. 산업혁명과 교회이러한 산업혁명은 19세기 교회가 당면한 최대의 도전이었다. 산업화는 급속한 인구의 증가를 초래하였다. 인구의 증가와 관련하여 빈민층도 증가하게 되었다. 공장 노동자의 조건은 불확실했다. 공장주들은 중산층으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상당수는 상인 가족으로서 유복한 는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초기에는 대부분 검소한 생활을 하였다. 변화가 온 것은 19세기 중반을 지나서였다. 새로운 산업주의자들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적절한 생활을 추구하고 그들의 사업에 수입을 투자하였다. 남녀 성별의 차이도 더욱 심화되었고 미혼의 여자들이나 가난한 가정의 기혼의 여자들은 직업을 가져야 했으나 여자들에게 좋은 직업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자기 이름으로 재산을 모을수 없었고 노임으로 받은 것도 남편의 재산이 점이다.
    사회과학| 2012.11.14| 10페이지| 2,000원| 조회(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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