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urGenealogie der Moral:Eine Streitschrift도덕의 계보- 2논문 13장~25장니체는 죄와 양심의 가책을 그가 제기한 계보학적 방법으로 살펴본다. 니체에 따르면, 양심은 인간 안에 있는 신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밖으로 배출될 수 없을 때 안으로 방향을 돌리는 잔인함의 본능이다. 죄와 양심, 그리고 그것에 기초한 형벌의 기원과 사회적 제도를 그는 계보학적 시각에서 해석한다.형벌은 지속성과 유동성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형벌은 죄지은 사람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만 한다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형벌의 역사를 훑어보면 ‘양심의 가책’과는 거리가 멀다. 형벌의 목적은 유동적이며, 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역사가 길다. 여기서 핵심은 형벌이 죄책감과 무관하다는 점인데, 심지어 오늘날에도 형벌은 죄책감과는 무관하다. 형벌은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단련해 냉혹하게 만들 뿐이다. 특정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피하고 싶은 느낌 이외에는 내적 고통 즉, 죄의식을 느끼게 하지 않는다. 즉, 형벌은 인간을 길들이는 것이지만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지는 않는다. (13~15)양심의 가책은 인간이 동물적 삶을 탈피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인간 내면의 야수적 본능의 발산이 제한되면서 밖으로 발산되지 않는 모든 본능이 내부로 향하게 됐다. 내부로 돌려진 폭력성은 투쟁과 극복의 대상이 되어 외부의 압제 아래 잠재적인 것이 된다. 이렇게 억눌리고 뒤로 물러나고 내면세계로 유폐되어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발산되어 드러나게 된 자유 본능(힘에의 의지)은 곧 양심의 가책의 기원이 된다. (16~18)신 개념의 계보양심의 가책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자기 자신에 대한 고통이라는 병이다. 그런데 이 병과 함께 무엇이 처음 세계에 나타나게 되었는가. 그것은 채무자와 채권자에 대한 사법적 관계, 다시 말하면 현존하는 사람들과 조상에 대한 관계이다. 현재의 세대는 앞선 세대, 특히 종족의 기초를 세운 최초의 세대에 대해 법률적인 의무를 진다. 여기에는 조상의 희생과 공헌에 의해서 종족이 존속하고 있으며, 희생과 공헌을 한 조상들에게 부채를 갖고 있다는 확신에 기반을 둔다.부채에는 필연적으로 상환이 따른다. 현존하는 사람들은 조상에 대한 희생, 축제, 예배당 그리고 특히 복종으로서 채무를 변제한다. 하지만 충분히 변제한 것일까 하는 의혹 때문에 엄청난 상환이 강요된다. 종족 자체의 힘이 커지는 것에 비례해 선조에 대한 부채감과 공포감은 커진다. 선조는 결국 필연적으로 하나의 신으로 변형된다. (19)신에 대한 채무 감정은 수천 년을 걸쳐 끊임없이 성장했고 신에 대한 감정이 성장, 고양되는 것에 따라 정비례하여 계속 성장했다.양심의 가책은 채무자를 향해 침투, 확장해 나갔고 종국에는 부채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과 더불어 속죄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 즉 보상이 불가능한 ‘영원한 벌’의 사상으로 전환된다.이러한 점에서 결국 이 사상은 채권자(신)를 향하게 된다. 즉, 죄를 안은 인간 앞에 보상을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신이 대리인이 된 것이다. 자신의 채무자에 대한 사랑에서, 채권자가 자신의 채무자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게 됐다.하지만 신의 사랑으로 인해 인간은 자유로워지지 않았다. 야수성의 출구가 막힌 인간은 억누르던 잔인함을 스스로에게 겨누기 시작한다. 즉, 양심의 가책을 고안해 냈던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지닌 인간은 자기 고문을 소름끼칠 정도의 냉혹함과 준엄함으로 몰고 가기 위해, 종교적 전제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신은 사랑을 베풀었으나 인간은 이로 인해 죄책감을 얻게 된다. (20~22)신을 바라보는 다른 방식이와 달리 신을 고안하는 데 더 고귀한 방식도 있다. 그리스인들이 그리스 신들을 대하던 태도인데, 이들의 신들에게는 자주적인 인간의 모습이 있다. 인간들은 어리석을 수는 있어도, 죄를 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양심의 가책’을 자신에게서 떼어놓고 그들의 영혼의 자유를 즐길 수 있게 오랫동안 그들의 신을 이용했다. 그들은 “아마도 신이 그를 우롱했음이 틀림없어”라며, 어느 정도까지 나쁜 일에서도 인간을 변호하는 데 신을 이용했다. 신은 악의 원인이었다. 신은 벌을 주는 것을 맡은 게 아니라 더 고귀한 것, 즉 죄를 맡은 것이었다. (23)
《성장과 그에 따른 빈곤과의 상관관계》I. 서론경제가 성장함에도 빈곤과 기아의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세계적인 부익부 빈익빈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하루 생활비가 1.25달러에 미치지 못 하는 절대 빈곤 인구는 약 12억 명에 이르고 일국 내의 일국 내의 상대적 빈곤 문제 또한 해소되지 않아 가난이 인간의 자존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II. 통념성장 옹호론자들은 전통적으로 성장의 결과가 필연적으로 빈자에게 돌아간다는 트리클다운효과(Trickle-Down)를 믿는다. 또한 쿠즈네츠(kuznetz)가 제시한 역U자 가설을 주장하며, 경제발전 초기에는 소득분배가 악화되지만 나중에는 개선된다고 주장한다.반면 성장 반대론자들은 소득과 부의 분포를 중시하므로 불평등도의 감소가 빈곤의 퇴치에 필요하고 성장은 빈곤을 더 악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이들은 ‘성장과 분배가 일정한 관계를 갖지 않는다’며, 아프리카, 남미, 동유럽 등의 사례를 들어 이 국가들의 성장기조 유지가 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 했음을 지적한다.빈곤의 감소는 성장과 분배에 모두 의존하므로 양자의 주장은 모두 부분적으로 타당하다.III. 성장과 분배의 조화- 빈곤감소적 성장Bourguignon의 연구와 실증적인 연구 사례를 통해서 접근해 보면 장기적으로 빈곤의 퇴치는 기본적으로 지속된 성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소득재분배는 빈곤의 감소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데, 지속적인 소득재분배는 ‘분배효과’를 통해 빈곤을 감소시키며, 빈곤의 성장 탄력성을 증가시켜 주어진 경제 성장률 하에서 빈곤감소 속도를 증가시킨다.또한 Ravallion은 소득불평등도가 높은 나라는 빈곤이 느리게 감소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반대로 소득불평등도가 낮은 나라는 빈곤을 빨리 감소시키기 위해서 통상적으로 높은 성장률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제시했다.즉, 성장으로 불평등이 발생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성장은 결국 저소득층의 고용 창출 기회를 확대시켜 성장을 다시 가져옴과 동시에 성장은 빈곤의 문제를 가져온다. 때문에 성장에 따른 빈곤의 감소수준은 사회의 소득 재분배가 얼마나 형평성 있게 이뤄지는가에 따라 결정되며,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불평등은 결국 빈곤의 문제와 인과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적 형평성 수준이 경제 성장을 결정하게 된다.(경제 성장이 빈곤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성장이 소득을 증가시키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수에게 균등하게 성장의 혜택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성장은 소득증가를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불균등을 유발하고, 또 다른 상대적 박탈감과 절대적 빈곤을 유발하고 있다. 그렇다고 균등한 분배가 가장 이상적이라는 명제도 성립하기 어렵다. 형평을 강조했던 사회주의의 실험이 이 명제를 대변해 주고 있다. 효율을 강조한 시장경제는 높은 성장을 이룩한 반면, 효율보다 형평을 더 강조했던 경제체제는 결국 분배의 기반마저 붕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현 시점에서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통해 빈곤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빈곤감소적 성장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빈곤감소적 성장이란 빈곤자의 소득증가가 비 빈곤자의 소득증가보다 높아야 한다는, 즉 소득분배의 개선을 동반하는 상대적인 정의(relative definition)를 의미한다.
《EBS社 『기상 대이변- 환경 재앙을 막아라』를 감상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 들어왔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 지구를 살리자’는 주장을 자주 들었지만 대학에 재학 중인 현재까지도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지금껏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면 ‘생태계의 변화가 오고, 물이 부족해진다는 것’ 정도의 단편적인 정보 외에는 알고 있는 지식이 없었고, 또 그것에 대해 지식을 습득할 기회가 없었다. 생태학이 아닌 사회과학을 전공한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환경의 변화가 ‘나’와 큰 관계가 없을 것 이라는 무지함도 한 몫 했다고 생각한다.사실 수업시간에 시청했던 다큐멘터리는 내게 가히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일본의 슈퍼컴퓨터인 ‘지구 시뮬레이터’로 100년 뒤 세계의 기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또 그것이 인간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의 전 의장인 로버트 왓슨 박사의 진행으로 다루고 있는데, 그 심각성에 대해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이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100년 뒤 아마존 열대우림은 사막으로 변하고, 열대 풍토병으로만 알려졌던 뎅기열이 고위도 지방으로 퍼져나간다. 또한 북극은 사라지며, 이로 인해 해수면의 상승과 해안침식이 이뤄지고 이 때문에 해안가 마을 주민들은 집을 잃을 위험에 처하게 된다.다큐멘터리에서 경고하는 100여년 뒤의 지구 모습을 보면서 끔찍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떠올랐고 과연 지구 온난화를 막는 방법은 없을 지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원론적인 이야기일 수는 있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자원을 재활용하고, 산림자원을 가꾸는 일’에 ‘나부터 노력하는’ 자세를 갖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또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의 다음 세대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후세들이 거주하게 될 땅, 환경을 생각하며, 이 문제들의 해결 방안을 그리고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합의점을 도출해 보자는 것이다. 누구도 내 자녀가 ‘불편한 환경’에서 거주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조상이 물려준 좋은 환경에서 거주했듯, 우리 후손들도 훌륭한 삶의 터전을 가꿔가며 살아 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기상 대이변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KBS社 환경스페셜『긴급추적 바람의 재앙 황사』를 감상하고 》매년 봄이면 ‘황사’관련 기사는 신문이나 뉴스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원인을 분석한 기사부터 유해성, 피해 예방 방법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그런데 지금껏 황사 현상이 심할 때면 마스크를 찾아 쓰고 나갈 외출하기만 했지, 왜 황사 현상이 발생하는지 얼마나 유해한지, 또 어디서 오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번 강의를 듣고 또 본 영상물을 시청하면서 ‘황사’에 대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나아가 ‘환경’에 보다 더 관심을 갖게 됐다.환경 관련 전문 지식이 없는 필자는 황사를 “하늘 색깔이 황갈색으로 변하고 흙먼지가 태양빛을 차단해 시계가 나빠지며, 먼지로 인해 목이 칼칼하고 매캐한 불청객”으로 묘사했는데, 좀더 전문적으로 기술하자면 황사는 "중국대륙이 봄철에 건조해지면서 북부 고비사막과 타클라마칸 사막, 황하 상류지대의 흙먼지가 강한 상승기류를 타고 3∼5km 상공으로 올라가 초속 30m 정도의 편서풍을 타고 우리나라까지 날아오는 현상"을 말한다.사실 지금까지 ‘황사’를 일종의 자연현상으로만 생각해 왔었는데, 본 영상물을 시청하면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황사도 결국 인간이 만든 재해라는 것을. 개발에 대한 인간의 욕심은 자연의 땅을 가만히 두지 않아, 끊임없이 벌목과 개간 사업을 했고, 사막마저 농지로 개간을 했는데, 이는 사막화를 가속화 시켰고 이는 평화로운 마을을 재앙으로 몰아넣고, 또 수천km 떨어진 국가에도 피해를 입혀 국가 간의 감정까지 불편하게 만드는 모래 폭풍의 핵이 됐다.영상물에 따르면 황사는 “지구로 유입되는 태양광을 반사해 지구 온난화를 억제하고, 황사에 포함된 석회 마그네슘 칼슘 등의 알칼리 성분은 대기 중의 산성 물질을 중화시켜 산성비를 억제하고 토양과 호수의 산성화를 방지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한다. 하지만, 긍정적인 역할보다는 부정적인 역할을 훨씬 많이 한다. 바다를 건너온 황사의 미세먼지는 인간에게 갖가지 질병을 일으킨다. 기관지염, 감기, 천식 등 호흡기 질환과 심혈관 질환, 눈병뿐만 아니라 세포막과 적혈구를 파괴하고 유전자에도 손상을 입힌다. 뿐만 아니라 미세먼지로 인해 반도체 항공기 등 정밀기기의 고장발생률을 크게 높이며, 실리콘 알루미늄 구리 카드뮴 납 등 황사 성분이 대기도 오염시키고 있다고 하니, ‘엄청난 재앙’이 아닐 수 없다.
《 KBS 환경스페셜- 『후쿠시마 원전…』을 감상하고 》2011년 3월, 일본에서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발생했다. 진도 9.0의 지진, 그리고 뒤이어 찾아온 쓰나미는 무려 38m나 됐다. 이 자연 재해도 ‘재앙’에 가까웠지만, 이 재해로 말미암아 ‘진짜 대재앙’이 찾아왔다. 후쿠시마 원전에서에서 방사성 물질이 누출 된 것이다. 누출된 방사성 물질은 원전 일대의 집과 땅을 뒤덮어 사망 15,854명, 실종 3,276명의 인명피해를 입혔고 15만 명의 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다. 뿐만 아니라 피해액만 17조엔, 우리 돈으로 약 200조원에 달하며, 앞으로 10여 년간 복구에 필요한 돈은 23조엔, 우리 돈 약 26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액수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게다가 이 사건으로 일본 원전의 안전신화는 무너졌고, 일본의 산업이 흔들렸으며, 최고의 안전을 자랑하던 일본 식품마저도 불신을 당하고 있다.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대지진으로 인해 전력공급이 중단 돼 원전의 냉각수장치가 고장을 일으키며 시작됐다. 원자력발전소는 핵분열 과정과 발전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열이 발생하는데, 이 열을 식히기 위해서는 냉각수가 필요하다. 그런데, 전기 공급이 중단되면서 냉각수를 공급할 수 없게 됐고, 이로 인해 원전 내부가 고온으로 인해 팽창해 폭발을 일으키면서, 수소가 폭발해 노심용해현상이 발생함에 따라 결국 방사능이 유출돼 심각한 원자력 사고로 이어졌다.방사능이 외부로 유출되면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가는데 퍼지는 동안 땅과 목초, 농작물을 오염시키고 배수를 통해 방출된 방사능은 바닷물과 강물을 오염시켜 결국 인간이 먹는 식수까지 오염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은 세포나 유전자의 변형이 생겨 DNA가 파괴되게 되고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이 출산을 하면, 기형아를 낳을 확률이 급격히 높아진다. 게다가 이미 변형된 세포와 유전자를 복구시킬 방법은 현재까지 없다. 방사능에 노출되면, 수년 내지 수십 년 잠복기를 거쳐 암이나 백내장, 불임, 피부염 등이 유발될 가능성도 있다.사실 본인은 이 영상을 보기 전까지 원자력 발전에 무척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같이 석유가 생산되지 않는 나라의 경우 석유사용을 줄이고 원자력발전을 이용하면, 어느 정도 에너지 자립을 이뤄낼 수 있고, 이것은 국력 신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즉, 석유파동이나 에너지 무기화에 대비할 수 있는 최고의 에너지원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게다가 풍력, 태양열과 같은 대체 에너지를 제외하고 그 어떤 에너지보다 CO2 배출량이 적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고만 생각을 해왔지 그 위험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