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동국정운,그리고 한글 창제 반대 상소에 대하여1. 정리ㄱ. 동국정운 서문(1) 동국정운과 훈민정음(2) 동국정운 서문에서 증언한 15세기 한자음(3) 동국정운 편찬과정에서 바로 잡으려고 한 것(4) 이영보래ㄴ. 최만리의 반대상소(1) 한글창제 반대상소에 대하여(2) 한글창제 반대상소에 대한 다른 시각2. 문제【참고문헌】제출자 :제출일 :훈민정음과 중세한국어1. 정리ㄱ. 동국정운 서문(1) 동국정운과 훈민정음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창제한 뒤 당시의 우리나라 전승 한자음이 혼란되어 있었으므로 이것을 바로 잡아 통일된 표준음을 정하려는 목적에서 당시의 전승 한자음을 바탕으로 하되, 중국 운학의 체계에 맞추어 정리하기 시작하여, 세종 29년(1447) 9월 하한에 「동국정운」을 완성시키고) 그 다음해인 세종 30년 10월 17일에는 이를 각도와 성균관 및 사부학당에 반사하였다.한글 창제와 전승 한국한자음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한글 창제과정에서 우선 15세기 전승 한국한자음 음소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서 15세기 중세국어의 음소를 분석하여 한글 창제로 나아간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이러한 과정에서 15세기 전승 한국한자음은 중국음운학, 특히 『고금운회거요』의 체계로 보아 상당히 혼란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글 창제와 함께 한국한자음의 표준이 될 『동국정운』 편찬 사업이 진행되었다. 『동국정운』편찬은 한글 창제와 표리 일체의 관계에 있었고, 한글의 23자모와 『동국정운』의 23자모는 완전히 같았다.『동국정운』 편찬은 한글 창제와 같은 시기인 1444년 초에는 이미 상당히 진척되어 있었다. 『동국정운』편찬은 먼저 『고금운회거요』의 수록자 가운데 「자모운」 소속자를 그대로 옮겨 싣고 이에 대한 한글 주음부터 시작하여, 1447년 9월에 6권으로 편찬 완료하고, 1448년 10월에 간행되었다. 체계는 평·상·거·입 4성, 23자모, 91운이며, 편찬자는 『훈민정음해례본』편찬자들과 거의 같은 최항·박팽년·신숙주·성삼문·강희안·이개·이현로·조변안이지 않은 글자이다.이와 같이 「동국정운」은 그 당시 실제 통용되던 현실음인 국어 한자음을 많이 살리기는 했으나, 그 중에는 상당히 많은 점을 바로잡으려고 했기 때문에, 「세종실록」에 의하면 세종대왕이 이 책을 성균관 등에 반사할 때에 이미 “우리나라의 인민들이 속운을 익혀서 익숙하게 된 지가 오래 되었으므로, 갑자기 고칠 수 없으니, 억지로 가르치지 말고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의사에 따라 하게 하라”는 훈시를 내렸던 것이다.이 「동국정운」은 한자음이 좀 인위적으로 정리되었기 때문에 전승음, 곧 속음과 거리가 있어 얼마 뒤인 15세기 말부터는 사용되지 않게 되었지만 당시 한자음의 음운체계나 훈민정음 음운체계 연구에 있어서 기본 자료가 됨은 물론 운의 대표자음을 표기한 한글 글자는 「훈민정음 원본」의 한글 자형과 완전한 일치를 보이고 있어서 한글 자형의 변천을 살피는데도 중요한 문헌이다.)(2) 동국정운 서문에서 증언한 15세기 한국한자음『동국정운』편찬에 참여하였던 학자들은, 15세기 한국한자음이 한어의 전통적인 자음체계, 특히 『고금운회거요』의 음계와 다른 모습이, 큰 혼란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를 ‘와(訛)’나 ‘구습와류(舊習訛謬)’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이러한 ‘혼란 상태’라는 설명이 한국한자음의 역사를 말해 주는 중대한 증언이 될 수도 있다.『동국정운』 서문에서, 15세기 한국한자음의 상황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① 자모의 변화 : 원래 중국에서 kh-음으로 발음되던 자음이 k-음으로 발음되고 있다.② 7음의 변화 : 원래 중국에서 kh-음으로 발음되던 자음이 h-음으로 발음되고 있는 것도 있다.③ 국어에서는 kh-음(ㅋ음)을 많이 쓰고 있는데, 한자음에서는 한글자만을 kh-음으로 발음하고 있으니, 가장 우스운 일이다.④ 청탁의 변화 : 국어에서는 전탁음을 쓰고 있는데, 한자음에는 전탁음이 없다.⑤ ‘勿’ 등 여러 운은 마땅히 설내입성운미인 ‘ㄷ’(-t)으로 종성을 삼아야 하는데, 일반 세간에서는 ‘ㄹ’(-l)로 발음하고 서문에서 “꼭 중국의 36자모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라고 하였듯이, 『동국정운』의 자모체계는 훈민정음과 똑같은 23자모체계였다.(3) 동국정운 편찬 과정에서 바로잡으려고 한 것① 자모지변중국 중고음 성모 →15세기 한국 한자음 성모 →동국정운 성모ㅋ(k‘-)見 ㄱ(k-)ㅋ(k'-)看 간(kan)칸(k'an)? 감(kam)캄(k'am)勸 권(ku?n)퀀(k'u?n)犬 견(ki?n)?(k'iui?n)② 칠음지변중국 중고음 성모 →15세기 한국 한자음 성모 →동국정운 성모ㅋ(k‘-)ㅎ(h-)ㅋ(k'-)?(h?i)캐(k'ai)한(han)칸(k'an)합(hap)캅(k'ap)함(ham)캄(k'am)③ 청탁지변중국 중고음 성모 →15세기 한국 한자음 성모 →동국정운 성모g-乾 건(k?n)껀(k??n)d-壇 단(tan)딴(t?an)b-盤 반(pan)빤(p?an)이러한 개정음을 ‘동국정운식 한자음’ 또는 ‘동국정운식 개신음’이라고 하거니와, 이 한자음은 1447년 이후에 간행된 불교관계 서적의 한자음 표기에 철저히 사용되었다. 유교 관계 서적은 아직 간행되지 않았으므로 쓰이지 않았고, 1481년에 간행된 『두시언해』에서도 쓰이지 않았다.불교 관계 서적도 1463년에 간행된 『법화경언해』의 한자음 표기부터 차츰 쓰이지 않다가, 1496년에 간행된 『육조법보단경언해』와 『진언권공』에서는 완전히 전승 한국한자음만을 한글로 주음했었다.(4)이영보래‘동국정운식 한자음’에서 가장 두드러진 표기 방식은 설내입성 운미 -ㄷ(-t)의 처리였다.1446년 9월에 편찬 완료된 『훈민정음언해본』「종성해」에서는 종성-ㄷ을 -ㄹ로 발음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반설음은 ‘ㄹ’은 마땅히 국어에 쓸 것이며, 한자음에 써서는 안 된다. 입성음의 종성으로 ‘ㄷ’음을 써야 하는데 일반 사람들의 습관으로 ‘ㄹ’음으로 읽고 있는 것들이 있다. ‘ㄷ’음이 변해서 가볍게 된 것이다. 만일에 ‘ㄹ’음을 종성으로 쓴다면 그 소리가 느려져서 입성이 될 수 없다.)이것이 1년 뒤에 편찬 완료된 ‘동국정운식 한자음’에서는 다진양대군 유, 안평대군 용으로 하여금 그 일을 관장하게 하였는데, 모든 일을 상감의 재가를 받았다. 상을 거듭 내려주고 공급을 후하게 하였다.그러나 상소문의 내용은, 1446년 9월에 완성된 『훈민정음』의 뒤에 붙은 정인지 서문 내용을 일일이 반박한 듯한 항목이 상당히 많다. 이것으로 보면, 비록 『세종실록』에 ‘상소문’은 세종 26년 2월에 실려 있고, 정인지 서문은 세종 28년 9월에 실려 있어서 전후가 뒤바뀌어 게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1443년에 완성된 새 문자 훈민정음의 창제 과정에서 여러 문신들 사이에서 상당히 논의가 거듭되었었고, 이러한 논의를 정리한 것이 ‘상소문’과 ‘서문’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상소문’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1. 한자의 구성 원리에 어긋나는 표음문자인 언문을 창제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지성사대’ 정신에 어긋난다. 혹시 말하기를, 언문은 모두 옛 글자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 새 글자가 아니라고 한다면, 글자의 형상은 비록 옛날의 고전 글자와 비슷하나 소리로써 글자를 합하는 것은 모두 옛것에 어긋나는 일이며, 실로 근거가 없는 일이다. 만일 중국에라도 흘러 들어가서 혹시라도 비난하여 말하는 자가 있다면, 어찌 대국을 섬기고 중화를 사모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겠는가.2. 중국 주변의 이적들인 몽골·서하·여진·일본·서번들이 문자를 만든 일과 마찬가지로 고유문자를 만들어 중국을 버리고 이적과 같이 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예부터 9개 지역으로 나누인 중국 안에서 기후나 지리가 비록 다르더라도 아직 방언으로 인해서 따로 글자를 만든 일이 없고, 오직 몽골·서하·여진·일본·서번과 같은 무리들만이 각각 제 글자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모두 오랑캐들만의 일이라, 말할 가치도 없다.3. 신라 이후로 이두를 써 오고 있었으나 아무런 불편이 없었고 오히려 이두 사용이 학문 발전에 도움을 주었는데, 이제부터 언문만으로 관리가 될 수 있다면 한자 공부에 힘쓰지 않아 성리학 연구가 쇠퇴할 것이다.신라 때 설총이 만든 이두가, 비록 거칠고이두를 아는 사람이 있어서, 자기가 공술한 내용을 직접 읽어보고 그 내용에 사실과 다른 점을 발견하더라도, 매를 이기지 못하여 억울하게 승복하는 일이 많으니, 이로 보아 공술한 글의 뜻을 몰라서 억울함을 당하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만일에 그러하다면 비록 언문을 쓴다고 하더라도 이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로써, 죄인을 공정하게, 또는 공정치 않게 다스리는 일이 옥리의 자질 여하에 달린 것이지, 말과 글이 일치하거나 일치하지 않거나 하는 데 달려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5. 만약 언문은 할 수 없어서 만드는 것이라 한다면, 이것은 풍속을 바꾸는 큰 일이므로 마땅히 재상으로부터 아래로는 백료에 이르기까지 함께 의논하고 모두 옳다 하여도 오히려 다시 세 번을 생각하고 중국에 부끄러움이 없고 의혹됨이 없은 후에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러 사람의 의논을 채택하지도 않고 갑자기 10여 인으로 하여금 가르쳐 익히게 하며, 가볍게 옛사람이 이룩한 운서를 고치고 근거 없는 언문을 급하게 널리 반포하려 하니 후세에 공론이 어떠하겠느냐.6. 아직은 성학에 몰두하여 그 이르지 못한 것을 궁구해야 하는 동궁이 언문이 비록 유익하다 이를지라도 만에 하나도 정치하는 도리에는 유익됨이 없는데, 정신을 연마하고 사려를 허비하고 있으니 동궁의 학업에 손실된다.이를 간단히 요약하면, “①우리 글자를 창작한 것은 사대 모화의 도리에 부끄러운 일이다. ②우리 글자를 만들어 쓰는 것은 몽고 등과 같이 오랑캐가 되려는 일이다. ③학문에 도움이 안되는 쉬운 언문을 배움으로써 입신한다면 어렵게 한문을 배울 사람이 없어질 것이다. ④억울한 죄를 없애 공평하게 한다 하나, 그것은 옥리의 자질 여하게 달려있는 것이다. ⑤널리 여러 사람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⑥동궁이 언문과 같은 것에 머리를 써 성학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이러한 여섯 가지 주장 가운데 정인지의 서문 내용을 반박한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정인지의 서문에서 이 상소문을 통해서 반박당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아래와 같다.① 상
훈민정음과 중세한국어『응골방』에 대하여1. 저자와 생애(생몰년, 본관, 자, 호, 부모, 과거 및 벼슬, 주요 저술)이조년은 고려시대의 문신으로 1269년(원종 10)에 태어나 1343년(충혜왕 복위 4)에 죽었다. 자 원로(元老), 호 매운당(梅雲堂), 백화헌(百花軒), 시호 문열(文烈)이며, 본관은 성주(星州)로 농서군공(?西郡公) 장경(長庚)의 아들이다.1294년(충렬왕 20) 향공진사(鄕貢進士)로 문과에 급제하여 안남서기(安南書記)에 보직되고, 예빈내급사(禮賓內給事)를 거쳐 지합주사(知陜州事)·비서랑(秘書?) 등을 지냈다.1306년 비서승으로 왕을 호종하여 원나라에 갔을 때 왕유소(王惟紹)·송방영(宋邦英) 등이 충선왕을 모함하여 충렬왕 부자를 이간시키고 서흥후 전(瑞興侯琠)으로 하여금 충렬왕의 후계를 삼으려 획책하다가 충선왕의 세력이 커지자 처벌된 일이 있었다. 이 때 어느 파에도 가담하지 않고 최진(崔晉)과 단지 충렬왕을 보필하고 있었으나 그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 그 뒤 귀양에서 풀려나와 13년간 고향에서 은거하면서 한번도 자신의 무죄를 호소하지 않았다.당시 충숙왕은 5년간이나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었기 때문에 심양왕 고(瀋陽王暠)가 왕위 찬탈을 도모하자 홀로 원나라에 들어가서 중서성(中書省)에 그 부당함을 상소하여 이러한 음모를 분쇄하였다. 1325년(충숙왕 12) 왕이 귀국하자 감찰장령으로 발탁되고, 전리총랑(典理摠?)으로 관동지방을 안무(按撫)하였다.1327년 충숙왕이 원도(元都)에 있을 때 왕을 도운 공로로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로서 이등공신이 되었으며, 이어 군부판서(軍簿判書)에 승진하였다. 이 때 충숙왕은 심왕당(瀋王黨)의 끊임없는 모략으로 왕위를 심왕에게 선양(禪讓)하려 하였으나 한종유(韓宗愈) 등과 함께 극력 반대하여 이를 저지시켰다.1330년 충혜왕이 즉위하자 장령이 되었고, 그 뒤 여러 번 충혜왕을 따라 원나라에 내왕하였다. 1339년 충혜왕이 복위하자 그 이듬해 정당문학에 승진하였고, 예문관대제학이 되어 성산군(星山君)에 봉해졌다.충혜왕의 음탕함을 여러 번 간하였으나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이듬해에 사직하였다. 1342년(충혜왕 복위 3) 성근익찬경절공신(誠勤翊贊勁節功臣)에 녹권되고 벽상(壁上)에 도형(圖形)되었다. 시문에 뛰어났으며, 시로 「다정가(多情歌)」 한 수가 남아 있는데, 『해동가요(海東歌謠)』, 『청구영언(靑丘永言)』,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에 실려 있다. 또한 매의 사육서인 『응골방(應?方)』이 필사본 1책으로 남아 있다.그가 남긴 시조 「다정가」는 아래와 같다.이화에 월백하고(다정가)이조년(李兆年)이화(梨花)에 월백(月白) 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제일지춘심(一枝春心)을 자규(子規)야 알랴마는다정(多情)도 병(病)인 양하야 잠 못 들어 하노라.2. 책의 서지-간행시기/간행장소 : 고려 충혜왕(忠惠王) 때 / 미상-판본: 필사본.-책의 크기 : 11.9cm×22.1cm.-책의 이외 서지 특징 : 1권으로 구성되어있고, 현존본으로는 안평대군의 『고본 응골방』(1444)이 가장 오래인데, 학교 도서관에 고서가 보관된 문고에 소장되어 있었다.-소장처 :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현대 영인 시기, 출판사1990년 아세아문화사에서 『고본 응골방 외2종』이라는 영인본이 나왔다. 294p에 23cm의 책으로 저자는 이우성인데 온라인 상에서 판매하는 서점은 없다. 경성대학교 도서관과 부산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우리학교 도서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같은 년도에 마찬가지로 아세아문화사에서 출판된 『응골방』이 있다.『교주 국역 응골방』이라고 하여 1994년 성주이씨종중에서 초판을 냈는데 판매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장 최근에는 2008년, 공주대학교출판부에서 나온 『하늘의 제왕 맹금과 매사냥』이라는 책에서 부록으로 응골방이 한역되어 실렸으나 국어학적인 책이 아니라 ‘매’에 관한 책이다. 한국의학대계나 한국과학기술사 자료대계 등에서 응골방과 기타 다른 마서적, 의서적들의 영인본이나 연구가 많이 나타났으나 국어학적, 국어사적인 자료에서는 많이 나타나지 않았다.3. 책의 내용응골방은 고려 후기 이조년이 엮은 매에 관한 기술서, 사육서이다.내용은 응색(鷹色) ·논형체(論形體) ·논취탁(論?啄) ·사식(飼食) ·양순(養馴) ·교습(敎習) ·조방후잡리식(調方後雜理式) ·평안기후(平安氣候) ·불안지후부치료방(不安之候附治療方) ·역응상복법(疫鷹上服法) ·제약법(劑藥法) 및 부시(賦詩) 등으로, 매를 사육하여 매사냥을 할 때까지의 순련법(馴練法)과 그 엽세(獵勢)의 용자(勇姿)를 노래한 책이다.정확한 찬술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 방면의 책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모두 2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서론·목차·발문 등은 없고 내용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은 응색편(鷹色篇)·응부(鷹賦)와 시(詩), 면천거한진사장(沔川居韓進士狀)으로 나눌 수 있다.응색편은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요 부분으로 15개 분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논형체(論形體)에서는 대체적인 형체를 논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몸은 크되 머리는 계란같이 작고 둥글며, 눈은 크고 둥글어야 하며, 가슴은 관광(寬廣)하고 허리 뒷부분은 협첨(狹尖)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논자탁(論?啄)은 입부리에 대한 것으로, 입부리는 청황(靑黃) 2종이 있는데 그 가운데 길이가 길며 청색이 도는 것이 좋다고 되어 있다. 논족(論足)에서는 족색(足色)은 청황 중 청색이 좋고, 큰 매는 발이 작고 다리가 짧으며, 용의 비늘 같은 비늘이 있되 발톱은 작고 곧아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논우색(論羽色)에서는 깃털의 빛은 담적수(淡赤水:엷은 전색)한 것이 성질이 완구(完久:완전하여 오래 견딤)하다고 되어 있으며, 논우명(論羽名)에서는 일왈고고(一曰高古), 이왈어을지(二曰於乙只) 하는 식으로 깃의 이름을 들고 이에 대한 풀이를 하고 있다.논천질(論天質)에서는 매의 천성과 굶주릴 때의 성상변화 등을 논하고, 사식(飼食)에서는 매의 먹이로는 참새·쥐·메추리·비둘기새끼·꿩·닭·멧돼지·노루·토끼 등이 적당하며, 사슴·수탉·고양이 등은 적당하지 않다고 논하고 있다.양순(養馴)에서는 매의 조순(調馴)에 관하여 기록하고, 교습(敎習)에서는 매의 종류에 따라서 교습용으로 쓰는 사식의 종류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황응(黃鷹)은 꿩과 오리, 각응(角鷹)은 꿩과 토끼 등이 좋다고 기록되어 있다. 조방후잡리식(調放後雜理式)에서는 조련시킨 뒤의 여러 가지 관리방식을 들고 있으며, 이어서 병과 치료방식을 들고, 마른 매를 살찌게 하는 법(瘦鷹上肥法)과 각종 고사(故事)를 들고 있다.또, 각종 제약법(劑藥法)을 기록한 뒤 육언(六言) 또는 사언의 응부와 오언의 방응시(放鷹詩)·양응시(養鷹詩)·화응시(畵鷹詩) 등이 수구 내지 수십구씩 수록되어 있다. 끝에는 초서체의 <면천거한진사장>이 있는데, 이태백(李太白)·두자미(杜子美) 등이 거론되는 이두문으로 되어 있어 해독이 어려우나 매와는 관련이 없는 문학적 기록을 비망록식으로 뒤에 붙인 것 같다.
방언학방언지도는 사전적 정의로는 ‘방언 현상에 대한 지리적 분포도’이다. 언어단위에 따라서 지도 위의 분포 양상이 달라지는데, 주요한 언어단위로는 음운(音韻) ·어휘(단순한 어휘의 분포와 그 어휘의 의미장을 고려한 분포가 있을 수 있다) ·문법요소 등을 들 수 있다. 방언지도를 작성하려면 원칙적으로 언어단위에 입각한 조사지, 즉 질문지가 작성되어야 하며, 조사지역의 정치 ·문화 ·경제 ·풍속 등에 대한 충분한 사전지식을 지녀야 한다. 또한, 이에 따라 적절한 방언제보자를 선정하여 질문지의 모든 질문을 종합하여 지도 위에 일정한 부호나 색채로 표시하여 작성한다. 이러한 지도들이 모여서 방언지도첩이 되며, 이것은 생생한 방언현실을 보여줌과 동시에 언어일반의 특성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 방언지도의 작성은 언어지리학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기도 하다.)방언은 그 다양함으로 언어의 생동하는 모습을 다채롭게 보여주고 거기에 녹아 있는 우리말 역사를 드러내주며 각 지역의 독특한 삶의 모습도 보여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방언지도의 작성과 해석은 우리 언어와 문화, 역사의 연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방언은 음운적 변천을 보이기도 하지만 ‘의미차이’의 경우도 있다. 이러한 예들로 ‘식혜’, ‘간장’, ‘김치’ 등이 있다. 강릉 지역어에서 나타나는 예로서 달이기 전의 간장은 ‘장물’, 달인 후의 것은 ‘지렁’이다. 따라서 밥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장물’이 아니라 ‘지렁’이어야 하는 차이가 있다. 삼척 지역어에서는 ‘지렁(밥상 위)’, ‘지렁물사와’, ‘밥쌍애 지렁 떠난나’, ‘구개 장물 친다’ 등과 같이 나타나는데 이들은 모두 표준어 ‘간장’에 대한 의미 차이를 보인다.김치로 마찬가지인데, 지금 막 먹을 김치와 겨울동안 오래 묵히는 김치가 지, 짐채 등으로 분화해서 쓰인다. 짠지와 짐치도 강릉, 삼척, 울진 등에서 대체로 어휘를 혼용해서 쓰고 있으나 노년층의 방언 의식에는 ‘짠지’와 ‘짐치’의 의미를 구별해서 쓰는 듯하다. 즉 ‘짠지’는 표준어의 의미와때 음운변화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의미에 대한 차이도 고려해야 할 것이며 그 어원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여러 단어의 방언형은 우리 국어의 역사적 발달에 대해서도 암시하는 바가 많다. ‘박쥐’의 어원을 밝힐 때에 ‘박’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이것은 한국어문법론 시간에도 유일형태소인가의 문제로 논의의 대상이 되었는데, 박쥐의 ‘박’은 통시적으로 보면 ‘?’에서 온 것으로 유일형태소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있다.표준어 ‘박쥐’의 ‘박’과 전남 방언형 ‘뽁쥐’의 ‘뽁’은 모두 중세국어의 ‘?-’(明)에서 온 말이다. ‘박쥐’는 동굴과 같이 어두운 곳에서 서식하므로 인간의 눈에는 오히려 ‘눈이 밝은’ 동물로 간주되었다. 서울에서는 ‘?-’의 ‘?’가 ‘아’로 바뀌었으므로 밝쥐>박쥐의 변화를 겪었다. 반면에 전남에서는 ‘?-’의 ‘?’가 ‘오’로 바뀌었으므로 ‘볽쥐>뽁쥐’의 변화 과정을 겪었다. 이처럼 방언 자료는 정확한 어원론을 펼치는 데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어원론과 음운변이에 맞추어서 ‘졸음’, ‘질경이’, ‘서랍’, ‘간장’, ‘부추’, ‘삽’ 그리고 ‘열쇠’에 대한 방언지도를 작성해 보았다.먼저 졸음의 방언분포를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가 경기도지역에서 주로 나타나는 ‘조름’계통이고 두 번째가 경상도 지역에서 나타나는 ‘자부름’계통이다. 경기지역은 초점지역으로 보인다. 초점지역은 정치·경제·문화적으로 우월성이 있는 중심지역으로 언어 개신파를 방사하는 지역을 뜻한다. 그리고 개신이 출발된 곳을 방사의 중심 또는 핵방언지역이라고도 한다.) 조름은 에 ?오롬 형태가 등장하는데 ?올-+-옴>?오롬>조름으로 변이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지역은 개신성이 높아서 현대형 ‘졸음’으로 빨리 변한 초점지역이라 할 수 있고, 자오름 형태가 나타나는 강원 동해안 지역과 전라 일부 지역은 경기지역보다 개신성이 낮아 15c형태인 ‘?오롬’이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자부름’계통은 자?다를 원형으로 해서 자?-+-음>자?음>자부름으로 나타났다고 할 이 외에도 e>i 규칙, 여러 가지 모음교체, 자음첨가 등의 현상이 나타나 약간의 음운차이의 변이형을 보인다. 전라지역은 잠/잼이 교차로 나타나는데 ‘잠’은 15세기 능엄경언해의 ‘?’이 어원으로 마찬가지로 경기지역보다 낮은 개신성으로 옛 어형이 잔재한 지역으로 보인다. 또한 ‘잼’은 움라우트현상(‘ㅣ’역행동화)이 실현된 형태로 보이며, 뒤에 ‘이’와 같은 주격조사와 결합했을 때 움라우트현상의 실현조건에 더 합당하게 보인다.한편 개신파가 거의 도달하지 않거나 또는 사회·문화적인 요인 때문에 인접한 지역과 전혀 다른 언어체계를 가진 지역을 ‘언어섬’이라 한다. 나주, 광양 지역은 이러한 언어섬현상이 나타나 경기, 충청 지역의 ‘조름’이 나타나기도 한다. 보통 언어는 인접지역으로 확산되는데 중심도시에서 다른 중심도시로, 건너뛰기 확산되기도 한다. 이 경우에 건너뛰기 확산으로 볼 수도 있다.다음으로 질경이의 방언분포는 크게 ‘질겡이’ 계통과 ‘빼뿌쟁이’ 계통으로 나눌 수 있다. 경기, 충청 지역과 일부 강원, 경북 지역이 ‘질겡이’계통의 분포가 나타나며 e>i규칙, 모음교체 등의 규칙이 ‘질겡이>질깅이’, ‘질겡이>질갱이’, ‘질겅이’ 등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전라도 경상도 등 남부지역은 ‘빼뿌쟁이’계열의 분포가 주로 나타난다. 또한 된소리되기 현상은 남부지역이 개신이 빠른데, 이로 인해 ‘찔깅이’, ‘~짱우’, ‘~쭌’, ‘빼뿌~’, ‘빠뿌~’, 등의 변이형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빠뿌재미’, ‘벱짱구’ 등의 자음첨가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한편, ‘찰전자’, ‘이밥추’, ‘지끼풀’, ‘깨꾸리풀’ 등 아예 다른 변이형이 나타나는 지역도 있는데, 이런 지역들은 언어섬이라고 볼 수 있다.방언접촉이 이루어진 지역들은 여러 가지 변이형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으며 ‘빼뿌쟁이>빼뿌재이’로 바뀐다거나 ‘질겡이’가 ‘질게이’로 바뀐다는 등의 음운탈락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질짱귀’, ‘찌짱구’, ‘찌쨍이’ 등의 분포는 강원도 북부쪽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북한지역의 삷->삽’으로 변이됨을 알 수 있다. 자음교체로 인해 '샆'이 나타나는데, 무기음인 'ㅂ'에서 격음인 'ㅍ'으로 변이했다. 우리말에는 음절끝소리규칙이 적용된 7종성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샆'이라고 단일한 음절로 발음을 할 경우에는 이 변이형이 잘 나타나지 않지만 뒤에 '이', '에'와 같은 조사가 오면 연음규칙으로 인해 이러한 변이형을 잘 알아볼 수 있다.또한 '샵'이란 변이형은 보통 '발음기호'와 비슷한 소리를 낸다. 사실 이런 소리는 경상방언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여기서는 횡성에서 나타나고 있으므로 경북방언과 강원방언의 유사성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사실 강원방언의 어휘는 경상방언과 많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소리'에서도 유사성이 나타나는 것이다.‘샙’은 움라우트 현상이 적용된 것으로 보이는데, 움라우트 현상은 /i/나 /j/의 영향을 받아 선행하는 모음이 전설성을 가지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주격조사 ‘이’가 붙음으로써 ‘삽이>샙이’로 ‘ㅣ’역행동화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사보'는 중세국어에서 많이 나타났던 연철현상이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중세에서 근대로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연철 즉, 이어적기는 혼철을 거쳐 분철에 이르게 되는데 '사보'가 나타나는 광양지역은 섬진강으로 경상도와 경계를 짓고 있으며, 지리적으로 ‘만’이기때문에 고립되어 개신성이 느렸던 것으로 보인다.특이하게 '홉빠'라는 방언형이 나타나는 지역이 있는데 이 지역은 언어섬 현상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또한 '가래'는 흙을 파헤치거나 떠서 던지는 기구로 삽과 비슷한 기구이다. 따라서 가래와 삽을 혼용해서 썼던 것으로 보인다. 가래의 어원은 16세기 훈몽자회로 한다.) '삽'에다가 '가래'가 붙여서 삽가래가 되는데 경음화현상이 일어나서 '삽까래'가 되고, 자음교체로 '삭까래'가 된것이다. 뒤에 오는 'ㄲ'때문에 연구개음화 되어서 'ㄱ'받침으로 변이한 것으로도 보인다.한국어원학회에 따르면 경상지역 방언으로 ‘수금포’의 어원은 네덜란드어 스콥(schop, 삽)으로 본’를 빌려 쓴 말인 것처럼 ‘수금포’는 네덜란드어 스콥(schop)에서 일본어 ‘스콤푸’를 거쳐 ‘수금포’가 된 것이다. 또한 ‘수금포’에서 원순모음화 현상이 일어나 ‘수굼포’라는 변이형도 나타나며 자음 'ㅁ'의 탈락으로 '수구포'라는 변이형태도 나타난다.다음으로 ‘부추’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부추’의 1차적어원은 '뿌리'의 어원이나, 2차적 어원은 잎의 폭이 좁고 가늘어 좁다(細狹), 북한어 솗다의 어원이다. 현재 표준어는 ‘부추’인데, 이러한 어원설을 따르면 개신성이 낮은 남부지역에 고어형인 ‘솔’이 남아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어원에서 여러 가지 방언형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부추’의 방언분포는 먼저 강원, 경기지역에서는 부추, 분추, 분초, 부초 등의 형태가 나타난다. 부추는 ‘?+?狹->부수->부주->부추’의 과정으로 변이한 것으로 보이며 ‘분추’는 ‘?狹+?狹->불수->분주->분추;?’와 같은 변이가 나타났을 것으로 예상된다. 초기에 ㄹ의 탈락여부에 따라 다른 변이형이 나타난 것이다. ‘분초’의 경우에는 모음조화가 문란해진 것으로 보인다. 모음조화는 15세기 이후 점점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았고, 현재에도 모음조화가 지켜진 ‘깡총깡총’이 아니라 ‘깡충깡충’이 표준어인 것으로 보아 모음조화의 엄격성은 적어졌다고 본다. ‘분초’가 그 예라고 할 수 있겠다.전라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솔’, ‘졸’, ‘줄’, ‘쪼리’의 변이형이 나타나는데 ‘?->솔’로 변화했다. 치조음에서 ‘ㅅ’에서 치조구개음인 ‘ㅈ’으로 변이하였고 그 변이형은 ‘졸’에서 모음교체된 ‘줄’이 나타났고 경음화, 이어적기에 따라 ‘쪼리’라는 변이형이 나타난다.남부 일부 지역에서는 ‘소풀’, ‘소불’, ‘소푸’ 등의 변이형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변이형은 마찬가지로 ‘?+?->소불->소풀’이 된 것으로 보인다. ‘ㅍ’이 ‘ㅂ’으로 평음화 되기도 하고 ‘ㄹ’음이 탈락하는 현상도 일어났다.경상, 충청 지역에서는 ‘정구지’, ‘정고지’, ‘덩구지’, ‘정구지’ 등의 형태가 나타나는데 ‘정구지있다.
한국어교육론다문화 사회에서의 한국어 교육Ⅰ. 들어가며- 다문화사회란?Ⅱ. 나아가며1. 한국어 교육의 현황2. 다문화 사회 한국어 교육의 문제점(1) 이주근로자의 적은 한국어 교육 기회(2) 언어문제 - 이주근로자, 여성결혼이민자, 다문화가정의 자녀(3) 집합교육과 교사부족3. 다문화 사회 한국어 교육의 대안(1) 사전 한국어교육의 강화(2) 직장 내에서의 한국어 교육 지원(3) 다문화가정 관련 제도와 의식의 전환(4) 가족의 참여와 한국 문화 교육의 병행(5) 찾아가는 맞춤 교육방식의 확대와 원격교육의 활용(6) 전문적인 교재 개발과 교사의 양성Ⅲ. 맺으며Ⅰ. 들어가며‘다문화 사회’, ‘다문화 가정’, ‘다문화 교육’… 바야흐로 ‘다문화’의 시대가 열린 지금, 다문화의 문제는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다. 사실 ‘다문화 가정’이라는 용어는 넓은 의미에서는 모든 가정이 다문화 가정이 될 수 있다. 여러 가지 나라의 문화가 공존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 가정 내에서의 세대 간 문화차이 또한 넓은 의미의 다문화 가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의 문화 차이나 가치관 차이는 대한민국이라는 동일한 문화권 내에서의 미시적인 다문화 현상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다문화 가정의 문제는 국제결혼에 따른 여성결혼이민자, 외국인 근로자 등 한국 사회 내에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문화권으로 이루어진 가정의 생성을 의미한다. 본고에서 또한 여성결혼이민자와 외국인 이주 근로자, 다문화 가정의 자녀를 위주로 다문화사회에서의 한국어교육을 바라볼 것임을 미리 밝혀둔다.국내 체류 외국인의 절반 가까이는 외국인 이주 근로자가 차지하고 있지만 최근 특히 여성결혼이민자가 증가하면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몇 년 후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주근로자들과 달리 국제결혼을 통해 국내에 입국한 외국인 여성들은 대다수가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 국적을 취득하여 정착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들이 대대적인 관심영역으로 떠오르는 것은 여성과 그 자녀들의 수는 72만여 명에 달하게 되어 현재보다 4.4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예측하고 있다. 도시의 경우도 크게 다를 바 없어 외국인 근로자들의 꾸준한 증가가 인구의 다민족화를 촉진하고 있다. 특히 제조업에 종사하는 근로자는 이미 외국인들로 대체된 지 오래다. 외국인 근로자 중 조선족을 비롯하여 중국 국적을 지닌 사람들은 25만 명, 필리핀?베트남?태국 등 동남아시아 출신은 10만여 명에 이른다.외국인 이주민의 증가는 1990년대 중반 이후 10년의 기간을 두고 꾸준히 진행되어 왔으나 이들에 대한 정책적 대응은 이제 출발 단계이다.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상담 활동과 문제 제기가 언론을 통해 알려진 후 정부는 이들 외국인 이주민들의 인권과 사회 적응을 위한 정책 프로그램을 마련하기 시작했는데, 체계적인 대응보다는 여러 부처가 행사성 프로그램을 중복해서 제시해 온 것이 사실이다. 특히 언어 문제에 대한 대응이 더욱 늦어진 이유는 초기 이주민들이 중국 조선족이나 구소련 지역 고려인들의 후예여서 언어 소통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움직임은 외국인 근로자와 신부들의 국적이 다양해지고 있어서 우리 언어문화의 보급이 매우 시급한 실정이다.)농촌에 거주하는 여성결혼이민자에 대한 지원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들에서 그동안의 사업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볼 때 가장 적절한 교육형태가 방문교육임을 보여주고 있다. 농촌은 지역 특성상 교육장까지 이동하기가 원활하지 않고,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정서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성을 집 밖에 나가도록 용인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2. 다문화 사회 한국어 교육의 문제점(1) 이주근로자의 적은 한국어 교육 기회이주근로자의 한국어교육은 한국 ‘입국 전 사전교육’과 ‘입국 후 취업교육’의 커리큘럼으로 쉽게 확인된다. 문제는 이들 외국인근근로자의 입국 전 교육(약 20일 내외)과 입국 후 취업 교육(2박 3일)이 매우 빈약하게 짜여 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의 구직을 희망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어능력업 후 작업장 내의 한국어 교사나 종교단체 및 이주근로자를 위한 지원센터를 통해 부족한 한국어를 보충해 나가고 있지만 대부분이 중소기업이기 때문에 직장 내 한국어 교육은 정부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힘들다. 또 외부에서의 교육도 이주근로자들의 대부분이 3D업종에 종사하고 장시간의 노동을 하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내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작업장에서 고급 한국어능력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따로 받을 필요가 없다고도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 이러한 최소한의 한국어능력을 가진 이주근로자들은 작업장에서의 의사소통 불편, 일상생활의 불편 등으로 이어지며, 그것이 자신들의 권익과 보호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한국어교육에 대한 필요성과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여성결혼이민자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부딪히는 언어 문제는 부부간 의사소통의 문제이다. 이것이 결국은 부부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시댁, 시부모와의 의사소통의 어려움 또한 문화가 다른 가정에서 서로를 이해시키기 더욱 힘들어져 갈등을 낳을 수 있다. 이것은 자녀들과의 의사소통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은 한국어에 서툰 엄마와 같이 있다 보면 일반 가정보다 다양한 한국어 어휘 습득이 어렵거나 지체될 수 있다.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의 한국어 구사 능력이 부족한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말을 배우는 중요한 시기인 유아기에 한국어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인데 특히 엄마가 외국인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유아기 시절 한국어 접촉에 제한을 받고 있다. 주변 환경에서 한국어의 접촉 기회가 적기 때문에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은 일반 가정의 자녀들보다 한국어 습득이 뒤처지고 사용 어휘가 적을 수밖에 없다. 외국인 엄마들은 불편한 한국어 대신 편한 모국어로 육아를 함으로써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이 한국어보다 엄마의 모국어를 먼저 습득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이런 것들은 곧 읽기의 이해력 부족으로 연결되어 취학 후 학교 수업 시 교육 과정 및 교재의 내용에 대한 이해가 낮을 수밖에 없다한 것으로 보인다.3. 다문화 사회 한국어 교육의 대안(1) 사전 한국어교육의 강화이주 근로자들은 2005년 이후부터 한국어 능력 시험에 통과해야 입국할 수 있도록 되어있는데, 이런 것들이 단지 형식과 절차에 머무르고 있어 실제로 한국으로 들어오는 이주근로자들은 아주 기초적인 한국어 능력을 가지고 들어온다.이주근로자들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철저하게 한국어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한국어능력은 무엇보다도 이주근로자들이 한국에 들어와서 안정적으로 근로생활에 큰 도움을 주고 정보공유와 직장 내에서의 동료들과 소통문제를 해결해주기 때문이다. 한국어능력을 평가하는 한국어 능력 시험 역시 작업장에서의 직업 언어뿐만 아니라, 일반 생활 언어와 문화언어까지도 평가되어야 한다.(2) 직장 내에서의 한국어 교육 지원외국인 근로자들은 각기 전문적인 업종과 분야에서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선 이들의 다양한 업종별 주요 어휘와 언어 표현들을 수집, 정리한 교재의 개발이 필요하고, 이를 충분히 학습할 수 있는 시간이 입국 전 단계와 입국 후 단계에서 확보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 여건과 관련하여서는 규모에 따라 일정 수 이상의 외국인이 근무하는 중소기업이나 대기업의 경우 자체적인 시설과 강사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의무화하고 정부 관련 기관에서 이를 지원해야 한다. 그리고 소규모 업체의 경우에는 자체적인 시설과 강사진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교수·학습 여건을 갖춘 지자체나 학교, NGO, 종교 단체 등에서 주관하는 한국어교실을 신설 또는 양성화하여 인정해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체로 학습자 5-15인을 한 반으로 하고 한국어 교수 1명이 전담하는 방식으로 매주 일정 시간 이상을 정해진 교육과정과 교재 의거하여 지속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자체 평가와 함께 공인 한국어능력시험을 통해 자격을 인증해주고, 이를 체류 연장의 기본 조건으로 일정 부분 반영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외국인 근로자들이 한국어나 한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하고, 그런 편견으로 인해 한국에서 안정적 결혼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일반 국민들이 다문화가정의 자녀들도 국내 어린이와 다르지 않음을 인정하고, 혹 다르더라도 그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사회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특히 학교는 이러한 분위기의 확립이 더욱 절실하다. 교사나 학생들이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에게 따뜻하게 대하고, 국내 친구와 다름없는 우정을 나누고 또 세계인으로서의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크게는 언론기관에서 다문화가정이 우리의 가족임을 느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많이 다루고, 캠페인 등을 통해 국민들의 인식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 좁게는 학교에서 일주일에 1~2회의 다문화시간을 정해서 다양한 국적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학생들 스스로 문화상대성과 개별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가정통신문을 통해 다문화가정 어린이에 대한 편견 없는 관심과 애정을 부탁하는 메시지를 보내거나, 교사는 국내 학생과 다문화가정 학생을 짝지어 공동으로 하는 과제를 내주고 발표하게 하는 등의 또래 관계 형성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이런 분위기가 지속적으로 확산되면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학교부적응 현상이나 소외현상 등은 점차 줄어들고, 또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등의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4) 가족의 참여와 한국 문화 교육의 병행부부 내지 가족들이 함께 한국어교육에 참여할 수 있는 통합적인 운영이 요구된다. 구체적으로 통합적인 운영의 한국어교육은 건강한 부부대화법, 인내하고 듣기, 아내의 나라 이해하기 등의 내용을 가지고 일주일에 1~2일씩 두 시간 정도 진행한다. 남편은 한국말이 서툰 아내의 말을 인내하고 들어주는 습관을 길러야 하며, 아내의 출신국 언어를 배워보면서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공감하고 제일 가까이에서 제일 좋은 한국어 선생님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또한 가족의 주말 계획이나 청소 분담 등의 가족다.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에 들어서면 누구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한다. ‘나는 누굴까?’,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등의 고민들이다. 2차 성징이 시작되면서 이성에 눈뜨게 되고 내 몸이 낯설어 지기도 한다. ‘나는 어디서 왔을까’는 원초적으로 ‘진화의 비밀’이 담겨있는 물음이다. ‘진화’란 사전적 의미로 ‘생물의 종 및 더 상위의 각 종류가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점차 변화해 온 것’)을 말하는데 사전 의미 그대로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점차 변화해온 것인데 진화에는 정해진 목표가 없고 진화 그 자체가 위대한 실험이다. 아주 간단한 시작으로부터 무수한 생명들이 진화했고 지금도 진화하고 있다.성의 진화진화의 변화는 짝짓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모든 것은 성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가 직립보행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새로운 둔부를 발달시켰다. 다른 유인원들과 달리 둥그런 엉덩이를 가지게 되었는데 네발로 다닐때와 달리 성기가 노출되지 않자 음순의 모양을 가진 입술이 발달하게 되고 앞모습에도 엉덩이와 같은 곡선의 가슴이 생기게 되었다. 유방의 대부분은 지방질로 젖의 생산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아기에게 젖을 주는 데 중요한 유선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둥그런 여성의 유방은 젖을 먹이는 기관이라기보다는 성적인 자극체로서의 역할이 더 큰 것이다. 실제로 납작한 가슴을 가진 여성이 큰 유방을 가진 여성보다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데 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큰 유방은 아기가 젖꼭지를 찾느라 이리저리 헤매는 동안 아기의 입과 코를 막아서 질식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슴의 발달 또한 ‘성의 진화’인 것이다.짝짓기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공작새는 적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꼬리가 화려하게 발달했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이다. 생물은 여러 종이 있는데 인간이 필연적으로 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다윈의 진화설에 따르면? 털없는 원숭이로 진화해 온 것이다. 인간은 이런 여러 생물들 중에서도 가장 ‘성’적인 생물인데,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자손을 번식하기 위한 기간 이외에도 짝짓기를 한다. 다른 동물들은 발정기가 있고, 배란기에만 짝짓기를 하며 그 행위의 지속시간도 몇초에 불과하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그것을 할 준비가 되어 있고 피임을 함으로써 행위의 목적도 번식에만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의 ‘짝짓기’에 흥미로운 것은, 이런 것들에 우리도 모르는 사이 ‘진화의 비밀’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의 유전자를 최대한 많이 퍼뜨리겠다’는 것인데 이것을 위해 최적화되어 있는 것이다. 여성은 난자의 수가 정해져있고 임신을 하게 되면 그 아이를 양육해야 하고, 남성은 임신을 하지 않음으로써 좀 더 자유롭지만 아이가 본인의 아이인지 확신할 수 없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떠나가는 남성을 잡기 위해서 배란일을 숨기고 남성은 배란일을 숨긴 여성을 임신시키기 위해서 더 자주 그 여성의 곁에 머물게 된다. 함께 있음으로써 남성은 나중에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고 그렇게 서로 win-win효과를 내는 것이다.여성은 타이밍을 완전히 정확했을 때에만 임신이 되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다른 한편, 여자의 몸은 남자가 정확한 타이밍을 알아차릴 만한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는다. 이 교란작전의 상세한 내막은 대단하다.첫째, 일반적 규칙으로, 여자의 몸은 자신의 몸속에 주입된 정자의 번식력을 5일 이상 허락지 않는다. 둘째, 정자가 수태 절정기를 맞기 위해서는 여자의 몸속에 약 이틀간 머물러야한다. 셋째, 여자는 월경주기 당 단 한 개의 난자를 생산하는데, 이 난자는 생산된 배란일 당일 내로 죽는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남자가 어떻게 해서든 여자를 임신시키려고 하면, 여자가 배란하기 닷새 전부터 배란 후 12시간까지의 시간 안에 적어도 1회 사정을 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최고의 확률을 얻기 위해서는 ?그나마 이것도 아주 높지는 않지만(3대 1의 확률이다)?여자가 배란하기 약 이틀 전에 사정해야 한다. 이 최적기 전후로 1일 정도면 벌써 그 확률은 급격하게 하강한다.남자가 해야 할 일은 상대의 월경이 언제 시작되는지 메모해놓고 12일을 기다렸다가 사정하면 다 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하면 남자의 정자가 이틀 후의 여자의 월경주기 14일에 수태 절정이과 만날 것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여자의 수태 절정기를 이런 식으로 추정한다. 그렇지만 여자의 몸은 이처럼 간단한 계산 따위는 쉽사리 앞질러버린다. 다시 말해서 월경주기는 정상일 때가 드물며, 여자가 딱 14일째 배란하는 것은 아주 가끔씩 있는 일이다. 여자의 전략은 다양하며, 따라서 예측 불가능하다.진화에서, 그리고 짝짓기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사람은 배란일을 숨긴 여성이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여성에게서부터 태어나고 여성이 주로 양육한다. 이런 여성의 몸은 아주 중요한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진화의 신비, 생명의 신비가 담긴 자궁이다. 자궁은 아주 숭고하지만 그 특성상 여성 질환에 걸리기도 한다. 자궁내막증, 생리전증후군, 월경통 등이 그것이다.월경은 월경전증후군이나 월경통을 동반하기도 하고 철분도 부족해지는 등 여성들이 그 시기만 되면 예민해 지며 매우 불쾌해 한다. 코스타리카의 브리브리 인디언들은 월경 중인 여성을 불결하다고 여겼다. 월경 중인 여성은 남성의 사냥도구 가까이 가거나, 음식 또는 가재도구에 손을 댈 수 없었다. 음식을 먹을 때는 식기 대신 유일하게 바나나 잎만 쓸 수 있었는데, 그것을 먹을 소는 죽는다는 미신 때문에 사용 후 반드시 외진 곳에 버려야 했다. 유대 동방정교회 전통에는 ‘니다’라는 의식주간이 있어, 5일간의 월경이 끝나고 나면 7일을 근신하고 정결의식을 치른다. 이 기간에 해당되는 여성은 ‘불결’하다고 여겼다.하지만 ‘마지 프로페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포유류 암컷의 생식생리학적 특징 중에서, 월경을 불가피한 부산물로 여기는 경우는 하나도 없다. 만약 월경이 대가에 비해 특별한 기능이 없다면, 자연선택은 이미 오래 전에 그것을 없애버렸을 것이다.’라고 했다.월경은 ‘두꺼워졌던 자궁점막이 떨어져 나가면서 출혈과 함께 질을 통해 배출되는 생리적인 현상’으로써 잘 알고 있는데 또한 월경은 남성의 정자로 인한 병원균을 물리치기 위한 대항이다. 남성은 요도와 정액이 나오는 구멍이 같아서 소변으로 이물질을 씻어낼 수 있는데 여성은 질과 요도가 따로 있기 때문에 구조상 더 병원균에 취약하다. 그래서 여성은 월경을 통해서 병원균을 씻어내는 것이다.고대 그리스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월경이란 여성의 몸에서 매달 ‘유독한’체액을 배출하는 과정이며, 독성이 체내에 축적되는 것을 막는 꼭 필요한 정화작용이라 믿었다. 월경이 여성의 건강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2세기 로마의 저명한 의사였던 ‘갈렌’도 히포크라테스의 이론을 지지했다. 1993년 진화생물학자 마지 프로페트는, 월경이 그 전 달에 남자의 정자를 타고 들어왔을지도 모르는 미세 병원균들을 자궁에서 제거해 준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프로페트가 이 논란 많은 결론에 이른 것은 월경처럼 불리한 진화는 그 종에게 어떤 이점을 주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이미 오래 전에 게놈에서 추려졌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이 주장을 따르지 않더라도 대체로 월경은 여성이 연약해지는 시기이며, 여성들은 이때가 야심찬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가장 안 좋은 시기임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다. 방어력이 약해졌다는 것을 알고 그것에 대응하라는 뜻으로 진화적으로 미리 알려주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여성들은 월경기간이 되면 미리 준비를 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플 것을 알고 대비한다거나 약을 준비해놓고, 관계를 가지지 않고 간단한 운동을 하거나 약속을 잡지 않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