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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질서와 사회 - 이디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국경분쟁
    국제질서와 사회 - 이디오피아와 에리트레아 국경분쟁일어일본과 2009000이디오피아-에리트리아 국경분쟁개요분쟁 명칭 : 이디오피아 내전종족구성을 무시한 식민종주국의 영토획정 및 합병에 기인한 종족 간의 분쟁이다. 1962년 에리트레아를 강제 합병하면서 EPLF(에리트리아 인민 해방 전선)과 내전이 지속 되고있다.또한 지금 전쟁이 계속 발생하고 있는 이유중 하나는 Yirga 삼각지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발발한 갈등이다. 에리트리아는 이디오피아의 북부지역에 위치하여 1889년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2차대전을 전후로 1941년부터 1952년까지 영국이 일시적으로 통치하였고, 1952년에는 미국 정부의 압력과 UN의 제안에 의해 이디오피아와 연방을 형성하여 자치주가 되었다. 그러나 1961년 이디오피아를 강제 통치해온 독재자 셀라시에 황제가 무력으로 강제 합병하여 버렸다. 합병 직후부터 에리트리아 주민들은 분리 독립을 강력하게 주장하며 반정부세력인 에리트리아인민해방전선(EPLF)를 결성하고, 이웃 아랍국가들로부터 지원을 받아 30년간에 걸친 무력투쟁을 개시하였다. 1974년 셀라시에(Selasie) 황제를 폐위시키고 정권을 획득한 멩기츠(Mengitsu) 사회주의 정권은 소련의 군사지원을 이용해 EPLF에 대한 탄압을 한층 강화하였다. 한편 1980년대에 들어와 정부군의 EPLF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은 대규모의 가뭄과 기아 문제의 발생으로 실패로 돌아갔다.EPLF는 반멩기츠 연합전선에 참여하면서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에리트리아의 독립을 요구하였다. 냉전 종식에 의해 후견인인 소련이 이디오피아에 대한 지원을 중단되기 시작하며 약화되기 시작한 멩기츠 정권은 반정부세력의 공격에 의해 1991년 5월 붕괴되었고 에리트리아의 독립문제가 해결 국면을 맞이하였다. 1993년 4월 이디오피아로부터 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99.8%의 찬성을 얻어 동년 5월 24일 정식으로 독립을 선언하여 아프리카에서 53번째의 독립국이 되었다. 에리트리아의 초대 대통령으로는 EPLF의 리더인 Isaias Afwerki가 당선되었다. 에리토리아가 독립을 획득하게 된 이유로는 제나위 신정권이 에리트리아인민해방전선(EPLF)과 티그레 지역의 자치를 주장하는 티그레인인민해방전선(TPLF), 이디오피아인민혁명민주전선(FPRDF) 등이 중심이 되어 구정권의 타도에 참여하면서 합의된 사항이며 내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공헌한 대가로 얻어낸 것이다.독립 이후 에리트리아는 혁명 동지로서의 유대를 강화하며 이디오피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왔다. 에리트리아의 독립으로 내륙국가가 된 이디오피아는 무역의 대부분을 에리트리아의 항구인 아사브를 통해서 이루어 졌다. 그러나 양국간의 관계는 경제문제를 둘러싸고 점차 긴장이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1998년 5월 6일 에리트리아는 독립한지 7년만에 이디오피아와의 경제마찰을 통해 갈등이 고조된 상태에서 독립 이후부터 소유권 분쟁이 있었던 국경 지역을 무력 점령함에 따라 새로운 갈등이 생성되었다. 분쟁의 발단이 된 양국간 경제마찰은 에리트리아가 1997년 11월 화폐개혁을 통해 '경제주권'을 선언하면서부터 시작하였다. 에리트리아가 독자화폐를 채택하자 이에 반발한 이디오피아가 무역결제를 '달러'로 할 것을 요구해 이디오피아의 경제에 50% 이상을 의존하고 있는 에리트리아의 경제에 타격을 주었다고 했다. 이에 에리트리아는 1998년 5월 12일 이디오피아의 북동부 티그레주에 위치한 Virga 삼각지를 무력점령함으로서 본격적인 분쟁이 개시되었다.이에 반발한 이디오피아는 1998년 6월 5일과 6일 미그 23 전투기를 동원하여 에리트리아의 수도인 아스마리의 국제공항과 공군기지, 아세브항 등에 전격 공습을 강행했다. 에리트리아도 6월 5일 이디오피아 북부의 메켈레 공항을 폭격하는 등 사태가 악화되었다. 미국, 영국,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 서방측은 양측이 잠정 휴전한 6월 6일 오후부터 13시간 동안 군용기 동원 자국민들을 인근 대대로 소개하였다. 6월 9일 새벽 국경지대에서 전투가 재개되었으며, 6월 14일 양국은 미국의 민간인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항공 폭격을 중단하자는 안을 받아들였고, 에리트리아는 미군과 UN군이 포함된 PKO 부대가 비무장지대를 관리할 수 있도록 요구하는 등 직접적인 전투는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다. 6월 17일에는 요르단, 이탈리아, 튀니지아, 콩고민주공화국, 네덜란드, OAU, 이집트가 중재에 나섰다.7월에 양국은 보복전의 일환으로 자국내 거주하는 상대방 국민들을 추방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이디오피아는 경제 악화와 빈곤을 핑계로 자국 내 거주하고 있는 약 50만명의 에리트리아인들에 대한 추방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이디오피아 거주 에리트리아인들의 대부분은 1952년부터 이디오피아 정부가 실시한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에리트리아의 경제 기반, 지식인 및 사업가들을 수도 아디스아바바로 이주시킴에 따라 현지에 정착하여 이디오피아의 국민으로 지내다가 에리트리아가 독립함에 따라 신분이 외국인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들의 일부는 이디오피아 국적을 보유하고 있고 일부는 영주권을 보유하는 등 분쟁 직전인 1998년 5월까지는 이디오피아 국민으로 취급받았다. 이디오피아정부는 자국의 빈곤을 핑계로 에리트리아인들의 출국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수천명이 이디오피아를 떠났고, 수천명은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또한 3만명 이상의 이디오피아인들도 에리트리아의 항구에 억류되었다.8월 1일 양국의 외무장관이 부루키나파소에서 각각 중재국가 그룹과 만났으나 성과는 없었다. UN 안보리와 미국은 양측에 즉각 휴전과 외교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으나, 이디오피아가 자국의 영토에서 에리트리아가 철수하지 않는 한 협상에 나가지 않겠다고 반발하고 있다. 에리트리아 또한 자신들은 자국의 영토 안에 있는 것이라면서 한 치의 땅도 양보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은 견지하고 있다.양국간의 전투가 1999년 6월 9일 재개된 이래 에리트리아군 8,200명 이상이 죽거나 부상 또는 생포됐다고 에티오피아 정부가 6월 13일 발표. 이에 맞서 에리트리아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5일째 계속되고 있는 동부전선 전투에서 에티오피아군 2,300명을 사살했다고 주장. 인접국 사이인 양국은 지난해 5월 국경선 획정 문제로 갈등을 빚으면서 전쟁 상태에 돌입한 이래 간헐적으로 전투를 벌이고 있다. 에리트리아는 지난 62년 에티오피아에 합병된 이래 무장 독립 투쟁을 벌인 끝에 지난 93년 독립을 쟁취했다.분쟁이 지속된다면?이 지역은 물류 운반으로서 세계 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스에즈 운하와 석유 매장량이 풍부한 아라비아 반도를 끼고 있는 홍해의 입구에 위치하여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띄고 있다. 분쟁의 확대 여부는 스에즈 운하의 통행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 결국 세계 경제에 장해 요인이 될 수 있다. 양국은 30년 가까운 무장 반정부 투쟁을 벌여와 고도로 훈련이 되어 있는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어 전면전이 지속될 경우 인명피해가 증가될 수 있으며, 또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여 주변국으로 피난할 경우 주변국과의 분쟁으로 확대될 수도 있다. 또한 동 분쟁에는 기독교가 지배적인 에리트리아와 이디오피아의 이슬람화를 위해 주변국인 수단과 소말리아가 반군을 지원하고 있어 지역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여지도 다분히 존재한다.분쟁의 전망은 어떠한가?이디오피아와 에리트레아분쟁은 과거의 양국간 역사적 경험에서도 보았듯이 단기간에는 종료하기 힘든 분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에리트리아의 독립으로 인해 내륙국이 된 이디오피아는 양국 관계가 현재와 같이 악화될 경우 홍해로의 진출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외 교역에 큰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이번 분쟁의 발단에서도 보았듯이 양국간의 관계 설정과 관련, 에리트리아는 독립성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반면 이디오피아는 에리트리아를 독립국으로 인정은 하지만 자국의 영향력 하에 두려고 하는 상이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번 분쟁이 일단락 되더라도 향후 양국 간 분쟁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분쟁을 맞이 한 현 상황과 문제점실업률이 80%에 달할 정도로 '먹고 살기 힘든' 에티오피아인들에게는 전쟁이든 선거든 모든 걸 남의 일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방송국만 보급률이 별로 높지 않은 TV를 통해 전쟁의 소식을 전하고 있을 뿐이다.많은 에티오피아인들은 총선을 앞둔 12일 새벽 자기 나라 군대가 먼저 에리트레아를 공격한 것이 '선거용' 이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기념품 상점을 운영하는 수메타(37) 는 "국민들이 굶어죽어가는데 전쟁이 다 뭐냐" 며 목소리를 높였다.이번 전쟁은 예견됐던 일이었다고 했다. 멜레스 제나위 총리가 이달 초 외국공관장들을 불러 전쟁이 임박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문제는 교전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에티오피아 외무부 네가쉬 케브레트 아주(亞洲) 국장은 "양국 외무장관 회담이 성과없이 끝났으며 이제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할 단계는 지났다" 고 말했다.이미 1998년 5월 시작된 양국간의 전쟁으로 지난해 6월까지 수만명이 사망하고 60여만명의 난민이 생겼다. 이번에 재개된 전쟁이 얼마나 많은 인명의 희생을 요구할지 아무도 알 수 없다.국제사회는 가뜩이나 기근으로 시달리는 두 나라 국민들이 전쟁 때문에 겪어야 할 참화를 우려하고 있다. 유엔은 "즉각 전쟁을 중지하라" 고 양국에 촉구했지만 양국 정부는 막무가내다. 에티오피아 재해대책위원회 시몬 메칼레 위원장은 "기아구제에 당장 필요한 식량의 양은 89만t이지만 지난 4월 현재 도착한 구호식량은 69만t으로 지난해 재고분 10만t을 합쳐도 10만여t이 부족하다" 고 밝혔다.
    공학/기술| 2012.03.22| 4페이지| 1,500원| 조회(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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