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작품의 스토리 개요(synopsis) : 똥 파 리동료든 적이든 가리지 않고 욕하고 때리며 자기 내키는 대로 살아 온 용역 깡패 상훈. 세상 에 무서울 것 없는 상훈이지만, 그에게도 마음속에 쉽게 떨쳐내지 못할 깊은 상처가 있다. 바로 ‘가족’이라는 이름이 남긴 슬픔이다. 우연히 길에서 여고생 연희와 시비가 붙은 상훈. 자신에게 전혀 주눅 들지 않고 대드는 깡 센 연희가 신기했던 그는 이후 연희와 가까워지고 그녀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렇게 조금은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아버지가 15년 만에 출소하면서 상훈은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자제할 수 없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연희와 가까워지면서 세상을 바라보게 되고 다른 사람들처럼 살아가려 애써보고 자신에게는 아픔인 가족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간직 한 사람들에게 남겨주고 떠난다.*등장인물의 캐릭터 분석 및 인물들 사이의 관계-주연상훈(양익준)제목 똥파리처럼 가까이 하기도 싫고 가까이 보기서 보기도 쉽지 않은 캐릭터. 욕을 입에 달고 살며 담배와 술은 그의 주식. 세상 겁나는 것 하나 없으며 사채 용역 일꾼으로 수금의 달인이다. 말보단 주먹질로 대화하는 남자. 하지만 이런 더럽고 비열한 폭력성 뒤로 가족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고 사실 진정한 가족을 원했고 또, 가족이고 싶었던 ....어릴적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어머니와 여동생이 죽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평생을 괴로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런 그에게는 자신과 같은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여 주인공 연희가 존재한다.연희(김꽃비)용역깡패 상훈에게 절대 지지 않는 절대 ‘깡’의 소유자. 여고생 연희. 길을 걷다 상훈이 뱉은 침에 맞아 우연히 상훈과 만나게 된다. 연희 또한 상훈과 같은 가족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다. 상훈에게서 연희 또한 자신도 모를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상훈이 누나에게 대하는 모습은 연희의 남동생과도 비슷한 모습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 (결말부분 연희의 남동생 영재의 모습에 투둘 좁고 굽어진 그리고 경사가 높은 그런 골목길들..... 그리고 많고 많은 골목길 들 중 한 곳에서 상훈과 연희가 처음 만나게 된다.아버지의 집-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인해 결국 딸을 살해하게 되고 또, 어머니까지 죽게되면서 아버지는 15년 간의 감옥살이를 하게 되고 출소한다. 그 후 도만은 상훈에게 아버지의 출소 소식과 함께 안부를 묻고 이것은 상훈의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다시 불러일으키며 상훈의 아버지에 대한 폭력으로 이어진다. 하루가 멀다하고 아버지의 집을 찾아가 구타하고 괴로워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쓸쓸히 잠들었다 깨어나는 상훈. 그리고 아버지의 집은 이 영화에서 가족이라는 단어와 가족을 잃은 채 살았던 상훈이 아버지를 용서하게 되는 계기가 되는 장소이기도 하며 상훈의 조카에게 자신의 어릴 적 트라우마를 똑같이 재현시켜 어린 조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누나의 집 근처. 수퍼- 상훈의 조카 형인은 하루 종일 집에서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혼자 있지만 상훈은 늘 누나의 집 근처 수퍼에서 서성이며 조카 형인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린다. 여기에서는 상훈이 유일한 가족이며 보살핌을 주고 싶어 하는 존재인 조카 형인을 만나기위한 장소인 것이다. 일반 사람들처럼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가족을 대 할 수가 없다.한강- 강이 흘러가는 모습을 바라보면 사람들은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듯한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상훈의 아버지의 자살기도와 정신나간 연희 아버지의 칼부림으로 또 한번 큰 상처를 받은 두 사람은 강변에서 만나 처음으로 서로의 속내를 드러내고 서로의 아픔을 감싸 안고 다독여주는 곳. 울부짖음 속에서 서로의 교감이 이루어진다.조카 형인의 어린이집- 재롱잔치가 열리는 날 조카 형인의 어린이집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상훈을 둘러싼 주변 인물들이 한 데 모이게 되는 정점의 장소이며, 진실을 알면 절대 가족이 될 수 없는... 하지만 상훈의 존재로 인해 가족이 되는 도만과 연희. 그리고 연희와 상훈의 누나. 그리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 같은 냉철한 인간으로 비춰지는... 하지만 이것은 조카 형인을 대하는 것에서 상훈을 인정있는 사람으로 보여준다.*잊은 채 살아갔지만 아버지를 향한 잠재되어있던 증오(랑그)그리고 그 증오(랑그)로 인해 이성을 잃고 정신의 잠재되어있던 증오에 조정당해 아버지를 구타하는 행위(빠롤)로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랑그라는 언어의 법칙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실재로 발화할 수 있는 빠롤 행위를 할 수 있다. 이처럼 잠재되어있는 아버지의 증오가 상훈이 하고 싶지 않아도 원하지 않아도 증오에 지배당해 구타라는 빠롤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똥파리라는 영화 텍스트는 가정불화라는 기의를 가지고 폭력과 구타 언어폭력을 하는 행위들이 담긴 영상과 생생한 현장음 그리고 음악들로 이루어진 기표로 이루어져있다. 무엇보다 똥파리의 플롯은 기존의 수많은 영화들의 플롯과는 확연히 색다르고 신선하다.* 씬 분석씬 번호서술 상황(1차/2차)장면의 핵심 내용비 고11차캄캄한 밤 술집 간판의 네온사인이 깜박이는 골목길 앞에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맞고 있다. 그때 상훈이 등장한다. 주먹질하던 남자를 반 실신상태로 만들어 놓고 맞고 있던 여자에게 다가가 여자의 뺨을 때리며 “왜 맞고 다니냐, 이 쌍년아 , 이 씨발년아.”라고 욕을 한다.그리고 누군가가 상훈의 뒤통수를 가격하고 쓰러진다.(남,녀 상관없이 오직 주먹으로 이야기하는 상훈. 하지만 어릴 적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 그리고 여동생을 때리던 가정폭력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뒤통수 가격은, 마지막 순간(죽음)의 상훈을 암시.)21차컨테이너박스 사채사무실 안에서 자장면을 먹고 있는 조직원들. 그 안으로 상훈이 들어서자 조직원들은 일제히 일어서며 상훈에게 인사를 하고 눈치를 본다. 상훈은 자리에 앉고, 또 한사람 사채업자 정만식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다. 왜 늦었냐는 정만식의 꾸중에서 상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담배를 피운다.31차학생들이 투쟁하고 있는 한 대학교. 그 곳에 상자 얼른 달려나가 엎어들고 평상에 데리고와 레슬링을 하는 상훈. 놀아주려고 한건데, 아이가 아무 반응이 없자 그만하는 상훈.151차수퍼 앞 평상에서 요구르트를 마시는 두 사람. 잠시 후 아이의 엄마(이복누나)가 나타나고 상훈은 말 없이 그들을 지나쳐 간다. 누나가 상훈을 붙잡자 상훈은 아이에게 또 돈을 쥐어주고 욕을 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161차화가 잔뜩난 채 걷고있는 상훈 옆으로 연희가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건다. 말을 거는 연희에게 욕을 퍼 붓는 상훈.그때 순찰하던 경찰이 다가오자 그만하라는 연희의 소리에도 이성을 잃은 듯 경찰에게 주먹질을 하며 화를 푸는 상훈전개(상훈의 옆으로 연희가 다가오고 서로가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의 첫 단계)172차어릴 적 상훈의 집. 여동생의 울음소리와 아빠에게 맞고있는 어머니의 비명소리와 그리고 아버지의 고함소리로 아수라장인 집안. 갑자기 정적이 울리고 상훈이 발견한 것은 칼에 찔린 여동생. 상훈은 동생을 들쳐엎고 병원을 향하고 그 뒤를 쫒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죽는다.181차놀이터에서 자다 일어난 상훈, 일어나자마자 담배를 피워물고 그 옆으로 그네를 타고 있던 연희가 다가와 앉는다. 그리고는 상훈을 끌고 사라진다.191차웃고 즐기는 사람들로 붐비는 상가 골목. 그 사람들 틈에 끼어있는 표정 없는 상훈과 연희.201차함께 걸어가는 두 사람. 상훈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발걸음을 왔던 길을 따라 도망가듯 바삐 움직이고 연희는 그런 상훈뒤를 쫓아간다. 거기에는 상훈의 이복누나가 일을하고 있는 모습.211차좁은 부엌 겸 거실. 딱 봐도 영새 해 보이는 집 안 모습. 그 집 안으로 연희가 한 손에는 장 본 보따리를 들고 들어선다. 그런 연희에게 나타나 돈을 내놓으라며 욕설을 퍼 붓는 한 사내아이.221차자랑스럽게 걸려있는 군복 한 벌과 훈장. 그리고 저인이 온전하지 않아 보이는 연희의 아버지. 연희에게 욕설을하며 밥상을 엎는다.231차담배를 피우며 언덕길을 내려오는 상훈과 동료. 돈을 받기위해 사채 고객의 집을 찾고있다.241차굳게 닫힌361차여전히 담벼락 아래 상훈과 상훈의 조카 형인만 남아 이야기 하고 있고 형인은 아빠라는 거짓말에 입을 다물고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떠나려는 상훈의 발목을 잡고 가지말라고 울부짖는 형인.371차연희의 학교 교실 안 .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연희. 상훈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학교를 뛰쳐나가는 연희.381차지하철 역을 빠져나와 상훈을 찾아 두리번 거리는 연희. 상훈이 보이지 않자 실망하려는 찰나 저 멀리서 자신을 부르며 다가오는 형인이와 상훈의 목소리391차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 안 같은 아픔을 가진 세 사람.. 이들은 그 사람들 속에 섞여보려 노력한다.401차그 시간 술 집에서 또래 여자들과 퇴폐적 쾌락을 즐기고 있는 연희의 남동생411차잠든 형인을 엎고 형인의 집안으로 들어서는 상훈과 연희. 형인을 눕히고 이야기하는 두 사람. 그때 집 안으로 상훈의 이복누나가 집안으로 들어서고 저녁을 함께 먹자고 한다. 살갑게 다가서는 연희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어울려선 안 되는 네 사람이 가족처럼 함께 둘러 앉아 저녁식사를 한다.421차형인의 집 앞 연희와 상훈을 마중하는 형인과 상훈의 누나.431차골목길을 내려오는 연희와 상훈.441차한 포장마차 안 함께 소주를 마시는 상훈과 연희. 자신의 집 안과 아픔에 대해 반대로 이야기 하는 연희. 처음으로 상훈과 연희는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된다.451차아침. 전날 밤 함께 놀았던 여자의 집에서 눈을 뜬 연희의 남동생.461차집으로 들어오는 연희의 남동생. 집에 들어오자마자 연희에게 돈을 요구한다. 또 몸 욕설과 몸싸움이 벌어진다.471차친구인 상훈의 똘마니를 만나러 가는 연희의 남동생. 함께 일 할 것에 대해 이야기 한다.481차사채 사무실로 들어서는 똘마니와 연희의 남동생 영재.영재를 정만식에게 소개시킨다. 그리고 상훈이 나타나고영재와 상훈이 처음 만나게 된다. 함께 일을 나가는 세 사람.491차일 나가기전 하루 동안 돌아다닐 곳에 대해 이야기 하는 세 사람.501차경기도의 한 공장. 돈 빌린 사람의 직장으로.
작품 감상평: 아오이 가든 - 편혜영“아오이 가든. 너무나 고독하고 외로운 곳...”편혜영이라는 소설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년 전 웹서핑을 하던 중 그녀의 이야기가 실린 기사를 접하면서였다. 그녀의 작품에 대한 기사를 쓴 기자들은 하나 같이 모두 그녀의 작품세계는 기괴하고 독특하며 그녀 자신만의 방법으로 집필해 나간다고 했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된 그녀의 작품들. 그래서 학교 도서관에 가서 그녀의 작품들을 검색 해 보았다. 안녕 시체들... 제목만으로도 나와는 거리가 먼 듯 했다. 나는 평소 잔인하거나 무서운 장르의 영화나 소설들은 멀리하는 편이다. 그런 장르의 영화나 소설들은 보는 내내 너무 답답하고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항상 그 끝에 두통이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 읽지 않았던 아오이 가든을 과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읽게 되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읽는 데 참 힘이 들었다. 겨우 두 장을 읽고 덮어두었다가 다시 책을 펼쳤다. 그리고 또 한 장을 겨우겨우 읽고 다시 덮어 버렸다.소설의 맨 처음 시작하는 개구리부터 시체와 쓰레기가 함께 뒹구는 아오이가든의 모습. 밖에 나갔다 오기만 하면 임신을 하고 돌아오는 고양이의 자궁을 드러내는 수술 장면들....피와 냄새 오물, 그리고 역병으로 인해 서로를 경계하기만 하는 아오이가든의 남은 사람들. 너무나 불편했다. 편혜영이라는 작가는 왜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게 사람을 쉴 새 없이 괴롭게 하는가 싶었다. 그리고 더 당황스러운 것은 시점이 불분명하다. 나라는 시점으로 이야기는 진행 되어 간다. 그런데 나라는 주인공에 대해 주인공의 나이가 몇 살인지 아이가 되었다 늙은이가 되었다 다시 청년이 되었다. 그리고 누이와 그녀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그들의 나이를 정확히 알 수도 없고 오로지 그들의 불쾌한 행동들, 그리고 정말 더럽고 징그럽게 묘사되는 그들의 이미지들을 작가의 묘사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상상해야만 한다. 그리고 누나가 임신을 한 것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나 거북스럽다. 그리고 소설 속에서는 유난히도 누나의 생리라던가, 임신 그리고 고양이의 자궁, 그리고 나의 출산장면 등 여자와 관련된 것들이 유독 피와 연결되어 혐오스럽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이런 표현들이 여성 작가에게서 쓰여 졌다는 것에 놀라웠고 편혜영이라는 작가가 도대체 이렇게 까지 인간을 더럽게 표현하면서 무엇을 전하려는 것인지 궁금했다.솔직히 맨 처음 역병으로 인해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역병이 끝날 때 까지 살아있거나 굶어 죽어야만 한다는 그 부분에서 그리고 사람들이 처음 역병이 돌때의 행동들에서 인간들의 고독이나 소외현상들을 이야기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고양이의 털을 삼키고 끝내는 고양이가 주인공의 뱃속으로 기어들어가고 목구멍으로 삼킨 고양이의 눈알이 튀어나오고 하는 부분들을 보면서 점점 더 무슨 말인지 알 수 가 없었다. 이러한 부분들은 제대로 이해 할 수 없고 또 징그럽지만 이런 것을 상상해 낼 수 있는 작가의 상상력이 놀라웠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지만 소설은 얼마든지 판타지로도 쓰여질 수 있는 것이니, 그리고 난 정말 이런 기괴스러운 소설이 싫지만 달리 생각 해 보면 이렇게 책장을 한장 한장 넘기는 것이 힘들 정도의 묘사를 독특하고 개성 있게 한 소설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편혜영이라는 작가를 세상에 알린 것은 바로 이런 편혜영만의 상상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그 어떤 작가의 소설 보다 자유롭지만 너무 자신만의 색깔이 두드러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을 조금 만 대중적으로 푼다면 작가가 전하려는 이야기를 독자들이 그 속에 담긴 뜻을 조금 더 가볍게 깊이를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스토리텔링이 잘 된 ONE SOURCE MULTI USE[애니메이션 영화 슈렉의 원작인 동화 vs 영화 장르 비교분석]1. 슈렉은 무엇인가?2. 원작 동화와 영화 의-소개-줄거리3. 장르의 변화에 따른 스토리텔링 분석: 장르의 특성-원작 캐릭터 -> 영화 캐릭터-원작 스토리 -> 영화 스토리-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전체적인 스토리텔링의 특징4. OSMU마케팅을 이용한 영화 외 문화 콘텐츠 산업.5. 과제를 마치면서1. 슈렉은 무엇인가 ?* Shrek ! : [우~웩!] 영.미권의 구역질을 표현하는 의성어.2001년, 4년이라는 제작기간 끝에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슈렉. 이 영화는 드림웍스에서 제작하여 기존의 애니메이션 흥행기록을 넘어섬과 동시에 실사영화들의 흥행기록들을 무참히 깨 버렸다. 그리고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20여 년, 미국의 애니메이션 영화로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칸 영화제 공식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작품성까지 인정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큰 흥행을 하며 무려 세 편의 속편까지 만들어 낸 영화 슈렉에도 원작은 존재한다. 사람들은 영화 해리포터나 나니아 연대기가 영화가 아닌 소설이 원작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슈렉은 그 속편이 등장할 때 까지도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애니메이션 영화 슈렉의 원작에 대한 소개와 영화라는 매체로 옮겨지면서 어떻게 스토리텔링 되었는지를 살펴보자.2. 원작 동화*윌리엄 스테이그- 미국의 만화가이자 동화작가인 윌리엄 스테이그. 그는 신문이나 잡지에 1600개의 카툰을 그린 미국의 카툰의 왕으로 신문잡지 카툰 전문 작가로 활동했다. 그러다 60세의 나이에 친구의 권유로 어린이 동화책을 만들기 시작 해 자신이 직접 삽화를 그려 넣으며 총 30여 편의 동화책을 펴냈다. 무엇보다 2000년 미국의 드림웍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영화 의 원작 동화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 대부분은 어린 이와 귀여운 동물들의 순진무구한 시선을 통해 자연에 대한 사랑, 가족과 이웃의 소중함을 그리고 있다.*원작 동화에서 영화화 되면서 캐릭터들의 변화(슈렉, 파쿼드 경, 당나귀, 용, 피오나)원작 동화에서 주인공 슈렉의 모습은 머리에는 알 수 없는 뿔이 솟아 있고 칙칙한 초록색의 피부를 가지고 있다. 또 얼굴 전체를 덮고 있는 검은 점은 전혀 귀엽지 않다. 그리고 윌리엄 스테이그의 그림체는 슈렉을 더 기형적이고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동화 속 슈렉은 자신을 보고 경악하고 멀리하는 사람들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을 골려주고 그것을 더 재밌어 하며 자심감 하나에 산다. 하지만 영화 속 슈렉은 모든 것을 차단하고 홀로 늪에서 혼자만의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자신의 괴물 같은 모습에 대해서 자신감도 없다. 물론, 이런 부분들은 피오나 공주를 만나면서 차차 회복되어 간다. 또 하나 가장 큰 캐릭터의 변화는 슈렉의 모습이 관중들에게도 친근한 느낌을 줄 수 있는 혐오스럽지 않은 귀염성을 지닌 캐릭터로 변모한 것이다.다음으로 피오나 공주는 동화에서는 그냥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공주이며 세상에서 슈렉 다음으로 못생긴 캐릭터로 소개된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피오나 공주는 저주에 걸려 해가 지고나면 흉측한 모습으로 변하는 캐릭터로 설정되어있다. 그래서 거의 끝 부분을 제외하고는 아름다운 모습의 공주로 나타난다. 그리고 동화 속의 슈렉의 안내자 역할을 하는 당나귀는 동키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이 영화에서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는 캐릭터로 변신했다. 또 동화 속에 등장 해 슈렉을 골탕 먹이려다 오히려 당하는 용은 동화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변화 해 공주를 가둬 둔 성에 사는 무시무시한 용으로 설정 되어 당나귀 동키의 와이프가 된다. 이렇게 동화와 영화의 캐릭터를 분석 해 보았을 때 영화 매체로 옮겨지면서 가장 큰 캐릭터의 변화는 원작 ‘슈렉’ 보다 순화된 인물, 그리고 덧붙여 원작에서의 슈렉의 성격보다는 보다 착하고 사람들과 친해지기 쉬운 관중이 보는데 있어서 거북하지 않은 대중친화적인 인물로 설정이 되었다는 것이다.*원작 스토리 vs 영화 스토리 (Shrek 1.)각각의 스토리에 대한 부분은 위에서 설명을 했다. 그를 바탕으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아보자.전체적으로 슈렉이나 슈렉을 둘러싼 캐릭터들의 구조 그리고 공주를 만나 결혼한다는 스토리는 원작과 영화가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동화는 끝까지 동화답게 흘러간다. 그런데 영화의 스토리진행을 살펴보면 영화를 보는 대중의 관점에서 재밌는 에피소드를 중점으로 관객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장치들을 만들어 이야기가 전개된다.그리고 그 스토리의 결말을 살펴보면 원작의 경우 누구도 축복하지 않는 둘만의 결혼을 한다. 반면 영화의 결말은 ‘슈렉’은 모든 이들로부터 축하와 관심 속에서 결혼을 하고 끝을 맺는다. 이는 교훈적인 동화 장르의 특성과는 다르게 관객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미디어 산업의 최대목적인 상업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슈렉과 공주는 최대한 빨리 서둘러 결혼을 했지. 그리고 영원히 무시무시하게 살았대. 앞길을 막아서는 것은 뭐든지 겁주어 쫓아 버리면서 말이야. - 원작 결말-...그리고 못 생긴 둘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영화 결말-*영화 장르의 전체적인 스토리텔링의 특징- 원작 비꼬기를 넘어선 재해석변형적 각색: 영화 그 자체로서의 소설의 그늘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는 하나의 예술적 성취, 소설을 그대로 '번역하듯 영상화' 하는 것이 아니라 소설을 완전히 새롭게 '변형'하 는 기술.첫 장면에서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파격적이고 엽기적인 모습. 그리고 마법에 풀린 아름다운 공주가 아니라 슈렉과 같은 오우거로써 모습을 얻으면서 기존의 전형적인동화의 틀을 완전히 벗어 버린다.-유명인의 목소리애니메이션 장르는 그 영화의 주인공의 목소리를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도 그 작품의 캐릭터와 영화 전체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슈렉 목소리에 영화배우 마이크 마이어스, 그리고 피오나 목소리에 카메론 디아즈 그리고 코믹 영화에 자주 출연하고 이 영화의 감초 역할을 하는 당나귀 동키 목소리에 배우 에디머피 까지 이 목소리 출연 한 세 명의 배우들은 1편부터 슈렉 4까지 전 편에 걸쳐 출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슈렉4의 우리말 버전에서는 악당 럼펠의 역을 개그맨 이수근이 맡으면서 더욱 관객몰이를 한 바 있다.-락 밴드 음악주로 젊은 밴드들의 락 뮤직과 에디 머피의 Livin' La Vida Loca나 Holding out for a hero. YMCA 같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음악들 그리고 영화OST로 쓰여 널리 알려진 음악들을 사용 해 사람들에게 흥을 더하며 그 가수와 영화를 떠 올리게 하는 연상효과까지 더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영화 속의 배경이나 지역이 되는 곳들을 시대를 다양하게 그리고 있다.-패러디슈렉은 1, 2편을 통하여 약 300여 작품을 패러디 했다. 그 중 어떤 것은 모방한 것도 있지만 그것이 관객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오며 즐거움과 흥미를 유발시키고 유머를 더 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는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발전이라는 개념보다 추가라고 생각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뉴미디어 상품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에 따른 뉴미디어 이용자들의 수용형태 같은 연구는 뒷받침 되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것이다.영화, 신문, 방송의 내용이 개인의 인지, 태도 의견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는 효과론은 미국의 매스컴 학자들이 사회적인 관심이 매스미디어의 효과에 고조되면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매스미디어의 효과에 대해 객관적으로 연구하려고 노력했고 그로인해 효과연구는 1920년대부터 시작되었다.효과연구는 그 시기에 따라 효과의 크기가 차이가 나는데 그것은 매스미디어의 영향력 자체가 확장되거나 축소되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연구의 기본가정과 연구방법이 각각 달랐기 때문에 각 연구마다 효과의 크기가 다르게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그리고 1960년대 이전의 효과연구들이 단지 설득적 효과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면 1960년대 이때는 연구자들이 수용자의 인지적인 변화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미디어가 수용자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보다는 수용자들은 왜, 어떻게 미디어를 이용하는가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게 된 것이다.이것은 효과를 보는 것이 태도변화에서 인지변화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생각 해 보면 아날로그 매체보다 디지털적인 방송통신 매체는 수용자들의 상호작용성과 실재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 상호작용이 수용자와 송신자를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이것은 수용자 중심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전환을 의미하게 된다. 실제로도 처음 미디어 연구는 송신자 중심에서 수신자 중심으로 전환하게 되었다.매스미디어의 효과 연구에서 왜 수신자 중심의 효과 연구가 필요한 것 일까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를 이용해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그 기대를 수용자를 통해 바란다. 여기에서 기대는 바로 돈이다. 방송 통신 융합매체 인터넷 같은 것들은 모두 그것을 이용하는 수용자들을 통해 이윤을 남기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이용자의 파악이 불가피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발전이라는 개념이 있을 것이다. 보다 더 나은 보다 더 발전한. 그러기 위해 그 효과에 대해 수용자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것이다.또한 매스미디어의 힘은 막강하다. 그래서 미디어는 사회 전반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증대되어왔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거의 모든 체제가 미디어의 정보 제공 없이는 하루도 유지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사람들의 미디어 의존도는 말로 할 수 없을 정도로 높게 나타나고 있고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을 정도이다. 그래서 매스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메시지는 사회나 그 구성원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매스미디어의 위력은 대단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것들, 그리고 문제점들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에는 사회나 개인에 악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미디어를 이용하는 수용자와 정보를 제공하는 송신자의 관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의 효과연구는 전적으로 수용자의 입장에서 연구되어져야하고 송신자는 그것을 분석, 파악하여 보다 높은 질의 정보를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그에 반해 수용자는 매스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선택해서 받아들이고 그릇된 정보들은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가끔 생각해 보면 정보를 제공하는 미디어 송신자들은 우리가 그릇된 정보조차 자신들의 의도대로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이없다는 생각이 든다. 효과 연구는 수용자중심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송신자들은 수신자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서 교묘하게 우리를 분석하고 연구해 이용한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 분명 수신자인 우리들은 매스 미디어로 인해 수많은 정보를 제공받고 있고 또 그 정보들을 이용하는데 이렇게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 일까.수용자들이 우리를 돈벌이의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일까. 아니면 연구의 상대가 단지 수신자라는 이유에서 일까. 그러나 분명 매스미디어의 효과에 대한 연구는 그것을 이용하고 받아들이는 수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하지만 송신자가 수신자를 이윤추구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의심은 항상 가져야 할 것이다. 예를 들면 매스미디어는 동일한 시간에 여러 매체를 통해서 동일한 정보들을 불특정 다수들에게 전달한다. 그래서 이 매스미디어가 어떤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그 정보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면 사람들은 의심 없이 그냥 그 정보를 신뢰하면 파급효과가 엄청나게 되고 송신자들은 돈벌이가 쏠쏠해 질 것이다. 즉, 어떤 드라마에서 누구누구 텔런트가 어떤 목걸이를 하고 나왔는데 그 드라마가 뜨면서 그 텔런트가 했던 목걸이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지고, 그것을 사려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랑 같은 얘기인 것이다.또, 정치의 경우도 특정인이나 특정정당의 정책이나 발언을 매스미디어에서 어떻게 보도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호감과 반감이 생기게 되고 마찬가지로 경제의 경우도 매스미디어가 어떤 재화나 상품, 서비스에 대한 정보 전달을 하면 일반대중에게 강력한 동기 유발을 하게 되는 것이다. 광고 중에는 저런 거 안사 했지만 마트에 가서는 무의식 속에 내제되어있던 그 광고 상품을 구입하는 것처럼....또, 이렇게 매스미디어가 발달함으로써, 대중들은 손쉽게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되고 때문에 과거처럼 미처 내가 알지 못해서 정보의 단절로 인한 차이가 줄어들고 대중들의 정보에 대한 습득정도가 평균화되거나 보편화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은 매스미디어의 발달로 정치적인 문제나 경제적인 상황이 모든 대중에게 전달되기 때문에 대중들이 모르는 비리나 은밀한 부분들이 줄어들게 되었다고 생각한다.방송이라는 미디어.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 하나인 PD수첩. 그리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같은 프로그램이 주로 다루는 사건과 방송 형태를 보면 그 기획의도가 민중들의 정보공유라고 생각한다. 과거 이런 사건 보도들은 시민들이 참여 할 수 있는 제도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인터넷매체를 통한 여론 조성, 그리고 사람들의 직접적인 참여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사회민중의식 발전할 수 있었다고 본다.
방송 비평문(다큐멘터리 장르의 역사비평)다큐멘터리 장르는 영화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현실화 시킨 인물은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였다. 사실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영화의 한 장르로 시작된 다큐멘터리는 TV를 통해 발전되어왔다. 영화 스크린이 아닌 TV를 통해 방영되어진 세계 최초의 다큐멘터리는 플래허티의 이다. 최초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플래허티는 다큐멘터리에서 순수성을 추구 했지만 다큐멘터리의 개념을 확립한 영국의 존 그리어슨은 다큐멘터리를 실제기록, 그 이상으로 보고 사회적 목적과 그것을 알리고 설득하고 수용자가 어떤 행동을 유발한다는 것에서 교육적 기능에 큰 중점을 두고 있다.다큐멘터리는 영화에서부터 시작되어 TV의 등장으로 인해 다큐멘터리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서 큰 성장을 해 왔고 다큐멘터리의 영역이 확대 되었다.또,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다큐멘터리 영역의 큰 발전이 지속되고 있다. 차마고도, 북극의 눈물, 아마존의 눈물, 누들로드 그리고 한국영화의 침체기였던 2009년. 전래 없는 다큐멘터리 영화 워낭소리의 흥행까지... 이 시점에서 다큐멘터리 영역의 더 큰 발전을 위해 과거의 다큐멘터리와 현재의 다큐멘터리 장르를 비교. 분석 해 보아야 할 것이며, 다큐멘터리 장르가 가진 문제점을 꼬집어보고 그것에 대해 한 걸음 앞서 생각 해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큐멘터리 장르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비평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역사비평은 비평에 설득력을 제고시키고, 비평 가설에 대한 정당성과 허구성을 파악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무엇보다 현재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후속 연구에 대한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큐멘터리 장르에 대한 분석도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비평이 유용할 것이라 생각한다.세계는 지금 자연 환경의 급변으로 인해 떠들썩하다. 시대가 변하고 자연이 변화하면서 외적 환경에 관련된 다큐멘터리들이 만들어지고 또, 인기 몰이를 하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것에는 당대의 이데올로기 또한 크게 작용하리라 본다. 하지만 앞으로 다큐멘터리를 이끌어가 장르는 무엇이 될 것인가 ? 과거와 현재의 다큐멘터리 장르의 기능과 용도 그리고 변천 해 온 그 과정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발전가능성과 현재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자.앞의 서론에서와 말한 것 과 같이 다큐멘터리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30년대부터였다.1930-1940년대 다큐멘터리 이론을 정립한 영국의 영화감독이자 제작자이며 영화이론가였던 존 그리어슨이 다큐멘터리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그리어슨은 영국 다큐멘터리 장르의 창시자이자 1930년대 영국 다큐멘터리운동의 중심인물로서 그의 이론들은 아직도 모든 다큐멘터리 이론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다큐멘터리의 사전적 의미는 ‘허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거나 거의 사용하지 않고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관한 사실을 보여주는 TV프로그램이나 사실적 영화 라고 나타내고 있다.다큐멘터리란 정확하고 믿을 만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런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즉 어떤 것이 진실인지, 아니면 감독의 주관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타당한 근거가 있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 이런 이유에서 다큐멘터리는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 안에 사회성을 담고 있는 장르이다. 아마도 우리가 기억하는 다큐멘터리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이 사회문제를 다룬 것들일 것이다. 그 이유가 다큐멘터리의 내용의 토대가 되었던 것이 바로 ‘사회’이기 때문이다.다큐멘터리 초창기인 1930년대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들이 다룬 주제들 역시 거의 사회문제였다. 대표적인 예가 1930년대 대공황시절의 다큐멘터리영화들이다. 당시 다큐멘터리영화들이 담고 있던 주제들은 기아와 가난, 실업의 고통 등이었다.우리가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다큐멘터리의 장르 중 하나가 자연 다큐멘터리인 이유 또한 마찬가지이다.KBS의 ‘환경 스페셜 은 자연의 모습을 아름답게 기록해서 우리에게 그 모습을 보여준다. 또 환경 스페셜 같은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으면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자연과 인간이 함께 미래를 만들어 나가야 하는 존재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이렇게 다큐멘터리는 사실과 인간 사회를 끊임없이 연결시키려고 시도하며,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어떤 메시지를 던진다. 이러한 점이 아마도 다큐멘터리의 가장 본질적인 핵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한국 텔레비전들이 자주 다루는 다큐멘터리의 유형을 살펴보면 주로 역사 다큐멘터리, 사회 다큐멘터리, 인간 다큐멘터리, 자연 다큐멘터리, 문화 다큐멘터리, 스포츠 다큐멘터리, 과학 다큐멘터리, 의학 다큐멘터리, 탐험 다큐멘터리, 엔터테인먼트 다큐멘터리, 환경 다큐멘터리가 있다.이 다양한 유형들 중에서 가장 시청자들로부터 인기 있는 것이 인간다큐멘터리이다. 그 이유는 휴먼 다큐멘터리의 주제가 바로 인간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구력이 대단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인간 다큐는 그 어떤 다른 유형들의 다큐멘터리보다도 사랑받아왔고 또 많이 제작되어져 왔다. 가장 큰 예로 휴먼다큐멘터리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극장이 있다. 인간극장은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1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사랑받아오며 휴먼다큐 중에 장수프로그램으로 인정받고 있다.1990년대부터 한국다큐멘터리 전성시대라 할 정도로 급성장 했다. 하지만 방송의 특성상 다큐멘터리의 상업화와 오락화를 전제로 이뤄진 것이기 때문에 한국방송의 성장이나 공적인 성장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본다.무엇보다 한국 다큐멘터리가 가져 온 가장 큰 변화는 다큐멘터리의 고유의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은 다큐멘터리의 형식의 변화이다. 방송사의 시청률 경쟁으로 인한 다큐멘터리의 오락화 경향으로 전통적 리얼리티 장르였던 다큐멘터리에 재연이라는 드라마적 요소가 가미되면서 전통적 다큐멘터리가 아닌 탈장르 현상 이 가속화되게 되었다.그래서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 다큐멘터리적 요소인데 흥미위주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구성으로 오락물에 더 가까워져 버렸다. 그래서 체험 삶의 현장, VJ특공대, 경찰청 사람들 같은 혼합 다큐라고 불리는 것들이 생겨나게 되었다.우리나라의 최근동향은 2007년 다큐멘터리 차마고도를 시작으로 북극의 눈물. 그리고 아마존의 눈물까지 자연환경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각광받고 있다. 2009년 12월에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은 다큐멘터리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21.6%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자연 다큐멘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우주 만물의 외경이 어디에 숨어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또 그 속에서 어우러져 숨 쉬고 살아가는 인간과 동식물의 기상천외하고 다양한 모습들을 여러 가지 기법을 통해 포착하지 않으면 안 되는 무척이나 까다롭고 어려운 장르이다.과거 자연 다큐멘터리들을 살펴보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과의 관계는 거의 도외시된 채, 동물의 왕국이나 식물도감 같은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냈는데 이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경향이라고 생각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