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터주신1) 종류 및 형태민간신앙에서 집터의 안전과 보호를 맡아보는 신으로서, 터주님 ·터줏대감 ·지신(地神)이라고도 하는 집터의 신(神)이다. 터줏대감은 특히 집안의 재보(財寶)를 관장한다. 성주 ·제석 ·삼신 ·문신 등의 가신(家神)과 동렬에 놓이는 신이며, 오방지신(五方之神) 가운데 중앙신(中央神)으로서 다른 4방신을 다스린다. 가정에서는 터주에게 명절 때나 집안에서 고사, 큰 굿 등을 할 때 터줏상을 차려서 위하기도 한다. 집안의 땅을 함부로 파서 공사를 하든가 하면 터주가 노하여 재앙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것을 동티[動土]라고 한다. 신체(神體)는 자그마한 항아리 속에 쌀 또는 벼 따위를 넣어 짚으로 덮은 것인데 장독간 모퉁이나 뒤뜰에 안치해 둔다.)터주신앙은 집터를 관장하는 신에게 올리는 의례를 말한다. 터주는 집안 대지를 지켜주는 지신을 일컫는데, 이 지신은 家神일 뿐만 아니라 마을의 땅을 지켜주는 신일 수도 있고 이 나라의 땅을 지켜주는 신일수도 있다. 터주신앙은 지역에 따라 집안에 따라 다양한 양상이 찾아진다. 부르는 명칭은 지역에 따라 철륭, 터주, 토주, 터주대감, 텃대감, 지신 등의용어로 부르고 있어 자칫 별개의 것으로 인식할 수 있으나 모두 집터를 관장하는 신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모시는 장소 또한 집 뒤안을 광범위하게 지칭하거나 집 뒤안이나 집 옆에 위치한 장독대에 좌정한 것으로, 그리고 집 뒤 담장 아래에 위치한 것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이러한 터주신앙을 접전하는 주체는 당연 여성이다. 할머니, 어머니, 며느리가 주체가 되어 매년 정기적으로 의례를 수행한다. 일부 경기지역에서는 남성들이 협조한 가운데 의례를 행하는 경우가 있고, 제주지역에서는 남성들이 주도한 가운데 진행되기도 한다.터주의 형태는 쌀을 봉안하는 양상에 따라 지역적 차이를 보인다. 즉나락, 벼, 쌀, 볍씨 등을 담은 단지를 모시고서 매년 정기적으로 갈아주거나 이러한 단지를 모시지 않은 대신에 명절이나 특정일에 터주가 좌정한 곳에 상을 차려놓고서 그들의 소원하는 바는 부엌과 가까운 집 뒤안에 장독대를 마련함에 따라 철륭을 모시게 되면 자연 깨끗한 곳인 장독대에 모신다. 따라서 오늘날 장독대와 철륭을 동일하게 인식하고 있으나, 장독대가 곧 철륭은 아니다.) 옛말에‘집안 신 가운데 뒤안이 가장 세다’고 하여 잘 모시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철륭을 모시는 집은 따로 있다고 한다. 대체로 산 밑에 집터를 잡은 집이나 집터가 센 집에서 주로 모시는 것으로 보아 지신의 성격과 혼융된다.전남지역에서는 철륭이 어떻게 모셔지고 있는지를 지역, 내용, 장소, 쌀 봉안형태로 구분하여 정리하였다. 지역은 이해하기 쉽도록 동부와 서부지역으로 구분하여 살폈다.)철륭의 쌀 봉안의례는 집 뒤안에 쌀, 나락을 담은단지(오가리)를 모시거나 설, 정월 보름, 추석 때 철륭상을 차려놓고 비손하는 것으로 모시고 있다. 철륭상은 철륭단지와 같은 신체를 놓아두는 대신에 매년 정기적으로 상을 차려놓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전남 내에서도 지역에 따라 쌀 봉안의례 양상이 다르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전남의 동부와 서부의 산간지역과 평야지역에서는 철륭의 양상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는 반면에, 도서해안지역인 고흥, 광양, 여수, 신안, 완도 일대에서는 이러한 양상을 찾아볼 수 없다. 단 진도에서는 철륭의양상이 찾아지고 있으나 이는 지극히 일부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제보자의 개인 성향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으나 현재적 시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조사가 이루어진 내용임을 생각해 볼 때 예의 주시할 사항이다. 이러한 전남지역 철륭신앙의 쌀 봉안의례 분포를 지도에 표기하면 밑에와 같다.전남과 마찬가지로 전북지역을 동부와 서부로 구분하고서 해당 내용을 정리해보면, 전남과 마찬가지로 전북지역에서도 철륭은 집 뒤안이나 장독대에 좌정해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집터가 센 집에서주로 철륭을 모시고 있다. 또한, 전북지역은 전남지역에 비해 철륭단지를 모시는 지역보다 철륭상을 차려놓는 것으로 모시는 지역이 확연히 많다. 서부지역인 완주, 익산과 동부지역에인 무 단지에 쌀, 벼, 나락을 담고 그 위에 일종의 보호구로서 볏짚으로 만든 짚주저리를 씌운 형태가 일반적이다. 철륭단지와 마찬가지로 터주단지에는 초여름과 늦가을에 각각 햇보리와 햅쌀이 나게 되면 묵은 나락이나 곡식을 떨어내고 신곡으로 갈아준다. 지역에 따라서는 일 년에 한 차례씩만 햇나락이나 햅쌀을 교환해준다. 10월 상달에는 짚주저리도 새것으로 깨끗하게 씌워준다. 이렇게 터주단지를 모시는 것 대신하여 특정일에 음식을 차려놓기도 한다. 여기에 충남의 지역적 양상을 동부와 서부로 구분하여 서 보면 충남의 동부지역에서는 대체로 터주단지를 모시고 있는 반면에, 서부지역에서는 예산, 청양을 제외하고는 단지와 같은 신체를 모시지 않고 특정일에 음식을 차려놓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벼나 쌀을 담은 단지가 없다 하여 신앙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형태만 다를 뿐 쌀을 대신하여 상을 차려놓는 것 역시 터주신앙을 모시는 주요한 행위인 것이다. 이를 지도에 표기하면 다음과 같다.< 충남지역 터주신앙의 쌀 봉안의례 분포 >충북지역에서도 터주신앙은 성주와 함께 전역에 걸쳐서 존재하는 보편적인 신앙 형태이다. 터주는 집의 터, 집안의 터를 지켜주는 수호신으로서, 성주가 남성 주인인 대주의 보호신이라면 터주는 여성 주인인 주부의 보호신 기능을 한다.) 터주는 뒤꼍에 위치한 장독대에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다. 터주의 쌀 봉안 형태는 쌀이나 벼를 넣은 작은 단지에 짚으로 엮은 주저리를 덮어두는 것으로 모신다. 지금은 이렇게 모시는 경우가 많지 않은 대신에, 떡을 준비하면 터주에게 먼저 바쳐놓는다. 여기에 충북지역 터주신앙의 전승양상을 정리해보면 충남에서는 터주단지를 모시지 않은 대신에 터주상을 차려놓는 지역이 서부지역에서 많이 찾아지고 있는 반면에, 충북지역에서는 전역에 걸쳐 터주단지를 모시고 있는 점이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명절이나 가을고사를 지낼 때 으레 터주 앞에 떡을 바치거나 음식을 차려놓는 점 역시 두드러진다. 또한 아래 그림과 같이 단양의 경우 쌀 담은 단지 대신에고 막대기나 말뚝 혹은 돌 위에 짚주저리를 씌워놓은 것으로 이는 형식만 취한 형태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신앙 행위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점차 편의를 도모하려는 발상의 전환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서부는 동부에 비해 평야지역이라는 지리적 환경과 인구 밀집지역이라는 인문적 환경의 복합관계 속에서 형성된 부산물일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경기지역 터주신앙의 쌀 봉안의례 양상을 지도에 표기하면 다음과 같다.< 경기지역 터주신앙의 쌀 봉안의례 분포 >(4) 강원지역강원지역에서도 터주는 집터 전체를 주관하는 신이다. 모시는 양상은 집 뒤안의 장독대 근처에 쌀이나 나락을 담은 단지 위에 짚주저리를 씌워놓은 형태로 이는 여느 지역에서 찾아지는 형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조사자료에 따르면 터주단지를 모시는 지역은 삼척, 속초, 원주, 춘천, 영월, 철원, 화천 등지로 경기, 충청지역에 비하면 터주신앙이 현저히 약화되어 있다. 다만 경기도와 인접한 철원에서는 터주항아리를 ‘의기단지’, ‘ 대감단지’라 부르며, 업과 함께 모시고 있기도 한다. 우선 강원지역 터주신앙의 내용, 장소, 형태 등을 살펴보면 강원지역에서는 쌀 담은 단지를 모시기보다는 오히려 텃 고사 지낼 때 터주를 함께 모시는 형태가 훨씬 일반화되어 있다.그러나 양구, 양양의 경우는 텃 고사를 지낼 때 터주를 위하는 행위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기도 한다. 그만큼 터주신앙의 관념이 약화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영동지역에서는 터주를 ‘오방지신’이라 부르며, 텃 고사를 지낼 때 성주 다음으로 오방지신을 모신다. 텃 고사는 집안과 자손의 평안, 생업의 번창을 기원하는 정기적 의례이나 주로 정월이나 10월에 많이 모신다. 명칭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주로 텃 고사, 안택)으로 부른다. 안택은 전국적으로 나타나는 보편적인 명칭이지만 텃 고사는 이 지역의 특징적인 명칭이다. 텃 고사에서 모시는 신격은 성주, 조왕, 오방지신(또는 터주지신), 조상, 우마신 등이다. 지역에 따라 삼신, 제석, 터주단지를 모시는 지역은 울주에서만 찾아진다. 그 외에 지역은 고사 지낼 때나 집을 짓는 특별한 상황에서 터주를 모시는데, 이는 오히려 지신의 성격이강하다. 여기에 전라도와 인접한 산청, 하동에서 철륭이라는 용어가 나타나는데, 이는 문화의 전승 맥락에서 주목된다.(6) 제주지역바다로 둘러싸인 제주에서는 집터를 주관하는 신을 ‘토신’, ‘ 터신’이라 부르며, 토신에게 지내는 제의를 ‘토신제’라 부른다. 또한 정월에 격식을 갖추어 신을 맞이하는 의례이기에‘정월대위’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토신제는 모든 가족의 안녕이나 후손 발복을 기원하기 위해 모시는데, 모든 가정에서 모시는 것은 아니다. 또한 모시는 가정에따라 제의 양상이 다른데, 대체로 1년마다 혹은 3년마다 제를 지낸다. 제는 집안 마당이나 집 뒤 깨끗한 곳에 모신다. 설을 지내고 나서 집안사람들의 생기복덕에 맞추어 택일을 하고, 이때 제를 올리는 사람도 함께 구하는데, 스님을 모시기도 하고 심방을 모시기도 한다. 또한 가정집에서 축문을 써서 유교식으로 치르기도 한다.) 마을에 따라 그리고 가정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겠으나 심방을 빌어서 할 경우 제물로 돌레떡을 만들고, 잘 차리려면 시루떡 대신으로 가루를 보시에 꼭꼭 담아 종이를 깔고 엎어 놓고 찐 보시떡을 올리기도했다. 또 문전과 조왕께 제숙, 나물, 메를 올린다. 스님을 청해 토신제를 할 경우 심방이 하는 방식과는 달리 태세라고 조왕을 위하고 문전을 위하면서 제에 함께 따라온 잡신을 위하는 과정을 마지막으로 한다. 이처럼 제주도의 터주신앙을 살펴보면 여느 지역과는 다르게 제의가 세분화, 정형화 되어 있으며 자세하다. 또한 무속, 불교, 유교 등의 습합양상이 분명하다. 특히 남성이 주도하며 제의 절차가 유교식으로 엄격하게 거행되고 있어서, 터주신앙은 유교문화 유입 이후에 무속적인 성격과 불교적인 성격이 적절하게 융합 발전한 후대적 제의양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토신제 역시 여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데, 이는 시대가 바뀌고 의다.
3. 조왕신1) 종류 및 형태조왕신은 부엌에 있는 신으로 부엌신, 조왕 할매, 조왕 대감 등으로 불리며 火神, 재물 신으로 인식되고 있다. 조왕이 화신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불을 때는 아궁이를 맡고 있기 때문이며, 또한 재물 신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궁이에 불을 땜으로써 음식을 만들기 때문이다.)조왕신의 신체는 사기종지로서 이는 조왕중발, 조왕 보세기, 조왕물그릇이라 불리워진다.2) 성격)조왕은 대개 부엌 등에 좌정하면서 불, 재산, 집안평안 등에 관여하는 신으로 여기고 있다. 조왕은 성주나 삼신처럼 잘못 모시면 나가기도 하고 다시 모시기도 하는 신앙의 대상은 아니다. 처음 새 집을 마련했을 때부터 항상 부엌이나 일정한 곳에 머물러 있는 가정신앙의 대상이다. 여기에서는 조왕의 성격을 구명(究明)하기 위해서 전국으로 조왕의 호칭 사용에 관한 분포상황, 조왕의 신격과 조왕이 담당하고 있는 역할, 조왕의 신체, 조왕의 모시는 순서에 관해서 파악하고자 한다.(1) 호칭 사용조왕신앙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호칭에 관해서는 ‘조왕’이 가장 일반적인 형태이고 지역에 따라서 주왕, 지앙, 주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한 성주조왕, 조왕각시, 정지조왕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조왕의 호칭사용에 있어서는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경우에는 각각 1개 시·군에서 성주조왕이라고 지칭되었고 경상남도는 성주조왕이라는 호칭의 사용이 빈번했다. 강원도에서는 성주를 부엌에서 모시는데 조왕도 부엌에 있기에 함께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경상남도에서는 성주조왕의 신체가 겹으로 접은 직사각형의 한지인데 그 위에‘성주조왕’이라는 신명(神明)을 기입하기도 한다. 처음 봉안할 때는 그 집 대주가 제의를 주관하며 그 외에는 주부가 제의를 주관한다고 한다. 또 제의는 이 신을 모신 부엌의 부뚜막에 제물을 진설한 뒤 음력 10월 첫 곡식을 수확한 후에 한다. 이 지역의 가옥구조 중에서 대청마루가 없는 경우에는 부엌의 조왕과 성주가 함께 지칭될 수밖에 없다는 해석도 있었다. 신영순은 민가의 가옥구조와 조왕의 관계에, 부인상징, 며느리격, 아주머니신, 부녀자들의신, 할머니신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에서는 재산신, 부엌을 관장하는 신으로 표현되었다. 경상남도에서는 화신(火神), 여성신으로, 경상북도에서는 여성신, 재물신, 각시, 집안가족의 평화를 수호하는 신으로 나타났다. 충청남도에서는 여신, 시누이로, 충청북도에서는 여자, 시어머니, 대주의 부인, 재산신으로 나타났다. 전라남도에서는 특별한 언급이 없었으며 전라북도에서는 할머니신으로 나타났다. 제주도에서는 할마니, 할망, 불, 여성신으로 여겼다. 조왕의 신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의 지역에서 조왕은 아주머니, 할머니, 여성, 각시, 대주의 부인, 시누이, 부녀자 등 여신으로 파악했다. 이것은 조왕을 모시는 부엌이라는 장소가 여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조왕은 부엌에 모시는 신으로 집안의 길흉을 관장하고 있다. 자식들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해 주는 신으로 간주하고, 삼신과 함께 육아의 기능도 담당한다. 그 밖에도 조왕은 재산에도 관여한다고 여겨 집안의 불씨를 지켜주는 존재로 관념한다. 그래서 화신(火神)의 성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민담에도 불씨를 꺼뜨리는 것을 재산을 내보내는 것과 같이 여겨 여성의 중요한 덕목 중에 하나인 살림을 못하는 여성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는 불씨가 집안의 계승을 상징하기 때문에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이어지며 불씨를 잘 관리하는 것이 집안이 복을 받는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이와 달리 강원도의 예를 살펴보면 용왕의 성격도 부여하고 있다. 이른 새벽 남들이 보지 않는 가운데 마을 내의 맑은 샘의 물을 떠서 조왕을 모시는 행위는 정월대보름날 세시풍속의 하나인 ‘용알뜨기’) 와 일맥상통한다고 보았다. 조왕에 올릴 물은 이른 새벽이나 아침에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일어나 뜨는 것으로 정성을 드리는 것으로 여긴다.조왕의 기능 및 역할은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데 크게는 가정평화, 음식이나 부엌을 수호하거나 재산 등에 관여한다. 이필영은 조왕신앙이 원래 부엌의 불을 관장하는데서 평안’이 가장 보편적으로 고루 나타났으며, 재산 및 음식에 관여한다는 생각도 많았다. 크게 본다면 이들은 결국 가정 내의 생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3) 신체(神體))조왕의 신체는 조왕중발, 조왕보새기, 조왕그릇, 조왕단지 등으로 지칭되며 재질과는 상관이 없고 물을 담을 수 있는 기능을 가진 그릇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조왕은 불의 신인데 왜 신체에는 물을 담아두는 것인가에 관한 의문이 생긴다. 박행묵은 물과 불은 공통적으로 종교적인 정화력을 갖기 때문으로 풀이했다.) 굿을 하기 전 부정풀이에서 정화수에 재를 넣어서 제장(祭場)을 정화하는 것, 장례에서 관이 나가면 아궁이에 불을 때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초상집에 다녀오면 먼저 부엌부터 들르는 것도 부엌은 불이 있는 깨끗한 곳으로 생명을 지켜주고 정화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결론적으로 물은 불을 끌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상반된 성격을 지니기도 하지만 정화라는 공통적인 상징성을 가지기도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조왕은 물을 담는 그릇이라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신체(神體)가 없이 건궁의 형태로 모셔지고 있는 곳도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 종지나 주발·중발·옹가지·사발·보시기·바구니·그릇·사발·보새기·종재기·투가리·옹그릇·동우 등으로 나타나며 경우에 따라서는 남편의 밥그릇)이 보이기도 한다. 강원도에서는 건궁으로 나타났다. 경기도에서는 물종지와 건궁으로 조사되었다. 경상남도에서는 건궁과 조왕중발로, 경상북도에서는 물사발, 건궁, 옹가지, 바가지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충청남도에서는 바가지, 사발, 건궁, 청수그릇, 물로, 충청북도에서는 조왕사발, 건궁, 흰색사발로 보였다. 전라남도에서는 옹기 보세기, 조왕그릇, 종기, 대접, 남편밥그릇으로, 전라북도에서는 그릇, 투가리, 조왕그릇 등으로 나타났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신체가 없이 건궁으로 모시는 경우, 물을 담기 위한 그릇이 형태로 모시는 경우, 건궁과 그릇의 형태로 모시는 경우의 세 가지로아들이나 남편이 군대를 갔거나 자식들이 외지에서 생활을 할 경우에도 조왕에 정성을 들이는 가정이 많았다. 조왕을 모시게 되는 장소는 불 때는 장소인 부뚜막과 아궁이), 여기에 솥이 걸리게 되는데 솥 자체, 혹은 솥뚜껑, 솥 앞, 솥 옆, 솥 뒤, 혹은 솥의 주변에 선반을 얹은 장소이다. 또 이들과 관련이 있는 부엌 그 자체가 조왕을 모시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과거의 부엌형태에서는 앞서 언급한 장소가 조왕이 좌정하는 곳이 되지만 입식부엌으로 바뀌게 됨에 따라 조왕은 싱크대, 싱크대 주변[싱크대 위 선반], 싱크대 주변의 가스레인지 및 가스레인지 사이, 전기밥솥, 보일러실 등으로 변화가 생겼다.(2) 모시는 시기와 순서일단 조왕을 모시게 되면 일별, 월별, 년도 별로 정기적으로, 혹은 비정기적으로 조왕을 위하게 된다. 일별로는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씩 이른 아침이나 새벽녘, 밥 짓기 전에 조왕을 위한다. 월별로는 매월 혹은 몇 개월에 한 번씩 조왕을 위하는데 구체적으로는 양날, 범날, 소날, 매월 1일), 3일, 6일, 15일, 16일, 26일 등 길일이라 여겨지는 날이다. 년도 별로는 ‘이름이 있는 날’이라고 하는 설, 정월(초하루, 14일이나 대보름날, 길일, 문전), 2월(영등날, 길일), 봄(올벼심기, 집안고사, 초파일), 7월 칠석, 추석, 가을걷이(안택, 시준단지 위할 때, 햇곡 날 때, 도신, 상달, 터주나 성주 모실 때, 지신밟기, 집안고사, 가을떡 할 때 등), 동짓날, 섣달 그믐날을 위주로 하고, 조왕 혹은 성주 등 가신의 생일날, 제삿날 등이다.정월에 지신밟기 등이 행해질 때는 조왕을 위하는 경우가 많다. 1월에는 농악, 지신밟기와 걸립이 행해지는데 김택규는 이로써 지역별 분포를 작성한 바 있다. 농악, 지신밟기, 건립은 1월에는 경상남도, 경상북도, 전라남도에서 광범위하게 행해지고 전라북도, 충청남도, 충청북도는 간헐적으로 이루어졌다.)비정기적으로 조왕을 위하는 날은 비정기적인 고사 혹은 굿을 하는 날을 포함하여 자식이나 남편이 외지(군대주를 먼저 모시고 있다. 간헐적으로 조왕을 먼저 모시기도 하나 한꺼번에 위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 밖에 충청북도·전라남도에서는 조왕을 먼저 모시기도 하고, 성주를 먼저 모시기도 했으나 조왕을 먼저 모시는 경우가 약간 우세한 것 같다. 모시는 순서가 위와 같다고해서 조왕의 위계와 반드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부엌은 음식을 마련하는 장소인 동시에 음식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조왕을 먼저 위하기도 한다. 또 성주조왕의 경우에는 성주를 위하는 장소가 부엌이므로 성주를 위한 제물을 마련해서 비손할 때 동시에 조왕도 모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3) 제물준비 및 제물조왕에 올리는 물을 뜨는 시각은 새벽 혹은 이른 아침이었다.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서 세수를 하고 깨끗한 몸으로 물을 떠와야했는데 누구보다 먼저 물을 떠오는 것을 정성을 드린다고 간주했다. 물을 뜨는 장소는 주로 마을 안의 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샘이었는데 특별히 더 정성을 드린다고 해서 마을 밖의 먼 곳까지 가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남들이 일반적으로 하는 것보다 조금 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정성을 더 드리는 것이라 여겼던 탓이다.이 물을 조왕에 올리고 때때로 조왕에 제물을 올려 위해 준다. 의례에서 제물은 신령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물이 된다. 사람은 신령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정성껏 준비한 제물을 바친다. 이들 제물은 단순한 일상의 음식이 아니라 종교적인 의미가 반영된 음식이다. 이러한 상징성은 제물의 사용처, 재료의 준비 및 조리의 과정, 진설, 음복 등에 두루 개입된다.) 조왕에 올리는 제물은 물이 가장 기본적이고 일반적인데,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므로 이를 정안수, 정화수, 청수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밖에 메, 갱[국], 편(시루떡, 팥떡, 흰 시루떡 등), 숯, 나물반찬(미나리나물, 무나물 등), 과일, 계절음식, 술 등 이다. 여기에서 메·갱·편 도물과 마찬가지로 신에게 바치는 밥·국·떡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강원도에서는 조왕에는 비린 음식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4. 조상신(祖上神)1) 종류 및 형태조상신은 후손을 보살펴 주는 신으로 자리는 안방의 윗목 또는 사당이며 조상 할매, 조상 등으로 불리워 진다. 신체의 유형은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단지나 항아리에 쌀을 가득 채워 창호지로 봉한 것이며, 두 번째는 주머니 속에 쌀을 채워 걸어두는 형태이고, 세 번째는 사당 건축의 축소된 모형이라 할 수 있는 감실이다. 이러한 감실 형태의 신체는 조선조 사당의 영향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사당을 마련할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가정에서 사당 대신 감실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신체가 없이 모시는 가신을 '건궁'이라 하는데 조상신을 안방이 아닌 사당에서 모시는 경우 건궁으로 모시는 경우가 일반적이다.2) 성격 및 좌정 위치)우리나라에서 조상숭배 관념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시기는 중국 유학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고려말기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시기에 성리학이 수입되면서 주자의 가례가 조상숭배의 관념을 보편화시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치국이념이 성리학인 까닭에 주자의 가례는 상대적인 힘을 가지고 귀족에게 있어서 효와 경을 강조하게 되었고 이러한 의미에서 조상은 이승에서 후손과 함께 존재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한국전통주거는 生者인 후계와 死者인 조상이 함께 거주하는 장소였던 것이다.)다시 말해, 죽음의 공간인 사당이 삶의 공간인 살림집에 공존하게 된 것이며 그 안에는 죽은 조상의 이름을 새긴 신주와 함께 후손을 보살펴 주는 가신인 조상신이 좌정되었다.이처럼 주거 내에는 조상신이 존재한다고 믿어져 사당 또는 안방 윗목에 쌀을 가득 채운 단지 혹은 주머니를 걸어두거나 사당 건축의 축소된 모형이라 할 수 있는 감실을 모시고 의례를 행하였다. 이러한 감실 형태의 신체는 조선조 사당의 영향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사당을 마련할만한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가정에서 사당 대신 감실을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조상신은 주로 한이 많거나 색다르게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 조상신으로 들어앉게 되는데 따라서 천신의 요소를 지닌 성주신과는 달리 人神의 범주에 속하는 가신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상숭배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었던 시대적·사상적 배경으로 인해 조상신은 성주신 이상으로 중요시되었으며, 이것은 주거내 조상신이 좌정하는 장소인 사당건축에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사당터는 집을 지을 때 먼저 정하여 다른 건물보다 높은 자리에 세웠으며, 주위에 담을 두르고 출입문을 닫았다. 그리고 사당의 위치는 정침의 동쪽으로 하는데,) 이는 동쪽에서 해가 뜨는 사실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옛부터 동방은 생명이나 부활의 상징이며 밝음의 표사으로 믿어져 왔기 때문이다. 사당은 주로 3門으로 지어졌으며 내외부에 단청을 입히고 벽화를 그렸고, 神門이라하여 세칸 반퇴를 붙인 거대한 문을 따로 세우는 경우도 있었다.
1. 성주신1) 종류 및 형태한 집안의 으뜸신인 성주신은 가옥의 중앙에 위치하면서 집안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신으로 성주대감, 상량신, 성주조상 등으로 불리운다. 성주신의 명칭은 세 가지로 해석되는데, 그 하나는 城主, 즉 군수라는 이름에서 파생된 것이고, 두 번째는 火에서 한역되어 왔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천신을 나타내는 上主에서 음운이 변하여 성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 가지 중 어 < 성주 단지 > 느 것이 옳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나, 다만 성주라고 호칭되는 것이 일반적이다.)성주신을 상징하는 신체는 두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단지의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한지 형태의 신체로서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신체가 모셔지는 장소는 지역에 따라 다소가 차이가 있기는 하나 대청마루에 모셔지는 것이 일반적이다.2) 성주 신체의 지역별 양상과 특징)(1) 경기 지역위 그림을 살펴보면 성주는 대청마루에 있는 대들보에 좌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경기 지역의 경우에는 대체로 상량아래 상주(上主)윗부분이 성주의 좌정위치가 된다. 특별히 성주 신체를 봉안하지 않더라도 대들보 혹은 上主그 자체가 성주를 상징하므로, 모든 가옥에 성주신은 있다고 관념한다. 심지어 上主를 일컬어‘성주기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들보 외에도 안방 문 옆이나 윗부분에도 성주가 좌정할 수 있다. 포천 지역에서는 무당을 불러서 성주신을 받을 때 신이 내린 곳이 곧 성주의 좌정처라고 여기는데, 이때에도 성주신은 대체로 대들보나 上主에 내린다.(2) 강원 지역강원 일부 지역에서는 성주신을 ‘성주조왕’(강릉), ‘성주지신’(평창), ‘성주넙데기’(원주) 등으로도 부른다. 이는 성주신격이 조왕신, 지신과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강릉 지역에서는 성주가 부엌과 안방을 연결하는 대들보에 좌정하기 때문에 조왕과 같은 신격(神格)이라고 여긴다.) 평창 지역에서 성주는‘집이 자리 잡은 터전을 다 누르고 계시는 신’으로 인식된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 조사되었던안방 윗목이 된다.(4) 충북 지역성주 신체는 주로 상기둥 윗부분이나 대들보에 좌정시킨다. 이 지역에서는 상기둥을 ‘성주기둥’이라고 부른다. 북부 지역인 단양, 제천 등지에서는 성주기둥 아래에 별도로 볏섬 혹은 신주항아리에 쌀을 넣어 두었다가 햇곡이 나면 새 것으로 교체 한다.(5) 경북 지역경북 지역의 성주에 대한 명칭은 크게 성주 神體의 형태에 따른 것과 성주신에 대한 존칭으로 나타난다.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성주 신체는 단지형이므로‘성주단지’(고령 구미 군위 성주)가 일반적인 명칭이다. 또, 지역에 따라 성주가마니를 봉안하는 경우에는‘성주섬’(구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성주신에 대해서‘성주어른’, ‘성주님네’(달성), ‘할배’(경주), ‘대감나으리’(김천)이라고 하여 존칭을 붙이기도 한다. 성주신은 대주와 같다고 여기기 때문에 높여 부른다. 경북 지역에서는 주로 대청마루에 있는 대들보 안쪽에 성주를 모셔놓는다. 그 외에도 안방 윗목에 모시는 경우도 간혹 있다.(6) 경남 지역경남 지역은 낙동강을 중심으로 강의 서남부 지역과 동북부 지역의 성주 명칭과 좌정위치가 명확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낙동강 서남부 지역인 거창, 함양, 합천, 의령, 산청, 진주, 하동, 창원 일대에서는 성주신과 조왕신을 하나의 신으로 관념하며, 부부지간이라고도 여긴다.(창원) 그래서 이 지역에서는‘성주조왕님’이라고 붙여서 부른다. 이러한 호칭은 이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성주조왕님은 부엌에 좌정한다. 이는 가옥 구조의 특성상 대들보가 안방과 부엌으로 연결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성주는 기본적으로 대청에 좌정한다는 관념도 있지만, 대청이 없는 집에서는 으레 조왕과 함께 부엌에 있다고 여긴다.(합천) 이들 지역에서는 주로 단지 형태로 성주를 모시는데, 부엌에 좌정시킨다. 한편, 의령에서는 부엌의 천장 위나 벽면에 성주를 모신다. 이 때 한지에‘성조조왕’이라고 써서 붙인다. 그러므로 이 지역에서는 안택을 할 때에도 부엌에서 성주와 조왕을 모두 위한 후가 많기 때문에 ‘성주동우’라 부른다. 전남 지역 성주의 좌정위치는 크게 세 지역으로 구분된다. 전북 지역과 맞닿아 있는 영광, 함평, 장성 지역은 안방 윗목에 성주를 모시고, 전남 서북부 지역인 곡성과 구례에서는 대들보에 성주가 좌정한다. 반면에 광주광역시 이남 지역에 해당하는 나주, 화순, 보성, 장흥, 해남, 완도 등지에서는 대체로 마루에 동이 형태로 성주를 모신다.(9) 제주 지역제주 지역에서는 성주신에 대한 다른 명칭이 나타나지 않는다. 만약 새 집을 지으면 반드시 한번은 성주를 낸다. 성주를 풀어주지 않으면 그 집에서 굿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심방이 그 집에서 다른 목적으로 굿을 하려해도 성주를 풀지 않았으면 먼저 풀고 나서 굿을 진행한다. 이 때 심방은 백지를 감주에 풀 만들 듯 뭉쳐서 축원한 후에 집안 네 구 석에 던지며 집도 성하고 가족도 편안하게 해달라고 빈다. 그러므로 성주는 집 네 귀퉁이에 종이 형태로 좌정하게 된다.(10) 총정리이상으로 전국 각 지역의 성주의 명칭과 좌정위치를 살펴보았다. 위자료를 바탕으로 성주의 명칭은 크게 신체 형태와 다른 家神과의 관계에 따라 불려지는 것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또, 지역에 따라서는 존칭이 덧붙여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성주가 어떤 형태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서‘성주단지’,‘ 성주섬’등으로 불리고, 성주가 어떤 가신과 합위되느냐에 따라서‘성주조왕’, ‘성주조상’, ‘성주대감’등으로 각기 불린다. 또한, 성주가 ‘성주님네’, ‘ 성주어른’, ‘ 할배’라는 존칭을 통해서 성주신격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성주의 좌정위치도 지역에 따라서 크게 대청마루 및 대들보와 안방 윗목으로 나눌 수 있다. 미세한 차이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지역에 따라서 명확히 구분되기도 한다. 이러한 신격에 대한 명칭, 좌정 위치등은 산맥, 하천 등 자연 경계에 따라서 구분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3) 성주 받기의 의례 특징)(1) 명칭과 봉안가옥을 새로 신축 혹은 증축하거나 새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성주를 새로 받아 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첫 번째로 새로 가옥을 신축하게 되면 건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상량이 성주의 좌정 처라 인식하기 때문에 성주를 받는 의례를 ‘상량고사’라고 부른다. 또, 건축물이 새로 지어지게 되면 새로운 성주가 탄생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성주 생일’(경기 김포·동두천·강화, 전남 고흥·영광)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명칭은 주로 경기와 호남 지역에서 쓰는 명칭이다. 이와 유사한 개념으로‘목수 생일’(경기 군포)이라고도 부른다. 일부 가정에서는 그들이 입주한 날이 곧 성주생일에 해당되므로, 이를 챙겨주기도 한다(전남 영광).두 번째로는 성주를 봉안하는 방식에 따라‘성주 맨다’(충북 제천·경북 봉화), ‘성주 올린다’, ‘옷 해 입힌다’(경북 경산·영주), ‘성주앉힌다’(경북 군위)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상량을 올려야 가옥 전체를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집 짓는 행위 자체를‘성주 한다’(전북 남원)라고도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집의 기둥이나 상량을 올리는 날은 별도로 좋은 날을 받아서 한다.) 한편, 제주도에서는 집을 짓고 나서 성주를 모시는 것을‘성주 풀이’)라고 부른다. 집을 짓고 나서도 성주풀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심지어 조상제사도 제대로 모실 수 없다. 집을 지을 때 사용한 목재 등 건축 자재에 木神등 여러 귀신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 목신의 기운이 세기 때문에 새 집을 짓게 되더라도 조상신이 집안에 들어오지 못한다. 그래서 성주풀이를 하고 성주 신을 제대로 좌정시켜야만 조상신을 비롯한 집안의 여러 신령들이 함께 좌정할 수 있다고 여긴다.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성주는 다른 가신과는 달리 집안의 운수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이다. 성주신이 집안에 잘 좌정하고 있다가도 대주가 사망하거나 집안에 우환이 발생하면 언제든지 집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또, 성주에 대해서 소홀히 대접해서 그가 서운함을 느끼게 되어도 성주는 나간다. 이를 두고 흔히‘성주가 떴다’라고 한다. 그러면 집안에서 환자가 발생하는 등 걷잡을 수 없는 불운이 겹치게도 한다(단양 어상천면).(2) 주관자와 제물가정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집을 짓는 행위는 곧 집안의 여러 신령들을 좌정시켜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건축물과 그 주변은 인간의 거주지이면서, 집안 신령들의 거처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집은 인간과 신이 공존하는 성스러운 공간이 된다. 건축을 담당하는 사람이 목수라면, 집안을 신과 어우러지는 성스러운 공간으로 창출하는 것은 집안 식구들 중에서도 주부의 몫이다.) 집을 완성한 후에도 매일 새벽 조왕이나 장광에 정화수를 떠다 놓고 비손을 하거나, 명절에 제물을 차려서 가신을 대접하는 일들은 주부가 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주를 받을때에도 이들이 모두 관여해야만 온전한 가옥이 완성된다. 일반적으로 집을 새로 지으면 주부가 간단한 제물을 장만하고 목수가 제를 주관한다. 그러나 보다 더 정성을 드릴 필요가 있다거나 제액이 절실할 경우에는 종교직 능자라고 할 수 있는 무당 혹은 경객 등을 초빙해서 성주 신을 좌정시키게 한다.경기 지역의 경우에는 대체로 선굿 무당들이라고 할 수 있는 만신이 성주 받는 굿을 진행해 준다. 보통 만신은 강신무들로서 신을 직접 몸에 실어서 굿을 하는 이들이다. 그러므로 신이 만신의 몸으로 빙의되어 자신의 의사를 만신의 입을 빌려서 전달하며 굿이 진행된다. 그러나 성주신은 만신의 몸으로는 잘 들어가지 않는 듯 하다. 성주를 받을 때에는 선굿을 하는 무당들도 약 50cm내외의 작은 대에 신을 싣고서 가택에 좌정시킨다. 대로 쓰이는 수종은 주로 소나무이다. 소나무에 한지를 매달아서 성주대로 삼는데, 이를 쌀 함지에 꽂아둔다. 드문 경우지만 손 없는 방향으로 뻗은 참나무가지나 앵두나무가지를 쓰기도 한다(김포시). 이 때 대를 잡는 사람은 마을 사람들 중에서 神氣가 있거나, 평소에 대를 잘 잡는 사람이 선출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런 사람들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만신이 직접 데리고 오는 경우도 생긴다.) 만약, 무당을 불러서 성주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으면, 건축을 총괄하는 대목수나 가었다.
2. 삼신1) 종류 및 형태삼신은 삼신할머니, 지앙할머니, 삼승할망 등으로 불리우며, 그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여신으로서 자녀의 출산, 육아, 성장 등을 관장하는 신이며, 그 자리는 안방 아랫목이다. 삼신은 산신(産神) 혹은 삼신(三神)으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우리말에 태(胎)를 가르켜 "삼"이라고 하는 것이나, 탯줄을 삼줄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 삼신은 태신(胎神)으로서 産神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삼신의 신체 봉안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나, 삼신자루라 하여 한지로 만든 자루 속에 쌀을 넣어 아랫목 높직이 매달아 놓거나, 쌀을 바가지나 동이에 담고 시렁을 만들어 거기에 얹어놓기도 한다. 이를 각기 삼신 바가지, 삼신동이라고 한다.2) 삼신의 좌정 위치 - 안방(안주인))안방은 식사, 취침 등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일상성의 중심으로 聖性의 중심인 대청마루와는 대조적인 공간이다. 이는 주거공간에서 事物的으로도 표현되어 있는 안방에는 천장이 만들어지고 방을 에워싸는 六面에는 벽지가 붙여져 모든 구조체가 감추어지므로, 구조체가 노출되는 대청마루와는 대조적이다. 또한 이러한 대조적 성격은 이들 장소에 봉안되는 신들 즉, 대청마루에 봉안되는 성주신과 안방에 봉안되는 삼신에 의해서도 표현되어진다. 産育神인 삼신은 대청마루의 중앙인 대들보에 모셔지는 성주신과 달리 일반적으로 안방의 한쪽 구석 상부에 하얀종이로 만든 신체를 늘어뜨려 모셔진다. 또 출산시 집 대문에 금줄을 쳐 외부인 특히 부정에 관계하는 사람의 출입이 엄금되는 것에서부터 삼신의 죽음이나 외부의 부정을 싫어하는 것은 분명하나, 이 신은 그 존재의 기반상 출산의 부정을 전제로 해서만 존재하는 것이므로 속된 곳, 부정한 것을 싫어하는 성주신과는 대조적이다.이처럼 안방에는 자녀의 출산, 육아, 성장 등을 관장하는 가신인 삼신이 존재한다고 믿어 안방 벽 또는 시렁 위에 삼신 바가지나 삼신동이를 모시고 의례를 행하였다.삼신)은 産神혹은 三神으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우리말에 胎를 가르켜 '삼'이라고 하는 것이나, 탯줄을 삼줄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 삼신은 胎神으로서 産神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따라서 삼신의 좌정공간인 안방은 여성의 전용공간으로서 출산시 출산을 하는 장소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삼신 성립의 유래와 내력을 밝히고 있는 「초공본풀이」)을 통해 주거의 가장 안쪽 장소로서 안방의이 의미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옛날 임정국 대감과 그 부인 김진국이 큰 절에 시주하고 백일불공을 드려 딸아기를 낳았다. 딸아기 자지명 아기씨가 15세 때 그 부모가 다른 지방으로 벼슬살이를 떠나게 되었다. 딸을 데리고 갈 수가 없어 방안에 가두어 문을 잠근 후, 종에서 문구멍으로 밥을주며 키우도록 당부하고 집을 떠났다. 이때 황금산도단땅절의 주자 선생이라는 승려가 자지맹왕 아가씨에게 시주를 받으러 왔다. 주자 선생은 요령을 흔들어 잠긴 방문을 열고 시주를 받은 뒤, 아가씨의 머리를 3번 쓸어주었다. 그 뒤 아기씨는 잉태했고 임대감 부부는 아기씨를 내쫓았다. 집을 나온 아기씨는 이중을 찾으러 산, 사찰에 가서 중과 함께 환속하며 삼신이 된다.여기서 주인공 자지명아기씨의 외출을 금지하거나 대문을 폐쇄하고 또 밖에서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는 것은 집의 內外 장소질서가 엄격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엄격한 내외구분이 깨어져 아기씨가 회임, 출산하게 되었으나 중을 찾아 다시 환속하여 삼신이 되고 그리하여 가장 안쪽 장소인 안방에 좌정함으로써 내외공간이 재구축되어진 것이다. 이렇게 여성이 기거하는 건물들은 안쪽 깊숙한 곳에 그리고 남성의 공간은 바깥에 두는 것은 일종의 이상형으로서, 남향집의 경우 남성의 공간은 동쪽 또는 동남쪽에, 여성의 공간은 북쪽 또는 북서쪽에 위치하기 마련이었다. 이것은 남좌여우라는 음택론과 일치하는 것으로, 왼쪽은 양이고 오른쪽은 음이라 하여 각각 남자와 여자를 상징하는 것이다.)또한 안방을 북쪽에 두는 것은 상징적 방향의 암시로써 북쪽은 水의 방향, 즉 생명 잉태의 공간을 상징하기 때문에 혼인, 출산의 공간으로서 안방을 북쪽에 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안방 내부에는 아랫목, 윗목이란 공간질서가 있는데 이는 바로 아궁이와 관계되는 것으로, 즉 부뚜막 또는 아궁이에서의 거리에 따라 가까운 쪽을 아랫목, 먼쪽을 윗목이라 하는데 이는 아래, 위라는 상하의 위계에서 이름 붙여진 것이 아니라 아궁이에서 연도 출입구의 상하관계에서부터 명명된 것이다.이처럼 아궁이의 불과 불씨는 주거 자체와 내적으로 결부되어, 불의 지속은 가계(家系), 가운(家運)의 유지와 직결되며 불씨의 단절은 곧 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48) 이처럼 불씨는 주거 그 자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며 따라서 그 불씨는 주거의 가장 안쪽에 장소를 얻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가장 안쪽의 불씨가 안방에 있어서의 아늑함의 근거로써 작용을 하며 안방 내부공간질서의 원점이 되는 것이다. 안방 내부의 공간질서가 아궁이와 관계되는 사실은 이사의례(移徙義禮)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사의례는 이사의 방위나 일시에 관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안방과 부뚜막에 관계되는 것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