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길불과 몇 일 전인 2010년 10월 11,12일 이틀 동안 G20 의장국으로서 한국에서 세계적인 정상회의가 개최되었고 무사히 폐회 되었다. 물론 G20반대 시위들이 적지 않게 있었고 그에 못지않게 정부의 철저한 대응도 있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G20 정상회의의 경제적 효과가 약 24조원에 달한다고 말할 정도로 이번 정상회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필자는 G20정상회의를 괜히 언급한 것이 아니다. ‘국제정치’수업덕분에 접한 다큐멘터리 ‘커맨딩 하이츠(Commanding Heights)’와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신자유주의가 채택된 이후로 점점 세계는 작아지고 가까워지면서 과거에는 상상도 못 할 글로벌 경제가 대두된 이때, 이러한 새로운 세계 경제체제의 패러다임에 맞는 새로운 규칙이 정립돼야 한다는 관점에서 이번 G20정상회의가 현재 글로벌 경제 때문에 야기된 여러 문제들의 해결책을 제공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였다.G20정상회의의 의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워싱턴, 런던, 피츠버그 정상회의를 거치면서 논의가 진행중인 기존의제로서 ‘거시경제정책 공조’, ‘금융규제 개혁’, ‘국제금융기구 개편’을 들 수 있다. 둘째는 G20이 위기 대응을 넘어 명실상부한 전세계 최상위 경제포럼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대한민국이 새로이 제시하고 있는 ‘개발이슈’와 ‘글로벌 금융안전망’을 들 수 있다. 기존의 의제이든 새로운 의제이든 모든 의제의 랑그(langue)는 한 단어로 표현 될 수 있다. ‘경제’가 바로 그것이다. 환경문제도 아니고 인권문제도 아닌 경제문제만을 다루기 위해서 전 세계 주도적 국가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할 정도로 경제문제가 중요해진 것이다. 도대체 전 세계적으로 어떤 경제적인 문제가 있고 토의해야 할 안건이 무엇일까? G20의 개최를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새로운 경제 체제가 수립되는 것일까? G20은 전세계적인 경제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만 있을까? G20 정제뿐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이를테면 정치나, 전반적인 삶의 질에도 영향을 끼쳤다. 논의의 시작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 초에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였다. 전구와 전화와 같은 기술은 통신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전기선과 철도의 발명 덕분에 교통은 더욱 편리해저 세계는 점점 작아졌다. 최초의 글로벌 시장이 형성되는 듯 하였다. 케인즈는 그때 당시에 글로벌 경제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런던 사람들은 아침에 차를 마시면서 전 세계의 다양한 상품들을 전화로 주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문한 상품이 빠른 시일 내에 집까지 배달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죠. 군국주의나 제국주의, 인종이나 문화갈등 같은 것은 신문에서 읽는 단순한 흥미 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시대가 1914년 8월에 갑자기 끝난 것은 인간의 경제 발전사에서 놀랄만한 일이었습니다.”케인즈의 말대로 20세기 초에 도래한 글로벌 경제는 세계화를 점점 앞당기는 듯하였다. 하지만 이 글로벌 경제의 형성을 막은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었다. 1차 세계 대전 후 많은 나라는 많은 변동과 위기를 거치면서 약 3~40년간은 케인즈 이론이 지배적인 채택을 받은 것을 알 수 있다. 20세기 세계의 각국의 역사가 이 사실을 증명해 준다.첫 번째로 1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는 1917년 혁명이 발발하였다. 혁명을 실현시킨 사람은 마르크스-엥겔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이론을 현실의 사회주의 혁명으로 실현시킨 레닌이었다. 1917년 10월 하순 레닌은 임시 정부의 권력을 탈취할 시기가 왔음을 결의했고, 트로츠키와 더불어 봉기를 위한 일체의 계획을 면밀히 세웠다. 혁명 지도자들은 전(全)러시아 소비에트 대회가 개막되는 11월 7일(러시아력 10월 25일)을 궐기의 날로 정했다. 거사일인 7일 ‘모든 권력을 볼셰비키에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거사를 일으켰고 임시 정부의 저항은 없었다. 이 혁명은 무혈혁명으로 성취된 것이였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가장 억압받고 헐벗었던 계급들, 특히 산업 노동자의 공급국으로서의 역할로 인하여 전쟁 이전에는 채무국이었으나 전쟁이 끝났을 무렵에는 채권국으로 입장이 바뀌었다. 이러한 환경하에 1920년대의 미국은 ‘소비가 미덕’이라는 풍조와 함께 미국 시민들은 주식을 사고 사치를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적 호황은 거품 현상이었고 거품이 빠지면서 1929년 일어난 대공황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붕괴되었다. 미국은 대공황의 해결책으로서 1933년부터 1938년 사이의 대통령 루즈벨트를 중심으로 뉴딜정책을 피게 되었다. 즉, 기존의 자유방임주의적인 경제 정책이 포기되고, 자본주의에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가미된 혼합 경제 체제 방식이 채택된 것이다. 뉴딜은 미국인들에게 자유 방임적인 고전 자본주의의 한계성을 인식시켰다. 이후 뉴딜에 의해 행정부 권력이 비대해졌고, 제한적이기는 했지만 복지 국가의 개념과 실천이 제시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33년 6월 ‘첫 번째 뉴딜’로 불리는 전국산업조정법(National Industrial Recovery Act)을 제정하여 산업에 대한 정부의 통제책을 실시하였다. 또한 1933년에는 농업조정법(Agricultural Adjustment Act)을 제정하여 농산물 가격을 안정시키고자 하였다. 실제로 케인즈의 저서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이 미국에 전파되어 당시 경제체제의 영향을 미친 결과가 뉴딜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세 번째로 독일을 들 수 있다.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군주제 국가에서 공화제 국가로 바뀌게 된다. 독일이 연방공화국임을 선포한 장소가 바이마르였기 때문에 새로 탄생한 독일의 공화국은 바이마르 공화국이라고 불렸다. 바이마르 공화국의 전쟁 후 가장 큰 시련은 경제 위기였다. 독일은 전쟁 보상금 때문에 국가채무와 하이퍼인플레이션에 시달렸다. 제1차 세계대전 전에 1달러 당 4.2마르크였던 것이 종전 직후에는 8.4마르크로 떨어졌고 1922년 말에는 무려 7000마르크로 떨어졌다. 한마디로 독일의 경제는 파탄 직전에 이르렀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적 지원에 힘입어 경제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도 통제되었던 것 같다.정부가 시장을 통제 한다는 케인즈 이론의 흐름의 방향을 처음으로 바꾼 것은 미국의 레이건(Ronald Reagan)대통령과 영국의 마가렛 대처(Margaret Hilda Tatcher)총리였다. 공화당이었던 로날드 레이건은 20년 이상 케인즈가 아닌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의 자유시장 경제 이론을 지지했다. 레이건은 “If not now, when? If not us, who?”라는 유명한 말을 하면서 자유시장으로의 변화에 힘썼다. 한편, 마가렛 대처총리도 하이에크의 저서 「예종의 길」과 키스 조셉의 의해 상당한 지적 영향을 받아서 자유시장으로의 변화에 힘썼다. 대처 총리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사회주의와 과도한 세금, 규제 그리고 공공지출로 기업의 사기는 오랫동안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국유화, 중앙 집중, 통제 같은 과거의 철학은 이제 끝내야 합니다. 정부의 지출을 늘려 돈을 마구 써야 실업자와 기업을 도울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친절하지도, 인정이 많지도 배려가 깊지도 않은 사람들 입니다. 내가 할 말은 단 하나입니다. 원한다면 당신들이나 과거로 돌아가세요” 이렇게 자본주의의 혁명이 시작되었다. 20세기 말에 이르면 대부분의 국가가 자유 시장 경제와 자본주의 체제를 채택했고 세계화는 서서히 진전되고 있었다. 20세기 말 소련의 가격 통제가 붕괴되면서 공산주의도 그에 따라 붕괴했고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져있던 양극체제도 또한 무너졌다. 물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채택하는 소수의 나라가 있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공산주의에서 자유시장 자본주의를 채택했다. 이러한 공산주의의 붕괴에 따른 양극체제의 붕괴도 세계화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신 자유주의를 토대로 하는 세계화란 국가간에 사람, 자본, 상품, 정보의 이동이 아무런 규제가 없는 상태를 말한다. 즉 다시 말해서 이전까지 경제 체제를 지배해왔던 국가 정부는 현실적으로 그 역할과 권력을 상실했다. 모든 것은 개인이나 정부의 행위가 아니라 시장 자체의 매작했고 실제로 미국의 경제는 불황을 겪게 된다.세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근거 없는 두려움에 세계화가 대재앙을 일으킬 거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 대재앙이 테러리즘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빌 클린턴이 인터뷰에서 “세계화로 우리가 상호의존적이 되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계화가 전체적으로 이득이 될지 해가 될지에 있습니다.” 라고 말했듯이 우리는 급격한 세계화 때문에 상호의존적이 되었고 세계화가 순간적으로 멈춘다면 오히려 그것이 전 세계적으로 대재앙을 야기시킬 것이다. 이를테면 국제무역과 투자의 흐름이 전면 폐지가 된다면 일단 개발도상국의 수출품인 노동 집약적 상품에 대한 시장은 사라지게 될 것이며 중동 지역에 밀집 되어 있는 석유 수출국은 석유를 수출하지 못해 빈곤한 상태가 될 것이다. 그에 따라 석유 수입국은 석유를 기본으로 한 모든 상품의 생산이 끊어지고 교통 체제는 마비가 될 것이다. 한편 미국 같은 거대 선진국은 구조 개편을 통해 노동 집약적 상품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인건비가 낮은 재화를 만들어내야 할 것이며 그것은 생활 수준의 질을 하락시킬 것이다. 이처럼 상호의존적으로 된 세계는 불가피하게 세계화의 대열에 참여해야 되고 세계화의 대열에 참여하지 못한 국가는 빈곤을 의미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9.11테러의 예처럼 테러리즘 때문에 경제체제의 불황이 오고 금융 위기가 온다고 할 지라도 그것은 단지 국내에서의 문제에서 끝날 일이지 그것이 세계화의 정지를 의미하지는 못 할 것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죽는다고 해서 그 나라가 망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재빨리 새로운 대통령을 뽑으면 되는 문제이다. 하나의 개별현상이 하나의 커다란 구조의 랑그(langue)를 바꿀 수는 없다. 실제로 9.11테러가 발생한지 약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화는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진행 될 예정이다. 그러므로 세계화는 불가피함과 동시에 중요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결국 세계화는 불가피하게 진
월남 파병의 재해석필자는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가장 관심이 있었던 부분이 박정희 정권이었다. 그 이유는 해방이래로 그 어떤 정권보다 18년이라는 기간으로 가장 오래 체제를 유지 시켰다는 점에서 필자의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다. 또한 박정희의 업적의 평가가 계속해서 “그는 독재자인가 혁명가인가?”로 첨예하게 대립되어 후대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베트남 파병에 대해서 가장 관심이 가게 되었다. 한국의 현대사의 역사에서 봤을 때 가장 큰 변화의 계기가 월남파병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베트남 파병은 물론 경제발전에 밑거름이 되었지만 고엽제 문제나 반전세력들의 비판에 의해서 평화를 파괴한다는 이미지가 증가하게 되는 것 등, 많은 문제로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이 리포트에서는 베트남 파병의 현재의 역사적 조명은 어떠하며 국제정치에 있어서 대한민국의 국가적 이미지나 위상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논의 될 것이다.때는 1961년 5월 16일 군사 정변을 일으켜 민주정부를 짓밟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러한 민주주의 파괴는 당시 박정희 정권의 불가피한 한계였기 때문에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이러한 요인에 의해 정부에 반대하는 학생과 지식인계층의 저항은 불안정한 정치를 야기했다. 또한 국내 정치, 경제, 사회적 불안을 해소하고 빠른 시일 내에 정치적, 사회적 안정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시민들의 기대와,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부패와 부조리의 척결, 그리고 능률적이며 효율적인 정부와 정책을 기대하는 군부의 기대 등을 정치적 부담으로 안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하에 박정희 정권은 국부 증대를 통해 이런 정치적, 사회적 위기를 모면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반공태세 강화, 민생고 해결, 자주경제 재건 등을 슬로건으로 하는 박정희 정권은 안보동맹국인 미국의 도움과 지원이 없으면 이러한 혁명공약은 물거품이 될 게 뻔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미국의 원조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베트남 전쟁 파병의 선택은 불가피 했던 것처럼 보인다.한국의 월자, 미국은 동맹국들을 통해서 약화된 자신의 힘을 보충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NATO와 SEATO의 우방국에 베트남 파병을 유도하였으나 서유럽과 동남아시아의 미국 우방국은 파병에 거부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리하여 한국을 포함한 5개 아시아 동맹국이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한국이 월남 파병에 굳이 참여하게 되는 논리는 약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우방국에 대한 ‘의리’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의리론’과 맥을 함께 하는 적지 않은 여당 중진들은 미국의 원조, 특히 한국전쟁 당시의 도움에 대한 보은의 뜻으로 찬성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둘째, 베트남의 붕괴가 한국의 안보와 세계평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라는 논리이다. 셋째, 베트남 파병을 국위선양의 기회로 보았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여당 의원과 몇몇 학자들은 한국의 베트남 파병을 유엔의 집단안보조치의 일환으로 선전하는 경향마저 있었다.그리고 한국의 월남 파병의 결정 요인은 다음과 같다.첫째는 미국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어 대내외적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함이다. 1961년 5월 군사력을 동원하여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정부는 반공태세 강화, 민생고 해결, 자주경제 재건 등을 ‘혁명공약’으로 제시하며 국가개혁을 위하여 의욕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안보동맹국인 미국의 도움과 지원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 정부는 미국의 지원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며 당면한 경제난 등 국내외에 현안들을 해소하기 위한 결정적인 정책으로 월남 파병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둘째는 미국의 철수론도 한국 정부의 베트남 파병의 중요한 요인의 하나였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 격화되면서 많은 병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자유 우방국의 파병이 여의치 못할 경우 한국의 주한미군 2개 사단을 베트남으로 이동시킬 가능성을 표방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베트남 파병을 추진함으로써 미국 정부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의 개정과 주한미군의 계속주둔, 군사원조 증가 등을 요구하게 되었다는 경제적인 원조를 위해서 베트남 파병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으로 1966년부터 1970년까지 절약된 국방비는 9,310만 달러에 달하였다.넷째는 경제적인 동기로서 베트남전 특수를 제공하여 경제발전계획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한국은 베트남 파병을 통하여 미국의 경제원조와 베트남 특수를 통한 외화획득을 통하여 경제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함으로써 제 1,2,차 경제개발을 성공적으로 달성하여 국민적 자신감을 키우는 데 기여하였다. 한국은 베트남 파병과 이와 관련된 민간부문의 경제활동에서 10억 달러라는 큰돈을 벌게 되었고 이 돈은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의 주요한 재원이 되었다. 그리고 베트남 전쟁기간 중 한국은 미국의 직·간접지원 및 경비지출과 함께 베트남 시장의 전쟁 특수를 이용하여 많은 외화를 회득할 수 있었다. 특히 한국군의 파병을 계기로 한국 기업과 근로자의 베트남 진출과 전쟁특수를 활용하여 많은 외화를 획득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 국내에 변변한 생산시설 하나 없던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다섯째로 한국 정부는 베트남 파병을 통하여 미국의 대한 정치적 통제를 약화시키면서 대외적 자율성의 제고를 도모할 수 있는 국위선양의 기회로 보았다는 것이다. 한국은 베트남 파병 과정에서 미국의 압력에 따른 수동적 대응이 아니라, 그때 당시 처한 정치·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적극적 대미교섭을 추진하였으며, 파병을 통한 한미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미국의 적극적 지지를 획득하였고, 이 과정에서 3선 개헌과 유신체제의 성립을 실현할 수 있었다.일부 사람들은 박정희 정권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한 독재 정치가 비 민주적이라는 근거를 대면서 비판을 한다. 월남파병 역시 박정희의 개인 독단으로 이루어지고 많은 반대 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강행하였다는 점에서 비민주적인 행위였다고 볼 수 있다. 박정희의 이러한 군부 독재에 의한 민주주의의 파괴는 영원히 재평가 될 수 없는 점으로 남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러한식 속에 민주주의라는 기표에 가장 적절한 기의가 심어져 있었을까? 대한민국의 역사를 길게는 수 천 년으로 보았을 때 그 시기 동안 민주주의 역사가 있었던가? 항상 계급사회였고 봉건주의 사회였다.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이승만 정부가 집권하고 난 후 불과 10년 조금 넘게 민주주의가 채택이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격동기에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 민주주의 의미가 그 시기에도 있었을까? 오히려 친일파의 제거의 실패후 부정부패와 비리가 만연하여 이름만 민주주의일뿐인 시기이지 않았을까?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좋으나 현재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어느 역사가의 평가에도 조선시대는 비민주주적이고 독재가 판치는 더러운 세상이다 라는 평가는 거의 없을 것이다.둘째로 마르크스의 이론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 박정희다 라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마르크스의 토대(basis)와 상부구조(superstructure)의 논리는 토대로 연결되는 물질적 생산 능력이 상부구조를 조건 짓는다는 이론이다. 즉 상부구조에는 정치, 사회, 교육, 종교 등 인간의 정신적 활동의 총체를 일컬을 수 있다. 쉽게 말해서 물질이 이 사회의 전반적인 것을 조건 짓는다는 논리이다. 물론 이러한 논리는 반박의 여지가 많다. 물질 만능주의의 논리이며 자본주의의 찌들었다고 말할 수 도 있다. 하지만 당시 박정희가 집권하던 시기를 보게 된다면 이 논리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물론 요즘 시대에 어느 정도 경제적 풍요로움 덕분에 죽지 않을 정도로 살고 있기 때문에 물질이 전부가 아닌 정신적 가치의 크게 강조점을 둘 수 도 있겠지만 당시 1962년 1인당 GNP는 87달러에 불과했다. 최소한의 물질이 지지해주지 않는다면 교육이 가능할 것이며 그러한 교육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생활과 정치가 가능할 것이며 다음 세대의 교육은 가능할 것인가? 박정희의 경제 개발을 중점으로 두는 그의 베트남 파병에 대한 결정은 모든 정신활동의 근간이 될 수 있는 물질을 닦았다는 관점에서는 칭찬할 만 하다.이 논의에서 더 살기 좋았다고 말한다. 현재 이명박 정부와 유사하지 않은가? 이명박 대통령도 대선 당시 경제개발을 슬로건으로 대통령 자리에 집권하게 되었고 최근 G20 정상회의를 의장국으로서 개최하면서 경제 개발에 힘쓰고 있는 걸 보면 충분히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많은 국민들의 반대를 받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강행하고 있는 4대강 사업만을 봐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필자도 자연을 훼손한다는 관점에서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지만 경제적, 정치적 관점에서의 비판에는 동조하고 싶지 않은 실정이다. 경제적 이익이 전혀 없고 돈만 날리는 짓이다. 라는 말은 현재의 관점에서는 파악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든다. 여당과 야당간의 4대강 사업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 하는 말이 모두 다르니 누구의 말도 믿을 수 없는 실정이다. 그렇니 현재의 관점에서 대국민 시위가 있어도 강행된 4대강 사업을 막을 길이 없어 보이니 장기적인 관점에서 4대강 사업의 경제적인 효과에 대해서 기다려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세 번째로 월남 파병이 대한민국의 국제정치 참여자로서 진입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 이전에는 일제강점기가 있었고 또 그 이전에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있었다. 물론 가까운 중국, 일본, 러시아와 같은 나라와는 교류가 있었을지 모르나 그러한 미약한 교류가 세계화를 근반으로 하는 국제정치라는 의미에 부합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박정희가 월남 파병을 감행하지 못했다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의 원조는 계속해서 줄어들 것이고 미군의 철수로 인하여 대한민국의 안보는 땅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역사는 다시 쓰여 졌을 지도 모른다. 북한에 의한 침탈로 공산주의 정권이 되었을 수도 있으며 아직도 전쟁중 일 수 도 있었다. 하지만 월남 파병 후 한미간의 외교는 계속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이 계속 발전 하여 현재 이 정도까지 성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러한 관점에서 박정희의 월남 파병의 적극적인 선다.
An Analysis of London by William BlakeLondon is a poem by William Blake, published in Songs of Experience in 1794. I will analyze this poem based on its poet, his background, or the times in which he lived rather than the poem itself because the period was published during the upheavals of the French Revolution, and the city of London was suffering political and social unrest.I will analyze this poem’s form. First, this poem takes a type of lyrical poetry. Lyrical poem is a poem in which the poet writes about his or her thoughts and feelings. Also, it covers all poems that present the poet’s immediate response to life. Lyric poems can deal with any facet of experience, such as love, death, nature or religion, or some domestic, social, or political issue. If you read the poem ‘London’ and understand that William Blake wants to express his thoughts or feelings by describing citizens in London as the people who are repressed, you will realize that ‘London’ is a lyrical poem. Second, when explanation of that expression. Third, this poem has a ‘abab’ rhyme. Rhyme is identity of sound between two words, extending from the last fully stressed vowel to the end of the word.Now I will analyze this poem’s content. There are some imagery in this poem. First, one is an auditive image. As I wrote about focusing on the poet’s period to understand this poem, this poem is totally social and economical. In the poem, human rights of man are repressed. Furthermore, it is in the world that there are hypocrisy, cruelty, frustration, and prostitution. In this circumstance, the evil appears. The poet shows this image in his poem properly. In the first and second stanza, you can see that the poet’s hometown, London, has been changed dramatically from the one in which everyone loves their street and Thames and lives together to the one in which only those who have vested rights can possess the street and Thames. London, to Blake, seems to be a society described by ‘marks of weakness’ and ‘mke the atmosphere of this poem more depressing.The most important thing that necessarily is addressed in this poem’s content is a symbol. It is an object which stands for something else. That is, it is a word which, while signifying something specific, also signifies something beyond itself in a poem. The difference between an image and a symbol is that what an image is associated with is stated in the poem, but with a symbol we have to infer the meaning and associations. Then, there are a lot of symbol in the poem ‘London.’ First, the word ‘blackening church’ has a symbol. If you think this word simply, you just think that the church become black because of a bad circumstance around it. If you think the word more thoroughly, however, you will be able to realize that the church itself actually assimilated its dark thing to something or somebody around the church. The church actually did. That is, the church played important role to distribute bad ideology. The church in late seventeente. ‘The solder’s sigh runs in blood down palace walls’ means that some individuals had to give up their life for the repressive organization. ‘The youthful harlot’ represents the victims who suffer from pain caused by the capitalism in which human’s noble sex was commercialized. Similarly, William Blake criticizes the destroyer of environment for the purpose of the capitalism by commenting a canal of Thames.Except for such symbols, another remarkable element in this poem is binary oppositions. The definition of a binary opposition (also binary system) is a pair of terms or concepts that are theoretical opposites. There are a lot of binary opposition in the poem between the governing class and the subjugated class. First, the world in the poem is very disorderly in light of the poet. So, another world rather than the world in the poem will be very orderly. For example, before the disorderly world or after the disorderly world is idealized world the poet think. Second, you will find theiilarly, the ruling class feels happy. On the other hand, the subjugated class is not happy. Finally, if many people have expressions of weakness and woe at the times of the poem, I think more better expression will be exist at another time. That is also one of the binary oppositions.So far, I analyzed the form and content of the poem ‘London’ based on critical terms such as rhyme, stanza, image, symbol, and binary opposition. Of course it is probably not enough to fully understand this poem, but I’m sure that this information and analysis I addressed is enough to understand what topics the poet wants to write about as a whole.Londonby William BlakeI wander through each chartered street,Near where the chartered Thames does flow,And mark in every face I meetMarks of weakness, marks of woe.In every cry of every Man,In every Infant's cry of fear,In every voice, in every ban,The mind-forged manacles I hear.How the Chimney-sweeper's cryEvery blackening Church appalls;And the hapless Soldier'지를
The Perfect Blind Spot of Human RightsWe take it for granted that we can marry, attend school, drive a car, and make an account in a bank. If you are one of the usual people, you can do everything that is stated above. In order to do such businesses, you have to possess your own ID card or passport to identify yourself. However, can you imagine that there are some people who do not have the right to do such things? Actually, these people exist. They cannot do any sort of social activities.We call them stateless persons. It happens because they do not have a nationality, strictly speaking, because they lose their own nationality. This problem occurs not only in Korea but also all over the world, but I will focus only on Korea. According to a report of the Department of Justice, the number of stateless persons is approximately 210. However, this number is just the official number. If the unrecognized amount of stateless persons is added to the reported amount, more stateless persons will any State under the operation of its law.There are many cases for becoming stateless person in Korea. For example, the first case is that refugees who discarded their nationality in order to marry Korean, but failed to get Korean nationality due to some reasons. The second case is that North Korean defectors coming in South Korea are unable to acquire South Korean nationality because they cannot prove themselves. Third case is that someone who applies to become a refugee without any certificate regarding his or her previous country, so he or she fails to acquire the nationality. In addition to these three cases, there is an occasion that foreigners whose country takes “Right of the blood” give birth to their baby in Korea taking “Right of the ground.” Also, the children whose foreign mother is not identified by Korean father. There is also a case that if illegal foreign workers do not register their baby’s birth after they bear their baby, the baby remains stateless. If problems relatare convicted of a sham marriage. Finally, the foreigner lost her nationality. Another occasion is that a nationality is cancelled because the fabrication of the official documents that somebody did in order to acquire a nationality is revealed as illegal to the government.These bad situations sometimes occur in Korea. Since establishment of the Department of Nationality and Refugee in February 3, 2006, there have been 23 people who lost their nationality. The interesting point is that there is a legal reason to cancel the nationality, but there is no proper law to acquire the nationality. According to the first clause of Article 21 of Korea Nationality Act, the Minister of Justice can cancel somebody’s nationality for some reasons. Therefore, it is important to pass the law that can protect stateless person.Maybe the most important solution is precaution. If the problem does not occur, we don’t need to worry about it and spend energy passing the related law. The procedure relating to t lose his nationality.Now, I’m going to address refugees. According to 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 as a result of events occurring before 1 January 1951 and owing to well-founded fear of being persecuted for reasons of race, religion, nationality, membership of a particular social group or political opinion, is outside the country of his nationality and is unable or, owing to such fear, is unwilling to avail himself of the protection of that country; or who, not having a nationality and being outside the country of his former habitual residence as a result of such events, is unable or, owing to such fear, is unwilling to return to it. In terms of the refugees, there are North Korean defectors as refugees.North Korean defectors are a number of individuals who have escaped from North Korea, mainly for the difficulty of obtaining food, the repressive North Korean regime, or dictatorship(Wikipedia,2010). The reason of voluntary defectors is sometimes regarded as economiRelating to the Status of stateless persons joined by Korea.Often stateless people bear their children in which new problems rise: children’s statelessness. As is often the case with them, there are not proper solutions about this problem. Also, there are not always positive voices for them. Wan-Seok Park, citizen instructor of Non-Government Organization for foreign workers, said “They made an arbitrary decision to become an illegal immigrant. And, if they give birth to children and the children cannot have a nationality, they are totally responsible for their children's statelessness. If they think that they can stay in Korea once they have children, everyone will have children at any cost.” On the other hand, there is a strong voice that they should be no longer regarded as strange aliens because it is 20 years that have been spent since immigrant workers stayed in Korea, and they are more than 1 million at present. Jeong-Ho Lee, Assisted Center for Migrant Laborers in NamYang Joo, .
: 정태모형과 동태적 변화“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라는 대자연의 섭리처럼 사회 및 국제체제도 계속해서 변하기 마련이다. 이런 체제 가변성의 원동력을 마르크스(Karl Marx)는 혁명과 전쟁으로 보았다. 즉, 마르크스는 역사 변화의 원동력을 생산력 증대에서 찾았는데, 생산력이 변하면 생산관계가 바뀌고 그리고 생산관계의 집합으로서의 경제구조, 즉 하부구조(basis)가 바뀐다. 이런 토대 위에 위치해 있는 상부구조(superstructure)에 한번 조건 지어진 체제는 원래 모습을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변하는 하부구조를 버티지 못하고 붕괴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현상이 혁명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국제 체제 속에 적용하면 이러한 혁명이 전쟁이 된다. 결국 혁명과 전쟁이 체제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한편, 오간스키(A.F.K Organski)가 제시한 체제 변화의 원동력은 달랐다. 체제는 체제를 지배하는 기본 이념(ideology), 그 이념에서 도출되는 행위준칙(rules of conduct), 그 준칙을 강요하는 힘(power), 그리고 이러한 체제가 지속적으로 작동하도록 관리하는 조직(organization)으로 총 4대요소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지배자의 이익 보장성 때문에 피지배자들(인간, 집단)은 체제변화의 가능성의 소망 때문에 끊임없이 지배자들에게 도전하게 된다. 피지배자들이 성공하게 되면 이 집단이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체제변화가 오간스키의 힘의 전이 이론(the power transition theory)의 발상의 시작이 되었다.힘의 전이이론의 개요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국제정치질서는 기존의 강대국(지배자)과 이 지배권에 도전하는 신흥강대국(피지배자)간의 지배권 쟁탈전의 형식으로 일어나게 된다고 보았다. 이 이론은 3가지의 ‘국제정치관’을 전제로 한다.무정부상태+주권의 절대성국제정치사회에서의 국가의 주권은 이론상 그 이상의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 최상의 권위이다. 이런 주권의 절대성이 어떠한 초국가적 권위도 육강식주권국가는 지배권 장악을 위한 위계상향적 성향 때문에 계속해서 약소국을 착취하면서 지배권탈취 투쟁을 하게 된다. 이러한 투쟁의 결과가 국제정치질서라 보고 있다.힘의 가변성각국의 국력은 시간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다. 힘의 전이이론은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투쟁때문에 계속해서 힘이 바뀐다는 이론이므로 이 전제야 말로 핵심이 된다.오간스키는 공시태(synchrony)적 이론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즉, 시간을 초월하는보편적 이론은 존재할 수 없고 국제정치정세는 시간에 따라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시대변천에 따라 특수이론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역사의 한 시점에서 국제정치시스템을 다루는 정태적 이론으로서의 세력균형이론과는 반대로 오간스키의 힘의 전이이론은 시간에 흐름에 따라 변하는 국가간의 힘의 분포상태의 변화에서 전쟁의 원인을 찾으려는 국제정치시스템의 동태적 변화양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그의 생각에 입각하여 오간스키는 세계역사를 3기의 시대로 구분하고 있는데 1기는 대략 1750년 이전의 시대로 국제사회는 거의 균등한 힘을 가진 국가들로 이루어져 있어서 세력균형이론이 아주 유용한 이론이었다. 그리고 2기는 산업화가 시작된 1750년경 이후부터 현재까지로 보고있다. 이 시기에는 가국의 산업화의 진행정도에 따라서 각국의 국력차는 계속 바뀌어 가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오간스키의 힘의 전이이론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이다. 3기는 모든 국가가 산업화를 마친 시대인데, 아직 오지 않은 시기이기 때문에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오간스키는 자기 이론이 시간을 초월하는 보편적 이론이 아닌 한 시대에만 적용 될 수 있는 시한적 이론이라 생각하는 점에서 현실적이고 겸손한 학자였던 것 같다.국력의 변화오간스키의 힘의 3대요소부(富)와 산업능력인구정부조직의 효율성이 중에서도 산업능력의 증강이 주도적 역할을 하여 산업화의 진행이 인구증가와 정부조직의 효율성을 유발한다고 보았다.강대국이 되는 산업화 진행의 3단계잠재적 힘의 단계(the stage of po maturity)산업화가 완성된 단계기술혁신, 경제성장은 계속되나 GNP의 증가율은 그전보다 떨어진다.힘의 전환적 성장단계에서의 급격한 변화는 없음.이러한 조건하에서 성숙기에 든 강대국의 힘은 ‘상대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왜냐하면 전환적 성장단계에 있는 국가의 힘이 급격하게 변하는 반면 힘의 성숙단계에 있는 국가는그 정도의 속도를 유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절대적인 힘의 우위는 계속 확보하더라도 상대적 우위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의 근거하여 두 번째 성장 단계의 국가(도전국)가 성숙단계의 국가에 도전하는 현상을 포착하여, 전쟁의 원일을 찾아내는 이론이 힘의 전이이론이다.오간스키는 지배권을 유지 하기 위한 국가에게 도전을 막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모두 한계점이 있어 효력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므로 각국의 국력변화 과정에서 결국은 강대국과 도전국 사이의 힘의 대등화는 불가피하다고 결론 내고 있다.강대국이 도전국을 막는 3가지 방법 및 한계방법 : 원조 및 통제력 행사, 예방전쟁한계 : 도전국 정부가 순응하지 않을 수 있고 예방 전쟁은 너무 무모한 것으로 현실적으로 어렵다방법 : 도전국의 산업화를 물자 공급을 차단함으로써 지연시키는 방법한계 : 시간을 지연시킬 뿐 도전자의 강대화를 차단할 수는 없음방법 : 도전국의 산업화를 원조제공 등으로 도와줌으로써 고마움 때문에 지배국의 지배권을 계속 존중하도록 하는 방법한계 : 어떤 나라도 자국이익이 앞서면 타국에 대한 의리는 무시한다.국제정치구조로서의 힘의 위계질서국제정치구조는 힘의 강약에 따라 위계적으로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만족국가:불만국가전쟁의 원인과 평화의 조건“평화는, 강대하며 현존질서에 만족해 하는 강대국들과 그들의 동맹국들의 힘이 도전세력의 힘보다 훨씬 강할 때, 즉 현상유지를 지지하는 국가들의 힘이 너무 강대하여 어떠한 군사력 도전으로도 현실개혁을 바랄 수 없게 될 때, 유지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리고 반대로 불만을 가진 도전국과 그의 동맹국들의 힘이 현상유지를 지 추구하는 것은 그들의 이익뿐 다른 국가들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평화≠현상유지또한 오간스키는 평화와 현상유지와 동의어일 수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1절에서 말 했듯이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의 말처럼 국제사회 내에서 고정된 국제질서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간스키는 지배국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 온다면 국제질서의 강요된 유지 보다는 비폭력적인 구조개편의 허용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전쟁을 일으키는 도전국의 속성적 특색과 부대상황도전국의 크기 : 도전국의 잠재적 힘이 커야 전쟁의가능성이 생김도전국의 국력신장속도지배국의 위계구조변화 수용태세 : 현명한 강대국은 국제정치의 흐름을 잘 파악하여 위에서 말할 것 처럼 비폭력적 구조개편으로서 자신의 자리를 내줄 수 있어야 한다. 영국이 대표적인 사례이다.지배국과 잠재적 도전국의 우호 관계오간스키가 생각하는 진정한 ‘세계평화의 길’은 자유민주주의 수호국이 어느 도전국도 추종 못할 막강한 힘을 소유하고 세계를 지배하는 길이다. 오간스키는 민주주의가 아닌 공산제국 건설을 추진하던 구 소련과 같은 나라가 국제정치를 지배하는 지배국이 되었을 때 모든 나라가 종속국가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논리로써 자유민주주의 수호국이 초 강대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5절에서 다루었던 모든 내용을 토대로 결론을 내면 오간스키가 추구하는 진정한 평화는 공산제국을 건설하는 국가가 아닌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국가가 초강대국이 되어 세계를 평화롭게 지배하되 지배국가가 변동 할 시점이 되면 전쟁으로 지배국가의 변동이 있어야 되는 게 아니라 현명하게 비폭력적 구조개편의 방법으로 스스로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국제 정치 체제이다실증적 연구예이론 모형오간스키는 전쟁원인변수로 국가간의 힘의 분포상태가 어떠할 때 가장 전쟁의 가능성이 높은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세력균형 가설주장 : 힘이 강대국들간 또는 주요 동맹국들간에 고르게 분포되면 평화가 지속된다모형 : 힘의 균형은 평화유지에서 생긴다. 그리고 강자가 아닌 약자가 공격자가 된다.경험자료검증 조건‘주요 전쟁’을 규정하기 위해 9개국을 ‘주요강대국’으로 선정세계최강국과 최강국 국력의 80%이상을 보유한 국가들을 ‘지배권 경쟁국’으로 정의하였는데 다만 최강국 국력의 80% 이상의 국력을 갖춘 나라가 없는 시대는 단순히 제일 강한 3개국을 ‘경쟁국’으로 잡았다.분석 기간 : 1860년~1975년까지 115년주요전쟁 : 보불전쟁, 러일전쟁, 양차세계대전검증결과전쟁과 힘의 분포상태는 관련이 없다.힘의 분포불균등균등전쟁없었음81(86.2%)26(81.3%)있었음13(13.8%)6(18.8%)강대국간에서 힘의 균형이 안정이 안 되어 있을 때만, 즉 일국이 타국의 힘을 앞지르는 과정에 있을 때만 전쟁이 일어난다.힘의 분포불균등균등, 비전이균등, 전이전쟁없었음81(86.2%)11(100%)15(71.0%)있었음13(13.8%)06(29.0%)일국이 상대의 국력을 앞지르는 과정에 있을 때만 전쟁이 일어난다.힘의 분포불균등균등, 비전이균등, 전이전쟁없었음41(100%)6(100%)5(50.0%)있었음05(50.0%)결국 이 조사 결과, 세력균형가설은 약소국군에서만 맞고, 국제사회의 지배권을 다투는 강대국가군 내에서의 전쟁행위에 대해서는 힘의 전이이론의 가설만이 맞는다고 할 수 있다.촌평(저의 느낀점으로 대체 합니다.)오간스키의 힘의 전이 이론은 정태모형의 비판에서 나온 이론이다. 즉, 시간을 초월하는 보편적인 이론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론은 한 시기, 특히 전환적 성장 단계, 에서 유용한 이론이다. 전환적 성장 단계에서는 다른 모든 것이 변하는 것처럼 국제사회에서의 국력도 또한 변하게 된다. 국력이 변하면서 지배국에 도전하는 도전국 때문에 전쟁이 발발한다는 이론이다. 그리하여 그가 말하는 평화란 지배국이 자유민주주의 수호국이 되어 누구도 추종 못하는 막강한 힘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물론 평화라는 말이 정의와 일치시켜서는 안되고 현상유지와 일치시키면 안 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