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ort전자정부의대두배경과 구현방안Ⅰ. 서론 : 문제제기Ⅱ. 전자정부의 대두배경1. 전자정부의 개념2. 정부의 내 ? 외부 환경1) 내부 환경: 정부조직의 효율성 제고의 필요성2) 외부 환경가. 고객만족 정부와 국민의 참여의식 강화나. 급변하는 세계정세3. 전자정부의 필요성에 대한 관점1) 기술 결정론적 관점2) 사회결정론적 관점3) 그 외4. 관점에 대한 논평Ⅲ. 전자정부의 방향제시1. 전자정부 구현 모습1) 전자정부의 기반2) 전자정부 구현으로 인한 행정조직 내부변화3) 전자정부 구현으로 인한 대외적 변화2. 해외의 사례3. 한국의 전자정부 구현1) 전자정부 추진의 비전과 목표2) 전자정부 구현 방안Ⅳ. 결론 : 끊임없이 성장하는 전자정부김성태. 『정보정책론과 전자정부론』. 법문사권기헌. 『전자정부와 정부혁신』. 커뮤니케이션스 북스권기헌. 『정보체계론』. 나남출판사서순복. 『지식정보사회와 전자행정』. 대왕사백공균 외. 『전자정부』. 비봉출판사최영훈 외. 『전자정부론』. 대영문화사황성돈 ? 전충식. 『전자정부의 이해』. 다산출판사편집부.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전자행정서비스 활성화 방안』. 한국행정연구원진영빈 ? 정충식. 『전자정부의 민원행정서비스 개선 방안에 관한 연구 : 부산광역시 이용자들의 인식을 중심으로』. 「한국지역정보화학회지」 제11권 제1호(2008. 3): 101~125행정자치부. (1998) 『전자정부의 비전과 전략』.해정자치부. (2001) 『전자정부범의 이해와 해설』.김상욱. (2009.2) 『전자정부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해정정보 공유방안 - 데이터의 관점에서-』. 충북대학교 산업과 경영 제21권 제2호오강탁 ? 이연후. 『참여정부 전자정부 수준과 향후 추진 전략』. 한국전산원김석주. 『참여정부의 전자정부 추진성과와 향후 과제』. 「한국지역정보화학회지」제10권 제4호(2007. 12): 111~134Ⅰ. 서론 : 문제제기전자정부는 ‘국민 지향적이고 효율적인 열린 정부’의 구현을 추구한다(행정자치부, 1998).1970년대 들며 주요 막 결론에서는 전자정부를 구현했을 때의 변화를 살펴본 뒤, 한국에 전자정부를 도입했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위한 성공적인 구현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Ⅱ. 전자정부의 대두배경1. 전자정부의 개념전자정부라는 신조어가 어디서 유래되었고 언제부터 쓰이게 되었는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전자정부의 직접적인 기원이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행정부의 정책적 노력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미국은 세계 정보기술의 발전을 주도해 왔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활용에 있어서도 가장 앞서고 있다(윤영민, 1996),미국 클린턴 대통령은 1993년 국가성과평가위원회(NPR : National Performance Review)을 설치하고 보속보고서인 "종보기술을 통한 리엔지니어링"에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전자정부, 즉 'Electronic Government'는 전자은행서비스 'Electronic Banking'에서 처음 대두된 개념을 확장한 것이다. ATM, 플라스틱으로 된 접근 카드, 전국에 걸친 네트워크가 은행업무 처리를 보다 편리하게 해 주었듯이, 전자정부도 정부와 고객 간의 의사소통을 보다 용이하고 신속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전자은행서비스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자정부에서도 프라이버시 및 보안문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생략) 정부관료는 21세기를 대비하는 정부의 필수적 기반이라는 관점에서 정보기술을 이해해야 한다. 21세기를 대비한 정부라 함은 효율적이고 고객응답적(Customer-Responsive)인 과정을 통해 시민들이 정보 및 서비스에 보다 폭넓게, 그리고 보다 적시에 접근하게 해주는 현대화된 전자정부를 의미한다.” (NPR, 1993, Executive Summary)NPR은 행정 부문에 리엔지니어링, TQM, BPR을 도입함으로써 정부의 경쟁력 강화하고, 정부의 전략적 계획수립 능력 및 업무평가 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정책을 폈다. 이를 통해 작은 정부를 지향하고 행정 처리에 드는 비용을 감소하는 등 외형적인 부분에래적인 문서관리체계, ⑤담당자만 아는 어려운 행정용여, ⑥ 불필요하고 낭비적인 회의의 남발, ⑦ 결재과정의 비능률성 등의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한국전산원, 1998, 168~171쪽). 따라서 정부 내에 BPR, EDI, E-Mail을 통해 직무를 결재 과정을 단순화 시켜 중복적 업무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고 ERP(Enterprise Resource Planning)기술로 인력·자금·물품의 관리를 하며 DMBS(Data Base Management System)은 정부 내의 지식관리를 통해 회의시간을 줄여주어 결과적으로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 및 효율성을 제고할 수 있다.2)외부 환경가. 고객만족 정부와 국민의 참여의식 강화시민사회가 발달함에 따라 일반 국민의 의식수준이 향상되면서 현대의 행정은 점점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수요에 직면하고 있다. 행정 서비스의 고객인 국민은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지적인 만족, 문화, 복지, 환경에 대한 질 높은 대민 서비스를 기대하게 되었고 이를 정부 정책의 성패를 판단하는 척도로 여기게 되었다.그러나 경직된 기존의 조직체계로서는 공무원들은 다양한 요구를 경험한 적이 없으며, 정부시스템은 일괄적인 행정 행위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이러한 요구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없다. 따라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국민과 정부와의 인터페이스(접점)의 확대를 위한 수단으로 전자정부가 대두되었다.나. 급변하는 세계정세1980년대 중반 이후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냉전의 긴장된 분위기가 완화되면서 시작된 국가간의 무한경쟁은 각 나라에게 선진국 진입을 위한 적극적인 발전 노력과 새로운 전략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WTO의 출범 이후 더욱 가속화된 세계 경제의 블록화 현상은 기업에 대한 정부의 대응 노력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리하여 기업활동을 규제하던 통제자로서의 정부의 역할에서 벗어나 관료가 기업의 경제활동을 촉진하고 그들의 창의력을 자극할 수 있는 지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할 것을 요구받고 있다(한국전산원, 2) 사회결정론적 관점사회결정론자에 따르면 사회는 기술발달에 따른 변화에 적응해가는 것이 아니라 기술발달을 주도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규정한다. 따라서 기술의 발달이 사회를 변동시키는 주요한 요인이긴 하지만 행정 조직에 미시적인 영향을 줄 뿐이고 그 자체만으로 사회 속의 권력관계나 제도를 변화시킬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이 관점은 직무의 변화에 따른 인력의 기술 수준, 인력구성과 같이 전자정부를 수행하기 위한 정부업무의 재설계(BPR : Business Process Reengieneering)와 역할 변화에 주목한다. 이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 경쟁력을 향상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본다.이러한 사회결정론적 관점에서 전자정부를 도입하게 된 주된 원인을 나누면 ①국민의 의식수준의 향상과 그에 따른 대응성 요인 ②세계화·국제화와 같은 환경의 변화 요인에 대한 대처 수단 ③관료제의 폐해와 행정의 분권화·지방화를 해결 수단으로 보는 관점 ④정부 내 개혁을 통한 효율성 증대를 위한 수단 ⑤광범위한 네트워크와 체계적인 시스템이 동원되는 정보자원관리의 요구 ⑥ 민주주의?인본주의적 행정을 위한 수단을 들 수 있다.3) 사회 채택론적 관점사회 채택론적 관점은 ‘기술은 독립적으로 발전한다’는 기술결정론적 관점과 이러한 ‘기술이 사회의 필요에 의해 채택될 때 변화를 유발한다’는 사회결정론적 관점을 섞어 중립적인 시각에서 전자정부 추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4) 경제 수단론적 관점세계정보통신기반(GII)의 등장에서 알 수 있듯이 현대사회는 하나의 정보공동체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세계화의 흐름 속에 국가 내의 경쟁력의 강화는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게 되었다. 따라서 경제 수단론적 관점은 전자정부는 정보통신의 기반으로 하는 첨단정보산업을 구축하여 그와 관련된 산업을 활성화 하고, 정보기술의 수요에 대응함으로써 경제와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관점이다.4. 관점에 대한 논평위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전자정부를 도입하게 된 배경에는 내적·외적 환경 요인에 따라 작상회의를 적극적으로 도입함으로써 회의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⑤국민과 정부 간의 대면접촉이 상당부분 감소함으로 인해서 행정의 부패가 감소하게 된다. 단적인 예로 1999년 4월에 도입한 서울특별시의 민원온라인 공개 시스템(OPEN: Online Procedure ENhancement for civil applications)을 들 수 있다. 민원에 대한 온라인처리와 처리기한의 명시, 그리고 처리자의 실명제 등을 통하여 민원에 대한 부정부패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⑥그리고 중앙과 지방간의 기능배분이 가능해져 지방자치의 활성화를 유발하고, ⑦재택근무(buildingless government)가 일반화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3) 전자정부 구현으로 인한 대외적 변화대외적으로는 민원서비스에서 획기적인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다. 특히 대국민행정 서비스의 전달기능의 변화에 주목한다. 이 기능과 관련하여 원스톱(one-stop) 행정 서비스, 논스톱(non-stop)행정 서비스, 광역 서비스나 원격전자민원의 제공함으로써 편의를 제공한다. 각종 인·허가업무 및 신청·신고 등의 민원행정 분야가 전자신고 및 신청이 가능해짐에 다라 원격전자민원이 상용화되고, 정보의 공개와 관련해서도 정부가 다양한 정보 서비스를 통해 지역정보 및 산업·기술정보 그리고 내부의 행정정보 등을 전자적으로 공개하고 수집하여 투명성을 높인다.2. 해외의 사례미국의 전자정부 사업은 시민에게 주는 잠재적 가치가 큰 사업, 부처의 효율성을 제고시킬 수 있는 사업, 다 부처 협력이 필요ㅣ한 사업, 18~24개월 내에 가시적 효과를 낼 수 있는 사업에 우선순위를 두고, 대 국민 사업(G2C, Government to Citizen), 대 기업 사업(G2B), 정부내 사업(G2G), 내부효율성(IEE, Internal Efficiency and Effectiveness) 등 네가지 포트폴리오의 24개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부시정부는 사업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예산을 담당하고 다.
정약용의생애와 사상목차Ⅰ. 서론1.1 주제를 선택한 이유1.2 기존 참고문헌(연구 성과)Ⅱ. 본론2.1 정약용의 생애1) 정치적 흐름2) 다산의 탄생3) 다산의 청년기4) 서학으로의 입문5) 정조와의 만남6) 유배생활7) 유배에서 풀려 난 이후2.2 다산의 저서와 학문1) 6경 4서2) 1표 2서2.3 다산의 학문1) 정치사상과 관제개혁2) 토지제도 개혁론3) 상업·공업 정책론4) 사회 신분제도 개혁론Ⅲ. 결론3. 1 본문 요약 및 견해Ⅳ. 참고자료Ⅰ. 서론1.1 주제를 선택한 이유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웠듯이 다산 정약용 선생은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자로써, 거중기를 만들었고 목민심서의 저자이며, 서울에서 양평으로 가다 보면 팔당대교를 지나 양수리 조금 못 가서 팔당호 주변에 다산의 생가와 유적지가 있고, 다산의 유배지였던 전라남도 강진에도 유적이 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산 선생이 우리 역사의 위대한 사람 가운데 하나인지는 잘 몰랐다. 그래서 그의 학문이나 사상의 위대성을 말하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그가 얼마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고, 또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느껴졌다.사회와 역사가 자신이 바라는 것과 정반대로 흘러갈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방법을 그의 삶이 알려주었기 때문에 그를 단순한 실학자 차원으로만 봐선 안 된다. 그가 실학적 태도로 현실을 개혁하려 했던 이면에는 이젠 학문에 대한 비판과 아울러, 자신이 주장하는 애용의 철학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하여 노력하였고 그런 철학적인 뒷받침이 있었기에 실생활에 관계된 여러 개혁 사상을 펼칠 수 있었다.기성 학계와 그 당시 사회의 모순에 대한 개혁을 위해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던 그의 사상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애민', 즉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훌륭한 관리가 될 수 있었고, 귀양 생활 18년 동안에도 저술에 몰두하여 우리에게 찬란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다산 철학의 내용 그 자체로도 대단한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 大學經說을 중심으로 (1), (2)」(「다산학보」3, 1980;「다산학보」6, 1984); 최대우,「大學經說考」(「丁茶山의 經學」, 민음사, 1989); 이지형, 「茶山의 大學觀과 大學新註釋」(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조선후기 경학의 전개와 그 성격」, 1998); 中純夫, 「정약용의 대학 해석에 관한 연구」(「茶山學」3, 2002)마. 詩經 : 김홍규, 「茶山의 詩意識과 詩經論」(고려대 민족문화연구소, 「民族文化硏究」 14, 1979); 심경호, 「茶山의 國風論」(「韓國學報」53, 1988); 김기철, 「丁若鏞 「詩經構義」에 관한 연구」(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1); 심경호,「정약용의 시경론과 청조학술: 특히모기령설의 비판 및 극복과 관련하여」(「茶山學」3, 2002)바. 尙書 : 이유진, 「「상서고훈」에 나타난 정약요의 역사관」(「철학사상」8, 1986); 조성을, 「정약용의 尙書연구문헌의 검토」(「동방학지」54, 55, 56합집, 1987); 조성을, 「정약용의 尙書今古文 연구」(「동방학지」61집, 1989); 심경호, 「茶山 尙書論에 관하여」(「한국한문학연구」14, 1991); 김문식, 「정약용의 경학사상과 경세론(상),(하)」(「한국학보」78, 79, 1995); 장승구, 「정약용의 역사에 관한 전망」(「韓中哲學」 제3집, 1997); 장병한, 「정약용의 변증에 대한 연구」(「한국실학연구」3, 2001); 장병한, 「정약용의 에 대하여」(「한국한문학연구」28, 2001)사. 禮 : 유권종, 「茶山 禮學 硏究: 喪儀說을 중심으로」(고려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1); 이유진, 「丁若鏞 周禮論의 연구」(동국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6); 장동우, 「茶山 禮學의 硏究: 「儀禮」「喪服」과 「喪禮四箋」「喪期別」의 비교를 중심으로」(연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8); 유권종, 「다산 정약용의 연구」(「孔子學」8, 2002); 彭林, 「정다산 예학과 청인 예학의 비교 연구」(「茶山學」3, 2002); 장동우, 「茶山 禮學에서의 '親세력을 축출하기에 좋은 호재로 정치적 음모로 다산은 18년간의 유배를 살게 되었다.순조의 즉위 후엔 그의 아버지 김조순이 권력을 좌우하며, 실질적으로 왕권은 힘을 잃고 관직은 세도가의 손에 의해 맡겨지면서 부정부패가 극심해졌다. 이러한 모순은 많은 농민들이 유랑하거나 민란을 일으키게 만들었고 다산은 근세사회의 체제 위기가 극으로 치닫게 되는 시대 속에서 중년과 말년을 살며 이러한 문제를 학문과 사상의 화두로 삼게 되었다.나. 다산의 탄생다산은 정재원(1730~1792)과 해남 윤씨 사이의 아들로 약용 외에 약전, 약종 그리고 딸 하나를 낳았다. 다산 가문의 본관은 押海로서 고려조에는 무관이 9세를 연이어 내려왔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8대를 연달아 부제학, 병조판서, 좌찬성, 대사헌 등의 벼슬을 하였고 모두 옥당에 들어갔으니 명문 중에서도 흔하지 않은 진기록 이다. 친가뿐 아니라 외가쪽 역시 대단한 명문이었다. 그의 어머니 해남 윤씨는 고산 윤선도의 후손인데 윤선도는 1차 예송에서 송시열의 입장을 신랄하게 비난하는 상소를 올림으로써 노론이 가장 기피하는 인물 중 하나였다.이처럼 다산은 명문의 가정에서 정재원의 아들로 경기도 광주 초부면 마재에서 1762년(영조 38년) 6월 16일에 태어났다. 다산이 태어난 때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비극적 사건이 있은 직후였다. 그의 이름은 약용(若鏞)이고, 자는 미용(美庸) 또는 송보(頌甫)이다. 호는 사암(梭菴), 다산(茶山), 열초(洌樵), 철마산초부(鐵馬山樵夫) 등이 있지만 후에 스스로가 쓴 묘지명은 사암이다.어려서부터 총명하였던 다산은 4살에 천자문을 배우고 7살에는 五言詩를 짓기 시작하였다.9세에 어머니를 여의고 형수와 서모 김씨의 보살핌을 받는다. 그리고 10살이 될 무렵에는 사도세자가 죽음을 당한 이후 정국이 어렵게 되어 부친이 벼슬을 그만두고 집에 있을 때 직접 經書와 史書를 수학하였다.다. 다산의 청년기다산은 15세에 풍산 홍씨와 결혼하여 6남 3녀 중, 2남 1녀만 장성하였다. 정조가 부친에게 호조 월과문신이 되어 매년 봄 화성의 현륭원(사도세자의 묘)에 능행(陵幸)을 위한 한강을 건너기 위해 필요한 배다리를 만들어냈다. 1792년 겨울 부친상으로 3년 상을 치르고 있던 중 정조로부터 화성(수원성)축조를 위한 기술적 설계를 지시 받게 된다. 거중기(擧重機) 등의 기계를 크게 활용하고 용재(用材)를 규격화한 점, 화포를 주 무기로 하는 공용화기 사용의 방어구조 등은 다른 성곽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것 이였다.1795년 다산이 34세가 되던 해에는 정조의 화성행차를 시위로서 수행하였고, 7월에 금정역 찰방(역장)으로 좌천되어 그 지역에서 서교를 믿지 않도록 하는 임무를 다산에게 위임함으로써 서학에 대한 멍에로부터 벗어나도록 하였다. 1797년에는 곡산부사 임명되어 관의 폐단을 해결하고, 민본주의 입각한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펴도록 하였다.재위기간 동안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다산은 당시 우세한 남인시파의 유력한 후계자로도 주목 받았다. 그러나 그만큼 그를 시기해 위협하는 세력들도 증가하였다.정조의 지지 속에서의 공직생활은 학문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더욱 체계적으로 학문을 몰입할 수 있었다. 특히 규장각에서 서양에서부터 받아들인 새로운 문물들은 그의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하는데 중요한 경험이 되었다.바. 유배생활1800년 6월 정조가 급서하며 다산은 처자를 마재로 보내고 홀로 서울에 있으며 반대파들의 눈을 피해 있었다. 이때 그는 서재에 여유당(與猶堂)이라는 당호를 지어 겨울에 냇물을 건너듯 조심히 살며 삼가며 살겠다는 뜻을 나타냈다.1801년(순조 원년) 서학 금지령이 내려지며 신유옥사가 일어났다. 서교에 대한 금지를 빌미로 정조의 지지를 받았던 남인 시파 세력을 뿌리 뽑으려는 노론의 계략으로 정약용의 탄탄대로는 무너지고 말았다. 이가환, 이승훈, 정약용, 그의 형 약전, 약종 김백순, 김건순, 이기양, 홍낙민, 권철신, 오석충 등이 하옥하였다. 이 때, 다산은 경상도 장기로 유배가게 된다.이듬 해 겨울에 백서사건이 발생하여 다시 서울로 와 조사를 받은 후다고 하였다.(2) 書서에는 "매씨상서평" 9권 "상서교훈" 6권, "상서지원록" 7권이 있다. "선기옥형"은 상천의 의기가 아니요 "홍범구주"도 정전형을 본뜬 정치이념일 따름이라고 하였다.(3) 禮예에는 "상례사전" 50권, "상례외편"12권, "사례가식" 9권이 있다. 관혼상제등 사례 중에서도 상례에 치중한 까닭은, 전주교와의 상대적 입장에서 유교의 본령 을 밝히려는 깊은 뜻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태로, 소로, 특생, 특돈의 예에서 그의 변도나 궤형의 수에는 일정한 법도가 있다. 군왕, 대부, 사의 계급에 따라 차등이 있으므로 멋대로 증감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4) 樂악(樂)에는 3권이 있다. 5성(聲) 6률(律)은 본래 같은 것이 아니다. 6률로써 制樂하므로 악가의 선천이요 5성으로써 分調하므로 악가의 후천이 되기 때문이다. 鄒衍, 呂不韋, 劉安등의 취률정성의 그릇된 학설을 따지는 한편 삼분손익, 취처생자의 설이나 괘기월기, 정반변반 등의 설은 모두 받아드리지 않는다고 하였다.(5) 易역에는 24권, 12권이 있다. 역에는 4법이 있는데 推移, 물상, 효변, 호체로서 십이벽쾌는 4시를 상징하고 중부, 소과 두괘는 오세재윤를 상징한다. 역에는 역수만 있고 순수는 없으므로 선천괘위의 설은 이치에 합당하지 않는다고 하였다.(6) 춘추에는 12권이 있다. 좌씨의 책서는 춘추의 전이 아니요 그의 책서는 춘추의 전이 아니요 그의 경의는 해석도 한나라 학자들이 저지른 지나친 잘못이다. 체는 오제의 제사이다. 그런데 주례에서 체제를 말하지 않은 까닭은 그들이 오제를 제사지낸다고 한것이 바로 체제이기 때문이다. 춘추시대에도 상기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두예(杜預)의 설은 준수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7) 논어에는 40권이 있다. 는 다른 경전에 비하여 이의가 너무나도 많다. 총520여장중 170여장의 이의를 하나로 묶어서 이라 하였다. 그중의 한 예를 들자면, 효제가 곧 인(仁)이니 인이란 총체적으로 붙인 이름이요 효제란 부목으로서 주자의 심덕, 애리(愛理)의 설은심서
정약용의 생애와 사상학번 학과 이름정약용의 생애 다산의 저서와 사상 다산의 학문목 차다산 정약용의 출생 다산의 성장기 다산의 관직시절 다산의 유배시절 다산의 만년시절정약용의 생애다산 정약용의 출생1762년(임오년,영조38년) 음력 6월 16일 아버지 정재원(羅州丁氏-荷石 丁載遠) 어머니 해남윤씨(海南尹氏) 사이 넷째 아들 태어난 곳은 한강 강변 마현 당시로는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초부면(草阜面) 마재(馬峴)이고, 오늘날의 행정구역으로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이다.10세부터 과예(課藝) 공부 시작 아버지가 잠시 벼슬을 하지 않고 있는 동안 : 경전(經典)과 사서(史書) · 고문(古文) 독서 : 시율(詩律)을 잘 지음 1777년 실학의 선구자 성호 이익의 영향다산의 성장기22세(癸卯年, 1783): 경의과 진사시험에 합격 정조와의 만남 이용후생과 관련된 자연과학과 기술에 관심 1792년 겨울 부친상으로 3년상을 치르고 있던 중 화성(수원성)축조를 위한 기술적 설계를 지시 받게 됨 23세(甲辰年, 1784) 4월 천주교와의 만남 한동안 천주교에 심취하던 중 1791년의 진산사건(신해사옥)이후 멀리함 신유사옥으로 인해 18년동안 강진 땅에서 유배다산의 관직시절정조가 서거 후 순조가 즉위 : 소론과 남인 사이의 당쟁 : 신유사옥 천주교 탄압사건으로 비화 : 다산은 천주교인으로 지목 첫 귀양지는 포항 장기 백서사건이 발생 두번째 귀양지는 강진다산의 유배시절57세 되던 해 귀향 목민심서 완성 『흠흠신서』저술, 경세론의 삼부작(1표2서)을 완성 『아언각비』 등의 저작 다산은 '실학의 집대성자' : (이익 · 유형원 '탈주자학적 경학체계') + (박제가 · 유득공 '실사구시(實事求是)') = '다산학' 독창적 학문 완성다산의 만년시절6경 4서 1표 2서다산의 저서와 사상詩 - 모시강의 12권 , 시경강의보 3권 - 풍림 이라 하여 권선징악의 윤리적 기능을 중요시 악사들로 하여금 조석으로 연주하게하여 왕자에게 악함을 깨닫게함 書 - 매씨상서평 9권, 상서교훈 6권, 상적 입장에서 유교의 본령 을 밝히려는 깊은 뜻 태로, 소로, 특생, 특돈의 예에서 그의 변도나 궤형의 수에는 일정한 법도가 있음 : 군왕, 대부, 사의 계급에 따라 차등이 있으므로 멋대로 증감해서는 안 됨 樂 - 악서고존 3권 - 5성(聲) 6률(律) : 6률로써 制樂하므로 악가의 선천 : 5성으로써 分調하므로 악가의 후천 鄒衍, 呂不韋, 劉安등의 취률정성의 그릇된 학설을 따지는 한편 삼분손익, 취처생자의 설이나 괘기월기, 정반변반 등의 설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음易 - 주역사전 24권, 역학서언 12권 - 역의 4법 : 推移, 물상, 효변, 호체로서 십이벽쾌 : 십이벽쾌 4시를 상징하고 중부, 소과 두괘는 오세재윤를 상징 역에는 역수만 있고 순수는 없으므로 선천괘위의 설은 이치에 합당하지 않음 춘추 - 춘추고징 12권 좌씨의 책서는 춘추의 전도, 그의 책서는 춘추의 전이 아님 : 한나라 학자들의 해석 실수 - 체는 오제의 제사 : 주례에서 체제를 말하지 않은 까닭 그들이 오제를 제사지낸다고 한것이 = 체제이기 때문 춘추시대에도 상기에는 변함이 없음 두예(杜預)의 설은 준수할 필요가 없음논어 논어고금주 40권 다른 경전에 비하여 이의가 많음 : 총520여장중 170여장의 이의를 하나로 묶어서 원의총괄 이라 함 예) 효제가 곧 인(仁)이니 인이란 총체적으로 붙인 이름이요 효제란 부목으로서 주자의 심덕, 애리(愛理)의 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함 맹자 맹자요의 9권 성기호설(성嗜好說) : 성(性)이란 기호(嗜好)인데 형구(形鷗)의 기호와 영지(靈知)의 기호가 있다고 함 본연지성 : 본래 불가의 책에서 나옴 우리유가의 천명지성과는 서로 빙탄(氷炭)과도 같아서 상호간의 비교할 길이 없다고 함중용 중용자잠(中庸自箴) 3권, 중용강의보 6권 용(庸) : 항상 끊임없이 오래감을 의미 보이지 않는 것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요 들리지 않는 것은 내 눈에 들리지 않는 것이니 그 것은 곧 하늘의 모습이요 하늘의 소리이기 때문 대학 대학공의(大學公議) 3권, 희정답대학강의 1권4권 15책 1808년(순조 8)~ 1817년(순조 17) : 정전제(井田制) 먼저 관에서 기준이 되는 정전을 마련 1/9만을 세금으로 받도록 하고 점차 전국으로 확대 : 부세제도 개혁안 제시 : 사창제(社倉制)와 상평법(常平法)을 실시 - 5책 과거제도를 개혁1표 2서목민심서 -제1편 〈부임〉에서 제4편 〈애민〉 : 목민관의 선임의 중요성·청렴·절검의 생활신조, 백성본위의 봉사정신 '수령은 근민(近民)의 직으로서 다른 관직보다 그 임무가 중요하므로 반드시 덕행·신망·위신을 갖춘 적임자를 임명해야 한다. 수령은 언제나 청렴·절검을 생활신조로 명예와 재리(財利)를 탐내지 말고, 뇌물을 절대 받지 말며, 수령의 본무는 민에 대한 봉사정신을 기본으로 삼아 국가정령(國家政令)을 빠짐없이 알리고, 민의(民意)의 소재를 상부관청에 잘 전달하고 상부의 부당한 압력을 배제해 민을 보호할 것.'- 제5편 〈이전〉 관기숙정(官紀肅正)을 전제 아전·군교(軍校)·문졸(門卒)의 단속 별감의 임용을 신중 현인의 천거는 수령의 중요한 직무 - 제6편〈호전 농업 진흥과 민생안정 : 호적정비와 전정·세법 등 부세제도의 개선 권농·흥산의 부국책을 도모할 것 '전정(田政)' : 양전에 있어 관료들 진전(陳田)·은결(隱結)이라 빙자하고 협잡하는 일을 제거 '결부법(結負法)' : 초지는 토성이 바뀌는 것이므로 양전에 유의해 국가재정 확립에 힘쓸 것을 주장진전관리에 대해 -농민들이 다시 갈아먹게 하며 세를 무겁게 하지 말며, -상경전(常耕田)을 진전이라고 속이는 일을 밝히고, 합리적인 관리방안으로 어린도법(魚麟圖法)을 써야한다. -재전징세(災田徵稅)를 바로잡아 밝히고, -이속의 횡령을 방지하고 -징수에 있어서 부유층에서 걷고, 문서에 따른 관리를 정확히 할 것 환곡의 협잡을 자세하게 논증 - 제도적인 개혁을 기본 - 국가재정의 정비, 관료의 절약과 청백사상에 따른 윤리적 제약과 함께 문서관리의 정확성제7편 〈예전〉 진보적인 교육관 제8편 〈병전〉 '군정개혁안' 첨정·수포의 법을 폐지, 군안(軍案)을導後刑罰)의 원칙을 견지할 것제10편 〈공전〉 : 산림·천택·영전의 합리적 운영방안을 제시 농업·임업·광업·교통·수공업·상업 등 각 분야의 생산력 발전을 위해 선진기술을 도입할것 제11편 〈진황〉 빈민구제로서의 구황정책 다룸 제12편 〈해관〉 수령이 임기가 차서 교체되는 것흠흠신서 - 30권, - 경사(經史)에 근본, 공안(公案)에 증거가 있는 것들을 모음 6경 4서로써 수기, 1표 2서로써 치인 '수기치인'의 본말 갖춤 - 시문잡저 : 시문집 18권을 간추려도 6권은 되고 잡문은 전편이 16권, 후편이 24편 : 잡찬목록 아방비억고 30권(미완성), 아방강역고 10권, 전례고 2권 대동수경 2권, 소학주관 3권, 아언각비 3권 마과회통 12권, 의령 1권흠흠(欽欽) - 죄수에 대하여 신중히 심의(審議)하는 흠휼(欽恤)사상에 입각하여 재판하라는 것 - 자의적·법외적(法外的) 재판과 형벌부과가 이루어지자 흠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흠흠신서〉 지음 -〈경사요의 經史要義〉 3권, 〈비상전초 批祥雋抄〉 5권, 〈의율차례 擬律差例〉 4권, 〈상형추의 祥刑追議〉 15권, 〈전발무사 剪跋蕪詞〉 3권으로 구성 : 그 중〈전발무사〉 저자가 곡산부사(谷山府使)·형조참의 등으로 재직하던 중 인명에 관한 옥안(獄案)·제사(題辭)·검안발사(檢案跋辭)중 의심가는 것 17건 분류, 평가정치사상과 관제개혁 토지제도 개혁론 상업·공업 정책론 사회 신분제도 개혁론다산의 학문≪여유당전서≫ - 정치사상을 검토 : 왕권강화론 일표이서를 통해 군주권의 절대성과 우월성 제시 절대 왕정과는 거리가 멈 : 민본(民本)의 의식 애민(愛民)·교민(敎民)·양민(養民)·휼민(恤民)하는 목민지도(牧民之道)를 확립 : 왕조체제를 근간으로 인정한 것 : 과거제의 실시 절차를 정비·보강해 제시 공거제(貢擧制)의 도입, 소과(小科)와 대과(大科)를 통합 삼관(三館)의 관료들이 급제자와 경륜을 논하는 조고(朝考)를 첨설 고시과목도 대폭 증설 중국사,우리 역사 관료의 실무 행정과 관련되는 잡학(雜學) 체력의 단련정치사상용의 토지 개혁론 -〈 전론 田論〉의 여전제(閭田制) – 1798년 : 생산물의 분배는 생산에 투하된 가족의 노동량에 따라 이루어져야 함 : 공동소유·공동경작을 창안함 - ≪경세유표≫의 정전제- 1817년 - 사·공·상의 토지 소유를 반대 상업·수공업·교육 등에 종사할 것을 주장 사(士): 이용후생(利用厚生)을 위한 기술 연구에 종사토지제도 개혁론상업 - 원초 유학의 상인과 장인(匠人)을 보호하는 문제를 거론 - 조선 후기 사회는 상공업이 상대적으로 발전해 가던 단계 - 금고법의 철폐 - 유식(遊食) 양반에 대한 문제를 해결위함 - 상업발전론을 제시 - 특권상업 및 매점상업은 반대 수공업 - 방직(紡織) 분야 선진기술을 과감히 수용 - 농본적인 절약론의 입장에서 화폐 유통의 구조 개선을 주장 광업 - 광업개혁론 : 관영화 또는 국영화 - ≪경세유표≫·≪목민심서≫ 광업정책 및 광업경영론 중앙에는 사광서(司告署)를 설치, 지방에는 감무관(監務官)을 파견상업·공업 정책론사회 분업에 따른 직능적 파악 - 신민을 사·농·공·상·포·목·우·빈·주(士農工商圃牧虞嬪走)의 9직(九職)으로 나누어 배치해야 함 - 사의 농·공·상에의 참여 - 농·공의 과학기술적 기반의 중요성을 강조 일종의 직업별 과거제 - 기예 경영을 통해 우수한 농·공인을 행정직에 발탁 인간의 본질적 평등 인정, 신분간의 위계질서 필요 “국가에서 의지하는 것은 사족인데 그들이 권리도 세력도 없어지면 위급할 때 소민의 난리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 양반은 지도자로서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전인교육 일반 백성은 효제의 윤리교육을 실시사회 신분제도 개혁론선천적 불평등성에 입각한 인간불평등성론에 반대의지 만민평등의 원리를 이론화하거나 신분제를 철폐하지는 못함 향촌제도의 개편과 연결 - 향직(鄕職)을 정식 관직화 - 향리(鄕吏)제도의 문제점을 지적참고 문헌장승구. {정약용과 실천의 철학}. 서광사 박석무.{풀어쓰는 다산이야기}.문학수첩 박석무.{다산 적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한길사 정약용.이익성 옮김{리더십의
Report조직구조와 조직효과성과의 관계목차조직구조와 조직효과성과의 관계Ⅰ 서론1. 조직구조의 등장배경2. 의의Ⅱ 조직구조1. 조직구조의 기본 변수1) 공식화2) 복잡성3) 집권화2. 조직구조의 기본 변수 간의 관계Ⅲ 조직 효과성1. 조직 효과성의 변수1) 직무만족의 의의2) 조직몰입의 의의2. 조직문화의 유형과 강도에 따른 조직 효과성1) 조직문화 유형과 직무만족과 조직몰입 간의 관계(1) 조직문화 유형과 직무만족(2) 조직문화 유형과 조직몰입2) 조직문화 강도와 직무만족과 조직몰입 간의 관계Ⅳ 조직구조와 조직 효과성의 관계1. 변수 간 상호 관계/ 영향력Ⅰ 서론1. 등장배경조직구조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기점은 Max Weber가 관료제 이론을 제시하면서부터 이다. 합리적이고 법치주의 의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공식적 정부조직으로 확립되며, 대규모 관료조직의 공식화와 집권화를 근간으로 한 합리적 계층제 구조로써 조직능률성과 예측가능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장치로 기능하였다. 오늘날에도 관료제는 모든 국가에서 가장 기본적인 공공조직의 모습으로 남아있다.그러나 관료제는 만능의 조직 체제는 아니다. 관료조직은 이를 설계한 헌법이나 법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관료제의 병리가 나타난다. 이는 관료제 자체의 내재적 모순점 때문에 나타나기도 하고, 또 관료제가 급변하는 행정 환경과의 적합성을 확보하지 못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역동적인 현대사회에 있어서 보수적인 기존의 관료제 구조로는 경쟁력 있게 대응할 수 없다는 요청과 웨버관료제에 대한 회의로부터 출발하여 탈관료제가 대두되었다. 관료제의 경쟁자이면서 파트너인 시장(market), 민주주의(democracy)의 핵심요소인 분권화는 다양한 전문성을 겸비하고 조정력을 갖춤으로써 빠른 수용력, 문제해결능력을 가진다.정부에서 직접 국가 목표를 효율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적 구조가 관료제이며, 민주정부 하에서 이러한 정부관료제는 국민의 뜻에 합당하게 작동하기 위해 조직구조 중 하나인 관료제의 역기능을 알고 순기능을 조직의 사회 위계제에 의해 구성원에게 권한을 배분하는 것으로 본다. 랜슨과 히닝스, 그린우드(S. Ranson, C.R.Hinings & R. Greenwood)는 조직구조란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산출, 재창조되며 조직이 형성되는 동안 통제의 복잡한 매개체로서 구성되기도 한다고 하였다.조직구조간의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특성을 알아야한다. 이는 조직의 차원과 이들 사이의 관계를 비교하여야 한다. 홀(Hall, 1991 : 49-50)이 제시한 공식화, 복잡성, 집권화는 조직구조의 기본변수들로 인해 조직구조라는 한 형태로 구성된다. 그러나 조직구조의 특성은 기본변수들이 존재하는데 멈추지 않고 이들이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도 관료적 행정체제의 특성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이들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공식화, 집권화, 복잡성의 개념을 설명하고, 이들의 관계를 규명한 뒤 기본변수들이 어떤 식으로 조직의 효과성에 유기적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설명하겠다.Ⅱ 조직구조1. 조직구조의 기본 변수1) 공식화공식화(公式化, formalization) 또는 공식성은 J. Hage and M.Aiken의 “Relationship of Centralization to Other Structural Properties”에 의하면 조직 내의 업무가 표준화되어 있는 정도, 규칙의 성문화 정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성질은 관리의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을 높여 활동비용을 줄이고, 구성원들의 행위를 규제하여 예외성을 낮춘다.공식화를 이용하여 조직의 상위계층이 하위계층에 대한 권력 유지 및 통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공식화 수준이 높을수록 업무수행의 형태가 성문화된 정도도 높아 업무수행의 절차와 방법이 제한되므로 구성원의 역할은 명확해지고 재량권의 크기는 축소된다. 반대로 공식화 수준이 낮을 경우, 업무는 비표준화되어 개인의 행위에 대한 재량권은 극대화되어 융통성 있게 업무를 처리하여 변화하는 조직에 적응할 수 있게 한다.기술의 혁신사와 규모에 따라서도 결정이 되는데,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이라 하더라도 역사가 오래되고 대규모면 분권화의 성격을 띠기 쉽고, 신설되거나 소규모 조직이라면 상대적으로 집권화된다. 조직의 규모가 확대되면 기본적인 정책결정의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재량권이 집중되는 경향도 있으나, 조직상층부의 업무량 증대는 중요 정책결정이외의 분야에서 분권화를 불가피하게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관리자가 장기계획이나 정책문제에 대해 몰입하기 위해 부담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도 분권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권한을 부여 받은 조직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협조하고 리더에 추종함으로써 창의성을 발휘하여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하지만 중앙의 지휘 감동이 약화시킬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셋째, 과학기술이 발달하며 정보통신기술의 확장으로 현대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따라서 환경의 불확실하고 역동적인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분권화되어 비일상화적이고 비정형화된 의사 처리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행정업무 처리가 산만해져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해 행정의 효율성을 저해 할 수 있다.3) 집권화집권화(集權化, centralization)란 분권화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조직 내의 권력의 분배 정도를 뜻한다. 일상화된 의사결정제도를 가지고 계층적 구조의 형태를 띤다. 상층부로 갈수록 권력이 커져 의사결정과정에서의 참여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반면, 하위계층으로 갈수록 자율적인 의사결정권이 없으므로 참여는 배제된다.집권화의 정도를 결정하는 요인들로는 첫째, 권위적인 위계질서가 강조되고 수직적인 관계가 지배되는 사회에서는 집권화가 나타난다. 고위관리층이 형식적으로 분권화와 권한의 위임을 부여하지만 실제로는 권한을 독점하고 있고, 하위계층 역시 명령, 지시에 부응하려한다. 이는 관료주의적 경향과 권위주의적 성격을 갖게 되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안보상에 위협을 받거나 조직 내의 위기를 겪을 경우, 집권화를 통해 신속하게 대응을 할 수 있다과는 괴리가 있는 정책을 수행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특히 형식주의화는 행정 업무에 대해 창의적이고 적극적인 수행을 어렵게 하여 능률이 떨어지는 행정을 하게 한다.2. 조직구조의 기본 변수 간의 관계집권화와 분권화는 조직 내에서 혹은 조직 간에 의사결정권이 어떻게 배분되고 있으며, 어떻게 배분되어야 하는가를 설명하려는 개념이다. 조직구조의 가장 간단한 전제를 소개한 학자는 Hage와 Aiken의 논리이다.‘첫 번째, 집권화 수준이 높으면 공식화의 수준도 높다.두 번째, 복잡성(분권화)의 수준이 높으면 집권화 수준은 낮다.‘여기서 알 수 있듯이 집권화와 공식화의 관계는 정(+)의 관계를 가지지만, 반면에 복잡성은 역의 관계를 가진다. 집권화 수준이 높다는 것은 분권화 수준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고, 집권화 수준이 낮다는 것은 분권화 수준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집권과 분권의 개념은 일반적으로 반대 개념이라고 할 수 있지만 효율적인 집권화는 분권화를 전제로 하여 가능할 수 있으며, 효율적인 분권화 역시 집권화를 전제로 하여 가능할 수 있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서는 상호 보완적이다. 즉, 집권화와 분권화는 상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절대적 의미의 집권화와 분권화는 존재 할 수 없다.Hage와 Aiken의 논리를 현대 대규모 조직에 적용하여 실증적으로 연구한 Hall(1991 : 48-83)에 의하면 첫째, 전문화의 정도가 높을수록 관료제의 수준은 낮아진다. 둘째, 전문화 수준의 높아질수록 권위의 계층정도는 낮아진다. 셋째, 전문성의 증대와 공식화는 상반된 관계를 지닌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후에 Aston학파는 복잡성이 높아지면 공식화에 영향을 끼치지만 직접적으로 집권화를 증대시킨다고 보지 않았다. 이는 조직구조의 복잡성과 공식화는 밀접한 관계를 가질지라도 집권화는 정반대의 관계에 있음을 뜻한다.John Child(Child, 1973 : 168-185는 조직구조의 복잡성이 증대되면 공식화를 증대시키고, 곧 분권화를 촉진한다고 하였다. 규모가 확대되면 조직은 더욱 복 여러 학자에 대한 의견도 다양하다. 직무만족 이론에 관한 최초의 연구자인 Hoppock는 직무만족이란 “조직구성원들의 심리적?생리적?환경적 상황의 결합상태”라고 하였다. Locke(1976)는 직무만족이란 “직무나 직무경험의 평가에서 오는 유쾌하고 긍정적인 정서적 상태”라고 하였으며 Porter와 Lawler(1968)는 “직무만족이란 실제로 얻는 보상이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보상의 수준을 초과한 정도”라고 정의하면서 “실제의 보상이 정당하다고 인정되는 보상의 수준에 미달하면 미달할수록 주어진 상황에 대한 불만은 더 커진다”라고 하였다. 김홍기는 직무만족이란 “어떤 직무에서 얻을 수 있거나 경험하는 욕구충족(need satisfaction)정도의 함수로서 직무만족의 본질은 자신의 직무에서 얻어지는 자기 실현의 감정과 가치 있는 성취감” 또는 “종업원이 자신의 직무나 직무경험을 평가함으로써 얻게 되는 유쾌함이나 조직구성원들의 감정적 반응을 반영하는 긍정적인 정서 상태”라고 하였다.Alderfer의 ERG 척도와 미네소타 대학의 MSQ를 이용하여 구성원이 직무와 관련된 전반적인 만족수준, 임금과 보너스, 승진, 회사직원들과의 관계에 대해 만족하고 있는 정도를 나타낸다.즉, 직무만족은 어떤 대상이 존재한다고 여기는 인지적 요소와 대상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감정을 나타낸 감정적 요소로 구성이 된다. 직무수행자가 직무 수행과정에서 경험하거나 직무 수행결과로 얻게 되는 성취감으로, 정서적 상태를 측정한다고 볼 수 있다. 내적인 만족으로 직무의 난이도에 따라 책임감을 가지고 도전하고,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 있고, 외적인 만족은 보상과 작업환경이 있다.직무만족을 측정하는 기법은 프레이필드와 로스척도, 호포크 척도, 퀸과 스테인즈 척도 등이 있다.2) 조직몰입의 의의직무몰입은 현재 자신이 맡고 있는 직무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상태이다. 개인이 심리적으로 자신의 일과 업무를 동일화 하고 있는 정도 혹은 전체적으로 자기 이미지 중에서 직무가 차지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