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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수의 삶과 작품
    이광수의 삶과 작품―「어린 벗에게」와 「꿈」을 중심으로―20010202 이종성20060028 윤희렬20060030 전진탁목차1. 서론2. 춘원의 생애3. 사랑을 매개로 현실을 꼬집다-「어린 벗에게」-4. 꿈을 통한 죄의식과 비극의 번뇌를 말하다-「꿈」-5. 결론※ 참고문헌1. 서론춘원(春園)은 평안북도 정주 태생으로 소작농 가정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나던 해에 이미 한글을 비롯하여 천자문을 깨우치며 재주와 지혜가 남달리 뛰어났다고 한다. 일본에 유학을 가기도 하였으며 안창호를 만나 임시정부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그 당시에 그는 계몽적 의미를 담은 글들을 많이 쓴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그가 변절자란 평가를 받은 것은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하면서 부터이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권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p.494~495.이광수가 애국계몽주의자, 민족주의자로 불리던 일제강점기초기의 모습을 작품 「어린 벗에게」를 통해 알아보며 친일행위를 하던 일제강점기말기 시기의 모습을 작품 「꿈」을 통해 소설에 나타난 그의 세계인식을 살펴보고 이광수가 어떤 작가인지 알아보겠다.2. 춘원의 생애춘원은 1892년 2월 1일 평안북도 정주의 전주 이씨의 오대 장손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이종원(李鍾元)은 42세, 어머니 충주 김씨는 22세였다. 그러나 조부 이건규(李建圭)는 기생첩을 얻어 술집을 내어 술을 마셨고, 부친도 과거에 실패하여 술을 마시는 바람에 집안이 차차 기울었고, 그로 인해 춘원의 유년시절은 몹시 어려워졌다.11세에 부모가 콜레라로 사망하여 그는 고아가 되었고, 동학의 대접주인 서병달에게 발견되어, 한 식구 같이 지내게 된다. 그러나 일제의 침략이 심해지자, 동학이 주도한 민중 봉기가 일어났고, 그 때 춘원을 잡으면 책임자를 다 알 수 있다고 지목하여 정주를 떠나 서울로 오게 된다. 그 때 마침 천도교에서 일본유학생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여, 1906년 동경으로 건너가 대성중학교에 입학했다. 일 년윤광호」를 발표했다. 그리고 1917년 1월 1일부터 「무정」을 연제하기 시작했다.1918년 4월 폐병으로 고생한 춘원은 허영숙의 지극한 간호로 도움을 받고, 허영숙과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허영숙의 집안의 반대로 춘원과 허영숙은 북경으로 가 석 달 남짓한 애정도피 생활을 했다. 그 후 춘원은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31운동의 선봉인 조선청년독립단선언서를 기초했고, 독립운동에 참가했다. 그리고 1921년 서울로 돌아와 백혜순과 합의 이혼을 하고 허영숙과 재혼을 했다. 1922년 5월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발표하여, 큰 비난을 받게 된다.1937년 “동우회는 흥사단과 동일한 것으로서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였다.”라는 답변을 강요하여 주요 인사들을 투옥시킨 수양동우회사건에서 7년 언도를 받았다. 1932년에는 동아일보에 「흙」을 썼고, 1938년에는 「사랑」을, 1939년에 「무명」을 썼다. 1941년 12월 8일 태평양 전쟁이 벌어져 일제의 탄압이 절정에 달했을 때, 춘원은 카야마라고 창시개명을 하고, 일문으로 글을 쓰며, 학병 권유의 연설을 하고 다니는 등 친일 행위를 했다. 1945년 815 해방을 맞았으나, 춘원은 친일파로 규정되었다. 그리고 1947년 반민법(反民法)이 국회를 통과하여 1949년 1월 1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으나, 아들 이영근이 혈서를 써서 병보석으로 출감되었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으로 북한 공산당에게 납치되어 북으로 가게 되었고, 1955년 북경에서 사망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3. 사랑을 매개로 현실을 꼬집다 -「어린 벗에게」당시의 조선의 사정은 바야흐로 문예라는 물건을 맛보고서 허덕이는 때였다. 아직껏은 순조롭지 못한 환경 때문에 문예를 정면으로 맛보지 못하던 것이 시대가 바뀌면서부터 문예에 대한 동경이 매우 심하였던 때였다. 이때에 춘원의 학생 시기에 그의 후원자요 지기이던 육당 최남선이 간행하는 잡지 「청춘」 잡지 「청춘」은 1914년 10월에 창간되어 1918년 9월 통권 제15호로 종간되었다. 에 나왔다. 창간사에서 '우리는 여러분으로 더부러 배홈의 동무가 되려 합니다. 다 가치 배홉시다. 더욱 배호며 더 배홉시다' 한승옥,『이광수 장편소설 연구』, 박문사, 2009, p.103.라고 한 데서 발간 취지를 알 수 있듯이, 일반교양을 목표로 펴낸 계몽적 대중지였다. 인문과학 · 사회과학 · 자연과학 전반의 내용을 다루었으며, 문학 부문에 비중을 두어 준문학지의 성격을 띠었다. 즉 한일합방 이후에 일제에 의해 자유롭게 문예활동을 할 없었던 우리 작가들이 함께 모여 일제의 눈을 가리고 문예활동을 하기 위해 만든 잡지였던 것이다. 이러한 성격을 지닌 잡지에 사회의 현실을 대놓고 비평하는 글을 올릴 수 없었던 상황에서 춘원은 를 1917년 7·9·11월호에 연재한다.지상에 「어린 벗에게」가 나타났다.어린 벗에게는 장편 『무정』이 끝나갈 무렵 씌여진 작품이다. 『무정』을 거의 끝낼 무렵 그는 동경에서 스물 한 살의 의전 졸업반 여학생을 알게 되어 가슴을 태우게 되었다. 무더운 여름, 하숙집 이층에서 한참 화제 중인 『무정』을 집필하다가 춘원은 몸에 이상을 느꼈다. 기침이 심하고 미열이 났다. 너무 과로한 탓이러니 하고 병원에 찾아갔다. 그 병원이 바로 우시고매 여자 의학전문학교 부속병원이었다. 진찰비가 일원 오십전이었는데, 춘원은 육십전밖에 없었다. 모처럼 온 것을 그대로 돌아설 수도 없고 해서 쩔쩔매고 있을 때, 이광수 앞으로 한 여인이 지그시 다가왔다. 그 여인은 조선을 구할 태양 같은 고국의 학생이 진찰비가 없어서 쩔쩔매는 모습을 보다 못해 그 앞에 다가선 것이었다. “좋으시다면 제가 빌려 드리겠어요.” 그 여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면서 샛파란 불길이 하늘을 찔렀다. 그 여인이 바로 허영숙이다. 허영숙은 어린 벗에게에서 김일련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춘원의 두 번째 부인이다. 그 시대의 사회 관습에서 이혼과 재혼이라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춘원은 어린 벗에게에서 이러한 구습이 우리 민족의 성장에 저해요인이라고 생각하여 지성사, 1977, p.63.자기가 외톨이가 되어 애정을 펴지 못하는 책임을 조선 사회에 돌려 민족허무주의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인습에 도전하고 자아 각성을 추구하는 선각자로 자부하고자 했다. 불안하게 방황하는 심정을 거듭 하소연하다가 모든 것을 운에 맡긴다고만 했고, 현실 인식을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춘원의 계몽적 특징을 가진 소설을 보면 영웅적, 선도자적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데 「어린 벗에게」에서도 주인공이 그러한 성격을 가진다. 주인공의 대학시절 김일련에게 받은 시련의 아픔을 이겨내는 장면에서 주인공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만일 다른 무엇(아래 말하려는)이 나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던들 나는 영원히 죽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로소이다. 그 ‘다른 무엇’은 다름 아니라, ‘동족을 위함’이로소이다. 마치 인생에 실망한 다른 사람들이 혹 삭발위승(削髮爲僧)하고, 혹 자선사업에 헌신함같이, 인생에 실망한 나는 ‘동족의 교화’에 내 몸을 바치기로 결심하여 이에 나는 새 희망과 새 정력을 얻은 것이로소이다.” 최원식 외, 『20세기 한국소설』권1, 창비, 2005, p.53.이 글을 볼 때 주인공은 자신은 민족을 생각하는 희생자적 지식인을 내세운다. 춘원 생애에 있어 초혼은 그로 하여금 논리적 설명을 거의 포기케 한 사건이었다. “이 불쾌하고 경솔한 혼인”이라고도 했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한갓 ‘인연’ 혹은 ‘운명’이라고 그는 여러 곳에서 말해 놓았을 따름이다. 전통적인 결혼으로 인하여 춘원 그 자신이 인생에 있어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아 그 폐해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자유연애를 주창하게 되었고 춘원 자신은 그에 더 나아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삶을 위해 이혼과 재혼을 하게 되는 것이다.4. 꿈을 통한 죄의식과 비극의 번뇌를 말하다 - 「꿈」이 시기의 조선은 안팎으로 격변의 시기를 겪으며 한반도 전체가 일제의 홍역을 겪는 식민통치 말기의 상황이다. 말기라고는 하나 국내외의 일제의 횡포는 극에 달해있는 상황이었으며 이러한 사정은 민족문예사조 전반에도 운영을 전담하였는데, 일제의 강압하에서도 국문학 분야의 무게 있는 논문과 자료를 계속 발표하였다. 그러나 1941년 4월 일제의 탄압으로 제3권 제4호(통권 26호)를 끝으로 폐간되었다.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권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pp.494~495.그 뒤 8·15광복 후인 1948년 10월 정지용이 속간을 꾀하였으나 1호로 종간되었다. 그러한 정세 속에서 춘원은 일제의 강압에 결국 친일행위를 하게 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죄의식을 또 한번 작품을 통해서 표현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꿈」인 것이다.이러한 꿈은 해방 후의 출판된 「꿈」은 엄격한 의미에서 창작소설이 아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조신 설화를 각색한 작품이다. 물론 각색했다고 하여 그것을 그대로 현대어로 번역하다시피 한 것은 아니다. 춘원답게 스토리와 주제를 변모시켰고, 그에 나타난 작가의 의식이나 주제를 변모 시켰고, 그에 나타난 작가의 의식이나 주제도 조신설화와는 다르게 나타냈다.춘원는 주지하는 바와 같이 두 편의 「꿈」을 발표 하였다. 첫 번은 1939년 문장지에 발표한 단편이고, 다른 하나는 해방 후에 발표한 중편이다. 내용상으로 보아서는 두 편 다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랑에 대한 괴로움을 담고 있고, 이로 인해 죄의식에 괴로워 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러나 단편에서 조신설화가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다만 사랑해서는 안 될 사랑을 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었을 뿐이었다. 조신설화가 그대로 드러나는 작품은 해방 후에 발표된 중편인 「꿈」이다. 춘원의 「나의 고백」에 보면 작품은 이미 10여 년 전에 집필하려 했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한글로 발표할 길이 막히자 중도에서 포기하고 던져 둔 것을 다시 손질하여 완성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기적으로 보아 「사랑」과 「무명」이 집필되고 난 후에 쓰려 했던 작품으로 추정된다.춘원의 행적을 보면 이때 이미 훼절 행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춘원은 「나의 고백」에서 변명조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인문/어학| 2011.12.23| 6페이지| 2,000원| 조회(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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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강의 인생역정과 문학세계 평가A좋아요
    < 송강의 인생역정과 문학세계 >차례1. 들어가는 말2. 송강의 인생역정2. 1. 관직에 나가기까지의 삶2. 2. 관직에 나간 후의 삶3. 송강의 문학세계3. 1. 술이 어우러진 풍류의 세계3. 2. 시문학에 깃든 정서와 미학4. 송강의 역사적 평가5. 나오는 말1.들어가는 말송강 정철은 조선 중기의 문인, 정치가이며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계함(季涵), 호는 송강(松江)이다. 그의 유명한 작품으로는 , , , 등 우리 귀에 익숙한 작품들을 지은 작자이다.그동안 우리는 위의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정작 송강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깊게 살펴본 적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송강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가 어떻게 살았으며 그의 작품에 어떤 특징과 개성이 나타났는지를 살펴보려고 한다. 이하 『고집불통 송강평전』을 발췌하여 요약함.2. 송강의 인생역정2. 1. 관직에 나아가기까지의 삶송강은 1536년 서울에서 연일 정씨 정위침의 4남 3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원래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그 위의 대와 다르게 관직에 나가 있지 않았는데 그의 큰누이가 인종의 후궁으로 들어가면서 돈녕부판관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 때, 송강은 큰누이의 귀여움을 받아 자유로 궁중출입을 하며 두 살 위인 경원대군과 함께 어울려 지내며 유복한 어린시절을 보내게 된다.그러나 송강나이 10살이던 1545년 당대 사대부 사회에 풍파를 일으킨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을사사화이다. 이 사건을 통하여 집안이 화를 당해 풍비박산되면서, 송강은 10대 초·중반의 시기를 아버지의 유배지를 따라 다니면서 고난에 찬 생활을 한다. 한창 지적·정서적으로 틀을 갖추어야 할 시기에 배움에 큰 뜻을 둘 수 없었음은 물론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유배지 생활은 평온한 분위기의 궁중 생활을 하던 지난날과 비교하면 송강에게 실로 큰 충격이었다.송강의 나이가 16살이 되던 해에 왕자 탄생의 은사(恩赦)로 아버지의 유배 생활이 끝나게 되면서 그의 조부의 무덤이 있는 담양 창평의 당지산 기슭에서 살게 되면서 새로운 인. 2. 관직에 나아간 후의 삶송강이 27살에 문과 별시에서 장원급제를 하면서 벼슬살이를 시작한다. 유년시절 궁중출입을 하던 때부터 그와 정분이 두터웠던 명종의 관심과 배려 아래 높은 관직에 있었다.송강이 관직에 나간 당시는 당쟁이 매우 혼란하였던 때라고 한다. 사대부의 낙향의 되풀이는 사대부 사회에서 드문 일인데 송강의 경우는 4차례나 되는 잦은 낙향이 있었다. 그만큼 정치 현실과의 갈등이 심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송강은 정치 현실에 대한 열망을 접어두지 않는다. 그래서 출사와 낙향을 되풀이하는 일 자체가 곧 그의 생애적 특징을 이룬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송강은 직언(直言)을 잘하였다. 모든 것을 자신의 의로운 기질과 신념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에 옮겼다. 임금 앞에서도 분명한 태도로 임했으며, 조정의 대신들이나 동료들에게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사람이었고 명종에 총애를 입으며, 명백한 성격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아 탄핵을 많이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송강은 유가 사대부의 이념이자 현실적인 목표인 경국제민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는데 그 내용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이 강원도 관찰사를 지내던 시절 올린 상소문이다.신은 사명을 받든 후로 일찍 일어나고 밤이 들면 자면서, 근심과 피로로 감히 조금의 겨를도 없이 덕을 베풀고 백성의 병통을 구제하려고 생각합니다. 험한 비탈과 깊은 골짜기까지 이르지 않은 곳이 없으나, 오직 정신이란 한계가 있어서 눈과 귀가 미치지 못할 바가 있을까 두렵습니다.그래서 관리를 선정하여 여러 고을로 파견하되, 주현(州縣)의 이해와 여리(閭里)의 생활형편이며, 부역의 번잡함과 간단함, 세입의 경중, 마을 홋수의 많고 적음, 논밭이 넓고 좁음 등을 모조리 캐묻고 여러 견해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를 다시 종류별로 고찰하고 종합적으로 강구하여, 명목이 없는 세금이며 정당치 못하게 거두어들이는 것들로서 무릇 사안에 따라 편의롭게 할 수 있는 것은, 바야흐로 일면 개혁하여 성상께서 백성을 생각하시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보)이니 공물(貢物)이니 방물(方物)이니 하는 것 외에 호조와 병조에서 거두어가는 군량과 한 집안에 연대책임을 물어 징수하는 것 등, 살을 벗기고 뼈를 깎는 것이 날로 심하고 달로 혹독합니다. 그리하여 피와 살이 이미 말랐으되 징수하는 관리들의 독촉은 더욱 급하여, 닭이나 개도 편치 못할 정도로 가렴주구가 심한 것이 마치 사람의 중병이 완쾌되지도 않았는데 원기가 이미 다 빠져버린 것 같습니다.3. 송강의 문학세계3. 1. 술이 어우러진 풍류의 세계송강의 작품을 보면 술과 관련이 있는 문학작품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송강은 술을 좋아했기에 술에 관한 이야기를 풍류에 잘 융합하여 문학을 완성시켰다. 그래서 술이 어우러진 송강의 산뜻한 풍류에 세계를 다음 작품을 통해 살펴보겠다.남산 뫼 어드메만 고학사高學士 초당 지어,곳 두고 달 두고 바회 두고 물 둔난이,술조차 둔난 양하야 날을 오라 하거니.‘남산 뫼 어드메만’ 이라고 표현한 데서 은근함을 느낄 수 있다. 또 경쾌한 리듬감을 자아내며 나열되는 ‘꽃 ? 달 ? 바위 ? 연못’ 은 이른바 화조월석(花朝月夕 : 꽃 피는 아침과 달뜨는 저녁)의 풍류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킨다. 그러나 이와 같은 풍류에 정겨움과 흥을 불어넣는 것은 역시 종장의 ‘술조차 둔난 양하야’다. 정결한 초당 풍경의 활기를 불어 넣으면서 풍류를 완성 시키는 것이 바로 ‘술’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치 그림 속의 정물로 존재하던 초·중장의 풍경이 비로소 종장에 이르러 실물화 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그러나 술이 어우러진 송강의 풍류는 활달·호방하게 펼쳐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와 술과의 인연이 그렇듯이 때로는 처절하기 조차 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술 노래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장진주사將進酒辭」야말로 이를 대변하는 예라 할 수 있다.한 잔 먹새 그려 또 한 잔 먹새 그려.곳 것거 산算 노코 무진무진 먹새 그려.이 몸 주근 후면,지게 우헤 거적 더퍼 주리혀 매여 가나,뉴소보댱流蘇寶帳의 만인이 우러녜나.어욱새 속새 덥가나모 백양 수페 가기수 있다는 데서는 다소 향락적인 분위기를 풍기지만, 이는 오히려 오늘의 삶을 철저하게 향유함으로써 유한한 인생의 의미를 찾는 것일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술과 노래와 풍류가 한데 어우러져 깊은 사유의 세계를 열어 놓는 데 이 작품의 매력이 있다고 하겠다.3. 2. 시문학에 깃든 정서와 미학송강은 다양한 성향의 작품을 창작한 문호(文豪)지만, 그 종류를 따져보면 한시·시조·가사로 대표되는 당대 시문학 장르에 집중 되어 있다. 이는 시문학에 그이 모든 문학적 역량과 성과가 무르녹아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송강의 시문학 작품들은 다양한 측면에서 접근이 가능하다.먼저, 송강의 작품들을 두루 읽으면서 느끼는 감정으로서, 다른 것에 우선하여 ‘생생한 현실감’과 ‘인간적 체취’를 들 수 있다. 일상의 생활현실에 관심의 뿌리를 두고서, 자신이 살아가면서 겪고 느끼는 일들 그 소박한 형상들은 시화(詩化)하는 경우가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이다.청산의 부흰 빗발 긔 엇디 날 소기난.되롱 갓망 누역아 너난 엇디 날 소기난.엊그제 비단옷 버스니 덜믈 거시 업서라.이 시조는 송강이 벼슬에서 물러나 낙향해 있던 어느 해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고단한 벼슬살이에서 벗어나 마음에 그리던 전원생활이 반갑기만 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과는 달리 그들에게 쉽게 동화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내 자신 아직도 벼슬아치 냄새와 벼슬길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내 깨달으며, 이를 담담히 받아들인다.아무리 현실지향 성향을 가진 송강이라 할지라도, 그 역시 마음한 구석에서는 늘 귀거래를 동경하고 있었던 자신을 솔직하게 고백했다.바로 이 솔직함이 감동을 준다. 솔직하기에 단순·절박한 느낌을 주며, 단순·절박하기에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거기에다 현재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일상의 형상들을 통해 노래하고 있는 점 또한 이런 느낌을 갖게 하는 데 긴밀히 작용하고 있다.또한 송강의 작품들은 대부분 강렬한 인상을 준다. 바로 눈앞에서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하거나 잔잔한 여 벼슬길에서 물러나 창평에 낙향해 있던 어느 해에 지은 작품으로 처절하리만큼 애틋한 연군의 정 속에, 청신하면서도 감각적인 이미지가 넘쳐흐른다. 이 시에서 송강은 애틋한 연군의 정속에 담긴 벼슬길에 대한 미련을 말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 시의 마지막 대목 ‘이렇듯 속절없이 백발만 길어가건만, 임은 어느 때나 나를 부르시려는지’에서 송강의 탄식을 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주제적 사실은 첫째·둘째 구의 정황 제시에 이은 ‘두견새 울음소리 산 대나무 쪼개는데’의 셋째 구가 없다면, 그 시적 형상성이나 감동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이 시는 바로 이 셋째 구가 지닌 감각적 이미지로 인해, 그 처절의 미학이 생생하게 전해져 온다.또 송강의 정서는 흔히 활달·호방한 정서로 대변되지만 이와 상반되는 섬세·애절한 정서도 두루 갖추었다. 이러한 섬세·애절의 정서는 ‘연군’을 노래한 작품들에 잘 나타나 있다. 송강은 이를 주로 사랑하는 지아비를 이별한 여인의 심경에 가칵하여 표출했는데 특히 가사 「사미인곡」과「속미인곡」에서는, 아예 여성 화자를 내세워 그 애틋한 정감의 세계를 형상화하고 있다.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한생 연분이며 하늘 모를 일이런가.나 하나 점어 잇고 님하나 날 괴시니,이 마음 이 사랑 결졸 데 노여 업다.평생에 원하요대 한데 녜자 하얏더니,늙거야 므사 일로 외오 두고 그리난고.자신의 임과 이별한 여인에 비유하여, 임 그리는 정을 애절하게 노래하고 있다.어와 허사로다 이 님이 어데 간고.결의 니러 안자 창을 열고 바라보니,어엿븐 그림재 날조찰 뿐이로다.찰라리 싀어디여 낙월落月이나 되어이셔,님 겨신 창 밧긔 번드시 비최리라.각시님 달이야 카니와 구즌비나 되쇼셔.작품의 마지막 구에서는 지금까지 말을 해 온 ‘각시’의 상대 쪽 여인의 입을 통해, 그보다는 오히려 궂은비가 되어 임의 창을 두드리며 더욱 애절하게 연모의 정을 전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다. 이로써 작품 전반을 통해 형상화하고자 한 ‘연군’의 정이 더운 애절한 느낌으로 전해져 온다.이려가니,
    인문/어학| 2011.12.23| 7페이지| 2,000원| 조회(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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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 지역 방언의 구획과 특징
    각 지역 방언의 구획과 특징목차Ⅰ. 서론Ⅱ. 강원도 방언권과 강원도 방언권의 구획1. 강원도 방언권2. 강원도 방언의 구획Ⅲ. 강원도 방언의 특징1. 음운론2. 문법론3. 어휘&의미Ⅳ. 정선군 방언의 특징1. 음운론2. 문법론3. 어휘&의미Ⅴ. 결론참고문헌Ⅰ. 서론강원도는 전체면적의 82%가 산지인 지역이다. 또한 태백산맥으로 인해 영동과 영서 지방으로 나뉘고 두 지방간에 교류가 어려워 두 지역 간에 다른 언어적 특징을 보인다. 따라서 본 자료에서는 대방언권(강원도 방언권)의 방언 분화를 살펴본 후 강원도 방언이 갖는 특징을 음운, 문법, 어휘의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것이다. 또한 소방언권(정선군 방언권) 도 마찬가지로 음운, 문법, 어휘의미를 알아보겠다.Ⅱ. 강원도 방언권과 강원도 방언권의 구획1. 강원도 방언권언어는 지역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 한다. 국어도 역시 그러하여 그 방언적 특징에 따라 몇 개의 대단위 방언으로 나뉜다.강원도 방언은 다른 지역의 방언에 비해 별로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는데, 그 이유는 강원도 방언이 중부방언권에 속해 있으면서 강원도 방언만의 독특한 특징이 별로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강원도의 모든 지역에 공통되는 전체적인 강원도 방언의 특징을 기술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종래의 강원도 방언에 대한 조사, 연구는 거의 대부분이 특정 지역의 특정 분야에 관한 것으로 강원도 방언의 모든 층위에 걸친 총체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강원도의 전 지역에 공통되면서 다른 방언에는 없는, 강원도 방언만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알려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강원도는 지역에 따라 심한 방언적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2. 강원도 방언의 구획한 방언이 상당한 크기의 지역을 지리적 조건이나, 사회적, 문화적 차이 등으로 말미암아 그 지역 안에서도 상당한 언어적 분화가 있게 마련이고, 각 방언들은 고립되어 있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게 되어 있다. 한 방언 구역 안에서도 상당 나타나나, “왕겨→왕게, 왱게, 새끼→새끼”처럼 어두의 음절 외의 자리에서는 실현되지 않는다.1.2.4. ‘ㅣ’ 모음 역행동화근대국어 이후에 발생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ㅣ”역행동화 현상 역시 강원도 방언에서 매우 활발하다. 이는 움라우트라고도 하며 후설모음이 전설모음으로 바뀌는 현상으로서, 주로 i 또는 j에 의해서 일어난다.두루마기→두루매기. 잠방이→장뱅이, 다리다→대리다누더기→누데기, 꾸러미→꾸레미, 지렁이→지렝이, 먹이다→멕이다이러한 “ㅣ”역행동화는 대부분 한 단어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이 일반적이나 강원도 방언에서는 지역에 따라 명사와 주격조사 “-이” 및 지정사 “이다”사이에서도 “ㅣ”역행동화현상이 나타나는데 특히 삼척 지역에서 자못 활발한 편이다. 몇 예를 보이면 다음과 같은데 이는 경상도 방언의 영향인 듯하다.신랑이→신랭이, 할멈이→할멤이, 언덕이야→언덱이야그런가 하면 강원도 방언에는 “ㅣ”역행동화에 의한 것이 아닌 “ㅏ→ㅐ”의 현상이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가마→가매, 가르마→가르매, 처마→초매, 씨이→씨애, 감자→감재에서 보듯 주로 단어의 마지막 음절이 ‘ㅏ“로 끝나는 경우에 일어나며 지역적으로는 대게 영동지방을 중신으로 한 동부 지역에서 나타난다.1.2.5. 간극동화간극동화는 어떤 음소가 인접해 있는 음소 외 간극을 닮는 것으로 조음 노력 경제에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강원도 방언에서도 이 현상의 실현을 볼 수 있다. 강원도 방언에서의 간극동화에는 “ㅈ, ㅊ, ㅌ → ㅅ”의 자음 간극동화와 ㅔ→ㅣ, ㅐ→ㅔ, ㅓ→ㅡ, ㅏ→ㅓ, ㅗ→ㅜ 모음 간극동화가 있다.젖이→젓이, 젖을→젓을, 젖에→젓에꽃이→꼿이, 꽃을→꼿을, 꽃에서→꼿에서밭을→밧을베개→비개, 번데기→번디기, 네가→니가아랫입술→아렌닙쓸, 포대기→퍼데기그런데 “ㅈ, ㅊ, ㅌ”의 “ㅅ”마찰음화는 어간의 말음이 “ㅈ, ㅊ, ㅌ”인 용언의 어간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어미가 결합될 때나 앞말의 끝소리가 “ㅈ, ㅊ, ㅌ”이고 뒷말의 첫소리가 모음인 합성명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그런가 하면 위의 모임의 간극-마다 가 -마둥/마당 으로, -부터 가 -부텀/버텀 으로, -까지 가 -꺼정/꺼짐 으로, -마저 가 -마주 로, -보다 가 -보담/보덤)으로 쓰이기도 한다. 삼척과 그 인접지역에서는 주격조사의 중복형 -이/가 처럼 -은/는 이 반복되어 쓰이기도 하는데 이것은 경상도 방언의 영향으로 보이며 항상 겹쳐 쓰이는 것은 아니다.2.2. 불규칙 활용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경기도 방언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지만, 영동 남부 지역에서는 ㄷ 불규칙 활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듣- 이 들꼬(듫-고), 들른다(듫-는다), 드르니(듫-으니), 드러라(듫-어라) 로, 걷-(步) 이 걸꼬(걿-고), 걸른다(걿-는다), 거러라(걿어라) 로 규칙 활용을 한다. 씻- 은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규칙활용을 하지만, 남부 지역(강릉?삼척?정선?원주)에서는 씨꼬(씻-고), 씨이니(씻-으니), 쎄라(씻-어라) 처럼 불규칙 활용을 보이며, 맛있- 또한 마세(맛있-어), 마수워(맛있-어) 처럼 불규칙 활용을 보이기도 한다.2.3. 비자동적 교체가루(LH)~ 갈그(HL), 갈기(HL, 가루-가), 자루(LH)~ 잘그(HL), 잘기(HL, 자루-가) 등의 예들은 후기 중세 국어에서 이른바 비자동적 교체를 보이는 것들이다. 단독형일 때는 가루~갈그, 자루~잘그 등으로 나타나지만, 곡용을 할 때는 갈기(가루-가), 갈그(가루를), 잘기(자루-가), 잘그(자루-를) 로 나타난다. 이 현상은 영동 방언의 특징이다.2.4. 계사의 활용영월?삼척?강릉?정선?평창 지역에서는 계사와 종결 어미 -어/아 가 -래 로 나타나며, 이때 -래 뒤에 과거 시제 선어말 어미 -었/았- 이 자유롭게 결합할 수 있다.예: 해 먹는 것도 보통이 아이래(아니야), 호기심 많은 짐승이래(짐승이야), 강릉이래요(강릉이어요), 죽이 안 맞는 앙숙이랬아(앙숙이었어).그러나 연결 어미 -어/아 일 때는 -라 와 -래 의 헝태가 모두 나타나나, -래 는 뒤에 보조사나 선어말 어미(-도, -야, -만, -었/았-)가 덧붙을 때 주로 나타나고, -라 는 단독 3인칭 대명사 ‘지’(단수)와 ‘즈:’(복수)가 있는데 일종의 재귀대명사 용법이다. 선행하는 문장이나 담화 상황에서 이미 상정된 명사는 생략 가능하므로 다음문장에서 반복될 때 선행명사 없이 바로 문장에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지는 머 아는 기야.자:거 지는 하낙두 모르기는...즈:는 머 잘한기 있는 줄 알어?이들은 2인칭으로 쓰이는 용법과 2인칭을 다시 받는 재귀대명사로서의 용법이 있다. 2인칭으로 쓰일 때는 첫 번째와 같이 ‘니, 느’ 보다는 상대방을 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용법이며 , 재귀 대명사로 쓰일 때는 두 번째와 같이 선행하는 2인칭 명사를 다시 받는 용법이다. 이때의 ‘지’가 복수를 나타낼 때는 세 번째와 같이 장모음 ‘즈:’로 나타난다.2.9.4. 지시 대명사강원도 지역에서는 주로 ‘게/개’가 쓰인다. 가까이 있는 사물을 지시할 때는 ‘이게/그게/저게/어느게’등이 주로 쓰이고 처소를 나타낼 때는 ‘여개/게개/저개/어대’ 방향을 나타낼 때는 ‘이짝 /그짝/저짝’등이 쓰인다.2.10. 경어법2.10.1. 주체경어법화자가 자기와의 대비에서 주체가 존대 대상이라고 판단하면 서술어에 ‘-시-’를 연결시키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징표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주체가 청자이기도 할 때는 ‘-시-’가 하개체 이하의 어미와도 결합되어 조금 더 대접해주는 기능을 한다. 또한 화자에서의 대비가 아니라 청자와의 대비에서도 주체경어법을 쓰기도 하는데 이는 주체경어법의 중요한 요건 가운데 청자도 포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주체경어법은 화자가 청자를 고려하는 것까지를 포함하여 자신에게 겸양, 주체에게 존대의 자질을 부여함으로써 성립된다.하르버이 어대 가시드나? / 자네 으르신께서야 좀 부지런하섰는가?아이구, 우리 장군이 오시는가? / 마이 자:시개.아부이 집에 지시나?2.10.2. 상대경어법해라체일반적으로 윗사람이 아랫사람 특히 아이들에게 쓰거나 청소년층 이하에서 서로 즐겨 쓰는 상대경어법이나 지역에 따라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의문법 : -(이)나, -니, -냐,?기와집?재집8. 나무 :【영동】【영서】낭기, 낭구9. 냅다 :【영동】【영서】내굽다, 내그룹다10. 노루 :【영동】(속초, 양양)놀기, (강릉, 명주, 삼척)놀갱이【영서】노루, (정선, 평창, 영월) 놀갱이11. 노을 :【영동】(북단)놀, (강릉)노리?놀, (삼척)나부리?나불?노리?놀, (서남)노리?농오리?놀【영서】노리?놀12. 다람쥐 :【영동】(북단)다람쥐, (강릉)다람쥐, (삼척)다래미, (서남)다람쥐?다래미【영서】다람쥐?다래미?대리미13. 두더지 :【영동】(북단)두더지, (강릉)뒤디지, (삼척)뒤지기, (서남)두더지?두지기?두제기?뒤지기【영서】두더쥐?두더지?두데기?뒤저기?뒤제기?뒤지기?땅뚜더지14. 두레박 :【영동】파래 【영서】두레15. 디딜방아 :【영동】(북단)발방아, (강릉)발방아?방아, (삼척)방아, (서남)발방아?방아?방애【영서】디딜방아?발방아?발방애?방아?방애16. 떫다 :【영동】(고성, 양양, 속초)떨겁다.【영서】떫다.17. 만들다 :【영동】【영서】 맹긴다, 맨든다18. 마루 :【영동】(북단)마루?마룽, (강릉)마롱?마룽?퇴원, (삼척)마루, (서남)마루?마룽?마리【영서】마루?마룽?말루19. 머루 :【영동】멀구【영서】머루 (양구, 화천, 인제)멀구20. 모기 :【영동】(북단)모기, (강릉)모갱이?모기, (삼척)모구, (서남)모갱이?모구?모기【영서】 머구?모기21. 모래 :【영동】몰개【영서】모래22. 바구니 :【영동】(북단)둥주리?바구미, (강릉)바구니?바구미, (삼척)바게미, (서남)버그미?버기미【영서】대보구니?보고니?보구니?보굼치?보금치?채보구23. 바위 :【영동】(북단)바우, (강릉)바우, (삼척)바우, (서남)바우?방구【영서】바우?바위24. 벌(蜂) :【영동】(북단)벌, (강릉)벌, (삼척)블, (서남)벌【영서】부얼?불?붤25. 벌래 :【영동】【영서】벌거지, 버러지, 벌러지26. 벼 :【영동】(북단)베?벼, (강릉)벼, (삼척)나락?베, (서남)베【영서】베?벼27. 상추 :【영동】불기, 부루【영서】생추, 상추28. 섬(島) :【영동】(북단 한다.
    인문/어학| 2011.12.23| 27페이지| 2,000원| 조회(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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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채만식 문학에 나타난 풍자의 방식 연구
    목차Ⅰ. 서론Ⅱ. 본론1. 풍자의 목적과 방법2. 부정적 주인공에 대한 풍자 -『태평천하』?「도야지」3. 이중의 풍자 -「치숙」4. 지식인의 자기 풍자 -「레디메이드 인생」Ⅲ. 결론※참고문헌Ⅰ. 서론채만식은 한국 현대 문학에 있어서 풍자적 기법을 통해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작가 의식을 드러낸 대표적인 작가이다.채만식이 본격적으로 작가 활동을 한 1930년대는 한국 문학사상 중요한 시기로, “1930년대는 동인지 문단 시대에서 사회적 문단 시대에로, 습작 문단이 작가 문단으로 바뀌면서 한국 문학이 처음으로 근대 문학적 성격에서 현대 문학적 성격을 띠기 시작”)한 때라 볼 수 있다. 작가들은 식민지 치하에서 자신이 겪고 느낀 것을 주체적인 위치에서 확인하고, 냉철한 시각으로 비판하기 시작하였으며, 당대의 현실을 고발하려 하였고 채만식 또한 고통과 갈등, 억압의 시대인 1930년대의 어둡고 냉혹한 사회 현실을 유감없이 고발하고 비판하고 시대적 상황을 해부하며 당대의 현실에 저항하였다. 그러나 이시대의 직접적인 표현은 당대의 시대적 상황인 일제치하에서는 어려운 점을 고려하여 풍자적 기법을 동원, 우회적으로 드러내고자 하였다.문학 작품은 어느 한 시대와 당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작가의 창조행위로서의 소설은 결국 현실에 대한 작가 의식의 반영에 대한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그러므로 우리는 당연히 채만식 작품을 이해함에 있어서 그가 극심한 혼란기였던 일제 식민지 현실과 해방 이후의 사회적 현실을 어떻게 파악하고, 이를 작품 속에서 어떻게 형상화시키고 있는지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풍자의 목적과 방법에 대하여 알아 본 뒤, 채만식의 대표적 작품 몇 편을 선정하여 작품에 담긴 현실을 어떠한 방식으로 고찰하여 풍자하였는지를 살펴 그의 문학에 나타난 풍자의식을 바탕으로 그의 문학적 경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본론1. 풍자의 목적과 방법일반적으로 풍자(Satire)는 ‘빗대고 비유하는 뜻으로 남의 결점을 찌르는 것’ 내지 는 ‘슬며시 돌려서 남의 풍자가 가진 도덕적이고 실용적인 목적에 미적 거리를 성취하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행하지만, 그것의 성취는 쉽지 않다.풍자의 셋째 방법은 과장이다. 풍자에서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틈 혹은 괴리를 강조하여 표현하기 위해 커리커춰나 그로케스크 기법이 사용되고, 현실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두드러지게 할 목적으로 현대 문명 사회와 동떨어진 섬이나 오지 혹은 미래 사회나 우주의 다른 행성, 또는 동물 세계를 작품의 배경으로 하든가, 아니면 주인공이 지나치게 작아지거나 커지게 하기도 한다. 이때 이러한 사회와 현대 사회와의 차이가 강조되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것들 사이의 유사성이 배제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이러한 차이가 겨냥하는 것은 낯선 세계와의 유추를 통해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유사성과 차이를 이용한 이러한 기법은 흔히 쉬클로프스키의 ‘낯설게 하기’ 기법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낯설게 하기’ 개념이 쉬클로프스키의 경우에는 미학적 역할에 중점이 주어진 반면, 풍자에 사용될 경우엔 현실의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여 그것을 시정하려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역할을 위하여 사용된다.풍자의 네 번째 방법은 간접화이다. 풍자가 현실을 비판하고 공격함에 있어 여호와타의 리얼리즘 작품과 변별되는 것을 바로 간접화이다. 풍자는 자신의 주제를 간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하여,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이용하는 아이러니, 비유로써 주제를 전달하는 알레고리, 기존의 텍스트를 비판함으로써 현실을 에둘러 비판하는 패러디 등의 수사적 장치를 이용한다.풍자의 다섯째 방법은 공감이다. 풍자는 풍자 대상에 청중의 주의를 끌어들이고, 풍자 대상에 대한 비판과 공격에 공감하게 함으로써 이를 시정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풍자의 최종적인 목적은 풍자 대상에 대한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풍자는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이를 성취해야 하기 때문에, 독자의 공감을 얻기 위해 종종 풍자 대상에 대한 메스꺼운 이미지나 생생하고 설득적인 어휘, 속어, 음담패설, 구술적 언어, 속담 등을에 1월부터 9월까지 연재된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신문 소설이 아니라 잡지에 연재된 소설로 통속물인 듯한 인상을 주지 않아도 되었고 작품을 새롭게 쓰는 시험을 더욱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다. 크게 행세하는 지주이고 고리 대금 업자인 윤 직원 영감 집에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이것저것 다루면서 친일 보수 세력의 그릇된 의식에 대한 치열한 비판을 하는 탁월한 수법을 발휘하였다.이 소설에서 채만식이 식민지시기에 관심을 가졌던 지주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비논리적이고 세속적인 의식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태평천하의 풍자의 대상들은 누구 일까? 부정적인 인물의 성격이 강할수록 풍자의 농도는 심해진다. 이렇게 태평천하 속에서 풍자 되어지는 윤직원은 누구일까? 그는 친일파이고 전통적 양반이 아니라 일제시대 때 일어난 신흥 부르주아이다. 하지만 그의 태도에서는 전통적 지주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여 진다. 소설 속에서 윤직원은 윤리적으로도 타락한 인간이다. 소작인의 딸들이나 여학생 첩, 명색 숫처녀 첩, 열다섯 살의 동기 등 비정상적인 여성편력 등이 보여 진다. 또한 권력에 순종함으로써 재산과 신변의 안전을 얻을 수 있다고 믿은 윤직원은 동학에 의해 피살된 선친의 비극을 교훈 삼아 일제에 협력하면서 자본주의적 사유권을 보장받고, 소작인에 대한 경제 외적 강제의 관습을 철저히 실행한다.시국관에 관한 한 백치에 가까운 윤직원은 오직 일신과 일가의 영화만이 관심거리인 나머지 자신의 건강과 더 많은 부의 축적에 힘을 기울이는 한편 과거에 못 이룬 양반이 되기 위하여 네 가지의 사업을 추진한다.첫째가 족보에 도금칠하기 둘째에 윤직원이라는 직함 얻기, 셋째에 지체 있는 양반과 통혼하기, 넷째가 맏손자는 군수 둘째손자는 경찰서장 등으로 출세시키고자 하는 자손의 영화에 대한 지나친 욕심 등이다. 윤직원은 식민지 치하를 오히려 신분 이동의 호시기라고 판단하는데 그것은 채만식의 작품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는 굴절된 시국관 내지 사회관의 일단으로 나타나 있다.『태평천하』의 경우에서는 식민지 교육이보가 날아든다.「사상관계라니」「그놈이 사회주의 참예를……」「으엉」…… 생략 ……「……그런 처죽일 놈이, 까아죽여도 아깝잖을 놈이! 그놈이 경찰서장 하라닝개로 생판 사회주의 허다가 빕다 경찰서에 잡혀 으응 …… 오-사 육시를 헐놈이, 그놈이 그게 어디 당한 것이라구 지가 사회주의를 히여 부자놈의 자식이 무엇이 대껴서 부랑당패에 들어 …… 」…… 생략 ……「……오-냐, 그놈 삼천리꺼리를 툭툭 팔아서 경찰서으다가, 사회주의 허는놈 잡아 가두는 경찰서에다 주어버릴 걸 - 으으, 죽일놈!」마지막의 으응 죽일놈 소리는 울음소리에 가깝습니다.「……이 太平天下에! 이 太平天下에 ……」)이렇게 하여 표면상 윤직원의 파국으로 하여 소설은 결말을 맞게 된다. 『태평천하』에서 작가는 부정적 인물들로 구성된 가족을 통하여 한말과 개화기, 그리고 일제 강점기 세대 사이의 가치관의 변화와 현실 대응에 따른 행동 유형을 보여 주고, 바탕이 옳지 못한 가정이 어떻게 허물어져 가고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다. 이를 통해서 식민지 사회에서 무엇이 문제이며 무엇이 생성되어야 할 것인가를 암시하려 한다. 『태평천하』는 윤직원 영감과 같은 부정적이고 타락한 인물에 대한 풍자가 핵심을 이룬다. 이러한 풍자는 반어를 통한 부정적 인물의 희화화에 의해 실현되고 있다.다음으로「도야지」는 1948년 6월 22일 이리에서 탈고되어 『문장』 속간호(1948.10)에 발표되었고, 『잘난 사람들』(1948)에 수록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우리 나라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인 1948년 5월 10일의 제헌국회의원 선거를 둘러싼 타락한 정치후보자들의 선거운동을 통하여 당시의 정치풍토와 세태를 풍자하고 있다. 채만식의 예리한 현실인식은 오늘날의 정치현실에도 대입될 수 있는 생생히 살아있는 지적이다. 사회상황에 대한 풍자가 중요 모티브인 이 작품은 부정적 인물과 긍정적 인물의 대립구조를 통해 부자간의 혹은 신, 구 세대간의 첨예한 이념 대립을 보여주고 있다.서술자는 부정적 인물의 대표격인 문영환은 몸에서 교만과 잔인과 야심과 황을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작가가 미군정 하에서의 식민지의 연속성을 인식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기성 세대의 무능과 통일에 대한 적극적인 바램이 전혀 없음을 보여 주었으며, 대신에 자신의 사리사욕만 채우려는 정치 현실을 비판하였다.3. 이중의 풍자 -「치숙」「치숙」은 1938년 3월 7일부터 14일까지 에 연재한 단편으로 무식한 조카의 입을 통해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가 복역하고 나온 인테리의 조각난 삶을 역설적으로 옹호한 작품이다. 이재선은 「치숙」의 이러한 특징을 “「치숙」은 역논리의 기법 즉 칭찬 - 비난의 전도라는 아이러니에 의한 풍자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대학은 나왔으나 일자리는커녕 사회주의 운동을 한답시고 설치다가 감옥살이를 하고 마침내 병이 들어 폐인이 되다시피한 오촌 고모부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나”라는 화자의 독백체 이야기가 이작품의 줄거리를 이룬다.아저씨가 여기다가 경제 무어라구 쓰구, 또 사회 무어라고 썼는데, 그러면 그게 경제를 하란 뜻이요? 사회주의를 하란 뜻이요? “뭐”못알아 듣고 뚜렛뚜렛해요. 자기가 쓰고도 오래되서 다아 잊어 버렸거나 혹시 내가 말을 까다롭게 내기 때문에 섬뻑 대답이 안나왔거나 그랬겠지요.)조카가 아저씨의 논문을 어설피 읽고 하는 소리이다. 우리는 여기서 화자인 조카의 말이 신빙성이 없음을 알게 된다. 제목에 쓴 경제, 사회라는 글자만을 알아보고는 대뜸 경제를 하라는 거냐 사회주의를 하라는 거냐는 우문을 던지는 것이다. 여기서 이 작품이 신빙성 없는 오류에 빠지기 쉬운 화자를 내건 수법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는 다시 자기가 잘못 말한 줄은 모르고 자기가 말을 너무 까다롭게 해서 대답을 못한다는 데서는, 화자 자신의 말로 화자 자신이 풍자되고 있다. 작가가 직접 나서서 대상을 매도함으로써 풍자하는 것이 아니라 등장인물 스스로의 어리석은 행동이나 말에 자신에 대한 풍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간접풍자)가 작품 전체에 걸쳐 나타난다.신빙성 없는 화자인 조카.
    학위논문| 2011.12.23| 12페이지| 3,000원| 조회(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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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소리계 소설의 형성
    목 차Ⅰ. 서론Ⅱ. 판소리계 소설1. 판소리계 소설의 개념2. 판소리와 판소리계 소설의 선후 문제1) 소설 선행설2) 판소리 선행설3) 그 밖의 견해3. 판소리계 소설의 형성1) 이야기 문화의 전통과 계승2) 이야기꾼의 등장과 그 역할3) 판소리 설화의 정착4. 판소리계 소설의 특징1) 변형성2) 풍자성3) 언어유희성4) 설화집합체Ⅲ. 결론※ 참고문헌 · 논문Ⅰ. 서론‘판소리계 소설’이란 판소리 사설이 독서물로 정착, 유통되면서 이루어진 소설, 즉 ‘설화 → 판소리사설 → 고전소설’의 형성 과정을 지닌 소설이다. 이러한 ‘판소리계 소설’은 소설의 내용이나 형식을 중심으로 규정한 말이 아니라, 그 내용이 판소리로 불리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중점을 두어 편의상 붙인 명칭으로 소설과 판소리가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그로 인해서 양자 간의 관계가 이루어졌으리라고 보고 있다.)판소리계 소설에 대해 이번 발표문에서판소리계 소설의 특징, 판소리계 소설과 판소리의 선후문제, 형성배경과 형성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Ⅱ. 판소리계 소설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판소리계 소설은 , 등 일반적으로 판소리 사설의 영향을 받아 소설로 정착된 작품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에는 좀 더 엄격한 개념의 규정이 따라야 한다고 본다.1. 판소리계 소설의 개념임동철은 그의 논문에서 판소리계 소설의 개념을 네 가지로 분류하였다. ① 현재 판소리로 불려지고 있는 소설 -여기에는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토끼전(별주부전), 적벽가(화용도) 등 다섯 작품이 있다. ② 과거에 판소리로 불려졌던 소설 - 이 범주에는 속하는 작품이 분명치 않다. 이 사실을 전해주는 증인들 사이에 견해가 일치하지 않는다. ③ 미래에 판소리로 불려질 소설 - 현재로서는 고려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보인다. 현재에도 판소리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소설 가운데 판소리 사설이 될 수 있는 작품도 있고, 판소리를 통해서 새로운 소설이 생성될 경우도 가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④ 과거에는 판소리로 불려지지 않았지만, 현대들의 입으로 옮기기 시작하 야 申緯?張之琓 당시엔 벌써 상당한 체재를 갖춘 歌劇이 되었고, 趙在三?李裕元?尹達善 때 로부터 申在孝 때까지에 歌劇으로 완성된 모양이니, 正祖 시절에 일어난 춘향전 이야기가 純 祖?憲宗?哲宗 때까지 歌劇으로 완성된 것이다.)조윤제는 광대들이 소설과 설화에서 판소리의 내용을 취하여 창을 한 것이다라고 밝혀 판소리를 소설 연구의 방계 자료로 보는 입장에서 소설 선행설은 주장하였다.唱劇의 脚本은 別로 일정한 劇作家도 없이 小說 其他 說話에서 取材하여 廣大들이 스스로 만 들어 唱한 듯싶은데, 興行되는 판소리에는 모두 十二마당이 있었다.)2) 판소리 선행설이들은 판소리의 가치와 비중을 높이 평가하면서 창자의 창작 능력을 크게 인정하고 있다. 그들은 창자들이 연희자의 모습만이 아닌 사설의 창작자로서 단편적 설화들을 재창조하여 판소리를 구성하고 풍부하게 만들었고, 이것이 문자로 정착되어 기록문학인 판소리계 소설이 형성되었다라고 보는 입장이다.정노식은 판소리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그의 『조선창극사』에서 판소리 선행설을 주장하였다. 그는 이 무녀의 굿에서 광대의 창극조로 변천하고, 이것이 어느 문호의 손에 의하여 소설화되고,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부연되어 오늘의 이 완성된 것이라고 하였다.)김삼불은 판소리가 설화와 소설의 중간 단계에 위치한다고 파악하여 다음과 같은 도식을 만들어 내었다.설화→타령→서민소설)김동욱은 ‘근원설화→판소리 한 마당→대본으로서의 정착→소설화’로 정리하고 이것은 판소리 열두 마당에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라 하였다.) 은 한국의 역사적 전설 속의 열녀설화?암행어사설화로부터, 은 절라도 관음사의 연기전설에서, 또 은 이조 초기 서거정의 『태평한화』에 나오는 경주에 파견된 관원이 미기에게 홀려, 이빨을 빼서 자기의 애정의 볼모로 삼았으며 나중에는 이것으로 창피를 당했다는 설화에서 각각 그 줄거리를 따온 것으로, 기타의 판소리도 이와 상응하는 근원설화가 검출되었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근원설화를 기초로 하고, 12편의 판소리가 1 도출해 냈다. 광대는 소설 심청전을 기반 삼아 판소리를 각색 개척했을 따름이지, 그 소설의 원작에는 가담하지 못했으리라고 간주된다. 같은 것은 『삼국지연의』 의 적벽대전에서 분화되었으므로 소설의 단계를 먼저 거쳐 판소리화한 경우로 이러한 반대현상은 경판본의 경우 등도 해당된다.)이러한 견해는 작품마다 선후관계에 있어서 성격을 달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이 같은 견해는 김흥규, 정하영, 최문화 등의 연구에서 거듭 확인되었다.성현경은 이본 연구를 통하여 이와 같은 견해를 더 확고히 하고 있다. 그는 기존의 설화→판소리의 도식에서 나와 소설→판소리의 도식을 하나 더 추가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에서도 입증된다라고 밝혔다. 그는 의 연구에 있어서 과 을 대비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이 선행하고 있으며 이 선행본은 판소리와는 무관한 문장체 소설임을 주장하고 있다. 첫째, 에 나오는 인명, 지명, 사물명은 모두 단순한 명명이 아니고, 작품 전체구조와 긴밀한 상관관계를 지니고 붙여진 것으로, 이들이 본래적, 본질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대본의 경우, 주인공의 성명은 반드시 沈淸이어야만 어울리게 되지만, 다른 본들- 판소리 문학작품-의 경우, 그것이 꼭 沈淸이어야만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둘째, 배경공간의 설정이나 명명은 상호 유기성을 지니고 이루어진 것으로, 이들의 명칭이 본질적이고도 본래적인 합리적 내용물이 됨을 알게 된다. 더욱이 일부 판소리 문학작품 속에 ‘유리국’이란 어휘가 난데없이 불쑥 튀어나오고 있는 바, 이는 예사스럽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 이는 이 유리국이 본래적인 것임을 입증해 주는 증거가 되는 동시에, ‘내지 26장본 심청전 →판소리 문학 심청전’ -‘문장체 소설 심청전→판소리체 심청전’-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훌륭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셋째, 소설본 내지 26장본 심청전은 그야말로 명실이 상부한 인데 반해, 다른 ‘판소리 문학본 심청전’들은 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명실이 상반한 이 되고 있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소재의 확장작업은 구내의 자료에 국한하지 않고 중국의 자료를 수용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 같은 소재의 확장작업은 설화의 청중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고, 그것을 통해 이야기문화가 새로운 형태로 발전되었으리라는 사실로 이해할 수 있다.2) 이야기꾼의 등장과 그 역할판소리의 원천이 된 것으로 보이는 설화는 기록되어 전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구연되는 이야기로서 전해 왔다. 판소리가 생성되던 조선시대는 이야기문화가 크게 성행하면서, 문화적 이야기꾼이 등장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설화가 설화상태에서 벗어나 소설이나 판소리로 전이(轉移)되기 위해서 손질하는 전문적인 작업이 가해져야 한다. 설화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설화 형성을 가능케 하는 세 가지 요소, 즉 설화의 청중과 설화자, 그리고 설화구연의 방식 등이 향상되어야 한다.판소리의 생성시대가 대체로 이야기꾼의 등장과 때를 같이 한다는 사실은, 판소리의 발생 및 판소리와 소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위에서 말한 판소리는 이야기문화를 발전적으로 계승한 형태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판소리 광대는 이야기꾼의 다른 모습으로 이해될 수 있다. 판소리의 존재인 설화는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을 구연하는 설화자는 ‘이야기꾼’ 이라는 전문 직업인으로서 어느 정도 배우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상품으로 만들어 청중들에게 제공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3) 판소리 설화의 정착판소리계소설은 이렇게 판소리 설화의 정작을 통해 이루어 졌으며 이러한 판소리의 서사성을 활용해 ‘소설 창작의 담당층’이 만든 작품이 글을 아는 독자들에게 읽혀지거나, 전문적 ? 비전문적인 강독사들에 의해 낭송 ? 구연되는 동안에 독자와 청중들의 반응을 보고, 이를 다시 필사하거나 판본 ? 활자본으로 강행하여 서민층의 사랑을 받고 있는 판소리를 수용하여 새로운 소설로 정착시키기도 하고, 기존의 작품을 개작하기도 하였다. 소설이 판소리를 수용한 까닭은 판소리의 야기 내에는 지배층에 대한 경멸과 타락상, 그리고 무능력함을 조롱하고 이를 희화화시키는 풍자적인 요소들이 수없이 산재되어 있다. 이른바 골계담이라고 하여서, 은폐된 모순이나 병폐, 허위, 부조리, 약점 등을 명랑하고 경쾌하게 그려내며 쾌감을 찾는 것이다.)실상 이러한 골계담은 조선 이전에도 존재한 것으로, 기록상 남아있는 것으로는 일연의 삼국유사에 채집되어 있는 여러 이야기들에서부터 그러한 것들을 찾을 수 있고,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거나 혹 기록되었다 해도 그 기록물이 소실되어져 그저 구전으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의 형태로써의 것까지 이야기하자면 그 역사는 까마득하게 올라간다 할 수 있다. 이러한 골계가 실질상의 개별 장르로써 이야기되어진 시점은 고려시대로써, 이재현의 ‘역옹패설’에서 처음으로 구별하였다 한다.)실상 이렇게 개별 장르로써 발전하게 된 골계는 조선 때에 이르러서도 계속 이어져, 소화집이라던지 야담집 등등으로 체계적으로 정리, 구조화되어져 소설화 되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다듬어진 골계의 형식은 판소리의 형성의 밑거름으로써 작용되어졌을 것이라 생각되어진다.적벽가에서 대전에서 패해 도망하는 조조의 모습을 날아가는 새에도 놀라고 도망하는 와중에도 술안주 이야기나 한가로이 늘어놓고, 살기 위해 엎드려 빌며 목숨구걸이나 하는 졸장부로 그려내는 것이라던지, 춘향전에서 몽룡이 변사또의 잔치자리에서 양반들의 백성들에 대한 수탈을 시로써 비방하는 대목이라던지, 암행어사 출또 부르짓는 소리에 놀라 도망하며 숨는 양반들과 관리들의 모습을 경박스럽고 우습게 그려놓는 것이라던지, 수궁가에서 토끼가 살기 위하여서 용왕과 그 신하들을 속여넘겨 바보로 만드는 것이라던지, 흥부가에서 부유한 놀부의 모습을 탐욕적이고 한없이 인색한, 그리고 치졸한 악행이나 일삼는 손가락질 당하는 소인배로 그려내는 모습이라던지, 심청전에서 아버지의 눈을 뜨이게 할 공양미 삼백석을 마련하기 위해 인당수 제물로 자신을 파는 대목이나, 뺑덕 어멈이 심봉사의 재산을 마음대로 빼내어 탕진하는 대목겠다.
    인문/어학| 2011.12.23| 13페이지| 2,000원| 조회(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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