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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개론 요약
    「신약개론」요약제1부 신약성경의 시대적 상황제1장 정치적 상황1. 로마제국신약성경이 씌여질 당시 전 문명세계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극동의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는 모두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서쪽으로는 대서양에서부터 동쪽으로는 유프라데스강과 홍해까지, 북쪽으로는 론강, 다뉴브강, 흑해와 코카서스산맥으로부터 남쪽으로는 사하라 사막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신약성경에서 “왕”(벧전 2:17), 혹은 “아구스도”(눅 2:1)라고 기록하고 있는 황제에 의해 실제로 통치되고 있었다. 로마라는 이름은 이탈리아의 수도의 명칭을 그대로 따온 것인데, 로마제국은 바로 그곳에서 일어났다. B. C. 753년 그들이 처음으로 창건되었을 때, 그들은 인접한 작은 마을들의 연합체로 이루어져 한 왕의 지배를 받던 공동체에 지나지 않았다. 5세기 초엽부터는 공화정의 체제 아래 점차적으로 견고한 정치적 조직을 이루게 되었다. 주변에 위치한 동맹체들과의 동맹과, 북쪽의 에트루리안족, 남쪽의 여러 다른 부족들과의 계속되는 전쟁의 승리로 로마는 B. C. 265년에 이르러서는 이탈리아 반도의 종주국이 되었다. 정복된 민족들은 평화조약에 묶여 있다가 점차로 로마의 지배 아래 흡수되었다. 그 후 로마는 2세기 동안 지중해 서쪽의 주된 해상세력인 카르타고와 큰 싸움을 치렀다. 카르타고는 원래 페니키아의 속령이었으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종주국이 붕괴되자, 독자적으로 처신할 수 있게 되었다. 페니키아의 본을 따라서 카르타고는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되었다. 그들의 배는 지중해의 무역품들을 운송하였다. 그들의 문화는 성격상 동양적이었고 그들의 사회는 용병에 의해 유지되는 과두정치체제였으며 독재법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다. 로마가 팽창해감에 따라 그들은 자연히 카르타고 제국의 전진기지들과 충돌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두 개의 문명이 그 종족의 기원이나 두 세력이 공존할 여지가 없었으며 따라서 필연코 어느 하나가 물러서야만 했다. 그들 사이의 전쟁은 었다. 지중해는 항해하는 선박으로 인해 4계절 동안 붐비는 항구가 많았다. 알렉산드리아의 대부분의 배들은 로마의 주식인 곡물을 사들이는 일에 쓰여 졌다. 전투선은 상선보다 가볍고 빨랐으며 일반적으로 노예들이 노를 저어 추진되었다. 내륙에서는 화물운송에 강을 이용하거나 낙타가 사용되었다.제3장 종교적 상황1. 그리스-로마 만신전로마 공화정 초기 시절의 원시 종교는 ‘애니미즘’(정령숭배)이었다. 로마라는 군사제국이 성장해가면서 그리스의 문화와 접촉한 결과 그리스 만신전의 지배적인 영향 아래서 여러 신들이 혼합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늘의 신인 쥬피터는 그리스 제우스신과 동일시되었고 그의 부인인 쥬노는 헤라와, 바다의 신인 넵툰은 포세이돈과, 지하의 신인 플루토는 하데스와 동일시되었다. 호머의 작품에 나오는 모든 신들은 그와 동등한 위치에 올려 져 있던 로마의 신들로 동화되었다.2. 황제 숭배비록 지방신 들에 대한 숭배가 계속되고는 있었지만, 제국 내에서 점증하고 있는 세계주의 의식은 국가숭배라는 새로운 형태의 종교를 잉태하고 있었다. 여러 해 동안 셀류시드와 톨레미의 헬라 왕국은 왕들을 신의 위치에까지 높여 놓았으며 이로 인해 그들에게 ‘주’, ‘구원자’ 또는 ‘현현의 신’과 같은 거룩한 칭호들을 붙여 주었다. 제국의 이익을 위해서 그가 그러한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에게 신적인 요소가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었으며, 그것은 또한 제국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편이 되기도 하였다. 제국종교는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점차로 황제에게 향한 초인간적인 영예와 백성들의 충성을 한 사람에게 집중시키려는 열망이 낳은 결과였다. 황제숭배가 국가에 대해서는 매우 가치가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다. 이는 애국심과 종교를 하나로 만들었으며 국가에 대한 충성을 종교적인 의무로 만들었다. 이것이 1세기의 전체주의였다.3. 밀의 종교들국가종교나 황제숭배가 사람들에게 완전한 민족을 가져다주지는 못하였다. 둘 다 의식적인 제물들에 의해 지탱되고 있었으며 둘 다 개인적이라기보다 5:1, 6:9). 마태는 여기에서의 족보를 사용하여 메시야의 약속의 성취를 예수라는 사람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마태복음은 반복해서 나타나는 구절들에 의해 구별될 수 있는 이중적인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전자는 예수의 생에 대한 전기적 해석인 반면에 이 또 하나의 개요는 주제 중심적이다.4. 개요마태복음: 메시야의 복음1. 실현된 메시야 예언들1) 강림 1:1~4:112. 첫 설교에 나타난 메시야의 원칙들 4:12~7:291)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7:13, 14)3. 나타난 메시야의 능력 8:1~11:11) 기적들 (10:34~39)“나를 따르라”4. 설명된 메시야의 계획1) 비유들 11:2~13:53(1) “내게로 오라” (11:28)(2) “너희가 깨달았느냐” (13:51)5. 선포된 메시야의 목적1) 십자가의 위기 13:54~19:22)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13~15)6. 제시된 메시야의 문제들1) 대적자들과의 알력 19:3~26:2“회개하라” (23:37~39)7. 성취된 메시야의 수난1) 죽음과 부활 26:3~28:108. 맺음말1) 소문과 현실 28:11~20“가서 전하라” (28:16~20)5. 강조점마태복음은 나사렛 예수가 구약의 메시야 예언들 속에서 시작되었던 계시를 어떻게 확장했으며 설명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씌어졌다. 비록 마태복음은 성격상 유대적인 특성이 강하지만 그것은 이방인들의 유익을 위해서도 씌어졌다. 왜냐하면 마지막 명령은 열 두 제자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했기 때문이다(28:19). 마태복음은 강조점에 있어 교훈적이다. 복음서들 중에서 가장 긴 설교의 단락을 포함하고 있으며(5, 6, 7장) 그밖에도 예수의 가르침을 반복하고 있는 다른 긴 구절들이 있다.(10, 13, 18, 23, 24, 25장). 이 강화들은 전체 복음의 약 3/5을 차지하고 있다. 마태는 명백히 예수의 인격과 그리고 율법과의 관련 하에서 예수의 가르침의 내용을 강조하려 하였다.6. 인물다른 공관복음서와 비교해 볼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예수는 놀라운 일을 행했으며, 기쁨으로 진리를 받아들이는 자들의 선생이었기 때문에 만약 그를 사람으로 부르는 것이 허용된다면 이 시대에는 예수라는 한 현자가 있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는 많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그에게로 이끌었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중요 인물들의 제안에 따라 빌라도가 그를 십자가게 못박으라고 선고했을 때 처음부터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를 버리고 도망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3일 만에 다시 살아나 그들에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성경의 예언자들은 이와 같은 사실 뿐만 아니라 그에 관한 그 밖의 놀라운 일들을 수없이 예언했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따라 기독교인이라고 불리는 무리들은 오늘까지도 전멸하지 않고 있다.”2세기의 로마 역사가인 타키투스는 네로통치에 관한 글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로마에 있는 기독교인들의 존재를 과시했다.“그러나 인간이 표명할 수 있는 어떠한 위로의 말과 왕자가 베풀어 줄 수 있는 어떠한 구호금이나 신들에게 드려지는 어떠한 제사로 위장한다고 할지라도 네로가 대화재를 일으키도록 명령했으리라는 악성 유언비어를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이 소문을 은폐시키기 위해 소위 기독교인들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에게 죄를 전가시켜서 가장 혹독한 고통으로 벌주었다. 기독교의 창시자인 그리스도는 티베료 통치 하에 유대 총독인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서 죄인으로 사형이 언도되었다. 그러나 당분간 억압되었던 기독교는 유대 뿐 아니라 로마의 도시까지 확산되었다…”Suetonius의 증언은 간단하다.“네로로 인해 내려진 벌은 유해한 새로운 미신을 퍼뜨리는 사람들인 기독교인들에게 가해졌다.”트라얀의 소식통이었던 젊은 플리니는 그의 서신중 하나에서 아시아에서 만난 바 있는 기독교인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하지만 그들은 어떤 고정된 날의 해뜨기 전 시각에 모여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에게 찬송을 드리는 모임을 갖는 습관이 있었다는 것과 어떤 나쁜 행위를 위해서가 아니라 경건한 맹사건일 것이다. 다소 사람 사울은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 사람들의 옷을 맡고서 “그의 죽음을 마땅히 여긴”(8:1) 청년의 모습으로 사도행전에 제시되어 있다. 사울이라고도 하는 바울은 1세기가 시작되는 무렵쯤에 엄격한 히브리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훌륭한 유대 전통 하에서 엄격하게 교육받았는데 그 내용은 히브리어와 성경을 배우며 장막 만드는 기술을 배우는 것이었다(18:3). 그는 아람어에 능통했는데 아마 그것은 가정에서 사용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헬라어에도 정통했는데, 그 언어는 다소의 통용어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라틴어도 조금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12세기에 그는 가말리엘 문하(22:3)에서 공부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갔다. 그리고 자신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학문에 있어서 많은 진보를 이루었다(갈 1:14). 그의 회심에 선행되었던 도덕적인 면은 자기의 내적 생활에 관해 설명한 로마서 7장으로부터 알 수 있다. 스데반의 죽음 역시 그의 마음에 충격을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회심 그 자체는 이 무자비한 핍박자를 향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초능력적인 계시임이 분명했다. 주관적인 요소 또한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질만하다. 바울의 선교는 즉시 다메섹에서 시작되었다.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바울의 새로운 신앙이 다메섹에 있는 종전의 유대인 동료들과 충돌을 가져오자 자신의 안전을 위해 그 도시에서 피신해야 했다. 예루살렘에서는 사울을 (논리적으로 충분히) 양떼를 습격하기 위해 양의 탈을 쓴 이리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사도들로부터 냉대를 받았다(9:27). 그는 특별히 헬라파 유대인 가운데서, 스데반이 했던 것과 아주 흡사하게 대담한 선교 활동을 펼쳐 나갔다. 그는 모든 일에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를 반대하는 반작용도 격렬해지자 교회는 그를 위험부담이 적은 다소로 보냈다.4. 베드로의 설교바울의 회심은 이방인들을 위한 출중한 사도로 예정된 새 인물이 나타나게 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은 교회 내에서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하셨는데 그들 가운데 중심인물이 베드로였다.
    인문/어학| 2018.02.08| 43페이지| 5,000원| 조회(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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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유냐 존재냐 - 에릭프롬
    소유냐 존재냐-에리히 프롬-목 차Ⅰ. 요약1. 저자소개2. 내용요약(P101~149)1) 제 2부-두 가지 생존 양식의 근본적 차이 분석(1) 제 4장 소유 양식이란 무엇인가?① 취득사회-소유 양식의 기초② 소유의 본질③ 소유 양식을 지탱하는 기타 요소들④ 소유 양식과 항문애적(肛門愛的) 특성⑤ 금욕주의와 평등⑥ 생존적 소유(Existenial Having)(2) 제 5장 존재 양식이란 무엇인가?① 능동적이라는 것② 능동성과 수동성③ 현실로서의 존재④ 주고, 공유하고, 희생하려는 의지Ⅱ. 요약부분에 대한 독후감Ⅰ. 요약1. 저자소개프롬은 1900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마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정신분석학자며 사회 심리학자이자 사상가다. 양친은 유태인으로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으며 가정 형편은 넉넉한 편이었다. 외아들이었던 프롬은 다소 숫기 없고 외로운 유년을 보내며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의 감정과 마음의 흐름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성경을 탐독했으며 성경 속의 인물들의 다양한 성격과 사건 꿈과 이상, 죄악과 구원의 문제에 강한 흥미를 느꼈다. 1차 대전이 터지자 세계의 참상과 인간의 광기에 충격 받았고 인간의 파괴본능과 히스테리에 대해 숙고하는 계기를 얻게 된다. 1차 대전 후 프랑크푸르트 대학, 하이델베르크 대학, 뮌헨 대학 등지에서 철학, 사회학, 심리학 등을 공부하였으며 20살에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열렬한 탐구 끝에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게서 자신의 의문에 답해 줄 무엇인가를 발견한다. 베를린 정신분석 연구소 등에서 정신분석 훈련을 받고 프랑크푸르크 대학 내 사회조사연구회(일명 프랑크푸르트 학파)에서 활동하였으며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를 결합하여 개인과 사회현상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사회심리학의 개척자가 되었다. 그러던 중 히틀러와 나치당이 등장하여 광기의 시대가 시작되자 1934년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그 후 콜럼비아, 베닝턴 대학 교수 등을 거쳐 1951년부터 멕시코 국립대학에서 강의했다. 그의 관심은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누르기 위해 정력을 낭비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흔히 그들은, 진실을 보거나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은근히 찬양하고 있기 때문이다.나는 상당히 많은 집단이나 개인이 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과, 그들은 대다수 사람들의 소유 지향을 초월한 새로운 경향을 대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고 있으며, 그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들임을 믿고 있다. 소수의 사람들이 역사를 발전의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일은 이것이 역사상 최초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소수자(小數者)의 존재가 소유로부터 존재로의 일반적인 태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② 소유의 본질소유 양식의 본질은, 사유 재산의 본질에서 유래된다. 소유 양식에 있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단지 내가 재산을 획득하는 것, 그리고 취득한 것을 지키는 무제한의 권리를 가지는 것뿐이다. 소유 양식은 타인을 배격한다. 그것은, 일체의 인간과 일체의 사물을 죽은 것으로 변모시켜 타인의 힘에 종속시킨다.소유하는 생존 양식은 주체와 객체 사이의 살아 있는 과정, 생산적인 과정에 의해서 확립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객체와 주체를 모두 로 만든다. 그 관계는 죽은 관계이지 산 관계가 아니다.본성에 따라 성장하려고 하는 경향은, 모든 생명체들의 공통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본성에 의해 결정된 방향으로 성장하는 것을 방해하려 하는 어떤 행위에도 반항한다. 이 반항이 의식적이든 아니든 그것을 분쇄하기 위해서는 육체적, 정신적인 힘이 필요하다. 생명이 없는 物들은 자신을 이루고 있는 원자 및 분자의 구조 속에 내재(內在)해 있는 에너지를 통해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기들의 신체적 특성에 대한 억압을 물리친다.사람은 자라면서 자기의 자율적이며 참된 욕구나 관심 및 자기의 대부분의 의지를 포기하고 자율적이 아니라 사회적 통념 및 관례가 첨가된 의지와 욕망과 감정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정신상의 사회생활 대행자로서의 가정인 사회는, 다음의 난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교화(敎化), 보상, 징벌, 적당체에 관하여 말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지만 物이란 우리의 육체 조직 속에 어떤 종류의 감각을 생겨나게 하는 에너지의 과정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감각들은 테이블이나 램프 같은 특정한 사물에 대한 은 아니다.소유와 욕구는 또 다른 근거를 가지고 있다. 가 그것이다. 우리가 행복하든 불행하든 육체는 우리로 하여금 을 추구하도록 강요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에 의해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 경험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불멸하리라고 자신에게 믿게 할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한다. 피라오들의 믿음, 초기 수렵 사회의 행복한 엽원(獵園)에서 찾을 수 있는 사후(死後)의 삶에 관한 많은 종교적 공상들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천국 18세기 이후의 현대 사회에서는 ‘역사’와 ‘미래’가 기독교적 천국을 대표하게 되었다.그러나 필시 재산의 소유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불멸에 대한 욕망의 충족을 대신해 주는 것이리라. 그리고 소유 지향이 그토록 강력한 힘을 갖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만일 나의 가 나의 에 의해서 구성된다면, 나의 소유물이 불후의 것인 경우 나도 불멸의 존재가 된다. 고대 이집트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신체의 미라화를 통한 육체적 불멸로부터 유언(遺言)에 의한 정신적 불멸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그들의 육체적, 정신적 생애를 초월하여 생존해 왔다. 후세들에 대한 우리의 재산 분배는 바로 이 유언의 합법적인 권리에 의해 행하여진다.④ 소유 양식과 항문애적(肛門愛的) 특성소유 양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접근 방법의 하나는 프로이트의 가장 중요한 발견들 중의 하나를 돌이켜보는 일이다. 프로이드에 의하면 모든 아이들의 수동적인 시기인 유아기 및 그에 이어지는 공격적, 착취적 수용의 시기를 거친 후 그리고 성숙기에 도달하기 전에 항문애(肛門愛)라고 하는 시기를 거친다. 그의 발견에 의하면 이 시기는 사람의 모든 발견 과정을 통해 내내 지속되는 수가 있으며 그럴 경우 그것은 의 발달을 가져온다고 한다. 즉, 인간 합리적이다-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다루어 온 와 대조를 이룬다. 생존적 소유는 보지(保持)하고 지키려 하는 강력한 충동으로, 그것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종(種)으로서의 인류에 대한 여러 가지 조건들의 영향의 결과로서 발달한 것이다.생존적 소유는 존재와 충돌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성격학적 소유는 필연적으로 존재와 충돌한다. ‘의인(義人)들’, ‘성인군자들’조차도, 그들이 인간인 이상 생존적인 의미에 있어서 소유를 원치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은 생존적 및 성격학적인 의미에 있어서 소유하기를 원한다.(2) 제 5장 존재 양식이란 무엇인가?소유는 을 대상으로 하며 인간의 경험은 원칙적으로 묘사할 수 없다. 완전히 묘사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퍼스너(persona)-각 사람이 쓰면 가면, 타인에게 보이는 자아-이다. 이 persona 자체도 사물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살아 있는 인간은 전혀 묘사할 수 없는 것이다. 이 통찰적인 지식은 나 자신의 혹은 타인의 정신 구조를 이해하고 묘사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총체적(總體的)인 나, 나의 모든 개성(個性), 지문(指紋)처럼 내게만 고유한 나의 본질은 설령 감정 이입(感情移入)에 의한다 하더라도, 결코 완전하게는 이해될 수 없다. 인생이라는 무도회에 참가하고 있는 한은 서로 살아 있는 관계를 맺는 과정에 있어서만 나는 상대와 나 나이를 가로막는 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① 능동적이라는 것능동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을, 그리고 모든 인간에게 주어져 있는 풍부한 인간적 천부(天賦)의 재능 정도는 각각 다르지만-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경험한 것을 사상(思想)과 말만으로 표현하는 순간에 그 경험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그러므로 존재는 말로는 묘사할 수 없고 경험을 서로 공유하는 것에 의해서만 그 전달이 가능하게 된다. 존재 양식은 우리가 소유 양식, 즉 비존재(nonbeing)양식을 감소시키는 정도만큼만 드러날 수가 있는 것이다.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소유 지향적인 양상으로 구별한다. 의 첫 번째 기준은 행위는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다. 무언가가 우리의 내부에서 행하여지거나 우리의 본성으로부터 어떤 행위가 나오는데 우리가 부분적으로만 그 원인일 때 나는 ‘행위를 강요받는다.’고 말한다.스피노자는 자신의 종(種)의 본성을(사람의 경우에는 인간의 본성을) 가장 잘 인식하는 것이 삶의 목표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인간의 본성의 전형(典刑)에 더 가까이 도달할수록 그만큼 우리 자유와 복지는 더 커지는 것이다. 모든 ‘능동적 정서(active affects)'는 필연적으로 좋다. ‘정념(passions)'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여러 가지 정념과 수동성에 관한 스피노자의 관념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그의 사고의 마지막-그리고 가장 현대적인- 단계, 즉 비합리적인 정념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은 정신적으로 병든 것이라고 하는 사고(思考)에까지 도달해야만 비로소 가능해 진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본성의 요구에 해당하지 않는 여러 가지 정념들을 병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그와 같은 것들을 정신 이상의 산 형태라고 했다. 스피노자가 이야기하는 의미로서의 능동저인 인간들은 오늘날에는 예외적인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이른바 정상적인 능동성에는 거의 순응하지 못하므로 ‘노이로제 증상(neurotic)'이 아닌가 하고 의심받기 십상이다.마르크스에게 있어서 문제는 ‘누가 누구를 지배할 것인가’-산자가 죽은 자를 지배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죽은 자가 산자를 지배할 것인가-였다. 사회주의는, 그에게 있어서는 산 자가 죽은 자를 지배했던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문명의 쇠퇴와 회복에 관한 연구에서, 현대의 ‘인간’을 부자유스럽고 불완전하며, 집중력이 없고, 병적(病的)으로 종속적이며 ‘완전히 수동적’존재로 보았다.③ 현실로서의 존재나의 성격 구조, 즉 내 행동의 진정한 동기(動機)가 나의 실질적 존재를 대신한다. 나의 행동은 나의 존재를 부분적으로 반영할는지 모른다.
    독후감/창작| 2018.02.08| 10페이지| 2,000원| 조회(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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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맹자의 교육사상
    맹자의 교육사상가. 유가와 묵가와 도가한비자(韓非子)의 기록에 의하면 공자가 죽은 후에 유가는 여덟 개의 지파로 나뉘어졌다. 자장(子張), 자사(子思), 안씨(顔氏), 맹씨(孟氏), 칠조씨(漆彫氏), 중량씨(仲良氏), 순경(筍卿), 악정(樂正) 등이 그것이다. 이 8대 유가의 지파는 동시에 생겨난 것이 아니고 공자가 죽은 후 약 200여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공자의 제자인 (曾子), 자하(子夏), 자유(子游), 자공(子貢), 민자(閔子) 등이 이 8대 유가에 들지 않고 있어서 후세의 사람들이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안씨, 자장, 칠조씨의 경우에만 공자의 직접 제자이고, 다른 학파들은 3대 내지 5대의 인물들이다. 그리하여 공자의 유가는 그 이상의 학파를 두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러한 유가의 전통이 이어지는 속에서 맹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의 문하생으로부터 배워 공자의 사상을 발전시킨 사상가이다. 공자가 (至聖)이라면 맹자(孟子)는 아성(亞聖)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유가의 전통에서는 공자 다음가는 스승으로 받들어지고 있다. 맹자는 공자의 인의의 도를 발전시켜 성선설과 왕도정치론을 편 사상가로서 당시대의 다른 학파인 묵가와 도가를 물리치고 유가적 정통성을 확립하였다.전국시대의 사상계에는 유가 이외에 여러 학파가 있었으나, 그 세력으로 보면 묵가(墨家)와 도가(道家)가 그 대표적인 것이었고 후에 법가도 점차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묵자(墨子)--본명은 묵적(墨翟)--가 어느 시대의 사람이었느냐를 두고 설이 분분하다. 어떤 사람은 공자와 같은 시대의 사람이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공자보다 훨씬 후의 사람이었다고도 하나, 대체로 기원전 470년대에서 380년대에 살았을 것으로 본다. 묵가의 사상은 전쟁을 반대하고 도가처럼 개인주의에 빠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가의 사상과 다소 유사성도 있기는 하지만 많은 점에서 공자의 사상에 대하여 비판적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도가의 근원인 은둔 사상가 양주(楊朱)도 묵자가 활상은 개인주의에만 머물었다기보다는 우주 안에 있는 만물의 근원이 되는 도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에 의하면, 모든 만물은 도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그의 도는 “무위”(無爲)의 도, 즉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도이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 도이다. 그것은, “천지만물은 본래 유(有)에서 생기고 유는 무(無)에서 생긴다.”는 말과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으며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는 말이 시사 하듯 무와 무위의 개념은 일종의 파라독스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노자의 학문은 개인주의의 주장으로서 양주의 계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으나 쾌락주의가는 아니다. 그는 쾌락을 초월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유가가 존중하는 예제(禮制)도 또한 초월해야 할 대상이며 정신의 자유를 획득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노자의 사상과 유사하게 장자(莊子)는 “무용”(無用)의 도를 내세워 단순한 현실적 은둔이 아니라, 오히려 무용의 쓰임을 들면서 무용은 결과적으로 크게 쓰임, 즉 대용(大用)을 뜻한다고 하였다. 가지와 잎이 무성한 큰 나무를 언급하면서 나무꾼이 그 나무를 베어가지 않는 것은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쓸모가 없기 때문에 그 나무는 크게 자랄 수 있었고 무성할 수 있었다는 것, “무용”은 이런 의미에서 곧 “대용”(大用)이다.맹자는 도가와 묵가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이를 물리치는 일을 유가로서의 사명으로 생각하였다. 맹자는 당시에 양주와 묵적(墨翟)의 사상이 천하에 팽배해 있다는 사실에 긴장을 느꼈고, 천하의 의견이 양주와 묵적으로 기우는 현상을 두고 크게 우려하였다. 공자가 주나라의 문왕, 무왕, 주공의 사상을 잇는 것에 대하여 묵적은 그 이전인 하(夏) 나라 우왕(禹王)의 사상을 잇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그러나 맹자는 다시 그보다 더 앞서 요(堯)와 순(舜)의 두 임금을 들어 자신의 유교는 요순의 도이며, 요, 순, 우, 탕, 문, 무, 주공, 공자의 법통을 잇는다고 가르쳤다. 맹자는 말하기를 “사악한 설이 떠돌상반된 견해가 있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주장하였고, 같은 유가의 전통 속에 있던 순자(荀子)는 악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선설과 성악설의 이원론적 대립과는 달리 고자(告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주장하였다.맹자는 “우산(牛山)의 비유”를 들어 사람의 본래 성품은 착한 것이었으나 혼탁한 세상의 영향으로 인하여 흐려져서 악하게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렇게 설명하였다.*우산의 수목은 본래 울창하게 우거져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 산림이 큰 나라의 국도에 인접해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도끼로 마구 베어내었다. 그러니 어찌 본래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지만 잘린 나무의 뿌리는 밤낮으로 쉬면서 다시 자라고 또한 비와 이슬이 내려 적셔 주므로 새싹이 돋아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소나 양들이 와서 풀을 뜯어먹었으므로 저렇게 뻔질뻔질한 헐벗은 산이 되고 말았다. 오늘 사람들은 그 뻔질뻔질한 산을 보고 원래부터 나무가 없었으리라고 생각하겠지만, 어찌 저렇게 헐벗은 모습이 산의 본래 모습이겠는가?사람의 본성에 어찌 인의(仁義)의 마음이 없었겠는가? 사람들이 본래의 양심을 버리는 것은 마치 도끼로 나무를 잘라 버리는 것과 같다. 매일 잘라 버리니 어찌 아름다울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사람의 양심도 밤낮으로 자라고자 하며, 새벽의 청명한 기운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도 즐겨 추구하는 바와 싫어서 배척하는 바가 사람답지 못하고 낮에 일어나는 혼잡스런 일들 때문에 다시 교란되어 사라져 버린다. 그러한 일이 반복되면 결국에 가서는 밤의 기운도 없어지고, 밤의 기운이 없어지면 인간이 아닌 금수(禽獸)와 가까운 상태에 빠진다.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금수가 된 꼴만을 보고 본래부터 착한 재성(才性)이 없었던 것과 같이 생각하겠지만 어찌 그런 것이 사람의 본성이겠는가? (고자상 우산장 1-2)그러나 맹자가 성선설을 견지하려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의문을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로, 인간의 마음이나 행동이 는 것으로 함축될 수 있다. 사단은 인간의 인의예지의 마음을 소유하고 있다는 단서라면, 확충하고 회복하는 것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 즉, 선한 성품의 실체는 무엇인가? 마음은 본래 인의예지의 덕을 알고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재성과 능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가정된다. 즉, 그것은 양심(良心)이다. 양심은 양지(良知)와 양능(良能)을 포함한다.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은 양능이며,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아는 것은 양지이다. 이러한 “양지양능설”은 오늘의 서양 윤리학들이 양심(conscience)의 개념을 도덕적 판단의 인지적 요소와 도덕적 실천의 동기적 요소로 분석하여 설명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개념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사람이 본래의 성정(性情)을 따르면 선할 수밖에 없다. 물론 사람들이 착하지 못한 일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본래 악해서가 아니라, 본래의 재성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이 그 재성의 발휘를 가로막고 있는가를 물을 수 있다. 맹자는 대체로 세 가지를 들고 있다.첫째는 환경의 영향이다. 풍년이 들어 넉넉한 해에는 젊은이들이 거의 선량하고 흉년에는 포악한데, 그것은 사람의 재성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유인케 한 원인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마치 같은 땅에 같은 시기에 보리를 심어두면 하지(夏至) 때에 이르러 또 같은 결실을 하지 않는 것은 토질이 다르거나 기후가 다르거나 아니면 사람의 손길이 같지 않아서 그런 것과 마찬가지이다. 맹자는 인간의 성품의 변화에 미치는 환경의 영향을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다.둘째는 자포자기의 태도이다. 비록 인간에게 환경의 영향이 크다고 하여도, 순 임금과 같이 깊은 산속에서 야인들과 별로 다를 바가 없이 살았으나 착한 말을 듣고 착한 행동을 보면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있으며 성인이 되기도 한다. “우산의 비유”에서 설명하였듯이 낮의 거칠고 문란한 행동과 밤의 안식을 통하여 순화하고 아침의 맑은 기운을 입어 사람은 다시 새롭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자맹자는 “임금이나 신하나 모두 요 임금과 순 임금을 본받으면 된다.”고 하였다. 순이요 임금을 섬기던 극진한 태도와 도리, 그리고 순과 요의 두 임금이 백성을 위하던 정성과 태도, 그것이 바로 인간 윤리의 표준이다. 군자를 기르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에게 깨우쳐 주고 밝혀 주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표준에 따라서 힘있게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기만 해야 한다. 그것은 군자교육의 궁극적 목표라고 할 수 있는 호연지기를 기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호연지기는 인간의 선성이 만개(滿開)한 경지를 의미한다. 이러한 기는 지극히 크고 굳센 것이므로 곧게 가꾸고 기르면 천지의 사이에 가득 찬다. 그러므로 의(義)와 도(道)가 합친 상태에서라야 제대로 함양된다. 호연지기가 크게 무르익은 경지의 사람을 “대장부”(大丈夫)라고 한다. 대장부는 “천하의 넓은 보금자리인 인에 살고 천하의 올바른 자리인 예를 지키고, 또한 천하의 대도인 의를 행한다. 뜻을 얻어 도를 행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면 백성들과 함께 그 도를 따르게 하고, 뜻을 얻지 못하여 재야에 머물면 홀로 선을 행한다. 부귀에 의해 마음이 타락되는 일이 없고 빈천으로 인해 절조를 굽히지 않으며, 어떤 위세나 무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는다.” 호연지기는 인간이 자기의 본성을 충분히 계발시킨 것일 뿐이므로 그것은 결코 한갓 이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누구나 실현할 수 것이다.다. 귀족주의적 왕도 정치맹자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社稷)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가장 가볍다.”고 하였다. 그리고 “백성들(丘民)의 민심을 얻어야 천자(天子)가 될 수 있고 천자의 신임을 얻어야 제후(諸侯)가 될 수 있으며 제후의 신임을 얻어야 대부(大夫)가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 표현으로 보면 장기윤이 말했듯이 맹자는 민주정치의 가장 중요한 선언을 한 것으로 보인다. 통치권의 행사가 궁극적으로 민중을 위한다는 데 있다고 선언한 것이므로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국민을 위한 정치”아니다.
    인문/어학| 2018.02.08| 13페이지| 1,500원| 조회(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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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민심서 평가A+최고예요
    목민심서목 차1. 전체내용 요약2. 12강의 줄거리1) 부임2) 율기3) 봉공4) 애민5) 이전(吏典)6) 호전(戶典)7) 예전(禮典)8) 병전9) 형전10) 공전11) 진황12) 해관3. 독후감상1) 서론2) 본 론가. 목민심서의 내용나. 목민심서의 중요 어구다. 목민심서와 실학의 의의라. 목민심서의 현대적 의의3) 결론1. 전체내용 요약목민심서의 구성을 보면 12강(綱)으로 크게 구분되고 이것을 또 다시 각각 6조씩 세분하여전체가 12강 72조로 되어 있는데 이는 목민관의 생활을 총망라 한 것이다.율기편에서는 위엄과 신의로써 관속을 통솔하며 염결과 공정이라는 이도(吏道)정신에 입각하여 정사에 임할 것을 제시하고 있으니 목민관은 행정에 임하기에 앞서 몸가짐부터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전에서도 관속을 통솔하는 근본은 무엇보다도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데에 있음을 거듭 천명하고 있으니 목민관의 올바른 정신 자세야말로 밝은 행정의 원천이 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아전들의 유혹에 빠져 한 번 부정을 저지르게 되면 수령 노릇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예로 들어서 목민관들에게 일대 경종을 울리고 있다.호전에서는 토지의 소출을 기준으로 하는 전제를 비판하고 면적을 기준으로 하는 중국식의 경무제(頃畝制)를 찬양했으며 전제의 실질적인 개혁만이 세제를 확립시킴으로써 백성들의세금 부과를 공정하게 하는 한편 국가 재정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부임으로부터 해관에 이르기까지 전문을 통해 목민관은 오직 국민을 사랑하고 나라의 일을 염려하여 관속들의 횡포와 부정을 막고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방법론을 펴고 있으며, 국가 법전을 고증하고 우리나라 역대로부터 이름 높았던 수령들의 선치(善治)는 물론 중국의 유명했던 목민관의 치적까지도 실례를 들어서 보충 설명을 하고 있다2. 12강의 줄거리1) 부임부임편세는 목민관으로 발령을 받고 고을로 부임할 때 유의해야 할 6가지 사항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정약용은 목민관이 여러 벼슬 중에서 가장 관의 중요한 덕목이다. 지방에 부임할 때는 가족을 데리고 가지 말아야 하며, 형제나 친척이 방문했을 때는 오래 머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는 쓸데없는 청탁이 오가고 물자가 낭비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이다. 모든 것을 절약하고 아껴서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 또한 목민관이 지켜야 할 원칙이다.3) 봉공봉공은 임금을 섬긴다는 뜻이다. 따라서 봉공편에는 위로는 임금을 섬기고 아래로는 백성을 섬기는 방법이 적혀 있다. 목민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임금의 뜻을 백성에게 잘 알리는 일이다. 당시에는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 교문(敎文)이나 사문(赦文)과 같은 공문서를 각 고을로 내려 보냈다. 하지만 글이 너무 어려워 일반 백성들이 그 뜻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목민관은 이것을 쉽게 풀어써서 백성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목민관은 법을 잘 지키는 한편 지방에서 내려오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데 힘써야 한다. 공문서는 정해진 기간 내에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 또한 공납과 같은 세금을 공정하게 징수해서 아전들이 부정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외국 선박이 표류해 들어온 경우에는 예의를 갖춰 잘 보살펴 주어야 하며, 그들에 관한 모든 것(배의 모양, 크기, 문자 등)을 빠짐없이 기록해 상부에 보고해야 한다. 이 때 그들의 좋은 점은 보고 배워야 하며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4) 애민애민편은 백성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목민관은 노인을 공경하고 불쌍한 백성을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4궁(窮)을 구제하는 데 힘써야 한다. 4궁이란 홀아비와 과부, 고아, 늙어서 의지할 곳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목민관이 합독(合獨)이라 하여 홀아비와 과부를 재혼시키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말한 점이다. 집안에 초상이 난 사람에게는 요역(水役)을 면제해 주고, 환자에게는 정역(征役)을 면제해 주어야 한다. 목민관은 자연 재해가 나지 않도록 항상 대비해야 하며, 재해가 생겼을 때는 백성들을 위로하고 한다. 그래야만 백성들로 하여금 믿고 따르게 할 수 있다.6) 호전(戶典)호전편에서는 세금을 거두는 일에 대해 말하고 있다. 소출량을 기준으로 한 세금 징수는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렵기 때문에 문제가 있었다. 정약용은 이 점을 비판하고 공정한 세금 징수를 위해 해마다 직접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목민관은 원활한 조세 업무를 위해서 호적을 정비하고 부정 방지에 힘써야 한다. 또한 국민 경제의 근본인 농업을 장려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농사를 권장하는 핵심은 세금을 덜어주고 부역을 적게 하여 토지 개척을 장려하는 것이다. 권농 정책에는 벼농사 장려뿐만 아니라 목축과 양잠의 장려, 소의 도축을 막는 일 등이 모두 포함된다.7) 예전(禮典)예전편에서는 제사와 손님 접대, 교육, 신분 제도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목민관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정성을 다해 제(祭)를 지내는 일이다. 미풍양속을 해치는 미신적인 제사가 있다면, 사람들을 계몽하여 없애 버려야 한다. 또한 교육을 장려하고 과거 공부를 권장하여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문란해진 신분 제도를 바로잡는 일도 목민관이 해야 할 일이다.8) 병전병전편에서는 군대를 키우고 잘 훈련하여 외적의 침입에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당시에는 병역 의무자가 군대에 가는 대신 옷감을 내고 면제를 받는 제도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부정이 많았다. 목민관은 이러한 부정을 가려내어 가난한 백성들이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병기들을 수리하고 보충하여 늘 비상사태에 대비해야 하며, 외적의 침입이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지방을 지켜야 한다.9) 형전형전편에서는 재판과 죄인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재판을 할 때는 사건의 전말을 모두 파악한 뒤 신중하게 판결해야 하며, 특히 옥에 가두거나 형벌을 내릴 때 잘못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한 거짓으로 남을 고발한 사람은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예로부터 이진 목민관은 형벌을 약하게 했으니 지나친 형벌은 피하는 것이 좋다. 옥에 갇힌 죄수에게는 집과 식을 바탕으로 구휼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목민관은 집을 잃은 백성들에게 쉴 곳을 마련해 주고, 재해에 대한 구제가 끝나면 백성들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어야 한다.12) 해관해관이란 관직에서 물러난다는 뜻이다. 해관편에서는 목민관이 벼슬을 그만두고 물러날 때와 그 이후의 일에 관해 말하고 있다. 벼슬에 연연하는 것은 선비의 도리가 아니며, 떠날 때 많은 재물을 가지고 가는 것 또한 선비가 할 일이 아니다. 백성들이 목민관이 떠나가는 것을 슬퍼하고 길을 막아선다면 훌륭한 목민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오랜 병으로 눕게 되면 거처를 옮겨서 공무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 죽은 뒤에라도 백성들이 내는 돈을 받지 않도록 미리 유언으로 명령해 두어야 한다. 송덕비나 선정비는 죽은 이후에 세워야 하는 것으로 있을 때 세우는 것은 예가 아니다.3. 독후감상1) 서론목민심서는 고금의 여러 책에서 치민에 대한 도리를 논술한 책이다. 저자인 다산 정약용은 조선 순조 시대 학자로서 실학을 대표하는 학자이다. 내가 목민심서를 선택한 이유도 정약용의 실학사상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순조 때 천주교 박해로 전라도 강진으로 귀양가있는 동안 저술한 것으로 우리나라와 중국의 역사서를 비롯한 여러 책에서 자료를 뽑아 수록하여 목민관이 여러 일을 함에 있어서의 일의 처리방법, 사람을 대할 때의 몸가짐 등을 아주 세세하게 예를 들어서 목민관의 자세를 알려주고 있다. 이를 토해 지방의 관리들의 폐해를 제거하고 지방 행정을 쇄신하려고 한 것이다.이 글을 읽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아주 작은 부분까지 신경을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대에 특히 정약용의 신분으로써 생각하기 힘든 백성을 위한 정책을 펼치려고 노력한 것에 대해 많은 감명을 받았다. 정약용은 그의 정책을 직접 실행하지 못하고 단지 글로써 밖에 그의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가 정권을 잡고 그의 뜻대로 정책을 펼쳤다면 백성을 좀 더 생각하는 사회가 되었을 수 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그 봉사정신 수령은 근민(近民)의 직으로서 다른 관직보다 그 임무가 중요하므로 반드시 덕행 ? 신망 ? 위신이 있는 적임자를 선택하여 임명해야 하며, 수령은 언제나 청렴과 절검을 생활신조로 명예와 재리(財利)를 탐내지 말고 뇌물을 절대로 받지 말아야 하며, 수령의 본무는 민중에 대한 봉사정신을 기본으로 하여 국가의 정령을 빠짐없이 두루 알리고 민의의 소재를 상부 관청에 잘 전달하고 상부의 부당한 압력을 배제하여 민중을 보호해야 하는데, 민중을 사랑하는 이른바 애휼정치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다음 제5편의 이전은 속리(束吏) ? 어중(馭衆) ? 용인(用人) ? 거현(擧賢) ? 찰물(察物) ?고공(考功)의 6조로, 제6편의 호전은 전정(田政) ? 세법(稅法) ? 곡부(穀簿) ? 호적(戶籍) ? 평부(平賦) ? 권농(勸農)의 6조로, 제7편의 예전은 제사(祭祀) ? 빈객(賓客) ? 교민(敎民) ? 흥학(興學) ? 변등(辨等) ? 과예(課藝)의 6조로, 제8편의 병전은 첨정 첨정(簽丁) ? 연졸(練卒) ? 수병(修兵) ? 권무(勸武) ? 응변(應變) ? 어구(禦寇)의 6조로, 제9편의 형전은 청송(聽訟) ? 단옥(斷獄) ? 신형(愼刑) ? 휼수(恤囚) ? 금폭(禁暴) ? 제해(除害)의 6조로, 제10편의 공전은 산림(山林) ? 천택(川澤) ? 선해(繕해) ? 수성(修城) ? 도로(道路) ? 장작(匠作)의 6조로 이루어져 있다.위의 여섯편은 《경국대전》의 6전에 준거(準據)하여 목민관의 실천 정책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다.마지막으로 진황(賑荒) ? 해관의 두편은 수령의 실무에 속하는 빈민구제의 진황정책과 수령이 임기가 차서 교체되는 과정을 적은 것으로서, 벼슬길에서의 선종(善終)을 지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황의 항목은 비자(備資) ? 권분(勸分) ? 규모(規謨) ? 설시(設施) ? 보력(補力) ? 준사(竣事)의 6조로, 해관은 체대(遞代) ? 귀장(歸裝) ? 원류(願留) ? 걸유(乞宥) ? 은졸(隱卒) ? 유애(遺愛)의 6조로 이루어지고 있다.요타난다.
    인문/어학| 2018.02.08| 8페이지| 1,500원| 조회(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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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 평가A+최고예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인간의 악한 본성은 원래 악한 것이니, 선이란 인위적으로 된 것이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이익을 추구하게 마련이므로, 그대로 내버려두면 서로 싸우고 빼앗기 때문에 양보란 있을 수 없을 것이요, 또 나면서부터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게 마련이므로, 그대로 내버려두면 남을 해치고 상하게 할 줄만 알 뿐 신의나 성실성은 없을 것이다. 또 귀로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눈으로 아름다운 것을 보려는 감각적 욕망이 있으니 그대로 두면 무절제하여 사회 규범으로 지켜야 할 예의나 규범의 형식적 절차인 문리(文理)는 없어질 것이다.그러므로 타고난 성질이나 감정에 맡겨 버린다면 반드시 서로 싸우고 빼앗아 사회의 질서를 파괴하고 세상을 혼란에 빠지게 할 것이니 반드시 스승의 교화와 예의의 법도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남에게 사양할 줄도 알고 사회의 질서를 지킬 줄도 알아 세상의 평화가 유지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사람의 천성은 원래 악한 것이 분명하며, 선이란 인위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그러므로 구부러진 나무는 반드시 도지개를 대고 불에 쬐어 바로잡아야 곧게 되고 무딘 칼은 반드시 숫돌에 갈아야 날카로워지는 것처럼 사람의 본성은 악하기 때문에 반드시 스승이 있어야 바로잡히고 예의를 얻어야 다스려질 것이다. 만일 스승이 없으면 편벽된 데로 기울어져 부정해질 것이요, 예의가 없으면 난폭해져서 다스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성왕(聖王)이 이를 위하여 예의를 일으키고 법도를 세워 성정(性情)을 교정하고 훈련함으로써 사회 규범에 따르고 도리에 맞도록 한 것이다.이제 사람들을 살펴보면 스승의 감화를 받고 학문을 쌓아서 예의를 숭상하는 사람은 군자가 되고, 제 성정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소인이 된다. 이로써 사람의 본성은 악한 것이 분명하며 선은 인위적인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맹자는 말하기를, "사람이 학문을 하는 것은 그 본성이 선하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으로서, 사람의 본성을 잘못 이해하여 타고난 본성과 후천적으로 교정된 성정을 구분하지 못한 것이다. 무릇 본성이란 타고난 대로를 말하는 것이니 배워서 되는 것도 아니요, 행동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예의는 성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니, 배우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배우지 않고 행하지 않아도 그대로 있는 것을 본성(本性)이라 하며 배우고 노력해야 되는 것을 인위(人爲)라 한다. 이것이 성(聖)과 위(僞)의 구별인 것이다. 이제 사람의 본성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니, 볼 수 있는 밝은 눈을 떠나서 있을 수 없고, 들을 수 있는 밝은 귀를 떠나서 있을 수 없으므로 눈이 밝고 귀가 밝은 것은 배워서 된 것이 아니다.맹자는 말하기를 "사람의 본성은 착하지만 악한 이유는 모두 본성을 잃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사람의 본성은 나면서 곧 그 소박을 떠나고 그 소질을 떠나게 마련이니 잃어버릴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성은 악하다. 이른바 성이 선하다는 것은 그 소박한 것을 떠나지 아니할 때를 미(美)로 보고, 그 소질을 떠나지 아니할 때를 선으로 본 것이다. 따라서 그 소박한 것과 미와의 관계를 또는 그 소박한 본질과 선과의 관계가, '보는 것의 밝음이 눈을 떠나지 않고 듣는 것의 밝음이 귀를 떠나지 않는 것'과 같을 때를 두고 '성이 선하다'고 말할 수 있다.사람이 배고프면 배불리 먹고 싶고 추우면 따뜻하게 입고 싶으며 고단하면 쉬고 싶은 것이 본성이다. 그런데 배고파도 먼저 먹지 못하는 것은 어른에게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릇 자식이 아비에게 사양하고 아우가 형에게 사양하며 또 자식이 아비 대신 일하고 아우가 형 대신 일하는 것은 두 가지가 다 본성에 위배되는 것이요, 성정에 어긋난다. 그러나 효자의 도리는 예의의 규범이다. 그러므로 성정대로만 하면 사양할 까닭이 없고 사양하면 오히려 성정에 반하는 것이 된다. 이로써 사람의 성정이란 악한 것이 분명하며 선이란 인위적인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대개 사람이 착한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그 본성이 악하기 때문이다. 박하면 후하기를 원하고 추하면 아름답기를 원하며 좁으면 넓기를 원하고 가난하면 부유하기를 원하며 천하면 귀하기를 원하는데 자기 속에 없는 것은 반드시 밖으로 구하는 것이다. 또한 부유해지면 재물을 원치 아니하고 귀해지면 권세를 원치 않게 되는 것이니 사람은 또 자기 속에 있는 것은 절대로 밖으로 구하려 하지 않는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사람이 착한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그 본성이 악하기 때문임이 분명하다.인간의 본성에는 처음부터 예의라는 것이 없다. 그래서 사람은 애써 배워서 그것을 갖고자 노력한다. 또, 인간의 본성 그 자체는 예의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자 노력한다. 인간의 본성을 그대로 방치해두면 사람은 예의도 없거니와 예의를 전혀 알지 못한다. 사람은 예의가 없으면 어지러워지고 예의를 모르면 인도(人道)에서 벗어난다. 이로 미루어 보아 본성 그대로 놓아두면 사람은 인도에서 벗어나 혼란에 빠지고 만다. 따라서 분명히 인간의 본성은 악하며, 이것을 착하다고 말하는 것은 인위적인 노력에 의한 꾸밈의 결과일 뿐이다.가. 성선설맹자(孟子)가 주장한 중국철학의 전통적 주제인 성론(性論). 사람의 본성은 선(善)이라는 학설이다. 성론을 인간의 본질로서의 인성(人性)에 대하여 사회적?도덕적인 품성이나 의학적?생리학적인 성향을 선악(善惡)?지우(知愚)라는 추상적인 기준에 따라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현실의 사람을 언제나 이념적인 모습으로 파악하게 된다. 맹자에 따르면 사람의 본성은 의지적인 확충(擴充)작용에 의하여 덕성(德性)으로 높일 수 있는 단서(端緖)를 천부의 것으로 갖추고 있다. 측은(惻隱)?수오(羞惡)?사양(辭讓)?시비(是非) 등의 마음이 4단(四端)이며 그것은 각각 인(仁)?의(義)?예(禮)?지(智)의 근원을 이룬다. 이런 뜻에서 성(性)은 선(善)이며, 공자(孔子)의 인도덕(仁道德)은 선한 성에 기반을 둠으로써 뒤에 예질서(禮秩序)의 보편성을 증명하는 정치사상으로 바뀌었다. 당나라의 유학자이고(李)는 도가(道家)와 불교사상의 영향을 받아《복성서(復性書)》에서 성의 본연인 선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성선사상(性善思想)은 선악(善惡)은 어느 쪽으로도 기를 수 있다는 세석(世碩)이나 후한(後漢)의 혁신적 사상가 왕충(王充)의 성론과 대립되고 선악의 상대적 전환가능성이 있는 순자(荀子)의 이른바 성악설(性惡說)과도 크게 다르다. 그 후 유교는 성선설을 도덕실천의 근거로 하여 계승되고 발전하였다.
    인문/어학| 2018.02.08| 3페이지| 1,000원| 조회(4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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