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대한민국(‘세계화의 덫’을 읽고...)목차(目次)1. 의 대한민국2. ‘하향평준화 세상’ 속의 대한민국3. 세계 금융시장의 독재와 세계 지역주의4. 세계화 속의 다국적 기업과 그 속의 대한민국 기업5. 정의로운 세계화와 한?미 FTA6. 빈부격차(중산층의 소멸)와 대한민국7. 에 대응하기 위한 6가지 유럽식 대안, 그리고 대한민국식 대안1. ‘20 대 80의 사회’의 대한민국라는 말은, 다가오는 21세기에는 노동 가능한 인구 중에서 20%만 있어도 세계경제를 유지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일자리를 구하는 사람들 다섯 중 하나면 모든 상품을 생산하고 값어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이 20%의 사람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돈벌이나 소비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는 또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에서 80%는 극단적으로 말해, 놀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들은 사회로부터 배척된 채로 약간의 오락물과 먹거리에 만족하며 조용히 살아야만 한다.다시 말해, 이 사회에 20%는 유복해지고 80%는 불행해지는 , 가 도래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가들이나 보수주의 정부가 완전히 경제적인 논리에 따라서만 이루어지는 세계화의 추진 과정에서 소리 높여 외쳐대는’ 논리에 따른 이러한 사회에서는 맹목적인 효율성만을 추구하려는 경쟁과 노동자의 임금 인하를 기초로 진행되는 범지구적 경쟁 과정이 전세계적으로 불합리성만을 만들어낼 것이다. 이에 따라 결국 세계의 부(富)는 한 쪽으로만 편재하게 될 것이며 그 ‘한 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쥐고 있는 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다른 한 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으며, 이용하려 할 것이다.사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상당한 진행을 이루었으며 오늘날을 살고 있는 우리는 조금만 관심을 갖는다면 이러한 모습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책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1996년의 독일만 보더라도 무려 6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확실한 일자구는커녕 도리어 자신들의 권력, 재력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양, 그것들을 통한 편법이나 위법을 통해 이 사회를 자신들만의 세상으로 만들려 한다.이와 관련하여 영국과 미국을 보자.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 중 2,000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 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다. 6·25전쟁 때에도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아들만은 병역의 의무에서 벗어나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한국의 고위층들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어쩌면 이미 ‘20 대 80의 사회’에 익숙해진 대한민국의 재벌이나 고위 관료들에게는 영국이나 미국의 고위층들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수준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인 듯하다. 이들에게 과거 독일과 같이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아래쪽을 향해서 적응하는 것”을 요구하여 이들이 그 말에 귀 기울이기란 어쩌면 지구 멸망의 순간까지도 불가능할 일이다. 오히려 차라리 편법이나 위법만큼은 행하지 않도록 하는 부탁이 그나마 조금은 더 빠를 것만 같은 생각을 갖도록 하는 이 사회가 바로, 세계화 시대에 직면한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다.2. ‘하향평준화 세상’ 속의 대한민국이제 세상은 하나이다. 그리고 성경에도 나오듯이, 태초에 하나의 지구가 있었다.베이징에서 비행기로 세 시간, 홍콩에서도 세 시간, 티베트의 라사에서는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청두(成都)라는 도시가 있다. 중국 대륙 한복판에 있는 쓰촨(四川) 지방의 중심지인 이곳은 워낙 산간벽지이기 때문에 맵싸한 중국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만 알까, 그렇지 않으면 외국인은 비행기가 잠시 경유해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일부러 가지는 않는 곳이다. 그런데 이미 청두는 인구가 3백4십만이나 되고, 세계적으로 가장 빨리 커가는 도시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이 산간벽지의 신도시 청두에는 새로 짓고 있 특징인 ‘다양성’과 ‘특수성’은 생활에 방해가 되는 불편한 점으로만 간주되고 있으며 모두가 주로 서구로부터 유래한 편리한 생활에만 길들여지고 있다.이에 따라 수많은 도시들이 상업주의, 물질주의, 인간중심주의 등에 빠져 서로가 똑같은 모습으로 변화해가고 있으며 점차 세계가 위와 같은 저질문명(상업주의, 물질주의, 인간중심주의 등)으로 하향평준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가져다준다.이와 같은 세태에 우리의 대한민국은 역시 또 발맞추어 뒤처지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책에서 말한 ‘올림픽을 맞이하여 외국 기자들한테 미국 현실의 추한 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온 동네 경찰들이 총동원되어 대부분 오갈 데 없는 흑인 방랑자들을 버스에 가득 태워 교외로 쫓아’냈던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의 미국과 청계천 복원 사업을 위해 복개된 청계천에서 수십 년간 생계를 이어오던 상인들을 내쫓은 서울시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이러한 비교의 모습이 다음과 같은, 책에 실려 있는 짧은 문장으로 쉽게 설명될 것 같다.애틀랜타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도시’라는 복잡한 기계가 고도의 기술적 장치들을 갖추고 고압적인 자세로 사람들을 대하는 분위기는 어느 새 전 ‘지구촌’에 널리 퍼졌다.3. 세계 금융시장의 독재와 대한민국한 나라의 통화가 안정되면 그 나라의 국민경제에는 엄청난 장점이 생긴다. 통화가 안정되어야만 수출과 수입 거래에 있어서 정확한 계산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바로 이를 통해서 미래의 불확실한 시세 변동에 대비하기 위한 보험성 계약을 체결하지 않아도 되므로 그만큼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서 서유럽 각국은 이미 1979년에 당시의 유럽공동체 화폐들을 서로 긴밀히 연결짓기로 합의했던 것이다.이는 결국 오늘날의 유로화로 발전하였으며, EU와 유로화는 세계화, 즉 세계정부에 도달하기 위한 “과도기”인 )지역주의의 든든한 일부가 되었다. 다음은 )정태인 전(前)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 한 인터넷 매체와 했던 인터뷰 중의 일부이다.금융국제화라고 하는 거는 지금 대세죠. 이미 비단 앞서 열거한 서구 선진국만이 아닌, 남미, 아시아 등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 대한민국이 속한 동아시아 역시 동아시아 지역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정치적 교류가 점차 잦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세계화에 적응하기 위한 각국의 노력으로 이러한 지역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만 이러한 노력에 따른 효과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나타날지는 아직 미지수인 것 역시 오늘날의 현실이다.4. 세계화 속의 다국적 기업과 그 속의 대한민국 기업오늘날 ‘세계화’의 진행에 있어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바로 다국적 기업(multinational corporation)이다. 다국적 기업이란 세계 여러 나라에 계열 회사를 거느리고 세계 시장을 목표로 생산하고 판매하는 자본주의가 낳은 새로운 형태의 기업으로서, 오늘날 거대 기업으로 세계 시장을 분야별로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러한 다국적 기업의 독과점으로 인해 한 국가의 국민경제나 기간산업이 외국 자본의 지배하에 들어갈 수 있다는 강력한 불안감이 섞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세계화에 편승하고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으며, 여전히 신흥 개발도상국들에 활발한 진출을 이루고 있다.이들이 주로 후진국, 개발도상국 등으로 눈을 돌리며 그곳으로의 진출을 계획하는 이유는 세계화를 통해 그곳들의 시장을 자신들에게 돌아올 경제적 이익이 무궁무진한 곳으로 만들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히 현재까지는 그들의 계산이 옳았음이 증명되고 있다.그곳의 시장 개발과 더불어 또 한 가지 이유를 들자면 바로 값싼 노동력이다. 책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스위스인 한 명의 비용이면 그들은 세 명의 인도인을 고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항공의 경우, 단지 계산소를 인도로 이전한 것만으로도 120개의 일자리와 1년에 8백만 스위스프랑을 절약할 수 있었다. 나아가, 노동집약적 산업과는 아무런 관련 없어 보이던 정보노동자들에게마저 보다 더 싼 경쟁자들이 들이닥치고 있다. 이젠 컴퓨터 자체가 이들한테 경쟁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무인(너무도 자연스러운 경제적 순환 논리로 보이겠지만, )케인즈(Keynes)의 눈에는 단순한 경제적 변동에 수 만, 수억 명의 생계가 흔들리는 오늘날의 상황이 지나치게 불합리해 보일 것이다.5. 정의로운 세계화와 한?미 FTA아직도 자본이 열악한 개발도상국들이, 보호 장치의 구비는 물론 철저한 준비 운동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상당한 기대와 희망을 품고서 선진 산업 국가들이 주도하고 추진하는 (보다 정확히 말하면 강압적 태도로 유혹하는) 자유무역의 바다로 뛰어들게 된다면 이익보다는 엄청난 손해가 발생한다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맺은 멕시코와 같은 경우의 사실이 다시 한 번 입증될 것이다.현재 우리 대한민국의 참여정부는 미국과의 FTA 체결을 위해 발 벗고 뛰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미국과의 FTA를 추진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 것이 국민들로서는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에 정부가 아직은 전국민적인 지지를 얻고 있지는 못하다. (사실, 미국과의 FTA에 대해 반대 여론이 높은 것엔 그 외에도 보다 다양한 원인들이 존재한다.) 앞서 말한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의 말을 빌리자면 정부가 한?미 FTA를 결심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중요한 과정이 있었다.노무현 대통령이 무엇인가를 하고자 할 때마다 발목을 잡히게 되자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하고자 할 수 있는 것 중에 좀 개혁적인 것을 해보자라는 뜻으로 대연정을 추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너지자 큰 실망을 안게 된 상태에서 ‘외부쇼크’에 의한 내부개혁을 생각하게 되었다.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한미 FTA는 이광재 의원이 2004년 12월에 이미 주장을 한 것이며 그 상황에서 김현종 現 통상교섭본부장이 ‘한미 FTA 다 됐다. 몇 가지만 들어주면 된다’고 하여 그쪽 방향으로 급선회하게 되었다. 더해서 최근까지의 상황을 종합해보면 거기에 대해서 반대가 늘면 늘수록 노대통령 스스로의 신념이 강화되고 또 그러면 그럴수록 찬성 논리를 가져다주는 ‘시장 만능론’으로 스스로 무장해버리고 있는 것이다.것이다.
서양 민족주의의 역사와 오늘날 민족주의가 나아가야 할 길(‘민족주의’를 읽고)선택의 기로에 서서 짧지만 긴 고민을 마친 끝에, 분량도 짧았거니와 때마침 민족주의의 옳고 그름에 대한 상념에 심취해있던 나로서는 ‘민족주의 - 임지현’을 골라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내 나는 실망도 아닌 난관도 아닌 것에 부딪히게 되었는데 내가 기대했던 한국 근?현대사와 관련한 민족주의가 아닌 ‘동유럽을 포함한 서양의 역사적 경험에 한정시’킨 민족주의에 대한 글이 날 맞이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탓이었는지 나의 지식이 얕은 탓이었는지 아무튼 글은 정말 어렵고 난해하였다.우선, 민족주의란 “재미있게도” 그것을 논하기 위해 ‘민족’이라는 개념이 보다 명확히 이해되어야 했다. 민족주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모든 논리들이 사실상 ‘민족’의 개념과 범위를 어떻게, 어디까지 설정하였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 ‘민족개념은 민족주의 연구의 출발점이자 동시에 결론인 것이다.’라는 글쓴이의 말에, 당연한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는 지식적 부끄러움과 함께 큰 공감을 느꼈다.서양에서의 이 ‘민족’ 개념은 고대와 중세를 거쳐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고대에서만 하더라도 오늘날 ‘민족’의 어원이 되는 그리스 어, 라틴 어 단어인 ‘민족(Demos, Ethnoi, Populus, Civitas, Gens, Natio 등)’이 ‘배타적 집단적 정체성’을 함축하고 있었지만 나중에는 ‘공동체 내부에서 무리를 가르는 균열의 의미’를 갖게 된다. 이렇듯, 오늘날 ‘민족’의 어원이 되는 고대의 언어가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애초에 ‘민족’은 오늘날 논쟁이 되고 있는 「오랜 옛날부터 자연스럽게 존재한 것 같은 영속적인 성격의 민족」과 「사상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적 성격의 민족」(이상, 개인적 정의.) 모두가 존재하였던 듯하다.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를 지칭할 때 사용한 단어를 통해 ‘영속적인 성격’을 떠올렸고, 공동체 내에서의 계급 분열에서 ‘도구적 성격’을 떠올렸다.)한편, 중세에 이르러 ‘민족’의 개념은 봉건사회의 영향을 받아 또 한 번 의미가 달라진다. 무엇보다 큰 영향은 중세 봉건사회의 신분제적 특성이 반영된 것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포풀루스’가 ‘시민권집단’의 뜻을 잃고 하층민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는 어디까지나 신분적 차별의식이 내포된 것이었다. 이러한 신분제적 특성의 반영과 더불어 중세에는 봉건사회답게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역마다의 집단적 연대감이 형성되었던 탓에 ‘고향’이라는 뜻을 지닌 '파트리아(patria)'가 민족적 집단에 대한 담론체계에서 중심에 서게 된다.‘민족’이 가지는 의미의 고대와 중세의 이러한 변화를 통해 ‘민족’이란 당시의 사회를 주도적으로 구성하고 있던 어떠한 사회 체계에 의하여 정의되고 변화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한 한편으론, 오늘날 우리가 해당하는 ‘미래인’들에 의해 굳이 정의될 필요 없는 과거의 한 집단들이 애꿎게 연구대상이 되고 논쟁거리가 되는 것 같아 그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특히 도구론적 입장에서 볼 때, 과거의 저들은 ‘민족’이란 개념 없이도 잘 먹고 잘 살았던 단순한 우리의 조상임에 불과하지만 오늘날 이데올로기 논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우리 후손들이 쓸 데 없이, 지나치게 그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어찌되었든, 서양 역사가 중세를 통과함으로 인해서 글쓴이가 말하고 있는 두 가지 민족주의의 존재조건인 봉건적 신분제 철폐를 통한 새로운 질서 탄생과 민족주의의 수직적 통합을 정당화시켜주는 이데올로기의 요구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여과 없이 드러나게 된다. 바로 이 프랑스 혁명을 통해 볼 수 있듯이 민중들의 자발적인 의지와 선택에 의해서 (거대한 한 주권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민족’이 형성되었다는 점에서 “혁명은 실로 민족의 향연이었다.”라는 글쓴이의 말은 실로 서양의 근대 민족주의 형성에 (프랑스) 혁명이 얼마나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프랑스 혁명 과정에서 이 부분이 (비록 민중세력과의 정치적인 동맹을 필요로 했던 부르주아들이 그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한 이데올로기였지만, 그보다 민중들의 자발적인 의식이 강력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편적 자연현상 즉, 영속적 성격의 민족주의를 보이고 있다면, 1794년 테르미도르의 반동 이후의 모습은 절대적으로 도구적 성격의 민족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부터는 ‘계급적 대립이 공공연하게 민족적 일체감을 파괴’하였으며 이러한 역사적 전개 속의 민중은 ‘‘질서’의 슬로건 아래 위로부터 통합을 강요받은 ‘조직된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역시나 국한된 지식 속에서 결부시킨 것이 박정희 시대 우리나라의 ‘민족주의’였다.) 당시(1794년 테르미도르의 반동 이후)의 민족주의와 과거 한국의 산업화 시대에 그 도구로서 훌륭한 가치를 인정받았던 민족주의와 적어도 ‘슬로건’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에서만큼은 매우 유사한 면이 있어 보였다.이후 19세기 초, 나폴레옹에 의해 프랑스 혁명의 지적 유산인 민족주의가 유럽 전체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는데 역시나 민족주의는 하나의 고정된 이론을 제시할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아니었음이 여기서도 증명된다. 봉건적 사회구조가 지배적이던 채로 새로운 민족주의를 만나게 된 중동부 유럽에서는 국가와 민족마다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모두 제각기였다. ‘민족적 과거를 이상화하고 민족을 신의 창조물인 유기체적 인격으로 보는 유기체적 민족이론’이 등장하는 한편 러시아의 슬라브주의자들에게는 낭만주의적 민족이론이 등장하여 민족전통이 붙들어 매주는 원초적 집단정서에 호소하기도 하였으며 폴란드에서는 민족 메시아주의가 나타나 좌파적 낭만주의라 부를 수 있는 진보성을 앞세우기도 하였다.흥미로운 점은 동유럽 지역에서의 민족주의의 전개는 당시 그 지역의 특색이던 농업혁명의 부재와 봉건 유제의 완강한 존속, 자본주의 발전의 지체와 그로 인한 부르주아의 비혁명적 타협성 등과 관련되어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미있게도 동유럽의 민족운동은 애초에 프랑스와 같이 부르주아에 의해 주도된 것이 아니라 ‘봉건귀족’의 주도로 시작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동유럽 지역의 귀족적 지식인들은 프랑스 혁명과 계몽사상을 통해 문화와 언어적 동질성의 토대 위에서 민족적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게끔 자각하게 되었는데 이는 봉건사회의 폐쇄적 지역주의에서 벗어나 민족적 통일성을 추구했다는 것만으로도 이것은 진일보된 의식이었으나, 민족에 대한 이들의 담론에서는 프랑스의 부르주아가 제시했던 정치해방이나 사회해방의 사상이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었다.혁명과 이념의 전파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변질되거나 빠지게 된 탓인지 아쉽게도 이들의 민족의식은 그 기저에 봉건귀족의 계급적 배타주의를 깔고 있었다. 즉, 이들의 민족개념은 봉건귀족 자신들만을 민족의 성원으로 인정하는 ‘귀족민족’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의 이러한 태도에선 앞에서 글쓴이가 언급했던 민족주의의 수직적 통합을 정당화시켜주는 이데올로기의 요구에 부합하려는 노력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런데 또한 재밌는 것은 이러한 동유럽 민족주의 역사의 보수적 경향은 서유럽의 합리정신에 철저했던 19세기 후반 동유럽의 부르주아들에게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동유럽의 부르주아들은 위와 같은 봉건귀족들의 낭만주의적 민족이념을 단호히 거부하였으나 낭만주의의 유기체적 민족개념에서는 벗어나지 못하였다. 이들은 오히려 유기체적 성격을 강조하여 유기체로서의 민족의 생존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였다. 이들은 독립에 대한 낭만적 열정이 아니라 민족유기체의 경제적 문화적 진보에 힘쓰는 것이야말로 가장 높은 형태의 애국주의라고 믿었다. (즉 이들에게는 독립이 아니라 내재적 자립이 중요했던 것이다.)한편, 이러한 기존의 봉건귀족의 귀족적 민족주의나 부르주아의 소유적 민족주의가 호소력 있는 새로운 민족주의 이념을 내세우고 이것을 대중운동화 할 수 있는 입장이 되지 못하자 유일하게 남은 대안적 운동주체가 바로 애국적 인텔리와 노동자 계급이었는데 귀족적 민족주의와 소유적 민족주의를 넘어서 민족운동의 대중적 활성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이 바로 이들이었다.이후, 소시민 계급의 우파 인민주의적 민족주의와 함께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사회애국주의가 성장하였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프랑스 혁명의 민족주의가 정치해방을 제시하는 데 그쳤다면, 이들의 사회애국주의는 사회해방의 전망을 안고 있었다는 점에서 확실히 진일보한 것이었다. 이들의 이념의 끝에는 계급이 없고 사회화된 생산수단을 모두가 공동으로 소유하는, 중앙집권을 벗어난 각급 공동체의 자치에 기초한 직접민주주의의 국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19세기 동유럽 사회애국주의는 프랑스 혁명의 정치해방을 넘어, 앞서도 계속해서 언급한 민족의 수직적 통합을 달성하고자 했던 것이다.하지만 이들 급진좌파들은 계급환원론에 지나치게 매달리고 계급의식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결국 노동자 계급 근본주의를 극복하지 못하여 수직적 민족통합에 실패하고 만다. 이로써 ‘인민민족’ 개념에 근거한 진보적 민족국가의 수립은 역사의 과제로 남게 되었다.이후로도 좌파니 우파니, 급진적이니 보수적이니, 사회주의니 국제주의니 하며 지역(과 그 지역 사회의 특색)에 따라 저마다 다른 형태의 민족주의가 선을 보이게 되면서 어찌 보면 이제부터 민족주의는 중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민족주의의 진정한 중흥기는 유럽 국가들이 제국주의 시대를 열어가게 되면서부터가 아닐까 한다. 제국주의 열강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침략을 받은 약소국들이 선택한 저항 의식이 바로 민족주의였기 때문이다. 앞서도 계속 살펴봤듯이, 애초에 민족주의란 절대적인 정의가 이루어지기 힘든 개념이기 때문에 글쓴이가 말하고 있는 서양의 역사적 경험에 한정된 민족주의나, 훗날 그들로부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약소국민들이 부르짖던 민족주의나 모두가 거기서 거기다.)
인간이 될 수 없는 인공지능궁극적인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가?목차(目次)1. 현재까지의 인공지능 발달 단계(인공지능의 역사)2. 드라이푸스가 말하는 인간과 컴퓨터의 차이(기능획득의 다섯 단계)3. 메를로-퐁티(Merleau-Ponty, Maurice)와 신체4. 인지주의와 연결주의5. 인간이 될 수 없는 인공지능5-1. 채팅로봇의 한계(와 로봇분야에 적용가능성)5-2. 컴퓨터 능력의 한계5-3. 인간이 만들어낸 게임, 인간을 이길 수 없는 컴퓨터5-4. 장 피아제(Jean Piaget)의 인지 발달 이론과 인공지능5-5. 장 피아제의 유아 교육 이론과 관련한 인공지능의 불필요성1. 현재까지의 인공지능 발달 단계(인공지능의 역사)오늘날까지의 인공지능이 발달한 단계를 말하기란 지금까지의 인공지능의 역사를 살펴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이와 관련하여, 인공지능의 발달 단계는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눌 수가 있는데, 이 다섯 단계는 태동기(1943~1951), 초기 관심기(1952~1965), 침체기(1966~1974), 활성기(1975~1988), 융성기(1989~현재)로 나뉜다.제1기: 태동기알란 튜링(Alan Turing)의 컴퓨터 프로그램의 지능을 측정할 수 있는 실험(1950)- 측정자가 단말기를 통하여 다른 방에 있는 컴퓨터와 사람에게 여러 가지 질 문을 했을 때, 컴퓨터와 사람의 응답을 구분할 수 없으면 컴퓨터가 지능을 가 지고 있다고 판단하는 실험- 로봇의 지능 측정도 가능- 만약 로봇이 인간과 비슷한 행동을 한다면 그 로봇이 인간의 지능과 유사한 지능을 가졌다고 인정함제2기: 초기 관심기컴퓨터 발달에 따른 성공적인 시기-노웰과 사이먼(Nowell & Simon): GPS(General Problem Solver)-맥카시(McCarthy): LISP, Timesharing System, Advice Taker(최초의 완전한 인공지능 프로그램)-민스키(Minsky): 지능적 프로그램 개발에 관심을 둠제3기: 침체기기본 구조상의 문제점- 이며 다른 하나는 논리적 수수께끼를 풀거나 배달트럭의 최단노선을 정하는 것과 같이 규칙에 따르는 사실적 지식(know-that)이다. 그가 이렇게 두 종류의 지식을 강조하는 까닭은 방법적 지식은 사실적 지식으로 환원되지 않지만 우리는 때로 이 둘을 혼동하고 방법적 지식조차 사실적 지식으로 환원하는 잘못을 자주 범하기 때문이다.사실적 지식의 영역은 일반적으로 관련된 요소들이 유한하고, 그러한 요소들이 고정적이며 확실한 이른바 “구조화된”(structured) 영역인 반면, 방법적 지식의 영역은 일반적으로 관련된 요소들이 무한하고 비고정적이며 불확실한 이른바 “비구조화된”(unstructured) 영역이다. 그는 인간이 방법적 지식 즉 기능을 획득하는 다섯 단계를 구분함으로써 컴퓨터와 인간의 차이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그가 구분하고 있는 다섯 단계는 초보자, 면초보자, 능력자, 숙달자, 전문가이다.-인간: 열두 이야기, 제8장 기술: 드라이푸스의 컴퓨터 철학 중(中)-기능수준구성요소들안목결정방식책임여부초보자맥락무관없음분석적없음면초보자맥락무관 및 상황적〃〃〃능력자〃있음〃결과숙달자〃숙달〃결과이해전문가〃숙달직관적결과 이해 결정드라이푸스의 기능획득의 다섯 단계3. )메를로-퐁티(Merleau-Ponty, Maurice)와 신체인간과 컴퓨터를 이렇게 갈라놓는 그 경계선이 무엇인가? 드라이푸스는 메를로-퐁티를 쫓아 이 경계선이 바로 신체라고 단호히 주장한다. “아무리 정교하게 구성된 기계들이라도 그것이 인간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은, [데가르트(Ren Descartes, 1596~1650)가 이야기했듯이] 분리된 보편적이고 비물질적인 영혼 때문이 아니라, 분리되지 않은 상황적이고 물질적인 신체 때문이다.”-인간: 열두 이야기, 제8장 기술: 드라이푸스의 컴퓨터 철학 중(中)-신체를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바로 우리의 가장 기초적인 삶의 기반이다. 더욱이 신체와 세계라는 개념 자체는 양자의 상호작용 이후에 형성된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갓난아기의 신체가 세계서 신체 능력을 높인 상태에서 드러나는 세계의 모습은 바뀔 것이며, 신체 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드러나는 세계 또한 변할 것이다. (이상, ‘사유의 숲; philoslab.com’에서 발췌한 글을 중심으로 해석, 편집하였음.)4. 인지주의와 연결주의1950년대 초 컴퓨터가 단순히 계산하는 기능을 넘어서서 생각하는 기능 즉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컴퓨터과학자들은 두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는데, 그 한 방향은 컴퓨터로 하여금 인간이성의 논리적 구조를 흉내 내도록 하는 인지주의(cognitivism)였으며, 다른 한 방향은 두뇌의 연결적인 생물적 구조를 흉내 내도록 하는 연결주의(connectionism)였다.-인간: 열두 이야기, 제8장 기술: 드라이푸스의 컴퓨터 철학 중(中)-뉴웰(Allen Newell)과 사이몬(Herbert A. Simon)에 의해 창시된 인지주의는 인간 이성의 논리적 구조를 흉내 낸 것으로서 논리학에 기초하여 컴퓨터를 물리적 기호들을 조작하는 체계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인지주의는 철학에서의 합리적이고 환원주의(reductionism)적인 전통을 계승한 모습을 보인다.반면, 연결주의는 인간 두뇌 자체의 생물적인 구조를 흉내 낸 것으로서 통계학에 기초하여 컴퓨터를 두뇌의 모형을 만드는 매체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연결주의는 생물학에서의 연상적이고 전체주의(holism)적인 모습을 보인다.다음의 글에서 인지주의와 연결주의의 차이점을 보다 쉽고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인공지능연구의 두 방향 중의 하나인 인지주의는 컴퓨터에게 어떤 종류의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어떤 유형의 패턴을 구분할 능력을 부여해 줄 형식적인 구조를 추구한 반면, 다른 한 방향인 연결주의는 바로 그러한 능력을 스스로 만들어 가질 컴퓨터를 가능하게 할 신경단위들의 상호작용을 추구하였다.-인간: 열두 이야기, 제8장 기술: 드라이푸스의 컴퓨터 철학 중(中)-5. 인간이 될 수 없는 인공지능5-1. 채팅로봇의 한계(와 로봇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심심이’는 각각의 사용자들이 입력해놓은 대답의 경우엔 사람과 마찬가지로 능숙히 대화를 이어가지만 미처 입력되어 있지 못한 물음에는 전혀 대답을 할 수가 없다.여기서 우리는 인간과 인공지능(컴퓨터)의 결정적인 차이를 찾을 수가 있다. 바로 ‘학습’과 그것에의 ‘의지’이다. 인간은 ‘학습’을 통해 미처 알고 있지 못한 부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인공지능의 경우에는 그러하지 못하다. 인간이 계속해서 새로운 자료를 '업데이트(update)'해줘야만 지식적 발전을 거듭할 수 있다. (또한 그렇게 됨으로써 결국엔 인간에게 유용하게 사용된다.)즉, 인공지능의 경우엔 학습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인간에 의해 지속적으로 그것이 행해질 수밖에 없으며, 또한 결국 그렇게 발전한 인공지능은 또다시 인간의 테두리 안에서 인간에게 사용되는 데 불과한 존재가 된다.5-2. 컴퓨터 능력의 한계컴퓨터 능력의 한계에 관한 많은 연구 결과는 20세기 초에 논리학 분야에서 수행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컴퓨터의 능력은 컴퓨터가 발명되기 전부터 충분히 예견되고 있었다. 한동안 수학으로 분류되던 분야가 요즘은 전산학으로 분류되고 있다. 어느 분야에 속하냐에 관계없이 이 주제는 수학적 사고의 능력과 한계를 연구한다는 점에서 매우 흥미가 있다.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수학자 힐베르트(Hilbert)는 어떤 수학적인 명제가 입력으로 주어질 때 이의 참과 거짓을 알아내는 알고리즘을 찾고자 하는 일종의 "수학 자동화"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후 1931년에 이 방면의 연구에서의 금자탑(사실은 수학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철학과 과학 분야를 통털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업적중의 하나)이라고 할 수 있는 괴델(Godel)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즉 그러한 알고리즘은 존재할 수 없음을 증명한 유명한 "불완전성 정리(Incompleteness Theorem)"를 발표한 것이다. 그의 결과를 간단하게 설명하면, 모든 수학적인 논리 체계에 점령하기 위해서는 미묘하고 복잡한 수를 인식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며 무엇보다 인간지능의 수준을 갖추어야 한다. 뉴저지 주 프린스턴 소재 진보연구재단의 천체물리학자로 바둑마니아인 피에트 허트 박사는 “1백년은 지나야 컴퓨터가 바둑에서 인간을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한다.?그는 “만약 합리적이고 지적인 사람이 단 몇 달만이라도 바둑을 배운다면 현존하는 어떤 바둑게임 소프트웨어도 물리칠 수 있고 따라서 체스챔피언 카스파로프처럼 (‘)딥 블루’에게 체스 게임을 지는)비참한 경우를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한다.앞서도 말했듯이 인공지능은 애초에 스스로의 의지로서 게임을 창작해낼 수도 없다. 하물며,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모를) 수천 년 전 어느 인간이 만들어낸 놀이인 ‘바둑’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인공지능 컴퓨터는 도저히 인간을 따라잡을 수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물론, 바둑과 비교하여 보다 간단한 규칙을 가지고 있는 게임인 ‘체스’의 경우엔 컴퓨터가 인간을 이기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마저 늘 컴퓨터의 승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조금 유치한 비교인 듯 보이지만 스스로는 게임을 창작해낼 수도 없을 뿐더러 인간이 창작한 게임의 대결에서도 인공지능보다 인간이 우위에 있는 한, 인공지능은 인간을 대체할 수 없음이 확실해 보인다.5-4. )장 피아제(Jean Piaget)의 인지 발달 이론과 인공지능피아제의 인지 발달 이론: 네 가지 인지발달과정은 감각 운동기, 전조작기, 구체적 조작기, 형식적 조작기이다. 네 단계의 인지발달은 개인의 지능이나 사회 환경에 따라 각 단계에 도달하는 개인 간 연령의 차이는 있을 수 있으나, 발달 순서는 결코 뒤바뀌지 않는다고 가정하고 있다.아울러 각 단계는 주요 행동양식으로 설명될 수 있는 전체적인 심리구조로 특징 지워진다. 각 단계는 전단계의 심리적 구조가 통합된 것이며, 다음 단계의 심리적 구조에로 통합될 준비과정이기도 하다. 이 말은 각 단계의 사고과정은 서로 다르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더욱 복잡하고, 객관적이고, 타인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과 베이징(北京) 올림픽목차(目次)1.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1-1. 문화대혁명의 정의와 배경1-2. 문화대혁명의 발단과 전개과정1-3. 객관적 평가1-4. 문화대혁명의 결과2.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문화대혁명 이후의 중국2-1. 베이징 올림픽2-2. 문화대혁명과 베이징 올림픽1.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1-1. 문화대혁명의 정의와 배경문화대혁명은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중국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주도된 극좌 사회주의운동으로서 사회주의에서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대중운동을 일으키고 그 힘을 빌어 중국공산당 내부의 반대파들을 제거한 일종의 권력투쟁이었다.결과적으로는 마오쩌둥이 사망한 이후, 중국공산당에서 이 혁명에 대하여 ‘극좌적 오류’였다는 공식적인 평가를 내렸다.이러한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상황이 전제되어 있었다.1950년대 말 대약진운동(중국은 제2차 5개년계획이 시작된 1958년 마오쩌둥에 의하여 제기된 ‘사회주의 건설의 총노선’ 주도하에 경제의 대약진과 인민공사를 설립하는 전국적인 대중운동을 전개하였다. 중국의 삼면홍기는 ‘총노선’, ‘대약진’, ‘인민공사’ 등 3가지 경제정책을 상징적으로 일컫는 말이었다. 중국의 발표에 의하면, 제2차 5개년 계획의 첫해인 58년의 농공업생산 총액은 전년비 48% 증가를 보였다고 하고, 그 후 계속 비약적인 신장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성장지수는 과장된 보고에 의한 것이었으며 59년부터 계속 3년간 자연재해가 있었고, 구소련이 60년 이래로 경제 원조를 전면적으로 중단한 데다 중 ·소관계가 악화된 점 등의 원인으로 대약진정책은 중도에서 좌절되었다.)이 좌절된 이후 중국공산당 내부에 사회주의 건설을 둘러싼 노선대립이 생겨났다. 최고지도자였던 마오쩌둥은 대중노선을 주장하였으나, 류사오치(劉少奇)·덩샤오핑(鄧小平) 등의 실용주의자들은 공업 및 전문가를 우선시 할 것을 주장하였다.결국, 1962년 9월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마오쩌둥은 계급투쟁을위안의 “해서파관(海瑞罷官)을 평하다.”에서 비롯되었다. “해서파관”은 경극 대본인데, 그 필자는 사학자이며 베이징 부시장인 우한(吳?)이었다. 이 경극 대본에는 중국 명대의 청렴한 관리인 해서가 백성들을 위해 황제에게 상소했다가 억울하게 파직되었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야오원위안은 우한의 이 대본은 대약진운동을 비판했다가 실각한 펑더화이는 해서로 옹호하면서도 마오쩌둥은 명의 황제 가정제로 빗대어 폄하했다고 지적했다.우한에 대한 비평으로 야오원위안은 일약 상하이 시 혁명위원회의 부주임으로 올라설 수 있었으며, 문화혁명의 이론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는 반 마오쩌둥 계열의 인사들을 가리켜 반 혁명분자라고 공격하면서 “린뺘오 반당 집단의 사회적 기초를 논함”과 같이 독기에 가득 찬 글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계속 문화혁명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젊은 세대는 구세대의 당파주의를 청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선동했다.출처: 서울 정치사회연구소, 문화대혁명의 마지막 생존자 야오원위안(姚文元)의 사망이를 계기로 실권파의 권력기반이었던 베이징 시 당위원회와 삼가촌(三家村)그룹은 마오쩌둥 추종자들의 집중적인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결국 1966년 4월 베이징 시장 펑전(彭眞)이 해임되고, 8월 8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에서 마오쩌둥이 ‘프롤레타리아 문화대혁명에 관한 결정안 16개조’를 발표함으로써 본격적인 문화대혁명이 시작되었다.1966년 8월 톈안먼(天安門)광장에서 백만인 집회가 열렸고, 이곳에 모인 홍위병(紅衛兵)들은 전국의 주요 도시에 진출하였다. 그래서 ‘마오쩌둥 사상’을 찬양하고 낡은 문화를 일소하기 위하여 대대적인 시위를 전개하였다. 학교를 폐쇄하고 모든 전통적인 가치와 부르주아적인 것을 공격하였다. 또한 당의 관료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전국 각지에서 실권파들이 장악한 권력을 무력으로 탈취하였다.그러나 실권파들이 완강히 저항하고 홍위병에 내분이 발생하자, 1967년 1월 마오쩌둥은 린뱌오(林彪) 휘하의 인민해방군이 문화대혁명에 전면적으로 개입할 것을 지시하둥의 절대적 권위가 확립되고, 국방장관 린뱌오가 후계자로 옹립됨으로써 절정에 달하였다. 그러나 1971년 린뱌오가 의문의 비행기 추락사를 당하고, 마오쩌둥에게 충성을 바쳤던 군부 지도자들이 대거 숙청되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문화대혁명이 마오쩌둥의 개인적 권력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1973년 저우언라이(周恩來)의 추천으로 덩샤오핑이 권력에 복귀한 후부터, 문화대혁명의 정신은 여러 측면에서 공격받기 시작하였다. 마오쩌둥을 지지하는 세력은 이데올로기·계급투쟁·평등주의·배외주의를 강조한 반면,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을 지지 세력은 경제성장·교육개혁·실용주의 외교노선을 주장하였다.이에 따라 말년에 마오쩌둥은 두 노선을 절충한 후계자를 물색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결국 문화대혁명은 1976년 9월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화궈펑(華國鋒)에 의해 마오쩌둥의 추종자인 4인방(四人幇:王洪文·張春橋·江靑·姚文元) 세력이 축출됨으로써 실질적으로 종결되었다. 공식적으로는 1977년 8월 제11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그 종결이 선포되었다.1-3. 객관적 평가문화대혁명은 한때 만민평등과 조직타파를 부르짖은 인류역사상 위대한 실험이라고 극찬을 받았으나, 결국 실패로 끝났다. 이 운동으로 약 300만 명의 당원이 숙청되었고, 경제는 피폐해지고 혼란과 부정부패가 만연하였다. 1981년 6월 중국공산당은 ‘건국 이래의 역사적 문제에 관한 당의 결의’에서 문화대혁명은 당·국가·인민에게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 준 마오쩌둥의 극좌적 오류며, 그의 책임이라고 규정하였다.1-4. 문화대혁명의 결과작가 친무(秦牧)는 이러한 문화대혁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이것은 정말이지 전례 없던 한 차례 큰 겁난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어 고생을 겪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원한을 품고 죽었으며, 얼마나 많은 가정이 사분오열(四分五裂) 되었는가? 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깡패가 되었으며, 얼마나 많은 서적이 불태워졌고, 얼마나 많은 명승고적이 파괴당했으며, 얼룽장 성의 성장이었던 리판우(李范伍)는 단지 마오쩌둥과 닮았다는 이유로 홍위병들에 의해 난폭하게 삭발을 당하였다. 이러한 말도 안 되는 억울한 시달림을 당한 후에도 리판우는 여전히 몇 시간이 넘는 동안 고개를 숙인 채로 서있어야만 했고, 그럼에도 분노한 홍위병들은 그의 잘린 머리카락을 다시 한 번 잘라 목과 셔츠 속에 집어넣었다고 한다.문화대혁명은 10년 동안 중공을 혼란에 몰아넣었고, 장기간 대학을 폐쇄하여 교육 과학 기술 등 전문분야의 지도를 당성이 강한 비전문가가 장악하여 전문성보다 당성을 중시하였다. 따라서 전문분야의 지식수준이 저하되었고 노쇠한 전문가의 후계자를 양성하지 못하여 사회 발전에 큰 장애를 초래하였다. 그 뿐 아니라 문화대혁명으로 피해를 본 부류와 이를 통해 부상한 그룹의 대립문제, 구간부의 복직으로 인한 관료포화 상태 등은 중공의 당면문제로 아직도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앞서도 반복해서 얘기했듯이 중공은 81년 6월 중국공산당 제11기 제6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건국이래의 몇 가지 역사문제에 관한 당의 결의를 통하여 문화대혁명을 평가하면서 이는 당 국가 인민에게 건국 이래 가장 심한 좌절과 손실을 가져다 준 모택동의 극좌적 오류이며 그의 책임이라 규정하였다.2.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문화대혁명 이후의 중국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중국은 발 빠르게 변화하던 당시의 세계에서 10년을 뒤처지게 되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한 기자가 인터뷰한 문화대혁명 10년의 혼란을 몸소 격은 저명한 정치평론가 롼밍 선생의 말처럼 당시 중공의 일당 독재 통치는 중국국민에게 거대한 손상을 조성하였고, 역대 중공 지도자들의 천안문 민주화 운동 및 파룬궁에 대한 탄압사실로 알 수 있듯이, 현재까지도 공산당의 폭정의 본성은 변하지 않은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선생은 공산당 일당 독재라는 정치제도가 변하지 않는 한 중국국민이 받을 상처는 그치지 않을 것임을 지적하였다.2-1. 베이징 올림픽이러한 중국이 이제 2008년이면 전 세계인들을 대상으로 한 지구촌 축제인 올림픽을 제대로 개최해내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중공 정권은 지금까지도 국민이 공개적으로 ‘문화대혁명’을 주제로 토론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관영 매스컴도 이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고 봉쇄하고 있다. 또한 오늘날에도 중국의 정치 환경은 매스컴을 봉쇄하는 독재제도이기 때문에 중국국민이 언론의 자유를 쟁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비단 언론뿐만이 아닌 사회적 여러 측면에서 자국민들을 탄압, 봉쇄하고 있는 이러한 중공 정부에 대한 세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것도 사실이다.캐나다 유명 유태인 학자이며 ‘파룬궁박해 진상조사단(CIPFG)’ 북미지부 단장인 랍비 루벤 벌카 박사가 캐나다 국회에서 연합성명을 발표, 2008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CIPFG는 이날 발표한 연합성명서에서 “올림픽과 반인류범죄 행위가 중국에서 동시에 발생하게 할 수 없다”며 “중공 당국이 올해 8월 8일까지 3가지 요구에 만족할만한 답변을 하지 않을 경우, 전세계 범위에서 정의적인 역량을 연합해 2008베이징 올림픽을 보이콧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CIPFG가 제시한 3가지 요구는 첫째, 감금되어 있는 파룬궁 수련자들을 석방할 것. 둘째, 파룬궁 수련자들의 인권 수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변호사와 정의인사들에 대한 박해를 중단할 것. 셋째, 파룬궁 수련자 생체 장기적출 의혹과 관련해 국제사회의 독립적인 조사요구를 수용할하는것이다.지난 해 7월 6일, 캐나다 전 아·태담당 국무장관 데이비드 킬고어, 캐나다 국제인권변호사 데이비드 메이터스와 CIPFG 단원들로 구성된 ‘캐나다 독립조사단’은 수 개월 동안의 조사를 거쳐 보고서를 발표, 파룬궁 수련자들을 상대로 한 중공 당국의 생체 장기적출 만행에 대한 증거들을 제시하며 조사단의 독립조사를 요구했지만 중공 당국은 현재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랍비 루벤 벌카 박사는 “우린 선택의 여지가 없다. 지금 우리가 나서지 않는다면 이러한 처참한 행위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우리의 양심은 이를했다.
1. 들어가기 - 파놉티콘의 소개파놉티콘panopticon(또는 판옵티콘)은 영국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일종의 감옥 건축양식을 말한다. 파놉티콘의 어원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pan'과 '본다'를 뜻하는 'opticon'을 합성한 것으로 벤담은 소수의 감시자가 모든 수용자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감시할 수 있는 형태의 감옥을 제안하면서 이 말을 창안했다.-표1- 위키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파놉티콘’ 검색위와 같이 파놉티콘을 ‘검색’하여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알아보고자 ‘노력’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파놉티콘은 그 시작과 역사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이미 우리 사회 속에 만연하여, 이처럼 관심을 가지고 찾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 있는 듯 없는 듯(내 삶에 영향을 미치는 듯 미치지 않는 듯) 모른 채 그냥 지나칠 위험이 크다.이와 비슷한 생각을 폴란드 출신의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그의 저서인 「자유」에서 ‘자유’를 ‘공기’에 빗대어 말하였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자유’란, 우리 주위에 만연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지는 탓에 아무도 그것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의문을 가지려 하지 않으므로 마치 ‘공기’와도 같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우리가 분명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다면 그것이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또한 그는 이 책에서 자유와 부자유 사이의 대립에 대한 통찰을 보여줌에 있어 ‘파놉티콘’을 예로 들기도 한다)「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산업혁명과 함께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 자본주의 공장제에서 노동자를 감시하면서부터 시작된 감시와 역감시(혹은 감시에 대한 반발)에 대한 문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범위가 점차 넓어져 이제는 우리 생활 전반에까지 스며들어와 있다.학생 L이 있다. 어느 날 아침 L이 등교를 위해 버스를 탔다. 버스 회사의 운용과 기사의 운행을 위해 설치된 차내 폐쇄회로상자에 넣으면 추첨을 통해 푸짐한 상품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L은 편의점 직원이 건내준 종이와 펜을 받아 그의 이름과 주소, 집전화번호, 휴대전화번호, 혈액형 등을 적어 상자에 넣는다. L은 이제 수업을 듣기 위해 교실로 향한다. 수업이 끝나면서 L의 선생님은 과제를 내줄테니 정해준 날짜까지 자신의 전자메일로 보내달라고 한다. L은 집으로 와 과제를 마치고 선생님께 전자메일을 보내기 위해 전자메일 서비스 사이트를 찾아 회원가입을 통해 전자메일을 만든다.(-그림1- 참조)-그림1- 실제 국내 한 포털 사이트의 회원가입 양식이처럼 학생 L은 자신의 의도했건 하지 않았건 간에 자신의 모습과 정보를 불특정 타인에게 계속해서 전달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의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에서 주인공이 일하던 공장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노동의 현장을 사장에게 보여야 하는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영화에서 사장은 오늘날 cctv와 같은 장비를 통해 사무실에 앉아 공장 내의 누가 어디서 뭘 하는지를 모니터할 수 있다) 또한 학생 L이 곳곳의 cctv에 촬영됨으로써 그의 행적이 기록된다는 점은 영화에서 노동자들이 공장 내에서 카드를 사용하여 움직이고 마찬가지로 이 기록을 사장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2. 내가 겪은 파놉티콘위에서 예로 들은 학생 L의 짧은 하루 안에서도 보다시피 수많은 감시의 덫이 놓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은 버스, 편의점, 전자메일 등 단지 몇 가지 예에 불과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은 특정한 누군가만이 아닌 우리 모두를 둘러싸고 있다.처음 말했던 것처럼, 공기와 같이 만연한 이 사회의 파놉티콘, 즉 무분별한 일방적 감시의 행태를 조금 더 관심을 기울여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까? 나아가 자신이 직접 경험했(지만 그것이 파놉티콘인지는 잘 알 수 없었)던 파놉티콘을 떠올려 본다면 그것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깊게 생각해볼 수 없도록 설계되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간부는 병사의 사생활을 내무 검사, 상담, )계층별 간담회, )마음의 편지 등의 방법을 통하여 샅샅이 검사하고 들여다볼 수 있지만 이와는 반대로, 병사에게는 간부의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다.또 하나의 예로 초소에 설치되어 있는 무인 카메라를 들 수가 있다. 애초에 설치 목적은 초병이 식별할 수 없는 외부 환경 또는 적에 대한 감시를 위한 것이었으나, 이는 오히려 초병의 근무 상태를 간부가 살피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초병이 근무지를 이탈하지는 않았는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수상한 행동을 보이지는 않는지, 근무 중 금지되어 있는 흡연을 하지는 않는지, 근무 태만 혹은 근무 중 졸음에 빠지지는 않았는지 등에 대한 모습들을 몇 대의 카메라가 찍어주는 영상을 통해 간부는 멀리서도 초병들을 감시할 수 있다. 실제로 이렇게 초소 근처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근무 중 불성실한 태도를 보인 병사들이 간부에게 적발되는 사례는, 부대 내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다. (오죽했으면 수십 년 째 병사들 사이에 ‘한 명은 앞의 적을, 또 다른 한 명은 뒤의 아군 간부를 경계해야 한다’는 농담이 돌고 있겠는가?)마지막으로 내가 근무했던 부대에는 출?퇴근을 통해 군복무를 수행하는 상근예비역들이 있었는데 간부의 입장에서는 일반 현역 병사와는 달리 상근예비역들에게만큼은 퇴근 이후의 생활에 대해 통제를 가할 수가 없었기에 ‘전화점호’라는 방식을 사용했다. 즉, 점호 시간 이후부터 22시까지 불시에 집으로 전화를 걸어 상근예비역 본인과 통화를 하는 방법이었다. 그 때 간부의 전화를 받지 못했을 경우에는 탈영 또는 그와 비슷한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는 판단 하에 징계를 내렸다. 이처럼 전화를 받는 상근예비역의 입장에서는 언제 자신을 찾는 간부의 전화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퇴근 이후에도 정해진 시간 동안에는 운동, 심부름, 심지어는 씻는 것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생활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이처럼 사회와의 격리를 통해 폐쇄된 집단적 사상교육 또한 중요하게 진행되는데 군에서 가르치는 사상과 반대에 서있게 될 경우엔 병사로서 큰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본 영화에서도 비춰지는데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던 주인공이 우연한 기회에 반反자본주의, 파업 시위대의 선두에 서게 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시위대의 목표인 사회의 변화가 아닌 경찰 권력에 의한 시위대의 해산과 주인공의 처벌이다. 마찬가지로 군대에서도 철저한 사상교육을 통해 집단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정신전력을 갖추려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파놉티콘의 간부(장교 또는 부사관)를 통해 위에서 말한 모든 감시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지금까지의 이야기, 군대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파놉티콘은 충분히 피감시자에게 위력적이며 통제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러한 파놉티콘의 예가 군대와 같은 폐쇄적이고 획일적인 집단 내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벤담이 애초에 파놉티콘을 계획하면서 병원, 학교, 공장 등 감옥이 아닌 많은 예를 들며 그 적용 가능성을 언급했듯이 이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것일 뿐 주변에 너무나 만연하다.다음은 교내 신문인 서강학보의 한 신문을 펼쳤을 때 접할 수 있었던 기사다. 파놉티콘의 예를 들기 위해 일부러 관련 주제어를 찾은 것이 아니라 우연히 펼친 신문에서 발췌한 내용들이다.교내 경비시스템 무인 경비 체제로 변경학교 측은 안전한 교내 환경 조성을 위해 9월부터 경비시스템을 전면 변경했다. 이에 따라 무인경비시스템이 추가로 설치되고 대다수 경비원들이 교체됐다. 각 건물 입구에는 출입통제시스템이 설치되고 곳곳에 무인경비시스템이 확대된다. 강의실을 비롯하여 교수연구실, 행정실 등에는 카드나 지문으로 문을 개폐하는 장치를 총 1,405대 갖추게 됐다. 43대에 불과했던 CCTV도 305대로 늘어나며 360도 회전이 가능한 스피드돔 카메라와 고화질박스카메라 25대가 건물 외곽 및 주요도로, 경비 음영지역에 설치된다. …(중략)… 인사총무팀 ○○ 과장은 2일에 밝혀졌다. 이 시스템은 손으로 일일이 검색해야했던 이전과는 다르게 키워드를 입력하면 특정 인터넷사이트의 게시물과 댓글, 첨부파일을 실시간으로 분류·분석한 뒤 저장한다. …(중략)… 경찰의 비밀사찰 논란과 함께 인터넷을 통한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군 정보기관으로 군인에 대한 정보수집과 군 지휘부 감찰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기무사가 사이버방호사령부 창설을 기점으로 민간에까지 감시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기무사는 지난 1월부터 7월까지 민주노동당 당직자와 노조 간부, 그림책 작가 등 민간인을 24시간 사찰한 전적이 있다.-표3- 서강학보 제 555호 2009년 9월 14일 자 3면 기사 中첫 번째 기사(-표2-)에서 학교는 학생 안전 강화와 그에 따른 비용 절감을 내세우며 교내의 무인감시카메라를 증가 설치하는 내용을 선전하고 있다. 물론 학교 측의 입장에서는 교내 경비도 강화하고 더구나 이전에 비해 지출하게 되는 경비 비용을 줄일 수 있어 경제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교내 즉, 캠퍼스는 학생과 지식이 만남을 갖는 신성한 장소이지 잠재적 범죄대상지역이 아니다. 그럼에도 학교는 경제 논리에 따라 지식의 공유와 학문의 수양을 목적으로 등교하는 대다수의 학생을 잠재적 범죄자로 간주하고, 나아가 교수연구실, 행정실 등을 출입하는 사람들에게는 카드와 지문이라는 개인정보까지 요구하고 나선다. 따라서 학생은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혹시나 교내의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사고와 관련하여 자신의 모습을 천 대가 넘는 카메라에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따라서 두 번째 기사(-표3-)는 그리 놀랄 것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학문의 장으로서 기능해야 할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감시와 개인정보의 요구가 사회로 확대된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즉, 국가(학교)가 안보(교내 경비)를 위한 목적으로 개인(학생)의 정보를 필요로 한 것일 뿐이다.3. 파놉티콘이 권력을 만났을 때위에서 살펴본 권력을 가진 개인 또는 집단의 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