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서양철학 차이동양철학은 흔히 자연과 인간의 심신, 내부,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등..에 대한 것에 중점을 둡니다.자연이라는 면에서 보면 동양철학은 자연속에서 큰 이치나 사상을 발견해내고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으로 풍류를 즐기고 그 속에서 많은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렇듯이 동양철학자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거대한 자연에 대해서 숭배하기도 했고 그 자신 또한 자연에서 태어났으므로 자연속에서 살아가고자 했고 그 속에서 많은 지식과 깨달음을 얻었죠. 그래서 동양철학자중 노자는 무위자연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고 그 자신또한 자연을 그런 시각으로 보았으며 약간은 다르지만 공자와 증자등은 인간과의 관계. 교우관계나, 군신관계, 부부관계등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그들의 사상의 일부는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쳐서 우리들의 선조들의 삶에도 그들의 사상이 물들어있었습니다.반면, 서양철학은 분석적이고 지극히 해석적입니다. 동양철학에는 과학이라는 것이 크게 자연을 파괴하지 않은 반면 서양철학에서는 과학이라는 원리도 포함되어 있고 자연의 원리를 거스르면서 그 원인과 이유를 밝혀내는 행위를 했습니다. 산업화를 이루어낸것도 서양이고 정보화의 기초를 설립한 것도 서양입니다. 그렇게 서양철학에서는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편의와 외부, 그리고 경제같은 것을 주로 했으며 일부 서양철학자들 중에도 훌륭한 사람들과 인간관계에 대해 연구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유 또한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였고 자연을 연구해서 인간이 편하게 이용하려고 하는 목적이 있었습니다.그렇게 서양철학과 동양철학은 자연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입장에서도 차이가 있었고 인간의 내면을 연구했느냐 외면적인 면을 연구하였느냐의 차이 또한 있었다. 그리고 그 목적 또한 달랐으나 제 생각으로는 이 두가지 사상이 혼합되어 새로운 사상과 철학이 설립되었을 때 이 세상이 더욱 좋은 세상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서양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이 해부하는 분위깁니다.사과가 떨어지는 원리는 무엇이고 이놈이랑 이놈다.자연속에서 동화되려고 했습니다. 자연중심입니다.2. 형이상학라틴어 metaphysica의 역어(譯語)로 세계의 궁극적 근거를 연구하는 학문.과학은 어떤 특수한 영역의 존재자(存在者)를 구성하는 원리를 탐구한다. 예컨대 경제학은 경제사상(經濟事象)을 성립시키는 경제법칙을 연구하고, 물리학은 물리사상을 성립시키는 물리법칙을 연구한다. 특수성은 과학적 인식의 본질에 의거한다. 과학은 어떤 특수한 시야(視野), 즉 영역(領域)을 고정시킴으로써 그 대상과 방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일체의 존재자(세계)의 궁극적 근거를 연구하는 것이 바로 형이상학이다.형이상학은 영역적 ?부분적인 지식이 아니라 보편적 ?전체적인 지식을 구한다. 이것은 특수과학의 지식의 총화도 아니고 특수과학의 지식을 성립시키는 주관적인 근거(인식론적 근거)의 지식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자에 근거를 부여하는 궁극적 실재근거(實在根據)의 지식이다. 따라서 특수한 영역과 시야를 넘은 초월의 시야에서 얻어지는 초월적 지식이다.이 초월의 시야는 인식하는 인간이 자기의 존재근거에 돌아가는 근원환귀(根源還歸)의 길에서 얻어진다. 시간을 초월한 영원도 거기서 알게 되며, 인간존재가 궁극적으로 뿌리내리는 근원도 거기서 발견할 수 있다.형이상학을 학문으로서 최초로 확립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이다. 그는 존재자에 관하여 보편적으로 그 제1의 원리 ?원인을 탐구하는 학문을 ‘제1철학(pr厚t曉 philosophia)’이라 부르고, 그 학문체계의 최고위에 두었다.그것은 일체의 궁극적 실재근거로서의 신의 지식이기도 하고, 그와 같이 고귀한 지식으로서 ‘지혜(智慧:sophia)’라고도 불렸다. ‘형이상학’이라는 명칭은 이 제1철학에 관한 책이 1세기의 안드로니코스에 의한 전집(全集) 편찬에서 자연학(自然學:physica)에 관한 책 다음에 놓였으므로 ‘자연학 다음의 책(ta meta ta physica)’이라고 불린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이 명칭은 생성소멸하는 자연물(自然物)에 근거를 부여 거기서 한층 심화 발전하였다.그러나 근대과학의 성립은 이 고대, 중세를 일관하는 통일적인 세계상(世界像)을 파괴하고, 특수과학의 방법에 따라 얻어지는 것만이 유일한 실재인식(實在認識)으로서 인정받게 되었다. 이것은 형이상학의 붕괴이며, I.칸트는 이론적인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을 부정하였다. 신화적(神話的)?형이상학적 ?실증적(實證的)이라는 3단계를 거쳐서 지식이 발전한다고 보는 A.콩트의 실증철학(實證哲學)은 이러한 근대의 사고방식을 대표하는 것이다.오늘날에는 과학을 지식의 모범으로 보는 근대의 사고방식에 따르는 사람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을 극복하여 철학을 과학과는 다른 근원의 지(知)로 보는 철학자도 많아졌다. 동시에 형이상학은 그 명예를 회복하고, 형이상학의 역사는 새로운 의의를 획득하기에 이르렀다. 금세기에 형이상학을 부흥시키는 데 공헌한 사람은 H.베르그송, M.하이데거 등이다.3. 인식론인식론은 이성비판이나 명제의 논리학적 분석 등의 수단을 통해 어떠한 주장의 진리치를 판별해 내는 기능을 합니다. 또 인식론은 존재가 아닌 이성의 관점에서, 무엇이 어떠한 조건에서 옳고 어떠한 조건에서 틀리는지를 식별해 내려고 합니다. 즉 존재론처럼 어떠한 존재자를 가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어떤 명제의 판별 조건과 그것이 참이 될 수 있는 조건을 탐구하는데, 이렇게 되면 인식론의 탐구 대상은 '객관적으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학문적인 비판의 방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에 대하여 (인식론의 대표주자인) 칸트가 "이성이 이성을 비판한다"라고 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따라서 인식론은 그 주된 관심이 객관적으로 있는 존재자에 대한 주장이 아니기 때문에 자연과학과 별로 충돌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인식론에서도 객관적인 존재자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보이지만, 그 주된 탐구 대상은 무엇이 존재하는지, 그것이 어떠한지 등을 판별하는 인식방법, 인식기능 자체에 있기 때문입니다.철학의 일부분이며 인식·지식의 기원·구조·범위·방법 등을 탐구하는 학문철학적 고찰은 고대나 중세에서도 신의 인식으로서 행하여지기는 했으나 인간 주체의 인식 문제로서 철학의 중심부문을 차지하게 된 것은 근세에 이르러서이다.J.로크의 《인간오성론(人間悟性論)》은 이 인식문제의 전환점에 선 것이었고, D.흄 등의 영국 경험론에 의하여 인식론의 근대적 성격은 더욱 명확하게 되었으며 I.칸트에서 대성되었다. 칸트의 인식론은 인식을 사실문제로서가 아니라 권리문제라고 한 점 때문에 '인식비판'의 의미를 가진다. 인식론은 형이상학과 더불어 철학의 2대 부문을 이루지만 양자의 관계에 관하여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로크, R.데카르트, 칸트 등에 의하면 인식론은 형이상학에 우선하고 스피노자, G.W.F.헤겔, A.N.화이트헤드 등에 의하면 그와 반대라 한다. 역사적 또는 문제적으로 본다면 인식론에는 영국 경험론과 마찬가지로 인지(人知)의 근거로서의 경험을 중시하는 경향(경험론)과 그것을 이성 기타의 초경험적 계기에서 구하는 이성론의 방향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그러나 지각과 감각의 상대성이 언제나 인식론의 근본문제가 되는 것을 보아도 명확한 것처럼 경험론은 회의주의(懷疑主義)·상대주의로 흐르기 쉬우며, 또 논리·수학 등의 필연성을 심리주의적으로 오해하기가 쉽다. 그와 반대로 이성론은 검증 불가능한 독단적 사변(思辯)이나 가정으로 변하기 쉽다. 칸트는 경험을 인식의 발생과 성립의 근거라고 인정하면서도 직관(直觀)·오성(悟性)의 선천적 형식에서 학문적 인식의 보편타당성의 근거를 구했다. 주어진 다양성은 외적인 경험으로 부여되지만 그것은 주관의 형식에 의해서 통일되어 현상계가 된다. 칸트는 또 기계적 자연법칙이 지배하고 있는 이 현상계를 직관이나 오성이 미칠 수 없는 예지계(叡智界)의 물자체(物自體)와 대치(對峙)시켜서 선행하는 경험론과 이성론의 종합을 시도하였다. 인식론적 입장에는 이것 외에도 실재론과 관념론의 대립도 볼 수 있다.칸트 이후, 독일 관념론이 발전되면서 다시금 형이상학이 철학에서 중심과제가 되었는데 현대에는 신(新)칸트학파·현상학파·프있으면 방법적 회의(懷疑)로 배제해 버리고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진리로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에 도달하였다.제3기에서의 여러 가지 입장을 본다면 초기의 실증주의로서는 E.마하, R.아베나리우스, J.듀이 등이 있고, 일원론적 실재론에는 G.E.무어, 신실재론자, 초기의 J.러셀, 화이트헤드나 S.알렉산더의 인식론이 있으며, 이원론적 실재론에는 비판적 실재론자들이 있다. 현대는 이 밖에도 현상론적 또는 관념론적 경향의 인식론이 있지만 어찌되었건 실증주의는 변증법적 유물론과 나란히 주류를 이룬다 해도 좋다. 그러나 그 반면 화이트헤드나 알렉산더 같은 사람을 제외하면 앞에서 예를 든 사람들은 형이상학을 배척하였다.4. 윤리학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규정하는 규범 ·원리 ·규칙에 대한 학문.인간은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회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사회는 또한 일정한 생활방식을 가지고 있으며, 개인은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 사회가 갖는 생활방식에 따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다. 이 경우에 생활방식으로서 습속(習俗)이라든지 도덕 ·법률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습속이나 도덕 ·법률은 다 같이 규범적(規範的)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습속이 무자각적인 데 대하여 도덕이나 법률은 자각적인 행위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도덕은 행위의 내면성(內面性)에 치우치고 법률은 행위의 외면성(外面性)에 치우칠 우려가 있으나 양자는 상보관계(相補關係)에 있다고 할 수 있다.윤리학은 일반적으로 인간의 행위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와 규범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윤리’의 ‘윤(倫)’자에 대한 사전적인 풀이를 보면 무리[類] ·또래[輩] ·질서 등 여러 가지 뜻이 있으며, ‘이(理)’자에는 이치 ·이법(理法) 또는 도리 등의 뜻이 있다. 물리(物理)가 사물의 이치인 것처럼 윤리는 인간관계의 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유교에서는 대표적인 인간관계로 부자(父子) ·군신(君臣) ·부부(夫婦) ·장유(長幼) ·붕우(朋友)라고 표현되는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