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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로크&로코코
    바로크 로코코 시대B반 6444864 김가영바로크(17세기)1.문화사적 배경 17세기 유럽사회는 신앙면, 정치면, 사회면에서 동요가 심했던 시대로 사회의 혼란 속에서도 귀족들은 권위를 강조하고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며 부정현한 것, 진귀한 것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졌기에 이를 예술양식으로는 바로크(Baroque)라 부른다. 바로크란 '이그러진 진주'를 의미하는 스페인언어로 'barrucca' 혹은 포루투칼 언어로 'barroco'에서 연유되는 것이다. 1661년 루이 14세의 친정이 시작되면서 권력과 모든 계층에 왕을 중심으로 하는 절대왕정제도가 확립하게 되었다. 루이 14세의 궁정은 모든 문화의 중심을 차지하여 전 유럽에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미치게 하였으며 특히 왕비와 궁정의 여자들이 패션 리더를 담당하였다. 넓은 국토와 길드제도에 의해 얻어진 고급 견직물과 레이스, 그리고 발달된 상업도시는 다시 프랑스를 유행의 중심을 장악케 하였고 패션 잡지인 커스튬 프레이트(Costume Plate)도 제작, 판매되었다.바로크 예술의 특징 – 과장되고 복잡하며 감각적인 성향으로 곡선을 예술적 표형으로 이용해 나갔다. 바로크 스타일 – 르네상스 시대의 정적이고 조화적인 균형의 미를 깨고 움직임이 있는 격정적인 미의 이상을 추구하였다. 그래서 바로크 양식은 자유분방한 율동감이 곡선표현으로 나타났다.2. 복식사적 배경 루이 14세 자신이 패션에 관심이 있었으며 유럽 각 국의 사람들은 프랑스로부터 매달 보내지는 패션인형(fashion doll)을 고대하고 있었다. 이는 상업 목적에서 생겨난 것으로, 정장, 양식 복장, 여행복, 실내복 등의 새로운 모드를 입은 패션인형은 런던을 시작으로 유렵 각지에 내보내져 새로운 유행을 전했다. 근대 시민복의 발달을 가져온 17세기는 네덜란드의 영향을으로 남자의복에 있어서 기능성, 활동성 등 시민복의 성격을 띠게 되었고 후기에는 바로크 스타일 양식이 프랑스 궁정에서 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굽이치는 물결모양의 자유스러운 곡선과 동적인 느낌은 의tle style)남자의상여자의상바로크의 과장된 형태는 신발에서도 보이는데 부츠의 입구가 깔때기 또는 나팔꽃 모양으로 넓게 벌어지고 레이스 장식을 하거나 장미꽃, 토끼모양의 리본 장식을 발등에 하였다. 남자신발) 의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변화 - 17세기, 짧은 오드 쇼오스 유행 - 무릎 위 까지 오는 부츠 바지가 길어짐에 따라 짧은 부츠를 신음 - 1660년대 통이 넓은 부츠가 기사들 사이에서만 착용 일반인들에게는 루이 14세형이라는 실용적인 슈즈가 보급 - 17세기 중엽 옥스퍼드라고 하는 일반 실용화가 유행 여자신발) 처음으로 여자의 발이 스커트 단의 밑으로 나와 눈에 띄게 됨 - 작은 발 선호 - 리넨으로 된 테이프로 발을 조여 작은 구두에 억지로 밀어 넣어 신음 - 하이힐 : 앞끝이 적당히 뾰족, 섬세한 곡선, 높고 발등 부분은 끈 또는 버클로 조절 - 패튼 : 일종의 오버슈즈인 나막신, 비가 오거나 길이 나쁠 때 착용장신구 – 남자들의 수대, 여자들의 에이프런 착용이 일반화 되었으며 손수건, 토시, 부채 등을 들고 다녔는데 이는 장식의 목적과 함께 귀한 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과시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 장갑 : 중요한 장식품, 대개 부드러운 가죽으로 만듬 - 손수건 : 중요한 장신구, 될 수 있는 대로 남의 눈에 띄게 사용 - 볼드릭 : 남. 오른쪽 어깨에 왼팔 밑으로 지나는 띠. 여기에 칼을 참 - 17세기 후반 얼굴에 패치 붙이는 것이 유행 ; 태피터, 벨벳 헝겊을 둥금 모양, 별모양, 초생달 모양으로 오려서 풀로 붙이는 장식품.3. 머리형태 남자머리) 가장 여성스럽고 풍성한 모양으로 나타남. 초기의 머리모양은 깃의 모양이나 높이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 초기 : 목 뒤쪽이 높고 빳빳하게 뻗친 위스크 칼라가 한동안 유행 – 짧은머리, 모자사용이 줄어듬 17세기 전반을 통해 수염을 깨끗이 면도하는 것이 일반적이였으나 1630년대 이후 콧수염과 턱수염을 길렀다. 콧수염에 왁스를 발라서 좌우를 벌리는 형태로 고정시키는 예도 있었다. 17세기 높은 빳빳한 형태의 모자 사용. 후기 가발 성행 후 크라운위 꼭대기가 평평하고 낮아졌으며 챙은 넓어짐 풍성한 머리형이 유행함에 따라 모자의 넓은 팽은 삼각형으로 휘어짐.여자머리) 칼라 둘레의 영향을 받으며 변화 - 17세기 초 위스크 칼라 유행 - 머리 속에 가발을 넣고 포마드로 굳혀서 높이 빗어 올린 후에 보석과 진주로 장식된 아름다운 핀을 꽂음 - 플랫 칼라 등장 - 자연스럽게 컬을 해서 어깨위로 늘어뜨려 풍성한 의상과 잘 조화 시킴. - 루이 14세 시대, 귀족적인 의상 유행 - 퐁탕주라는 우아하고 기교적인 머리형이 나타남(딱딱한 리넨이나 레이스를 주름잡아 철사로 층층이 세운 형으로 탑처럼 높이 올림) - 1650년대 : 금,은,철사와 빛을 사용하여 양 옆으로 머리를 불룩하게 하거나,타래머리를 사용하여 컬된 머리가 숱이 많아 보이게 하는 머리형 - 1670년대 : 컬이 잘 된 머리로 전체를 화려하고 커다랗게 부풀린 머리형 - '꽃밭' 또는 '양배추형' 등의 이름으로 불림 - 귀부인들은 의상만큼 머리형을 중요시, 전용 미용사를 둠로코코시대(18세기)1. 문화사적 배경 루이 14세의 만년으로 거듭되는 전쟁으로 인한 국고의 빈궁으로 권력은 쇠퇴해졌다. 베르사이유 궁전의 호화로움, 권력의 압박, 엄한 에티켓 등의 엄격한 생활에 싫증난 사람들은 편안하고 세련된 행동으로 소수위 사람들과 교제를 추구하는 살롱(Salon)문화를 만들었고, 루이 15세 때에는 더 발전하여 로코코 양식을 출현시켰다. 로코코(Rococo)라고 하는 것은 로카일(rocaille)이라 불리는 조개껍질의 세공에서 나온명칭이다. 실내장식과 가구 디자인에서 얻어진 양식으로 조개껍질의 흐르는 듯한 곡선구성에서 연유되었으며 밝고 화려하며 세련된 귀족 취미의 문화를 가리키는 것이다. 2. 역사적 배경 18세기는 로코코 양식시대와 프랑스 혁명기 및 총재정부시대로 나눌 수 있음. 로코코는 로까이유에서 옷 것으로 로까이유는 르네상스 이후 정원의 인공암굴의 장식이나 패각장식을 의미함. 루이 14세 시대는 궁정을 리본, 루프 등의 흐르는 듯한 장식, 환상적인 대형 머리, 가느다란 몸통, 완전히 부풀린 스커트 등에서 우아한 에술을 만들어냈다.로코코 시대 대표적 인물 퐁파두르 마리 앙투아네트 엘리자베스 1세남자의상 아비 아라 프랑 세즈 아비 아라 프랑 세즈는 차츰 여성적 경향이 없어지면서 기능적이고 직선적 으로 되며 세련되어 졌다. 궁정의 공식 예복쥐스토코르 : 바로크 시대인 1670년경 부터 실용적인 의상으로 확립된 것으로, 특징은 꼭 끼는 허리와 뒤쪽으로 아름답게 퍼진 웨이스트 플레어가 있는 재킷 전신으로 아직은 코트의 성격을 많이 띄고 있다. 베스트 : 바로크 시대의 상의로 착용했던 푸르푸엥이 쥐스토코르 안에 입혀진 것으로 쥐스토코르 밑에 반드시 베스트를 받쳐 입는 것은 전대와 다름이 없다. 퀼로트 : 다리에 꼭 끼는 짧은 바지로 쥐스토코르와 함께 등장하였다. 그 기본형은 바로크 의상과 별로 차이가 없었으나 1830년대부터 차차 길어져 무릎아래까지 내려왔다.파니에 : 16세기 초 스페인 모드에 기원을 두고 있는 베르튀가뎅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스커트의 실루엣을 꾸미는데 사용되었다. 로코코 시대를 통들어 파니에는 언제나 커져가는 경향이 있다. 1780년대 심각한 혁명의 기운 가운데 부풀린 정도가 축소되어 갔다.코르셋 : 웨이스트를 가늘게 보이기 위한 의복으로서 슈미즈 위에 입었다.로브 아 라 프랑세즈 가장 대표적인 의상으로 가슴은 V자로 벌어지고 스커트는 A자로 벌어졌다.로브 아 랑글레즈 1778년 경에 나타난 새로운 모드로서 꼭 끼는 동체와 넉넉한 스커트가 원피스로 된 정기에서 부터 입기 편한 점을 강조한 단순성이 혼합되어 나타났다.로브 아 라 카라코 투피스 형의 로브로 허리까지 오는 상의가 붙거나 허리선에 페플럼을 붙여서 투피스를 입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것 등 여러가지가 있다.로브 형식은 퀴드크랭을 재료로 썼는데 18세기 파니에의 마지막 스타일이었다. 간소하고 실용적이었으며 재료도 화려 하지 않은 암색계 샤틴을 썼다.4. 머리장식 - 전반부에서는 바로크 시대처 적당한 모자로 애용- 루이 15세때 낮은 크라운이 부착되어 가발의 단순한 장식품으로 변형 콕트 햇 – 군인들이 주로 사용 언콕트 햇 – 일반 남성. 챙이 평평하고 크라운이 낮음30로코코 시대 후반 남자 머리 모양로코코 시대 후반 남자 모습여자) 가장 흥미를 집중시키는 스타일 연출 - 18세기 초까지 풍탕주형이 전성 - 루이 14세 상망 후 퐁파두르형 이라는 낮은 머리 형 유행 - 퐁파두르형 : 머리카락을 부풀리지 않고 뒤로 빗어넘긴 우아하고 깔끔한 머리형 때로는 머리 위에 조화나 리본, 레이스 캡, 깃털 등의 섬세한 장식 사용 대형의 파니에와 조화를 이루면서 18세기 중엽까지 애호 - 1760년경, 점차 높아지고 거대해져 갔으며 그 위에 장식이 높이 쌓여짐. 예술적이고 환상적인 것의 극치로 이름. 역사상 가장 거대한 머리형 연출 모자 : 머리형의 복잡으로 그리 중요시되지 않음. 흰 린넨이나 실크의 작은 킵이 생겨 한동안 유행. 보닛 샤포 – 폭넓은 챙을 가진 약식 모자. 1780년대 유행 칼레쉬 – 리넨이나 실크를 주름잡아 포장마차처럼 만든 보닛형의 모자4. 신발 - 18세기초까지 앞이 네모지고 넓은 구두가 유행 - 점차 앞 끝이 뾰족하고 길어짐. - 18세기 중엽후 굽이 낮아지기 시작하면서 앞부분이 둥글어지다가 1790년대에는 뒷굽이 없는 평평한 형이 유행 - 펌프스 : 18세기 후기의 남자 신발로 가벼운 무용화 굽이 아주 낮거나 없으며 부드러운 가죽이나 청으로 만들었고 버클에는 다이아 몬드나 그밖의 보석, 진주로 장식, 일반용은 버클 대신 끈을 달음 - 귀부인들은 될 수 있는대로 자기 발보다 작은 구두를 신음 구두 뒤꿈치의 우아한 곡선과 높이의 조화는 구두의 가치를 결정 - 18세기 후반 스커트가 어느 정도 짧아짐 - 구두의 장식에 관심이 짙어져 버클과 뒤축을 더욱 아름답게 디자인. - 흙, 먼지, 진흙으로부터 구두를 보호하기 위해 구두덮게 - 양말 : 초기 – 아름다운 색이 실크로 만든 것이 귀부인들에게 애호됨 1720년대 – 흰색 바탕에 금.은실과 색
    예체능| 2009.11.13| 37페이지| 1,500원| 조회(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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