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1The First Crusades..PAGE:2제 1차 십자군 전쟁십자군 전쟁의 배경제 1차 십자군의 전개제 1차 십자군의 의의와 영향The First Crusades..PAGE:31. 십자군 전쟁의 배경1971년 만지케르트 전투비잔티움 제국의 쇠퇴투르크 부족의 침입으로 인한 만지케르트 전투의 패배로 아나톨리아 지방의 지배권 상실."치명타다. 비록 완전히 무너져 함락되기까진 수세기가 남았지만, 아나톨리아의 군관구는 문자 그대로 제국의 심장이며 만지케르트 이후 수십 년 후 그것들은 완전히 사라졌다.”by. 존. J. 노리치(John Julius Norwich)The First Crusades..PAGE:4Deus lo vult!2) 신께서 그것을 바라신다!1095년 비잔티움 제국 황제 알렉시우스 1세가 로마 교황에게 도움 요청.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이 제의를 받아들여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 선포.The First Crusades..PAGE:5예루살렘, 안티오키아 및 그 밖의 도시들에서 크리스트교도가 박해를 받고 있다. 신을 믿지 않는 튀르크인들의 진출은 그칠 줄 모르고 이미 일곱 차례나 크리스트교를 격파하고 콘스탄티노플로 다가오고 있다. 성지의 형제들을 구하라. 서유럽의 크리스트교 교도들이여. 지위가 높건 낮건, 재산이 많건 적건, 근동의 크리스트교 교도의 구원에 힘써라. 신은 그대들을 인도하실 것이다. 신의 정의를 위해 싸우다 쓰러지는 자는 죄사함을 받으리라.-우르바누스 2세의 연설문-Deus lo vult!The First Crusades..PAGE:6Deus lo vult!3) 십자군 전쟁의 실질적인 목적교황권의 강화명예와 영지, 신앙부, 지중해 무역독점The First Crusades..PAGE:7Deus lo vult!“그의 연설은 마치 하느님의 말씀처럼 들렸고, 청중은 모두 신의 계시에 귀를 기울였다. 우리 신앙의 요람이며 주님의 고향이자 구원의 원천인 그곳이 주님을 받들지 않는 자들의 손에 넘어갔다. 오랜 세월 그 사악한 믿음을 계승한 이슬람 교도들이 우리 그리스도가 몸을 누이신 성스러운 곳에서 폭정을 일삼고있다. 우리 성지를 짐승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성직자들은 성소에서 살해되고 처녀들은 매춘과 죽음 중 선택을강요 받았다.”“형제와 친척을 상대로 싸웠던 자들에게 야만인과 싸울 성스러운 기회를 주겠다. 세속적인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구하고 기독교를 구원할 목적으로 십자군 원정길에 오르는 자는 누구나 지금까지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사면 받을 수 있다.”-대주교 기욤 드 티레의 기록-The First Crusades..PAGE:82. 제 1차 십자군의 전개The First Crusades은자 피에르와 궁중십자군은자 피에르와 군중십자군은둔 수도자 피에르의 선동으로 정비되지 않은 민중들이 대규모로 성지순례를 떠남.약탈, 방화, 식량문제 등 수많은 문제를 안고 나아가다 소아시아에서 이슬람군에 패배 후 붕괴.“유대인들에 대한 순례자들의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들을 기독교에 반하는 적이라며 유대인들을 마구 학살했다. 그들은 많은 유대인들의 목을 베었다. 또한 유대인들의 집과 교회당을 파괴하고 그곳에서 약탈한 전리품을 나눠가졌다.”-대주교 기욤 드 티레의 기록-..PAGE:9The First Crusades십자군 제후들2) 제 1차 십자군 원정과 제후들1096년 가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군대가 3천 마일의 원정길에 오름.여기에는 교황의 대리인 아데마르 주교와 로렌 공작 고드푸르아, 툴루즈 백작 레몽, 타란토 공작 보에몽 등 쟁쟁한 제후들이 참전.←제 1차 십자군의 원정로스페인에서는 이미 레콩키스타라 불리는 이슬람과의 전쟁이 지속되고 있었기에 십자군에 따로 참여할 수 없었다...PAGE:10The First Crusades십자군 제후들툴루즈 백작레몽 드 생질로렌 공작고드프루아 드 부용타란토 공작보에몽 드 타란토..PAGE:11The First Crusades황제 알렉시우스 1세Alexius I Comnenus3) 십자군에 대한 제국의 대처황제는 십자군 제후들에게 충성서약을 강요.충성서약의 대가로 십자군은 비잔티움 제국의 도움으로 보스포로스 해협을 건너 니케아를 공략.알렉시우스는 첩자를 통해 십자군에게 공격받던 니케아를 무혈로 차지.
B.C.한국사세계사약70만년전 구석기문화?6000 신석기문화?선사시대?전설 3황5제(三皇五帝), 요, 순, 하?2333 단군, 아사달에 도읍,??????? 고조선 건국 (삼국유사)?1122 8조금법(八條禁法) 제정3000 이집트 통일국가 형성????? 메소포타미아문명 시작?2500 인더스문명, 황하문명 시작?1800 함무라비 메소포타미아 통일?1600 탕왕(湯王) 박에서 은(殷)왕조 창건?1400 히타이트 강성, 미케네문명 전성기?1050 은왕조 멸망, 서주(西周)시대 시작1000 청동기문화의 전개?????? 고조선의 발전?800 고조선의 수도 : 왕검성?????옥저, 동예?마한, 진한, 변한??4세기?300 철기문화의 보급???194 위만, 고조선의 왕?108 고조선 멸망, 한(漢)사군 설치?? 59 해모수 북부여 건국?? 57 신라 혁거세 거서간 즉위?? 37 주몽 고구려 건국 (~A.D. 608)?? 28 고구려 부위염, 북옥저 병합?? 18 온조 하남위례성 백제 건국(~A.D. 660)?1000 그리스 폴리스 형성???770 동주시대의 시작 (춘추전국시대)??670 아시리아 오리엔트 통일?563 석가 탄생 (~483)?551 공자탄생? (~479)?525 페르시아 오리엔트 통일?492 페르시아 전쟁 (~479)?431 펠로폰네소스 전쟁 (~404)?403 전국시대의 시작?334 알렉산더 대왕 동방원정?221 진의 중국통일?206 한의 건국??? (유방 항우로부터 한왕에 봉해짐)?202 전한 건국(유방 ~AD 8)????27 로마, 제정시작???A.D.한국사세계사?3 고구려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천도?5 백제, 한산(漢山)으로 천도?? 8 백제 마한 병합??42 김수로왕 금관가야 건국??53 고구려 태조왕 즉위?194 고구려 진대법 실시?209 고구려 환도성(丸都城)으로 천도?260 백제 고이왕 16관등과 공복 제정?4 그리스도 탄생??25 후한의 건국(~220)??45 쿠샨왕조 성립(~170년경)??96 로마 5현제 시대(~180)?166 로마 사절 중국612 고구려 을지문덕 살수대첩 (수나라)??645 고구려 안시성 싸움 승리 (당나라)?646 고구려 천리장성(千里長城) 완성?660 백제 멸망 황산벌전투?668 고구려 멸망 (나당연합군)?676 신라 삼국통일?685 9주 5소경 설치?698 대조영 발해의 건국?618 당의 건국(~907)?622 마호메트 헤지라(이슬람의 기원원년)?642 사산 조 페르시아 멸망?645 일본 다이카 개신?661 옴미아드 조 성립(~750)??690 무주혁명 (武周革命 측천무후)??722 신라 정전 지급?723 혜초 왕오천축국전?788 독서 삼품과 설치705 무후 사망, 중종 복위?750 아바스왕조 성립 (~1258)?755 당 안사의 난(~763), 안녹산이 반란?771 카롤로스 대제, 프랑크왕국 통일?828 장보고 청해진 설치800 카롤로스 대제 대관?829 잉글랜드 왕국 성립?843 베르됭 조약?862 노브고로트 공국 건국?870 메르센 조약, 프랑크왕국 분열?875 황소의 난(~884)900 견훤 후백제 건국?901 궁예 후고구려 건국?918 왕건 고려 건국(~1392)?926 발해 멸망?935 신라 멸망?936 고려 후삼국 통일?956 노비 안검법 실시?958 고려 과거제도 실시?976 전시과 실시?901 남조(南朝) 멸망.?907 당 멸망, 5대 10국(~960)?911 노르망디 공국 성립(~960)?916 거란족, 요의 건국?960 조광윤(趙匡胤) 송의 건국(~1279)???? 가즈니 조 성립(~1186)?962 신성 로마제국 탄생(~1806)?979 송, 북한(北漢)을 멸하고 중국 통일?987 프랑스 카페왕조 시작 (~1328)1009 강조의 정변?1019 귀주대첩 (거란의 침입)?1033 고려, 천리장성 축조(~1044)?1076 전시과 개정, 관제개혁?1086 의천 속장경 조판?1097 주전도감 설치1037 셀주크 투르크 건국(~1157)?1066 노르망디 공 윌리엄, 잉글랜드 정복?1069 송 왕안석의 변법실시?1077 카노사의 굴욕?1095 클레르몽 공의회?치?1413 조선 8도의 지방행정조직 완성?1418 세종대왕 즉위?1433 4군 설치?1437 6진 설치?1443 훈민정음 창제?1466 훈민정음 반포, 직전법 실시?1469 경국대전 완성?1405 명 정화 남해원정(~1433)?1414 콘스탄츠 공의회(~1418)?1429 잔 다르크 영국군 격파?1453 동로마(비잔틴) 제국 멸망?1455 장미전쟁 (~1485)?1479 에스파냐 왕국 성립?1492 콜럼버스 아메리카 항로 발견?1498 바스코 다 가마 인도항로 발견1510 3포 왜란?1512 임신약조?1519 향약 실시?1554 비변사 설치?1555 을묘왜변?1559 임꺽정 난?1592 임진왜란, 한산도대첩?1593 행주 대첩?1597 명량해전 승리1517 루터의 종교개혁, 독일 농민전쟁?1519 마젤란, 세계일주(~1522)?1524 독일의 농민전쟁(~1525)?1526 무굴제국 건설(~1858)?1536 칼뱅의 종교개혁?1555 아우크스부르크 종교회의?1562 위그노 전쟁(~1598)?1571 레판토 해전?1573 명 일조편법 실시?1588 영국, 에스파냐 무적함대 격파?1598 낭트칙령 발표1608 경기도에 대동법 실시?1609 일본과 국교 회복 (기유약조 체결)?1623 인조반정?1624 이괄의 난?1627 정묘호란?1628 벨테브레, 제주도 표착?1636 병자호란?1653 하멜, 제주도 표착?1658 나선정벌?1662 제언사 설치?1678 상평통보의 주조?1696 안용복, 독도에서 일인 쫓아냄?1600 영국, 동인도 회사 설립?1603 일본, 에도 막부 세움?1613 로마노프 왕조 성립(~1917)?1616 후금(->청)의 건국1618 독일 30년 전쟁(~1648)?1628 영국, 권리청원 제출?1642 영국 청교도 혁명(~1649)?1644 명 멸망, 청 중국 통일(~1912)?1648 베스트팔렌 조약?1651 크롬웰 항해조례 발표?1673 청 삼번의 난?1688 명예혁명?1689 청, 러 네르친스크 조약????? 영국 권리장전 발표1708 대동법 파견,????? 별기군 창설?1882 임오군란,????? 미.영.독 등과 통상조약 체결?1883 전환국설치, 태극기 사용?1884 우정국 설치, 갑신정변?1885 거문도 사건, 배재학당 설립,????? 서울-인천 간 전신개통, 광혜원 설립?1886 이화학당 설립?1889 함경도에 방곡령 실시?1894 동학 농민운동?, 갑오개혁 실시?1895 을미사변, 유길준 서유견문 지음?1896 독립협회 설립?, 아관파천?1897 대한제국의 성립?1898 만민공동회 성립?1899 경인선 개통1850 청 태평천국 운동(~1864)?1853 크림 전쟁(~1856)?1854 일본 개국?1856 애로 호 사건(~1860)?1957 인도 세포이 항쟁(~1858)?1858 무굴제국 멸망?1860 청. 영. 프 베이징 조약?1861 미국 남북전쟁(~1865)????? 이탈리아 왕국 성립(~1946)????? 러시아 농노 해방령?1862 양무운동 시작?1862 서아시아의 근대화?1863 링컨 노예해방 선언?1868 일본 메이지유신?1871 독일제국 성립?1877 영령 인도제국 성립????? 러, 투 전쟁(~1878)?1878 베를린 회의?1882 삼국 동맹 성립(독. 오. 이)?1883 청, 프랑스 전쟁(~1885)?1885 청, 일 톈진조약 체결????? 인도 국민회의파 창립?1887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성립?1894 청, 일 전쟁?1898 청, 무술정변, 파쇼다 사건?1899 헤이그 평화회의, 의화단 운동1902 서울-인천 장거리전화 개통?1903 YMCA 발족?1904 한. 일 의정서, 경부선 준공?1905 을사조약, 천도교 성립?1906 통감부 설치?1907 국채 보상운동?,????? 헤이그 특사 파견,????? 고종황제 퇴위, 군대해산, 신민회 설립?1909 안중근 이토 사살, 나철 대종교 창시1902 영, 일 전쟁?1904 러, 일 전쟁 (~1905)?1905 중국 혁명동지회 결성????? 제1차 모로코사건?1906 인도, 스와데시, 스와라지 운동?1907 삼국협상 성립 (영말살정책 강화?1942 조선어 학회 사건?1945 8.15광복?1946 제1차 미.소 공동위원회 개최?1948 5.10 총선거 실시???? 대한민국 정부수립??? 여수.순천 10.19 사건1941 대서양헌장 발표, 태평양전쟁(~1945)?1943 카이로선언?1945 포츠담선언, 얄타회담,????? 독일. 일본 항복, 국제연합(UN) 성립????? 아시아, 아프리카?각국 독립?1946 파리 평화회의?1947 마셜플랜, 코민포름 형성?1948 제1차 중동전쟁 발발?1949 NATO 성립, 중화 인민공화국 성립?1950 6.25 전쟁?1952 평화선 선언, 1953 휴전협정 조인????? 제1차 통화개혁 실시?1955 민주당 창당1950 유엔 한국파병 결의?1951 이란 석유 국유화 선언?1954 인도차이나 휴전협정,????? SEATO 성립 (~1977), 제네바 협정?1955 반둥회의, 바르샤바 조약기구 성립?1956 이집트 수에즈운하 국유화,????? 헝가리. 폴란드 반공의거?1958 프랑스 제5공화국 발족?1959 유럽 경제 공동체 성립?1960 4.19혁명, 제2공화국 수립?1961 5.16군사정변?1962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66)?1963 제3공화국 정부수립 (박정희)?1964 국군 베트남 파병?1965 한. 일 협정 조인?1966 한. 미 행정협정 조인?1967 제2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71)?1968 1.21 사태, 향토예비군 창설1960 파리 군축 회의????? 아프리카의 해 (16개국 UN 가입)?1961 비동맹국가 베오그라드 공동선언?1962 미국 쿠바 봉쇄, 알제리 독립?1963 말레이시아 연방발족,????? 미. 영. 소 부분적 핵실험 금지조약체결?1966 중국 문화 대혁명?1967 제3차 중동전쟁, EC 발족?1968 체코슬로바키아 민주화선언에????? 소련군 개입1970 새마을운동 시작, 경부고속도로 개통?1972 제3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76)????? 7.4 남북 공동성명, 남북 적십자 회담,????? 10월 유신, 출?
I. 근대적 세계관의 형성1. 르네상스1). 르네상스란?르네상스는 학문, 예술의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어의 renaissance, 이탈리아어의 rina scenza, rinascimento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 내려는 운동으로, 그 범위는 사상·문학·미술·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5세기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그때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야만시대,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파악하고 고대의 부흥을 통하여 이 야만시대를 극복하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이 운동은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인데, 이 운동은 곧 프랑스·독일·영국 등 북유럽 지역에 전파되어 각각 특색 있는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근대 유럽문화 태동의 기반이 되었다. 이때의 르네상스 외에도 문화부흥 현상이 보인 기타의 시대에 대해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는데, 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 오토 왕조의 르네상스, 12세기의 르네상스, 상업의 르네상스, 로마법의 르네상스 등이 이에 속한다. 르네상스라는 개념 형성은 이미 그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르네상스 사상의 기본요소는 F.페트라르카가 이미 설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고대를 문화의 절정기로 보는 반면, 중세를 인간의 창조성이 철저히 무시된 ‘암흑시대’라고 봄으로써 문명의 재흥(再興)과 사회의 개선은 고전학문의 부흥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인문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던 크나큰 확신이기도 했는데, 이들은 단순한 라틴 학문의 부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지적(知的)·창조적 힘을 재흥시키려는 신념에 차 있었다.당시 L.브루니는 자기 시대의 학문의 부활에 대하여 기술하였고, 16세기의 미술가 G.바자리는 저서 《이탈리아의 가장 뛰어난 화가·조각가·건축가의 생애》에서 고대 세계의 몰락 이후 쇠퇴한 미술이 조토에 의해 부활했다고 하어서자 개혁정책이 단행되어 교회는 현저하게 칼뱅주의 경향을 띠게 되었다. 그러나 메리의 치하에는 다시 가톨릭교회에 대한 복귀정책이 취해져 많은 목사와 신도들이 박해를 받았다.이같이 영국은 국왕이 바뀔 때마다 그 교회체제에도 크게 변동이 있어 오다가, 엘리자베스 1세 치하에 국운이 융성해지면서 일단 안정을 되찾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중간입장인 중도적 방향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의 철저하지 못한 개혁에 불만을 품은 청교도들은 장로주의(長老主義)의 스코틀랜드에서 제임스 1세를 맞이하여 보다 철저한 개혁의 실시를 청원하였으나 이들의 희망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히려 탄압을 받았다.오랫동안 억압되어 있었던 개혁에 대한 기대는 잉글랜드 대 스코틀랜드의 전쟁을 계기로 촉발하여, 드디어 1649년 찰스 1세의 처형을 정점으로 하는 청교도혁명에 이르렀다. 이 혁명은 크롬웰의 주도하에 수습되었으나 이 혁명을 계기로 해서 많은 프로테스탄트파가 생겼다. 오늘날 미국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이 청교도혁명으로 생긴 여러 파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5). 종교개혁의 의의종교개혁은 루터의 ‘하느님의 뜻의 발견’에서 비롯되는 그리스도교의 혁신운동이었으나,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크게 영향을 미쳤다. 이로써 근대 세계와 근대인이 탄생하였다. 종교개혁 후에는 계몽주의(啓蒙主義)가 일어나, 언뜻 비종교적 합리주의가 근대사회의 특징이 된 것 같이 보였지만, 근대인을 ‘마술’에서 진정으로 해방시킨 것은 단순히 자연과학이 아니라 세계에 대한 합리적 ·과학적 태도를 표출한 종교개혁의 정신이었다.3. 종교전쟁1). 종교전쟁이란?넓은 의미로는 종교에 관계되어 일어난 모든 전란을 지칭하나, 서양사상(西洋史上)의 용어로서는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후반에 걸친 유럽에서 종교개혁을 계기로 한 신 ·구 양교파의 대립으로 야기되어 국제적 규모로 진전된 일련의 전쟁을 가리킨다.① 13세기 초, 남(南)프랑스의 알비·툴루즈를 중심으로 세력을 떨쳤던 이단(異端) 알비즈와파(派)에 대한 교 볼테르, J.J.루소를 비롯한 프랑스의 사상가, 문학가의 여러 저작 ·작품에 있으나, 그 원류(源流)는 T.홉스, J.로크를 비롯하여 17세기의 영국에서 시작된다. 그리하여 T.레싱, J.G.헤르더를 비롯한 독일의 여러 사상가에게까지 미쳤다. 이런 뜻에서는 18세기의 모든 문학운동 ·사상활동의 저류(底流)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으며, 각국에 싹트기 시작했던 시민정신의 형상화(形象化)에 있어 매개자의 역할도 하였던 것이다.영국의 홉스는 프랑스의 R.데카르트와 함께 계몽사상의 원조라 할 수 있으나 고유의 의미에서의 영국 계몽철학은 로크와 D.흄에서 시작된다. 로크는 경험론을 인식론 안에 도입하여, 인간의 자연상태를 자유의 실존이라 규정하였으며, 자유로운 개인이 자유의지에 따라 공동체에 대한 복종을 선택한 이상, 선택은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계약에 의한 것이며, 인간의 자유의 지주(支柱)가 사유재산권의 보유에 있는 이상, 국가는 시민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존재요, 국왕은 그 집행기관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프랑스의 계몽사상은 1734년에 출판된 볼테르의 《철학서간(哲學書簡)》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어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1748)을 지어 삼권분립의 원칙을 밝히고, 절대왕정(絶對王政)에 쐐기를 박았다. 또 D.디드로, J.R.달랑베르, 뷔퐁, E.B.콩디야크, P.H.돌바크 등에 의해서 18세기 중엽부터 《백과전서(百科全書)》가 발간되었으며, 종교나 관습 ·제도의 주술(呪術)에 묶여 있는 인간을 감성적 ·심정적으로 해방시키고, 앞으로 꽃필 과학에 대한 꿈을 고취하며, 각자가 자신의 주체성 위에 서서 새로운 세계관 ·처세술 ·창조에의 참가를 실현하도록 촉구하였다. 볼테르는 《캉디드 Candide》 《자디그 Zadig》를 통하여, 디드로는 《라모의 조카》, 《운명론자 자크와 그의 주인》을 통해서, 문명의 상식에 등을 돌리고, 태어난 그대로인 자연아(自然兒)로 하여금 현실세계 속을 걷도록 함으로써, 사회와 인간 간의 깊은 상대관계를 알아내려고 하였다. 이 식민제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Ⅲ. 근대의 시민혁명1. 영국혁명1). 혁명의 배경영국의 절대주의는 튜더왕조 최후의 여왕 엘리자베스 1세 때에 최고조에 달하였다. 그 치세 중에 이미 청교도의 국교회 비판이나 의회에서의 절대주의 비판 등이 있었지만, 당시의 절대주의는 별다른 파탄을 보이지 않고 다음의 스튜어트왕조로 넘어갔다. 그런데 제1대 왕 제임스 1세는 스코틀랜드 출생으로서 영국의 의회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의회 그 자체를 부정하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을 주창하였다. 한편 국민측에서는 법률가 E.코크가 ‘법의 우월’을 주장함으로써, 왕은 법 위에 선다는 제임스 1세의 주장에 반대하였다. 그리고 의회는 양측의 충돌 장소로 되어 어수선하였다.다음 왕 찰스 1세는 절대주의를 한층 더 강화하여 의회의 승인도 없이 관세를 징수하고, 선박세를 부과하였으며, 헌금과 공채(公債)를 강제해서, 응하지 않는 자를 투옥하였다. 또한 병사를 민가에 무료 숙박시키고, 군법을 일반인에게까지 적용시켰다. 의회에서는 1628년 코크 등이 중심이 되어 인민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권리청원’을 기초하여 왕에게 제출하였다. 이 때문에 29년 의회가 해산되고, 왕은 40년까지 11년간이나 의회 없는 정치를 하여야만 하였다. 왕은 측근에 W.로드 대주교와 Th.W.스트래퍼드백(伯)을 두고 성실재판소(星室裁判所)와 고등종무관(高等宗務官) 재판소 등을 이용하여 청교도를 탄압하고, 의회 없이 수입을 얻기 위하여 국왕의 대권을 남용하였다. 그런데 왕은 장로파가 우월한 스코틀랜드에 국교를 강요하려 함으로써 전쟁의 위기를 자초하고, 전비를 얻기 위하여 40년 소위 장기의회를 소집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2). 청교도 혁명왕을 지지한 자는 소수에 불과하였으므로 1641년 의회의 3년 회기법, 스트래퍼드백의 사권(私權) 박탈법, 성실재판소 및 고등종무관 재판소의 폐지법, 선박세의 위법성 선언, 직할림 제한법, 기사강제금 금지법 등이 잇따라 가결되었다. 그러나 당시 의회의 압도적 다수가 의해 재배된 면화를 원료로 하여, 인도산 캘리코 면직물과 경쟁할 수 있는 면제품을 제조하는 일이 18세기 초의 국민적 과제가 되었다. 이 과제를 해결하도록 추진시킨 것은 전래의 지배계급인 지주나 전통적인 직물업자가 아니고 주로 상인과 요먼이라고 부르는 자영농민층이었으며, 그들 대부분이 비국교도이자 국가의 원조도 없이 자조정신으로 기업을 이룩한 사람들이었다.3). 산업혁명의 경과산업혁명을 주도한 것은 면공업이었다. 면공업에서의 기계의 발명은 J.케이가 베틀의 북을 발명한 데서 시작되며, 방적부문에서는 J.하그리브스의 제니방적기, R.아크라이트의 수력(水力)방적기, S.크럼프턴의 뮬방적기, R.로버츠의 자동 뮬정방기의 발명에 의해서, 직포부문(織布部門)에서는 E.카트라이트의 역직기(力織機)의 발명에 의해서 증기력을 동력으로 하는 기계제공장생산이 확립되었다. 그 중심은 맨체스터를 중심으로 한 랭카셔 지방 및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주변이었다.면공업의 급속한 발전은 관련된 모든 산업의 발전을 촉진시키고 특히 기계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생산재 생산부문에서는 철공업 ·석탄업 ·기계공업의 발전이 현저하여, 석탄과 철의 생산은 급속하게 증대하였다. 철공업의 기술혁신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것은 선철(銑鐵) 생산과정에서의 코크스로(爐) 제련법과 단철(鍛鐵) 생산과정에서의 H.코트의 파들제련법이다. 특히 파들제련법 발명에 의해 철생산은 비약적으로 증대하게 되었다. 그 중심은 남웨일스의 버밍엄 주변의 중부지방 및 스코틀랜드이다.그러나 면공업에서의 일련의 기술혁신이 노동절약적 기술혁신이었던 데 비해, 철공업은 자본절약적 기술혁신이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또 기계공업에서는 종래의 시계공업 ·자동차 제조업의 전통적인 기술을 전수받으면서 기계공업의 조상이라고 하는 H.모즐리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정밀도가 높은 자동선반과 공작기계가 제작되고, 1830년 이후에는 기계에 의한 기계의 대량생산체제가 확립되었다. 이제 기계는 자본제생산을 지탱하는 자립적인 체계를 갖기에 이르렀다.이처럼 영국의 산
R E P O R T과목명담당교수이름학과명학번서양 고대사 사료 비평플루타르크, 『영웅전』, , ● 서론『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우리나라에서 읽히기 쉽게 번역하면서 만든 제목이며, 원 제목은 그리스 어로 『비오이 파랄렐로이(Bioi Paralleloi)』, 즉 『비교 열전』이다. 하지만 편의상 대중화된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쓰도록 하겠다.『플루타르크 영웅전』은 고대 그리스-로마 세계의 인물들의 삶과 행적을 다룬 전기 가운데 최고의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유사한 인물들을 비교하여 전기를 서술하였다는 점에서 독특한 서술 양식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플루타르크 영웅전』가운데 그라쿠스 형제의 전기에 관해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본론1. 플루타르크플루타르크Plutarchos는 그리스의 카이로네이아Chaeroneia의 명문가 출신으로 일찍이 아테네의 아카데메이아에서 플라톤 철학을 공부하면서, 자연과학과 변론술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을 익혔다. 그 후 지중해 세계를 여행하며 여러 명사들과 친분을 쌓았으며, 후에는 아카이아Achaea의 지사에 임명되었으며, 로마의 시민권을 얻었다. 말년에는 델포이의 최고신관으로 그리스에서 살았다.플루타르크는 '그리스 문화의 최초 충격'을 넘어 '그레코-로만' 혹은 '그리스-로마' 문화를 새롭게 창조한 세계 제국 로마의 울타리에서 산 인물이다. 이 시대에는 이미 그리스와 로마 문화는 별개가 아닌 그레코-로만 혹은 그리스-로마 문화로 융합되어 있었다. 이것은 분명 플루타르크가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에 대한 '비교 열전'을 쓸 때, 시대적·철학적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플루타르크의 시대에 로마와 그리스는 별개의 세계가 아닌 하나의 세계였다. 또 『플루타르크 영웅전』 곳곳에 배어 있는 플루타르크의 역사와 세계에 대한 인식을 보면, 그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지중해 세계 혹은 헬레니즘 세계의 역사와 동일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보면, 플루타르크는 자신이 산 시대의 '세계관'을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제대로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플루타르크가 자신의 학문과 명예까지 온전히 실었을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집필 철학은, 그리스 코린트의 군인 티몰레온에 관한 전기 첫머리에 나오는 '고백'에 잘 나타나 있다."처음에 나(플루타르크)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 전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기를 계속 써 나가는 동안 어느 틈엔가 남이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이들 위인들이 가진 각각의 미덕은 내 인생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고, 내 인생을 어떻게 조절하고 또 어떻게 내 인생을 고치고 만들어나가야 하는가를 배우게 되었다. 진정으로 전기란 우리 일상생활의 여러 관계들을 연구하고 기록하고 서술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위인들의 생애를 연구하면서, 나는 매일 그들과 같이 생활하는 것처럼 느끼며, 차례로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고 대접하는 심정으로 그들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하면서 감동을 느끼고, 그들의 행동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을 골라서 뽑아냈다. 미덕을 기르고 품성을 닦는 데는 위인들의 삶을 배우는 방법보다 더 좋은 건 없다. 나는 위인들의 선량하고 귀중한 영향을 받아들이기 위해 역사를 연구하고 전기를 쓴다. 이렇게 해서, 나는 사회에 묻혀 살면서 오염된 야비하고 천하고 사악한 인생에서 해방되고 싶은 것이다."플루타르크는 '미덕을 기르고 품성을 닦기 위해서는', '좋은' 경우의 인간뿐만 아니라 '나쁜' 경우의 인간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또 역사란 '좋은' 방법과 '나쁜' 방법, 선한 의도와 악한 의도가 뒤엉켜져 만들어진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플루타르크 영웅전』 속에 나타난 역사와 인간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2. 플루타르크가 기록한 과 그라쿠스 형제가 태어났을 때, 로마는 이미 지중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로마는 단순히 도시 로마나 이탈리아의 로마가 아니라 이탈리아, 북아프리카, 마케도니아, 에스파냐, 이집트, 소아시아 등을 속주화하고, 지중해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강력한 제국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로마의 패권주의적 팽창은 수많은 문제를 로마에 가져왔다.플루타르크가 전하는 기록에 따르면, 로마인들은 이웃 나라를 정복하여 땅을 얻게 되면 그 일부는 매매하고 나머지는 국가의 공동재산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국유화한 땅은 싼 가격으로 로마 시민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농사를 짓게 하고, 그 대가로 약간의 소작료만을 나라에 바치게 했다. 그러나 그 뒤 부자들이 더 비싼 값으로 땅을 사들여 점차 가난한 사람들의 토지를 차지해 나가기 시작했다. 토지를 빼앗겨 몰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로마인들은 한 사람이 5백 에이커 이상의 토지를 가질 수 없도록 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을 시행한 초기에는 상당한 효과를 거둔 듯하다. 가난한 사람들은 값싼 소작료만 내고도 다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자들은 다시 온갖 꾀를 짜냈는데, 처음에는 다른 사람 명의로 땅을 사들이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버젓이 자기 이름으로 많은 토지를 소유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토지에서 쫓아내고 대토지를 소유한 부자들이 외국에서 노예를 들여와 경영하는 '대농장'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또 토지에서 쫓겨나 생계를 유지할 길이 없던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은 노예로 전락하여 다시 부자들의 토지를 경작해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러한 사회 현상은 로마에 중대한 정치 사회 위기를 불러왔다.(…전략) "우리 로마에는 들짐승도 자기 굴이 있어서 쉴 수도 있고 몸을 감출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싸움터에 나가 생명을 던지는 사람들은 바람과 햇빛 말고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집도 없고 몸을 의지할 곳도 없어 처자식을 데리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습니다. 지휘관들은 조상들의 무덤과 제단을 지키기 위해 적과 싸워야 한다고 부하들에게 말하지만, 그것은 모두 헛된 거짓말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많은 로마 사람들 중에 조상의 무덤과 제단을 갖추어 놓고 자신의 집과 가정을 보호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남들의 재산과 호강을 지켜주기 위해 싸웠고 또 죽음을 맞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세계의 주인이라는 이름은 얻었지만, 내 것이라고 부를 만한 손바닥만한 땅도 없이 죽어야 했습니다." (후략…)위와 같은 티베리우스Tiberius Sempronius Gracchus의 연설 그 당시 로마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진정한 의미의 시민의 숫자가 줄어들고 또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은, 티베리우스에게 로마가 지금까지 체계적으로 잘 유지해왔던 공화정 체제가 붕괴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게 하였다.로마가 닥친 국가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수단을 토지 개혁이라고 판단한 티베리우스는 호민관에 선출되자, 귀족과 부자들한테 몰수한 토지와 공유지를 재분배한다는 법안을 평민회에 제출했다. 그 토지 개혁은 토지를 독점한 귀족과 부자들이 자신의 명의나 또는 편법으로 토지를 소유하는 것을 제한함으로써 소규모 자작농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이에 이 법률로 인해 대단한 손해를 보게 되는 원로원을 비롯한 부자와 귀족들은 티베리우스를 제거하고자 하였다. 결국 역대 누구도 깨지 않았던 현역 호민관의 신체에 대한 불가침성마저 깨부수며, 평민 집회에서 티베리우스는 살해당하고 만다.티베리우스의 동생 가이우스Gaius Sempronius Gracchus는 형이 처참하게 살해되고 나서 10년간 은둔하면서 정치적 기반을 다지기 위해 노력한다. 가이우스가 호민관에 선출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원로원의 권력 독점과 전횡을 막는 일련의 법안들을 평민회에 제출한 것이었다. 그는 원로원을 막지 못하면 개혁안은 결국 아무짝에도 쓸모없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가이우스는 티베리우스보다 훨씬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고, 원로원 또한 이에 강경하게 대응했다.
Karl Marx ReportPart.1 위대한 혁명가 의 일생 칼 맑스 , 혁명가의 삶Part.1 위대한 혁명가의 일생 마르크스의 흔적이 남아 있는 독일 트리어 시의 시립박물관 (1). 성장배경 칼 하인리히 마르크스 (Karl Heinrich Marx) 는 1818 년 5 월 5 일에 독일 라인주 트리어 시 에서 유대인 기독교 가정의 7 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 트리어 시 는 당시 독일에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장 발전한 곳이었으며 , 한때 프랑스 혁명군이 점령하여 진보적인 이념을 널리 퍼뜨려 놓은 곳이었다 . 변호사인 아버지 하인리히 마르크스 는 칸트 철학의 신봉자로서 가족들에게 휴머니즘적이고 계몽주의적인 사상을 면밀히 교육하였고 , 어머니 헨리에테 는 자녀들에게 지적으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대식구의 생활을 잘 꾸려나가는 주부였다 .(2). 청년 마르크스 1835 년에 마르크스는 본 대학에서 1 년 공부한 후 마르크스는 곧바로 베를린 대학 법학부로 전학하여 법학 , 역사학 , 철학을 공부하였다 . 특히 마르크스는 당시 독일의 철학계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헤겔의 철학에 관심을 쏟았다 . 여기서 그는 청년헤겔학파 로 알려진 바우어 , 쾨펜 , 루텐베르크 등이 운영하고 있던 ‘ 박사 클럽 ’ 에 참여하였으며 얼마 안 있어 이 클럽의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 . 마르크스는 헤겔 사상의 기본적인 틀을 수용하면서도 헤겔의 절대정신을 국가가 아닌 인간성의 해방과 인간의 합리적 이성이라고 파악하여 , 프로이센을 보편국가라고 주장한 헤겔에 대해 정면적으로 도전하였다 . 프로이센 정부는 그의 사상을 좌파적으로 해석 , 이것이 반체제적 혁명의 씨앗이 된다고 여겨 정치적 탄압을 가하게 된다 . Part.1 위대한 혁명가의 일생(3). 라인 신문과 마르크스 마르크스가 라인 신문에 기고하던 글의 초고 . 그는 대단한 악필이었다 . 마르크스는 1842 년 라인 신문 ( Rheinische Zeitung ) 의 편집진에 들어갔다 . 이 무렵은 마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라는 명제를 통해 독일 이데올로기 에서 정립된 유물사관 을 요약하고 계급사회는 프롤레타리아의 승리에 따라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Part.1 위대한 혁명가의 일생 (6). 런던 정착과 자본론 프로이센 정부의 정치적 탄압으로 마르크스는 브뤼셀을 떠나 쾰른을 거쳐 런던에 정착하게 된다 . 런던에서 마르크스는 신 라인 신문 - 정치경제 평론 을 펴내며 유물론적 역사관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국가론과 혁명론 , 계급투쟁과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한 이론이 더욱 확대되고 심화되었다 . 마르크스는 1856 년부터 집필을 시작하여 1867 년에 자본론 제 1 권을 출판한다 . 자본론 은 상품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하여 자본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경제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밝히면서 나아가 자본주의가 내적 모순에 의해서 붕괴될 수밖에 없음을 규명 하고 있다 .Part.1 위대한 혁명가의 일생 (7). 말년의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이후 정치경제학과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이론적 , 실천적 활동을 계속하였다 . 유럽노동조합조직인 제 1 인터내셔널 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고 , 노동자들의 봉기인 파리 코뮌 을 지지하는 글을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나가던 마르크스 는 1881 년 아내의 죽음과 1883 년 딸의 연이은 죽음으로 큰 충격을 받는다 . 마르크스의 건강은 눈에 띄게 악화되었으며 , 마침내 1883 년 3 월 14 일 유언도 없이 조용히 숨을 거두게 된다 . 그의 죽음은 거의 주목 받지 못했으며 11 명의 조문객만이 참여한 가운데 엥겔스의 조사와 함께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묻혔다 .Part.2 세상 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칼 맑스 , 혁명적 사상Part.2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헤겔 의 변증법적 철학 포이어바흐 의 유물론적 인간주의 사상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혁명론 “ 공산주의 혁명 을 통한 모든 인간의 자기소외 의 극복과 계급으로부터의 해방 ” 비판적 수용Part.2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자’ 으로 조직하여 세력화할 시기임을 역설하고 있다 .Part.2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 투쟁의 역사이다 . ” (…) “ 역사적으로 부르주아지는 매우 혁명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 “(…) “ 부르주아지는 적나라한 이해관계, 무정한 '현금지불'이외에 인간들 사이에 다른 어떤 관계도 남겨놓지 않았다 .”(…) “ 부르주아지는 인간의 존엄을 교환 가치로 녹여버렸고 (…) 인간의 자유를 자유무역이라는 단 하나의 파렴치한 자유로 대체했다 .” (…) “ 현대 부르주아지 사회는 자기가 주술로 불러낸 지옥 세계의 힘을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게 된 마법사와도 같다 . ” (…) “ 부르주아지가 봉건제를 무너뜨렸던 무기가 이제 부르주아지 자신을 겨냥하는 것이 된다 . 그러나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에게 죽음을 가져올 무기만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 그들은 이 무기를 들게 될 사람들 , 즉 현대의 노동자인 프롤레타리아를 낳은 것이다 . ”(…) “ 타의적이기는 하지만 부르주아지가 촉진시키는 산업의 진보는 경쟁으로 인한 노동자들의 고립 대신 결사로 인한 혁명적 결합을 가져온다 . 그러므로 현대산업의 발전은 부르주아지가 생산물을 생산하고 전유하는 바로 그 토대를 그 발 밑에서 무너뜨리는 셈이다 .”(…) “ 부르주아지의 몰락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는 양자 모두 불가피한 것이다 .”(…)Part.2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선언의 제1장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 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자본주의 생산방식의 발생 과정,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 자본주의의 기본 모순 을 설명하고 그 멸망 을 예견 하였으며 , 경제적 이해관계의 대립에 기초한 피착취계급과 착취계급의 계급 투쟁이 인류 역사의 기본 내용이며 사회발전의 원 동력이라 주장했다. (= 사적 유물론 ) 선언이 쓰여진 시점에서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지가 자본의 노예가 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새롭게 떠오른 노동자,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주역이 된 새로운유지와 관리들에게 진정한 (= 말뿐인 ) 사회주의 는 부르주아지의 협박에 대항하는 안성맞춤의 허수아비 였던 것이다 .”(…) “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한 자유무역 ,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한 보호관세 , 노동계급의 이익을 위한 감옥 개량 , 이것이 부르주아지 사회주의의 마지막 말이자 유일하게 진지한 말이다 .”(…) “ 비판적 - 공상적 사회주의 , 공산주의의 중요성은 역사발전과 역관계를 취한다 . (…) 그들은 계급투쟁을 약화시키고 계급적대를 해소시키기 위해 철저하게 노력하는 것이다 .”(…)Part.2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제 3 장 〈사회주의 문헌과 공산주의 문헌〉 에서는 반동적 봉건 사회주의 , 보수적 부르주아지 사회주의 , 비판적 - 공상적 사회주의 등 기존 사회주의 조류들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였다 . 여기서 마르크스는 이러한 비판을 통해 자신의 사상이 가장 현실적인 사회주의이며 , 진보적 , 혁명적 가치 를 지닌 것임을 주장한다 . ← ‘ 비판적 - 공상적 사회주의자들 ’ 각각 푸리에 , 오웬 , 생시몽Part.2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기존의 여러 반대파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태도 (…)” 요컨대 공산주의자는 모든 곳에서 기존의 사회 , 정치적 질서를 반대하는 모든 혁명을 지지한다 . 그 모든 혁명에서 공산주의자는 각국의 발전 정도와 관계없이 소유문제를 핵심적인 문제로서 전면에 내세운다 .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자는 어디서나 모든 나라 민주적 정당들의 통일과 합의를 위해 노력한다 .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견해와 목적을 감추는 것을 경멸한다 . 공산주의자는 자신의 목적이 오직 기존의 모든 사회적 조건을 힘으로 타도함으로써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히 선포한다 . 모든 지배계급을 공산주의혁명 앞에 떨게 하라 .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 .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 단결하라 ! ”Part.2 세상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 제4장 〈 기존의 여러 반대파에 대한 공산주의자의 태도 〉 에서는 각국 공산당들의랐으며 , 1946 년 국 · 공 내전을 거쳐 마침내 1949 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하였다 . 중국공산당은 소련공산당과 나란히 국제공산주의운동에서 한쪽의 영수적 위치를 차지하며 , 현대수정주의 비판의 가장 급진적 주장을 가진 공산당으로서 주목 받았다 .Part.3 세상을 바꾼 사회주의 사회주의 역시 없어질 것이다 . (…) 공산주의 사회도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언젠가는 또 다른 사회로 변하게 된다 . 그것이 어떤 사회로 바뀔지는 모르나 , 바뀌는 것이 틀림없다 . 왜냐하면 만물이 죽으면 태어나고 다시 죽는 음양의 법칙처럼 공산주의도 언젠가는 없어져야 하는 음양의 조화를 벗어날 수 없는 가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6). 중국의 유연한 공산주의 “ 부관흑묘백묘 ( 不管黑猫白猫 ), 착도로서 ( 捉到老鼠 ) 취시호묘 ( 就是好猫 ).” “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Part.3 세상을 바꾼 사회주의 사회주의 역시 없어질 것이다 . (…) 공산주의 사회도 일단 만들어지고 나면 언젠가는 또 다른 사회로 변하게 된다 . 그것이 어떤 사회로 바뀔지는 모르나 , 바뀌는 것이 틀림없다 . 왜냐하면 만물이 죽으면 태어나고 다시 죽는 음양의 법칙처럼 공산주의도 언젠가는 없어져야 하는 음양의 조화를 벗어날 수 없는 가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6). 중국의 유연한 공산주의 “ 부관흑묘백묘 ( 不管黑猫白猫 ), 착도로서 ( 捉到老鼠 ) 취시호묘 ( 就是好猫 ).” “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 러시아와 다른 중국만의 공산주의 사상 특유의 유연함으로 개혁 , 개방 정책 추진Part.3 세상을 바꾼 사회주의 (7). 제 3 국의 혁명 왼쪽 위부터 유고슬라비아의 수립과 제 3 세계 형성을 주도한 티토 쿠바에서 공산주의 혁명 전쟁을 치른 체 게바라 베트남 공산당을 이끌며 베트남 독립을 주도한 호치민 .Part.3 세상을 바꾼 사회주의 (8). 프랑스 6·8 혁명 1968 년 5 월 프랑스에서 학생과 근로자들이 일으킨 사회변혁운동 으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