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교수님이 이 영화를 본다고 말씀하셨을 때에는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댄데 70년전 영화를 보느냐 싶었다. 하지만 이 어두컴컴하고 말소리 없는 83분짜리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가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가, 짧은 시간과 영상 안에 말하고자 하는 것을 담을 수 있다는 게 정말 큰 매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내 기억에 남는 장면은 찰리 채플린이 반복된 일로 인해 기계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 이였다. 매우 극단적인 장면 이였지만 그 상황이 너무나도 잘 이해가 되었다. 산업사회의 가장 큰 폐해가 아니었을까. 인간이지만 사람취급도 받지 못하고 기계적으로 일만 해야 했던 주인공을 보며 수단과 목적이 혼재 되어버린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볼 수 있었다.이 영화는 무성영화라 딱히 명대사가 없었다. 하지만 순간순간 자막으로 보여주는 대사들이 있었는데 그 중 눈길을 끌었던 대사가 “우리는 도둑이 아니다. 단지 너무 배가 고팠을 뿐이다.”라는 대사였다. 상황은 코믹했으나 마냥 웃어넘길 수는 없었던 한마디였다. 누가 도둑이 되고 싶어서 도둑을 자처하겠는가. 떳떳한 직장을 가지고 가족을 부양하고 싶겠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게 도둑질이 아닐까. 특히나 1930년대 한창 산업화가 이루어지고 있던 시기에는 실업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이러한 문제가 더 많아졌을 것이라고 생각된다.이 영화의 주제는 무엇일까. 찰리채플린은 이 영화를 통해 점점 삭막해져가고 획일화 되는 사회를 비판했다. 직접 겪어 보진 못했어도 이 영화를 통해 1930년대 산업화시대를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 볼 수 있었는데, 그 때의 사람들이 얼마나 비참한 생활을 했을지, 기계화 되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느낄 수 있었다. 찰리 채플린은 이 영화를 통해 이러한 삭막한 사회와 물질주의적 사고관을 비판하고자 한 것 같다.이 영화의 시각적인 특징은 단연 흑백영상이라는 것인데, 흑백영화는 무조건 오래되고 무거운 주제일 것 같아서 꺼려했는데, 이 영화를 보고 흑백영화의 또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다채롭고 화려한 영상이 아니라고 충분히 재미있고 즐거운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또 이 영화는 흑백영화인 동시에 무성영화였는데, 말소리가 없는 영화는 어떤 건지 몰랐는데 모던타임즈를 통해 처음 봤다. 처음엔 말없이 행동으로만 보여 주는게 조금 답답했지만, 계속 보다보니 대사 없이 행동으로만 상황을 표현하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달았다. 또 찰리 채플린의 다재다능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태초에 하나님은 사람이 물질적인데 쓰이라고 만드신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지금 인간의 기계화를 종용하고 있고 앞으로 그런 경향은 사그러 들기는커녕 더 많아질 것이다.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이 이러한 상황을 보시면 어떤 생각을 할까. 생활은 편해졌지만 마냥 편한 것만 추구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영화를 보고 있었을 당시에는 재미있다고만 생각했다. 요즘 개그프로 같은 억지웃음과 말장난은 없었지만 웃음을 자아내는 요소들을 하나하나 꼬집어내며 실소를 터뜨리게 했다. 우스운 발걸음, 반복되는 행동 중의 의외성은 경쾌한 웃음소리 뒤에 조금은 우울한 미소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우울함은 찰리 채플린이 경찰서를 오가고 실업자들이 몰려 있는 장면에서 더욱 커졌다. 일터를 향하는 노동자 무리와 직업을 구하려는 실업자 무리는 머리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다.때는 산업혁명 이후, 기계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노동자들은 기계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점차 기계화 되어갔다. 자본가가 가지고 있는 공장과 기계의 부품으로 대접받으며 가축처럼 일을 한다. 이러한 노동자가 된 찰리 채플린은 영화에 작은 웃음의 코드를 집어 넣엇지만, 상실되어 가는 인간성을 그리고 있는 상황에서는 마냥 웃음이 나오지만은 않는다.
레인보우코리아 감상문201010939간호학과 10학번이수현수요일에 [Love is...2]를 관람하려던 계획이 어긋나 일요일에 [레인보우 코리아]를 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보는 뮤지컬이라서, 또 연극제 개막작이라는 타이틀에 내심 얼마나 대단한 뮤지컬 이길래.. 하는 마음에 기대를 많이 하고 갔다. 소재가 다문화가정에 대한 것이어서 너무 공익적이고 딱딱하진 않을까 하고 약간 불안했었는데 예상과는 달리 어렵지도 않고 너무 재밌었다.줄거리를 대충 간추려보면 이렇다.주인공 선우는 친구들과 창고에서 다문화축제공연을 준비하다 창고에 불을 내게 되는데, 친구의 부모님들이 선우를 보고 베트남여자의 자식이라는 비난을 하자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게 된다. 집에서도 따뜻하지 않은 엄마를 보며 자신의 엄마는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선우의 계모는 이제까지 잘 참아왔지만 너무 힘들다며 선우아빠와 갈등하다 결국 이혼하기로 결정한다. 힘들어하던 선우는 가출을 감행하지만, 불량배를 만나 사기를 당하고는 버림받는다. 버림받은 선우가 찾아간 곳은 다문화 쉼터, 다문화 가족들에게 힘과 희망이 되는 곳이었다. 원장의 설득에 선우는 집으로 돌아가 아버지와의 오해를 풀고, 엄마의 나라인 베트남의 악기와 춤을 다문화 축제에 선보일 결심을 한다.한편, 선우의 친엄마 란은 베트남 사람으로 밤늦게까지 봉제공장에서 일하며 지내고 있었다. 10년간을 아들 볼 희망으로 일하며 돈은 많이 벌었지만 아들 선우를 한번이라도 만나 볼 희망으로 베트남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봉제공장의 부사장이 아들을 만나게 해준다는 꼬드김에 넘어가 가지고 있던 전재산을 모두 잃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차마 선우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고 동료가 참여하는 다문화 축제를 구경 가게 된다.란은 다문화축제에서 자신의 악기로 공연을 하는 선우를 보게 되고, 결국 란과 선우는 다시 만나게 되고, 세 가족이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되는 것으로 뮤지컬은 끝을 맺는다.란과 선우가 결국 상봉하는 장면도 인상 깊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란이 부사장에게 사기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우를 포기하지 못하고 한국에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고난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모성애라는 것일까. 처음 한국에 시집와서 선우를 낳아놓고도 베트남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선우아빠에게 이혼까지 당하고, 또 온갖 수모를 겪어가며 한국에 대한 애정이나 희망이라곤 다 없어졌을 텐데도 10년간이나 버틸 수 있게 한 것은 선우에 대한 사랑이 아니었을까? 입장 바꿔 생각해봐도 만약 내가 란이었다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새삼 엄마라는 존재의 거룩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내 기억에 남는 명대사는 ‘레인보우 코리아’ 였다. 일곱가지 색깔이 모여 아름다운 빛을 낸다는 무지개.. 이건 대사도 아니도 뮤지컬 제목일 뿐이지만 뮤지컬의 어떤 대사보다도 인상 깊었던 말이었다. 일곱 빛깔이 하나가 되듯 대한민국도 인종이나 성별, 나이, 계층 따위에 없이 모두가 하나 되어 아름다운 빛을 내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뮤지컬의 주제또한 제목에도 나와 있듯, ‘레인보우 코리아’가 아닐까? 이 뮤지컬은 다문화가족 하나에 국한하고 있지만, 내 생각엔 어떤 차별도, 불평등도 없는 모두가 하나 된 사회를 만들자는 게 궁극적인 주제가 아닐까 싶다. 사실 나도 다문화가족이라는 말은 알고 있으면서도 주위에서 들어본 적도 없고 다문화 가족을 만나본 적도 없어서 그들이 차별을 받는다거나, 힘들게 생활한다는 사실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모든 다문화 가족이 이렇게 힘들게만 사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 뮤지컬을 보고 많은 다문화 가정이 힘을 냈으면 좋겠고, 이 뮤지컬을 본 사람들 또한 다문화가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시각적 특징은 연극이라 그런가? 한 장소에서 시간과 장소가 변하는 게 신기했다. 항상 영화만 봤지, 연극이나 뮤지컬은 별로 본 적이 없었는데 무대하나를 두고 그렇게 감쪽같이 장소가 변하고, 시간대가 바뀌는 게 재미있었다. 연기자들의 연기력도 한 몫 한 것 같다.뮤지컬이라 대사를 노래가락과 섞어 부르는 것 말고는 별다른 음향효과는 없었지만 중간중간 나오는 뮤지컬틱한 노래도 가사를 들어보면 참 재미있었다. 나도 한 번 쯤 그런 연기도 해보고 싶고, 노래도 불러보고 싶다.나는 이 뮤지컬의 주제가 ‘평등’이라고 생각해서 평등과 관련된 구절을 성경에서 찾아보려했다. 그런데 창세기에서 요한 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을 통틀어 평등이란 단어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을 근거로 인간의 평등을 주장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인간의 생명 그 자체의 가치는 모두 똑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인간 삶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마저 평등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평등(equality)의 하나님이 아니라, 공평(equity)의 하나님이심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똑같이 사람을 만드시고, 똑같은 사랑을 주셨는데 왜 우리는 우리끼리 잣대를 만들어 서로 다르게 취급을 하는지......
내 기억에 남는 명장면은 모든 영화가 끝나고 [서기 0년 1월 27일] 이라고 자막이 뜰 때였다. 과연 지구가 멸망하고 나서도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을까? 그렇다면 언제부터가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 되는 것일까. 영화를 보면서 참 까마득하고 신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기억에 남는 명대사는 끝부분에 방주에 타지 못한 사람들이 타게 해달라고 울부짖는데 앤 하우저장관이 우리 목숨 유지하고 힘들다며 태울 수 없다고 주장하자 헬슬리 박사가 말 하는 장면이었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이며 문명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것일진대 우리는, 지금 인간도 문명인도 아닙니다. 우리 자녀에게는 뭐라 말할겁니까? 남들이 흘린 피 위에 새로운 세상을 건설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인류는 형제이자 가족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 모두 살아야 합니다. 모두 태우세요.” 극한의 순간이 다가와도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을까? 영화라 비현실적이었을지는 몰라도 헬슬리박사의 인도주의적 발언이 참 인상깊었다.이 영화의 주제는 뭘까. 단순한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였지만 영화 구석구석 감동적인 부분이 있었다. 이혼했음에도 잊지않고 가장 소중한 가족을 구해내러 가는 주인공도 그랬고, 국민들을 버려두고 혼자 살기위해 떠날 수 없어 국민들 곁에 남은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감동 받았고, 떠나려는 엔 하우저장관에게 인도주의를 외치며 남아있는 사람들을 태울 것을 주장하는 헬슬리의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재난 영화였지만 나는 이 영화의 주제를 ‘사랑과 희생’이라고 하고 싶다. 나보다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이 영화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블록버스터인 만큼 이 영화의 시각적 효과는 한마디로 거대한 스케일의 CG효과라고 할 수 있다.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실감이 나서 빌딩들이 무너지고 화산이 폭발할 때는 온몸에 소름까지 돋았다. 영화관에서 큰 스크린으로 봤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싶었다.음향효과 또한 대단했다. 지진이 날 때나 쓰나미로 배나 비행기가 날려갈 때, 화산이 폭발해서 바위들이 떨어질때 나는 소리가 진짜 같아서 바로 내 앞에서 일어나는 일 같았다. 특히 영화음악중에서 영화가 다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나왔던 2012의 ost인 Time for Miracles가 영화 후의 여운도 남고 잔잔해서 기억에 남는다.성경에서 노아의 방주에 대해 찾아보면 이런 구절들이 있다. 마태복음 24장 37~39절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우리도 인간이 자만에 젖어 자연을 훼손하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지내면 이런 때가 곧 오지 않을까? 사람들이 빨리 자만심과 허영심을 버리고 자연과 하나님의 뜻을 받들며 살아갔으면 좋겠다.이 영화는 2012년 12월 21일 지구의 종말론이 현실로 발생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영화에서는 양자역학, 태양폭발, 중성자 반응과 지구 내부인 핵이 달구어 지면서 지각이 심하게 흔들리는 거대한 지진이 지나간 후, 지각 변동으로 생겨난 거대한 쓰나미에 의해 육지가 모두 물에 잠긴다는 과학적 가설로 종말을 뒷받침한다. 최근 아이티와 칠레에서 발생한 지진의 피해를 생각해 보면,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 이야기 보다는 현실적인 재난 영화이다. 외계 생명체와 전쟁의 경우 문명과의 충돌이지만, 재난의 경우 환경과 인류문명간의 충돌이기에 인류가 환경에 저항하는 방법은 극복이 아닌 피난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는 피난의 방법을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노아의 방주에서 차용하고 있다. 영화 초반부에는 주인공 잭슨 커티스에 의해 정부의 비밀 계획이 드러나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우주선을 통한 지구탈출을 연상하게 하지만, 후반부에서 우주선에 닻이 있다는 잭슨 아들의 말을 빌어 피난의 도구가 우주선이 아닌 노아의 방주 모양을 닮은 거대한 배라는 것이 드러난다. 거대한 쓰나미에 맞서 피난의 도구로 우주선이 아닌 배를 제작했다는 것이 이 영화의 현실성을 더해준다. 그리고 안전한 피난이 아닌 지구의 지붕 에베레스트 산과 배의 충돌 장면은 영화가 끝나는 시점까지 관객들의 시각적인 긴장감을 풀어주지 않는다.이 영화의 완성도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인간 세상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어 재난 영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주인공 잭슨은 이혼 가정의 아빠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동양적 정서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미국 가정에서는 일상화 된 모습처럼 위기의 가정임을 영화 초반에 드러낸다. 잭슨의 아들은 아빠라는 호칭을 쓰지 않을 만큼 잭슨에 대해 불신을 갖고 있지만, 가족이 함께 재난을 피해가는 과정을 통해 가족애는 회복되어 간다. 동양적 정서로는 미국의 일상적인 가정의 모습이 낯설기도 하지만 우리보다 개방적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우리 가정의 안전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The historical events represented in this story are true, and occurred around the borderlands of Argentina. Paraguay and Brazil in the year 1750.](이 영화는 1750년 아르헨티나.파라과이와 브라질 국경 지역에서 일어난 역사적 실화이다.) 영화는 이 자막으로 시작되고 있다. 영화 ‘미션’은 기독교 영화의 극치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이과숙 폭포를 로케이션장소로 선택했고 종교와 정치의 야합속에 사라진 남미의 소수민족 과라니 족에 대한 이야기이다.이 영화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가톨릭 사제인 ‘가브리엘’사제가 선교활동으로 ‘과라니’부족에 가톨릭 종교를 전도하게 되고, 그 마을을 근대적인 마을로 변화시키며 성당까지 세우고 원주민들과 생활하고 있었다.반면 ‘과라니’원주민들을 잡아가 노예로 스페인 등지에 팔아넘기던 노예상인 로드리고 맨도자는 사랑하던 여자가 자신의 동생과 바람이 나자 격분해 남동생을 죽이고 만다. 자신의 죄에 괴로워하던 맨도자는 가브리엘 신부의 조언에 따라 자신의 죗값을 치르기 위해 무거운 쇳덩이들을 짊어지고 과라니 부족이 살고 있는 이과수 폭포로 향하는 고행을 시작한다. 한 때 자신이 동물취급하며 노예로 팔아넘겼던 원주민들을 만나 폭포너머에 있는 과라니 부족에게 용서를 빌고, 그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맨도자. 그러나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영토분쟁으로 경계지역에 살고 있던 과라니족은 살고 있던 곳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나라간의 영토분쟁 때문에 살던 곳을 떠날 수는 없었던 과라니족과 선교사들은 그에 맞서 투쟁하기로 결심하고 맨도자는 무력투쟁을, 가브리엘은 침묵투쟁을 한다. 결국 과라니족은 멸족하고 맨도자와 가브리엘을 비롯한 모든 선교사들도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맨도자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과라니족에게 용서를 구해가며 봉사하던 때 성경을 읽던 장면이었다. 그 때 맨도자가 읊조리던 성경 구절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이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 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맨도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서서히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가는 과정이 너무나 경건하게 느껴졌다.이 영화의 명대사는 마지막에 모든 싸움이 끝나고 과라니족과 선교사들이 희생당한 끝에야 잘못된 것을 깨닫는 장면에서 주교가 한 말이었다. “나는 살아남고 그들은 죽었지만, 진짜로 죽은 것은 나고 산 것은 그 들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살아있는 자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사람은 살면서 자신의 이익과 현실의 명예, 부, 욕심에만 치우쳐서 살지만 진정으로 나중에 모두의 기억에 남게 되는 사람은 어떤 욕심에도 기울여지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그리고 하나님의 뜻만을 따르는 사람임을 느끼게 한 대사였다.이 영화는 종교영화이니만큼 주제 또한 단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삶’이 아닐까. 선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누가 말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데다 하나님도 알지 못하는 오지에 가서 아예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가르쳐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 하겠는가. 정말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선교사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였고, 비록 순교하였지만 그들의 숭고한 뜻은 역사에 길이 남아 이렇게 영화로까지 제작되었다. 아무리 어렵고 불행한 일이 다가와도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인 것 같다.이 영화의 시각적인 특징을 손꼽자면 원주민들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원주민들을 이끌고 연기를 시키고, 이과수 폭포를 오르는 연기가 그리 쉽지 만은 않았을 텐데, 제작진들과 연기자들 모두 자기 역할에 충실해서 훌륭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영화의 음향효과 또한 두말할 것 없이 영화가 진행되는 두시간 내내 나오던 엔니오 모리꼬네의 ‘가브리엘 오보에’곡을 들 수 있다. 평소 영화를 보면서 배경음악이 참 좋다는 생각은 자주 했었지만 배경음악에 압도되어 영화앞에 고개숙여지는 적은 처음이었다. 언제 들어도 내 마음을 깨끗하게 비워주고 경건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삼국지를 만화책으로도 보고, 책으로도 봤었지만 한참 어릴적에 봤던거라 기억에 남아있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삼국지에 관련된 영화를 본다길래 삼국지도 잘 모르는데 영화를 보고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은 걱정도 했지만,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서 쉽게 빠져들 수 있었다. 삼국지 중에서도 가장 박진감 넘치고 스케일이 크다는 적벽대전을 중심으로 한 이 영화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영화 적벽대전은 1, 2편 시리즈로 나뉘는 만큼 2편의 비중이 크지, 1편은 그리 중심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위, 촉, 오 세 나라가 서로 대립하던 서기 208년 중국, 천하통일을 위해 거침없이 전쟁에서 승리해가던 위나라의 조조는 뛰어난 통치력과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대륙의 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한편, 조조에게 쫓겨 계속 패하기만 하며 쫓겨나던 촉나라의 유비군은 최후의 보루인 신야성마저 함락당하고, 손권이 다스리고 있는 오나라 인근 강남지역으로 피난을 떠난다. 비록 패전을 거듭하기는 했지만 조조에게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진 유비군은 남은 병력으로 끝까지 항쟁할 것을 다짐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오나라와의 연합이 필요했는데, 전쟁을 기피하기만 하는 손권의 수락을 받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에 유비군의 책사인 제갈량이 손권을 설득하기 위해 오나라로 홀로 떠났다.제갈량은 손권에게 동맹을 제안하지만 손권은 조조의 대군 때문에 망설인다. 제갈량은 손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오나라 제일의 명장인 주유를 찾아간다. 서로의 능력을 알아보고, 주유는 거문고 대결을 통해 제갈량과의 연합을 결심하여 자신의 주군 손권을 설득한다. 한편, 적벽으로의 출정을 앞둔 주유를 바라보는 그의 아내 소교는 남편의 안위가 걱정되지만 이를 차마 말하지 못하는 가운데, 유비-손권 연합군은 적벽으로 향한다.10만과 100만대군의 전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조조는 100만 대군을 이끌고 오나라를 향해 최후의 출격을 하게되고, 10만 연합군은 양쯔강 지역의 험준한 ‘적벽’에서 조조의 100만대군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1편의 내용은 여기까지이다. 2편에서는 본격적인 적벽대전이 전개되고, 제갈량과 주유의 놀라운 지략과 병법들의 활약을 볼 수 있다.적벽대전1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유-손 연합군이 팔괘진법으로 조조군을 물리치는 장면이었다. 이렇게 스케일이 큰 전쟁영화는 처음 봤는데, 전략만 잘 사용하면 자기보다 강한 군대도 쉽게 이길 수 있다는 것에 지혜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기억에 남는 명대사는 주유가 적벽대전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면서 유비군과 손권군이 연합할 수 있도록 한 말이었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싸우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로 뭉치면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특히 이 대사를 할 때 주유가 지푸라기를 예로 들었는데, 한 줄기의 지푸라기는 쉽게 끊어지지만, 여러 다발의 지푸라기는 아무리 끊으려고 애를 써도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고 전쟁 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생활에서도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이 영화의 주제는 ‘협력’이 아닐까. 10만과 100만이라는 수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지만, 서로를 믿고, 힘을 합치면 적은 수로도 큰 적을 물리칠 수 있다, 라는 게 이 영화의 주제가 아닌가 싶다. 항상 말로는, 귀로는 늘 보고 들어왔지만 막상 하기 쉽지 않은 게 서로를 도와주고 믿는 것인거 같다. 비록 옛날 이야기일 뿐이지만, 옛날부터 내려오는 이야기인 만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교훈을 주는게 고전이 아닌가 싶다.이 영화의 시각적인 특징은 전쟁영화의 특성을 그대로 옮기면 될 것같다. 장대한 스케일 한마디면 충분할 것 같다. 특히 중국영화다운 수천명을 동원한 엑스트라와, CG효과에 소름까지 돋을 정도였다. 제대로 된 전쟁영화라면 이 정도는 되야지, 할 정도의 스케일 이었다. 영화를 제작한 감독과 배우들의 고생이 단번에 느껴졌고, 장면장면마다 그들의 수고와 땀이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