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미국의 루스 베네딕트 여사의 일본인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노작이다.1944년 6월, 미국이 일본에 대공세를 펴기 시작할 무렵 일본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미 국무부의 요청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계층 제도는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일본은 역사 전체 기간을 통해서 세대와 성별과 가정과 사회 모두 카스트제도적인 사회였다. 일본은 국내 문제뿐만이 아니라 국제 관계에서도 계층제도를 중시하고 있다. 계층제도를 위해서 전쟁도 불사한다는 것이다. 각국이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동안은 세계에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므로 세계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일본이 전쟁으로 질서를 바로잡아 각국에 알맞은 위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선의에 의거해서 대동아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이런 일본의 도덕률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일본만의 것이다.일본에 유학 갔다 온 조카는 이렇게 이야기한다.“일본인은 자신들의 과거 역사에 대해 별 관심이 없고, 일본이 우리나라에 침략전쟁을 일으켰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이렇게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 다르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우리나라에서 위계질서가 요청되는 인간관계에서조차 제멋대로 해동하는 것이 다반사인 요즘, 일본인의 질서 있고 남을 배려하는 태도가 부럽기도 하다. 스승은 스승답게, 제자는 제자답게, 불자는 불자답게, 대통령은 대통령답게, 남편은 남편답게, 아내는 아내답게 알맞은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면 좋겠다.특유의 일본적인 도덕 중에 ‘기리(義理)’라는 것이 있다.“기리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는 말을 일본인이 자주 쓴다. ‘기리’란 올바른 도리, 사람이 좇아야만 될 길, 세상에 대한 변명 때문에 본의 아니게 하는 일 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일본인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기리를 모르는 인간‘이라는 무서운 비난을 듣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에게서 수치를 당하는 것이다.이름에 대한 ‘기리’란 자기 자신의 명성에 오점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가미카제 특공대는 물질에 대한 정신의 승리이며 전쟁에서 끝까지 싸우다 죽는 것을 명예롭게 생각한다. 명예를 실추당했다고 느끼면 사무라이는 ‘하라키리(할복자살)’로서 자신의 명예를 지킨다. 일본인은 자살이 자신의 이름에 대한 ‘기리’에서 당연히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행동방식이 된다. 아침마다 하는 목욕은 다른 사람이 던진 흙탕을 씻어내는 것으로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다. 강한 사람은 개인적 행복을 도외시하고 끝까지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는 인간이다.일본 어디를 가더라도 깨끗하고 조용하고 친절한 것은 이런 사고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다.일본에는 도둑도 없고 시끄러운 밤문화도 없다. 친절하지만 지극히 섬세하고 냉정하며, 고독과 권태를 견디지 못하여 사이코들도 많다는 설명을 들으니 일본인의 습성이 좋기만한 것은 아니다.일본인의 종교관도 특이하다.세계는 선과 악의 싸움터가 아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영혼이 있는데 온화한 영혼과 거칠은 영혼이다. 이 두 개의 영혼은 모두, 저마다 다른 경우에 필요하며 선이 된다. 그들의 신들조차 현저하게 선악의 성질을 모두 겸비하고 있다. 각자의 영혼은 원래 새 칼과 같이 덕으로 빛난다. 다만, 그것은 갈지 않고 있으면 녹이 슬게 된다. 사람은 자신의 인격을 칼과 마찬가지로 녹슬지 않도록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설사 녹이 슨다 하더라도 그 녹 밑에는 빛나는 영혼이 있기에 그 녹을 갈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일본은 어떤 종교에도 경전을 용인하고 있지 않다. 신도에는 경전이 아예 없고 일본 불교의 여러 종파도 교외별전이거나 불립문자라는 것을 교의로 하거나 혹은 경전 대신에 ‘나무 아미타불’ 혹은 ‘나무 묘법연화경’이라는 문구를 되풀이하면 된다. 불교국임에도 불구하고 윤회와 열반사상이 없다. 사토리(깨달음)를 이룬 사람은 누구나 열반의 경지 들 수에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열반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소나무 숲에서도, 새들의 날개짓 속에서도, 우리는 열반을 만날 수 있다. 사후에도 인과응보라는 개념이 없다. 신분이 낮은 농부들조차 죽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각 가정의 불단에 모셔져 있는 가족의 위패를 나타내는 말이 바로 ‘부처님’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부처가 된다면 사람이 굳이 한평생 육체를 괴롭히고, 절대적 경지에 도달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자학적 고행을 수행 방법으로 택하지도 않고 금욕적인 생활도 요구하지 않는다. 일본 최대의 종파인 정토진종에서는 승려는 아내를 얻고 자식을 얻는다.1954년 이승만 대통령이 발표한 불교정화운동은 순수한 한국불교를 지키기 위해서 일제 잔재인 대처승을 축출하고 비구승이 사찰이 주도권을 잡아야한다는 것이다. 화합을 통한 불교개혁의 원래 취지에서 벗어나 비구, 대처승과의 격렬한 분규로 그 후유증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대처승은 일본에서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스님도 가정을 가지면서 참선을 하고 수행을 쌓고 우아한 시를 짓고, 검박하고 간소한 생활을 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