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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동인의 <광염소나타> 짤막한 감상평
    를 읽고천재의 광기어린 예술작품의 탄생을 위해서 우리는 그 천재가 어떠한 잘못을 하더라도 눈감아줘야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엄청난 예술작품을 탄생시키기 위함이라 하여도 죄는 마땅히 벌해야하며,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예술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길로 교화시켜야 하는 것일까.는 음악비평가 K와 사회교화자 모씨와의 대화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K는 '기회'라는 것이 사람을 흥하게도 망하게도 하는 것을 아냐고 물으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또 한 가지―사람의 천재라 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어떤 가 없으면 영구히 안 나타나고 마는 일이 있는데, 그 란 것이 어떤 사람에게서 그 사람의 와 을 한꺼번에 끄을어 내었다면 우리는 그 를 저주하여야겠습니까, 축복하여야겠습니까?"이는 여기저기에 불을 내고 다니고, 송장을 집어 던지기도 하고 살인을 하는 것으로 광기 어린 작품을 만들었던 백성수에 관하여 K가 말을 꺼내기 위해 서두로 끄집어 낸 대화이다. K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백성수를 옹호한다."(중략) 힘있는 예술, 선이 굵은 예술, 야성으로 충일된 예술―우리는 이것을 기다린 지 오랬습니다. 그럴 때에, 백성수가 나타났습니다. 사실 말이지 백성수의 그 새 예술은 그 하나 하나가 모두 우리의 문화를 영구히 빛낼 보물입니다. 우리의 문화의 기념탑입니다. 방화? 살인? 변변치 않은 집 개, 변변치 않은 사람 개는, 그의 예술의 하나가 산출되는 데 희생하라면 결코 아깝지 않습니다. 천 년에 한 번, 만 년에 한 번 날지 못 날지 모르는 큰 천재를, 몇 개의 변변치 않은 범죄를 구실로 이 세상에서 없이하여 버린다 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 아닐까요. 적어도 우리 예술가에게는 그렇게 생각됩니다."모씨는 그러한 죄를 가만히 볼 수 없고 벌해야한다고 말한다. 물론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모두들 모씨의 말에 동의할 것이다. 어떻게 방화나 살인이 예술작품의 탄생이라는 명목 아래에서 정당화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예술가의 입장에서 보면 K씨의 말은 지극히 이해가 간다. 예술 하나가 산출되는 데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평범한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서 예술이 탄생한다면 물론 좋은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도 그런 것들을 모두 감수해서라도 하나의 예술작품을 탄생시키는 것이야말로 예술가들에게는 중요한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죽었지만 후손 대대로 이름 남기는 예술가들은 그러한 사람들에 비해서 정말 작은 숫자이다. 그렇기에 K는 그러한 광기 어린 백성수의 살인 역시 묵인하고 넘어가기를 바라는 것이다.그렇지만 위대한 예술작품을 위해서 방화나 살인이라는 죄를 덮을 수 있는 것일까? K의 말대로라면 '어떤 위대한 하나'를 위해서 소수의 희생은 당연하다는 것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백성수라는 자에게 당한 소수 중에 '기회'를 얻지 못해 범인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있었으면 그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이처럼 백성수, 그의 광기어린 최후를 보며 그가 겪는 처음의 계기, 즉 기회라는 것이 다른 것에서 발견되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안타까움이 남았다. K는 그것이 예술작품의 탄생을 위한 행동이라 하였지만 다른 이들이 보기에 백성수가 한 행동은 한마디로 미친 짓이며 살인자와 다름없는 행위였다. 나 역시 그의 행위에 대해서는 충분히 벌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방화나 살인 등이 정당화 될 수 있을까.모씨의 말처럼 사람은 죄를 지어서는 안 된다. 죄를 지었다면 그 죄에 대한 벌을 달게 받아야한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내면 속에 광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억제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그것을 백성수와 같이 표출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백성수와 같은 천재성 없이 광기를 표출하려고만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K는 그들을 보며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예술가와 상관없다는 이유 하나로 백성수를 옹호하던 그의 말은 모두 사라지고 광기를 표출한 사람에게는 분명 아무런 효력이 없을 것임과 동시에 옹호조차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백성수와 그저 광기를 표출하기만 한 사람과의 차이는 광기 표출 후에 나타난 결과인 '예술작품 유무'의 차이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예술작품의 가치가 사람의 목숨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이냐는 것에 대해 우리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그가 살해한 사람들이 천재성을 가진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역시 정확히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에서 그들의 목숨이 예술작품보다 못하다는 것은 결국 K의 말에는 모순이 있다고 생각한다.종합하자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술이라는 것은 그러한 광기나 흥분에 대한 충동에 대해서 억제하면서 고통을 이겨내는 자만이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한 자기억제 속에서 사람은 끊임없이 고통을 받으면서 한계를 부딪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한계를 뛰어넘는 자만이 진정으로 자기의 광기를 다스릴 줄 앎과 동시에 광기를 자유자재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러한 맥락으로 볼 때 백성수의 살인행위는 결코 예술인이라는 이름 하에서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이 든다.
    독후감/창작| 2011.11.10| 3페이지| 1,000원| 조회(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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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코페미니즘으로 보는 한강의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를 읽고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어느 날 꿈을 꾼 후, 육식을 거부하는 아내의 모습과 그러한 아내와 나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서 페미니즘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작품의 시점은 채식하는 아내를 둔 회사원 '나'로 전개된다. '나'는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엔 그녀를 전혀 특별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특별한 매력도 없고 단점도 없는 그녀가 맘에 든다는 부분에서 그가 아내를 어떤 시선으로 보아왔는지 알 수 있다.결혼 오년차에 접어들었으나, 애초에 열렬히 사랑하지 않아 특별히 권태로움도 느끼지 않고 평범한 일상이 반복되던 중, 아내는 자신이 꾼 꿈 때문에 갑작스럽게 변하게 된다. 새벽에 잠이 깨어 냉장고를 마주보는 아내를 본 '나'는, 아내에게 새벽에 뭘 하냐며 지금이 몇시냐는 핀잔만 주고는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그 날 아침, 냉장고 속의 고기나 생선, 유제품 등을 버리는 아내를 목격한 '나'는 그런 아내의 행동을 못마땅하며 회사로 출근한다. 이러한 '나'의 태도는 변화 된 아내의 모습을 걱정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상황만을 인식하고 짜증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그날 이후, 아내는 옷에 피가 묻어있는 자신, 날고기를 씹어 먹는 생생함 등에 관하여 반복되는 꿈을 꾸며 불면증에 시달린다. 고기 없는 저녁식탁 앞에서 이제 채식만 하겠다는 아내를 보며 과거엔 식성도 좋았으며 큰 가위로 불고기를 잘 잘라내던 아내를 회상한다. 식성 좋던 아내가 꿈 하나로 인해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것이다. 계속되는 채식 식단과 함께 꿈으로 인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아내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 간다. 그러한 아내를 보면서도 '나'는 아내에 대한 걱정보다는 그렇게 된 아내의 모습과 상황에 계속해서 못마땅해하며 짜증만 낼 뿐이다.어느 날, 나는 사장의 부부동반 모임에 초대되어 아내와 함께 외출한다. 결혼하기 전에도 브래지어는 자신을 답답하게 만드는 것 같다는 아내는 그 날도 역시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채로 사장 부부와 모임을 갖게 된다. 또한 호박죽 외의 음식에는 일절 입을 대지 않는다. 이러한 아내의 모습을 보며 사장 내외는 처음에는 채식주의자에 대한 배려 섞인 말을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점점 그들의 대화에서 아내는 소외된다. 이러한 모습에서 사회 구성원들 간에는 음식문화라는 것도 중요한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채식하는 풍조가 만연하지 않은 사회에서의 채식주의자는 소외 당할 수 없는 인물인 것이다.아내의 채식이 계속되자 '나'는 아내의 친정에도 이를 알린다. 그리고 그는 육회를 즐기는 장인, 활어회를 직접 뜨는 장모, 정육점용 큰 칼로 닭을 손질하던 처형과 아내를 떠올리며 아내의 계속되는 채식이 멈추기를 바란다. 그러나 가부장적인 장인의 앞에서 고분고분 말을 잘 듣던 아내는 억지로 탕수육을 먹이려 하는 장인에게 반항하며 결국 과도로 자해를 시도한다. 그 일로 병원에 입원하게 된 아내를 위해서 흑염소 즙을 내온 어머님의 성의도 채식을 하는 아내는 무시한다.이러한 일의 시발점이 되었던 아내가 꾼 꿈의 정체는 작품의 후반부에 가서야 밝혀진다. 그녀가 어린 시절, 개한테 다리를 물려서 다치게 되는데, 사람을 다치게 만든 개를 다친 사람이 먹으면 낫는다는 속설 때문에 그 날 아버지는 오토바이에 개를 매달고 죽을 때까지 동네를 돈다. 그렇게 서서히 피범벅이 되어 죽어가는 개의 눈을 바라보았던 그녀는 보신탕을 먹으면서 아무렇지 않다는 자기 위안을 한다. 이러한 그녀의 트라우마가 어느 날 갑자기 꾸게 된 꿈으로 인해 스위치가 켜지면서 그녀의 채식이 시작된 것이다. 아내의 병실에서 깜박 잠이 든 '나'는 아내가 없어진 것을 깨닫고 병실 밖으로 나가 아내를 찾는다. 그리고는 병원 분수대 옆 벤치에서 상의를 탈의하며 손에는 무언가를 꼭 쥐고 있는 아내를 찾아낸다. 아내의 손에는 포식자에게 뜯긴 듯, 거친 이빨자국과 함께 혈흔이 묻어있는 동박새의 시체가 떨어진다.이처럼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조금은 극단적인 것을 통해 에코페미니즘 소설의 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페미니즘 비평은 여성이 남성과 차이 있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차별적으로 열등하게 취급당하였다는 점, 또한 문학 중심으로 볼 때, 여성 작가들과 독자들은 언제나 불리한 입장에서 일해 올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의 자각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한강의 『채식주의자』는 이러한 페미니즘 이론 중 하나인 에코페미니즘에 더욱 초점이 맞춰져 있다. 생태학과 여성론이 결합한 에코페미니즘은 '여성/자연' '남성/문화'에 대한 직시, 그리고 여성의 피지배성과 자연의 피지배성 사이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직시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에코 페미니즘의 근본 전제는 여성과 자연간의 동일성에 있다. 이는 아내와 그 밖의 인물 등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아내는 여성적 이미지를 대표하며 채식을 통해 그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나'와 그밖의 인물들은 육식을 통한 남성적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아내가 브래지어를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모습에서는 인공성을 기피하며 자연적인 것을 갈구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것 역시 에코페미니즘의 한 단면이라 볼 수 있다. 또한,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에서 억압받고 있는 아내의 모습 역시 페미니즘에서 필시 해체하고자 하는 여성과 남성의 대립구도의 하나라고 할 수 있으며, 이 작품 내에 나오는 아버지의 모습은 군인이면서 동시에 폭력성을 가지고 가부장적인 극단적인 남성의 이미지라고 볼 수 있다.
    인문/어학| 2011.11.10| 3페이지| 1,500원| 조회(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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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육사, 그의 시 세계 -<광야>와 <청포도>를 중심으로-
    [현대시의 이해]이육사, 그의 시 세계- 목차 -1. 저항시인, 이육사2.「광야」2-1. 「광야」2-2. 「광야」해석3.「청포도」3-1.「청포도」3-2.「청포도」해석4. 결론1. 이육사(李陸史, 1904.4.4~1944.1.16)우리 문학사에 대표적인 저항시인 이육사는 근대사를 짧지만 치열하고 강직하게 살다간 시인이자 항일 민족 운동가였다. 육사는 우리 역사의 가장 암울한 수난과 질곡의 시기(1904.4~1944.1)에 나고 자랐으며, 퇴계 이황의 14대 손으로 엄격한 유교가문의 전통적 법도 속에서 자랐다. 이런 맥락에서 육사가 처한 현실을 상고해 보면, 일제 강점기라는 부조리하고 모순된 시대적 상황과 더불어 조상 대대로 계승되어온 유교적 가풍 등이 복합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 육사의 자아의식 형성과 현실인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며, 그의 사상적 배경의 뿌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그는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264를 따서 호를 ‘육사’라고 지었다. 그의 작품 활동은 전체적으로 불과 12년 정도밖에 안 된다. 더군다나 생전에는 단 한 권의 시집도 출간하지 못하였고, 남긴 시작품 수(40篇)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제 시대 그의 숭고하고 고결한 애국 애족적 삶과 문학발전에 기여한 업적들은 민족의 시련을 극복케 하고 강인한 투지와 민족혼을 일깨워 주었으며, 우리 겨레에게 항일반제 민족 자주의지를 강하게 불러일으켜 새로운 삶의 좌표를 제시해 주었다.)이러한 점들을 미루어 볼 때, 그의 시를 이해함에 있어서 일제 강점기라는 특수한 시대상황은 육사가 저항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의 시「광야」와 「청포도」를 함께 감상하고자 한다.2. 「광야」2-1. 「광야」전문까마득한 날에하늘이 처음 열리고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스랴모든 산맥(山脈)들이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참아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끊임없는 광음(光陰)을부즈런한 계절(季節)이 피어선 지고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지금 눈 나리고매화향기(梅花香氣) 홀로 아득하니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다시 천고(千古)의 뒤에백마(白馬)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이 광야(曠野)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2-2. 「광야」의 해석사실 이육사의 시「광야」는 얼핏 보기에 쉽게 읽히는 시가 아니다. 이 시가 쓰인 시대와 함께 생각해봐야하는 시이다. 그는 이 시를 통해 조국의 광복을 염원하며,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단호한 의지를 표출해내고 있다. 미래지향적인 확고한 신념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첫 연은 태초의 상황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시작은 시 전체에 엄숙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게 해준다. 또한 둘째 연에서의 '참아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는 표현은 신성함까지도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이러한 신성함은 '광야' 속에 내포된 희망을 언뜻 보이게 한다.) 이 '광야'가 희망으로 읽힐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사실 시를 잘 보면 화자가 갈망하는 1연의 원초적 광야는 이미 사라졌고 또한 아직 도래하지 않고 있다. 그것은 "千古의 뒤에"만 가능할 뿐이다. 그의 시대는 가난하고 어둡다. 그러나 이 결핍과 부재는 엄밀히 말해서 '숨겨진 충만함'이다. 시인이 이 시대의 어둠과 가난함을 인식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 인식은 존재망각에 대한 인식으로서 그 자체 존재를 회복하고 드러내려는 의식이 되기 때문이다. 시인의 태도는 낮을 예감하면서 신(존재)에 가까이 머무르는 것, 곧 부재의 신에 접근함으로써 오랫 동안 끈기 있게 참고 기다리는 것이다.한편, 3연에서 라는 구절 속에는 소멸과 생성이 되풀이되는 지속성과 순환의 원리가 담겨있다. 또한 라는 구절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 또는 새로운 세계의 문명과 문화의 태동 및 그 전개를 시사하고 있다. 이 구절은 마치 큰 강물이 엄청난 속도와 힘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을 상상하게 하면서 힘찬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리고 이러한 생명력과 강물의 끊임없는 흐름은 앞서 말한 희망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또한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라는 부분이나 씨를 뿌리는 부분 역시 만발한 꽃처럼 만개할 씨를 뿌림으로써 미래의 희망을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시적화자의 의지는 바로 이육사와 연결되어 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이육사 자신의 내면적인 의지와 그의 미래지향적인 강한 신념이 투영되어 있는 시가 바로「광야」인 것이다.3. 「청포도」3-1.「청포도」전문내 고장 칠월은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주절이 열리고먼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흰 돛 단 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두렴.3-2.「청포도」의 해석시 「청포도」는 고향과 청포도를 제재로 삼고 있는데, 고향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그 고향에서 함께 지낼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통해 조국을 상실한 일제 강점기에 풍요롭고 평화로운 삶을 갈망하는 민족 정서를 엮어 내고 있다. 개인의 서정이 어떻게 민족적 서정으로 바뀌는가를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이 작품에서 묘사된 청포도 마을은 추억의 과거를 꿈꾸는 듯한 먼 하늘이고 밝은 미래가 함께 만나 조화를 이루는 마을이며, 바다마저 푸른 가슴을 열고 고달픈 나그네를 맞아들여 휴식과 위안을 제공하는 고장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고장이 맞아들이는 사람은 어디서 한가롭게 놀다가 오는 사람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성실하게 일했기 때문에 고달픈 몸으로 찾아오는 사람이다. 이 청포의 나그네는 ‘은쟁반’이나 ‘모시수건’이 나타내는 바와 같이 모자람도 남음도 없는 참으로 아름답고 품위 있는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연에서 ‘아이야 우리 식탁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을 마련해 두렴’이 상징하는 의미는 고향회복, 즉 조국이 광복된 날을 대비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는 곧 육사가 국권회복을 위해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인문/어학| 2011.11.10| 4페이지| 1,000원| 조회(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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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스트 구조주의로 보는 병신과 머저리(비평)
    포스트구조주의 비평으로보는「병신과 머저리」1. 서론2.「병신과 머저리」2-1. 소설 쓰는 의사, 그림을 못 그리는 화가2-2. 소설 쓰는 화가, 그림 그리는 소설가2-3. 병신과 머저리, 머저리와 병신3. 결론1. 서론1939년 8월 9일 전남 장흥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대 독문과를 졸업했다. 초기의 작품 ?병신과 머저리?(1966), ?굴레?(1966), ?석화촌?(1968), ?매잡이?(1968) 등에서 현실과 관념, 허무와 의지 등의 대응관계를 구조적으로 파악하며 그는 경험적 현실을 관념적으로 해석하고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강하다.그의 문장은 하나하나가 충일한 무게를 가지고 있어, 줄거리만을 훑어보는 식의 안이한 독법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집 『소문의 벽』 후기에서 소설 쓰기를 ‘자기 구제의 몸짓’이라 불렀다. 여기에서 자기를 구제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글쓰기의 의미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며, 다른 하나는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고 있는 내외적 조건들에 대한 성찰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소설이라는 언어와 언어 그 자체에 관한 반성을 낳는다. 그의 소설에서 흔히 구사되는 액자소설의 기법이라든지 추리소설적인 요소, 또한 언어 그 자체에 대한 관심들은 이러한 반성적 사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본고에서 다룰「병신과 머저리」는 이청준의 초기 작품으로, 60년대 전쟁을 겪은 세대와 겪지 않는 세대의 모습을 형과 나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의사였던 형은 자신이 주도한 수술에서 소녀가 죽자, 그것을 계기로 소설을 쓰게 되었으며 동생인 '나'는 그런 형의 소설을 읽으며 그 시점에서 멈춰버린 자신의 그림을 소설의 결말을 따라가며 완성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형과 동생의 이항대립적인 구조를 통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포스트구조주의를 간략히 살펴보자면, 하나의 텍스트가 그 자체의 구조?통일성?결정적 의미를 확정할 수 있는 적절한 토대들을, 그 텍스트 속에 전개되는 언어 체계 속에 갖고 있는 절대적 주장을 뒤엎고 나온 텍스트 해독에 관한 연구 방법론으로, 재래적인 작품 읽기나 해석 방법을 부정하고 새로운 텍스트 읽기를 주장하는 비평 방법)이다.본고에서는 이러한「병신과 머저리」가 위에서 말한 포스트구조주의 비평 방법에서는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또 형과 동생으로 나타나는 이항대립구조가 어떻게 해체되고 와해되어 나타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2. 「병신과 머저리」2-1. 소설 쓰는 의사, 그림을 못 그리는 화가「병신과 머저리」에서는 형과 나로 대입되는 것들의 이항대립구조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표를 통해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형동생직업의사화가아내혜인작품 활동소설그림전쟁 세대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소설의 결말오관모김일병이유를 알고 있는 환부이유를 알지 못하는 환부얼굴형이 완성시킨 얼굴내가 완성시킨 얼굴술담배작품 속 '형'과 '동생'을 기준으로 위와 같이 이항 대립적인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 아내를 다른 남자와의 삼각관계에서 차지한 형과 자신이 좋아했던 혜인을 아무 말 없이 떠나보내기만 한 동생, 몸소 전쟁을 겪은 형과 전쟁을 겪지 않은 전쟁 다음 세대인 동생, 괴로울 때 술을 마시는 형과 담배를 피우는 동생 등 이러한 대립 요소들은 작품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작은 요소들인 셈이다. 작품 속 '형'은 외과의사로, 찢고 자르고 꿰매며 이십년 동안 조용하게만 살아 온 사람이며, 화자인 '동생'은 학생들을 가르치며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다. 그러나 갑자기 형이 수술한 소녀의 죽음을 계기로 그 둘은 수술하는 의사,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아니게 된다. 끊임없이, 부지런히 환자들을 돌보아오던 형은 그 후로 병원 일을 놓고 소설을 쓰는 것에 매진하게 된다. 그리고 형이 소설을 시작함과 동시에 '나'의 화폭 역시 갑자기 고통스러운 넓이로 변하면서 며칠이고 선하나 더해지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것을 계기로 수술을 하던 형은 소설을 쓰는 의사가 되었고, 그림을 그리던 동생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화가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함을 가져오게 된다. 그러나 앞서 말한 이항대립요소들은 이유를 알고 있는 환부를 가진 형과 이유를 알지 못하는 환부를 지닌 동생이 서로 다른 결말로 끝낸 소설과 같이 끝내 같은 인상을 가진 얼굴을 공유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형이 쓰는 이 '소설'은「병신과 머저리」에서 작품을 주로 이끄는 것으로, 형이 소설을 거의 완성시켜 갈 무렵부터 형은 다시 의사로 복귀를 하게 되고, 동생 역시 자신의 화폭 속 인물의 외곽선을 점점 완성시켜 나가게 되는데, 그렇다면 대립이 확고해 보이는 이러한 요소들은 포스트구조주의 관점에선 어떻게 볼 수 있는지 다음에서 살펴보도록 하겠다.2-2. 소설 쓰는 화가, 그림 그리는 소설가「병신과 머저리」를 얼핏 보면 동생인 '나'가 형의 소설을 통해 자신을 투영시킨다고도 볼 수 있다. 마치 상상적 단계에서 자아가 형성되지 않아, 형의 소설을 통해 라캉이 말하는 '거울 단계')를 맛보는 것이다. 마치 화자인 '나'는 '거울 단계'에 있는 아이처럼 소설 속에 비친 을 통해 유쾌한 통일감을 맛보면서, 이것이 스스로에게 다시 투영되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러한 재 투영의 과정을 경험함으로써 결국에는 소설 속 가 자신이라는 의식을 점차적으로 키워가게 되는 것이다. 즉, 동생인 '나'는 형이 쓴 소설 속 를 형이 아닌 자기 자신의 모습으로 바라보게 되었기 때문에 그토록 형의 소설에 집착하면서 나중엔 결말까지 자신이 채워 넣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자신의 환부의 이유를 모르는 동생이 형의 소설을 통해 자신의 결핍된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동생만이 형에게서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고 했을까? 위에서 본 이항대립요소들은「병신과 머저리」의 전개 과정에서 형과 동생으로 무조건적으로 대립을 하지 않으며 역전된다. 그리고 이러한 역전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결국 형의 소설이다. 그러나 여기서 빠지면 안 되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화자의 그림이다.동생이 자신의 결핍을 형에게서 채워 나가듯, 형 역시 동생의 그림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한다. 일단 형이 쓰는 소설은 앞서 보았듯 형만의 공간이 아니다. 화자인 '나'는 형의 소설을 항상 확인하며 자신의 화폭에 얼굴의 윤곽선만 있는 것을 발전시키려 애를 쓴다. 결국 형의 소설 결말 부분에는 자신이 생각한 결말을 넣어버리기도 한다. 반대로 형은 '나'가 그린 그림을 보며 손가락으로 화폭에 구멍을 뚫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는 그 얼굴이 아니라는 둥 동생의 그림을 나무라기도 한다. 결국 형과 동생은 서로의 예술 작품에 참견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포스트구조주의에서의 작품의 대립은 텍스트상의 의미 진행에 있어서 서로를 침식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립 관계의 쌍은 튼튼하지 않고 서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섞여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이러한 해체는 텍스트가 궁지에 몰리고 뿔뿔이 흩어지면서 자기모순을 일으키는 아포리아를 찾아내게 된다.) 즉, 형의 소설과 나의 그림은 서로에게 모순을 일으키는 아포리아인 것이다.2-3. 병신과 머저리, 머저리와 병신이유를 알지 못하는 환부를 가지고 있는 동생은 이 환부의 원인을 찾기 위해 필사적이다. 반대로 자신의 환부를 알고 있는 형은 소설을 통해 자신의 환부에 대한 트라우마를 없애려 노력한다. 그리고 환부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동생과 환부의 이유를 알고 있는 형의 결말은 어긋나서 그들이 겪고 있는 환부가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힘이 없는 김일병을 쏴 죽이는 것으로 끝낸 화자와, 김일병을 쏴 죽인 오관모를 쏘고 온 형. 그리고 힘이 없던 김일병을 쏴 죽인 동생에게 분노하는 형과, 오관모를 실제로 만나고 돌아온 형의 모습을 보고 아픔을 느낀 동생. 그들은 이런 것에서마저 대립이 아닌 서로에 대한 침식을 보여준다.소설의 초반부터 화자는 형을 말할 때 '참새같은' 가슴을 지닌 성격의 형을 묘사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환부의 이유를 알고자 집착한 형의 소설 속에서 를 대신해 결국은 김일병을 쏘는 것으로 소설을 마무리 짓는다. 이러한 동생에게 분노하는 형의 모습은 거지소녀를 밟고 지나간 모습과 모순점을 보이기까지 하다. 이러한 것을 볼 때 동생이 김일병을 죽인 것을 보며 분노하는 형의 행동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형은 동생의 말처럼 '참새같은' 가슴을 지녔기에 그러한 결말을 감히 쓰지 못했을 것이다.오관모를 만나고 와서 술에 취한 형은 가만히 듣고 있는 '나'를 향해 '참새 같은 것'이라며 소리를 지르며, '썩 네 굴로 꺼져'라 한다. 이는 김일병을 불쌍하게 여기던 형이, 화자인 동생을 굴 안에서 팔이 썩어가던 김일병과 동일시하게 보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또한 그 자신과도 동일시하게 동생을 보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의 행동은 소설 속 김일병에게 하던 의 태도와는 사뭇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나'가 그린 완성된 그림을 형이 너덜하게 만들어버리는 대목 역시 자신의 환부를 드러내는 동생의 태도를 덮어버리는 형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겠다. 이를 통해 추측해보면 사실 형 역시도 '나'와 같은 소설의 결말을 써내려 가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10.12.17| 5페이지| 2,500원| 조회(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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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미니즘을 통해 보는 전경린의 `바닷가 마지막 집`
    페미니즘 비평을 통해 보는전경린의 「바닷가 마지막 집」1. 서론2.「바닷가 마지막 집」2-1. 엄마2-2. 질2-3. '나'의 '바닷가 마지막 집'3. 결론1. 서론「바닷가 마지막 집」의 전경릭 작가는 1995년『동아일보』신춘문예에 중편소설 ?사막의 달?이 당선되어 등단하였으며, 1996년에 ?염소를 모는 여자?로 제29회『한국일보』문학상을, 그 다음 해에는 장편 ?아무 곳에도 없는 남자?로 제2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그리고 1998년에 단편 ?메리고라운드 서커스 여인?으로 21세기문학상을 수상했다. 전경린의 소설적 경향은 여성의 성 문제에 대한 탐색을 서사 담론의 중심부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서술자의 시선을 통해 은폐되고 억압되었던 성 문제가 드러나게끔 서사를 구성하고 내면의 성찰을 서술하는 그의 솜씨는 결코 만만치 않다 하겠다.전경린의 소설들이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은 비관적인 삶의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난해하기도, 때론 단순하기도 한 자신의 인생을 방관하면서 현실의 변화에 탐닉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본고에서 다룰「바닷가 마지막 집」을 주로 페미니즘 비평의 관점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페미니즘 비평은 여성이 남성과 차이 있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차별적으로 열등하게 취급당하였다는 점, 또한 문학 중심으로 볼 때, 여성 작가들과 독자들은 언제나 불리한 입장에서 일해 올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의 자각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 그리고 사회의 모순 속에 특수한 형태로 내재해 있는 여성 문제를 포착해 내고 올바른 전망을 제시하려는 일련의 움직임을 지칭한다.「바닷가 마지막 집」에서는 화자의 '엄마'가 페미니즘 비평 분석에 중심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페미니즘 비평 방법의 특징으로「바닷가 마지막 집」에는 어떤 방식으로 페미니즘 비평의 특징이 드러나 있는지, 그리고 '나'가 '바닷가 마지막 집'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또한 어떻게 과거의 자신을 극복하는 지 알아보도록 하겠다.2. 「바닷가 마지막 집」2-1. 엄마「바닷가 마지막 집」외에도 페미니즘 비평에서 중요시 하는 것은 여성 중에서도 '어머니'이다. 아무래도 '어머니'라는 존재가 가지는 공통적인 특징인 모성애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작품 속 어머니의 모습은 자식들을 위한 가사와 노동에 전념한다. 그렇지만「바닷가 마지막 집」에 나오는 어머니의 모습은 작품 속 보편적인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한 우리에게 당혹감을 주기도 한다.「바닷가 마지막 집」에서 나오는 엄마 역시 항상 밭일을 하러 다니며 일에 찌든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들이「바닷가 마지막 집」에 나오는 어머니 혼자서 해내는 일이 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하는 농사일이기 때문에 남성과 대비되는 여성의 노동으로만 볼 수 없다. 아버지에 관한 어머니의 생각이 작품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제일 초반에 물이 나오지 않는 수도꼭지를 보며 '나'는 엄마의 관용구를 떠올린다. '니 아버지 하는 일이 그렇지'라는 엄마의 관용구를 보며 아버지에 대한 신뢰를 잃은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작품 속에서 거의 부재하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자식들에게나 엄마에게나 이미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의 존재감이나 의미가 상실된 것을 알 수 있다.처음 아버지의 고향으로 왔을 때는 아버지의 주장에 순순히 따라와 농사일을 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가부장적 체제가 살짝 보이는 측면으로도 볼 수 있으나, 시간이 흘러 아버지의 계속되는 실패로 인해 아버지의 권위가 실추되며 어머니의 순종적인 태도 역시 사라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경제적인 면에서의 실패는 어머니에게 책임감을 불어넣어주게 되었다. 집안에서 남자라곤 군대 간 오빠를 제외하면 아버지 뿐인데, 그런 아버지의 존재가 존재감을 상실했으므로 실질적으로 집안을 이끄는 것이 어머니 자신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책임감의 압박은 어머니가 '여성'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집안에 부재상태인 아버지를 대신하여 그 자리에 어머니가 들어가게 되고, 결국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열심히 생활하는 여성의 노동과 더불어 아버지의 책임감을 동시에 지니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동시에 지니는 인물이 되는 것이다.얼핏 보면 페미니즘 비평에서 중요시 하는 '해체'의 개념과 동일선상에서 볼 수 있으나 작품 속 어머니의 행동은 그렇지 않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두고 보면 어머니는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홀로 독립 가능한 존재로 보인다. 그렇지만 어머니에게 부재 상태인 아버지의 자리는 군대에 있는 오빠의 자리로 보이기도 한다. 군대에서도 꼬박꼬박 월급을 보내며 어머니에게 제대 후 꼭 효도하겠다는 오빠의 사진을 보며 어머니는 매일 밤 하염없이 운다. 이는 남성 중심적인 가부장적 그늘 아래에서 벗어난 것 같이 보이던 어머니가 결국에는 아버지를 대신한 오빠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에는 어머니의 아버지의 실패로 인한 아버지에게 의존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반동이 개인의 독립으로 이어지지 않고, 또 다른 남성인 오빠한테로 귀결되는 것을 볼 수 있다.한편 '나'의 시선에서 어머니는 항상 우울해 하는 존재이다. 얼마 전만 해도 아버지를 원망하고 도시 생활을 회상하던 엄마는 사라지고 그저 우울해 할 뿐이다. 그리고 화자인 '나'는 이러한 어머니를 계속 챙기려 하고 있다. 물론 마땅히 하는 일 없이 백수라는 이유도 있지만, 어머니와 '나'가 닮아있기 때문에 가족들 중 가장 어머니를 챙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소가 낳은 송아지를 보며 가슴에 뜨거운 것이 치받고 올라 눈 사이가 뜨거워졌다는 둥의 표현을 보면 가족들 중에 유일하게 모성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 나와 있는 유일한 인물로 볼 수 있다.가족들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가 항시 같은 일과로 마무리하는 것처럼 굴레처럼 '나' 역시 시골집에 갇혀 하루하루를 굴레와도 같은 쳇바퀴 속에서 지내고 있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반면에 동생은 집안의 실질적 가장으로 역시나 쳇바퀴 속에 일상을 보내고 있다. "돈버는 사람은 저애 하나뿐"이라며 어머니는 동생에게 압박감을 준다. 항상 애틋하게 생각하는 오빠와는 달리 같은 여자인 동생에겐 위로의 한 마디도 건네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동생은 항상 도시로 나가고 싶어 한다. 결국엔 질이 죽은 지 일주일 정도 후, 홀연히 도시로 떠나는데, 이는 자칫하면 대물림 될 뻔한 '어머니의 삶의 굴레'에서 동생이 스스로 벗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정리하자면, 어머니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경제적 실패와 함께 실질적으로는 부재 상태로 볼 수 있는 아버지의 권위 실추는 어머니에게 있어서 남성 없이 스스로 자립하게 만든 것과 동시에 책임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남성과 여성이 복합된 어머니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보일 수 있으나, 알고 보면 부재상태라고 생각된 아버지의 자리에 군대에 있는 오빠가 대신 차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에 어머니는 독립적인 하나의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끝까지 남성에게 의존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2-2. 질「바닷가 마지막 집」에서 '질'은 동물이라고 무시할 수 없다. 작품 속 등장인물들에게 제각각 영향을 주는 구성요소인 것이다. 처음 '질'의 이름을 보고는 왜 질일까 의아해했었다. 그러다가 후에 동생의 꿈에서 삶은 계란을 주는 질을 보며 정말 이는 단순히 여성의 질에서 따온 이름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질은 작품 초반부부터 삶과 연관된 행동을 보였다. 소가 송아지를 낳을 때 나온 태를 범구아재가 들고 나오자, 질은 그 태를 기웃거리며 꼬리를 게으르게 흔들며 뒤를 따른다. '나'조차도 그런 질의 행동을 보며 송아지의 태를 탐내는 것일까하며 의문을 품는다. '태'는 결국 '탄생'을 뜻한다. 질과 탄생은 무시할 수 없는 관계로 보인다.또한 동생의 꿈속에서 삶은 계란을 건넨 후 질은 사라진다. 마치 삶은 계란은 여성의 몸에서 나온 '난자' 마냥 동생이 그것을 받고 일주일 정도 후에, 동생은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떠나 도시로 떠난다. 즉, 굴레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 그리고 또한 '나' 역시 승혜와 헤어진 후에 밤길에 길을 걷는데 순간 동생이 얘기해 준 꿈속의 질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질은 '나'에게도 삶은 계란을 준 것 같은 느낌을 주며, 화자 역시 그 순간부터 확실한 인식의 전환을 깨닫게 된다. 다시 태어나는 셈이 된 것이다. 이처럼 질은 나와 동생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새로운 자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인 것이다.그렇다면 어머니는 왜 자꾸만 질을 괴롭히며 없애려고 한 것일까? 어느 날부터 키우던 질이 귀신이 되었다며 질을 없애려고 하는 것은 아버지에게 느끼는 미움을 대신 푸는 대상인 동시에 '삶'과 관련된 질로 인해 더욱 책임감을 느끼게 된 어머니의 압박감이 빚어낸 행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른 시각으로 보면,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조금이나마 들어가는 돈을 줄이고자 하는 어머니의 필사적인 마음으로도 볼 수 있다.2-3. '나'와 '바닷가 마지막 집''나'는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시골로 내려와 발령을 기다리고 있다. 하루종일 일을 하고 돌아오는 동생과는 달리 집에서 내내 있기도 하고 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읽기도 한다. 바람이 멋대로 펼친 장에서 '바닷가 마지막 집'이 나온다. 이 집에 대한 설명은 마치 지금의 '나'가 바라는 이상향 같다. '나'가 머물고 있는 시골집과는 무척이나 대조적인 모습이다. 시골집에서 발령만 기다리는 의욕 없는 하루하루에서 자신을 구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항상 그늘 속에서 누구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었으며 자주 눈물을 흘린다. 이러한 의존적인 모습에서 오빠를 기다리며 매일 울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나' 역시도 어머니의 그림자를 따를 것만 같이 보인다.
    독후감/창작| 2010.12.17| 5페이지| 2,500원| 조회(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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