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퍼스 모델 비판(Criticism of The Dreyfus Model of Skill Acquisition)색맹에게 초록색을 설명할 수 있을까. 색을 보는 경험은 느낄 수는 있지만 언어로 설명할 순 없다. 암만 초음파를 공부해봐야 박쥐나 돌고래처럼 초음파로 사물을 감지하는 경험을 알 수 없듯이 말이다.나는 격투기를 배운다. 하루는 방어 기술을 예습하려고 ‘킥 방어’를 유튜브 동영상 검색으로 연습하는데 몸의 여러 부위를 움직이고 머리로 원리도 익히는 등 한 번에 여러 연산이 요구되는 지식을 인강으로 배우는 것이 좀체 쉽지 않았다. 뭐 그게 불가능이야 하겠냐마는 운동센스가 어지간히 좋더라도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오프라인으로 선생님이 직접 코치해줄 땐 센스 둔한 나 같은 이도 한 큐에 익힐 수 있었다.Dreyfus가 원격교육을 비판하는 논리는 이런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다. 단순한 시청각 정보전달방식으로는 곤란하다 이거다. 교육 1, 2단계는 굳이 원격교육 운운할 것 없이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이런저런 ‘매뉴얼 북’들이 수행해주기 때문에 Dreyfus 본인도 패스한다. 문제는 3단계부터다. 나도 원격교육에 긍정적이진 않지만 Dreyfus가 제시한 교육의 7단계설로 보는 원격교육비판은 문제가 많다. 왜냐,우선 Dreyfus는 원격교육을 기껏해야 화상통화 수준으로 전제하고 있는 듯 하다. 전화통화 때 느끼는 매체의 기술적 한계로 인한 소통의 답답함이 화상통화에도 어느정도 있겠지만 가상현실화에 따른 인터페이스 기술의 발전은 매체는 눈, 귀, 입의 연장에서 감촉, 뇌파 등으로 더 공감각화되고 있다. 6, 7장을 가만 보면 뭐랄까, Dreyfus가 갖는 아날로그에 대한 환상이 느껴진다. 대가(‘대가’라는 말도 좀 웃긴다.)에게 직접 옆에서 있어야만 배울 수 있는 스타일이 있으며, 그를 통해 새로운 자기만의 original을 창조해야 한다는 것인데, 아마 Dreyfus도 ‘neurosky’ 한번 접속해보면 동영상 강의로는 대가의 쩌는 포쓰를 배울 순 없다는 식의, 논의를 거의 초자연적인 차원으로 몰고 가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은 하지 않을 것이다. 설사 나는 대가에게 정말 aura같은 게 있다고 해도 그것을 보고 배우는 것이 Dreyfus가 믿듯 정말 좋기만 한 것인지 회의적이다. 지식이나 테크닉적인 스킬은 그 나름의 문법을 통해 익힐 수 있는 것이겠지만, 대가의 스타일이나 기풍은 문법같은 것이 아니다. 단일한 컨텐츠를 보고 베끼고 변형하는 와중에 창조는 가능하지만 창조의 범위는 반드시 제한될 것이다.원격교육은 대면교육이 놓치고 있는 많은 장점들을 충족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장점만-The Dreyfus Model of Skill Acquisition해도 여러 가지가 있다.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무한정 반복할 수도 있고, 자세히 보고 싶은 부분을 확대해서 볼 수도 있다. 또 강의의 무한한 복제가능성은 지식습득을 공간적/경제적으로 평등하게 해줘 학습자의 대상을 확대한다.Dreyfus가 이런 표면적인 장점들조차 보지 못하는 이유는 원격교육이 불완전하다고 보는 그의 시각에 대면교육이 이상적인 교육방식이라 전제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대면교육을 얼마나 재현할 수 있느냐로 원격교육 효과의 maximum을 잡게 되어 원격교육 고유의 장점을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당연히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부분에 대해 다룰 리 만무하다. 할만큼 공부한 양반이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현대 미디어 이론의 기초적 정의를 외연하는 소쉬르의 구조주의 언어학 조차 무지한 걸까. 매체가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구조주의적 관점을 반박하지도 않고 기냥 무시하는 걸로 봐선 정말 모르는 것 같다. 어쩌면 그가 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를 신봉하는 로맨티스트여서일수도 있고.맥루한의 “미디어는 메시지다.”를 생각해본다면 원격교육에 활용될 매체에 의해 교육의 방식과 양태는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그 변화 양상은 사회의 여러 변수와 얽혀 어떤 장/단점이 있을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게임중독자, 오덕,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혐오가 말하는 것교류학생 2009-91502철학과 임광택목차서론본론1.게임‘중독’? 소쉬르의 설명2.오덕과 은둔형 외톨이-라캉의 설명1)욕망이론2)아바타가 감추는 것3)은둔형 외톨이4)오덕의 수집광적 행태결론1.혐오의 이유2.마치며-참고자료서론언젠가 수업시간에 은둔형 외톨이에 대한 영상)을 시청했다, ‘은둔자’의 자폐적 인성과 긴 머리, 오덕한 행동들이 비춰질 때마다 강의실 여기저기 비웃음이 나왔다. 나는 궁금하다. ‘은둔자’들이 그랬듯 우리의 외모, 옷차림, 사회적 위치, 경제력이 최종적으로 부정당했을 때 우리는 카메라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하던 ‘은둔자’의 모습과 구분될 수 있을 것인가. 오늘날 은둔형 외톨이, 오덕, 게임중독자)에 대한 범지구적인 혐오는 그 이유를 굳이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사회는 그들의 자폐적 인성과 현실도피적인 행태를 더러는 비웃고, 더러는 염려하며 자신의 건전성과 진정성을 보장받지만 현실사회가 정말 그들을 비웃을 만큼 건전하고 진정한가? 이것은 사회화의 건전성과 진정성에 대한 게임중독자, 오덕, 은둔형 외톨이 이들 사회의 이단아의 증언이다.본론1. 게임 ‘중독’? 소쉬르의 설명.중독은 심리적 신체적 의존에 의해 특정 대상을 과도하게 집착하고 충동적으로 반복하며, 이 행동으로부터 부자유한 상태를 말한다. 심리적 문제의 증거이고, 정상적인 현실생활을 방해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함의를 갖는다. 온라인 게임이 중독은 확실히 중독이다. 그렇다면 온라인 게임중독에서 벗어나면 정상적인 현실생활과 심리적 건전함은 회복될 수 있는가?구조주의 언어학자 소쉬르가 제공하는 기표와 기의 모델은 아바타와 ‘나’의 상관관계에 대해 잘 보여준다. 그는 빨강이, 노랑과 초록 사이에 있을 때 정지라는 의미를 얻고, 비디오 테이프 라벨에 붙을 때 19금의 의미를 얻고, 파란색의 왼쪽에 놓일 때 진보라는 의미를 얻는다고 보았다. 사회적 동물 역시 격식, 취미, 도덕성, 직업, 옷차림, 문화, 처세, 유행의 민감도 등의 기표들을 수집하고 강화해 나가면서 자기 정체성의 기의를 가상적)으로 갖춰나간다.온라인 게임이 아바타와 아이템들로 가장한 가상적 자신과 외부환경이 인터랙션하는 허구적 가상현실 공간이듯이 국가, 체제, 문화로 압축된 오프라인 사회에서 취미, 도덕, 격식, 문화, 소비, 처세, 유행으로 유지되는 사회화의 '아바타'들로 가장한 가상적 자신은 집단으로부터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보장받고, '아바타'를 자기 정체성으로서 내면화한다.하지만 때때로 허구적인 편견과 금기에 충실한 오프라인 사회화는 왜곡적이다. 사회 안에서 안정적으로 사는 사람은 12년 동안의 공교육을 받지 않으면 노가다로 먹고사는 막장인생이 되며. 문 밖에 내놓은 배달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으면 안되며. 자신의 옷차림을 통해서 자기 계급과 성격을 간접표현하고, 만화방에서 피터지는 액션만화를 보고 나오면 인생을 낭비한다 느끼지만 대학로에서 극단의 연극을 보고 나오면 인생을 가꾼다고 느낀다. 언뜻 무한한 선택의 자유가 있는 듯한 ‘아바타’는 사회화의 허용한도를 넘지 않는다. 때로 이러한 금기들을 어기는 ‘무브먼트’는 어떨까? 그것은 금기를 깨고 반사회적인 듯하나 자유와 사회의식을 드러내는 ‘아바타’로써 기능함으로써 사회적인 것으로 안착한다. 마초이즘의 완성이 낭만적인 마초이즘에서 완성되듯) 사회적인 것은 반사회적인 것에서 완성된다.) 변기는, 뒤상이 갖다놓으면 예술이고, 노가다 꾼이 갖다 놓으면 화장실 칸을 잘못 찾아온 것이다.여기서 드러나는 문제는 오프라인 사회 역시 게임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상성에 의존한다고 볼 때 정상적인 현실생활을 규정할 표준적인 기준선도 모호해지고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기표들의 왜곡적 구조가 자기 정체성이 흔들린다는 것이다.2. 오덕과 은둔형 외톨이-라캉의 설명자기 정체성 즉, 우리가 ‘나’라고 느끼는 자아의식을 라캉은 원래부터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화에 편입하기 위해 욕망 덩어리인 무의식을 억압하는 목적을 갖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한 설명은 레비스트로스로 거슬러 올라간다.1) 욕망이론레비 스트로스는 ‘근친상간금지’라는 금기는 원시에서 문화로 이행한 모든 문명의 공통적 척도라 분석했다. 그는 원시의 혈연관계에 놓이지 않은 각각의 인간은 화합을 위한 교환행위와 종족번식을 위한 도구로 여성을 교환함으로써 사회를 이룰 수 있다고 보았다. 이때 근친상간금지는 사회화의 충분조건이 된다. 라캉에게 이것은 집단의 형성과 사회화를 위해 한 개인이 엄마와 결혼하고 싶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스스로 억압한 것이다. 무의식은 여기서 발생한다. 요컨대 무의식은 욕망(desire)이고, 욕망은 사회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욕구(need)를 충족하기 위한 순화된 방식인 요구(demand) 사이의 갭에서 발생한다.욕망은 사랑받고자 하는 의지이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을 통해 충족한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즉 다른 사람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 욕구에 의해 이상화된 자아가 형성된다. 사회화 아바타는 바로 이 이상화된 자아를 형성하는 도구들이다. 요구는 욕구를 항상 불충분하게만 충족하기 때문에 욕망은 항상 자신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대체 가능한 대상을 찾는다. 대체 가능한 대상은 자기 내부적으로 책과 라떼가 갖는 지성의 이미지, 쉬크한 패션이 갖는 도도한 이미지, 격식이 갖는 안정감있는 이미지 같은 아바타를 수집함으로써 대체하고, 자기 외부적으로는 의식에 의해 억압하고 있는 무의식을 다른 이에게 투사시켜 그것을 공격해 자신을 항상적인 이상적 자아의 상태를 유지하려 한다.2) 아바타가 감추는 것아바타를 다 벗기면 욕망이 남는다. 욕망은 일종의 부자유인데, 욕망은 통제되지 않으며 이성적이고 자기절제적인 모든 행동들은 욕망이 이상적 자아와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복잡화된 행동패턴이다. 걸인에게 적선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이 걸인의 실제적 필요를 위한 순수한 이타심에서인지, 걸인에 대한 실제적 외면을 위한 은폐된 이기심에서인지 자기실현을 위한 순수한 이기심에서인지 구분할 수 없다. 아바타를 걷어내면 이런 절망적인 현실과 마주한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현상이며, 비본질적인 아바타에 의해 잠정적으로만 규정된다. 아바타의 역할은 자신을 표현하는 것도, 감추는 것도 아니다. 아바타는 이 절망적 결론을 은폐한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는 질문 앞에 자신의 직업, 도덕, 패션, 민증, 가치관으로 대답하긴 어딘지 명쾌하지 않은 이유는 이 때문이다. 우린 사실 다 알고 있다.3) 은둔형 외톨이‘은둔형 외톨이’는 아바타를 걷어낸 속에 대한 조금 더 실제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거의 모든 사회화와 단절하고 방이나 집 안의 제한된 공간에 갖혀있는 사람을 뜻하는데 본인의 의지를 뛰어넘어 장기간 계속 되며,) 증상의 주된 발생 원인)은 대인관계 실패, 사회부적응, 왕따이다. 사회화 아바타들이 최종적으로 부정당한 이들은 아바타가 더 이상 이상적 자아를 구축하지 못하기 때문에 필요로 하지 않거나. 아바타 대신 아예 방문을 잠가 외부와의 접촉을 단절한다. 아바타를 걷어낸 그들의 생활하는 방식은 인터넷, 온라인 게임, 오덕질 등의 다른 가상공간에서 새로운 타입의 아바타를 찾거나, 혹은 이불 속에서 먹고 자는 기본적 욕구만 충족하며 사는 것이다.4) 오덕의 수집광적 행태앞서 설명했듯 무의식이 욕망의 결핍을 메우기 위해 대체가능한 대상을 찾는 방식 중 하나는 상점에서 상품의 이미지들을 소비하는 것이다. 필요는 충족될 수 있지만 욕망은 항상 충족되지 않는다. 소비자가 이미 가지고 있는 옷을 또 사고(유행), 굳이 필요하지 않는데 사는(광고) 이상행동을 보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생활 필수품에 대비되는 사치품의 높은 가격 탄력성은 이러한 이상행동에 의존한다. 이것은 오덕이 갖는 수집광적 행태이다.오덕은 일종의 수집광인데, 오덕은 단지 물건 뿐만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정보와 컨텐츠들 역시 수집한다. 때로는 수집품을 생산하기도 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수집광의 욕망은 축적과 보유로 유지되는 항문기 고착이다. 다만 그의 욕망은 수집품 자체를 소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트를 완성하려는 허구적 완전성을 위한 것이다.다만 이 수집광의 행동은 자신에게 몰두해 있다. ‘아바타’로 유지되는 사회화 역시 일종의 수집광적 행동이다. 옷차림, 문화향유, 신분, 도덕, 격식 등은 아바타 자체에 대한 관심이 아니다. 사회화에 얽매이지 않는 아바타가 없기 때문이다. ‘아바타’의 역할은 수집을 통한 자기확립이라는 허구적 완전성을 충족하는 것이다. 물론 이 모든 행동은 자신에게 몰두해 있다.
오덕을 위한 나라는 없다이들에 대한 뜨거운 관심들 정신차려 . 배가 부 르 니깐 , 쳐 맞아야 돼 . 군대를 가야 돼 . 언제 철들래 ? 뭐야 … 무서워 냄새나 ~ 애가 아직 정신을 못차렸어 . 현실감각이 없구만 ? 목사님 아이구 아버지 … 찌질새퀴들 . 게으른 놈들 . 난 쟤네보면 열받아 . 불쌍해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어쨌건 ‘ 현실 ’ 로 돌아오라 .현실 ? 무엇이 현실인가 ? 일단 게임이 현실은 아닌 것 같고 … 그럼 오프라인 사회는 ?중독 (Addiction): 정신 의존증으로서의 중독 심리적 의존이 있어 계속 물질을 찾는 행동 , 신체적 의존이 있어 복용을 중단하지 못하며 , 신체적 , 정신적 건강을 해치게 되는 상태 .게임중독은 왜 중독인가 ? 게임에 대한 과도한 집착 , 충동적 반복 ↓ 정상적인 현실생활 곤란 ↓ 게임중독을 벗어나 오프라인 사회로 돌아오면 그곳은 현실 ?Online - Offline 온라인게임 : 아바타와 아이템으로 가장한 허구적 자신과 외부와의 Interaction 오프라인 사회 : 취미 , 도덕 , 격식 , 문화 , 소비 , 처세 , 옷차림 , 유행 …etc 사회화 ‘ 아바타 ’ 집단으로부터 사회적 위치 획득 ‘ 아바타 ’ 를 자기 정체성으로 내면화사회화 ‘ 아바타 ’ 가 말하는 것 - 나를 표현한다 (x) - 나를 감추고 은폐한다 (x) -[ 감출 ‘ 나 ’ 가 당최 없다는 사실 ] 을 은폐 (O) ◎ _ ◎ ??자아비판의 시간 나는 누구인가 .( 내 아바타 목록 loading…) 직업 ? 학벌 ? 소득 ? 누리는 문화 ? 입고 있는 브랜드 ? 사상 ? 도덕 ? 가치관 ? +11 흑광검 카이너스 = 임광택 ?사회화의 오덕적 성향 오덕질 : 일종의 수집광 . 물건 , 정보 스케줄 등등 다양함 오덕의 욕망은 수집품 자체 (x) 세트 완성 (o) but, 오덕이 정말 몰두하는 것은 그 자신 사회화 : 일종의 수집광 . 옷차 림 , 문화향유 , 신분 , 도덕 , 격식 등등 모든 패션 , 문화 , 신분 , 도덕 , 격식 등등은 좀체 사회화의 허용 한도를 넘지 않는다 . 금기와 억압 , 신경증이 폭발해 개인을 무법자로 만들지 못함 .- 상품소비를 통해 출구를 찾는다 .아바타를 다 벗기면 ? Jacques- Lacan (1901~ 1981) ‘ 나 ’는 발명품이야 . 말하자면 . 원래부터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사회화에 편입하기 위해 욕망 덩어리인 무의식을 억압하는 목적을 갖는 하나의 현상이란 거임 .. ‘ 모글리 ’ 나 정신지체아를 보라구 . 그리고 …또 다른 예 , 은둔형 외톨이 거의 모든 사회화와 단절 , 방이나 집 안의 제한된 공간에 갖혀있는 사람 . 은둔형 외톨이의 고립은 본인의 의지를 뛰어넘어 장기간 계속 됨 - 인터넷 , 온라인 게임 , 오덕질 등의 다른 가상공간을 찾거나 , 먹고 자는 기본적 욕구만 충족 .Online 이나 Offline 이나 .. 온라인게임 오프라인 사회 모두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이 ‘ 중독 ’ 이 되는 정확히 그만큼 오프라인 사회화 역시 ‘ 중독 ’ - 하지만 중독에서 벗어나 편입할 ‘ 현실 ’ 이 없다면 ‘ 중독 ’ 이라 부를 수 있는가다 .그럼 우리는 왜 은둔형 외톨이와 게임중독자에게 혐오감을 느끼는가 ?Jacques- Lacan (1901~ 1981) 이상화된 자아 ( 의식 ) 는 억압된 무의식과의 분열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종종 무의식을 다른 사람에게로 투사시킨다 . 우리가 이들을 혐오하는 이유는 게임중독자들의 ‘ 중독 ’ ( 정말 그게 중독이라면 ) 증상을 보며 스스 로 의 사회화 중독을 발견하기 때문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하려 하기 때문이야 . 에이리 언 , 외국인 , 빨갱이 , 로봇처럼 다른 대상에게 뿔을 달고 , 꼬리를 붙여 공격할 만한 대상으로 만드는거지 . 그럼 잔인하게 경멸해도 되는 정당성이 마련되거든 . 비슷한 예로 자기비하에 빠진 사람이 있음 . 자기비하에 빠진 사람은 비하하는 중에 있는 그 자신에 대해선 강하게 긍정하거든 . 무의식의 투사는 이렇게 두 방향으로 ㄱㄱ결론적으로 .. 게임중독자 오덕 은둔형 외톨이 왜 우리는 이들을 혐오하나 . ↓ 게임 ‘ 중독 ’ 은 오프라인 사회와 게임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 은둔형 외톨이의 고립은 ‘ 아바타 ’ 로 유지되는 사회화가 비이성적 이고 부자유한 욕망 덩어리를 은폐한 다는 사실을 , 오덕의 수집벽은 사회화 역시 오덕처럼 유아퇴행적인 수집벽에 의존한다는 것을 감추기 때문이다 .끝 .{nameOfApplication=Show}
시뮬라크르들의 자전철학과 임광택Jean Baudrillard (1929~2007)=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Simulacre -없는 걸 있는 것처럼 만든 인공물 Simulation -시뮬라크르의 동사형 - 투명옷이나 미감각은 시뮬라크르(없는데 있는 척 하는 사물)이다.이데아,현실,이미지다소 찌그러진 공=현상 '한 점으로부터 거리가 같은 점들의 집합'이라는 개념=이데아 “공을 보고 원을 떠올리는 이유 - 우리 마음 속에 원의 이데아 가 있기 때문”Plato (BC 428~BC 348)∴이데아————현상모방모방∴이데아————현상————이미지모방이미지————현상————이데아모방모방하지만 시뮬라시옹의 질서에선..이미지현상이데아80년대 유행허구적 미감각거짓말투명옷아름다움아름다움이데아현상선 정신 남 인간 빛 삶 배악 육체 여 기계 어둠 죽음 항구비판그건 왜 선하고, 저건 왜 악한가? 송과선은 정신/육체 어느 쪽 작용? 여성 억압의 기원은? 어디까지가 인간이고 어디까지가 인간?플라톤적 이원론의 해체기표와 기의Ferdinand de Saussure (1857~1913)원주민에게 '갈색'을 설명해 봅시다.+ + + =←요거 = ↑요거기표: 개념을 지칭하는 표식 기의: 개념에 대해 머리속에 연상하는 그것'갈색'의 의미는 다른 색과의 차이에 의존.- 기의는 기표의 차이에 의해 규정된다.구조주의 학파소쉬르-구조주의 언어학 알튀세르-구조주의 맑시즘 롤랑 바르트-구조주의 기호학 레비 스트로스-구조주의 인류학 라캉-구조주의 정신분석학 보드리야르-구조주의적 사회문화론 :소비에서 시뮬라시옹의 질서가 작동함억압이 뭐임?ㅋㅋ ㅋㅋㅋㅋㅋㅋ- 인간은 상품소비를 통해 억압을 해소한다.억압 = 소비의 기원Jacques-Lacan (1901~ 1981)Claude Levi Strauss) 1908~2009근친상간금지는 인간이 원시에서 문화로 이행하기 위한 필요조건임. 여성을 교환함으로써 동맹과 종족번식이 용이해지거든. 이건 모든 인간사회의 공통점임.때문에 사회화된 인간은 필연적으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스스로 억압하게 되어있어. 엄마랑 자고 싶은 욕구는 금기야. 금기에 가로막힌 욕구에서 무의식이 발생!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기표/기의 기의가 기표의 차이 속에서 규정되듯 무의식은 징후들의 관계 속에서 발견 2) 꿈의 표현방식 -은유: 여러 개의 이미지가 하나로 압축 -환유: 성교→ 피흘림, 사정→눈물 -대리표상: 싫어함 →뱀, 죽음→호수무의식=문법화된 욕망(desire) 욕망은 요구(demand)와 욕구(need) 사이의 갭에서 발생, 가령 어머니랑 결혼하고 싶다는 욕구는 →욕구를 만족시켜 달라는 사랑의 요구 형태로 순화. → 하지만 욕구는 여전히 목마르다. →욕구와 요구 사이의 격차에서 욕망이 발생. →요컨대, 욕망은 곧 결핍. →무의식은 결핍을 메우기 위해 대체 가능한 대상을 찾게 된다. (환유) →욕망=(타자에게 내가 욕망의 대상이 되려는) 욕망 =이상적 자아(의식, 혹은 나)가 되려는 욕망 ∴이상적 자아, 즉 '나'는 본래 있던 것이 아니라 하나의 발명품. 나=존재(x), 현상(o) But, 무의식은 평소엔 이상화된 자아(이하 의식)에 의해 억압라캉의 박사학위 논문 편집증적 정신병과 인성과의 관계퍽!라캉의 박사학위 논문 편집증적 정신병과 인성과의 관계김군의 경우 위압적인 부모님 밑에서 장남으로서의 부당한 희생을 강요당한 것에 대한 분노가 있음. 그러나 곤궁한 가정의 장남으로서의 역할과 효 도덕에 의해 분노를 억압. 항상 부모님을 챙기지만 술만 마시면 부모님을 원망.라캉의 박사학위 논문 편집증적 정신병과 인성과의 관계가족들 간 정서적 교류가 격조함. 부모님에 대한 관심이나 친밀함이 깊지 않고, 부모님에 대한 불만이나 험담을 숨기지 않음.∴ 김군의 예군 폭행원인분석 김군은 예군을 보며 자신이 유지해 온 억압을 쉽게 부정당하는 것에서 분노함. 실상 김군이 정말로 바라는 것은 예군과 같은 행동.→ 의식은 무의식과의 분열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의식을 다른 사람에게로 투사소비자에게 상품소비는 이상적 자아를 구축, 반대로 환유된 욕망을 충족- 억압 소멸물건이 필요해서 사는게 아냐, 우린 옷이 해지기 전에 다른 옷을 또 사지. Vogue지의 must have item은 정말 must have해야 하나?소비자가 소비하는 것은 환유된 이미지, 즉 기호이다.상품의 가치저급품과 중급품의 가격차 요인= 품질 중급품과 고급품의 가격차 요인=희소성 ※다른 상품들과의 차이에 의존 가치있는 상품이란 없다. 상품에 대한 가치판단만이 있을 뿐.시뮬라시옹의 질서 안에서의 이미지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반영이다.▼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을 감추고 변질시킨다.▼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부재를 감춘다.이미지는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어떤 사실성과도 무관하다.내가 입은 옷은 나를 표현(반영)한다.▼내가 입은 옷은 나를 감춘다.▼내가 입은 옷은 감출 '나'조차 없다는 사실을 감춘다.내가 입은 옷은 어떤 스타일이건 간에 '나'와 무관하다.결핍된 욕망은 기호로 환유된 상품소비로 대체 But, 욕망은 끝이 없다. 따라서 소비도 끝이 없다.Ex) 수집광의 욕망은 수집품 자체(x) 세트 완성(o) but, 수집광이 정말 몰두하는 것은 그 자신.파생실재의 저지장치 -진실의 폭로를 막는 효과적 방법은?-1) 디즈니랜드 -미국은 유아적 퇴행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2) 워터게이트 -정치는 원래 그렇고 그런거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리얼리티 쇼 -TV가 우리보다 먼저 있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리얼리티 쇼 'Loud family'전형적인 미국적 가정인 Loud씨 일가의 일상을 7개월 동안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 가족은 결국 붕괴. (원인은 몰라용) TV속 그들은 마치 자신들을 보는 '우리(시청자)가 없는 듯' '우리가 거기 있는 듯'살았다.의미작용의 추상화만약 기호가 점점 실재와 비슷해져 실재보다 더 리얼해지면?기호가 실재보다 리얼해지면 기호는 또다른 실재가 된다. 때문에 '우리(시청자)가 없는 듯'(있는데 없는 척) = '우리가 거기 있는 듯'(없는데 있는 척)-사실은 리얼리티 쇼를 비롯한 영화, 드라마, 광고에도 해당됨. *화면 속 모델과 자신과의 동일화를 유도당신은 드라마 '트리플'이나 '커프' 보다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이선균 윤계상 이런 애들이랑 대비되는 자신의 앙상함에 절망해 본적 있으십니까?저 가구들, 멋진 컴퓨터들, 샷시 짱인데? 체크남방 팔 걷는 것도 잊으면 안되지.노란 조명에 와인 집에서도 간지나는 아이스 커피TV의 진실우리를 바라보는 카메라 없이 살고 있다는 자명한 사실은 우리가 카메라 없는 듯 살고 있다는 진실을 은폐한다. TV가 우리 삶을 재현하지 않고,(이미지가 현실을 모방) 우리가 TV를 재현한다. (현실이 이미지를 모방)토론점구조주의에서 개인은 자유의지가 사실상 없다. 심지어 자유의지를 만들어내는 자아조차 부정된다. 칸트에 의하면 자유의지는 결정론에 의해서 상당히 파괴 되더라도 없어선 안되는, 때문에 '요청'되는, 따라서 시뮬 라크르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보드리야르-라캉의 자아 해체를 통한 논리에 균열이 생기지는 않은가.끝.{nameOfApplication=Show}
시뮬라크르들의 자전철학과 임광택시뮬라시옹의 질서이데아-현실-이미지의 역전플라톤적 이원론의 해체기표와 기의소비의 기원※라캉의 박사논문시뮬라시옹의 질서 내에서의 이미지(기호)파생실재의 저지장치결론?비판점시뮬라시옹(시뮬라크르 하기)의 질서현대 이전의 의상들을 볼 땐 그렇지 않은데 80~90년대 패션, 뮤직비디오들을 보면 보는 사람 낯이 뜨거워질 정도로 촌스럽다. 그때 우린 어쩌자고 그런걸 입고 다녔을까? 보드리야르는 현대의 유행이 ‘벌거벗은 임금님’의 투명 옷에 감탄하던 백성들의 기만적 미감각과 유의미한 차이가 없다고 본다. 미감각 혹은 투명 옷처럼 ‘가장’(없는데 있는 척)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시뮬라크르라 부른다. 그에 따르면 투명 옷과 유행에서의 미감각은 당최 없으며, 굳이 있을 필요도 없다. 단지 이것들은 시뮬라시옹의 질서 내에선 정당화된다.이데아-현실-이미지의 역전개념이나 현상은 허구적이어도 상관없다니, 이런 생각은 아무래도 상식에 어긋난 듯 하다. 우리의 상식을 제공해주는 이가 있다. 플라톤은 세상엔 이데아-현상. 이렇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는 아주 어처구니 없는 논증을 펼친다. 가령 우리가 사는 현실에 한 점으로부터 거리가 같은 점들의 집합이라는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원형체는 없다. 아주 미세한 정도는 일그러져 있기 마련인데, 일그러진 공을 보고도 우리가 ‘어, 저 공은 원형이네.’ 라며 원을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마음 속에 원의 이데아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현상은 이데아의 모방이다.이데아 -------> 현상모방요즘도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예술은 이 당시 현상을 모방한 것으로 이해했다. 때문에이데아 ------> 현상 ------> 이미지모방 모방하지만 시뮬라시옹의 질서는 이 건전한 상식을 뒤집는다.이미지 ------> 현상 ------> 이데아모방 모방허구적 미감각에 의해------80년대 유행 옷이------ 그걸 본 사람들은만들어지고 아름답다 느낀다.(이미지) (현상) (이데아)거짓말에 의해------투명옷이 만들어지고------우왕 옷 이쁘다!플라톤적 이원론의 해체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다시 플라톤으로 돌아가보자. 그에 따르면 이데아는 현상과 비교해 완전하고 정신적 가치를 가치며 본질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원적 구분, 즉 이원론이라 부르는 이 담론은 이후 약 2000년을 장악한다. 오늘날 우리는 정신적 가치, 진정한 사랑, 인간의 존엄성, 남존여비 등등의 사고방식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현대에 들어와 이원론은 니체, 프로이트, 맑스를 필두로 많은 공격을 받는다.이데아현상비판선정신남인간빛삶배악육체여기계어둠죽음항구남을 돕는 건 왜 선하고, 남을 해치는 건 왜 나쁜가?송과선은 정신과 육체 어느 쪽의 작용인지 증명이 안된다.여자가 도태된 것은 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남자들 열폭 때문이다.뇌 뉴런의 10%가 기계로 된 사람은 인간일까? 30%는? 50% 99%는?---------기표와 기의이에 대한 새로운 질서는 소쉬르라는 언어학자가 주도한다, 어떻게? 다음을 살펴보자.의사소통 전혀 안되는 원주민에게 ‘갈색’을 알려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갈색 계열의 물건들을 주루룩 보여주면 맞출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일반적인 의사소통은 퀴즈쇼가 아니다. 소쉬르가 제안하는 방법은 여러 색깔 카드를 보여주고, 그 중 갈색을 지칭해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갈색’이라는 의미는 다른 색들과의 차이에 의존한다.(색깔 카드처럼 개념을 지칭하는 표지판을 기표라 부른다.우리가 갈색을 떠올릴 때 우리 머리 속에 연상되는 것을 기의라 부른다.기의는 기표의 차이에 의해 규정된다.)소쉬르의 언어학을 통한 통한 사회과학적 접근을 구조주의라 한다. 구조주의 학파는구조주의 언어학 - 소쉬르구조주의 맑시즘 - 알튀세르구조주의 기호학 - 롤랑 바르트구조주의 인류학 - 레비 스트로스구조주의 정신분석학 - 라캉보드리야르는 분야가 애매하지만 어쨌든 구조주의로 분류된다. 그는 소비에서 작동하는 구조주의척 체계에서 시뮬라시옹의 질서를 보았기 때문이다. 사회화된 인간이 받게 되는 억압을 상품소비 - 나이키 운동화, 프라다 핸드백, 별다방 라떼, DSLR, 뉴요커 스타일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보장받으며 해소하기 때문이다.소비의 기원억압? 어떤 억압? 무엇으로부터의 억압? 보드리야르는 라캉을 끌여들여 소비가 갖는 퇴행적 욕구를 찾아낸다. 레비 스트로스는 ‘근친상간금지’라는 금기는 원시에서 문화로 이행한 모든 문명의 공통적 척도라 분석했다. 라캉에게 이것은 집단의 형성과 사회화를 위해 한 개인이 엄마와 결혼하고 싶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스스로 억압한 것이다. 무의식은 여기서 발생한다. 사회적 규칙에 의해 형성되는 무의식이기 때문에 무의식은 인간에게만 있다.라캉에 따르면 무의식이 언어처럼 구조화되어있다. 무의식의 언어적 특징은1) 기표와 기의: 기의가 기표들의 차이 속에서 규정되듯이,무의식은 징후들의 관계 속에서 찾아낼 수 있다.ex) 누군가의 진짜 성격(무의식)을 알려면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가 보다는관찰된 행동들을 통해 그가 절대 보이지 않을 행동을 연역해 낸다.2) 프로이트 꿈 분석 -응축(은유): 여러개의 이미지가 하나로 압축(꿈의 표현방식) -치환(환유): 성교→피흘림 , 사정→눈물-대리표상: 싫어함→뱀, 바퀴벌레 , 호수→죽음이 무의식의 문법은 무의식이 욕망(desire)으로써 작용할 때 적용된다. 무의식은 욕망이다. 욕망은 요구(demand)와 욕구(need) 사이의 불일치에서 나타나는데, 가령어머니랑 결혼하고 싶다는 욕구는? 욕구를 만족시켜달라는 사랑의 요구 형태로 순화된다.요구는 사회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만 가능하고, 근친상간 욕구는 사회라는 질서에 개인이 편입될 때 무의식 속에서 억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욕구는 항상 충족이 안된다.?욕구와 요구 사이의 격차에서 욕망이 발생한다. 요컨대, 욕망은 결핍이다.?무의식은 이 결핍을 메우기 위해 대체 가능한 대상을 찾게 된다.(환유)욕망은, 풀어쓰자면 타자에게 내가 욕망의 대상이 되는 욕망이다.→무의식=욕망=네 욕망의 대상이 되고 픈 욕망인데 이것은 곧= 이상적 자아가 되려 는 욕망이다.여기서 라캉은 중요한 결론에 도달한다. 이상적 자아는 우리가 ‘나’라고 느끼는 의식인데 이것은 원래부터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과 타자의 욕망이 되고픈 욕망에 의해 파생된 하나의 현상이다. 즉 나는 곧 욕망이다.하지만 무의식은 평소엔 드러나지 않고 이상화된 자아(이하 의식)에 의해 억압된다.※라캉의 박사논문07년 내 룸메이트 김군과 예군의 사례나와 김군 예군은 같은 집에 사는데, 김군은 내가 없을 때 거의 매번 예군을 폭행했다. 나는 김군이 예군에게 직접적인 원한관계가 없어서 결국 정신분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로 결심! 김군, 예군과 각각 면담을 했다.김군의 경우 위압적인 부모님 밑에서 장남으로서 부당한 희생을 강요당한 것에 대한 분노가 있으나 곤궁한 가정의 장남으로서의 역할과 효 도덕에 의해 분노를 억압한 상태이다. 항상 부모님께 잘해드리려 하지만 술만 마시면 부모님을 원망한다. 부모님은 이혼한 상태였다.반면 예군의 경우 서로 정서적 교류가 격조한 가정에서 자라 부모님에 대한 관심이나 친밀함이 깊지 않고, 부모님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고 얘기했다.이를 통해 내린 김군의 예군 폭행 원인은 다음과 같았다. 김군은 예군을 보며 자신이 유지해온 억압을 너무나 쉽게 부정당하는 것에서 분노를 느꼈다. 실상 김군이 정말로 바라는 건 예군과 같은 행동이다. 면담 후 김군은 더 이상 예군을 폭행하지 않았다.이상화된 자아 즉 의식은 무의식과의 분열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종종 무의식을 다른 사람에게로 투사시킨다. 빨갱이, 외국인, 로봇에 대한 혐오의 경우는 일종의 집단 무의식이 작용한 경우인데, 이것은 ‘우리’ 안의 낯선 것을 외부의 이방인으로 구체화하는 것이다.시뮬라시옹의 질서 내에서의 이미지(기호)다시 보드리야르로 돌아와 보자. 그에 따르면 소비자는 상품소비를 통해 이상적 자아를 구축하고, 반대로 환유된 욕망을 충족함으로써 억압을 소멸시킨다고 보았다. 이때 소비자는 상품의 용도를 보고 소비하지 않는다. 이미 가지고 있는 옷을 또 사고(유행), 굳이 필요하지 않는데 사는 것(광고)이 그 반증이 될 수 있다. 상품의 용도는 알리바이일 뿐이고, 정작 소비자가 소비하는 것은 이미지, 즉 기호이다.저급품과 중급품의 가격차는 상대적으로 적으며, 가격차 요인은 주로 품질에서 발생하지만,중급품과 고급품의 가격차는 상대적으로 크며, 가격차 요인은 주로 희소성, 즉 다른 상품들과 다르다는 차이에 의존한다. 요컨대 고급품이 가지는 위상(가격)은 투명옷이 갖는 위상과 같은 성격을 지닌다. 기호는 허구적이며 아무것도 없다.이미지는 시뮬라시옹의 질서 안에서 다음의 단계를 밟는다. (27페이지)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반영이다.?내가 입은 옷은 나를 표현(반영)한다.??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을 감추고 변질시킨다내가 입은 옷은 나(무의식)을 감춘다.??이미지는 깊은 사실성의 부재를 감춘다내가 입은 옷은 (욕망만 있을 뿐)감출 나조차 없다는 사실을 감춘다.??이미지는 그것이 무엇이건간에 어떤 사실성과도 무관하다.내가 입은 옷은 고로 아무 의미도, 기능도 하지 않는다.나는 누구인가? 나이키? 서울대 학생? 미모? 성격? 능력? 삶의 목적? 이 모든 것의 총합? 시뮬라시옹은 무의식을 감추는 것이 아니다. 시뮬라시옹은 무의식은 욕망이라는 현상이며, 따라서 자아는 없다는 사실을 감춘다.다시 말해 소비자는 상품의 용도가 아니라 결핍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환유된 이미지(기호)를 소비한다. 사회 안에서 살고 있는 한 소비는 가능한한 무제한적으로 이루어지며, 신경증적으로 이루어진다.수집광이 한 예가 될 수 있다. 수집광의 욕망은 축적과 보유로 유지되는 항문기 고착이다. 그의 욕망은 수집품 자체를 소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세트를 완성하려는 허구적 완전성을 위한 것이다. 다만 이 수집광의 행동은 자신에게 몰두해 있다.파생실재의 저지장치벌거벗은 임금님이 행차하실 때 ‘사회화’가 덜된 꼬맹이가 “임금님 변태.”라고 진실을 말해 버리면 어떻게 될 것인가? 파생실재에는 우발 상황에 대비한 저지장치가 있다.